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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하인(3)

by hurye01 posted Feb 09, 2017 (01시 36분 39초)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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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디 넓은 초록빛 들판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꽃들, 그리고 그곳에 앉아 놀고있는 금발의 쌍둥이.작은 손으로 오밀조밀하게 꼼꼼히 엮어 만든 꽃 왕관은 드레스의 아이가 만들어 바지의 아이가 기쁘게 받는다.
 스멀스멀 기어오는 검고 커다란 손들, 그 손들은 드레스의 아이를 들쳐업고는 바지의 아이와 격리시킨다. 
 그때 떨어지는 왕관의 소리, 그 소리와 함께 금발의 하인은 눈을 뜬다.
 느낄 수 없었던 타인의 온기에 왼쪽을 돌아보자 금발의 왕녀는 하인을 껴안은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째서 그녀는 이리도 슬피 울어가면서 악을 행세하는걸까······.’
 그는 그녀의 마음을 모르고 그녀는 그의 마음을 모른다. 서로를 향한 애정으로 서로를 깍아내리는 관계, 그들은 이대로 괜찮을까.
 살포시 왕녀를 내려놓은 하인은 침대에서 내려와 구겨진 옷을 단정하게 핀다.
 그리고는 목에 걸린 주머니에서 반지를 하나 꺼낸다.
 그들의 어머니가 즐겨 하던 귀걸이의 메달로 만든 반지. 그들이 쌍둥이라는 의미, 그들의 인연의 증표. 하인은 손에 쥐어 마음속으로 이제는 없는 어머니에게 말을 건낸다.
 ‘어머니, 저의 누이는 저를 형제로 생각하고는 있는걸까요. 저는 이제 린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녀의 명령을 따르는것밖에······.’

