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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흡대] 희망이 빛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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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참여 동의

 새벽이었다.

 캄캄한 땅에 떨어진 찬란한 달빛하며, 모질게 귀를 울리는 풀벌레의 울음소리는 누군가를 향한 장례식인 걸까. 세상에 깔린 그림자만큼이나 음울한 장송곡이 감돌았다. 짙은 풀냄새 속에 희미하게 섞인 비릿한 피비린내. 질질 끌려가는 고깃덩어리와 엉겨 붙는 흙.

 간신히 숨이 붙어있으나 떠나간 혼은 돌아오질 않는다. 인간의 피부는 저 하늘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는 햇볕처럼 밝지만, 죽음을 앞둔 노인은 산자락의 어둠처럼 시꺼멓게 변해갔다. 살아남기 위해 그토록 발버둥 쳤으면서. 결국 다가오는 밤을 막을 수 없듯, 죽음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참으로 애달픈 생애다.

 시체를 들고 돌아가는 일은 고역이었다. 인간들은 추수를 앞두고 겸허히 고개를 숙여 그들 신에게 감사기도를 올리지만,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배고픈 늑대가 산으로 올라가 토끼를 물고 내려오는, 그런 단순한 사냥일 뿐이었다.

 길과 산자락이 맞닿는 끝에는, 실타래 같은 빛이 흘러나오는 저택이 하나 있었다. 울창한 숲에 가려서 그 형태가 잘 보이지 않았기에, 오랜 시간 동안 인간들은 여기에 낡아빠진 저택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설령 알았다하더라도 그 인간은 곧바로 지하실에 묻혔으니 매우 당연한 말이었다.

 저택으로 들어가 반쯤 무너져 내린 문을 열고, 대리석 위에 핏자국을 그리고 있으니, 갑자기 발코니에서 한 여자가 뛰어내려왔다.

 그녀는 으레 인간들이 하듯, 푸른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차려입고 있었다. 잘 빗어 내린 붉은 머리카락에 이국에서 가져온 장미향수를 발랐는지 코를 찌르는 알싸한 향을 풍기며, 녀석은 내 앞에 멈춰 섰다.

 동생이었다.

 그리 반가운 재회는 아니었다. 나는 물러서라는 손짓을 보였지만, 그녀는 되레 길을 막아서고 소리쳤다. 새빨간 눈동자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 사람 내려놔.”

 “죽었어.” 할 수 있는 변명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살아 있잖아.”

 “죽었어.”

 시체를 끌고 무심히 지나치려했지만 동생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껄떡대며 피를 토해내는 시체를 붙잡더니, 나를 거칠게 밀쳐내었다. 그러고는 부랴부랴 찬장에서 이름 모를 약들을 찾아내 하나씩 시체의 입에 부어넣었다. 긴 노고 끝에 숨이 멎은 건지, 다시 돌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머지않아 인간은 조용히 잠들었다.

 동생이 경고했다.

 “사람들을 내버려둬.”

 그 말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감돌았다. ‘왜?’라는 의문이 들기보다는 충격에 먼저 다가왔다. 인간의 떨어져나간 목덜미처럼, 마음 한 켠 어딘가가 뚝 날아간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해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드디어 미쳤구나.”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사이였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다는 다른 동족까지도 그렇게 한다고들 했다. 종족 보존을 위해 한 부부가 남녀 한 쌍을 낳으면 그 둘은 함께 먹고, 함께 자라서, 그 끝엔 부부가 되고, 또 한 쌍의 자식을 남긴다. 더 늘어나지도 않고, 더 줄어들지도 않는. 그게 우리들의 삶이었다.

 좋든 싫든 나와 동생은 그런 운명이었다. 수백 년을 살아왔음에도 동생 이외의 동족을 본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래서 하나의 법처럼 정해진 규칙이었다. 부모님도, 선대도, 그 위에도. 다들 그렇게 핏줄에 자신을 담아 영생을 누리며 살아왔다.

