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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03 Oct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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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네크
협업 참여 동의


예측하지 못했냐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 될테다. 하지만 이걸 예측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진 않을테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예측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다미아노 수사의 것이었을 고깃덩이를 눈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생각은, 겨우 그 정도였다.


육편의 주인을 예측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시력이 온전하다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설령 그 ‘녀석’이 던 중사와 함께 세 명의 소대원을 갈아먹었더라도, 특징적이고 과시하는 듯한 스페이드 에이스 문신이 새겨진 고깃덩이는 다미아노의 것일 수 밖에 없을테니까. 


한숨을 쉬고 싶었다. 폣속 깊은 곳에서 그러모은 이산화탄소를 길게 내쉬고 싶었다. 달리 무얼 하란 말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머리 위 마루를 짓밟으며 삐걱이고 있는데, 내 손에 든 무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음을, 적어도 4명의 형제들이 몸으로 손수 증명했다. 


‘겁쟁이.’


메르쿠리오의 목소리가 귓가에 일렁였다. 닥쳐. 살아있었다면 그렇게 대꾸했겠지. 하지만 지금 녀석은 마루 사이로 흘러내리는 핏덩이에 불과했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숨도 내쉬지 않은체 조용히 기다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속으로 기도했다. 


삐걱. 삐걱. 마침내 녀석이 빈 방에서 사람을 찾는 무의미한 행동에 싫증이 난 듯, 발소리가 멀어졌다. 하지만 난 움직이지 않았다. 분견대에 지원한 뒤 이뤄진 3개월간의 혹독한 훈련 속에서 가장 먼저 배운건,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적이 되었을때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건 인내뿐이라는 사실이었다. 


5분. 숨조차 요란스래 내쉬지 않고 기다렸다.


10분. 별빛 속에서 침묵한다.


15분. 


30분.


잠들지 않았다. 잠들지 못했다. 잠들수 없었다.


때를 기다렸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살아있지 않으면, 때가 와도 살아남지 못한다.


마침내 한시간쯤 지났을까. 추위가 숨쉬는 것조차 들리지 않던 그때, 폭음이 땅을 울렸다.


환청일리는 없었다. 피에 젖지 않은 땅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흙먼지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움직이지 않았다. 천둥이 친 직후가 고요한 법이었다. 숨을 더욱 더 죽였다. 허나 직감은 말하고 있었다. 때는-


다시 한번, 공기를 울리는 소음에 마루에 고인 핏물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까이 왔다고.


몸이 먼저 움직였는지, 아니면 움직여야한다고 머리가 판단한게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 먼저였든 생존을 위해 본능이 판단한 답은 단 한가지였다. 달아나야 한다. 


그렇게 마루 밖으로 빠져 나오자, 한때 심연으로 칠해져 있었던 텅 빈 마을을 선홍빛의 플레어가 마음대로 덧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붉은색 실루엣 끝에서 -쿠웅- 포음을 쏟아내는 인간 형상의 기계가 서있었다. 로마노, 아니면 빅토르 수사가 군용 강화복 ‘레버넌트’를 끌고 오는데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둘 다 운용 자격이 없을 터였지만, 지금 와서는 탓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보아라, 그들의 용기를!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괴생명체를 향해 용감히 총신을 겨누고 있지 않은가!


보아하니, ‘녀석’은 불시에 레버넌트의 대장갑탄을 얻어맞은듯, 조명탄을 향해 팔같은 촉수를 뻗어 얼굴을 가리며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녀석의 것으로 보이는 육편이 주위에 흩뿌려져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즉사시키기엔 부족하지만 적어도 소총보다는 충분히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듯 했다. 암, 그래야지. 나는 재빨리 둘이 보이는 건물의 벽면으로 달려가 몸을 엄폐했다. 쿵, 별안간 섬광이 빛나며 다시한번 건물들의 윤곽을 드러내 보였고, 얼굴을 가리던 ‘녀석’의 손이 터져나가 주위를 검게 색칠했다.


벽에 몸을 기대고, 나는 허상같았던, 하지만 지금이라면 어쩌면 달성가능한 목표를 향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생존이 아닌, 승리. 살아서 저 괴물을 물리치는, 승리 말이다. 머리가 재빨리 돌아가는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약해졌던 아드레날린이, 다시금 용솟음치며 사고를 회전시키는게 느껴졌다.


일단, ‘녀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건 내가 아닌 학자의 일이었다. 그보다는, 녀석이 무엇에 약한지 - 아니 정확하게는, 무엇에 약할법 한지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야 말로 나의 전문 아니겠는가. 약자를 위해 무기를 든 수사. 그리고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처음 이 마을에 도착했을때 발견한 녀석의 검붉은 살점은, 분명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 보였지만 그럼에도 피와 육체를 가진 존재임에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녀석은 덩치 큰 몸을 파쇄탄으로부터 보호하려 촉수를 희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녀석을 통째로 태워봄직하지 않는가. 나는 생각했다.


