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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간의 멸망하는 이야기(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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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31 Jul 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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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PHNTM
협업 참여 동의

 

멸망한다.
아니,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
곧 멸망할 것이다.

1.
꿈 속에서.
낮게 깔려 흩날리는 안개 사이로 검은 실 같은 것이 스멀 스멀 기어온다. 그 것은 온 몸에 기운이 빠진 듯, 이유 모를 탈력감에 지쳐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향해 스멀 스멀 기어온다. 나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로 그 것을 거부하고자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를 향해 스멀 스멀 기어온다. 두려움이 나를 향해 스멀 스멀 기어온다. 혐오가 나를 향해 스멀 스멀 기어온다.
결국에는 내 발 끝에 닿고야 만다. 나는 온 몸을 떨며 소리없이 그 것을 거부하고자 소망한다. 하지만 힘이 없이 누워있는, 말라 비틀어진 식물 같은 내가 무엇을 거부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의 거부는 단지 소망일 뿐, 변변한 저항조차 겪지 않은 채 쉬이 나의 발 끝에 닿은 그 것은 뱀처럼 나를 휘감았다.
발 끝
발목
정강이
무릎
허벅지

가슴

전신을 휘감은 뱀 같이 사악한 검은 것이 입 속으로 들어간다. 구토 할 것만 같은 역겨운 이물감에 몸서리를 친다. 꾸물꾸물 거리며 그 길다란 것은 목을 거쳐 나의 배 속으로, 나의 깊은 곳을 향해 내려간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동공이 확장된다. 숨을 삼킨다. 미지의 미래에 대한 공포가 나를 집어 삼키는 듯 하다. 결국 단 하나의 물음이 이 세계를 전부 집어삼키고야 말았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2.
꿈에서 깨어나서.
오늘도 악몽을 꿨다. 축축하게 젖은 시트, 엉망진창으로 말려 바닥에 떨어진 얇은 이불과 묘한 위치에 놓인 배게. 그리고 온 몸에 힘이 빠진 채로 이유 모를 괴로움에 몸서리치는 나.
악몽에는 전조가 없다. 그 흔적도 없다. 마치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매끄러운 잔상만이 남는다. 그런 잔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말기에 사람들은 꿈이 그 자리를 지나갔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것을 봤던 사람들 조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뱀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실로 용의주도한 그 뱀이 몰래 지나간 흔적을 살핀다. 흔적은 없다. 그래서 흔적이 있던 자리를 살핀다.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 것이 지나간 것을 본 기억도 없고, 그 것이 남긴 흔적도 없다지만, 아, 나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구나. 그래서 누군가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말 할 것이다. 볼 수도 없고 흔적도 없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구나. 그래서 누군가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말 할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아침에 깨어난 평범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바에야, 악몽에 몸서리치는 짐승처럼 기어서 자리를 뜨는 편이 낫겠다.
나는 뒹굴 뒹굴 굴러서 침대에서 떨어져버렸다. 한 순간 앗 하고 떨어지는 기분과 함께 머리와 다리 부분이 땅에 부딪쳐 아팠지만, 괜찮다. 아직 기어 다니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으니까.
엉금 엉금. 거북이처럼 기어갔다. 일단 거실 까지는 기어서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뭔가가 나를 막아선다. 나는 짐승처럼 바닥을 보며 기어왔기 때문에 그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젠장. 알고 싶지도 않다. 배가 고프다. 밥이나 먹어야겠군.
어이쿠. 뭔가가 나를 걷어 찼다. 더 이상은 외면 할 수가 없다. 나는 나를 걷어찬 것을 보기 위해 고개를 올려서 위를 쳐다 보아야 했다. 짐승처럼 기어 다니는 상태에서 그 것을 보기 위해서는 목이 아픈 것을 감수 해야 한다.
사실 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왜 나를 걷어 찼느냐, 하는 것도 알고 있다. 젠장. 알고 싶지도 않다. 배가 고프다. 밥을 먹어야겠다.

“아침마다 뭔 미친 짓이야?”

