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두 사람의 선거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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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참여 동의
 이번에 친구들끼리 단편대회를 열었을 때 썼던 작품입니다.
 주제는 [회장선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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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줄곧 궁금했어요. 세계 탑클래스의 검사, 마법사, 무투가, 그 외 기타 온갖 폭력 형태의 일인자들이 한 곳에 모인 학교. 그런 학교 위에 정점으로 군림하는 학생회장이라는 존재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까- 하고."
 "그래서 실제로 겪어 본 바는?"
 "그냥 좆같네요. 이런 걸 줄 알았으면 출마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그 말을 들은 붉은 머리 검사가 크게 웃었다. 얼마나 동작이 요란했는지 칼집에 꽂혀 있던 검신이 반쯤 튀어나올 정도였다.

 "아, 아하하, 하하하하하하...!"
 "지금 비웃으시는 거에요?"
 "아니, 하핫, 니가 하는 말이, 너무 웃겨서... 아하핫!"
 "제 감정을 뒤흔들어 빈틈을 노리겠다는 시도였다면, 성공을 축하드려야겠군요. 지금 저 진심 화났거든요?"

 붉은 머리 검사는 가까스로 웃음을 멈추고,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너무 화내지 마. 도발할 의도는 없었어. 단지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
 "예전 기억?"
 "응. 나도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했었거든. 1학년 때."

 짧은 머리의 소년은 그 말을 듣고 누워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셨다고요? 카밀리아 선배가?"
 "그래."
 "그럼 그때 회장선거도 이렇게 개판이었나요?"
 "글쎄. 그 정도는 추측할 수 있지 않아? 머리 좋은 마법사 씨? 참고로 그때도 지금이랑 시스템은 비슷했어."
 "개판이었군요."

 소년은 한숨을 쉬었다.
 한 번이라면 시행착오로 생각해줄 수 있다. 하지만 두 번 연속? 그건 그냥 과거로부터 배운 게 없다는 증거다. 혹은 배울 마음조차 없었든지.

 "그러면 저랑 같은 생각을 하셨다면서, 왜 제도를 뜯어고칠 생각은 하지 않으신 건가요? 이 짓거리를 2년 연속 되풀이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2년 연속? 34년이겠지. 이 학교는 개교때부터 이랬는걸."
 "...전통이라서 그대로 놔뒀다는 변명은 집어치워요. 제가 카밀리아 선배 성격을 모를 줄 알아요?"
 "하하, 들켰나?"
 "그래서 진짜 이유는?"
 "이 제도가 내가 재선하는 데 가장 유리하니까 그렇지."

 소년은 어이가 없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고작이라니. 나로서는 충분한 고민 끝에 내린 합리적인 결정이었는데? 실제로도 거의 성공적이었고. 너만 없었다면 말야."

 소년은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 카밀리아 선배는 회장감이 아니다. 아무리 얼굴이 예쁘고, 강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회장감은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 낙제다.

 "음, 그런데 역시 '전 학년 모두 회장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라는 조항은 없애둘 걸 그랬나봐. 설마 이런 괴물같은 후배가 도전해올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내 미스야."
 "...그게 뭐에요."
 "응?"
 "회장이 그래도 되요? 자기 사리사욕을 근거로 입법 여부를 결정해도 되냐고요."

 붉은 머리 검사가 피식 웃었다.

 "아직 뭘 모르는구나, 애송아. 마법 실력은 고명해도 정치 감각은 영 꽝인가보지?"
 "질척거리는 현실에 잔뜩 불어터진 발언은 듣고 싶지 않아요. 전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관점에서 선배의 행동이 타당한지 아니냐를 묻는 거라구요."
 "왜 아니라고 생각하지? 내가 재선을 해야 기존의 정책 기조를 일관성 있게 유지해나갈 수 있잖아. 그래야 학교도 발전할 테고."
 "그거야말로 독선이에요. 후임자가 더 나은 사람이 아닐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죠?"
 "더 나은 사람일 거라는 보장도 없지."
 "지금 민주주의의 기본 근간을 이루는 가정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붉은 머리 검사는 마침내 항복했다.

