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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전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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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들의 피로 얼룩진 깊숙한 던전 내부.

허황된 환상에 목숨을 내던진 한 무리의 불나방들이 여기에 또 있다.  


"마그카르고 지하 19층. 드디어 도착했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 완벽하게 제련 되었던 모험가의 검은 날이 다 빠져 고블린이나 제대로 벨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그의 방어구도 다 해져 늑대의 발톱에 스치는 것 만으로도 찢겨 나갈 듯했다.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보란듯이 뒤쪽에서 마법 영창을 시작한 마법사의 스태프도 반쪽으로 부러져있었다. 걸치고 있는 건 좋게 말해서 넝마라고 불러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어서 맨 뒤쪽에서 축복을 걸어주는 사제의 꼴도 도저히 눈뜨고 봐줄 만하지 않았다. 제 몸뚱이 하나 건사해서 온 것 만해도 칭찬해 줄 만한 일이었다.  
"마그카르고 최하층에 당도한 걸 환영한다. 어리석은 모험가들이여. 나 길로트가 그대들을 친히 상대하지."


모험가들이 한가하게 마주친 던전의 보스와 잡담이나 나누고 싶을리 없었다. 곧바로 검을 든 사람이 길로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약해, 약해. 겨우 그런 실력으로 나를 쓰러뜨리려 왔단 말인가?"


검을 가볍게 피한 뒤 길로트는 검사를 쳐서 멀리 날려 버렸다.  그 순간 길로트를 향해 고급 마법이 발사되었다.  던전을 뒤흔드는 전격 마법과 함께 희뿌연 안개가 치솟았다.  


"해치웠나?!"


마법사가 말했다.  당연하지만 해치웠을 리 없다. 바람이 세게 휘몰아 치는 동시에 안개를 뚫고 길로트가 밖으로 뛰쳐나와 마법사의 배를 꿰뚫었다. 

신음소리를 낼 새도 없이 마법사가 고개를 떨궜다.  옆에 있던 사제는 겁먹은 표정으로 주저 앉는 게 전부였다.  


"겨우, 이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너희들은 내게 벌레 이하의 존재구나."


"으아아아아!"


길로트의 도발에 분노한 검사가 좀 전 보다 빠른 속도로 길로트를 향해 돌진 했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길로트 뿔이 검사를 검째 꿰뚫어 버렸고 귀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 벽에 쳐박았다.


"오, 우리 구원의 여신 아르헨달레트!  구원을!"


사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저 정신이 나가 아무런 신이나 지어 부르고 있었으니까.


"심심풀이조차 안되는 군."


길로트는 사제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검은 기운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들었고 이내 주변의 공기를 요동치게 했다.  

흩뿌려진 길로트의 마력은 던전 내부를 깨부수며 사제의 흔적 자체를 없앴다.


"시시하군."


손을 털어내며 길로트는 자신의 왕좌를 향해 몸을 돌렸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한 놈 남아있었나?"


뒤 쪽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길로트는 흥미가 생겼다.  보나마나 지금까지 숨어있던 겁쟁이일 게 분명했다. 한껏 움츠리고 있다 이제서야 도망가는 거겠지. 그렇다면 더더욱 놓아줄 생각은 없다. 길로트는 뒤로 돌아 도망자를 추격하려 자세를 잡았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단 걸 깨달았다.  

도망자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자가 아니었다. 도전자였다.  


"이건 이것대로 흥미가 동하는 걸."


던전의 어둠을 뚫고 나온 건 12살 가량의 여자아이였다.  잘못 봤나 싶어 두 눈을 비벼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뭐, 속지 말아야할지도 모른다. 마법사에게외양을 어려보이게 하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


"어쩌면 내 지루함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어디 한번 공격해봐라."


금색 단발을 한 여자아이는 던전의 보스를 앞에 두고서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별거 아니라는, 신경 자체를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첫마디가 이랬으니.


"음료수가 먹고 싶어."


여자아이의 앞에 차가운 유리잔에 담긴 음료수 하나가 생겨났다. 익숙한 듯 여자아이는 잔을 들어 홀짝였다.  


"....달콤해!"

"..."


던전의 주인으로써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다. 자신을 앞에두고 한가하게 음료수나 소환해서 마시는 꼴이라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길로트는 자신의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오랫동안 뽑지 않은 검이다. 