그가 내게 폭언한다. 그는 항상 저렇게 말한다. 아마 성격이 나쁜 것일 테다. 그리고 행실도 나쁠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침마다 내게 폭언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정도 쯤은 예상 할 수 있다.

“배고파요. 밥먹고 싶어요.”

내가 말했다. 그는 충분히 알아 들을 것이다. 성격과 행실은 나빠도 말은 잘 알아 듣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항상 그래 왔다.

“뭐?”

그가 못 알아 들은 척 한다. 다시 한번, 이 번에는 처음에 했던 쪽의 생각으로 말해줘야겠다.

“배고파요. 밥먹어야 겠어요.”

고개를 절레 절레 젓는 것을 보니, 젠장,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이 쪽이 더 편하기 때문에 굳이 변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원래’가 어땠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 것 참 우습군. 그건 마치 뱀 같은 단어가 아닐까? 결국에는 무슨 말이냐 하면, 그가 왜 그런 표정으로 그렇게 고개를 젓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가 밥을 차려줬다. 내가 밥을 먹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항상 그렇다. 그는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데로 해 준다.
그런데 밥은 사람처럼 앉아서 먹어야 하나? 아니면 뭍짐승처럼 엎드려서 먹어야 하나? 그런데 날짐승은 밥을 어떻게 먹더라?
결국 사람처럼 앉아서 먹기로 했다. 그는 내가 무엇을 질문하든 우선 화부터 낸다. 그리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내 머리를 때린다.
밥을 모두 먹고 난 뒤에는 약도 먹었다. 약은 싫다. 이 빌어먹을 것은 내 식도로 기어들어가서 위장 안에서 껍질을 까고 나와 내장을 파먹는 벌레의 알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 것을 모른다. 아마 이 작은 악마들이 모두를 속였겠지.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나 뿐이다. 그게 바로 가장 큰 문제다. 지금 내게 밥을 먹이거나 약을 먹이는 이 남자라도 이 사실을 나와 같이 알고 있다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 번에는 조금 괜찮았다. 왜냐하면 아침에 먹는 하얀색 약에서 나온 벌레들은 거진 반쯤은 내 뱃속에서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저녁에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빨간색과 노란색의 알약에서 나온 괴물들은 그야말로 사악한 잡것들이다. 나는 그 놈들 때문에 항상 잠을 설친다. 거울을 보면 눈 밑의 거뭇한 자국이 내 눈보다 크게 얼굴을 물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는 내 목구멍 속에 약이란 약은 모조리 집어 넣고, 내가 세안을 하고, 이를 닦고, 머리를 감는 것까지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이 곳에서 나간다. 그는 빌어먹을 잡놈이다. 자기는 밖으로 나가면서 나는 이 망할 집구석에 가둬두고 있다. 항상 내가 그 문제에 대해 항의를 할 때면 그는 그저 이렇게 말한다.

“난 너보고 여기 쳐박혀 있으라고 말한 적 없어. 멍청한 놈아. 나갈 일이 있으면 침대 옆에 서랍에 현금, 체크카드, 네 신분증 죄다 있으니까 너 하고 싶을 대로 하란 말이야.”

그 것 뿐이다.
얼마나 무책임한가? 얼마나 비정한가? 그의 피는 얼마나 차갑고 또 얼마나 느리게 흘러갈 것인가?
다만, 생각해 보면, 사실 생각하기 싫은 문제일 테지만, 아무튼 그의 말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내가 굳이 이 망할 집구석에 쳐 박혀서 24시간이라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매우 지루한 정도로 소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가 없이는 이 망할 집구석 밖으로 나갈 수 없단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혼자서 나가는 것은 정말로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몸이다.
국가 정보원, 국가 안전 보위부, 내각 조사실, 중앙 정보국, 정보 조정 연구소 등에서 오직 나 하나 만을 잡으려 편성한 작전 단위가 각각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그들에게 잡히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 세상, 이 사회의 막강한 권력 기관과 그 하수인들이다. 아마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그들에게 꼬리를 내주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조심하고 있다. 조금의 방심, 조금의 믿음도 내게는 불필요하다는 식으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행성의 모든 신호 정보와 영상 정보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들의 협조자들이 지천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보호자와 나 자신 뿐이다.
그런데 일말의 의심이 있다. 그 것은 과연 나를 보호하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남자가 나를 끝까지 보호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의 이름도 모를 뿐더러 그의 신상 명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사실은 아무런 관심도 없을 뿐이지만, 그래도 종종 그런 의심을 할 때면 더더욱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이다. 
어쩌면 그가 나를 계속 이 곳에 가두어 놓고서는 내 보내주지 않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나를 보호하는 척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를 쫓고 있는 인간들에게 나의 신병을 넘기는 일에 대한 대가를 협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심이 있다.
참을 수가 없다. 나는 전화기가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마침 전화기는 바닥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엎드린 상태에서도 사용 할 수가 있었다. 그 옆에 놓여진 종이 쪽지에 써진 번호대로 전화를 걸었다. 그의 휴대 전화 번호다.

