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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소대] 그런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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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내 세계는 백색이었다.

 우연히 들른 미술실에서, 아마도 구석 어딘 가쯤에, 마치 붓질을 잊은 것처럼 스케치만 덩그러니 그려진 그림을 빤히 들여다본다면. 거기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런 흑선(黑線)과 백면(白面)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있다.

 실은 나도 잘 모르는 일이었다. 분명 기억 속의 나는 형형색색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살았던 것 같은데. 문뜩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여기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내가 그린 설계도 위를 걷는 것처럼, 이 백색도시는 모든 게 익숙했다.

 여기서는 생각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기억을 되살려 내 집을 다시 그려보거나 평소에 갖고 싶었던 정원도 그려보았다. 그것만 있으니 심심해서 먼지 쌓인 차고도 만들었다. 생각하면 만들어졌다. 분명…… 정말 신기한 일인데. 이상하게 신기함보다는 당연함이 먼저 느껴졌다.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내고 뒤를 돌아보면, 문뜩 말문이 막히곤 했다.

 광원은 있는데 해가 없다. 하늘도 없었다. 푸른 하늘이 없으니 당연히 구름도 없었고, 달과 별이 없으니 밤 또한 없었다. 이 백색의 세계는 무한함을 가지고 유한함을 잃어버린 듯 했다.

 그리고 난 혼자였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도시 끝까지 가면 나타날지도. 또 다른 사람이 나처럼 이 백색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도시의 끝에 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갈 생각이 없었다.

 그 끝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만약 아무것도 없다면, 이 광활한 백색 세계에 정녕 나 홀로라면. 그렇기에 나는 자리를 지켰다.



 어느 날, 나는 한 여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또래처럼 보이는 그 녀석은 어제 심심해서 만들어놓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바람이 없는데 찰랑이는 교복치마, 흔들리는 검은 머릿결. 모든 것이 멈춰버린 이 백색의 세계에, 그 녀석만은 눈부신 색과 찬란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놀라움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향해, 녀석이 돌아보았다.

 “안녕?”

 대답대신 손을 들어보였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 녀석은 내 세계에 스스로 찾아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기꺼이 잘해줄 필요가 있었다.

 소녀는 가볍게 뛰어내려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

 “찾았다니. 무얼?”

 “널.”

 “나를?”

 “응.”

 “나를 왜 찾아?”

 그러나 작은 웃음소리만 돌아왔다.



 이 백색세계가 낯설 소녀를 위해 도시를 구경시켜주었다.

 나는 쉴 새 없이 설명했다. 저 100층 빌딩은 이틀, 자세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틀 동안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 도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 만들다보니 뱀처럼 구불구불해졌다. 이 커다란 사람형상은 그냥 외로워서 만들어보았다. 이따금 저 녀석에게 말도 걸어보았다고, 주절주절 알려주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엄청 떠들었는데 마냥 쓸데없는 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소녀는 아주 밝은 웃음을 지으며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찬했다.

 그녀는 사람 없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며 말했다.

 “생각보다 성실하게 있었네. 좋은 모습이야.”

 “그럼 뭐, 잠만 자고 있을까?”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잠은 밤에 자야지.”

 “그런데 여긴 밤이 없잖아. 그러니까 일단 뭐라도 해본 거야.”

 피식 웃은 녀석은 소프트콘을 뽑아 나에게 불쑥 내밀었다.

 “네 소원은 뭐야?”

 “소원?”

 웬 뜬금없는 질문이람. 나는 피곤한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저기에 아파트 한 채 더 지어보는 게 소원이야. 옥상에서 보면 경치가 멋있을 거 같거든.”

 그러자 놀란 얼굴로 소녀가 물었다.

 “엥? 그게 소원?”

 “그래.”

 “해나 달이 보고 싶다, 잠을 자고 싶다. 그런 게 소원이 아니고?”

 “그게 무슨 소원이야. 필요 없어.”

 “이 도시가 좋다는 말이야?”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백색도시를 둘러보았다. 끔찍하도록 조용하지만, 그래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봐줄 만하잖아.”

 그녀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계속 이렇게만 있어도 괜찮다는 거야?”

 “응.”

 “이대로 있다가 죽어버려도?”

 나는 소녀를 돌아보았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뜬금없이 죽음을 논하기에는 우리 나이가 너무 이르지 않나. 그런 무거운 상상은 적어도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나서 하던가.

 그러나 일일이 핀잔을 주기는 귀찮았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죽었으면 해. 이 세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면 그 때 죽지 뭐. 그것도 소원으로 하자.”

 “…….”

 소녀는 말없이 아래를 내려 보았다. 그녀의 손에 아이스크림이 조금 남아있었다.



 우리는 강둑으로 가보았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강을 토대로 만든 길이었다. 소녀는 흐르지 않는 강물에 물수제비를 하려다가, 잘 안되자 투덜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여기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백색세계는 상식이라고 할 만한 개념이 없으니까 적응이 될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니 그건 내 상상에 의지한 허상이었다. 실은 마음만 먹으면 저 시멘트처럼 새하얗게 굳은 강물쯤이야 흐르게 할 수 있었다.

