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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프롤로그 대전 닫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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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18 Nov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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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까치우
협업 참여 동의







(아마도)다섯 번째 판갤 프롤로그 대전이 종료되었습니다. 예상 밖의 성황리로 대회를 마칠 수 있는 까닭은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성원이 있은 덕입니다. 대회에 관심을 두어 주신 모든 분들께, 그리고 경소설회랑 운영자이신 노벨릭 님께 감사드리며 이와 함께 송구하다는 말씀도 같이 올립니다.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구구절절한 사과의 말보다는 잘못을 성토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니 여러분! 고소 안 할 테니 마음껏 저를 욕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십시오!


들어가기에 앞서 논란이 있던 글자수 판단 기준을 해명하겠습니다. 우선 자명한 제 불찰입니다. 각 글자수세기 프로그램 별로 산출 알고리듬이 다를 줄 몰랐습니다. 송구합니다..

논란없이 모두가 납득할 만한 기준으로는 원고지 셈법을 따름이 가장 엄밀하고 적합할 터이지만 원고지 셈법은 개행이나 숫자, 부호 등의 반각 표기 시 계산하기가 까다로운 관계로 경소설회랑 셈법을 따랐습니다. 전국민의 워드 프로그램 아래아 한글과 같은 셈법이므로 양해와 수용을 부탁드립니다.


출품작을 읽는 동안 대회 이름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작품들이 프롤로그의 정형과 완결성에 집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 설명이 미흡했던 탓이고, 무엇보다 제목의 프롤로그라는 말이 오해를 부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 재미있을 가능성이 충분한 글들이 분량제한에 쫓겨 졸속으로 맺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이에 반성하며 차회를 이어나갈 일이 있다면 프롤로그라는 말은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51편의 출품작을 읽는 일도 힘들긴 했는데 우승작을 선정하는 일은 그보다 더 짜증나더군요. 심사 기준과 재미 사이에서 갈등이 깊었습니다. 다섯 작품까지 줄이고 되게 고민했습니다. 거기서 더 줄일 수가 없었어요. 다른 심사노예 한 명만 구하고 할 걸 하는 후회를 많이 했는데, 결국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기보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5회 판프대 우승작은 「흉문(凶問)」입니다. 페트렌코 님 축하드립니다.


흉문은 재미있다고 말하기 무척 어려운 작품입니다. 이 글은 독자가 선입견 없이 진지한 자세로 독서를 할 경우에만 재미있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바꿔 말하자면 자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보거나 스포를 당하고 보면 재미가 없다가 아니라 아무 감흥이 없는 수준일 겁니다.

흉문은 첫문장으로 승부를 거는 글입니다. 첫문장을 읽고 웃으면 흉문이 이긴 것이고 다음 문장을 읽고 있으면 흉문이 패한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도 어느샌가 홀린듯이 빠져드는 그런 글이 아니며 오히려 읽은 이의 허점을 찌르고 당혹과 황당을 이용하는 꼼수에 가까운 글입니다.

그럼에도 우승작으로 흉문을 선정한 까닭은 간명합니다. 심사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출품작 중 흉문보다 재미있는 글이 없지 않았으나, 흉문보다 〈재미있어 보이는〉,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 〈재미있을 듯한〉 글은 없었습니다. 비록 우승작으로 선정한 본인도 흉문이 이 다음을 같은 수준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지만, 경험에서 비롯한 추측이 판단에 개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가벼이 여기거나 편견으로 대한다면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독 심사의 폐해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만, 그렇습니다. 우승하신 페트렌코 님께서는 원하시는 상금 수령 방법을 알려주시면 되겠습니다. 계좌 송금을 원하신다면 경소설회랑 쪽지로 은행, 계좌번호, 예금주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판프대 닫는 글 쓰는데 큰 도움이 된 82년생 김지영은 라노벨이다 그슨개 님과 판단대 심사평 쓰신 화룡 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면서.. 이하, 개별 감상입니다.




 


사람에게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사건은 그 자체로 궁금증을 일으킵니다. 도끼질. 그렇지만 풍진으로 단련된 현대인의 바다는 한 번의 도끼질로 깨지지 않을지도 몰라. 글은 지혜롭게 도끼질을 두 번 합니다. 지혜로움. 끝부분의 단적 요약으로 사유의 귀찮음도 치워버렸습니다. 어떤 글인지가 이를 데 없이 간단명료합니다. 모범. 시놉시스의 모범일까요.

이렇게 비유하면 카프카가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생존이 천박한 농담이 되었다잖아.

구태여 아쉬움을 말하자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대개 좆같은 일이라고 선언해놓고 이후 좆같은 일은 따로 있다는 주장이 나와, 이 부분에서 논리를 억지로 잇는다고 느꼈습니다.


388자로 요구분량 미달입니다.




말 안 듣는 게임 속 영웅



장르 문법에 충실한 글입니다. 클리셰 본연의 힘을 믿고 우직하게 클리셰를 밀어붙이는 점이 좋습니다. 하찮은 클리셰 비틀기보다 훨씬 낫습니다. 〈다음 편 보기〉를 누를 만 합니다. 다음 장을 펼쳐야 했다면 집어던지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겠죠. 흥미와 재미는 다르니까요. 재미는 없지만 재미있어 보이긴 합니다. 허나 재미의 한계 또한 선명히 보이고 이를 감추지 않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요 한때의 엔조이입니다.




나와 내 신부와 반쪽달.


저는 이런 형식의 글을 딱 넷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무엇이라 지칭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혹시 뭐라고 하는지 아시는 분이 계시면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네요. 이 형식으로 쓰인 다른 글도요. 산문이 말하는 문장의 호흡과 운문이 말하는 시행의 운율은 이음동의어일까요? 이 글은 내재율을 갖춘 운문일까요, 극단적으로 호흡한 산문일까요. 실험 수준의 기술이라기에는 완성되어 있습니다. 이슈마엘 때는 즐기기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언급을 피할 수가 없군요. 생각건대 이야기해야 할 대상은 굳어버린 제 관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때가 탄 걸까요. 우려와 거부감을 차치하고 나면 동경심이 남습니다. 제가 문장성애자라.. 개행과 부호 사용이 지독히 아름답습니다. 작가의 말은 댓글로 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여운을 끊어먹잖아요. 마지막 반점이 단락(문단보다 큰 문맥단위란 의미로)을 강조로 맺어버리는데 묘하게 완성된 느낌입니다. 이후에 두 문장만이라도 더 있었어도.. 이건 그냥 아쉬움 같네요. 저도 이런 문장 좀 구사해 봤으면 좋겠군요.

