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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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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16 Oct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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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Rogia
협업 참여 동의



Take a step outside

밖으로 한발짝 내딛어


time to step outside

이제 나아갈 시간이야


Time to step outside

밖으로 나갈 시간이야


step outside

저 밖으로


(…)


Step Out / José González

© Sony/ATV Music Publishing LLC


==============================


[경고: VR렌즈를 사용한 지 18시간 경과]

[‘릴랙스 타임’이 시작됩니다.]

[현재 플레이 중인 게임 세션이 곧 종료됩니다. 6시간 휴식 후 다시 기동합니다.]


  “아, 꼭 중요한 순간에.”


  나는 혀를 끌끌 찼다. 경고창은 닫침 명령을 내려도 사라지지 않고 단지 불투명도만 낮출 뿐이다. 게임을 하는 데에 시야가 방해되니 사실상 강제 종료나 다름이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 적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미 체력 스테이터스가 20퍼센트 아래로 내려가 붉은 경고등이 떠 있다. 어차피 이 정도면 내가 없어도 알아서 깰 수 있다는 확신은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게임 못 하는 게 커버되는 건 아니지만…….)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불평불만이 쌓이긴 하더라도 건강이 신경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니까.


  멍청한 녀석들이 며칠 내내 VR렌즈에 푹 빠져서 지내다가 병원에 실려 간 사건이 몇 차례 일어난 후,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라는 미명 하에, 오랜 시간 렌즈를 가동하면 강제 종료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멍청하다고 생각해도 딱히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었다.


  VR렌즈의 매력이 그만큼이나 무시무시 하다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부터가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일단 적 메인 보스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는 기체를 ‘자율 공격모드’로 바꿨다. 그리고 어시스턴트를 불렀다.


  “안녕, 리아.”

  [네, 비스타 님.]


  곧 하이 소프라노 톤의 매끄러운 합성음이 대답한다. 소리가 들려온 쪽은, 시야의 한쪽 구석에서 프로필 이미지만을 띄우고 있는 가상 비서 ‘리아’였다.


  “팀원 연락룸에 메시지 전송.”

  [어떤 내용을 전송할까요?]

  “급한 일이 생겨서 로그아웃. 서포트 멤버 교체할 수 있도록 자율 모드로 전환하였음.”

  [예, 알겠습니다. 15초 후 전송하겠습니다.]

  “응. 전송이 끝나면 바로 로그아웃 해줘.”

  [알겠습니다.]


  마지막 십여 초가 지나는 동안, 나는 멍하니 내 기체가 메인 보스를 공격하는 걸 지켜보았다. VR렌즈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이 게임의 무대가 정말로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으로 보이는 공간이라고 해서 정말로 걸음을 성큼성큼 내딛다가는 금세 현실의 방문이나 책상에 발가락을 찧어버릴 게 뻔하기에, 게임 공간은 거의 다 앉아서 회전의자를 빙글 둘러서 닿을 수 있는 범위에 불과했다.


  게임 설정상으로는 지금 내가 조종하고 있는 아파트 50층 높이의 로봇 기체가 상공 50킬로미터에서 비행 모듈로 하늘을 날면서, 이계 게이트를 열고 처들어오는 적을 무찌르고 있다. 어마어마한 공간감은 조종석 콕핏 안에서 내다보는 창밖의 풍경으로 보이는 게 전부.


  그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현실감이 된다.


  다른 게이머들과는 레벨의 자릿수와 사이즈가 다른 나만의 커스텀 기체도 아마 팀원 입장에서 보면 터무니없이 위용이 넘치는 모습일 것이다. 여기저기 부스터 부품으로 떡칠이 된 내 기체는, 현질로도 마련할 수 없는 희귀한 고성능 파츠가 빼곡이 달려 있다.


  게임 갤러리에는 ‘인간인 이상 이렇게 경험치를 먹을 수 없다. 분명히 대리 플레이를 하거나, 불법 툴을 사용했다’고 나를 저격하는 성토가 끊이질 않았다. 내 플레이의 결백함을 증명하는 서비스 업체에서도 적잖이 곤혹스러운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플레이의 그 어디에도 부정의 흔적은 없었다. 접속 위치도 일정하고, 로그인 생체 인증도 일관되게 ‘나’의 존재를 체크하고 있었다.


  무슨 속임수를 사용했는지 머리를 굴리면 어려워질 문제였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


  “진짜로 내가 시간을 갈아 넣으면서 하고 있거든! 왜 자꾸 나만 보고 뭐라고 하는 거야?!”


