경소설회랑

영웅에게 필요한 5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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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참여 동의
  그것은 생각도 못한 쾌거였다. 일자진형을 편 채 전속력으로 돌진하던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단 번에 두껍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법한 거대한 성문이었다.
  사전에 성 안의 구조에 대해 알고 있던 그들은 그 사실에 당황하지 않았다. 다만, 그 거대한 성문에 그대로 전속력으로 돌진해 박살 나려하는 한 마리의 어리석은 나방이 당황스러웠을 뿐.
  "야! 야! 야야야! 얌마! 진짜로 몸통박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우린 인간포탄이 아니라고! 정신차려, 얌마!"
  "다른 수가 없다고 말했텐데!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면, 몸통박치기는 최고의 공격이라고! 잔말말고 일자진형 유지! 돌겨어어억!"
  "말 바꾸지마, 이자식아!! 진짜로 자살할 셈이냐! 스톱! 스톱! 스톱하라고! 스토오오오옵!"
  그 순간이었다.
  그 성문의 아래에 주둔 중이던 적군들이 자신들에게 일제포격을 가해 왔다.
  그리고 기적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지금이다! 산개에에에에에!"
  선두의 회개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현명한 승냥이들은 명령이 들려옴과 거의 동시에 눈부시게 빠른 행동력을 발휘, 그 자리를 이탈했다. 다른 게 아니라 이건 생명이 걸린 문제였다.
  펑! 퍼버퍼펑! 퍼벙!
  "하하핫, 봤느냐! 나의 완벽한 계획을!"
  "계획은 무슨...그냥 막판에 박아도 안 될 것 같으니까 뺀 것 뿐이잖아!"
  진짜 기적이었다.
  "잔말 하지 말라니까! 시간 없다! 빨랑 들어와!"

  + + +

  이쯤에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들은 대체 누구이며 왜 이런 무모해 보이는 행군을 하고 있는 것이며, 또 주인공인 듯 보이는 망할 리더의 이름은 왜 나오지 않는 지.

  어떤 가상세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상현실을 플레이하던 모든 유저들은 그 가상현실이 게임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그 가상세계는 실제론 신빙성있는 정보가 거의, 아니,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세상이었다.
  제작자, 운영자, 심지어 어디서 어떻게 무엇으로 서비스가 되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가상세계, 어비스.
  유저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이 가상현실, 어비스에 접속하는 방법이 매우 흥미로우며 현실성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정교하고 또 자유도 또한 리얼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방대하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비스라는 가상세계는 몇몇 유저들의 발을 묶어두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미지'라는 수식어는 어비스의 타이틀로서 작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상현실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 바로 미지로의 모험일 테니까. 알 수 없는 가능성으로의 도전. 거기에 무한한 자유도까지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개척게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란 건 늘상 과도한 경쟁으로 이어진다.
  그 경쟁에서 이겨얻은 것이 값진 것이면 값진 것일수록 게임은 전국시대를 향해간다. 그리고 어비스는 그런 유저들 간의 무차별적인 경쟁, 전쟁에 아무런 대처조차 하지 않았다. 무간섭. 무관심.
  그것이 어비스를 서비스하는 자들의 모토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무관심함이 지금의 참상을 부른 것은 확실하다. 영웅의 몰락과 소녀의 눈물과 수 많은 자들이 피를 흘리게 된 것까지......

  그러니까 이건 아주아주 간단한 이치인 것이다. 가상세계 어비스는 최초에 유입된 유저들이 둘로 갈리고 말았다. 퍼스트와 세컨드이다.
  그들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최초의 경쟁에서 승리한 자와 도태된 자들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게임이 한창 인기가 상승 중일 때는 도태된 자들일지라도 많은 수가 게임 속에 남게된다. 그들은 게임에 애착이 있는 자들이다.
  패배하고도. 도태되고도. 뒤처지고도.
  그럼에도 게임에 남아있는 자들이라면 그들은 오기가 아니라 정말로 그 게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테니까.
  그리고 게임에 애정이 있는 유저들은 언제나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기도 하다. 아래로 떨어졌으니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최초의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얻은 것은 바로 '마법적 능력'이었다.
  불을 지피고 바람을 일으키며 손대지 않고도 물건을 내던진다.