 이 위대한 혈통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실로 무거운 짐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바로 지금일 때면, 더욱 그랬다.

 번식기가 되었음을 알리려는 듯 송곳니는 더욱 많은 먹이를 찾았다. 제법 인내심 있다고 생각했던 내 의지가 이렇게 가볍게 무너질 줄은, 스스로도 몰랐던 일이었다. 가끔 정신을 차려보면, 산길을 지나던 한 처녀의 목덜미를 물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칠칠맞게도 온몸을 피로 뒤집어쓰면서, 푸르고 탱탱한 동맥을 끊어 빨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동생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정말 무지하게도, 혹은 순수하게도. 나이가 같나 싶을 정도로 녀석은 태평했다. 분명 슬슬 때가 되었을 텐데. 동생은 내 침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빌어먹을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벗지도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단 한곳에만 있었다.

 “인간은 우리와 달라.” 검은 나이트가 새하얀 비숍을 잡아먹었다. “생김새만 닮았을 뿐. 그들은 원숭이에 가깝고, 우리는 신에 가까우니까.”

 내 말에 동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하얀 폰을 옮겨 검은 나이트를 잡았다.

 “체크.”

 나는 검은 룩을 옮겨 하얀 폰을 잡았다.

 “인간들이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은 착각이야. 외모가 닮았기 때문에 우리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정작 인간들은 원숭이와 닮았으면서, 원숭이와는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동생은 하얀 여왕을 옮겨 검은 룩을 잡았다.

 “체크.”

 나는 검은 왕을 옮겨 하얀 여왕을 잡았다.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마. 인간은 우리의 먹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들은 잠깐을 스쳐가는 존재이기에, 붙잡을 수도 없어. 손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 같은 운명이라고.”

 침묵이 흘렀다. 동생은 붉은 눈을 들어 나를 보더니, 마지막으로 말했다.

 “무승부네.”

 체스판 위에는 검은 왕과 하얀 왕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들에겐 생각이 있어.”

 “짐승들도 생각할 수 있지. 인간은 짐승이야.”

 “감정이 있어.”

 “짐승들도 말을 하지 못할 뿐, 감정이 있지. 인간은 짐승이야.”

 “그렇다면 인간과 짐승 그리고 우리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새하얀 손가락이 체스판을 톡톡 두들겼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무승부야.”


 동생은 이따금 뒷동산으로 올라가 꽃을 한 아름 꺾고는, 지하실에 있는 관짝에 뿌려놓곤 했다. 그렇게 부모님과 선대의 묘에 장미를 올려놓고 뭔가를 중얼거리는 걸 보면, 정신병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이 들곤 했다.

 하루는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들의 장례풍습이래. 이러면 그들 신이 내 기도를 듣고, 떠나간 영혼을 돌봐준다나 봐.”

 “꽃과 잿가루에 말을 하면 들어준다고?”

 “오빠도 부모님한테 할 말이 있으면 해봐.”

 당연하게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딱히 할 말도 없거니와, 인간들의 이상한 짓거리는 별로 따라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은 꾸준히 부모님의 묘를 찾아 장미를 올렸다. 그리고 인간들의 마을에 내려가 어린 양을 하나 사서는 그걸로 목을 축였다.

 그 밖의 다른 취미도 많이 생겼다. 옷을 자주 빨고, 화장을 해보기도 했다. 어차피 백색인 피부에 무얼 바르든 똑같건만 동생은 그 행동 자체에 만족을 하는 것 같았다. 근래에 그렇게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딱히 건드리지는 않았다. 저러다가 또 질리면 그만두겠지 하면서.

 

 언제부턴가, 동생은 인간들의 도시에 자주 내려가게 되었다.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음험한 동족이 있다 하더라도, 수십 년 동안 한 집에만 머무르며 사는 건 정말 따분하고 지루한 일이었다. 가끔은 인간들 속을 누비면서 새로 생겨난 길을 살펴두거나, 그들 문화를 살펴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도 제법 괜찮은 일이었다. 흔히 어린 인간들이 호기심에 개미집을 나뭇가지로 쑤셔보는 듯한, 그런 느낌으로.