딱 하나 “네가 저번 편지에서”가 중의문이라는 점이 옥의 티입니다. “그녀” 단 두 글자로 일으킨 홍파와 같은 정서에 비하면 티끌과 같은 결점이지만 그리하여서 옥의 티입니다.

감상을 쓰다 보니 반쪽 달 one day가 읽고 싶어져 몇 년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반쪽 달 양장본은 저도 한 질 소장 중인데 서술처럼 표지가 정말 아름답죠. 보이밋걸 삽화란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나아가려면


주최자의 의도를 알아 준 몇 안 되는 글 중 재미있어 보이는 유이한 글입니다. 

“―.”로 휴지를 둔 것이 효과가 무척 좋습니다. 인간연구가라고 중의적 표현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의문입니다. 화자가 뚜렷이 보입니다. 분량과 결부된 1인칭의 한계로 어떤 감성의 글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화자로 미룰 때 괴로움과 신랄함이 어떤 글일지를 예상케 합니다. 863자에 1인칭 화자를 사용함으로써 화자의 소개를 겸해 글의 정서와 배경을 모두 제시해냈습니다. 입체성을 잡아내고 공감 가능한 화자를 조형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잘썼다고요. 틀림없이 우수한 작품, 이나,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방식은 분량 제약이 매우 심한 이번 대회에서는 불리한 방식입니다. 피 같은 글자 수를 소비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화자의 입담과 독백은 능란하게 독자를 이끌지만 할애라는 낱말이 비대하게 다가옵니다. 한 마디를 말하기 위해 한 마디 이상을 말해야 하는 글입니다.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보장된 재미입니다. 명백한 수준 이상이며 뒷부분이 재미가 없을 리가 없는 첫머리이지만, 출품작이 쉰하나에 달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다는 넓고 깊으며 홍파와 무풍이 동존하는 곳이었던 겁니다. 문장으로 찢어발기는 수도 있겠지만 화자는 촌철살인형이 아닌 달변형의 인물이라서, 정말 분투라고 할 수 있겠군요. 패인은 구도마저 지나쳐 구상의 부분에 기인합니다.

졌  잘  싸


빈집이 아니었던 겁니다.




호드릭


어째서 호드릭 테이치가 전지전능하다고 서술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지만 않았어도 한결 나았을 겁니다. 아니면 설명하는 문장 하나라도 끼워 넣었거나요. 억이란 단위를 쉽게 쓰니 글도 같이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진지합니다. 잠시간 감수성이 흐르나 별로 들어줄만 하지 못하다는 점이, 글 전체 분량의 절반 가까이를 소모하고도 그렇다는 점이 큰 타격입니다. 줄거리는 좋아보입니다. 과학에 짓눌려 환상이 스러져가는 현대에 그렘린과 세카이계가 교차하는 이야기의 형상이 머리를 스칩니다. 하지만 역시 분량의 대부분을 할당했음에도 마녀의 사유가 별달리 기능하는 바가 없다는 점이 아쉽군요.




도플갱어


버퍼링이 걸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의 반점은 빼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합니다. 제목과 프롤로그가 잘 연계되었습니다. 말씀처럼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과학소설이라면 있을 법한 프롤로그입니다. 그런데 재미는 어디갔나요?

불안한 서곡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행간을 이용해 분위기를 구축하거나 암시로써 긴장을 조성하거나, 몇몇 방식이 있었을 텐데 글에 정보만 들어있고 정서가 없어 아쉽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운을 뗀 소설로 「시귀」가 생각납니다. 시귀 역시 시작에 앞서 제목으로 줄거리를 고지하고 프롤로그와 연계하는 점까지는 비슷하지만, 연계하는 프롤로그에 차이가 있습니다. 시귀의 첫문장은 “마을은 죽음으로 포위되었다.”. 작품의 음산한 분위기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서정적인 문장이 추가되었더라면 더 좋았겠습니다. 아니면 텔레포트 묘사를 보다 전문적으로 서술해도 유사한 작용을 했을 것 같군요.




영웅


이런 글에 감상으로 쓰기 위해 미숙하다는 표현이 있는 거겠죠. 이야기란 유치한 것이지만 유치한 것을 유치하지 않게 꾸미는 일이 이야기꾼의 직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돌아가며 감출 것을 감추고 드러낼 것을 드러내며 절제할 때와 몰아칠 때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른바 소설쓰기의 기술이죠. 기술은 익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잘쓰는 사람은 천재일 뿐입니다. 그런 걸 보면 눈을 감는 편이 이롭습니다.

작품 전체를 소진하여 외쳐야 할 주제가 900자에 오롯이 담겨버렸단 감상입니다.




흉문(凶問)


영리합니다. 「폭발음이 들리자 옆자리에 비일상계 주인공 같은 그 녀석이 또 혀를 차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는 다음을 써야 했지만 이 대회는 다음이 필요 없죠. 솔직히 이건 치트키 친 겁니다. 졸렬하게 편법이나 쓰고 말이야. 어? 비겁한 새끼야.

유사 2인칭과 속어를 사용해 박진감을, 박진감이 아니라 이 정도면 내가 무너지기 전에 널 죽이겠다는 거죠. 이따위로 건곤일척을 시도할 줄을 몰랐습니다. 참 영리하게도 굴었어요. 어차피 글에 속어를 들일 거면 애미라고 해서 현재에 맞추지 굳이 어미를 쓸 이유가 있을까요. 어떻게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터졌다는 서술로 인해 글이 흔들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만약 그 구간을 깔끔하게 넘겼다면 흠잡을 데 없었을 겁니다. 저 또한 고민해 봐도 깔끔하게 넘기는 수가 안 떠오르지만 말입니다.

이걸 웃어버렸네.