  그러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지 못한 세컨드들이 모색한 대항방법은 육체적인 수련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 방법이 시원치 않았다.
  어비스 세계의 던전을 클리어함으로서 저절로 얻게되는 마법적 능력에 비해 육체적 능력은 많은 시간과 능력과 관리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절망적이었던 것은 그럼에도 그들은 퍼스트들에게 도달할 수조차 없었다는 점이었다. '비행능력'은 퍼스트들이 가진 특권 중에 하나였으며, 절대적인 특권이기도 했다. 그것이 절대적인 특권으로서 작용했던 것은 세컨드들이 아무리 육체적인 수련을 쌓아가도 창공의 영역에는 발조차 내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행능력만 놓고봐도 퍼스트들이 세컨드들보다 앞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곧 전세는 역전된다.

  영웅, 허공의 선구자, 스왈로킹, 그리고 머더러. 갖가지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어비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 레몬스트 필리쉬. 그에 의해 퍼스트들은 세컨드들만 보면 덜덜 떠는 겁쟁이들로 전락하고 만다.
  이것 또한 간단한 이치다.
  퍼스트들의 비행능력이 그들의 가장 절대적인 특권이라면...하늘을 장악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때문에 허공의 선구자이며, 스왈로킹, 제비의 왕인 것이다.
  세컨드가 허공의 영역을 차지하면 퍼스트와 세컨드의 차이는 명백해진다.
  레모는 그것을 해내었고. 세컨드들을 퍼스트들의 괴롭힘에서 구원했다.

  영웅.
  그것이 그날부터 그를 가리키는 절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 누가 말했던가. 인간은 절대로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라고. 영웅은 구원을 행했다.
  그리고 영웅은 그 구원의 아래에서 서로를 물고 뜯는, 분명히 천국이어야 할 그 공간이, 지옥으로 변하는 광경을 보았을 뿐이다.

  세번째로 말하지만, 아주아주 간단한 것이다.
  영웅이 자신이 베푼 구원을 후회한 것은,
  구원받은 자들이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를 배신당한 영웅이 취할 행동은 당연했다.
  세컨드 간의 과도한 전쟁을 멈추는 것.
  세컨드들이 서로 빼앗으려 하는 것을 빼앗아 숨기는 것.

  태초의 서브 크리스탈.
  푸른색 광채가 아름다운, 기본적인 팔면체 모양을 갖춘 뾰족한 수정이 바로 한 때 자신이 구원했던 세컨드들의 성에서 레모가 빼앗으려 하는 것의 정체였다.