마을을 불태우는건 원래 선택지에 없었다. 당연했다. 우리는 연락이 끊긴 마을 주민을 찾아 온 것이지, 괴물을 처리하러 온게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 내 마을을 뒤지고 발견한게 ‘녀석’ 혼자라는 사실을 미루어보면, 마을 주민들이 이 곳에 - 혹은 이 세상에 - 없다고 추론하는건 합리적인 결과였다. 비조차 내리지 않는 매마른 가을, 불꽃이 한번 번지면 걷잡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녀석이 살아서 이 땅에 벗어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탕- 다시금 60mm 대장갑포가 탄환을 뱉어냈다. 몇발째였지? 순간 생각했다. 하나, 둘. 본능은 머리보다 빠르게 숫자를 세고 있었다. 재장전. 고개를 뻗어 보았다. 젠장. 젠장. 빈 탄창을 바닥에 떨어트리고서, 레버넌트는 허둥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녀석은 저 거대한 갑옷을 입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는 초짜에 불과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어떻게든 다시 총알을 채워넣을 방법을 찾을 수 있을테지만, 그 시간이 지금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녀석’은 벌써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온몸에 가해진 충격을 견디고서, 놈은 반격을 위해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재장전을 마치기 전에, 레버넌트는 검은 괴물의 촉수에 관통당할 터였다. 도망쳐. 본능이 속삭였다. ‘승리’라는 헛된 합리적 추론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본능이 속삭였다.


‘겁쟁이.’

 

메르쿠리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성경을 든 사제가 아니라 총을 든 수사가 된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다시금 떠올렸다. 지키기 위해서였음을. 그래. 비록 그 와중에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나는 지키는 자가 되리라고. 영웅이 되리라고.


백린으로 이루어진 조명탄의 안전핀을 빼어 던졌다. 안전 손잡이가 용수철의 힘으로 튕겨지는 진동이 왼손에 전해졌다. 하나, 둘, 숫자를 세었다. 동시에, 나는 권총을 뽑아들고 격발했다. 갑작스런 소음에 ‘녀석’은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셋, 넷, 환하게 웃으라고. 나는 힘차게 조명탄을 던졌다. 다섯. 시야가 환하게 불타올랐다. 눈이 멀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빛을 직시하지 마십시오. 어디선가 보았던 경고문이 떠올랐다. 우스웠다.


하지만 웃음이 입가에서 새오나기도 전에, 나는 거친 바람을 느꼈다. 그래. 마치 화살이 날아오는 것 같은. 혹은, 촉수라던가.



——-


Hero. 영웅을 뜻하는 이 단어의 어원은 ‘수호자’, ‘지키는 자’라는 뜻의 그리스 단어라는 이야기를, ‘학자’가 이야기 해 준 적 있음을 별안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단어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웃기는 소리. ‘성직자’는 머릿속으로 반론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스승도, 가족도, 이내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성직자’ 자신처럼. 환하게 빛나는 마을 속으로 활공해 들어가는 헬기의 창 밖에 보이는건, 영웅이었어야 하는 ‘성직자’가 지키지 못한 마을과 수사의 시체를 태우는 새하얀 불꽃 뿐이었다. 이내, ‘성직자’의 시야에 일렁이는 장작의 정중앙에서 성직자는 고통에 가득찬 기이한 비명을 내지르는 거대한 살덩이가 들어왔다.


“제4종 능력자로군.”


‘성직자’가 말했다. 세상이 변하고 나서, 저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죽고싶어도 죽을 수 없는 자들. 원하지 않은 능력을 얻고서 이를 제어조차 하지 못하고,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 자들. 혹은, 인간으로써 기능하지 못하는 자들.


하지만 ‘성직자’는 생각했다. 설령 인간 그 이상의 힘을 가지더라도, 그 힘을 원하는대로 다룰 수 있더라도, 그리하여 저런 ‘괴물’을 물리칠 수 있더라도, 늦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구하지 못해서는 소용이 없었다. 


“난기류 때문에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습니다!”


파일럿이 헤드셋을 통해 소리쳤다. 


“이정도면 충분해. 잠깐만 활공하면 되니까.”


‘성직자’는 그렇게 전하고는, 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헬기 안으로 세차게 불어닥쳤다. 기체가 흔들렸지만, 조종사의 능숙한 솜씨 덕인지, 이내 헬기는 안정을 되찾았다. 단단하게 한손으로 고정 손잡이를 붙잡은 ‘성직자’는, 자신이 바로 설 수 있다는 확신을 찾자마자 살덩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사제가 신자를 축복하듯.


일은 순식간에 마무리 되었다. 마을 주민과 분견대를 집어삼킨 ‘괴물’은, 한낱 벌거숭이의 인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인간은, 마치 날때와 같이 몸을 웅크리고서 고요히 불타올랐다. 흙에서 흙으로, 재에서 재로. 


누가 누굴 지킨단 말인가. ‘성직자’는 생각했다.


Writer

네크

네크

티-스토리 applejack.tistory.com

트위타 @nec092

게임 리뷰하는 팟캐스트 우물파는 게이머들의 리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comment (1)

네크
네크 작성자 18.10.11. 07:06
‘현대 TL 8+1 초능력 특수부대 전쟁물’...이라는 키워드를 트위터에서 받아서 쓴 단편입니다. ‘강철의 움막’하고 같은 세계관인걸로.. 다음 단편은 ‘전자기기’ 주제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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