양의 살해자


그래도 공적인 글이니까 비꼬거나 비웃을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호흡의 짜임새와 특정한 정서를 일으키기 위해 쓰인 서사입니다. 맥락과 개연성이 없습니다. 모호한 이야기요, 서사답지 못한데 소설보다는 가사에 가깝다고 봅니다. 흐릿하고 애달픈 데가 있는 것이 Moonlight Shadow가 떠오릅니다. 곡조도 어울려 보이고요. 모호한 이야기라고 표현했는데 이 서술은 이야기를 서술했다기보다는 감성을 서술했다고 해야 맞겠습니다. 소설을 소설로 만들어주는 〈〉가 한없이 없음에 가까워요.

소설이라 하면 소설이긴 한데 어쨌거나 저 같은 찐따가 읽기엔 정말 역겨운 글입니다. 사감이 과하다는 자각은 있지만 글에서 우러나오는 감성도 그렇고 무엇보다 글 너머의 감성이 싫군요.




 





한남형 이세계 프롤로그


절단신공이 입신지경이네요. 강렬한 주목입니다. 스스로를 원경으로 바라보며 관조하는 화자의 태도가 절제된 수사와 맞물려 감정선을 조절하고 긴장이 풀릴 즈음 묵직하게 꽂아넣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갓직히 이게 1화고 다음편 유료화 했어도 구매했다ㄹㅇ. 높임법에 주의해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향한 화자의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빼어났습니다. 과감하게 내지른 굵은체 사용이 빛나는 글입니다.

다만 입대를 너무 돌려 표현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첫문단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둘째 문단을 읽기 전까지 몰랐습니다. 입대를 생각하고 읽으면 어떤 장면을 서술했는지 알겠지만 첫문단만으로는 모호합니다. 곧바르게 뻗는 글이니 장면 서술도 에두르지 말고 직관적으로 쓰는 편이 좋았으리라 싶습니다.


1381자로 요구분량 초과입니다.




각성자 조져드립니다


예전에 메이플 하다 보면 리스 항구에다 검은 보따리 풀어 놓는 혐성이 꼭 있었죠. 여러분은 양학을 시전하는 고인물을 보고 계십니다.

장르 문법을 따르면서도 클리셰를 참신하게 풀어낸 점이 무척 좋습니다. 이게 하루 만에 착상이 가능한 소재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탁월한 발상입니다. 아마 평소에 구상하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분량에 비해 아주 많은 정보가 담겨있는데요. 이를 소화하기 위해 서술을 최소화하고 대화문에 설명을 때려 박았습니다. 쉬운 기술이 아닌데, 한 마디씩 재치있게 찔러넣어서 시시하지 않도록 써내는 실력이 대단합니다. 분량제한의 압박 속에서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가리는 판단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같은 방식을 시도한 출품작 중 월등한 격을 자랑합니다.

때문에 애석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판단대는 판타지 단편 대전이 아니고 판프대는 판타지 프롤로그 대회가 아닙니다. 판갤 단편 대전이고 판갤 프롤로그 대회죠. 다른 감상에는 장르 문법이라고 짤막하게 언급했지만 이 감상에서 부연하겠습니다. 장르 문법을 배제하였을 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글은 각성자가 무엇이며 회귀·인벤토리·게임 능력 등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전광판 숫자가 100을 찍으면 세계 종말이라는 부분 또한 행간에는 장르적 합의가 녹아 있고, 모르면 무슨 헛소리인지 개연성이 종범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글은 재미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글의 고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아닌 방법론과 윤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부연한 설명에는 보편성과 상대성 등 다양한 반박이 가능하고, 따라서 이는 복수 심사와 토의를 통해 객관성을 담보하여야 옳지만, 안타깝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여기가 아닙니다.




이미 끝난 이야기


조선의 으뜸 연재 플랫폼 카 카 오 페 이 지에 가면 「용사의 옆집에 산다는 것」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읽어 보면 되겠습니다.

경박한 화자가 지닌 가장 큰 단점은 감정선을 조절하는 능력이 형편없다는 점입니다. 비속어 사용을 꺼리는 이유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한번 비속어를 사용하고 나면 감정 표현의 기준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하면 안 되는 건 아닌데 안 하는 게 좋다 하는 그거죠. 장편임이 거의 분명하고 위기 절정 결말이 남아있는데 이걸 킬딸에 미쳐 궁을 쓰네 에혀 킬딸충쉑..

대회에 올라온 글 중 「흉문」과 같은 방식을 취했습니다. 흉문과 차이점은 완결성이 없고, 장편임을 제시하며, 비교적 사렸다는 점입니다. 공통점은 무너질 것이 뻔히 보인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어라, 어쩐지 감상 기준이 갑자기 확 높아진 것 같다고요? 저런.. 가련하게도.




강호초출


세르반테스는 낭만이 사라진 시대를 가리키며 낭만이 살아 숨쉰다고 선언했습니다. 비등점을 넘은 풍자는 정말로 낭만이 그리워지게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메카니컬을 가리키며 강호라고 선언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요?

제가 말하기엔 깊고 무겁고 능력과 자격이 없군요. 취소. 아무튼.

발상이 좋았습니다. 그런 게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세상에 협과 의라는 잣대를 들이밀면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글이 나올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읽어보니 딱히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네요. 사이보그 와패니즈 B급(할리우드란 뜻) 동영상 같습니다. 전달하고 싶은 정보도 많고 정서도 깊은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실패했습니다. 써내고 싶은 것 중 써낼 수 있는 것을 냉정하게 판단해 골라내었다면 더 좋았으리라 봅니다.



오니쨩!!!


착상만으로 글이 써지는 게 아니듯 발상을 서술한다고 재미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작가님께서 소설의 분위기, 인물간 관계, 전개 등을 〈사용해〉 재미있는 발상을 개념글로 보내시는 것처럼 재미가 있으려면 작가님의 발상을 뒷받침하는 배경이 있어야 합니다. 발상만 씻어다가 무대 위에 올린다고 관중이 환호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클리셰를 비트는 참신함이라는 표현을 많이들 씁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참신함을 새롭고 산뜻한 것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신선하다와 동일한 기본의미로 올려놓았죠. 국어원 시발롬덜.. 아무튼 새로움은 낯설게 하기와, 신선함은 재치와 연결지을 수 있습니다. 재치. 천부적인 것이죠. 새로움은 그럭저럭 되니까 이것만 있으면 되겠습니다.