 동면에서 깬 벌레들과 함께 차분히 집을 지키다보니 어느덧 눈꽃이 필 때쯤. 예정보다 동생이 늦는다는 것을 깨닫고 인간들의 도시로 나가보았다.

 그들의 발전은 놀라웠다. 건물들은 더욱 높고 튼튼하게 바뀌어 있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유행을 가져와 놀고 있었다. 성대한 축제는 밤을 물리칠 정도로 화려하고 밝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동생도 있었다.

 밭에서 일하는 아낙내들처럼 꾀죄죄한 옷을 입고, 인간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놀고 있었다. 수백 년이라는 긴 세월이 무색하게도, 늙지 않는 우리들이기에 언제나 젊은 모습을 간직한 그녀는 딱 그 인간들의 나이와 어울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웠기에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두기로 했다. 인간들이 가끔 사냥개와 먹이를 나눠먹으며 놀듯이, 그녀 역시 인간을 좋아하니까. 따분하게 집에 갇혀있기 보다는 이런 건강한 모습을 보는 게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축제가 끝나고, 밤이 되어 돌아갈 무렵. 나는 좁은 골목에서 한 여인과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림자 속에 파묻힌 그들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였고,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교미를 하려는 듯 거칠게 서로의 몸을 붙잡고 천쪼가리를 벗어던졌다.

 순간 그들의 교미행위가 궁금했던 게 과오였다. 나는 그들을 관찰하기 위해 좀 더 가까이 걸어갔고, 마침내 창백한 달빛 아래에 드러난 붉은 머리카락을 볼 수 있었다. 미칠듯하게 풍기는 장미향기와, 거기에 섞인 유혹적인 살 냄새. 건장한 남자의 핏줄이 튀어 오르고, 여인은 교성을 내뱉었다.

 배가 고파진 나는 그 둘을 맛보기 위해 골목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그러나 송곳니를 세우고 공기를 한 줌 들이마시니, 이상하게도 향긋한 피냄새는 남자쪽에서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간과 몸을 겹치고 있는 그 천박한 여인은, 동생이었다.


 그 뒤로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뛰지 않는 심장을 그러쥐면서 텅 빈 집을 내려다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 남자를 게걸스럽게 뜯어먹기 위해 수차례나 도시에 들어가 보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어디론가 멀리 떠났다고 했다. 배를 타고, 저 멀리 바다 끝까지.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있는 이국을 향해 갔다고 한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복수심에 인간들을 뜯어먹으면서도, 그들을 이용해 동생을 찾아다녔다. 집으로는 수많은 편지가 날아들었고, 그들은 정체를 모르는 어딘가의 백작이름을 써넣으며 나에게 종사했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결과를 기대하기엔 인간들의 나이는 너무나도 모자랐다. 고작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하나씩 소식이 끊기더니 이내 집에는 편지대신 뼛조각만 늘어났다.

 결국 떠오른 생각은 놀랍도록 차분한 이해였다. 그녀는 우리의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으러 갔을 뿐이었다. 좋게 보면 굴레를 벗어난 과감한 선택이고, 나쁘게 보면 종족 보존이라는 책임을 집어던지고 인간과 수간을 한,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 정도로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딱히 분노가 치밀지는 않았다. 뭔가 뺏겼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제아무리 운명을 거스른다 한들, 완전히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그건 순간적인 일탈이었다. 그녀는 결국 인간과의 사랑이 얼마나 짧은지를,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지를 깨달으면 다시 돌아올 운명이었다.

 그러니 언제나 그랬듯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정말로, 거짓말처럼 돌아왔다.

 하지만 그건 동생이 아니었다. 어느 노파와 함께 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존재가 하나 있었고, ‘그것’은 어린 소녀와 우리가 한없이 어릴 때 모습을 닮아있었다.

