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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뭐하세요! 2 – EX. Renascia.

by Project_So posted Feb 21, 2017 (03시 02분 27초)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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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EX. Renascia.
 

 

 


 익숙한 찻집의 나무문을 당겨 열었다.
 찬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문풍지가 붙여진 나무문은 천천히 열려, 내가 손을 놓는 것으로 다시 천천히 닫힌다.
 그리고 항상 그 자리를 고수하던, 내 목적이었던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단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는 채.
    “……….”
 그녀는 잠시 내 눈과 시선을 맞추더니, 말없이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잠깐, 나는 주문을 한 기억이 없는데.”
    “적어도 내가 본 기억으로 유진은 시럽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만 마셨었어.”
    “……시럽을 안 넣는 건 어떻게 알았냐고.”
 투덜거리면서도 필요 이상의 딴죽을 넣지 않고 2층의 계단으로 발길을 돌렸다.
 손님은 없다. 평일의 4~5시라는 애매한 시간대의 이 공간은 특이할 정도로 사람이 없다.
 그것을 반 쯤 알고 있기에 이곳에 왔고, 아마 그런 공기를 읽은 그녀 또한 눈치를 채고 있으리라.
 다시 생각해보면 내 주변의 인간들은,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는 관계의 인간들일 뿐이었다. 좋은 의미로던 나쁜 의미로던.
 그것이 좋은 의미라도……아주 약간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
 음료를 들고 올라온 그녀가 조심스레 잔을 내려놓으며, 자연스레 내 앞자리에 앉으며 이야기했다.
 자연스레 앉아버린 그녀의 모습에 빛이 바랬지만, 그녀의 앞치마에는 드물다고 말할 정도의 물건이 달려있었다.
 분명 2주 전에만 해도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고 말하던 도구… ‘명찰’이 그녀의 앞치마 좌측에 달려있었다.
    “이거, 사장님에게 말했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더니 금방 만들어 주셨어.”
 그녀는 온도가 없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명찰은 문방구와 같은 곳에서 파는 플라스틱제의 간편한 것이 아닌, 제봉으로 만들어진 사람 손을 탄 공들인 물건이었다.
 명찰에는 3글자의 한글이 아닌, 여러 글자의 영문이 적혀있었다.
    “리나시……아?”
    “응. 그게 내 이름.”
    “……외국 쪽 사람일까 생각했지만 정말일 줄이야.”
    “내 쪽에서는 오히려 평범하게 나를 대했던 유진이 이상할 정도.”
    “보통 아니야?”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대부분 어버버 하셨으니. 영어로 주문하시는 분도 있었으니까. 유진은 그러지 않았다는게 별종.”
    “별종이랄 것 까지는 없잖아. 너의 이상할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를 듣게 되면 외국인공포증 따윈 사라진다고.”
 말의 높낮이가 없고 시작과 끝의 말의 어미가 조금은 별나다는 것을 빼곤, 태클 걸 곳이 존재하지 않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 아마 이국적인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저런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란 이유가 있다면 이것일까 싶을 정도이니.
    “손님들이 지레 겁먹는 알바생을 왜 고용한 걸까. 가게에 사람이 없는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 시작했어.”
    “사장님은 귀여우니까 괜찮다고 하셨어.”
    “그거 보통 자기 입으로 말하기야……?”
    “문제 없음.”
 짤막하고 짤막하게. 참으로 짤막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말만을 남긴 그녀는 단지 얼음이 짤랑이는 음료에만 집중을 한 채로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새벽에 스쳐지나간 그녀가 맞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천연색의 그녀는, 내 기억에서 떠나가지 않는 강렬한 적발을 가지고 있었다.
 차가운 분위기 안에서 햇빛을 머금은 화사한 적발은 내 기억에서 떨어질 수 없었기에……말투 하나하나까지 부정할 수 없는 그녀이기에 굳이 먼저 그 당시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
 그녀를 따라 커피를 마시며, 그녀와 그 날 새벽 있었던 일 이외의 것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 하나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단지 시간을 죽였다.
 깔끔하게 제봉된 명찰의 이름에 계속 시선을 보내면서도,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의 뒷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리나시타’……‘리나’ 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므로 상관하지 않는다. 아마 이름을 알 수 없었더라도 이야기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때와 같았다.
 수개월 전부터 서로 주문을 주고받고 계산을 위해 말을 교환할 때부터, 그녀의 배려로 간신히 외상을 뗄 수 있었던 2주 전의 그 때부터, 황혼의 달빛 아래 나타나 존재할리 만무한 색의 벚을 만개시켜 나에게 보여주었을 그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은 그녀였다.
 리나는 무서울 정도로 일관적이다. 단지 같다. 그저 그녀는 그렇게 존재했다.
 그만큼 나는, 그 새벽의 일을 애써 말하지 않으려 했다. 리나 또한 말하지 않으니.

