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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뭐하세요!(가제) 1 - 1. 봄의 시작에는 항상 벚잎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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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38 Dec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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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Project_So
협업 참여 동의





 단지 한 장소에 덩그러니 서 있다.
 그림자가 드리운 이 대지 위에 곧게 선 것은 보잘것없는 나의 육체. 그럼에도 바람은 불어온다. 그 바람은 기다란 나의 머리칼을 사정없이 뒤흔든다.
 나부끼는 머리카락에 눈을 가늘게 뜨면, 한순간 만에 하늘은 밤하늘……아니, 아마 처음부터 밤하늘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찬 바람이 멎어, 서서히 눈을 뜨는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하나의 찬란한 광경. 하나의 그림과 같은 벚나무들의 일렬이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한참 뒤의, 검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하늘에도 불구하고 휘황찬란 빛나는 것은 벚잎의 무리. 달에게 반사되는 빛 따위도 아닌, 벚꽃 자신으로부터 발하고 있는 눈부신 광채.
 그것을 뇌리에 새기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감동하지 않는다. 박수의 갈채를 보내지도 않는다. 되레 내 자신의 신체는 시신경에 집중될 법한 힘을 확실하게 풀어버린다.
 놀랍지 않다. 감동스럽지 않다. 박수는커녕 몸에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항상 한유진이란 인간은 벚꽃을 보고서는 눈을 살며시 감아버리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리라.
 아름다운 경관을 품고 있는 언덕의 고갯길. 가로수로 하여금, 이 대지에 아름답게 뿌리박힌 벚나무의 일렬은 이미 내 심상에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광경이었다.
 연분홍의 벚──
 아니, 가을의 향취를 듬뿍 머금어 금빛으로 피어버린 벚꽃의 일렬은, 쉬이 볼 수 없는 절경임에도 불구하고, 나 한유진이라는 인간의 복부 전체에 쥐어짜는 듯한 아픔을 선사하는 통곡의 절경이었다.

 세찬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그 바람은 정말로 가을과 같이,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세차고 선선한 바람이었다고 표현 할 수 있으리라.
 허나 자연이 보내오는 그 바람에도 불구하고, 약하게 매달린 벚잎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 벚나무의 무리는 가지 하나조차 흔들지 않는다.
 마치 액자 속에……캔버스 속에 염료로 하여금 박제된 회화와 같았다.
 누군가가 그려낸 감동의 일품과도 같은───그것은 미동도 하지 않는 벚나무임이 확실하지만, 마치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과시하듯 휘황찬란한 빛을 나부꼈다.



