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펠라홀 그녀 #0 + #1

by 나노찡 posted Nov 21, 2017 (19시 55분 23초) Letters cou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협업 참여 동의

나 미친 걸까. 맹세컨대,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소녀의 구강을 본뜬 실리콘 덩어리를 만지작거리는 처지가 된다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대관절 이 물건은 무엇이길래 내 손바닥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거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온다. 왜긴 왜야, 사반세기 동안 묵힌 정욕이 알코올과 합심해서 충동질한 결과지. 살면서 그닥 지켜본 기억 없는 인간의 존엄성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양 손이 자유로웠다면 머리를 감싸 쥐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손을 비울 수가 없어 그저 한 손으로 눈가를 쓸고 말 뿐이다.


내 손에 쥔 흉물…이라기엔 지나치게 잘 만든, 그 흉물 아닌 흉물은 놀라우리만큼 보드라웠다. 단지 손가락으로 훑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만져본 적은 없지만 실제로 여자 얼굴도 이렇게 부드러울까? 그렇다고 해서 남자 얼굴을 만져본 적 있다는 소리도 아니지만.


나는 상처라도 날 새라 조심스럽게 그 작은 입술을 열어 손가락을 집어넣어보았다. 말랑말랑한 볼 안쪽과 물컹물컹한 혓바닥의 감촉에 신체 어디가 쭈뼛 서며 사지가 나른해지는 느낌이었다. 오우야. 인정한다, 이거 잘 만들긴 오지게 잘 만들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했던 그 미지의 감각에 순수하게 찬탄했다.


평생 실물을 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던 물건, 기어이 그 물건을 손에 쥐어버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며 동시에 그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중 문득 인간이기를 포기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은 발상 하나가 뇌리를 스쳐갔다.


“아니, 씨발 이건 아니지. 이건 도저히 아니야.”


이건 사탄의 꼬임이다. 이 사탕발림에 넘어간다면 난 사후의 심판조차 받지 못한 채 명부마도에 떨어질 것이 틀림없다. 이성의 빛을 지닌 자라면 도저히 응할 수가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 이성의 빛은 화장실 백열등만큼도 밝지 못한 모양이었다. 뱃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부터 뱀처럼 스멀스멀스멀스멀 올라온 더러운 순정은 이성을 멀리 밀어내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너 아직 여자랑 키스도 못 해봤잖아? 써 보기 전에 한 번 연습 삼아 해보는 건 어때?]


물러가라, 이 마귀야…! 이성은 절대 지지 않는다! 나는 한 조각 남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으로 저항했다.


[저거 정액 묻고 나면 도저히 못 쓸 텐데?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구?]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시 그 얼굴을 바라봤다. 실리콘 특유의 역한 냄새가 후각을 사정없이 괴롭혔다. 그러나 거기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자그마한 소녀의 입술이었다. 촉촉하게 물기에 젖어있는 그 모습은 마치 힐라스를 유혹하던 님프처럼 강렬한 마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결국 어떤 압제도 굴복시킬 수 없었던 이성은 욕정 앞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그래, 기회는 지금 뿐이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천천히 실리콘 덩어리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거리가 가까워져갈수록 심장의 맥박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스스로를 만류하는 마음의 소리는 더욱 커져간다. 이건 미친 짓이야. 하지만 그 미친 짓을 저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열 다섯 소년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서툴게 소녀의 입술 위에 입술을 겹쳤다. 구강의 크기가 다르다는 사소한 문제점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든 키스는 가능했다. 혀끝으로 난생 처음 느껴지는 몰캉한 감각에 소름이 끼쳤다.


첫 키스의 느낌은 입술이 쓰리고, 구역질이 났다.


* * *


낯익은 천장이다. 일어날 때마다 매일 보는 그 천장. 심지어 전등불도 켜져 있었다. 시야를 갑자기 침범하는 날카로운 빛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니, 어쩌면 전등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신실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다면 누구나 눈물을 흘릴 테니. 이를테면 어제 위 속에 수장시킨 알코올처럼. 알코올은 누구에게나 충실한 친구지만 원치 않는 상황에 만난다면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다.


술김에 뭔가 미친 짓을 저지른 것 같긴 한데 무슨 일이었는지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 머리 위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전라의 여성이 도대체 누군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


씨발 뭐야 이거. 이럴 때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강도가 알몸으로 다닌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으니 강도는 아닌 것 같고, 천장의 저 얼룩도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그 얼룩이 맞는 것 같으니 내 방도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다른 가능성을 모두 소거시켰을 때 남는 것이 그 하나라면 그것이 진실이라는 명제에 비춰봤을 때, 이거 설마 내가 데려온 거냐? 설마 저지른 거야?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 얼굴은 불안감을 더욱 가속시켰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채 움직일 생각을 않는 듯 했다. 대체 누구지. 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함께 거사를 치른 건가. 아니 그 전에 이 사람 스무 살은 넘은 거야? 나 은팔찌 찰 일 저지른 건 아니겠지?