졌잘싸


화자가, 아니, 3인칭이므로 정확히 말하면 서술자가― 편파해설을 매우 싸구려처럼 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재미가 없습니다. 오월의 대창비가 내리듯 흐느껴 운다는 문장이 유독 출중한데 이런 문장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대창비가 뭔가요?



불신자의 순례길


‘뭐야 이 열화판 일인연극은’ 하고 봤더니.. 어째서 기적의 세대는 감성도 서로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을까요. 짧은 분량 내에 1인칭 화자도 글의 정서도 복선도 잘 드러내고 잘 깔았습니다. 무난하게 재미있네요.

찌르기가 얕았단 뜻입니다.

이 글 붙잡고 꽤 오래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문장이 간결해서 그런 듯싶지는 않고 문장이 부족해서 그런 듯한데요. 말 그대로 어떤 문장이 더 들어가야 하는데 빠진 느낌. 뭐가 있어야 하는데 없네요. 뭘까요 그게?


1137자로 요구분량 초과입니다.




달달한 건 대역죄


광기 어디갔습니까? 벅빅이 아직 제 가슴 속에 살아있습니다.

정보만 있고 다른 게 없습니다. 딱히 광기가 아니더라도 뭔가 내용이 있어야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풍자도 안 되고요.




속죄


기묘하네요.

예술로서 글이 지닌 특징은 직관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에는 독해라는 과정이 끼어있습니다. 독해가 글에 끼치는 영향은 특징을 넘어 본질이라 해도 될 정도로 막대한 비중이고, 이런 탓인지 의도를 전달할 때 글은 다른 제재들…… 수단들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거 같아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다루는 방식이고 이를 얼마나 의식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재능이 차이나는 게 아닌가 싶고요. 이런 연유로 저는 글의 백미가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무슨 모호한 헛소리인가. 분명하게 설명하자면

‘이지현 걔 처분해.’

잊을 만하면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로부터 고작 열 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움켜쥔 오른손에 힘을 더했다. 권총의 냉기가 선명하다.

상층부의 지시였다. 너 지현이 데리고 잠깐 수원 가 있어라. 말투를 보아하니 뭔가 일이 틀어진 모양이었다.

이런 식으로 전달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작문을 지지리도 못하는 탓에 몽땅 단문으로 바꿨고 흐름도 좀 끊기지만 찰떡 같이 차이점을 파악해 주었으면 좋겠네요. 말로 설명을 못 하겠어서 이런 굉장히 싫어하는 방식을 쓴 건데, 어떻게 설명을 해보자면 “선명하게 느껴졌다.” 처럼 뭐라고 해야 해.. 독자를 직결시키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글이라는 툴은 자동으로 그게 돼요.

이와 별개로 서술문이 되게 특이한데 번역투 같기도 하고 하지만 대화문은 멀쩡한 거 보면 번역투 뇌절은 아닌 거 같단 말입니다. 그러면 의도적으로 번역투를 사용한단 말인가? 하지만 어째서?? 존경하는 작가가 배수아인가??? 그럼 대화문은????

아무튼 신비로운 글입니다.




내 전설급 아이템들 착용불가


별로임



아니 좀

이 정도 날로 사람의 마음을 벨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사람을 얕보지 마십시오




생존일기


제 능력을 벗어난 글이라 뭐라 적을 말이 없습니다. 재미가 없는 건 당연한 거고 왜 재미가 없냐면 긴장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인데 어떻게 써야 동공을 확장하고 근육의 수축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저는 방법을 모릅니다. 뭘 해야 하죠? 초조한 심리라도 묘사해야 하나? 곧이곧게 그랬다가는 오히려 지루할 수가 있는데 그게 맞을까요? 아껴두었던 마지막 장조림 캔을 땄다 이런 문장은 좀 싸구려 같잖아요?

어떤 글들은 굽은 허리를 곧게 펴고 숨을 들이쉬게 합니다. 그게 정말 어렵긴 하죠.

날짜나 식량이나 좀 딴지 걸고 싶은 부분이 몇몇 있긴 하지만 안 중요하니까 이쯤하겠습니다.




존의 일생


http://streamz.kr/?contents=novel&title=108&no=16705#title_108

너무 쪼렙이군요. 이 정도는 되어야죠.




이세계에서 살아남기


라한대였으면 우승했을 글입니다. 번뜩이는 발상을 완성도 높게 완결한 점을 라한대였으면 높게 샀을 테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글이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이번 대회가 라한대였다면 우승은 무리였겠죠. 이세계가 들어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는데 왜 아까운 분량을 소모했는지 의문이군요. 그 분량이 있었으면 더 재미있을 수 있었을 텐데요. 발상을 빼면 별달리 좋은 점이 없습니다. 혹시 판프대가 판타지 프롤로그 대회인 줄 아셨던 건가요? 만약 그런 거였다면, 쟌넨 난독데시타.




나 빼고 다 병신


삼백 명이 개 한 마리를 어떻게 봅니까? 무대 같은 걸 설치하나요? 병 형신이야? 개행은 자체로 강조의 기능이 있기에 라노벨 쓰는 오타쿠는 대개 개행을 좋아합니다. 그네들은 강조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따라서 우리는 라노벨 쓰는 오타쿠는 글러먹었다 → 라노벨 쓰는 오타쿠는 개행을 좋아한다 → 개행을 좋아하면 글러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욕망을 억누르고 냉철한 판단으로 절제된 강조를 할 때 강조가 비로소 세실조차 베는 예리함을 지니게 됩니다. 글알못이면서 이런 소리를 하자니 부끄럽군요. 하지만 글알못도 “―일 대 삼백.” 같은 서술이 오타쿠 같음은 아니까 몇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첫부분을 보면 공포에 빠뜨리는 방법을 말하다가 케르베로스와 대치하며 공포에 떠는 사람으로 휙 넘어갑니다. 단적인 예인데, 이런 식으로 행간이 너무 넓은 탓에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는 하는데 감정선이 못 따라갑니다. 계속 툭툭 끊기죠. 그러니까 재미가 없고 쓰고 보니까 뭔가 강렬한 맛이 없고 이 때문에 개행을 남발해 강렬함을 심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넘겨짚어 봅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를 일이지만요.