 겁에 질린 노파는 더듬거리며 나에게 자초지종을 늘여놓았다. 당신의 혈육에게 큰 사고가 났다. 이국에서 벌어진 전쟁에 남편이 징집되면서, 동생이 그를 찾으러 떠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가녀린 핏덩어리와 함께 전쟁터로 갈 수는 없었고, 결국 그녀는 나름 믿을만한, 유일한 혈육인 내게 딸아이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동생 부부는 그 마을에서 제법 인덕을 쌓아 신임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건 됐으니 그녀는 어찌되었냐고 물었다. 노파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뒤로는 소식이 전혀 없으니 알 길이 없다고 했다. 다만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할 뿐. 

 노파가 돌아가고 그 아이와 눈을 마주쳤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함이 찾아왔다. 사냥을 위해 새벽의 흐린 안개에 잠겨 들어가는 비참한 기분이었다.

 인간의 냄새를 풍기는 이것이 혈육이라고 주장하는 그 노파를 잡아먹었어야 했을까.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만약 그 더러운 입에서 ‘댁의 조카요’라는 말이 나왔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이 역겨운 생물은 내겐 그만큼의 존재였다. 틀림없이 먹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또 동생의 모습을 닮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아려왔다. 이제는 뛰지 않는 심장이 뛰었고, 그 진통이 햇빛을 똑바로 보는 것처럼 아파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거의 헐벗고 있는 그 아이에게 나는 당장 씻으라 소리쳤다. 그리고 이 집에서 당장 꺼지라고 외쳤다. 말귀도 못 알아먹는 젖먹이가 내 말을 들을 리는 없었다. 낯선 집에 들어와 창백하기 그지없는 남자가 소리를 지르니, 잔뜩 겁을 먹고 울음을 터트리기만 했다. 그 울음은 다음날까지 이어졌고, 그 동안 먹이도 먹지 못해 몰골은 더욱 처참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묵혀있던 상자를 열어 동생의 옛날 옷들을 살펴보았다. 내 셔츠와 바지는 모두 썩어 없어졌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드레스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입었던 것도 보관되어있었다. 기억과 추억은 항상 간직해야한다는 동생의 철칙이 새삼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이에게 입혀주었다. 냇가에 내려가 몸을 꼼꼼하게 씻겨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철없던 그 시절들이 문뜩 떠오르기도 했다.

 아이는 인간의 피를 타고나서 그들의 음식을 곧잘 먹을 줄 알았다. 이런 부분도 동생이 애지중지하던 서적에서 찾을 수 있었다. 생전 한 번 해본 적 없던 요리를 해보다가 다치기도 하고, 아이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소의 피를 먹여봤다가 잘못을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말을 가르치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걸고, 글을 가르치기 위해 먼지를 뒤집어 쓴 책들을 꺼내어 읽어주었다.

 권태롭게 흘러갔던 1년이, 정신없는 하루들로 가득 찼다.

 아바바만 할 줄 알았던 녀석은 벌써 키와 머리가 커지며, 나를 아빠라고 제대로 부르게 되었다. 밥을 달라든지, 낮이 되었다든지. 그런 간단한 말도 할 줄 알았다. 과연 동생의 핏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보다 훨씬 빠른 성장이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내려다보니, 어느덧 거기엔 조카가 앉아있었다. 여전히 먹이의 냄새를 풍겼지만 어딘가 묘하게 장미향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도 동생과 닮았기 때문인 걸까.

 언제부턴가 녀석을 키우면서 나는, 점점 사냥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인간들에게는 좋은 소식이겠으나, 나와 조카에게는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만약 또 번식기가 찾아와 허기지게 된다면, 가장 먼저 찾을 먹이가 무엇일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동생이 항상 그랬듯, 배가 고프지 않아도 양을 잡아마시게 되었다. 인간의 피에 비해 맛이 떨어지지만, 늘 버렸던 살코기를 이제는 요리를 해서 조카에게 먹일 수 있다는 점은 괜찮았다.

