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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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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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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참여 동의


""위하여!""

맥주잔을 부딪치며 우리들은 소리쳤다.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치즈 닭볶음을 앞에 두고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니 취하지 않고도 기분이 달아올랐다.

"야, 생각해보면 우리 정말 자주 모이는 것 같지 않냐?"

건너편에 앉아있던 세후가 말했다.

"대신 동창회를 한답시고 모이는건 이제 우리 다섯밖에 없잖아. 양보다 질인거지."

경창이가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생때의 풋풋한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입가에 묻은 맥주 거품이 한없이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해마다 모이는것도 3년째인가?"

"이야, 맨 처음 만날땐 다들 처음 보는 것 마냥 쑥쓰러워 했었는데."

"그랬었나?"

희중이 말했다.

"희중이 너는 계속 만났던 친구마냥 달라붙었으니까 그런거지!"

내가 바로 답했다.

"누가 보면 매일 본 줄 알겠어. 이게 졸업하고 20년만에 보는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에이, 그래도 고등학교 땐 정말 친했었잖아! 안그래?"

"안그랬어."

"그랬었나?"

희중이 버팔로윙을 손에 집고서 이야기했다. 나도 손으로 집고 싶긴 했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이 자리에선 조금 거부감이 든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경창이랑은 같이 노래방도 가고 그랬잖아!"

그렇게 둘만 친했던 거잖아! 하지만 굳이 반론을 하진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걸 트집잡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그보다는, 요즘엔 어떻게 지내냐?"

대신 화제를 돌렸다. 이거라면 무난하지 않을까.

"나부터 이야기할까?"

세후였다.

"그, 이번 여름에 나오는 '청명한 하늘'이라는 영화 알아?"

"'용의 둥지'에서, 뭐더라, 소방관 역으로 등장했던 그 덩치 큰 사람이 주연 맡은 영화?"

경창이 물었다.

"왜 다 그걸로 기억하는걸까?"

"여튼, 그게 뭐?"

"거기서 촬영 감독을 맡고있어."

"감독?"

지혜가 놀라며 말했다.

"'촬영' 감독."

"그게 어디야! 야, 축하한다!"

"축하하긴 뭘, 박봉에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하는데."

그런 말 하면서도 웃고 있는걸 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보이긴 하다. 골빠지게 회사에서 화면이나 들여다보는 나보다야 훨신 좋지 않겠나.

"그래도 촬영 끝나서 요즘엔 백수나 다름없네."

"다른 영화일은 안들어와?"

"그러게 말이다. 요즘 영화찍는 사람도 없어서... 그래. 경창이 넌 요즘 뭐하는데?"

"나?"

닭뼈를 입에 물고 있던 녀석이 허겁지겁 뼈를 뱉고는 입을 열었다.

"아빠한테 가게 받아서 그거 하고있어."

"누리 수퍼?"

"이젠 누리 마트다."

경창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면 깎아줄거야?"

지혜가 물었다.

"그럼! 우리 사모님이라면 언제든지!"

곱게 싼 쌍추쌈을 한입에 넣으며 답했다. 이 녀석은 나이를 먹어도 먹는게 줄질 않아.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대단하다니까.

"그게 소화가 다 되냐?"

나와 같은 심정인지 희중도 그런 경창을 향해 물었다.

"쩝쩝,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쩝쩝, 쉰 넘어가니까 말야, 쩝쩝, 먹는게 남는것같아."

"야, 일단 삼키고 말해."

"꿀꺽, 아니, 좋아하던 일을 하는 것도 다 좋은데 말야, 세후처럼 일만 하다 훅 가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즐길수 있는건 즐길수 있을때 즐겨놓는게 제일 좋다고 봐."

"그렇지."

나는 말했다. 앞에 받아둔 육개장에 손이 가질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라.

난 뭘 좋아하지?

"좋아하는 일..."

"왜, 그래도 넌 자기 사업 하고 있잖아. 그 정도면 싫은 일이어도 하겠구만."

"그런가?"

"세후도 네가 사업 시작한거 알면 좋아했을걸?"

"그래, 인철아."

지혜가 옆에서 말했다.

"스스로 책임지고 하는 일 만큼 멋진건 없다고 본다.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소주로 얼굴이 벌게진 희중이 동감해오고 있었다.

"야, 그래도 이렇게 만날줄이야. 떨려서 들어간 첫 거래처에 네가 일하고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누가 할 소릴. 안사람은 잘 지내고?"

"아휴, 말도 마. 정말 잘 지내고 있어."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보면 반지, 그거 어디서, 어?"

맥주를 두잔쯤 걸쳤을때, 세후가 드디어 눈치를 챈 듯 했다.

"너, 설마..."

"후후. 지혜야, 말해도 될까?"

지혜도 취기가 돌았는지, 살짝 풀어진 눈으로 날 보고 있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좋았어.

"흠흠, 청남 고등학교 3학년 2반 제 3차 동창회에 중대발표를 할테니 잘 들어주십시오."