트위터는 나쁘다.


남자가되가지구서쪼잔하게900자맞춘다고띄어쓰기를안하느니남자답게900자넘기고존나재밋게쓰겟습니다내일아니니쉽게말하는거맞고요그런다싶은글이몇있긴했는데이건정말대놓고그러네요당당한건남자다운듯.

글이 암컷 암컷(암드컷칩이라는뜻)거려서 사내다움을 언급해 보았습니다. 이번 대회에 출품된 글 중 탁월하게 개연성이 종범한 글입니다. 읽는 저도 판갤러라 TS면 조건반사로 침샘이 고이면서 집중력이 상승하는데 TS버프를 받고도 별 재미는 없군요. 개연성이 심각하게 없습니다. TS, 뉴스, 트위터, 유부녀, 쓰리섬, 아내방에들어올땐노크하랬잔아ㅡㅡ까지 그냥 그래서 그렇게 전개됩니다. 소설 쓸 때 지양해야 할 것이 있듯 감상을 쓸 때는 개연성과 문체 운운이 양대 지양거리인데 첫타자가 여기서 나오는군요.




수양딸 조교일지


쓰레기 같은 이야기긴 하지만 글이 쓰레기는 아닙니다. 더 읽어보면 재미있을 수도 있을 듯한데 더 읽어보는 대회가 아니라서. 살다 보면 못해서 혼나는 게 아니라 잘하지 못해서 혼나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 경우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싶습니다. 어디가 걸리고 아쉽고 한 부분은 없는데 고저 없는 평이함이 단조로움과 무난함에 관하였네요. 매료해야 하는 대회인데 말입니다. 덧글을 보면 본인도 그렇다는 점을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럼에도 올렸다는 말은 그런 거잖아요? 만 오천 원 벌자고 글 쓴 게 아니니까. 저도 이해하니까 뭐라도 더 쓰고 싶은데 쓸 말이 없네요.




후타리다케노 히미츠


다른 건 그렇다 쳐도 갓명곡 시크릿 베이스와 갓명작 눈마새를 끌고 오다니 팬으로서 용서할 수 없군요. 명사 선택이 괜찮았는데 동사까지 섬세하게 사용했다면 더 좋았겠습니다. 평소에는 김스렉이니 미애노니 욕하는 판갤인데 왜 이렇게 관종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테러


숫총각이 작업 건다고 나서면 이런 느낌일지 모르겠습니다. 의도가 빤히 보여서 유치하네요. 의도를 드러내 보이는 것과 빤히 보이는 것은 차이가 납니다. 가식을 떨 때는 봐줄 만하게 떨어야 합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에 남들 다 하는 거짓말이어도 적당히 수준은 맞춰야지 안 그러면 또 욕 먹기 마련이잖아요. 작위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하네요. 대사보다는 서술의 탓이 더 커 보이는데 차라리 서술을 싹 밀어 최소한으로 남기고 대화문 위주로 끌어나갔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면 자연스러운 척을 안 하는 편이 나을 수 있죠.


1926자로 요구분량 초과입니다. 이런 식으로, 어차피 분량을 초과할 거니까 대놓고 그딴 거 신경 안 쓴다는 태도를 취하면 적어도 작위적이지는 않습니다.




이세계 황립악단 공연을 보러 갔는데 익숙한 멜로디가 들리는 거임





추석 차례상 -두명의 조리사, 결전의 요리대전-


참관자가 외숙은 안 오신다고 말하면 주인공과 참관자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죠? 와 이걸 잘도 우겨넣었네 소리가 육성으로 나왔습니다. 출품작 중 불신자의 순례길과 같은 감성인데 더 낫군요. 분량제한 때문에 여기 저기 이가 빠진 모양새여도 표현하고 싶은 감성은 잘 잡아냈습니다. 알짜배기는 챙겼다 이거예요. 분량이 부족해 설명할 수 없는 배경은 제목에 박아넣은 점도 고식적이지만 좋은 임기응변입니다. 발상도 이야기 하고 싶은데, 제시어가 추석이었다면 탁월한 발상으로 발상점수 오억점을 드렸을 테지만 제시어 그딴 거 없는 대회라 그냥 달빠가또네요. 달까는 정언명령이므로 감점 드립니다. 그리운 감성이었어요. 배틀 오브 코리아 재독하러 갑니다.




누와르 삼킨 용사님


견의불위 무용야라지만 군자보구 십년불만이라는 말도 있음을 보면, 그럼 십 년 뒤에 행하면 어쨌든 행했으니까 된다 이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주최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몇 안 되는 출품작입니다. 저는 마음을 빼앗는 첫머리를 원했는데, 정작 올라온 글은 대부분이 졷발이심수지(발기가되면마음도따라간다는뜻)거나 마음을 빼앗기 위한 첫머리라 섭섭하던 차였는데 이 글을 읽으니 반갑지 아니할 수 없군요. 오직 마음을 빼앗을 만한 수준이 안 된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9등급이 3등급을 찍기는 쉽지만 3등급이 1등급을 찍기는 어렵듯 글도 다르지 않습니다. 난이도가 급격하게 어려워지는 지점이 있는데 글이 바로 이 지점인 듯해요. 이 위로는 구도의 영역입니다. 제 능력범위를 벗어나기에 쓸 말이 없습니다. 저라면 갈아엎고 다시 쓰기를 택하겠습니다.