◇◆◇◆◇◆◇◆◇◆◇



     ─쿵
     “으웨에?!”
     “일어났냐.
 잠에 취했던 눈을 천천히 뜰 채비도 없이 수면기를 잃어버린 나는 책상에 엎어져서 잠든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기상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살색의 손가락. 그리고 물기가 조금 어려 있는 유리잔이었다. 아마 쿵 하는 소리의 진원이라 해도 괜찮겠……
 아니, 이게 아니지.
     “잠들어 버려서 미안하긴 하지만 상냥하게 깨워줘.”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할 말은 있구만. 하여간……커피를 마신 직후에 잘 줄 누가 알았겠냐구요.”
 내 소소한 요구에 툴툴거리듯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컵에 어려 있던 물기를 손에서 탈탈 털고 있는 정면의 여장부는 권혜율. 내 대학교 동기이자 현재 애니메이션 제작 조별 과제의 조장이었다.
 잠을 깨려 테이블 주위에 빙 둘러앉은 녀석들의 얼굴을 천천히 돌아 봤다. 혜율의 좌측에 어깨를 움츠린 체 소동물처럼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대는, 보랏빛 흑발을 길게 내려놓은 동기 신유라.
 혜율의 오른쪽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노란 포니테일을 몸과 같이 흔들고 있는 유다은이 있다……여전히 존재감이 없……
     ─휘익
     “아윽.”
 다은의 자리에서부터 날아온 작은 지우개가 내 머리를 맞고 바닥으로 튕겨 들어갔다. 지우개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자, 심술이 옅게 낀 표정을 짓는 다은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 없는 폭력이 왜 저를 덮친 건지 여쭤봐도 괜찮을런지요?”
     “뭔가 굉장히 무례한 생각을 한 것 같이 보였거든. 순간.”
     “……….”
 다은의 아무렇지도 않은 초능력자 발언에 조용히 몸을 떨다 보면, 떨어진 지우개를 주운 팔로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장신의 남성이 있었다.
     “뭐야, 두 사람 서로에 대한 것이라면 뭐든 아는 그런 관계ㅇ……”
     ─퍽
     “나불거린 건 전태훈이잖아! 왜 나에게 연필이 날아오는 건데!”
     “아, 미안미안. 조준 미스.”
 인위적인 미소로 손사래를 치는 다은. 목소리를 크게 낸 나는 유리잔 안에 녹아내린 얼음물을 빨대로 마셨다. 녹은 얼음물에서 극소량 남아있던 아메리카노가 섞인 듯한 미묘한 커피향이 맴돌았다.
     “그리고 이 거적때기 치워!”
     “에이, 좋으면서.”
 능청스레 어깨동무 한 팔을 치운 장신의 남성은 전태훈. 이제는 말하면 입 아플 애니메이션과 동기이자, 초등학교 시절부터 쭉 붙어 다녔던 소꿉친구였다.
 씻었을 것이 분명한 손날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거무튀튀한 흑연의 흔적과 몸에서 나는 미묘한 목탄의 향기로 보아,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었다.
     “……그럴 것이 분명한데, 이 녀석이 아직 셀 작업이 가장 뒤쳐졌다고?”
     “아니 그것이 말입니다 한유진님……으엑.”
 어느새 태훈의 옆까지 와 그 녀석의 목덜미에 손을 올린 혜율은 그저 온화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아니, 고했다.
     “타임 테이블에 적힌 대로라면 이틀 후에 할당해 가신 원화 작업을 끝내셔야 하는 것 알고 계시죠? 잃어버리신 게 아니길 간절히~ 빕니다!!”
     “으아아아아아악!!”
 짧고 강렬하게 소리를 지른 태훈과 짧고 강렬한 악력을 보여준 혜율. 그들이 만든 참상에 눈치를 보며 카페 사장님의 눈치를 봤지만, 카페 사장님은 그저 온화한 미소만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실 뿐이었다.
 물론 우리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눈치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이 위험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기에.
 고개를 돌리다 보면 나를 바라보던 유라와 눈이 맞아, 본능적으로 시선을 숨겼다. 수 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으리라.