 눈을 뜬 왕녀를 마차에 태우고는 멀고 먼 길을 지나 성으로 도착했을때는 이미 간식시간이었다.
 마차에서 자다가 잠이 깨지 않은 목소리로 린은 말한다.
 “어라, 간식시간이네.”
 어느때처럼 자주가는 빵 가게에 가는 길이 어딘가 위화감이 렌을 감싼다.
 끈적끈적한 시선들이 렌에게 들어붙으며 발걸음을 늦춘다.
 마치 늪에 빠진것만 같은 기분에 짜증을 감추면서 빵 가게로 향한다.
 느려진 발걸음으로 브리오슈를 사서 궁의 꼭대기층, 린의 방으로 올라갔을때. 그녀는 침대에 누워 코스모스로 꽃점을 친다.
 조심스레 다가가 바구니를 내려놓고는 아무말 없이 왕녀의 방을 벗어나는 렌은 왕녀가 꽃을 들고있던 꽃을 보자 어렸을적 린이 만들어주고 렌이 떨어뜨린 꽃 왕관이 생각나 다시 그 장소를 찾았다.
 이미 달빛만이 축축하게 세상을 덮고 별빛들이 길을 알려줄때, 그 누구의 때도 타지 않은 풀숲이 렌과 맞닿았다.
 그때의 풀숲은 옛날의 흐릿한 기억과 전혀 달라진게 없어 마치 이곳만이 시간이 멈춘듯 하였다.
 기억을 뒤져보며 옛날에 꽃 왕관을 떨어뜨렸던 장소를 찾아 풀숲을 헤매이던 렌은 발 밑에 들려오는 바스락소리에 들춘 발 밑은 말라 가루가 되어버린 꽃 왕관의 형태.
 안주머니에서 꺼낸 병에서 가루와 마른 조각들을 모아 넣는다. 코르크 마개로 꽉 닫은 그 병을 소중히 품에 간직한채 그 장소를 떠나는 렌은 나름대로 만족스럽단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 잠들었을 왕녀를 확인하러 린의 방의 문을 끼익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열며 들어가던중 갑자기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온다.
 “힉!”
 갑작스런 폭발음에 격하게 깨버린 린은 가디건만 대충 걸치고 침대에서 일어나 렌에게 붙는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사람들의 함성소리.
 “왕녀를 무찔러라! 악녀를 죽여라!”
 가장 목청이 큰 사람에 맞춰 뒤이어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내지른다.
 작은 창문으로 내다본 바깥의 사람들 사이에는 알현실에서 자주 보던 대신들의 얼굴도 보였고 왕궁을 지키던 근위병들의 모습도 있었다.
 “렌, 어떻게 해! 우리 이제 죽는거야?!”
 “큿······! 내 옷을 입어!”
 “뭐?!”
 “내 옷을 입고 도망치면 잡히지 않을거야!”
 “······알았어.”
 렌의 옷을 린이 입고 린의 옷을 렌이 입는다.
 다 입고나서야 린이 렌에게 의문을 표한다.
 “알아보면 어쩌지?”
 “괜찮아, 우리들은 쌍둥이니까.”
 “밑에 사람들이 잔뜩 깔려있는데 어떻게 도망가라고?”
 “내 방에 지하통로가 있어, 거기로 나가.”
 “그럼 같이 가자 렌!”
 “······잘 들어 린. 땅굴은 시장 거리 한쪽의 하수구와 연결되어있어. 마을 외곽까진 아직 파질 못했어. 내가 지금 시장으로 나가면 분명히 죽겠지. 하지만 너 혼자라면 무사히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을거야. 그러니까 린. 도망쳐.”
 “하지만···   .”
 “린!!”
 “읏······!”
 소리치는 렌의 익숙치 않은 면모에 겁먹은 린이 어깨를 움츠린다.
 “아······.”
 자신이 흥분한걸 깨달은 렌은 린을 침대에 앉히고는 말한다.
 “소리쳐서 미안해 린.”
 “······하나만 약속해.”
 “음?”
 “또 브리오슈 사주기다.”
 “······.”
 린의 앞에 무릎을 꿇은 렌은 목걸이에서 반지를 꺼내들고는 린의 왼손 약지에 끼운다.
 그리고는 린에게 영원한 사랑을 속삭인다.
 “저 렌은 왕녀님의 하인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바칠것을 맹세합니다.”
 잔뜩 붉어진 린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저 렌은 여기 있는 린을 평생 사랑할것을 맹세합니다.”
 수많은 발걸음 소리들이 두 사람의 무드를 깨뜨리고 왕녀의 색을 침범한다.
 “자 빨리!”
 “으, 응!”
 다급히 지하 땅굴로 도망친 린을 떠나보낸 렌은 그저 혼자 쓸쓸하게 끝을 상상하며 그 대사의 쑥스러워 하다 자문자답을 한다.
 ‘세상이 그녀를 악이라 칭한다면 나는 세상을 악이라 칭하겠어. 나는 제대로 세상 모두의 악으로부터 그녀를 지켰을까.’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덩치의 사람들에게 렌은 몇번이고 눈에 심어오고 뇌리에 새기고 마음속에 품은 그녀를 표현해.
 “어라, 간식시간이네.”

 거리의 한 구석에서 들썩이는 하수구 덮개가 들썩인다.
 열린 덮개 밑에서 나온 사람은 보자기를 덮어쓴 하인 차림의 린이었다.
 악녀의 죽음을 축복하는 종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탄생을 축복하던 종이었다.
 렌의 죽음에 기뻐하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탄생을 기뻐하던 국민이었다.
  
 너는 왕녀 나는 하인.
 운명을 나눈 불쌍한 쌍둥이.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악이라도 되주겠어.

 

 따뜻한 햇빛이 포근하게 덮어주는 꽃밭, 그 곳에서 작은 금발의 남자아이는 꽃 왕관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저 멀리서 뛰어오는 금발의 여자아이는 꽃 왕관을 만드는 남자아이에게 물었다.
 “그거 나 줄래?”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남자아이는 답한다.
 “물론! 너에게 주려고 만들었으니까!”
 마치 한명의 공주님처럼 고개를 숙여 왕관을 받는 포즈를 취하는 여자아이의 머리에 남자아이는 영광을 표하며 조심스럽게 씌워준다.
 그리고는 서로를 마주보며 의미없이 웃는다. 그저 환하게, 기쁨을 멈추지 못하고 웃는다. 브리오슈 바구니는 버려둔 채로.

 

 만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또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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