“뭐야?”

그가 퉁명스레 말한다. 나는 용건을 말했다. 하나 하나 차근 차근 설명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쫓기는 몸이고, 너는 나를 보호하는 사람이고, 어쩌면 네가 나를 사악한 적들에게 팔아 넘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아마 그가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리를 지르기로 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꺄아아아아아아악!!!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한동안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그 시끄럽기 짝이 없는 행위를 그만 두었다.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그리고 나는 살짝 상기된 얼굴에서 화끈거리는 열기를 느끼며 다시 한번 그에게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나의 의심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좋아, 알겠어. 일단 진정해. 그러니까 네가 지금 쫓기고 있고, 내가 너를 보호하고 있고? 이건 사실이지, 그리고 내가 너를 너를 쫓는 녀석들 한테 넘겨 준다고? 맞아?”

이제야 나와 대화를 할 생각이 들었나 보다. 좋은 일이다.

“네”

하지만 그건 단지 동어 반복일 뿐이다. 그는 나와 진지한 대화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이건 나쁜 일이다. 그는 단지 시간을 끌려고 하고 있다. 그런 태도로는 진실된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왜 말을 할 때 시간을 끄는가? 그 것은 머리 속에서 교묘하게 꾸며낸 대로 거짓된 말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진실된 말은 즉각 즉각 나와야 한다.
그는 빌어먹을 개자식이다. 내게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 나는 우선 빌어먹을 끔찍한 비명으로 그를 괴롭힐 준비를 하기로 했다.

“끄으으……”

“이봐, 잠깐. 알겠어. 아냐. 아니라고, 젠장, 아니란 말이야. 됬어? 망할, 끊어, 시끄러우니까 소리지르지 말고. 알겠어?”

그렇게 연결이 끊겼다. 내 목에서는 가래가 끓는 소리만 나고 있다. 그는 내 질문에 대해서 진실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대답은 성의 없는 무관심, 거짓말, 시간 끌기, 대충 그런 것이리라. 그는 내 의심과 그 의심에서 생겨나는 두려움에 대해서 아무 것도 생각해 주지 않고 있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일어나서 침대 옆에 있는 서랍에서 현금, 체크카드, 신분증이 있는 지갑을 챙겼다. 그리고 바로 나가려고 하다가 그대로 나가기에는 옷차림이 조금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TV에서 본 대로라면 밖의 밤은 아주 추운 곳이기 때문에 지금 입은 대로 나간다면 꽤나 고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청바지를 입고 따뜻한 가죽 재킷에 후드 점퍼까지 입었다. 패딩 점퍼는 따뜻하기야 하겠지만 국가 정보원, 국가 안전 보위부, 내각 조사실, 중앙 정보국, 정보 조정 연구소 등에서 나를 추적하는 공작원들에게서 도망치기에는 적절한 복장이 아니다. 그에 비해 청바지와 가죽 재킷, 후드 점퍼는 도망치기에 아주 적절한 복장이다.
아무튼 그렇게 옷을 다 차려 입고 나서 곧장 집 문을 열고 나섰다. 낯선 복도가 보였다. 실재로 보니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있다. 나, 그, 그 녀석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이 세상의 무기물적인 요소들 말이다. 사실 신경을 쓸 가치도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렇다 해도 정말로 사람처럼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어떻게 대해야 될지도 막막하기도 하다.
우선 인사를 해 봤다.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드는 인사 말이다. 그러니 그 사람은 “어머” 하고 나서는 잡고 있던 문고리에서 손을 때고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다니!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말로 하는 인사도 해 주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그 사람은 당황하는 듯 하면서도 이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내 쪽을 봐 줬다. 나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졌다!