 시야의 외각에서 보이는 그녀의 표정은……난처한 듯, 슬픈 표정이었다고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아까까지 장황하게 말한 타임 테이블 말이지만, 저 녀석이 자고 있었으므로 간단하게 한 번만 정리해서 말해 줄게.”
 혜율은 그렇게 고하고는 나에게 눈치를 주었다. 할 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나 한유진은 단지 사과하듯 그녀의 말에 집중하는 태도만을 보였다.
     “유라와 다은이는 진즉에 기초 원화 작업 완료. 전부 준수한 퀄리티가 내가 말할 것 따윈 없고 남은 것은 전태훈. 저 녀석뿐.”
     “예 감사합니다~”
     “좀 다물어봐! ……그리고 유진. 의뢰했던 세부 콘티와 나레이션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진행됐어?”
     “나레이션 시나리오는 글을 쓰는 내 사촌에게 의뢰했던 게 일주일 전. 그러니 이제 곧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아, 세부 콘티는 대부분 정리됐지만 나레이션과 같이 재생되어야 임팩트가 있을 부분은 따로 작성할 거야.”
     “작업 예상 시간은?”
     “36시간.”
     “좋아. 일처리가 깔끔해서 아주 마음에 드는군. 저 녀석도 너만큼만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우리 두 사람은 레몬 아이스티를 마시는 태훈을 흘겨보며 말했다.
     “여하튼 저 녀석의 콘티가 끝나고도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이 걸릴 테니 배경이랑……가능하면 히로인 디자인까지 부탁해. 어떤 배경이 쓰일지에 대해서는 내가 오늘 안에 정리해서 알려줄게.”
     “뭐, 일단 맡겨는 둬.”
     “아……! 그! 할, 할 말이 있어!”
 나의 정리와 다은의 기합이 끝나기 무섭게 치고 들어온 것은 장발의 흑색 머리카락이었다. 땋아 묶여 내려간 옆머리 끝에 흔들리는 액세서리가 눈에 띄었다.
 모두 의외인 듯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유라는 부자연스레 끊긴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이번 애니메이션의 배경 작업은 내가 전부 할게. 물론! 셀 작업도 열심히 할 거야.”
 그 말에 다은과 혜율 두 사람은 입을 작게 열곤 수 초 동안 가만히 굳어 있었다. 그리고 옆자리에 않은 태훈과 나는 단지 입을 다문 채 평소와 같이 있었다.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따윈 아니다. 평소에 자기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유라로써는 꽤 용기를 낸 발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배경을 전부 담당한다.> 라는 안건.
 내가 놀라지 않은 것은, 그녀가 배경을 전부 담당해도 퀄리티 면으로나 시간 면으로 고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에 있었다. 태훈도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란 확고한 생각 또한 내 전신을 지배했다.
 그런 나와 태훈을 스윽 훑어보는 혜율은 미묘한 눈빛을 하면서도 한숨을 푹 쉬었다. 안도와 불안이 반반씩 섞인 것 같은, 나에게는 익숙한 한숨의 방법이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응! 열심히 할게!”
 무언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던 다은이 입에 머금었던 음료를 삼키곤 유라를 향해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응. 반드시 괜찮을 거야.”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응.”
 다은도 보기 드문 유라의 모습에 수긍을 해 버리고 만다. 미량 남아있던 몸의 긴장을, 입을 다문 한숨과 함께 체내에서 빼내는 나를 태훈이 실실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자, 그러면 타임 테이블 작성도 끝났고, 음료도 다 마셨으니 해산!”
     “어 잠깐! 나 아직 아이스티 시킨 거 덜 마셨는데!”
     “닥쳐 전태훈! 알아서 처리해!”
     “너무 해!”

