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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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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43 Sep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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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아님이
협업 참여 동의

 "왜 학교는 항상 언덕에 있는 걸까?"


저녁 반찬이 코다리 조림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나는 그걸 싫어한다. 이슬이도 그걸 싫어한다. 사실 나는 그걸 좋아하는 애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다들 나오니까 마지못해 먹었지. 사실 코다리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단체급식에서 생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양해야 할 금단의 재료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지금 맥도날드에 가고 있는 것이다.


"항상?"

"음...항상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가? 근데 나는 초등학교도 언덕에 있었고 중학교도 언덕에 있었어."

"그러고보니 나도 초등학교는 언덕이었네. 중학교는 아니었지만."


맥도날드가 있는 곳은 학교 아래 큰길 상점가 사거리이다. 갈때는 오분, 올때는 십오분. 가을이었다. 여섯시 반이 지나자 하늘은 벌써 진한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나둘씩 깜빡거리며 켜지기 시작하는 가로등 아래로. 


우리는 걸었다. 


학교 담장을 따라서 내리막길을.


춘추복을 동시에 입어도 되는 기간이었지만 나는 당연히 하복을 입었다. 난 남자니까. 이슬이도 하복을 입었다. 왜냐면 이슬이는 여자니까. 여자는 원래 추위에 강하다.


"그리고 있잖아? 등하교라는 말. 회사는 출퇴근인데 학교는 등하교라고 하는거 보면, 옛날부터 학교는 원래 언덕 위에 있던거 아닐까?"

"뭐 그거야...출교 퇴교라고 하면 좀 이상하잖아?"

"그건 지금 쓰고 있는 단어가 이미 정착된거고!"


남자랑 하복은 또 무슨 상관이냐고? 춘추복으로 갈아입기 귀찮았다는 뜻이다. 현대인의 생활교양에 속하는 내용이니까 연관시켜서 기억해두면 좋다. 코다리, 거른다. 남자, 귀찮다.


상점가는 벌써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단지 길 모퉁이를 한번 돌았을 뿐인데. 분명히 같은 공간인데도 빛의 농도가 완전히 다르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선 고소한 냄새가, 흠,  이 냄새는 문어구이인가? 옆에서 이슬이가 기묘한 신음을 흘렸다.


"으으음...배고프다!"


나도 배고프다. 맥도날드가 모퉁이 바로 앞에 있는게 정말 다행이다.


이슬이는 1955를 시켰고 나는 상하이세트 라지를 시켰다. 내가 유달리 배가 고파서 그랬던건 아니고 이슬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협박했기 때문이다. 시백아, 세트먹고 싶지 않아? 라지로 할거지? 아, 그리고 아주머니. 이따가 나올때 컵 하나만 더 주실수 있을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냥 너도 세트메뉴로 시키면 되잖아."

"으응, 나 그거 혼자 다 못먹어."


글쎄. 혼자 다 못 드시는 분께서 생글생글 웃으며 감자튀김을 학살하는 모습과, 뿌듯한 얼굴로 햄버거를 물어뜯는 모습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자세히 묘사했다간 백이슬 양의 명예에 큰 오점이 생길만한 풍경이라고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이층에 앉으면 바로 앞 횡단보도가 한눈에 보인다. 회사원들은 집에 갈 시간이다. 한산한 맥도날드 안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거리를 바라보며 햄버거를 먹었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 버스에 타는 사람들.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맥도날드에서 나왔을 땐 이미 해는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이슬이는 배부르다를 연발하면서 손에 든 바나나맛 아이스크림을 핥아먹고 있었다. 아, 배불러. 핥짝핥짝. 이거 맛있넹. 츄르르릅.


"배부르다면서 잘먹네."

"에헤헤, 이거 들어가는 배는 따로 있어."

"너 분명히 엊그제 다이어트 시작할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조용히 해. 내일부터 하면 되잖아."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음? 왜 그래? 갑자기."


학교가 언덕길에 있는 이유, 그건 아마도 이 나이대 여고생들의 끝없는 식욕 때문이 아닐까. 맛있는걸 먹기 위해선 그만큼 언덕길을 왔다갔다 하면서 칼로리를 소모하라는 것이다. 아니면 여기 백이슬 양처럼 내일부터만 외치다가, 겨우내 피둥피둥 살찐 돼지가 되어버릴 테니까.


"뭐야? 눈빛이 수상한데? 이상한 생각 했지!"

"아하하하하... 아니야, 아무것도."


아, 그렇다고 이슬이가 그렇게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딱 귀엽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더 홀쭉해지거나, 더 통통해지거나 하는 일 없이, 지금 나를 째려보는 그 모습 그 각도 그대로.


"나 그거 한입 먹어봐도 돼?"

"어? 응, 다 먹어. 안그래도 배불러서 고민중이었어."


전조등 두개가 옆을 지나쳐 언덕 너머로 아스라히 사라져갔다. 바람이 불었고, 이슬이는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올려다본 하늘은 어두컴컴해서 높은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고생은 살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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