 그렇게 우리는 또 다시 바쁜 겨울을 지내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조카가 한 번도 인간을 만나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시작은 문뜩 날아온 질문에서 시작이 되었다.

 “아빠, 엄마는 어디 있어요?”

 그런 질문은 예전부터 있었다. 항상 잠시 어디 나갔다고 말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대답은 영구 불가능한 형편없는 답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없었다고 가르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잠깐 나갔어.”

 “엄마가 보고 싶어요……. 저도 따뜻한 품에 안겨보고 싶어요.”

 엄마라는 존재를 책으로만 보았기에 그녀는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야, 어느 동화책에도 아빠가 딸을 보살피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바깥을 한 번 보며, 금방이라도 올 것처럼 말을 덧붙이는 정도가 전부였다.

 “돌아오면 안아달라고 하자.”

 “그럼 아빠가 먼저 안아주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슴은 대리석처럼 차갑고 딱딱한 피부만 남아있었다. 조카에게는 불편한 자리였다. 그러나 아이는 허락도 없이 내게 올라와 가만히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었다. 놀랍도록 뜨거운 열이 인주처럼 내 가슴을 지졌다.

 “따뜻하다…….”

 그게 처음으로 내 가슴을 들은 인간의 평가였다. 나는 오랫동안 아이의 붉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숨이 닿을 만큼 이렇게 가까운데, 이상하게 먹이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보는 건 어떠니.”

 “친구들?”

 호기심 가득 찬 새빨간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인간들의 도시로 내려간 우리는 수많은 먹이들, 아니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늘 밝고 쾌활했다. 짧은 인생을 덧없이 살기에 항상 서로와 부대끼며 즐겁게 삶을 보냈다. 그 강렬한 인상은 조카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목마를 탄 아이는 내 어깨 위에서 행복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때의 동생처럼 해맑은 미소를 하고서.

 아빠를 부르고, 내가 찾아가면 저게 뭐냐고 묻고, 내가 조카를 찾으면 졸졸 따라오고.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인간들의 도시에 머물렀다. 

 그리고 또래들을 만났다. 역시 아이들끼리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조카는 빠르게 친구들을 만들었고, 이내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학교에 가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아이를 위해 나는 흔쾌히 학용품을 사주었다.


 어느 날이었다.

 도시 속에 흐르는 낯선 기류가 있었다. 그 웅성댐은 학교로 몰려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향해 몰려가고 있었다. 불길한 냄새가 났다. 나는 서둘러 조카를 찾기 위해 학교로 가보았다.

 그곳은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로 변해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느 한 소녀가 일으킨 사태였다. 인간 아이들이 저마다 피를 흘리며 끙끙 앓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조카가 새빨간 피를 묻히고 서있었다. 본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드디어 알았다는 듯, 얼빠진 표정과 함께.

 “흡혈귀다!”

 누군가가 소리친 이 외마디는 인간들에게 흥분이란 기름을 퍼부었다. 조카를 붙잡기 위해 청년들이 달려들었고, 나는 그들을 엄청난 힘으로 밀쳐내고 뛰어가고 있었다.

 “아, 아빠!”

 진정할 틈도 없었다. 조카를 붙잡은 나는 그대로 건물을 뛰어넘어 성벽 밖을 벗어났다. 그리고 아무도 쫒아올 수 없는 먼 거리를 뛰었다. 강을 넘어, 산으로 들어가고, 숲을 헤치고, 낡아빠진 그리운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모든 불을 껐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리는 조카의 어깨를 붙잡고 깊은 새벽이 올 때까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도록 다독여주었다.


 인간들의 냄새가 강렬히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들은 겁도 없이 산속을 누비며 우리를 찾아다녔다. 그들 신을 부르는 성직자나, 마늘을 주렁주렁 달아놓은 십자가, 은으로 만든 화살을 거머쥐고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모두 헛짓거리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들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었다.