 소녀가 치마를 쓸어내리며 바닥에 앉았다. 그녀가 물었다.

 “도시 밖으로는 나가본 적 있어?”

 “없어.”

 “가볼 생각은?”

 “없어.”

 “왜? 여기 도시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다른 세계에 가보고 싶진 않아?”

 “굳이 도시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잖아. 이유가 생기면 나가겠지.”

 너무 딱딱하게 굴었던 걸까. 소녀는 침울하게 무릎을 끌어안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녀석은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있잖아.”

 “응.”

 “다른 사람들이 너를 무척 보고 싶어 하는데도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라……. 오히려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 백색세계에 다른 사람들이 있기나 할까? 그보다 그 사람들은 ‘어딘가’에만 있을 줄 알지, 왜 나를 찾으러 오지는 않는 걸까.

 나는 턱을 괴었다.

 “보고 싶어지면. 돌아가겠지.”

 그러자 화색이 돌아온 녀석이 손뼉을 짝 쳤다.

 “그럼 돌아가자!”

 “내가 왜?”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은 거 아니야?”

 “지금은 별로.”

 “에휴…….”

 한숨을 내쉰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쭉 폈다.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됐어. 이야기 안 해.”

 이거 내가 말실수를 했나본데. 미안함에 슬쩍 따라 일어나 녀석을 따라갔다. 좀 이러고 있다 보면 화가 풀리겠지.



 이 소녀가 내 세계에 등장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함께 다니게 되었다. 더 멋진 집을 지어보고, 더 근사한 빌딩을 지어보았다. 녀석은 생각보다 똑똑했다. 재치 있는 구조와 인테리어를 생각할 줄 알았다. 그렇게 완성된 건물은 그 어느 때보다 멋있었다. 

 그렇게 도시가 한층 더 눈부시게 발전했다.

 우리는 조용한 거리를 걸으며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녀석이 팔랑팔랑 걸으며 말했다.

 “멋있네! 여기에 밤이 있다면 야경도 근사할 것 같은데.”

 “그러게. 달이라도 만들어볼까.”

 “달을 만든다고?”

 “실은 생각해보고도 있었어. 왠지 자꾸 기억 속에 있는 개념들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렇게 호기롭게 말하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네가 도와주면 밤을 만드는 것쯤은 금방 할 수 있겠지.”

 소녀는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힘이 없었다. 이상한 표정이었다. 야경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은 걸까, 아니면 뭘까. 그녀의 속눈썹이 낮게 깔렸다.

 내가 물었다.

 “왜 그래? 평소답지 않게.”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러나 얼굴은 전혀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이건 좀 따져봐야할 필요가 있어서 집요하게 캐물어보았다.

 “말해봐.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생각해볼 테니까.”

 “그런 게 아니야.”

 “그럼 왜 울상인 거야? 꼭 내 동생 보는 것 같네.”

 그 말을 툭 뱉어놓고 나는 깜짝 놀라서 입을 가로막았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동생? 갑자기 동생이 왜 나오지? 나한테 동생도 있었나?

 그런데 그녀는 순순히 수긍했다.

 “응, 맞아. 동생이 그런 얼굴이라서. 나도 이런 모습인 거야.”

 “무슨 말이야?”

 소녀는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작게 흐르는 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들의 눈물이 나를 울게 만드니까. 그래서 울 수 밖에 없어…….”

 “다른 사람들?”

 황당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도 가지 않았다.

 “다시 말해봐. 다른 사람들이 왜 널 울리는 건데.”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야. 네가 사람들을 울리는 거고, 그 사람들이 나를 울리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괜찮아.”

 “내가 사람들을 슬프게 한다고?”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직도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저 백색세계에서만 살아갈 뿐인 내가, 왜, 대체, 무슨 이유로 사람들을 울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 죄 없는 순수한 소녀를 울리는 걸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세계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나는 서서히 무언가가 바뀌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가장 먼저 본 것은 내 집이 점점 짙은 색깔로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개미가 찍어놓은 점에 불과한 사소한 변화였지만, 이 백색뿐인 세계에서 그 검은색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였다.

 내가 말했다.

 “색이 변했어.”

 소녀가 대답했다.

 “앞으로도 조금씩 그럴 거야.”

 “너는 아는 거야?”

 “응.”

 그 말 그대로, 검은색은 점점 넓게 퍼지더니 어느덧 내 집을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그렇게 보니 한지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느낌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까지 집어삼키고, 차고도 사라졌다.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소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 무표정했다.

 “이게 도시를 다 뒤덮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차가운 목소리로 녀석이 대답했다.

 “네 소원이 이뤄져.”

 “내 소원이 이뤄진다고?”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를 보니 결코 좋은 의미로 말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물었다.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데.”

 “죽고 싶다며.”

