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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뭐하세요! 외전 : 행복한 왕자는 선인(善人)으로 하여금 존재하는가.

by Project_So posted May 23, 2017 (05시 54분 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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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율아? 차 다 끓였는데, 자리를 좀 만들어줄래?”
     “아! 네.”
 몸을 굽히던 선율이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하여금 몸을 천천히 옮겨 앉은뱅이 테이블 앞에 자리 잡았다. 꼬물거리는 작은 손가락으로 방석을 이리저리 고쳐가면서.
 찻잔 두 개와 찻주전자가 테이블에 놓이는 청명한 소리와 동시에 선율이는 힐끗 시선을 올리더니 다시 감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찻주전자를 약간 기울여 아주 천천히 찻물을 채워갔다.
 느긋하게 온수를 채워가면서 그녀를 살피는 도중, 선율이의 가방과 신발주머니가 널브러져있는 것이 보였다.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요 며칠간 계속 숙직실을 들리고 있는 선율이는 항상 같은 위치에 두 가방을 정렬해 놓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내화 가방은 앞주머니가 입을 벌린 채, 그 앞에는 작은 책이 하나 픽 쓰러져 있었다.
     “선율아, 가방이 좀 어질러져있는 것 같은데?”
     “네?! 죄……죄송해요.”
     “아니, 어질러진 것 정도는 전혀 괜찮으니까. 그래도 일단 정리하고 오지 않겠니?”
     “네…….”
 선율이는 힘없이 무릎을 털고 일어나 가방을 정리했다. 뱉어진 것 같이 내동댕이쳐진 책갈피를 책의 한 구석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어떤 책이야?”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이 책 말씀이신가요?”
     “응.”
     “오스카 와일드라는 분의 책이랍니다.”
     “악취미 작가의 책이구나.”
     “네. 악취미 작가분의 책이죠.”
 선율이는 그제야 쿡쿡 웃으며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 ‘악취미 작가’의 책과 함께.
 그 책의 표지가 가시거리까지 들어와서야, 제목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단색의 파스텔 톤 양장본의 표지에는 작은 제비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비가 등장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은 그것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왕자.”
     “읽어 보셨나요……는 우문일까요.”
     “우문일 것 까지야. 뭐, 확실히 내 나잇대 애들 치고 행복한 왕자 이야기도 배우지 않은 채 자란 이들이 얼마나 있겠냐만.”
     “행복한 세대시네요. 아마 저희 또래 아이들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텐데.”
 선율이는 시니컬하게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이라는 인식을 고려해보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행복한 왕자는 왜?”
     “그게, 전날 밤에 어머니와 연락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아저씨가 저에게 해 주신 말씀을 어머니께도 말씀드렸답니다.”
     “뭐?! 그걸?!”
     “에……? 안됬……나요?”
     “…………아니야, 계속 얘기해봐.”
     “네……. 그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잠시 웃으신 뒤에 여러 가지 작품을 많이 접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듣는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읽는 것으로도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도 하셨구요.”
     “일 리가 있는 말씀이시네……음.”
     “그런가요?”
     “확실히 말하자면 글을 쓰는 작가던 그림을 그리는 작가던 목소리를 내는 성우던, 몸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직업이니까. 끄집어낼 무언가가 들어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지.”
     “아, 확실히 그렇게 이야기 해 주시니까 납득이 가네요.”
     “그건 그렇고 행복한 왕자라……왜 하필?”
     “어머님이 추천해 주셨어요. 마침 집의 서재에 있던 책이기도 했구요.”
세월이 묻어나는 양장본이었던 이유는 그곳에 있었던 듯 싶었다.
     “어머니가 오스카를 좋아하시는 것 같네.”
     “아, 아니에요. 오히려 싫어하시는 쪽인 걸요.”
     “……그래?”
     “네. 하루는 저를 앉혀놓고 오스카 와일드가 이래서 안 될 사람이라고 줄줄줄 이야기를 늘어놓으실 정도셨으니까요.”