나는 결국 압박감을 참지 못 하고 입을 열었다.


“저… 누구…세요?”


그리고 말을 꺼낸 동시에 후회했다. 젠장, 이게 할 말이냐. 일반적인 경우에야 나무랄 것이 없는 판단이겠지만 이 경우엔 아무리 봐도 상황이 가리키는 바는 명백한데, 몸을 섞었을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할 말이 도저히 아니다. 인간 쓰레기로 매도당해도 할 말이 없다. 아니, 이런 여자한테 매도당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어머, 너무했다~ 첫 키스도 가져가버리고 그렇게 모른 척 하기 있기에요?”


이미 잠은 다 깼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이 퍼뜩 든다. 이거 실화냐, 실화냐고.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디까지 간 거지?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나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바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내가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할 쯤 그녀는 요사한 눈웃음을 치며 내 위에 몸을 밀착시켜왔다. 기분 좋은 무게감과 함께 뇌를 녹일 듯 달콤한 속삭임이 귓가를 파고들어왔다.


“진짜로 기억 안 나요? 우리가 어제 뭐 했는지 다시 한 번 가르쳐줘?”


뇌리를 엄습하는 위화감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몸을 밀쳐냈다. 머리로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여진 결과였다. 나신의 여체가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뒤이어 들려온 꺄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작금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좇됐다.


“괘, 괜찮아요?!”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사과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본 곳에 있었던 것은……


“뭐야 이거…”



* * *



“그러니까 그걸, 지금 나 보고, 믿으라고?”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거잖아요?”


요새 기가 허한 건가, 아니면 드디어 정신이 나간건가. 아, 설마하니 이거 꿈인가? 꿈이라고 한다면 자기 뺨을 꼬집어보는 고전적이고 멍청한 방식으로 확인해보고 싶진 않은데.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없을까? 영화에서 본 것처럼 팽이라도 돌려보고 싶은데. 아 참 난 팽이가 없지? 하나 사 둘걸. 꿈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건 한의사를 찾아가야 되나 정신과를 가봐야 되나.


그러니까 내가 이런 얼빠진 생각이나 하고 있는 이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이 얼마 전에 구입했던 펠라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방에 처음 들인 여성에게 그 민망한 물건을 들키는 일도 참 난감한 경우이겠으나 그 민망한 물건이 나를 덮친 여자로 다시 변했을 때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저는 펠라홀에 주인님의 강력한 염원이 담겨 탄생하게 된 정령 같은 거에요. 이해를 돕자면 오래 사용한 물건에 깃드는 도깨비 같은 걸까나?”


펠라홀의 정령이라니, 왠지 어감이 더럽다. 옛날에 개그만화일화에서 봤던 화장실의 정령만큼이나 더러운 것 같은데.


어찌 됐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일단 제쳐두고 말하는 바가 뭔지는 대강 알 것 같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자아가 깃들게 된 사물에 대한 군대 괴담을 본 적이 있다. 허병이었던가? 사물에 계속 정이나 미움 따위를 주며 말을 걸면 거기에 자아가 생겨 자신이 사람인 줄 알게 된다고 했던가. 말인즉슨 결국…


“귀신들린 물건이란 소리잖아.”


“얘기 제대로 안 들었죠.”


눈살을 찌푸린 모습이 제법 귀엽다.


“그게 그거 아냐?”


“어떻게 귀신 따위랑 비교를 해요? 좋다고 싸질러놓고는 이제 와서 내 애 아니라는 거예요?”

“야 그건 또 뭔… 애초에 싸지른 적도 없거든?”


“뭐죠? 아다 과시? 여자한테 한 번도 못 싸봤다는 걸 되게 자랑스럽게 말하시네.”


가슴 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왔다.


“그 얘기가 왜 나와? 아니 그 전에 내가 아다인지 아닌지 니가 어떻게 아냐.”


“주인님에 대해선 당연히 다 알죠. 스물 다섯 먹고도 여자랑 섹스는커녕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본 쑥맥인 주제에 성욕은 쓸데없이 남들보다 비대해서 새벽마다 찬거리 찾아다니느라 눈이 벌개진단 것 까지도. 그러니까…….”


그녀… 아니 그것은 흡사 암코양이처럼 바닥을 기어와 턱 밑에서 내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제가 해결해드리겠단 거예요. 저 자지도 잘 빨아요.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니까. 주인님… 응?”