 그저 리나에게 그 날의 황혼은, 수많은 일상 중의 하나였을 것 뿐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

 

 

 

    “예전에 율이가 이야기 했던 적 있지. 커피의 맛은 70%가 원두의 영향, 20%가 로스팅의 영향, 10%는 추출의 영향이라고.”
 발코니의 턱에 기댄 나는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말을 주워 담지 못한다.
 부는 바람에 흩날리지 못하도록 석양빛에 빛나는 적발을 꼭 붙든 리나는 나와 같은 경치를 눈에 담고 있었다.
 수암 언덕 중턱으로 그치는 발코니에서 보이는 학교의 모습은 건물 지붕의 일부와 운동장의 끄트머리 수준, 그럼에도 학교의 정문에 위치한 화물트럭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고, 바삐 발을 옮기는 업자의 작은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천에 덮인 무언가를 어께에 짊어지고 학교를 떠나, 이윽고 거친 소리를 내는 화물 트럭의 모습은 어딘가로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다.
 말할 것도 없었다. 본인에게 안작으로써 만들어진 금앵추상은 가치를 따지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 이리저리 굴려지다 제 몫을 다 할 것이다. 그를 위한 그림이었고, 그를 위한 붓질이었으며, 그를 위한 시간의 흐름이었다.
 누군가의 안타까움과 절망과 일말의 희망, 바람을 간직한 쓸모없는 캔버스는 아직 학교의 낡은 미술 준비실에 갇혀 죽음을 기다릴 뿐이겠지.
 그럼에도 남아있는 작은 추억은, 아무리 추악하고 잊고 싶은 것이라 하더라도 남아있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내 자신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고.
 아직도 난 잊을 수 없었다.

 