 
 
◇◆◇◆◇◆◇◆◇◆◇      
 

 

 조금씩 피어나는 벚의 향기가 나는 것만 같은 대학로, 하늘이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떠오르는 석양. 점점 어두워질 것을 경고하듯 붉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하늘 아래를 걸었다.
 모두가 재학 중인 성주 대학교, 그 기숙사는 여태 앉아있던 카페와는 도보로 불과 10분 거리 안에 있었다.
 둘이서 사이좋게 방을 나눠 쓰는 다은과 혜율은 나와 유라를 방치한 채 대학교 정문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태훈은 아직도 카페 안에 남아 아이스티를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이지만.
 결국 남겨진 유라와 나는 우연찮게 방향이 같다 하여……인기척이 드문 수암골의 골목을 걷고 있다.
 성주시에서 유명한 볼거리로 유명한 수암골은 평일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꽤 소란스러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아래 골목을 걷는 우리는 인기척도 없고 5분째 아무런 대화도 없었지만 말이다.
     “지금 하는 일은 좀 익숙해졌어?”
     “응? 아, 어.”
 말없이 거리를 걸을 뿐이던, 쭉 그럴 것 같던 유라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유라는 항상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편이었다. 그걸 생각하고 있노라니, 대학교 초년생 시절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건넨 것을 떠올렸다. 그녀가 혼자 떨어져 밥을 먹고 있을 때 먼저 말이라는 공을 건넨 건 내 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 말해도 좋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녀를 확실히 피하고 있으니만큼 말이다.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해 둘 수 있을 정도였다.
     “유진아?”
     “……미안, 아까 뭐라고 했었지?”    
     “으응, 괜찮아. 학교 수위 일 이야기였어. 좀 익숙해졌어?”
 유라는 개의치 않는 듯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직 학기 초였지? 벌써 애들과의 관계를 물어보는 건 좀 성미가 급한 질문일까?”
     “앞으로도 물어볼 일 없을 테니 안심해.”
 유라의 말마따나 학기 초인 것이다. 이제 막 한 달이 지난 참인 것이다.
 그 아이들도 겨우 새로 사귄 친구들과 적응을 하고 있을 것이고 자기 학년 담임의 얼굴이 누구누구인지, 자기 담임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겨우 이해를 하고 있을 시점이다.
 되래 한낱 학교 수위 아저씨의 존재를 눈치챈다는 사실이 이상한 것이다. 물론 그 이상한 일이 현재진행형이란 것이 문제이지만.
     “흐음……”
 목으로 목소리를 울리며, 코로 한숨을 쉬었다. 유라는 그걸 보고 작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쉽진 않겠네.”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곤 생각하고 있어.”
     “싫으면 대답 안 해줘도 괜찮지만, 그런 일자리는 어떻게 찾은 거야?”
     “별 재미도 없는 사연이야. 어머니의 지인분이 연락을 주셨어. 얼굴은 뵌 적 없지만.”
 이른바 혈연학연지연 중 지연에 속했다.
 어쩌다 저런 평범치 않은 자리에 날 추천해 주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했다.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군필자에 그 학교 졸업생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그 어머니의 지인이 교육계에서 높은 분이 아니실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국내에선 나름 유명하셨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어머니셨으니 그런 연줄이 아예 없으리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
     “힘든 거……라기 보다, 먼저 수위 일이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어.”
     “당연하지. 나도 몰랐으니까. 그래도 할만해. 학생들 동선이랑 겹치지 않게 움직이면서 교사들이 바꿔달란 거, 고쳐달란 거 고쳐주면서 수업이 끝난 학교를 잘 정돈, 남아있는 학생들을 안전하게 자택까지 귀가시키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야. 수면권 보장이 힘들다는 게 다소 문제가 되긴 해.”
     “어? 설마 혼자서 20시간 근무 이런 거야?”
     “아니, 새벽 비번 때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거든. 이른 바 자업자득이지.”
 주침야활이 편한 습관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젊은 그림쟁이의 필수 요소는 주침야활이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정리하면, 나는 초등학교의 수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벽의 편의점 아르바이트 또한 병행하고 있다.
 벌써 그런 생활을 시작한 것이 작년 12월 20일부터였다. 다른 가정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계획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나는 숙직실에 눌러 살 준비와 전임이자 은퇴하시는 숙직 선생님의 업무 인수인계로 분주했다.
 통장에 잔고란 없는 전역한지 얼마 안 된 군인과 턱도 없는 등록금, 그리고 기숙사 비용. 그리고 전화로 온 당장의 돈과 거처가 제공된다는 솔깃한 제안. 그보다 더 나은 것을 찾기 위한 시간 따윈, 그 당시의 난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뭐랄까……미안해. 괜한 시간 뺏는 것 같아서. 유진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유라가 멋쩍게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의 에코백에 잔뜩 들어가 있는 종이뭉치와 도구들을 보여주는 듯하며. 아마 애니메이션 제작 과제를 도와주고 있는 날 이야기 한 것이리라.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 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에게 말해봤자 쓸데없는 대화의 반복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됐어.”
 …라고, 그녀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말했다.
 지나가듯이, 정말 신경 쓸 수 없듯이. 그것을 바람에 실어 날려진 말과 같이 말하곤 그녀와 시선을 수평으로 맞추었다.
 그 수평을 달리는 끝없는 시선은 영원히 마주칠 것 같지 않게 하늘을 달렸다.