달뜬 숨결이 턱 아래를 간질이자 발기한 해면체마냥 얼굴에 피가 몰려 어지러웠다. 똑바로 봐라, 이거 사람 아니다. 사람 아니야. 뒷일 생각 안 하고 저질렀다가 뭐가 어떻게 될지 알고. 크툴루 신화로 치자면 SAN치가 핀치에 몰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미치지 않기 위해 그것의 어깨를 잡고 밀어내었다.


“아니 일단 그건 좀 이따가 얘기하자. 너 계속 그 모습으로 쭉 있는 거야? 원래 모양으로는 못 돌아가?”


그것은 눈을 샐쭉이 뜨고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또 버리려구요?”


난 너처럼 눈치 빠른 물건이 싫어.

귀신들린 물건이라 생각해 패닉에 빠진 상태에도 어떻게든 버릴 요량으로 분리수거함 앞까지 갔는데 다시 사람의 몸으로 변했을 땐 여러 가지 의미로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새벽이라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발가벗은 소녀가 무릎에 매달리며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꼴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게 된다면 즉시 사회적 매장이다. 힘으로 떼어놓지 못해 결국 그걸 업고 집으로 뛰어오는 모습도 남들 보면 보쌈으로 오해하기 딱 좋지만. 젠장, 분명히 겉모습은 여잔데 왜 팔 힘이 그렇게 센 거야.


“아니 그게 버리려는 게 아니라-”


젠장. 더 이상 대화하다간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어디 강에라도 빠뜨려버리면 다시는 못 돌아오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다시 펠라홀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나는 아까와 같은 방식을 시도해보기로 결정했다. 밀어서, 넘어뜨린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키자 그것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이거 눌러버릴 거에요.”


이런 미친.


그것은 어느새 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 안에는 자고 있던 내 위에 몸을 기대고 찍은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잠금은 대체 어떻게 푼 거야?


“야, 하지 마라. 그거 진짜 하지 마.”


“그러면 나랑 약속 하나 해요.”


“아, 알았으니까 진정해 이 미친…. 미안해, 그거 내려놓고 얘기하자 응?”


귀신 주제에 어찌 그리 현대의 물정에 밝은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 민망한 사진을 전송시키려고 하는 곳은… 우리 과 단톡방이었다.



--

떡신만 안 나오면 다이죠부?



자유연재

소설을 쓸 수 있는 자유연재 게시판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마음대로 게시글 보호 기능을 추가하였습니다. 1 file Admin 2015.12.16 1843
공지 마음대로 『경소설회랑 창작공간』 비영리 공간 선언 1 file 수려한꽃 2012.05.17 78316
공지 마음대로 글 올리기 전에 꼭 읽어주세요!! 3 file 수려한꽃 2012.01.21 83979
712 연재 농기구를 든 리무진 운전수 - 첫번째 전투와 뒷이야기 먹는비누 2017.12.11 1
711 연재 농기구를 든 리무진 운전사 - 권위적과 나른함의 사이. 그리고 약간의 상식 먹는비누 2017.12.11 12
710 연재 농기구를 든 리무진 운전사 - 만남은 이렇게, 순탄치 않게 먹는비누 2017.12.11 1
709 연재 농기구를 든 리무진 운전사 - 시작은 이렇게, 원치 않게 먹는비누 2017.12.11 4
» 자유 펠라홀 그녀 #0 + #1 나노찡 2017.11.21 49
707 단편 여고생비 아님이 2017.09.03 88
706 자유 안녕, 시니 003,+004 반척수 2017.08.13 73
705 연재 망각하는 작가와 인형의 도시 - 2/30 플칸 2017.08.04 53
704 연재 망각하는 작가와 인형의 도시 - 1/30 플칸 2017.08.03 77
703 연재 하얀악마 컨알 2017.07.01 80
702 단편 학생회실에서 캘빈 2017.06.30 80
701 자유 안녕, 시니 002 반척수 2017.06.27 56
700 단편 냉혈한 S씨 삼치구이 2017.06.24 53
699 자유 걷는 성, 하얀 마녀 이야기 1 네크 2017.06.19 109
698 자유 송이밀빵 이야기 1 네크 2017.06.11 78
697 연재 아저씨 뭐하세요! 외전 : 행복한 왕자는 선인(善人)으로 하여금 존재하는가. file Project_So 2017.05.23 3805
696 자유 우주선에 소각로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네크 2017.05.03 121
695 연재 안녕, 시니. (프롤로그~1장,001) 반척수 2017.04.28 81
694 단편 예기치 못한 에러 네크 2017.04.24 114
693 단편 엠폴리오를 기억하라! 네크 2017.04.15 16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6 Next
/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