    “지금 내가 그린 녀석을 진짜라고 공표 해 버리겠다고!?”
 가만히 앉은 채 듣고 있을 수 없던 나는 주먹으로 찻상을 내리찍었다.
 유연히 자리를 채운 1~2명의 이사진들은 주춤거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수준이었지만, 여전히 교장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럼 한유진 당신에게 묻겠는데, 가짜라며 구전되는 금앵추상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건………”
 당연한 질문에 말이 막힌다. 
 절대 되묻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평소의 자신인데, 필요 이상으로 머리에 피가 쏠린다.
 당연……당연했다. 예술 재단인 화홍 재단의 이사장이기 이전에 그녀는 성주 대학교의 총장이었고, 성주대학교의 총장이기 이전에 그녀는 예술가 한유진의 독자였다.
 내 제안대로였다면 새로운 금앵추상은 그녀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다. 단지 위작이라는 이름으로 재단의 아래 소유되거나……내 것이 되어 그저 세상에 공표 될 뿐이었다.
 공표된 가짜의 금앵추상.
 가짜임에도 상당한 완성도를, 찬란함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보고 그들은 정말 “위작이 이정도인데 실제 금앵추상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일까” 라고 순진하게 반응 해 줄 것인가.
 ………비록 그들이 그렇게 반응 해 주더라도, 진짜가 나타나지 않는 단순한 위작에 무슨 의미가 부여된다는 말인가.
 참으로……멍청했다. 순진한 멍청이였다.
 그녀는 예술가 한유진이 세상 밖으로 다시 나서게 되는 것을 원했기에, 당연한 일이었을 것인데………감정에 휘둘린 나는 그 당연한 것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거냐고……!
 그렇기에 이런 상황 자체도 상당히 역겨웠다. 점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금앵추상이라는 어릴 적 누군가의 작품. 그리고 확실해지지 않은 소유권의 분쟁에 휘말려버린 그림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래. 소유권은 유진학생 너에게 있겠지만, 너는 네 자신으로써 수면위에 올라서서 존재하고 싶지 않겠지. 그런 너에게 나는 한 가지 기회를 준 거야. 지금이 아니면 없을 기회를.”
    “됐어, 상관 없다고. 이제 그런 건.”
    “어머……? 그게 무슨 말일까.”
 총장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 같은 내 주장에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금앵추상을 숨기여 밖에 나서지 않았던 내 생각은 멍청하고 안일했던 대처였어. 인정해. 그렇기에 고쳐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당신의 제안을 수락한 거야. 예술가 한유진의 죽음은 여전히 바라고 있지만……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잊혀지려 발버둥치지도 않을 거야.”
    “나는 그저…… 또렷한 의미를 가진 내 작품들이 누군가에게 왜곡된 평가로 물들어 변하는 게 두려웠을 뿐이니까.”
    “…………아하, 알았어. 유진이 네가 안작의…새로운 금앵추상을 그린 이유를.”
 총장 장아연은 재미있다는 듯 빙긋 웃었다.
 나에겐 그저 그 웃음이 사악하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실제 그녀의 입꼬리 끝에 담긴 감정은……지극히 사적인 감정이었다는 걸 눈치 채는 것 따위는 간단한 수준이었다.
    “새로운 금빛 벚꽃과 과거의 금앵추상은 아예 다른 작품으로 불러도 좋을 수준으로 의미가 다르게 보여. 그 부분에서 알 수 있는 너의 생각.”
    “새로운 금빛 벚꽃이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 해도 본질적으로 둘은 아예 다른 작품이니까, 과거의 금앵추상이 누군가의 평가에 물들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
 총장은 거의 예지능력 수준으로 내 의도를 파악하여 나지막히 말했다. 그녀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탓일까, 섬뜩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결국, 내가 그녀에게 했던 “자신을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 하면서 그 그림을 다시 그린다.” 라는 의미는 단순한 거짓이었다.
 ………아마 결의하지 못한 한유진이 그린 금앵추상은, 저런 의미를 담고 있었지 않을까 싶지만.
 나지막히 말을 끝맺었던 그녀는 조용히, 생각만을 반복하는 듯 보였다.
    “………이제 와서 그만 두라고 말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여쭤봐도 괜찮습니까?”
    “진짜 금앵추상을 나에게 내놔, 또는 천재 예술가 한규석의 아들 한유진으로써 원작 금앵추상의 소유권을 주장해. ………나로써는 아쉬울 뿐의 2택인걸.”
 아쉬울 뿐의 2택. 이라는 말에 조금은 실소가 입 밖으로 흘러 넘쳤다.
 단순히 죽은 사람들의 위광으로부터 좀먹힐 것에 겁먹은 겁쟁이. 그런 자기 자신의 비겁한 약점에 붙잡힌 멍청한 그림쟁이. 죽은 사람들의 위광에 꺾었던 붓을 고쳐 잡는 어리석을 꼭두각시.
 아버지란 인간의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누군가의 색으로 물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내 판단에 뒤에는, 다시 한 번 아버지의 형상이 눈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차마 실소를 금치 못한다. 
 실로 비참했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며칠 전까지의 너는 금앵추상이라는 이름이……네 과거 그림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극한의 불쾌감을 표하던 아이였을 텐데.”
 총장이 말했다.
 질문으로써 다가오는 그녀의 말은, 내가 새로운 금빛 벚꽃을 연성하기 전 총장과 만난 그 날의 질문과……겹치게 들려왔다.
    “어떻게, 일주일 만에 이렇게 바뀐 거야? 너의 그 근본을 뒤틀어버린 계기는 뭐야? ………대체 너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단순한 결의입니다.”
    “결의………?”
    “숨기려는 나약하고 한심한……힘없는 자신에게 끝없는 수치심을 느꼈기에. 단지 자기 자신의 욕망을 대의로 감싸 숨어버리는 한심한 자신이 역겨웠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 자신의 ‘무엇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는가’ 에 대해, 그림의 의미를 멋대로 정할 수 없을 수준의 강함이 필요하기에……더는 숨지 않을 겁니다.”
 나는 선언했다.
 태훈과 화연, 소연과 율이에게 선언했던 것과 같이.
 그림이 아니라도 충분히 전할 수 있을……더욱이 새로운 금앵추상을 보았다면 이해할 수밖에 없을 내 진의를.
 변변찮지만 진실하기에 와닿을 표현, 변변찮지만 진실하기에 강할 문장.
 그것은 마치 과거의 내가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이……지금의 내가 미래의 강한 자신에게 결의한 것 같기에.
 장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는 종이에 고화질로 인쇄된, 새롭게 태어난 금앵추상을 내려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눈에 어떤 감정이 실려 있었을까,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무례를 뱉어, 총장실의 문을 닫아 삼켰다.