 "좋아, 미안해. 마법사랑 토론을 벌이려 했던 내가 잘못이지.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높았던 건 인정하지? 실제로도 학교의 절반인 300명이 날 지지해줬다고. 뭐 개중 90%는 누구누구씨가 날려버렸지만."

 소년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얘기는 하지 말죠. 나중에 사과하라면 사과하겠어요."
 "괜찮아, 괜찮아. 나도 네 서포터들을 꽤 많이 때려눕혔으니깐?"
 "......"

 붉은 머리 검사가 자세를 고쳤다.

 "어쨌든 말야, 말 나온 김에 묻겠는데."
 "예?"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생회장의 기준은 뭐지? 아니,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생회장 "선거 제도"의 형태는 뭐야? 그걸 듣고 싶은데."
 "음..."

 소년은 긴 침묵에 빠졌다. 얼마나 깊게 고민에 빠져들었는지, 천장에서 떨어지는 벽돌 파편도 채 피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머리에 짙푸른 멍자국을 남긴 다음에야 소년은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 현행 체제부터 싹 갈아엎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흐응, 어떻게? 구체적으로 말해봐."
 "현재 교칙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조항, 저희 학교에 이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주 원인이 된 조항은 이거잖아요. '선거기간 중 학생들 사이의 다툼은, 기절 이하의 상해만을 입히는 한 처벌하지 않는다'. 전 이 공약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지?"
 "다 알면서 뭘 물어봐요? 지금 이 체육관에 저희 둘만 남아있는 이유가 뭣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소년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현재시각 8시 58분. 투표 개시 시각인 9시를 2분 앞두고도 투표장인 체육관에는 그들 단 둘밖에 없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지금쯤 전부 제국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직까지도 저 바깥을 시끄럽게 앵앵거리며 돌아다니는 앰뷸런스 안에 실려 있거나.

 "애초에 저는 '가장 강한 사람을 회장으로 선출한다'라는 근본 교리부터가 문제라고 봐요. 학생회장은 결국 학생들을 대변하는 존재잖아요. 물론 제국 제1특수목적학교의 회장으로서 카리스마를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 중시해서는 절대 안돼요."
 "호오. 그러면 지금까지 전대 학생회장들이 일처리를 훌륭히 해낸 점은 어떻게 설명할 거지?"
 "그건 단지 비교대상이 없어서일 뿐 아닌가요? 똑똑하고 인망 있는 사람을 회장 자리에 선출했다면 아마 지금보다도 더 나은 학교가 되었을 테지요."
 "글쎄, 결국 그것도 if지. 가정에 불과하단 거야. 오히려 학생회장의 나약함에 불만을 가진 아랫것들이 반란을 일으켜 더욱 혼란만 가중시켰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말에 반론하고 싶은 마음은 산더미같지만, 그만둘래요. 더 이상 떠드는 게 바보같아졌어요."

 그 말과 동시에, 그들이 앉아 있던 체육관에 선거 안내방송이 울려퍼졌다.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희망하는 학생들은 체육관으로 내려와 투표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붉은 머리 검사가 씩 웃었다.

 "퍽 희극적이군. 잔여 인원인 둘 뿐인 학교에 전체 방송이라니. 마력 낭비야."
 "그러고보니 저 스피커, 용케도 안 깨졌네요?"
 "구석에 있어서 싸움의 여파를 피해갔나보지. 아마도."

 소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투표함은 어디로 갔죠? 설마 그것도 깨졌나?"
 "저기 저거 아냐?"

 붉은 머리 검사가 저 멀리 모퉁이를 가리켰다. 하얀 천으로 이루어진 투표대가 여기저기 찢긴 채 널부러져 있었다.

 "...어쩌죠. 옮기기도 귀찮고, 옮겨봤자 어디 놓을 데도 없는데."
 "바닥이 다 부서졌으니까."

 그 말대로, 체육관은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 목재 바닥은 다 뜯겨져 있었고, 천장에서는 하얀색 벽돌 가루들이 부스러져 떨어졌다. 연단은 아예 두 동강이 나서 쪼개진 상태였다. 아마 이런 장소에서 할 만한 체육활동은 험지 이동 훈련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힘을 많이 썼나."
 "그러게요. 당선되면 이게 다 제가 부담해야 할 비용인데."