100억짜리 F급 용사


발상 3/10

연출 1/10

문장 5/10

흥미 3

감성 1

종합랭크 E+


감상이 이러면 어때 보일까요? 정말 거만하고 무성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여기까진 장르 문법이 그러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정신을 잃었다는 마무리는 열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척 불쾌한 방식입니다. 발상은 자랑하고 싶은데 글을 쓰기는 싫다는 거죠. 글이 소설로 기능하려면 저 부분에서 ~그리하였다 꼴이 아닌 그럼에도~ 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는 품이 드니까 그리하였다로 끝내버린 건데, 제가 이와 비슷한 이유로 파모똥 님을 싫어합니다만 이건 파모똥 님만도 못하군요. 다음이 있든 없든 일을 벌였으면 조루로라도 매듭을 지어야죠. 가령 마지막을 나는. 으로 끝내기만 했어도 졸렬하다고 욕을 했으면 했지 이런 식으로 매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2047, 목포시 동명로 45번길 ‘홍어특구’


아쉬움이 깊습니다. 제약 없이 충분한 분량을 배분해 감정선을 조절했으면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재미난 엽편이 되었을 작품입니다. 첫문단의 선언과 이어지는 세부묘사를 사용한 비유가 훌륭합니다. 김철곤식 벽난로 위의 모닝스타가 훌륭합니다. 예스러운 문장이 훌륭합니다. 이걸 분량이 발목을 잡았네요. 짧은 길이 탓에 충분히 뜸을 들이지 못해 무척 아깝습니다.

김철곤식을 부연하자면, 김철곤은 모닝스타를 꺼내듭니다. 그리고 벽난로에 올린 뒤 벽난로를 달굽니다. 독자는 벽난로가 모닝스타에 부서질 것임을 알면서도 따뜻한 벽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죠. 글에서는 고기와 냄비가 벽난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는 manga에서 저 xx에 찔리면.. 어떻게 될까.. 하면서 모순적이게도 이끌리는 그런 것과 비슷하죠.

정말 아까운 글입니다. 그런데 살짝.. 서술에서만 쓰이는 홍어란 비유를 글을 무너뜨려가며 굳이 대화문으로 끌고 오는 모습을 보자면.. 합리적 의심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실 홍어 새끼라는 욕이 하고 싶었을 뿐이 아닐까?




이세계 용사 특급 배송


클리셰 비틀기 면에서는 이번 대회에서 각성자 조져드립니다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듯싶습니다. 매끄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다 읽었을 때 얼굴에 웃음기가 감돌지 않는다는 게 아쉬운 점인데 이는 재치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남는 분량을 활용해 사이사이 재치를 찔러넣었다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참신한 발상과 능숙한 전개가 있지만 입담이 좀 부족한 느낌이네요. 흥미롭긴 한데 글이 밋밋하고 재미가 (별로)없습니다. 첫부분과 끝부분은 좋았는데  그 사이를 잇는 과정이 단조로운 것이 흠입니다.




아칼리 연예계 생존기


롤을 안 해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절망이 담긴 경구인데, 제게는 신선한 해석이네요. 신선한 해석에 증발한 감정선입니다. 정서도 없고요. 정보만 보이고 내용이 흐릿합니다. 처음의 한 문장으로 배경을 깔끔하게 설명하는 점은 좋은데, 전개가 너무 빠르고 분량은 짧습니다. 지구를 떠나는 부분까지는 따라갈 수 있지만 직후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선언으로 이어질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느닷없이 제목을 외치며 뚝 끊기는 느낌입니다. 이후 이야기가 더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러지도 않고요. 반쯤은 못 이어 나가겠어서 팽개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냥 문장이 멋져서 써보고 싶었다면 맥빠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되겠다.





9서클 여동생의 해골병이 되었다


야설이었으면 꼴렸을 텐데

아니면 여동생에 좀 분량을 소비했어도 라노벨로서 괜찮았을 수도 있고요. 무미건조하게 서사를 나열하니 감흥이 없네요.




던전 전문 상인





sss급 표절 작가


프로다운 프롤로그이긴 합니다. 프로답다는 점이 흠입니다. 프로가 쓰는 글 따위에 재미가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937자로 요구분량 초과입니다.




영원히 쾌락 속에서


수많은 경소설이 재미가 없습니다. 수많은 경소설에는 재미가 없는 수만 가지 까닭이 있는데, 그 중 수많은 노잼 경소설에서 공통적으로 꼽는 재미없는 까닭은 바로 가벼움을 다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거워야 할 때 가벼웠다는 말입니다. 가벼워야 할 때는 무거웠다는 말입니다. 무거움? 가벼움? 라이트 노벨의 라이트?


라이트 노벨은 어디까지 라이트해야 하고 어떻게 라이트해야 할까.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라이트 노벨을 쓸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라노벨은 가볍다는 성질을 지녔습니다. 소설에는 전개가 있고 위기가 있고 절정이 있으며 때문에 적절한 부분에서 적절한 높낮이로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라노벨이 지닌 가볍다는 성질이 이를 까다롭게 합니다. 모든 〈출판된〉 라이트 노벨은 이 라노벨적 가벼움과 소설의 흐름에 따른 경중을 (적어도 출판사가 판단하기에)수준 이상으로 조화시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 수준 이상인지는 출판사, 독자, 작가, 키모오타 개개인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렇더라도 이것이 〈출판된〉 라노벨의 정의에 가장 근접한 설명임은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많은 국산 라노벨이 질타받았던 부분도 이 점에 있습니다. 조선인이 쓴 라노벨은 일본인이 쓴 라노벨에 비해 진지함과 경쾌함 사이를 매끄럽게 오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시간이 흘러도 논의되지 못한 채로 굳어져, 작금에 와서는 이딴 불쏘시개를 어떻게 옹호할 수 있느냐는 소리와 라노벨에는 라노벨의 수준과 특징을 고려한 잣대handicap로 감평해야 한단 소리가 함께 나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글의 문제도 이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씹덕의 망상과 현실적 사유가 라노벨다움을 외치며 방황하는 것이 제가 읽은 글의 현주소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미소녀 후배와 단절된 공간에서 한없는 섹스라이프를 누리는 일이 씹덕적으로 매우 바람직하다고 여기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망상은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나왔기에 상식과 현실을 배제하고 소설을 쓰기란 불가능합니다. 망상은 언젠가 현실에 따라잡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이 지점에 있습니다. 아무리 꼴린다지만 살인을 저지른 년과 사귀는 것이 옳은 행위인가?(공의 경계), 내가 아무리 아싸가 옳다고 주장한들 아싸짓을 계속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역내청), 우리는 언젠가 일상으로 현실로 돌아가 어른이 될 수밖에 없잖은가?(이야기 시리즈)의 예처럼 이러한 환상성, 라이트노벨에 담긴 뜨억적 망상은 현실의 상식이라는 반박과 필연적 충돌을 일으킵니다. 머리통이 좁아지도록 비대해진 망상이 머리속을 뛰쳐나와 현실과 마주하는 일. 이 충돌점에서 발생하는 것이 라노벨의 진지함이며 글을 관통하는 〈무엇〉입니다. 선생님 글에 담긴 영원함이 주는 권태와 절망의 정서 또한 이러한 망상을 현실의 시선에서 사유한 산물일 터입니다. 이 부분에 치중하십시오. 바라건대, 어떻게 일상 파트를 전개하다가 캐릭 간의 갈등을 일으킬까 어떻게 세 줄 전에는 섹드립을 치고 지금은 멋있는 대사를 치게 할까 따위를 고민하지 마십시오. 라노벨을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글에 녹여내는 방법을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쉬운 신파를 향해 걷지 마시고 주제의식을 향해 걸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쓰신 글은 같잖은 만담이나 늘어놓다가 비애에 휩싸이며 폼을 잡을 뿐입니다. 이런 글을 써 놓고 라노벨이란 원래 이러하니 라노벨적 잣대로 감상해 달라는 소리를 늘어놓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마금은 많이 팔리고 역내청도 많이 팔립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글들은 철부지적 추억으로 남을 글입니다. 그런 글을 읽고 자란 이들이 늙어 추억에 잠긴 채 어마금은 대단했다, 역내청은 대단했다 말할 때 말하는 이들의 표정 밑에는 비릿한 막 한 겹이 깔려 있을 겁니다.