 조카는 자신의 피부를 손톱으로 쥐어뜯으면서 괴로워했다. 물어뜯은 친구들의 고통을 헤아리려는 듯 계속해서 눈물과 피를 흘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위로해주었지만, 육체와 달리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녀석은 말수가 줄어들었고, 내게 무언가를 물어보려다가 말곤 했다. 집은 다시 음울함으로 가득 찼다.

 목욕을 위해 냇가로 갔던 새벽날, 조카는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누구였어요?”

 내가 대답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흡혈귀에요?”

 졸졸대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조용히 물을 떠서 아이의 머리에 부어주었다.

 “아빠는, 흡혈귀에요?”

 “…….”

 “그럼 난 왜 사람이에요?”

 추위에 떠는 건지, 아니면 흐느끼는 건지. 녀석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며 녀석은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조카를 우두커니 내려보다가, 꽉 끌어안았다. 더욱 세게. 이 작은 몸을 모두 감싸 안기 위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겨울의 새벽품은 지독하게 시렸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넌 엄마와 아빠의 딸이니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 도피생활의 끝은 결국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긴 세월이 지나 다시 번식기가 찾아왔고, 미친 듯이 피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짐승들을 잡아 피를 마셔보아도, 마치 대를 잇기 위한 마지막 기회임을 재촉하듯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몸은 더욱 많은 힘과, 신선하고 강렬한 피를 요구했다. 그 먹이는 인간이 제격이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딸과 거리를 두었다.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름 참을성을 길렀다고 생각했지만, 조용히 책을 보는 아이를 보는 순간 송곳니가 나오는 걸 보고 분명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였다.

 그 본능은 단지 식욕만이 아니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우리인 그녀의 몸에도 강렬한 매력을 느꼈다. 불과 몇 년 전이었더라면 아무 생각 없이 욕정을 취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이 지독한 운명의 굴레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할, 유일한 길이었다.

 “신분증을 구했어.”

 팻말 하나를 툭 던져주며, 나는 이빨을 감추었다. 딸이 물었다.

 “이게 뭐에요?”

 “그걸 들고 아래 도시로 가면 돼. 적힌 이름대로 살아갈 거다. 도와줄 사람은 많이 있으니 걱정하진 마라.”

 녀석은 신분증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아빠는 어쩌려고요.”

 “이대로 있겠지.”

 “안돼요.” 시체를 내려놓으라 단호히 말하던, 동생의 얼굴로 딸이 말했다.

 “같이 가요. 그러지 않으면 저도 여기 있겠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이미 참을 수 없는 수준까지 와있었다. 식욕과 정욕이 마구잡이로 뒤틀려 올라오며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가 되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딸의 손목을 낚아채고, 그대로 덮쳤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저항을 하다가, 마지막엔 울음을 터트렸다. 목덜미를 물려고 하던 그 때였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흐느낌 위에 있었다. 


 그 뒤로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밖에서 집을 지켰다. 딸이 떠날 준비를 마칠 때까지. 녀석은 떠나지 않겠다고 한사코 버텼지만 그 충격은 강렬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딸에게 빌었다. 제발 떠나달라고. 이 광기는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이것은 운명이라고 말했다. 덧없이 짧은 생을 위해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인간과 달리, 우리는 마땅히 운명에 따라야 했노라고.

 그 시작은 이제 이 자그마한 아이의 손에 달려있었다. 동생이 남긴 하나의 혈육이자, 인간과 우리들의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지워낼. 그 열쇠를 바로 이 사랑스러운 딸이 쥐고 있었다.

 딱 1년. 그것이 떨어져있기로 한 약속의 시간이었다.

 “약속이에요.”

 “그래.”

 드디어 마부가 도착하고, 딸은 짐을 챙겼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기 전에 따뜻하게 끌어안고 입맞춤을 해주었다. 반드시 1년 뒤에 보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녀를 웃는 얼굴로 보냈다.