     “대체 네 어머니는 초등학생을 앉혀두고 무슨 이야기를 하신 거야…….”
 허투른 예상대로, 선율이가 저렇게 조숙하고 어른스러운 것에는 그녀의 어머님이 많은 지분을 차지한 듯 싶었다.
 이윽고 책상과 조금 더 몸을 붙여온 선율이는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오스카 와일드 작가님의 책 중에서 어떤 책이 가장 생각할거리가 많으셨었나요?”
     “굳이 오스카 와일드로 한정해야해……?”
     “아저씨에게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기대되지만…지금은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선율이가 읽지 못한 책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저는 오스카 와일드 작가님의 창작물이라면 전부 읽었답니다. ‘심연으로부터’ 와 같은 수필들을 제외하면요.”
     “과연. 흠……그렇다면야.”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온 선율이의 질문을 능숙하게 받아내면서도, 급하게 머리를 굴려 여태 읽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들을 회상했다.
 내 머릿속에서의 오스카 와일드라면 그가 집필한 작품들보다도 그가 살아있을 때 저지르고 다녔던 기행들과 어록들이 먼저 생각날 정도였지만, 여하튼간 가장 먼저 생각난 작품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창작물중 하나를 고르라면 하나밖에 대답할 길이 없었다.
     “‘행복한 왕자’.”
     “‘행복한 왕자’ 말씀이신가요?”
 선율이는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행복한 왕자’ 이외라던가……동회 이외의 것으로 대답해줬어야 했을까?”
     “아, 아니에요. 그런 문제는 아니지만, 뭐랄까 조금 의외라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같은 작품을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선율이는 그게 마음에 들었나봐?”
     “아니에요. 저도 굳이 말씀드리면 ‘행복한 왕자’ 쪽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읽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말을 이어가던 선율이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행복한 왕자’의 양장본 쪽으로 돌렸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나요?”
     “‘행복한 왕자’의?”
     “네.”
     “……으음,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할까. 생각할게 많았다고 해야 할까. 어릴 적 읽고서 가장 납득이 안 되는 작품이었다고 해야 할까.”
     “납득이 안 되는 작품…….”
 ‘나지막히’ 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말한 선율이는 어느새 그 양장본을 자신의 품으로 가지고 와 두꺼운 책의 커버를 손끝으로 하여금 쓸어내렸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찻잔을 기울인 나는 축여진 목으로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행복한 왕자라는 작품의 서술로는, 자신의 의지로 하여금 모두에게 재물을 나누어준 왕자 조각상을 완벽한 선인(善人)으로 묘사하고 있어. 그를 따르며 사랑했던 제비 또한 마찬가지고.”
     “아저씨는 책 안에서 등장한 왕자가 선인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뭐, 선인이겠지.”
     “그럼 왜 그렇게 생각을……”
     “만약의 누군가를 도와주는 왕자의 성격이 ‘누군가에게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거나, 누군가를 도와주며 ‘자신은 훌륭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며 만족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위선자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좋을까요.”
 나는 그녀의 표현이 적당한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의 여태 얼빠지고 가벼웠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하며……그래. 생각하는 듯 변했다.
     “왕자와 제비가 도와주었던 사람 중에 어머니가 병든 가난한 아이가 있었지?”
     “아, 네. 어머니가 병들어 고민하고 있던 소년이었죠.”
     “만일 그 소년이 엄청난 악동이었고, 어머니가 병든 것을 간호하고 홀로 돈을 벌어가는 과정을 거쳐 어머니의 병도 고치고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면.”
     “……왕자의 도움으로 인해 성장할 기회를 놓쳐 계속 악동인 채 남게 되었을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않을까. 위기라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위한 과정이 아니야. 위기는 그 사람의 진정한 그릇을 판단하고, 지금의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각성의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
 ……나는 올해 봄 12살이 된 소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과연 한선율 이라는 아이는 어른스럽지만, 내가 하고 있는 말을 듣고 이해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지 의문일 텐데.