 이후 대화 없는 단순한 산보가 주욱 이어졌다. 나도 유라도 대화라는 것 자체에 그렇게 친한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들어주는 것을 특기로 하는 사람이었지.
 포수 둘이서 야구를 진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해가 떨어지는 그림자에 가려 몰래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되래 그녀가 나에게 시선을 꽂으며 걷고 있었기에 당황한 체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영원히 수평을 달릴 것 같은 시선이 허무하게도 마주쳐 버렸다. 눈알만을 돌려 유라를 바라보아도, 다시금 서로 맞은 시선에 유라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 돌렸다.
 과거를 잊어버린 듯하는 유라의 언동은 언제나 반복되었다. 언제까지나…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유라의 언동에 어떤 태도로 답해주어야 할지 답을 내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유라의 억지스럽게나마 태연한 모습은, 언제나 과거만 떠올리며 그녀를 불편해하는 자신이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 같다는 자각을 주기……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걷다 보면, 주성초의 정문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여긴………”
 유라는 숨을 짧게 고르곤, 숨을 멎었다.
     “기구하기도 하지. 우연의 일치가 다 있지. 아, 아니. 하필 이 학교인 이유는 내가 여기 재학생이란 명분도 있을지 몰라.”
 말 그대로였다.
 난 지금의 내가 일하는 주성 초등학교의 OB, 졸업생이었다. 11년 전의 먼 졸업생인 것이다. 그리고……그것은 유라도 딱히 다르진 않았다. 졸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분위기에 걸맞은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내 옷깃을 할퀴자, 옷을 고쳐 입곤 천천히 주성초 정문 앞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잠깐.”
 “조심히 잘 들어가” 라고 안부를 전하려는 내 손을 유라가 잡아 멈췄다. 부드럽고 따스한 손이었다. 찬 손에 불어 넣어지는 열기에 차마 뒤를 돌아보기 무서웠지만, 그녀의 꽉 잡은 손이……그 감정이 불어넣어진 악력이 날 돌아보게 만들었다.
 유라는 단지 꼭 잡은 내 손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을 지켰다. 그 표정엔 묶인 듯한, 눌린 듯하는 수 십 가지의 말과 감정이 엿보였다. 그 표정을 넘어다보면, 마치 그녀와 같이 지낸 세월이 보일 것만 같았다.
 팔에 힘을 주어도 강하게 연결된 유라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윽고, 흔들리듯 들려오는 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나라서 미안해.”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유라는 축 처진 눈썹과 슬픔을 한껏 머금은 눈과는 어울리지 않을……자연스럽고 따스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강렬하게 느껴지는 상냥함에, 그녀의 손을 거칠게 떼어놓고는 뒷걸음질 쳤다.
 거부당한 그녀는…
     “……그래.”
 …라고 쓸쓸하게 대답하곤, 단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숨으로 하여금 조용히 내뱉곤, 아무런 말없이 뒤를 돌아 걸어 나갔다. 주성초의 그림자로 천천히 사라지는 내 모습을 그녀는 얼마나 보고 있었을 것인가. 나로서는 평생 알 수 없을 진실 중 하나일 것이다.
     “모두에게 사이좋은 친구로 보일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는걸.”
 그녀에게 보이지 않을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 나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교사(校舍)를 목소리로 울리며 어둠 속으로 한층 더 걸어 들어갔다.

 바람이 들이치고─
─벚잎이 흩날린다.
 언덕 위의 길을 화려하게 침식하며 뿌리를 내린 벚나무들은 희미한 향기를 품으며 기약 없는 꽃잎들을 흐드러지듯 내린다. 꿈에서 봤던……내 심상 속으로 목격한 그 절경은 존재할 수 없다 말하는 듯.
 석양의 붉은 그림자와 연분홍빛으로 가늘히, 흐드러지게 핀 벚잎의 어울리지 않는 풍경 아래……떠오르는 어느 벚꽃의 회화와 유라의 얼굴이 번져 보이는 것 같은 감각에 천천히 몸을 떨었다.
 그녀의 그 상냥한 미소가……그 강렬한 상냥함이 마치 금빛 벚을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너는 그 벚의 진의조차 깨닫지 못했으면서.
 아직 어둠이 드리우지도 않았음에도 몰래 반짝이듯 빛나는 달에게, 괜한 원망을 바쳤다.



◇◆◇◆◇◆◇◆◇◆◇



 새벽의 편의점 알바가 끝나는 아침 7시,  
 편의점 내에서 미리 챙겨갔던 옷을 갈아입은 나는 교문에서 머리 한 두 세 개씩 차이나는 초등학생 꼬맹이와 같이 교문을 들어왔다.  
 항상 같은 시간에 등교하시는 선생님들과 어린 학생들과의 눈인사.
 억지로 참아오던 잠을 머금은 퀭한 얼굴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를 갖춰 인사하면서도 마음은 한시 빨리 숙직실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였다.
 전날 밤 미리 펴두었던 이불에 몸을 던지며 간신히 뜨고 있던 눈꺼풀의 힘을 풀어갔다.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눈꺼풀은 내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가려내고, 그 대로 그 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언제나 와 같은 아이들의 발소리가 자신을 깨워 주리라 믿는 채로.
 