내가 목을 다듬고 입을 열었다. 절반가량 남아 살짝 타들어가는 치즈 닭볶음을 앞에 두고서.

"여기 제 옆에 계신 정지혜 양과 저 최인철은, 내년 2월 12일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세후는 그 말을 듣고서 이를 보이며 웃기 시작했다. 경창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얼굴과 지혜를 번갈아 보면서 확인하기 시작했고, 희중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설마. 둘이?"

"잠깐 잠깐. 언제부터 사귄거야?"

희중이 물어왔다.

"딱 일년 됬지?"

내가 답했다.

"뭐? 맞다! 너 이새끼, 그 때 지혜를 데려다줬었지!"

탐정이라도 된양, 경창이 목소리를 높이며 외쳤다.

"너 이 새끼! 변태같은 새끼!"

"야, 그땐 아무 일도 없었어."

내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맞아. 그 날엔 아무 일도 없었지. '그 날'에는."

"이야! 이야아! 여억시! 이거 인철이가 낚인거구만! 이야아!"

"근데 솔직히, 둘이 잘 어울리긴 했어. 동창회 처음 할때도 그런 말 하지 않았었냐?"

희중이 말했다.

"봐봐. 둘이 잘 어울린다니까?"

술잔도, 사람도, 분위기도 비워져가는 그 곳에서, 희중이 말했다.

"아니, 그러지좀 마라."

내가 말했다. 아무리 그렇지, 지혜와 나라니. 물론 고등학교때 몇번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

"안그래, 지혜야?"

"뭐, 그렇지."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윽, 이정도로 깔끔하면 상처입지 않는것도 아니지만.

"솔직히 지금은 별로..? 하하. 솔직히 내가 인철이를 뭐가 좋다고 바라보겠냐."

지혜가 말을 이었다. 그만. 그만!

"그래도, 같이 10년을 살았잖아."

"용캐도 그랬네."

열번째의 2월 12일. 와인의 은은한 향기는 생각보다 매력적이고, 매혹적이었다.

"10년을 버틴 내 자신을 위해, 건배."

"언제나 생각하는거지만 지혜, 넌 말이 너무 심하다니까."

"우후후, 그래서 좋아하는거 다 알고 있어."

난 그저 웃었다.

"맞다. 이거. 10주년 기념 선물이야."

그리고 준비해둔 선물을 그녀에게 건냈다. 지혜는 내가 건낸 작은 상자를 열고는 이를 들여다보았다.

"목걸이네? 와, 이쁘다! 뭘로 만든거야? 은?"

"아니. 주석."

"뭐어? 주석?"

지혜가 얼굴을 찌뿌렸다.

"돈이 없었던거면 거짓말을 했을테니, 무슨 의미가 있는거겠지. 그래서, 그게 뭔데?"

지혜가 물었다.

"외국에서 들은 이야긴데, 주석처럼 유연하고 오래 결혼 생활이 지속되길 바라면서 열번째 기념일엔 주석으로 만들어진 물품을 선물하곤 한다고 하더라고."

내가 답했다.

"으, 이게 뭐야. 난 네가 작년처럼 기념일을 잊어버린줄 알고 별거 준비 안했는데."

"그래도 좋아. 그래야 너다운거잖아?"

내가 말했다.

"그런가... 나다운건가."

지혜가 말했다.

"그래."

경창이 답했다.

"넌 나처럼 호들갑 떠는 타입이 아냐. 세후가 그랬던 것처럼 감상적이지도 않았고."

그리고는 자신의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더니, 잇따라 들이켰다.

"넌 언제나 차분했어. 익살이 없는것도 아니었지만, 우리 반에서 가장 이성적인건 너였어."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쉬며 지혜의 얼굴을 똑바로 보다가, 나로 시선을 바꾸었다.

"그래서 얼마나 화가 났는줄 아냐? 인철이 네가 내 첫사랑하고 결혼한다고 했을때?"

"뭐? 그랬어?"

내가 대꾸했다.

"안그러면 내가 뭐하러 동창회를 매해 열었겠냐. 반 애들 전부를 모은 것도 아니고."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후랑 희중이가 죽었으니까 이제 이런 말이라도 하는거지."

"야, 무슨."

"왜. 맞는 말이잖아."

오랜 일에 검게 탄 손으로 경창은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그런 고로. 나도 고백할게 있다."

그리고는 다시 녀석은 잔에 손을.

내가 재빨리 손을 뻗어 이를 만류했다.

"너무 많이 마신다, 경창아."

"이미 늦었어, 이 친구야."

경창이 말했다.

"간암 말기랜다. 세달 남았다고 했나."

"뭣..."

녀석은 씨익 웃었다. 예전에도 한번 본 얼굴이었다.

"예순까지 딱 버텼으니까 딱히 불만은 없어. 딱 좋아, 이 정도가. 손자 얼굴도 봤고."

"미련한 새끼. 그만큼 살았으면 더 살아야할거 아니냐."

병상 맡에서, 나는 말했다.