 

    “아~ 기억하기도 싫다.”
    “……기억하기 싫으시다면,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말할 것이 아니란 말이지.”
 흐리멍텅하게 나를 바라보던 리나가 딴죽을 걸었다.
 아직 한여름임에도 석양은 슬슬 지평선의 아래로 몸을 숨겨가고, 진청빛 하늘의 커튼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짜 금앵추상이 실려간 화물 트럭의 존재는 마치 없었던 것과 같이 거리는 한산, 나와 조금 떨어져서 풍경을 부감(俯瞰)하던 리나는 나와 같이 발코니에 나란히 몸을 기댄다.
 기분 좋은 여름 바람이 불어와, 더 이상 잡히지 않는 그녀의 투명한 적발을 흩날리게 한다.
 그것은 마치 내려가고 있는 석양빛과 같아서, 지나가지 않는 시간을 뜻하게 되는 것처럼 느낀다.
 이성을 섞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녀의 분위기가 여름의 기후와 하나가 되는 듯 느껴져─절기와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바람은 마치 가을을 연상시켜, 시간축을 잡아 비트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내려 가 보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묘한 묘사에 고개를 빙빙 돌려, 대신 그녀에게 쓸데없는 것을 물었다.
 이기적인 질문에 그녀는 답한다.
    “신경 쓰이는 것을 듣고, 대답을 듣지 못하였기에….”
 리나는 나를 정면으로 직접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평소의 과묵하고 감정이 없는 것만 같은 리나와는 다르게, 그 눈에는 묘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 날의 황혼과 같이.
    “선율이라는 아이에게 들었다는 커피의 이야기……그 이후를.”
    “……신경 쓰였던 거냐.”
    “카페의 직원이므로.”
 그녀는 유니폼 스커트와 에이프런을 살짝 짚어 대답했다.
 이국적인 외모와 엮여 인형과 같이 느껴졌지만, 묘사는 생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녀의 그림자에서 지금은 없는 익숙한 아이의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 때 창가에서 느꼈던 느낌과 굉장히 흡사했다.
    “아까 말했던 대로 커피의 맛은 70%가 원두의 영향, 20%가 로스팅의 영향, 10%는 추출의 영향이라고 들었던 것. 여기에 좀 생각나는 게 있어서.”
    “아무리 바리스타의 실력이 뛰어나고, 뛰어난 로스팅 품질이 나오더라도, 원두의 질이 나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뜻인데, 사실 그림이라는 것도 하등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아서.”
    “그림……예술?”
 고개를 가웃하며 무표정하게 이야기를 듣는 리나.
    “응. 아무리 좋은 소재를 잡고, 그에 대한 뛰어난 묘사가 있더라도, 결국 그 작품의 붓을 잡은 사람에 따라 그림이 평가된다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처음엔 막연하게……그렇게 생각했었어.”
    “유진, 그건 단순하거나 너무 생각한 영역의 대답.”
    “알아. 막연하게 처음에 생각했었던 것이니까.”
 나는 그녀의 말문을 막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반응에 조금 신선함을 느낀다.
    “지금은 그저……붓을 잡는 작가가 누구인가가 20%, 과정이 10%라고 생각해. 무엇을 소재로 사용했는가가 70%. 어떤 작가라도 번뜩이는 순간의 소재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유진,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설명이 필요해.”
    “………내가 금앵추상의 금빛 벚꽃이 아니라 평범한 벚나무를 그렸더라도, 이런 일이 되었을 거라 생각해?”
    “긍정.”
    “뭐………?”
 그녀는 내가 바라보던 정면에서 뒤 돌아 카페의 지붕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을 끝없이 주시하던 나는 천천히 내려오는 손가락의 방향에 시선을 잃는다.
 그것은, 그녀의 손가락 끝의 방향은 나를 향해 멈춰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무슨……”
    “난 분명 말했었어. 유진, 너무 생각이 많았던 탓.”
 그녀는 팔을 내려 다시금 자세를 고쳐 세웠다.
 필요 이상으로 흩날리는 머리칼을 다시 섬세하게 정리하며 나지막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킨다.
    “금빛 벚꽃에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고, 어떤 벚꽃을 누가 보았는가에 따라 다르다.”
    “누가 보았는가?”
    “응. 자신이 본 벚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본 적 없는 금빛 벚꽃을 가장 아름답게 주장할 수 있었던 유진의 그림이기에 의미가 있었던 것.”