“예, 안녕하세요. 혹시 거기 사시나 봐요?”

“네”

“아, 그렇구나. 혹시 교수님이랑 같이 사시는 거에요?”

교수님?

“교수님이 누구에요?”

“에? 아니, 같이 사시는 분 말이에요. 최교수님.”

아, 그렇군. 나는 정황 상으로 보아 나를 보호해 주고 있는 녀석이 이 사람이 말한 최교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그 녀석의 성은 최씨라는 셈이다. 나는 그 녀석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신나는 일이다.

“그러면 전 최교수님이랑 같이 살아요. 근데 최교수님 이름이 뭔지 아세요?”

“에? 이름이요? 글쎄, 죄송한데 잘 기억이 안나는데요…… 근데 같이 사는거 진짜 맞아요?”

그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안 좋아진다. 정황 상으로 보아 저 사람이 나를 매우 수상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그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무언가 해 주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심은 풀어주지 못하지만 사실은 말해주자.

“예. 같이 사는 거 맞아요.”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으므로 엘리베이터의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저기요?”

그 사람이 또 나를 부른다. 하지만 거듭 생각하기로 나는 더 이상 그 사람과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대꾸도 해 주지 않았다. 결국 그 사람은 뭐라고 어물어물 거리다가 열쇠로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마 맞은 편에 사는 사람일 것이다. 잘하면 경찰을 부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이 일 때문에 보호자 녀석이 화를 낼 지도 모르겠다. 글쎄, 화를 내라지 뭐. 애초에 그 나쁜 놈은 내 생각 따윈 하나도 하지 않는 나쁜 놈이다. 화를 내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다.

어쩐지 다시 화가 나면서 속이 부글 부글 끓는 기분이다. 그 녀석 얼굴이 생각이 난다. 그 재수없는 면상을 손바닥으로 때리는 상상을 하면서 이 아파트 건물을 나섰다.

길을 걷고 있는데 비둘기가 전봇대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 망할 날짐승이 가만히 전봇대 위에만 앉아 있었다면 괜찮았겠지만, 내가 방심하고 있던 순간 그 저주스러운 새빨간 눈을 내 쪽으로 돌린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 것은 추적자들이 기른 하수인 이었다! 그 눈에는 아마 저주받을 과학자들이 만든 마이크로 칩과 그 것에 연결된 초소형 동영상 촬영 장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포스러운 기계 눈은 지금 그 새빨간 동공을 내 쪽을 향한 채로 모든 것을 추적자들에게 전송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소름이 돋고 모공에서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오는 듯한 끔찍한 기분이었다.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 봤다. 다행히도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안심 할 수 없다. 여기서 안심하는 녀석은 아마 미쳤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우선 천천히 침착하게 걸어갔다. 일단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척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새빨간 눈의 시계가 미치지 않을 정도라고 어림짐작되는 곳 즈음까지 와서 살짝 뒤를 돌아 보았다. 그 악마 같은 짐승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 기계 같은 본성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단지 자신이 맡은 구역만을 서서히 살피고 있었다. 나는 그 대로 곧장 뛰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쯤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 될 것이다.
살짝 후회가 되었다. 나는 왜 그 녀석, 아니, 최교수를 의심했던 것일까? 어쩌면 최교수는 순수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을 뿐일 지도 모른다. 나는 왜 집에서 뛰쳐 나왔던 것일까? 그냥 최교수의 무례함을 조금만 참아줬더라면, 추적자들의 추적에 다시 노출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해 봤자 늦은 법이다.
나는 후회하는 대신 도망치기로 했다. 점점 달리는 속력을 높였다. 다리가 뻐근하고 심장이 거세게 뛴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숨이 찬 것이다. 하지만 잡히는 것 보다는 낫겠지.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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