 
 
◇◆◇◆◇◆◇◆◇◆◇
 
 
 
     쿵쿵쿠쿵쿠쿠쿵쿵쿵쿠쿵쿵─
 희미해졌던 초점과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던 정신이 바로 잡히며 들리는 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고학년들의 하교 소리였다.
 빨리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축구를 하러 나가던 게임을 하던 친구와 만나서 놀던, 여느 초등학생이라도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며, 저 아이들도 하등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복도 청소를 하고, 제아무리 깐깐한 선생님이 청소 검사를 하셔도 초등학생은 초등학생.  
 학교의 안은 무방비 상태에, 조금의 더러운 바닥, 창틀의 상태.  
 그런 이유로, 이 뒤는 나의 일이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난 뒤에 학교를 순찰하며 쓰레기를 줍고 미처 잠기지 않은 창문을 걸어 잠그며 남은 학생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 이른바 전형적인 학교 수위의 일이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부스스 일어나 자비 없이 떡 져있는 머리를 감고 전체적으로 간단하게 샤워를 해서 몸을 개운하게 했다.
 이렇게 준비를 하는 시간이 45분가량, 마침 딱 방과 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다.
     “일하자, 한유진.”
 지하 계단 아래에 위치한 숙직실의 문 앞에 선 채로, 정신을 바싹 차리자는 느낌으로 자신의 뺨을 가볍게 탁─하고 두드렸다.
 작게 터덜거리는 발소리가 작아질 즈음, 굳게 닫아둔 숙직실의 문을 열어, 머리에 물을 시원하게 끼얹고도 반쯤 감긴 눈으로 신선한 바람이 나부끼는 1층의 본관 교사로 향했다.
 
 1층의 좌측 계단 방향으로 걸어가며 잠기지 않은 창문을 닫고, 잠가 준다. 덤으로 소화기 근처에 떨어져 있는 휴지를 주워 작업복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매일매일 반복되어, 이제는 4~5달이 넘어가는 이 간단한 작업에도 몸이 적응해 가는 도중이었다.
 그렇게 걷던 중, 내 발소리를 제외하고도 정말 약소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2층에 있는 미술실의 문이 조금이나마 열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건가?”
 귀찮은 듯 발걸음을 옮겨 슬쩍 열린 교실문의 사이로 잠깐 들여다보면,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학생과 남학생 둘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주위를 줄 만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과격하다면 과격하다 말할 수 있을 요즘의 초등학생답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초등학생들의 일과 시간이었다면 딱히 주의를 주지 않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하교 시간이었다.
     ─똑똑똑똑
 문에 노크를 한 뒤, 인기척을 숨겨 미술 준비실에 들어갔다. 열쇠를 돌리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이미 다 낡고 헐거워진 손잡이에 신경이 쏠렸다. 실제로 힘을 쓰거나 다소의 요령만 있으면 열쇠 없이도 쉽게 잠긴 문을 열 수 있을 수준의 고장이었다.
 누군가의 노크 소리. 거기에 제 발이 저린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인기척을 듣고, 미술실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왜 굳이 들어왔냐 묻는다면, 가슴이 시켰다고 답할 수 있으리.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미술실이란 공간 안에 몸을 내려놓은 후였다.
 이미 꽤 낡은 교사지만 크게 노후화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깔끔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향취의 미술실은 내가 주성 초등학교에 재학할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월이 남긴 여러 가지의 상처를 품고 있는 책상의 유리와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고무 재질의 책상 받침.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삐뚤빼뚤한 그림들과 그 나잇대 치곤 그럴듯한 수채화 그림의 일렬.
 그 장식장의 중앙에 보란 듯이 자리 잡혀 있는 갖춰진 모양의 상패. 그 상패와 트로피에는 <문화재청 주관 공모전 회화 부분 금상> 이라고 또렷하게 적혀있었다. 국내의 유명한 예술가도 쩔쩔멘다는 문화재청 주관 공모전의 최고부문 상이었다.
 그리고 그 작품명 옆에는 정말 보란 듯이……<한유진> 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감출 수 없이 적혀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날로부터 전혀 바뀌지 않은 이 상패와 트로피의 위치를 진열장의 구석으로 깊게 깊게 봉인했다. 후들후들 떨리며, 악력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왼손으로 상패를 걸치듯 집어서 말이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라진 자신과 다르게 그 향취와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만 같은 미술실의 전경을 둘러보며, 항상 미술실 한켠을 차지하던 주성 초등학교의 예술가 한유진과 전태훈의 모습을 회상했다.
 그리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함께 유화의 기름 향기를 맡았던 보랏빛 흑발의 그 녀석.
     “………….”
 그 시절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곤, 머릿속에 맴도는 예술, 유화염료, 회화라는 단어의 존재를 지우듯 고개를 흔들었다.  
     “4층까지 다 돌고, 내려올 때 다시 와 보는 것으로……되려나.”
 그렇게 조용히 혼자 중얼거린 나는 바로 좌측 계단을 올라가 2층과 3층의 순찰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음악실의 문이 잠겨있지 않았던 것을 빼고는 굳이 특별한 점을 찾기 힘들었다.
 뭐 따로 말할 게 있다면야, 내 작업복의 한쪽 주머니가 쓰레기로 가득 차버렸다는 점이겠지만.