언젠가 선생님 글을 읽어 볼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KAL


게임 시나리오 같습니다. 단조로운 서사의 나열은 어떠한 긴장이나 흥미를 일으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구상한 얼개의 사이사이에 살과 근육을 채워 넣고 서사를 서술하는 문장과 정서를 서술하는 문장이 함께하였다면 보다 재미있는 글이었을 터입니다. 설계만큼이나 마감도 중요합니다. 구조도 중요하고 짜임새도 중요하지만 구두와 구두약의 쓰임새가 다르듯 서술과 연출 또한 글의 중요한 성분입니다. 휑덩그렁한 벌판에 발상이 홀로 우뚝하여 그 점이 아쉽습니다.




코, 아니 거시기


고골이 네 친구야??

아니 잘썼네요. 가장 중요한 부분인 거시기가 사라지는 연출이 9%쯤 부족해서 아쉽지만 그 외엔 딱히 할 말이 없게 잘썼습니다. 문장도 좋고 흥미롭고 재미도 있네요. 분량제한 탓에 서술을 잘라낸 듯한 부분(하지만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따위의)이 있는 듯도 싶지만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잘썼습니다. 좋은 의미로 제 능력범위를 초과해서 좋다 좋다 좋무새짓 말고는 쓸 게 없군요. 예의바른 아이로 키웠다. 이런 게 바로 재치인데. 파출소에 신고한다는 문장이 작용하는 바가 깊습니다. 리얼리즘에 기반을 두건 판타지에 기반을 두건 소설은 그 소설 내에서만 성립하는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는 글 전면에 나타나지 않지만 비가시적인, 어떤 특유의 이치? 법칙? 원리? 같은 것을 갖추는데.. 아니 뭔가 이런 걸 지칭하는 어휘가 있을 듯한데 모르겠네요. 아무튼 뭐 그런 게 있는데 그걸 파출소가 자연스럽게 해내는 것 같다는 말이 하고 싶었어요. 잘쓴 글은 해야 하지만 어려운 일들은 되게 손쉽게, 당연하다는 듯이 슥 해내고 지나간단 말이죠.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


제목이 너무 짧군요. 본문에서 못다한 설명을 하려면 제목을 100자는 써야 하지 않았을까요. 혹 이번 대회에 제목을 무식하게 길게 쓰는 꼼수를 부리는 작품이 나오진 않을까 했는데 다행인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배경을 행간에 묻어 따로 서술하지 않아도 자연히 드러나도록 시도했습니다만 실패했다고 봅니다. 행간이 너무 넓습니다. 행간이 넓으니 이해가 어렴풋함에 그칩니다. 서정적인 문장으로 감정선은 고조되나 이야기가 흐릿하게 보이고 감정선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공감이 어렵고 몰입이 안 됩니다. 희극에는 몰입 없이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비극은 몰입 없이 공감도 이입도 불가합니다.




빗속의 신데렐라


어라, 혹시? 하며 조성해 놓은 반쯤의 확신을 끝부분에서 확인사살 하는 것이 글에 담긴 재미의 정수입니다. 암시를 주고 이를 사실로 확인해 줌으로써 독자는 추측이 옳았다는 쾌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세심함이 엿보이는 글입니다. 첫문단의 세 문장은 글의 정서를 깔끔하게 드러내는데요. 바닥에 던져둔, 구겨진, 싸늘하고 끈적한 따위의 수식언과 비라는 소재 선택이 돋보입니다. 읽으면서 감탄했습니다. 이렇게 조성한, 어딘가 차가운 글의 정서는 끝부분의 독백에 담긴 서늘함과 맞물려 효과를 증폭합니다. 양념 치는 게 쉬운 듯 쉬운 게 아니라니까요. 글에는 도량형이 없어서 계량이 불가능하니.

처녀와 소녀라는 낱말을 교묘히 교차하여 다른 인상을 꾸며내는데, 기술로서는 훌륭하지만 글 내적으로는 모순입니다. 의도적인 서술은 나쁜 방식이 아니지만 모순에 위화감이 듭니다.

글의 첫머리로서야 괜찮지만 다른 많은 출품작과 마찬가지로 한 방 꽂아넣겠다는 방식인데 일격사를 띄우기에는 날 길이가 짧았네요. 재미있는 글임은 틀림없습니다.