그렇다. 조금 건방진, 곧 눈 앞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질 계집애였다. 순간의 감정에 이기지 못하고 검을 뽑는 건 멍청한 짓이다.


"과자도 먹고 싶어."  


그런 길로트의 생각을 알기나 하는지 한가롭게 여자아이는 과자를 손에 쥐고 냠냠 먹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개념을 상실한 녀석이구나. 뭐 좋다. 바로 저승길로 보내 줄테니까."  


사제를 없앴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응축된 마력이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 넘쳐 주변을 일그러뜨렸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났으면 좋겠어."  


"무슨 수작인지 몰라도 죽어라!"


"한 1만배 정도 강하게 됐으면 좋겠어."


여자아이는 별 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죽기 직전의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길로트의 눈 앞에서 방금 전 죽었던 검사가 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길로트의 손에 응축되었던 마력은 검사의 검기와 맞부딪혀 스파크를 내며 소진되어가고 용사를 서포트하는 강력한 마법이 훅훅 날아왔다.  

위협을 느낀 길로트가 마력을 폭발 시켜 거리를 벌렸다.  던전 일부가 금이 가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되살아난 검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거기 네 녀석 꼬마! 무슨 짓을 한거냐!"


길로트가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여자아이는 아까 받은 과자의 마지막 조각을 다 먹고선 손을 털어냈다.


"나는, 꼬마가 아니야. 마리아야. 아, 던전이 너무 칙칙해. 핑크색이었으면 좋겠어."


마리아의 말 한 마디에 던전 전체가 분홍빛이 돌는 상큼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뭐가 대체 어떻게 된거야?"


"난 아저씨들이 그냥 저기 저 보스랑 싸웠으면 좋겠어."


마법사의 물음에 마리아는 무미건조하게 명령했다. 모험가들의 눈 빛이 순식간에 바뀌더니 길로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 녀석.. 크읏. 네크로맨서....인건가?!"


만 배 정도 강해진 검사의 검과 마법사의 마법을 힘겹게 막아내며 길로트가 소리쳤다.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검사의 검이 길로트의 날개 한 쪽을 찢어냈다. 검은 피가 솓구치며 핑크색 던전 내벽을 가득 채웠다.  


"이제, 질렸어. 아저씨들 다시 죽었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놀란 표정 그대로 모험가들은 살점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고정 되어있던 뼈가 우르르 무너졌다.  마리아는 무표정했다.


"몬스터, 너야 말로 나를 재밌게 해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고 길로트는 생각했다. 마계의 2인자였던 자신이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아닌 꼬마의 소환물에 농락당한다고? 웃기지마라. 길로트는 망설임 없이 허리 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검을 뽑자 던전이 산산조각나며 떨어져 나갔다. 최하층이 굉음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던전이 안무너졌으면 좋겠어."


던전에 고요가 찾아왔다. 던전 모든 곳이 금이 가 있지만 그 자리에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줄곧 가만히 있던 마리아가 길로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같잖은 짓거리를 보는 것도 끝이다!"


길로트가 마검을 휘두르자 공간이 깎여나가며 마리아가 있던 자리를 무로 되돌렸다.


"욕조에 뜨는 오리 장난감 가지고 싶어."  


마리아는 길로트의 공격을 피했고 한 손에는 오리 장난감을 들고 있었다. 그래봤자 길로트의 공격 가능 범위 안이었다.  마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됐다.  

"저 몬스터가 오리 장난감에 닿으면 소멸 되게 하고 싶어."  


"웃기지마!!!!!!!!!!!!"


길로트는 더욱 필사적으로 마검을 휘둘렀다.  마기가 마리아를 베어냈다.  마리아는 정확히 위 아래로 두 동강 났다.  


"이겼다!"


"내가 이겼으면 좋겠어."


마리아의 상반신이 감정도 없이 입을 움직여 그렇게 말했다.  


"뭐냐....고....그르르."


길로트의 몸이 펄펄 끓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새에 증발해버렸다.  마리아는 멀쩡한 모습으로 그 광경을 구경했다.  정말이지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냐하면, 아니 왜 이게 재미 없는 일인 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신나는 일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모험가들이 살아났으면 좋겠어."


마리아의 말 한마디에 두 번 죽었던 모험가들이 다시 되살아났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거죠?"


어안이 벙벙한채로 검사가 마리아에게 물었다.  


"뭐, 마리아는 전능하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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