 검은 원은 더욱 커져 놀이터까지 집어삼켰다. 그녀가 곧잘 놀던 그네가 지워졌다. 소녀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이 세계는 지워지고, 우리도 사라지겠지.”

 “좋은 일이 아니잖아 그거.”

 나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불길한 검은 원을 보고 있으니 눈이 멀 것 같았다. 그래서 소녀의 얇은 손목을 낚아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뛰어왔을까. 나는 문뜩 소녀의 무게가 가볍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조금씩 투명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등에 솟아난 두 개의 날개를.

 “뭐야 그거?”

 “날개.”

 “날개인 건 나도 알고 있지! 근데 네가 왜 그걸 달고 있어? 네가 무슨 천사야?”

 “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탁 찼다.

 “뭐라고?”

 “난 천사야. 네 수호천사.”

 “수호천사……?”

 설명이 필요한 나에게, 그녀는 친절히 말해주었다.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미안해. 너를 지켜야했는데,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러지 못했어. 그래도 마지막엔 너를 겨우 찾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슬픈 얼굴의 천사가 말했다.

 “네가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더 붙들어 놓을 수가 없어.”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왜인지 모르겠다.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만큼은 자명했다.

 그녀가 사라지지 않는, 마지막 기회.

 “제발 날 납득시켜줘. 실은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왜 이 답답한 세계에서 못 나가고 있는 건지! 왜 밖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천사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알고 싶어?”

 “그래! 제발 알려줘. 제발…….”

 소녀는 나를 품에 안았다. 따스하게.



 검은 원이 스멀스멀 도시를 뒤덮기 시작했다.

 애써 세웠던 100층 건물도, 구불구불한 길도, 흐르지 않는 강물도 지워져버렸다. 검은 원은 맥박 치듯 커졌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백색세계의 근원일걸까? 검은 원이 꿈틀댈 때마다 세계도 함께 요동쳤다. 쉴 새 없이 지진이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삑삑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어수선하기도 했다. 뭔가 다급한 기분이 들었다.

 잔잔함이 울린다. 심장소리였다.

 나는 무수한 조각 파편이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아주 깊은 곳 어딘가. 우연히 들른 머릿속에서, 아마도 구석 어딘가 쯤에, 마치 붓질을 잊은 것처럼 스케치만 덩그러니 그려진 기억을 빤히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거기에 있음을 깨달았다.

 도시 속으로 뛰어내리는 나의 모습. 야경을 향해 활강하는 나의 슬픈 얼굴.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세상 밑으로, 끝도 없이 추락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내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렇게 죽어가는 나를 끌어안은 천사. 나를 사랑해마지않는 수호천사가. 이 아픔 없는 무의식의 세계로 끌어준 그녀가.

 죽었어야할 심장을 마지막까지 뛰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녀가 속삭였다.

 “부모님도, 동생도, 모두 울고 있어. 희미한 맥박을 재는 기계 앞에서. 수많은 호스를 달고 있는 너의 마지막을 지키려고.”

 “아…….”

 나도 눈물이 나왔다. 너무나도 아팠다. 떨어지는 그 순간만큼이나.

 천사는 그 슬픔마저 끌어안으려는 듯 나를 꽉 끌어안았다.

 “한 번 더 물어봐도 돼?”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이 세계는 어둠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네 소원은 뭐야?”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살고 싶어. 사람들 곁으로 가고 싶어.”

 “…….”

 천사가 미소 지었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윽고 백색세계는 사라졌다.



 어수선함이 들렸다.

 눈부신 전등빛 사이로, 나는 오열을 들을 수 있었다. 뿌연 그림자가 선명히 밝혀지며 부모님과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의사는 라이트를 들고 와 내 눈을 비추더니 말했다.

 “정신이 듭니까? 든다면 눈을 깜빡여주세요.”

 눈을 깜빡이니 부모님은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의사가 말했다.

 “기적입니다.”



 기적.

 그렇다. 나는 그런 기적 속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비록 아직도 동생이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중환자에 불과하지만, 나는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최근 팔을 좀 자유롭게 쓰면서 글도 몇 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소설 몇 편도 쓰고, 내 이야기도 조금씩은 늘여놓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살 직전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위안을 얻고 갔다. 그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병실을 지나다보면, 병실이 생각보다 짙은 우윳빛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한다. 내가 본 그 백색세계는 정말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엄마! 오늘도 천사언니를 만났어!”

 내 옆자리의 조그만 아이는 엄마에게 꿈이야기를 마구 늘여놓았다. 그 아이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겨서, 지금은 무럭무럭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그러나 그 엄마는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이렇게 말한다.

 “천사가 어디 있다고 그래.”

 그거 참 감동 없는 사람이네.

 그래서 나는 애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가끔 다가가서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천사는 있어. 지금도 우리 옆에서 지켜주고 있거든.”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소리친다.

 “그쵸?”

 나에게도 소원이 하나 생겼다.

 이 세상 사람들이 천사를 믿어줬으면, 하는.


 그런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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