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판프대] 적어도 나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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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00 Nov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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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errr
협업 참여 동의

一.


생활신조 서른여섯째,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침은 먹지 않는다. 딱히 인간연구가들의 연구 성과라든가, 특수한 종교적 신념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이유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좀 더 현실적인 이유에 기반하여 아침은 먹지 않도록 하고 있다.

요컨대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간혹 스스로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해서 먹는다 한들 결국 입으로 들어가는 건 전부 모양만 바뀐 현찰이기 마련. 먹지 않는다는 선택을 취함으로써 그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응당 절약함이 옳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건강을 찾아 식이요법의 사막에서 헤매기보단-, 당장의 한 푼을 아끼는 편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손해가 적음에는 틀림이 없으니까.

언제 어디서든 반드시 자기소개를 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 생활신조 서른여섯째. 서른여섯째다. 혹여라도 헷갈리지 않게 다시 한 번 문구를 점검하곤 커피에 적신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점심 무렵에는 근처 동사무소 강당에서 자그마한 강연회가 예정되어 있는지라, 아무래도 거창하게 벌려놓고 해먹을 판은 못 되었으니.

존나게 우습기도 하지.

남들 다 일하는 평일 점심시간에 시간을 때우기 위한 목적만으로 무료 강연이나 들으러 동사무소에 기어오는 30, 40대 아줌마들을 상대로 ‘현명하게 사는 법’에 대해 토로해야 하는 처지라. 가만 생각해보면 그네들이나 나나 이 세상에 공헌이라곤 하나 없이 그저 깨끗한 공기와 물을 축내기만 하는 처지임에는 다를 바가 하나 없는데, 정말이지 퍽이나 현명한 인간한테 현명함을 요청한다 싶긴 하다만. 그런들 가만 생각해보면 이래 고뇌를 떨 일도 아니었다. 사회를 대상으로 빌어먹는 버러지 흉내라도 내지 않으면 굶어죽는 게 내 천직이었으니까.

21세기의 작가란 대단히 가련한 생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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