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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데구르르 쿵! 1

  • 이억수
  • 조회 수 29
  • 2018.02.04. 16:43
  • 글자 수 자 (공백 포함)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1.


데구르르 쿵! 하고, 소녀는 이제쯤 오겠다 싶으면 찾아왔다. 

어떤 낮엔 침상 밑에서, 어떤 저녁엔 바람결에 부푼 커튼 아래서 굴러 나왔다.

도대체 여기선 어떻게 굴러나온거야 싶은 곳에서 굴러 나올 때도 많았다.

다만 끝 동작은 늘 한결같게 체조선수처럼 양팔을 쫙 펼치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대체 뭔 의미가 있는 동작인지는 몰랐지만 하여튼 그랬다.


2.


윤은, 자신이 미친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부대 안에 여자라니. 그것도 어린 여자애라니.

성인 여성도 아닌 교복입은 여자애가 나왔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그냥 여자였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여중생이라는 단어는 한없이 범죄에 가까운 냄새를 풍겼다.


윤은 억울했다. 


정신병에 걸릴거면 좀 더 이쁘고 나이찬 여자나 나올 것이지.

그래도 너무 어리지 않나 중학생은. 

자신의 리비도가 원망스러웠다.


3.


소녀가 처음 관물대에서 데구르르 쿵! 하고 굴러나왔을 때. 

윤은 깜짝 놀라. 그만 씨발! 이라고 외쳐버렸다. 

누구라도 관물대에서 금발의 여중생이 굴러 떨어진다면 깜짝 놀랐을테지만.

안쓰럽게도, 선임들이 다 있는 앞이었다. 


다행인건 그전부터 이미 윤은 폐급 취급이었다. 


4.


소녀가 여섯번짼가 굴러나왔을 때. 


윤은 소녀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환상과 대화하는 것은 정신병을 키우는 짓이라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 같았지만 

말을 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락도 없이 자기 물건을 함부로 만지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기..."하고


문을 박차고 굴러온 소녀에게 윤이 조심스레 말을 걸자 소녀는 까무러치듯이 놀랐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윤은 당황했다. 

아니, 그건 내가 지을 표정이지.


5.


소녀는 윤을 잡아끌고 도서실로 데려갔다. 

무언가에 끌려가는 듯 이상하게 걷는 윤을 보며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곧 아 쟤 원래 이상한 놈이었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갔다.


도서실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포즈로 도서실에 끌려들어온 윤과 금발의 교복소녀. 

만약 윤의 취향이 조금만 더 소아성애쪽에 기울어 있었다면 

소녀는 큰일을 당했을 것이다.


소녀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숨을 한번 크게 몰아 쉰 뒤.

이젠 말을 해도 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은 잠시 고민하다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너는 무엇이냐라는 식의 질문은 너무 무례한 것 같아 대충 돌려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되려 이것이 소녀에겐 더 곤혹스러웠는지

소녀는 곤란하다는 듯 머뭇거리다 책장을 보곤

막 정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슈마엘."


이때는 그냥 모비딕을 너무 감명깊게 읽었나 보다 싶었다.


6.


별로 본명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기에

윤은 유튜브에서 봤던 영상을 떠올리며 소녀를 롤링걸이라 부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소녀가 질색을 했기에 그냥 이슈마엘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다 윤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책장에서 성경을 찾았다.

그리곤 어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성경구절을 읊으며 물러나라 이슈마엘! 하고 근엄하게 말해봤다. 

하지만 소녀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자신이 악마 취급을 받았다는걸 깨달은 이슈마엘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윤의 가슴을 퍽퍽 쳤다. 


첨언하자면 꽤 아팠다. 


7.


그 이후로 이슈마엘은 종종 윤을 찾아왔다. 


같이 책을 읽고 같이 노래를 듣고 가끔은 대화도 나눴다.  

주된 화제는 이슈마엘이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인지. 또 왜 자신에게만 보이는지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슈마엘도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는지. 또 왜 윤에게만 보이는지는 알지 못하는 듯 했다.


그래서 이슈마엘이 무언갈 할 때마다.

윤은 정신병이 디테일해진다며 감탄했다. 

자신을 정신병 취급하는걸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이슈마엘은 주먹으로 퍽퍽 윤을 때렸다.

손도 더 매워지는 것 같네. 

윤은 더 감탄했다.


그리고 이슈마엘도 윤이라는 인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군대라는 곳은, 애초에 혼자 있는 것이 더 힘든 곳이다. 

그런데 윤은 밥을 먹을 때도 혼자였고 작업을 할 때도 혼자였고 심지어 담배를 태울 때도 혼자였다.  


이슈마엘은 윤이 외톨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8.


윤은 흡연장에서 줄담배를 태우며 천천히 자신이 혼자가 된 경위를 변명했다.


윤도 처음부터 폐급은 아니었다. 정확하겐 폐급취급은 아니었다. 


이등병 때는 폐렴때문에 창전술훈련이라는 것을 빼게 되고 

일병 때는 간염때문에 혹한기훈련을 빼게 됐다는 희대의 꿀을 빨아버린 덕택에. 

굳이 따지자면 염증이 개새끼였지만.

사람들은 윤을 개새끼 취급하는걸 더 좋아했다.


안그래도 말이 없는 성격이었기에 오해는 점점 더 깊어져갔다.


사실 동기들만 있었더라도 지금같은 취급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같이 들어왔던 동기 네 명 중 두 명은 일 2때 서로 죽어라 싸우고 다른 중대로 옮겨졌고

한 명은 일3 때 와이프가 출산을 하면서 상근으로 빠져버렸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지금 그린캠프에 있다. 사유는 별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윤의 군번에는 윤밖에 안남게 되버렸다. 

그리고 윤 본인도 혼자인게 편했다. 


슬프지 않아요? 하고 이슈마엘이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 


외톨이라 너랑도 놀아줄 수 있는거야. 하고 윤은 쿨럭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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