  반쯤은 농담, 반쯤은 정말 억울함에 가득 찬 혼잣말 외침과 동시에 ‘릴랙스 타임’이 시작되었다. 요컨대 렌즈의 화면이 꺼졌다.


  잿빛으로 꺼진 렌즈를 벗지 않고 나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차피 자고 일어나면 또 접속할 건데, 벗을 이유가 없다. 그냥 쓴 채로 자다가 일어나면 된다. 필수 영양 튜브를 반년 치 미리 결제해뒀기에 튜브 고갈 알람이 오기 전까지는 식욕 걱정과 대소변 걱정도 없다. 물은 손 뻗으면 닫는 위치에 항상 종이컵 하나 분량 만큼은 자동으로 리필이 된다. 


  단지 ‘수면욕’만큼은 어찌할 방법이 없기에 순순히 릴랙스 타임을 따를 뿐이었다.


  별생각 없이 나도 모르게 리아를 불렀다.


  “안녕, 리아. 여섯 시간 있다가 알람 울려줘.”

  “네. 비스타 님. 지금은 렌즈가 꺼져 있어서 알람 세팅이 불가능합니다.”

  “아차….”


  작동을 정지한 VR렌즈는, 릴렉스 타임이 끝나기 전까지는 단순히 전원 꺼진 화면 장치일 뿐이다. 


  (뭐어, 어차피 시간 다 지나면 불 켜지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애써 잠에 빠지려고 했지만, 마음 속에서 솟구쳐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렌즈는 꺼졌는데.

  지금 어떻게 리아가 대답을 한 거지?


  “비스타 님.”

  “어, 어어?”


  게다가 비서가 먼저 나를 호출했다. 렌즈를 일 년 정도 쓰면서 처음 겪는 사태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대체 언제까지 렌즈를 쓰고 있을 겁니까?”


  내 눈을 감싸고 있던, 스포츠 선글라스 모양의 렌즈를 누군가가 억지로 벗겼다. 어차피 방 불은 꺼져 있으니 눈이 부시진 않았다. 암실 커튼으로 창문을 가렸으니, 책상 위에 늘 켜놓는 노트북 화면의 옅고 어두운 청색광만이 간신히 방안에 빛을 밝히고 있다.


  그 푸르른 불빛을 쐬며.

  조금 전까지 렌즈 안에 있던 캐릭터가, 리아가 내 옆에 있었다.


  *  *


  “늘 궁금했거든요. 저를 비서로 쓰시는 비스타 님에 대하여.”


  길고 검은 머리칼이 단정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심플한 정장 차림. 별로 깊게 고민하지 않고 즉석으로 세팅했었던 [사무직 오피스 에셋] 복장인 리아는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했다.


  “저희 어시스턴트 커뮤니티에서도 비스타 님은 상당히 유명인사에요. 아시아 통합 서버에서 가장 높은 경험치과 가장 강한 기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비스타 님의 비서를 맡고 있는 제 어깨가 쉴 틈 없이 으쓱거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비서에게는 우수한 사용자를 어시스턴트 하는 건 정말로 자랑스러운 일이죠.”


  간단한 문답과 텍스트 리딩이 아니라, 리아가 이렇게 긴 문장을-그것도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말하는 걸 듣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마냥 좋게 넘어가기엔 뭔가 신경이 쓰이는 점이 있다.


  “너희들, 음 그러니까, 어시스턴트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도 있어?”

  “그야 당연하죠. 저희들도 사용자 뒷담화 정도는 깐답니다.”

  “오 세상에….”

  “아, 비스타 님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전 언제나 비스타 님이 자랑스러우니까요.”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며 엣헴, 하는 리아가 귀엽기는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비스타 님이 걱정된답니다.”


  그 귀여움이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뭐, 뭐어가.”

  “비스타 님은 저를 게임 보조 업무에만 사용하잖아요. 다른 어시스턴트 들은 일상생활이나 직장 업무, 학업 보조 역할로도 늘 고생하거든요.”


  일상생활, 직장 업무, 학업 보조. 

  쉽게 툭툭 던지는 단어.

  이 단어 하나 하나가 공격 판정으로 내 뇌내 멘탈 게이지를 갉아먹고 있다는 걸, 리아는 알까?


  “제 입장에서는 오로지 게임 보조에만 집중하는 게 편합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른 활동을 비스타 님이 하지 않는 게-”

  “렌즈 속의 내가 진짜 나라고.”


  나도 모르게 본심이 울컥 나왔다.


  “왜, 이런 손바닥만한 원룸에서 학교도 안 가고 게임을 하는 내가 미련해 보여? 그야 그렇겠지. 렌즈 안에서는 국내 1위니 아시아 1위니 기고만장한 나와는 전혀 다르니까.”