양아치 검성


네놈이라는 표현을 쓰는 글을 읽을 때면 그걸 쓴 사람을 가두고 그 부분만 반복해서 읽어 보게 시키고 싶어집니다. 미개한 현대 조선어에 적당한 표현이 없는 건 이해하지만 적당한 표현을 써내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 아니던가요. 어렵고 두려운 일임은 알지만.. 역시 소비부타가 최고예요.

아슬아슬했는데 결국 죽었습니다. SKT라든가 드래곤 라자 같은, 이러한 경박함은 경쾌함과는 구별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쾌하면서 경박할 수도 있고 저도 차이를 말하라면 명료하게 말할 자신은 없지만 경박함은 적어도 글을 싸구려로 만듭니다. 표르자나 맨대헬처럼 이러한 저질스러움을 무기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표르자는 특이한 경우고 표르자의 경우에도 이런 저질스러움이 특유의 재미를 주긴 해도 결국 더 큰 재미를 가로막는 장해로 기능해서요. 맨대헬? 어차피 맨대헬은 신분이 비천해서 하늘에 못 닿으니 괜찮습니다.

SKT는 저질스러움을 유치함과 연결했고 드래곤 라자는 저질스러움을 진지충ㄴ 과몰입ㄴ를 미리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했으며 맨대헬은 저질스런 황당함으로 웃음을 뽑아냅니다. 이 글은 아마 맨대헬 쪽에 가깝다 싶고 제가 뭐라고 방향을 논하겠습니까만 재치가 짧은 점이 흠입니다.


1150자로 요구분량 초과입니다.





서술이 이상한 부분이 많습니다. 탑은 마을 외곽에 있는데 알려진 건 화자가 어릴 적이고, 하층부가 좁고 상층부는 넓고, 마을 바깥에 협곡이 있고 탑을 벽돌로 쌓았고 화자는 벽돌이 흔하다고 말하고.. 앞서 썼던 감상 중 소설에는 소설 내에서만 성립하는 세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도 그런 세계가 있을 터이고 그 세계에선 저런 것이 자연이고 당연이겠지만 독자는 글 바깥 세계, 현실이 있기때문에 글은 스스로 글 내부의 세계와 글 외부의 세계를 매개하여야 합니다. 매개도라 해야 하냐.. 이런 걸 뭐라 해 이게 핍진성인가? 아무튼 그게 부족하네요. 저 중 몇 가지는 복선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복선은 부드럽게 수용이 이뤄지므로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화자는 차가운 시선으로 꿈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꿈을 좇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괴리가 글을 재미없게 만드는 동시에 왜일까 하고 흥미를 끌어내서 신기해요. 화자가 글에 끼치는 피해가 막대한데요. 냉소적이면서 또 슬퍼하는 어조로 이야기를 서술하기 때문에 서정적이고 감정선은 높아졌지만 공감이 가고 이입이 되지는 않습니다. 재미가 없는 까닭입니다. 빵도가 케이건 드라카를 화자로 삼지 않은 이유가 이에 있겠죠.

요컨대 전반적으로 좀 찐다 같아요. 왠지 막 그런 느낌이 은은하게 들어요.




그만 좀 귀환해라


정말 슬픈 글입니다.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검은 보따리 양학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가서 본 대회 출품작 「각성자 조져드립니다.」를 읽고 옵니다..




섹스


글이 통째로 진부하고 깊이가 얕습니다. 이 글도 몇 안 되는 주최자가 원했던 방식의 글인데 〈재미있어 보이는〉이 안 됩니다. 안타깝습니다.

평이한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제시한 사유에 집중하게 하는 방식인 듯한데, 잘 구사했고 효과도 뛰어나지만 이런 방식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말했다시피 심도 깊은 사유도 아닙니다. 황홀함을 연기하는 시간을 마찬가지로 풀어서 서술했다면 불쾌한 재미라도 있을 법 한데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분량을 지키느라 그러지 못했다기엔 분량도 초과해서, 음…… 뭘까요? 제시하는 사유가 사유다보니 공격성이나 비꼼이 있을 법도 한데 그것도 최소한으로 절제한 느낌입니다. 꼭 퇴고하면서 재미가 있을 만한 부분은 모조리 잘라낸 글 같아요. 이후 이야기가 나아감에 따라 심도도 깊어지고 재미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글이 좀 첫머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이 내용은 중간에 있어야 할 거 같은데요.


954자로 요구분량 초과입니다.




수정


혀가 너무 깁니다. 촌철살인이 필요한데 청산유수를 시도합니다. 혀가 너무 길다는 표현이 글의 거의 모든 단점을 함축해서 긴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뭣보다 제목이 미리니름이라 재미가 없습니다. 스포 자제해 진자. 글의 장점은




세계를 지키는 건 마왕이었다.


대화문이 살짝, 살짝만 더 뛰어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글입니다. “쳐야한다니,” 와 “어떻게 보면” 사이를 이어주는 문장, 구전되는 용사와 현실은 다르다는 주장에 구전 상의 용사도 현실적으로 행동한다는 근거, 재치가 부족한 마왕의 대사 등이 글의 재미를 갉아먹습니다. 또한 연극조의 마왕 대사는 극의 대사에 요구되는, 사람의 마음에 닿을 만큼 풍부한 감정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용사와 마왕이 야한 일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된다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고 저 또한 관심이 많습니다만 소소한 단점이 쌓여 글의 재미를 수준 이하로 떨어뜨렸습니다. 이런 결점을 제하면 대화만으로 자연스레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더해 장르 문법― 배경지식까지 어느 정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애당초 900자 제한 내에 풀어내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 문장은 글을 맺어버리는 문장으로 왜 마지막 문장이 들어갔는지 의문입니다. 마지막 문장이 없었으면 분량초과도 아니었을 터입니다. 강렬함이 부족해서 그리했을 것이라 짐작이 가긴 합니다만 이런 방식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성급함으로 말미암아 글의 폭을 좁히고, 글을 던지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comment (5)

Rogia
Rogia 18.11.10. 01:35
수고하셨습니다!
olbersia 18.11.10. 01:49
수고하셨읍니다
네크
네크 네크 18.11.10. 16:59
고생하셨습니다! 참여할까 했는데 안하길 잘했네요(...
이억수 18.11.14. 01:42
고생하셨습니다. 재밌는 글을 써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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