 그럼에도 말이 쏟아지는 자신의 입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듯,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오랜 생각을 토해내고 있는 자신을 자각했다.
     “누군가의 위기를 무작정 도와준다 해서 그것이 선인(善人)으로 이어지는 공식에는 찬성할 수 없어. 게다가 그릇된 자신의 욕심으로 누군가를 도와 선인인 척 하는 것 또한.”
 선율이는 단지 침묵했다.
 그녀의 어려운 표정이 생각을 하는 표정인지,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 표정인지는 알 수 없다. 더하여 저 표정이 어떤 표정인지 물어볼 수도 없다. 아무리 눈치가 부족한 나라고 해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자신 또한 그녀와 같이 침묵을 지키며, 선율이의 표정을 바라보며, 단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침묵을 깬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일, 아무리 자신의 욕심으로 누군가를 돕는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비록 의미 없는 것이라고 한들, 좋은 미래로 이어진다 한들, 다 같은 악의로 이어지는 것일 까요.”
 어여쁜 목소리로 속삭이듯, 감정을 실은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로 들려왔다. 그 대답과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무표정을 깨트려……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사람이 자신의 다리로 서는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필요 없는 선의를 강요하는 것이라면 한없이 추악한 악이라고 표현해도 좋겠지만, 누군가를 돕는 자기 자신을 만들기 위해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이라면……충분한 선인이라 생각해요.”
     “너는 꽤 많은 걸 생각한 표정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왕자가 불쌍하니까요.”
     “………에?”
     “아저씨의 말대로 ‘왕자가 자신을 위해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고 하고, 제 의견대로 ‘그럼에도 왕자가 선인이다’라고 가정한다면……”
 그녀에게 들려온 대답은─
     “왕자는 자신의 선의로 기뻐하는 대상을 보고, 죄책감 또한 같이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선의를 베풀면서, 기쁜 감정과 충만한 감정을 같이 느끼면서, 자신이 선의를 베푼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왕자의 일생이었다면, 행복한 왕자라는 제목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아닐까요.”
     “………….”
     “무거운 표정으로 많은 것을 생각한 것 치고는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요.”
     “그렇구나.”
     “네?”
     “어릴 적의 나는, 행복한 왕자의 제목을 있는 힘껏 부정해 버린 셈이 되었구나.”
     “아……아아아아 아니에요! 아저씨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알아. 선율이의 의견은 내 의견을 긍정했기에 나올 수 있는 대답이었을 테니까.”
 손사레를 치며 울상이 된 선율이를 달래면서도, 입가에는 단순한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반격을 당한 것이 원인이기도 했으리라─내 의견을 옳다고 생각해줄 것이라 확신했던 자신에게로의 쓰디 쓴 미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왕자’ 의 기분을 이해해 주었기에.
 자신의 재물을 잃어가면서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 끝에는 죄책감의 무게와 씁쓸함이 만족과 함께 공존하는 사후의 인생을 살아간 왕자를 보듬어주려 했기에.
     「벚꽃을 보게 되는 것 자체가, 그 분에 대한 공양이 될 수 있을까요.」
 그녀였기에. 왕자를 사랑한 제비보다 좀 더 왕자를 보듬어 줄 수 있을 그녀였기에, 벚꽃을 보고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구나.”
 나는 다시금, 선율이의 기억 속에 남은 예술가에게 질투를 품었다. 단순한 악의로 가득 찬 질투를.
 그럼에도 동시에, 방금 전 선율이의 감정을 실은 어여쁜 목소리를 회상하며 마음 속으로 한 가지 망설임을 굳힐 수 있었다.
 선율이라면 맡겨주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속의 결정과 함께, 그녀와 함께 찻물을 마시며 서로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얼굴과 더불어 선율이의 얼굴 또한 어딘가 충실해 보였기에, 무심코 의심 없는 미소를 머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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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너 섬나라 칼럼니스트.

물건너 섬나라 LOSE社 미연시 시나리오라이터 

소설가 지망생 "한소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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