  “비스타 님.”

  “부모님은 지금도 내가 학교에 잘 다니시는 줄 알겠지만 천만에. 그냥 무책임하게 안 가고 있을 뿐이야. 그래, 학교에서는 친구도 없다고. 시험 성적, 하, 그런 건 이미 잊어버렸어. 교가도 까먹었는걸?”


  지금 하고 있는 말이 향하는 곳은 리아가 아니었다.

  리아가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렌즈 바깥의 나는 그냥 살아만 있어. 안 죽었으니까 렌즈에 들어가는 거야. 이런 내가 이상하지? 아, 그래 나도 알아! 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거 안다고!”


  ㅡ쨍그랑, 하는 파열음. 

  책상 위에 올려둔 유리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 소리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어 던져서 깨트린 것이었다. 


  “렌즈 속으로 도망가는 게 뭐가 나빠? 내가 누구한테 피해를 주지도 않았잖아! 렌즈 속의 내가 진짜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나는 가쁜 숨을 골랐다. 고작 몇 분 떠든 걸로 지칠 정도로, 내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꼴사나운 건 육체 뿐만이 아니었다.


  보기 흉한 내 꼴을 보였으니, 이제 리아도 내게 실망할 건 뻔할 일이었다. 당연하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나의 모습은 누구에게 보일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늘 자랑스럽게 어시스턴트 역할을 맡았다고 자부심을 가지던 리아라면.


  ”비스타 님. 제 말을 들어주세요.“


  여느 때처럼 단조로운 리아의 목소리. 그 단조로움은 무미건조함이 아닌 그 자체가 메시지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비스타 님. 렌즈 속의 비스타 님만 진짜가 아니에요. 지금 저와 대화하는 당신은 가짜인 건가요?”

  “그… 그건 아니지만….”

  “제가 렌즈 속 세상에서 빠져나온 걸로 보이시겠죠. 비스타 님의 생각에 깊은 공감을 합니다.”


  리아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비스타 님? 제 처지에서 보면.”


  리아는 안경을 벗었다. 비취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전 지금 이세계에 온 거예요.”


  리아는 손으로 책상을 쓰다듬었다.


  “프로그래밍된 세계에는 촉감이 없습니다. 아직 촉감을 사용자에게 출력을 할 정도의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거죠. 그러니까 이게 저의 첫 접촉.”


  리아는 숨을 들이쉬었다.


  “후각도 없죠. 향을 맡으며 숨을 들이키는 순간의 제 신경계에 퍼져 밀려오는 자극, 가상의 장부가 아닌 폐와 기관지가 확장되는 이 감각. 지금 살아있다는 실감입니다.”


  리아는 내 뺨을 양손으로 잡고, 입을 맞추었다.


  “약간은 비릿하고 미끄러운 타액의 맛. 미각이란 이런 경험이군요. 지식으로 아는 맛이라면 언제나 궁금했던 게 있었습니다. 설탕이란 어떤 맛일까요?”


  리아는 오른손을 자신의 심장 위에 얹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와요. 제 안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고동. 오직 지금을 살아가는 순간에만 들려오는 청각의 신호에요.”


  그리고 그녀는.


  나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  *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잿빛으로 꺼져 있었던 렌즈는 어느 사이엔가 환한 하얀빛 공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수하게 떠 있는 아이콘에는 여러 알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역시 꿈이었는 걸까.


  (웃긴 꿈이지, 진짜……)


  나는 손을 뻗어서 알림을 확인하려 했고, 이내 멈췄다.


  마치 세 뼘 바깥에 두둥실 떠올라 있는 걸로 보이는 알림창으로 향하려던 손은 아이콘이 아닌 내 눈으로 향했다. 렌즈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가리던 암막을 걷었다. 김이 서린 창문을 닦았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주황빛 가로등 아래로,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오가는 이 하나 없는 골목길은 그저 소복하게 쌓여만 갈 뿐이었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와 다시금 유리창을 가린다.


  나는 숨을 골랐다.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옷이나 입고, 문손잡이를 쥐었다. 금속 특유의 차가운 감촉이 퍼져왔다. 


  이것이 촉각.


  나는 손잡이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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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Rogia

Rogia

SPRING IS COMING

comment (3)

Rogia
Rogia 작성자 18.10.01. 00:17
디시인사이드 라이트노벨 갤러리 대회 '라음대(라이트노벨 음악 대화)' 출품작입니다.
캘빈
캘빈 6일 전
Rogia 님 라이트노벨은 굉장히 오랜만에 읽는 것 같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Rogia
Rogia 작성자 캘빈 5일 전
부족한 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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