"...내가 미련한게... 언제적 이야기인데... 이제... 아들놈한테... 자리좀... 비켜줘..."

경창이 말했다. 진통제에 취한 몽롱한 목소리. 이런 경창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늙어서까지 주체못하는 평소의 모습만 보고싶었다. 하지만 단 몇달만에 순식간에 변한 녀석의 모습에, 두려움마저 일었다.

그런 나의 손을, 지혜가 꼭, 하고 붙잡았다.

"괜찮아, 여보."

뼈마디밖에 남지않은 그 손길.

그 손길만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세월에 하나 둘 모두가 스러져가는 지금, 그 손길만을 난 기억할 수 있었다.

난 붙들고 있었다.

"다 죽어버렸어. 세후고, 경창이고, 희중이고, 모두 죽어버렸어."

"다들 언제나 죽잖아. 안그래?"

그녀는 내 옆에서 조용히 웃음지으며 말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얼굴을 바라보니 웃음을 짓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 불안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도 그럴게. 당연한 이야기잖아."

지혜가 말했다.

"나도 언젠간 죽는거겠지?"

"..."

내 물음에, 지혜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쥐고있던 내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언제고 우린 함께니까."

아. 그 아름다운 목소리.

"그래서."

내가 말했다.

"노트 내래."

"뭐?"

뚱한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이름이 뭐였지? 지혜 맞나?

"숙제 말야. 선생님이 내라고 했어."

"아. 무슨 고삼한테 숙제야. 안그래?"

"나한테 물어도 내가 뭘 할수 있는건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자. 여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숙제는 해온 모양이었는지 가방에서 두꺼운 노트를 꺼내 내게 건냈다.

나는 이내 손을 뻗어 그 숙제를 받아들었다. 그 순간.

지혜가 내 손을 낚아챘다.

"뭐, 뭐야!"

"흐응-"

지혜는 잠시 내 손을 붙잡고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뻘쭘하기 짝이없는데.

"이거 놔!"

당황하며 그렇게 말하자, 지혜가 비로소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이죽이면서 말했다.

"너, 오래사는 것 치고는 운이 없구나?"

"무, 무슨 소릴 하는거야!"

"아니. 친구가 손금을 알려줘서."

"정말 뜬금없구만."

내가 답했다.

"그래서."

머뭇거리면서, 답했다.

"너를 만난걸 생각하면, 운이 없었던건 아니야."

지혜는 답하지 않았다. 웃으며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고개를 돌려 마주보았다.

그 곳은, 싸늘한 어둠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을씨년한 방안.

의료기기가 이따금 소리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내가 살아있다는 것도 증명하고 있었다.

"돌아온건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버튼을 눌렀다.

흰 가운을 입은 한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

"몇달이나 지났지?"

남자는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10개월입니다."

"점점 길어지는군."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내가 알아야 할게 있나?"

의사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더니, 머뭇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뭐. 뭔데."

"그게 말입니다, 선생님."

그는 뭔갈 말하기 꺼려하고 있었다.

"...말 하게. 난 준비되었다네."

걱정은 하고 있었다. 예상도 하고 있었다.

이만큼 살았으면, 이런 법도 있는거겠지.

"... 선생님의 아내분은, 두달 전 돌아가셨습니다. 주무시는 도중에, 편안하게 말이죠. 유감을 표합니다."

의사가 말했다.

"..."

눈가가 촉촉해졌다. 가슴이 땡겨왔다.

이런 고통이, 이 나이가 되서도 찾아올줄은 몰랐다.

"예전에 말했던 서류를 가져오게."

나는 말했다.

"저, 여기."

미리 준비한듯, 그는 들고있던 종이를 내게 건내주었다.

안락사 본인 동의서. 그 서류의 가장 위엔 그렇게 적혀있었다.

"펜."

의사는 잠시 주저하다, 가운에 꽂혀있던 검은 펜을 건내주었다.

"안경과 조명도 부탁하네."

그는 내 머리맡의 조명을 조작하고는, 서랍 안의 안경도 건내 주었다.

안경. 잠시 나는 이를 쓰길 거부했다.

추억이 떠올랐다.

"30주년 선물이야. 그거 알아? 이 안경대도 주석으로 되어있어."

지혜가 말했었다.

나는 안경을 쓰고, 빠르게 서명했다.

"바로 해줄수 있겠나? 오늘 밤에?"

나는 말했다.

"연락을 해도 됩니다만."

"아냐."

안경을 벗고, 하지만 이를 꼭 손에 쥐고 말했다.

"나는 내가 나일때 죽고싶다네."

의사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명을 줄이고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지혜의 모습을. 그녀의 매력적인 지혜를. 굳건하게 날 지켜봐주던 온화한 눈길을. 사고와 실수로 점철된 추억을.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다시는 뜨지 않을 눈을 감았다.

부디. 죽어서도 다시 만날수 있기를.

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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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타 @nec092

게임 리뷰하는 팟캐스트 우물파는 게이머들의 리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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