 좌측 계단을 올라 2층을 순찰하고 우측 계단을 올라 3층을 순찰한 나는 다시 좌측 계단을 올라 4층에 도착하여 걷기 시작했다.
 본 교사의 4층은 5학년들의 교실이 모여 있었다. 걸으면서 닫힌 교실을 살짝 들여다보니 반마다 분위기가 다른 1학년 및 중, 저학년의 교실과는 다르게도……다들 크게 다르지 않은 정형화된 교실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걷고 걸어가며 빈 복도에서 혼자 발자국 소리를 울리며 걸어가고 있을 즈음,
     톡─톡톡톡─톡톡─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연필이 열심히 글씨를 써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아이, 오늘도 남아있는 건가?”
 그 아이, 라고 말은 했지만 아는 학생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름조차 모른다.
 교실에 남아있는 그 소녀는 일주일 전부터 끝까지 교실에 남아 종이에 무엇인가 열심히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와 의자에 받쳐져 둥글게 말려 있는 검디검은 흑발이, 글을 써 내려가며 흔들리는 소녀의 작은 어깨를 따라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소녀가 교실에 남아있기 시작한 후로부터 짧아도 3분, 한 10분 동안은 그 소녀를 지켜보는 것이 한유진 내 자신의 하루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뭐랄까, 정말 무언가에 열중하여 주변이 보이지 않게 된 그 소녀를 보고 있노라면 뭔가 흐뭇하다고 할까 대견하다고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소녀의 빨아들일 듯 검디검은 매력적인 흑발에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일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듯 느껴졌다.
     “말 그대로의 열심이네…….”
 나는 혼잣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그 소녀는 내가 지켜보는 약 10여 분의 시간 동안 잠시라도 쉬는 기색도 없이 그저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잠시 머뭇하는 기색은 있었지만 쉬는 일은 없었다. 정말, 보는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하는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그 소녀가 글을 쓰는 것에 흡입되는 것 마냥……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소녀를 깊게 깊게, 지켜보았다.
     ─스윽
     ‘아, 일어났다.’
 입모양만 뻥긋대며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그 소녀는 드디어 글을 써 내려가던 것을 멈추곤 의자를 뒤로 빼내어, 그 자리에 일어섰다. 일주일 동안 그녀를 의도치 않게 관찰하면서 처음으로 보게 된, 그 소녀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이 감상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내 작은 움직임에도 흔들려, 작업복에서 넘쳐 떨어진 양철 재질의 쓰레기가 공허한 복도에 깡마른 소리를 울려가기 전까지는.
     “아차!”
     “!!!”
 떨어지는 쓰레기에 동시에 놀라는 두 사람.
 특히 그 소녀는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보일 정도로 크게 놀라, 동요하고 있었다.
 그리고서 그녀는 재빨리 내가 있던 뒷문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려고 하는 그 순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해 버린 나는 그녀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잠시도 뒤돌아볼 필요는 없었다. 그저 빠르게 달리며 작업복 주머니의 지퍼를 닫고 계단을 빠르게 달려 내려갔다.
 하지만 도망치려는 순간 교실문의 작은 유리─그 작고도 투명한 편린으로 하여금 살짝 비춰진 그 소녀의 옆모습,
 비록 전부 보이지도 않고 흐리게 ‘목격되었다.’ 라고도 단언하기 힘들 정도의 실루엣으로 느껴진 그 소녀의 눈동자와 코, 작은 입은
 
 
     ─주변을 불식시킬 정도로, 폭력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Writer

Project_So

Project_So

물건너 섬나라 칼럼니스트.

물건너 섬나라 LOSE社 미연시 시나리오라이터 

소설가 지망생 "한소운" 입니다.


개인 블로그 : http://blog.naver.com/n_sousi

개인 작품 :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46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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