 언덕을 너머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딸은 나를 계속 돌아보았다. 녀석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그걸 보는 나도 더 이상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

 수백 년간 흘리지 못한 모래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혈육을 그렇게, 나는 떠나보내야만 했다.


 1년은 너무 짧았다. 그렇다. 이 불타는 듯 한 몸은 서서히 찾아오는 임종을 의미했다.

 의식을 잃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고, 정신을 차리면 어느 컴컴한 숲에서 노루를 뜯어먹고 있었다.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어딘가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점점 뭔가가 사라져간다는 그 느낌은,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무엇을 하는지.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고, 누가 나인지 몰랐다. 본능대로만 떠도는 짐승들처럼, 나 역시 그런 미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느 새벽. 정말 불현 듯, 또렷이 의식이 돌아온 때가 있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았다. 그리고 또 의식을 잃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이 낡은 저택은 잡초가 무성했고, 거미줄이 성하게 쳐져있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의자에 앉은 나는 가만히 숨을 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단지 카펫만 있었을 뿐인데. 거기엔 장미향이 감돌았다. 처음에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가 그 그림자는 이내 작게 일그러지며 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참 신기한 모습이라 우두커니 지켜보니 두 사람이 같이 나타났다. 동생은 웃으며 내게 입맞춤을 하고, 딸은 내 가슴 위로 올라왔다. 이어서 부모님들도, 몇몇 사람들도 보였다. 모두 나를 좋은 얼굴로 보고 있었다.

 또 의식을 잃을 것 같았다. 나는 희미해져가는 그들을 모두 눈에 담았다. 이번에 눈을 감으면 언제 돌아올까. 아니, 어쩌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임종을 알고 있는 걸까. 딸이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

 “아빠, 가는 거예요?”

 나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을 똑바로 보았다.

 “그래.”

 할 말을 잃은 그녀는 고개를 푹 떨구고 가슴에 얼굴을 대었다.

 “가지 마요…….”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은 찾아오고 있었다. 서서히 느려지는 그 심장을 듣고 있는 듯, 울음과 함께 칭얼거렸다.

 “……사랑해요, 아빠.”

 끌어안았다. 그리고 대답해주었다.

 “나도 사랑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

 아무런 사람이 살지 않는다던 저택에 사람이 하나씩 오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화려한 장미를 틔운 근사한 저택으로 바뀌었다. 어느 아름다운 처자와, 청년이 산다는 유명한 집이었다. 그들은 딸과 아들을 얻고 매일을 행복하게 살았다. 도시 사람들은 그 산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부부를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할 수가 없었다.

 어느 신의 가호를 받은 것인지 그들은 모든 일이 잘 풀렸고, 불의의 사고 따위도 방해하지 못했다. 정말 그야말로 신이 지켜주고 있다는, 그런 소문이 돌 정도로 웃음이 끊이질 않는 가정이었다. 그들이 동물들을 사랑하며, 모든 이에게 자비로웠으니 신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정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소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덧 어엿한 여인이 된 그녀는 정원을 거닐며 장미에 물을 뿌려주었다. 그러다가 참으로 예쁜 흰 장미를 보았는지, 그곳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대었다.

 남편이 물었다.

 “준비되었어?”

 “응.”

 톡. 하고 장미를 떼어낸 그녀는 소중하게 손에 쥐고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뒤뜰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작은 묘비가 놓여있었다. 제단 위에 흰 장미를 올려놓은 여인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붉은 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기도를 마친 그녀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 아버지. 바라옵건대.” 

 그리고 그들이 염원했던 대로, 실천하기를 다짐했다.


 “이 세상에 희망이 빛나길.”

comment (1)

이억수 18.10.17. 16:20
잘 읽었습니다. 개연성은 다소 떨어지고 갈등도 별로 없지만 재밌네요. 잘 읽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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