  + + +

  "느그들은 끝났삼! 희망따윈 없삼! 순순히 항복하는 게 좋을거심!"
  아름다운 푸른색 광채를 서포트라이트 삼아 서브 크리스탈에 바짝 붙어있는 웬 꼬맹이 한 명이 레모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초딩인가.
  "그건 네놈 생각이지! 우린 항복할 생각이 없거든! 동방전쟁에서 가장 많은 실적을 거뒀다길래 긴장 타고왔더니 너 같은 초딩이 튀어나와서 당황 좀 했다만, 그래, 수장이 초딩이라니 성내 유저들의 이 미적지근한 대응이 이해가 간다. 순식간에 중앙회랑을 돌파했을 땐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니까! 다 이유가 있었어! 암, 아니 땐 굴둑에 연기 날리 없지."
  가볍게 받아친 거였는데, 초딩이라 그런가, 의외로 격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누가 초딩이삼! 누가! 이 몸은 고딩이심! 게임 안에서 개성방출 좀 하겠다는데 그걸 못 봐주삼!? 너님은 개념이 없삼!?"
  아무리 봐도 그냥 초딩인데......
  레모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쭈욱 한 번 둘러보았다. 상대가 초딩이겠다(?) 여유가 절로 생겨난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상대측의 리더가 초딩이라는 걸 감안해도 충분히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제쳐 온 적군들의 거의 세배에 달하는 병력이 이 곳, 크리스탈 룸에서 대기를  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쿠. 애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네."
  "후후후. 이제 그걸 깨달은 거심? 모두 다 계획이었던 거심! 대응이 미적지근했던 건 느그들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거삼!"
  "초딩 맞네, 뭐. 넌 적을 유인할 때 자기들이 불리한 곳으로 유인하냐? 그냥 뒤늦게 정신차렸다고 고백해. 그게 더 체면 차리는 거야. 네 부하들 얼굴을 보라고. 쟤들이 지금 자신만만해 보이는 얼굴이냐?"
  마침 누군가가 마른침을 꿀꺽, 하고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타이밍 좋게 허세를 부숴버리는 부하의 배신(?)에 초딩이 얼굴을 붉혔다.
  "크으읏! 어느 놈이삼! 당장 나와서 자진납세 안하삼!?"
  그러나 당연하게도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초딩은 더욱 얼굴을 붉히며 더 크게 소리쳤다. 그 모습은 마치 두려움을 소리를 질러 애써 물리치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대체 뭐가 영웅이삼! 난 걔들 물리쳐 달라고 부탁한 적 없으심! 그리고 이건 엄연한 횡포란 말이삼! 권력남용이삼! 착한 척 한 지 얼마나 됬다고 벌써 권력질이삼! 이건 우리가 정말 열심히 싸워서 모은 크리스탈이란 말이삼! 이렇게 빼앗길 순 없삼!"
  레모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화난 얼굴은 아니었다. 단지, 무표정은 화난 얼굴보다 더 무섭다는 것 뿐이다.
  "왜 빼앗으면 안되는데? 애초에 그런 룰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너희도 다 힘으로 뺏아온 거잖아. 그거. 열심히? 열심히 사람을 죽였냐?"
  사실 평범한 가상현실게임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뒤통수를 맞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때문에 레모가 자신이 세컨드를 구원해 줬다고 세컨드들이 배신을 때렸다고 이렇게까지 진지해 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어비스는 그런 가상현실이 아니었다.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비스는 게임 따위가 아니다.

  한 생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상현실.
  그것을 게임이라 부를 수 없기에.

  레모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은 어비스가 평범한 가상현실게임이 아니기 때문이고, 동방전쟁이라는 무대를 통해 그것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며, 그 중심에서 가장 활약한 것들이 바로 이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그건...! 애, 애애, 애초에 게임 안에서 아바타 좀 괴롭혔다고 실제 사람이 죽는 게 말이 되삼!? 이 몸은 그런 말 믿지 않삼! 그리고 진짜 사람이 죽었데도 우리 잘못은 아니삼! 그건 사고심! 게임 서비스하는 놈들이 책임을 져야하는 거삼! 왜 우리가 죽였다는 거심!?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느그들도 브링혼 가지고 있잖슴! 우리보다 더 잘 다루잖슴! 느그들이 휘두르는 건 괜찮고 우리가 휘두르는 건 안된다는 건 무슨 궤변이삼!"
  저 크리스탈은 진짜 사람의 목숨으로 쌓아올린 죄악의 산물이었다. 그들의. 자신의.
  때문에 결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잡담은 그만하자. 저건 우리가 가져가마. 얘들아. 계획대로 간다. 가져온 연장 좀 꺼내놔라. 빨랑빨랑 끝내자."
  비글이 하품을 하며 비아냥거렸다.
  "흐아아암. 언제까지 잡담하나 지루했는데 끝났냐? 거 참 오래도 대화한다."
  시추, 리트리버가 그 뒤를 이었다.
  "기다리다 잠들 뻔 했네."
  "어이 그건 대체 무슨 횡포야. 참아줘."
  그리고 초딩의 발악이 시작됬다.'
  "총공겨어어어억!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막으삼! 이건 우리들의 긍지고! 자긍심이고! 금자탑이삼! 절대로 뺏길 수 없삼!"
  명령과 동시에 자신들에게로 일직선으로 뻗어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레모는 비장의 수를 꺼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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