    “………….”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금빛 벚을 보고 그림을 그리더라도, 유진과 같은 심상 풍경을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한 대답은 미지수. 그렇기에 작가와 소재는 의미가 없음. 유진이 단순한 벚을 보고도 그 찬란함을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다면, 회화는 유진을 향해 찬란하게 노래하겠지.”
    “그렇기에 소재가 70이 아니야. 어떤 사람이 어떤 벚꽃을 보았는가가 100. 그 뜻의 거대함에 비하면 그리는 과정 따위는 정말로 사소한 문제. 자기 만족의 영역.”
 내 눈앞의 그녀는 찰나에 존재했던 금빛 벚꽃을 눈앞에 직접 둔 듯 이야기했다.
 마치 그 벚꽃이 허구인 듯 이야기하며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는 마치 지금도 금빛 벚꽃을 묵시하고 있는 듯한 감정이 깃들어, 그 날카로운 눈빛이 내 마음을 관통한다.
 금빛 벚꽃을 누구보다 쉽게 부정하고, 그럼에도 가장 가깝게 묘사하고 느끼는 것과 같은 오묘한 그녀의 손끝은, 간단한 단어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시의 한구절과 같다.
 수많은 벚꽃을 묘사한 화가들의 과정과 노력을 단순한 ‘자기 만족의 영역’ 이라 치부해 버리는, 그 회장에 모여 있었던 모든 앵화들을 죽은 벚나무로 만들어버리는 허무의 한마디에도 묘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고 머리가 이해하고 있었다.
    “너는 대체……….”
    “리나.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진과는 조금 다른 여자아이.”
    “……….”
    “그 그림을 보여줘서 정말 고마워. 금빛 벚꽃은 한 번도 핀 적이 없지만……앞으로도 필 날은 없겠지만, 한번쯤 보고 싶은 슬픈 벚꽃.”
    “앞으로도 필 날이 없겠다고?”
    “벚꽃은 당연히 연분홍빛 꽃잎. 필 일이 없는 것은 당연해.”
    “하지만 너는……!”
    “손님이 올 것 같아, 내려 가 보겠음.”
    “기다려!”
 어께를 잡으려 주춤거리던 나를 홀리듯, 그녀는 발코니를 빠져나갔다.
 한여름 밤의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몸을 차갑게 데우면서도, 몸 어딘가에 따스한 온기가 남은 것만 같다.
 그리고 느껴질 리 없는 왼손의 감각에, 이상하게도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왼손을 펴서 그 안을 확인했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꽃잎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작고 연약했다.
 마치 유리조각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얇고……조그마한, 부드러운 꽃잎은 연분홍색이 아니었다.
 마치 투명하다고 생각할 만 한 그것은, 확실히 꽃잎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직 아무런 색이 없는 벚잎.
 한여름에 존재할 리 없는, 리나의 말마따나 연분홍으로 빛났어야 할 벚잎.
 허나 모순적이게도, 마치 그녀가 남기고 간 듯한 투명한 벚나무의 꽃잎.
 내 머릿속엔 한 가지의 벚꽃만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푸른 벚꽃.”
 나지막히 읊었다.
 태양이 완전히 떨어진 허공에, 얇디얇은 그 벚잎을 풀어 헤치며.
 팔랑팔랑 날아가는 꽃잎의 실루엣이, 내 시야에 비춰지지 않게 허공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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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너 섬나라 칼럼니스트.

물건너 섬나라 LOSE社 미연시 시나리오라이터 

소설가 지망생 "한소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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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 단편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네크 2017.04.15 151
692 단편 아저씨 뭐하세요! 1 - EX. 벚잎 사이를 춤추며. file Project_So 2017.03.22 246
691 연재 아저씨 뭐하세요! 3 – P. Prologue Project_So 2017.03.01 123
690 단편 예언하는 후배와 방황하는 선배 녹색소화기 2017.02.21 130
» 연재 아저씨 뭐하세요! 2 – EX. Renascia. Project_So 2017.02.21 109
688 단편 그대는 봄날의 꽃 티로백 2017.02.20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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