  두 사람 모두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체육관 구석을 쳐다보던 붉은 머리 검사가, 다시 소년 쪽을 바라보고 말했다.

 "자... 그럼 좀 더 실제적인 문제에 집중해보자. 투표를 해야 할까?"
 "전 귀찮은데요. 되도록이면 그냥 둘 다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온 몸에 힘이 없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애초에 남은 인원은 둘. 각자 자기 이름에 투표할 테니 결과는 카밀리아 한 표, 유니스 한 표. 어차피 동수일 텐데 투표하는 의미가 없죠. 그냥 누워서 쉬어요."

 그렇게 말하며 소년은 누웠다. 붉은 머리 검사 역시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이봐."
 "왜요?"
 "나랑 손을 잡지 않을래? 카밀리아-유니스 공동 회장이지."
 "정치 연합을 구성하자는 건가요? 저랑 선배는 가치관이 너무 차이나서 보조를 맞춰봤자 삐걱거리기만 할 텐데요."
 "오히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보완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난 그렇게 보는데."
 "음..."
 "그리고, 너나 나나 여기서 더 결판을 낼 힘은 없잖아? 난 근육이 끊어질 것 같고, 넌..."
 "마력이 다 떨어졌죠."
 "그래. 그렇다고 서로 자기 살 길만 찾는다면, 회장 자리는 공석이 되겠지. 너도 그런 건 바라지 않잖아?"
 "하지만 학교 측에서 공동 회장을 인정해줄까요?"
 "너 교직원들도 지금 다 실려간 거 잊었어? 우리 둘의 전투력은 군단 하나와 맞먹는다구. 괜히 시비 걸어서 귀찮아지느니 서로 웃을 수 있는 해결책을 고르는 게 그쪽으로서도 현명하지."

 소년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손을 잡죠."
 "잘 생각했어."

 붉은 머리의 검사가 웃고, 소년도 웃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극...!" "에고고..." 작은 신음소리. 
 그리고 서로를 향해 다가간 뒤,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배신하기 없기에요?"
 "너야말로. 혼자만 다른 이름 적지 말라고."
 "그래봤자 결과는 마찬가지인데, 제가 왜 그러겠어요?"

 서로 만면에 웃음을 띈 채 역사적인 협정이 체결되려고 한 순간.
 그때였다.

 "꺄아악! 이게 뭐야!"

 두 사람은 동시에 체육관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짧은 갈색머리의 여학생이 입구 근처에서 경악한 채 서 있었다. 반파된 체육관의 모습에 놀랐던 것일까. 여학생은 다리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소년과 검사,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보았다.

 "......"
 "......"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응? 별 거 아냐. 단지... 남아 있는 학생이 하나 더 있으면 인원이 홀수가 되지 않나 싶어서."
 "홀수요?"
 "그래."
 "인원이 홀수라면, 기권이 없는 한 2:1로 떨어지겠지요?"
 "그렇지."

 둘은 서로를 향해 미소지었다. 살벌한 미소였다.
 두 사람이 악수한 손에 희미한 실핏줄이 떠올랐다.

 "어라라? 왜 갑자기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실까? 우리 협정에 뭐 불만이라도 있어?"
 "설마요. 선배가 제 손을 너무 꽉 쥔 나머지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

 둘의 입꼬리가 더더욱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왠지 아까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던 근육통이 해소되는 느낌이야. 마치... 지금쯤이면 검을 휘둘러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이야, 신기해라!"
 "어라? 우연의 일치네요. 저도 갑자기 마력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 의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국 7대 불가사의에 추가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게 한참을 기묘한 대치 상태에 빠져 있던 도중.
 소년이 먼저 웃음을 지우고 말했다.

 "...기절시키기는 없기에요."

 검사도 정색하고 대답했다.

 "아무리 평생 검에만 매진한 나라지만 그 정도로까지 멍청이는 아니니까 걱정 마."
 "호오, 믿을 수 있을까요?"
 "글쎄? 그 말 그대로 네게 되돌려주고 싶은데?"

 소년이 폭발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최후의 협상을 이끌어냈다.

 "하나 둘 셋 하면 출발하도록 하죠."
 "그래."
 "하나, 둘-"

 셋. 이라는 말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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