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아저씨 뭐하세요!(가제) 1 - 6. 그리고 그 소리(鮮汩)는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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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 Dec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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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Project_So
협업 참여 동의






     ──후루루룩

     “하아……”

     “하우……”

 서로 큰 머그컵에 담긴 따스한 찻물을 마시며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엔 한숨으로 땅이 가라앉는다는 표현을 왕왕 쓰곤 했지만, 지금의 한숨은 한없이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 좋은 한숨이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몸이 부유할 것만 같았다.

 마침 내 맞은편에 앉은 저 아이에겐 어느 정도 말을 붙일 수 있게 된 참이라, 여러 가질 물어보고 있었다. 어째서 밖이 소란스러웠는지, 어째서 계단에 툭 떨어지게 된 건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지금 마시고 있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홍차 또한 그 부산물일 것이리라.

     “………그런 거였나.”

 대충 알아들은 듯 얼버무린 말투였지만, 저 아이의 어른스럽고 조리 있는 설명으로 전부 이해가 끝난 상태였다.

 실제로 저 아이의……

     “미안한데, 이름이 뭐랬지?”

     “……선율이에요. 한선율.”

     “아, 응. 미안미안.”

 실망한 듯 도끼눈을 뜨고 말하는 선율이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저 아이의 목소리는 감정의 선율 그 자체가 귀로 하여금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기에.

 여하튼 이름 자체는 정말로 수려하고 어여쁜 이름이었다. 이름이라는 하나하나의 단어와 그 의미가 제 주인을 찾아간 것 같이……

………가, 아니라.

 갑자기 이름 주제로 세어 버렸지만, 다시 원점으로 이야기를 회귀시켜 보자면……그래. 실제 저 아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상당히 신경 쓰이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저 성주시 외곽의, 작은 초등학교의 소문과 도시전설, 학교 괴담 따위로 남을 것 같았던 숙직 괴인 사건이 이렇게 맹신적으로 믿어지고 누군가를 따돌릴만한 힘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그만큼 이레귤러적 사건이긴 하겠지만야, 이렇게 실제로 피해를 받은 학생도 나온 것이다. 반론의 여지 따윈 없었다.

     “물론……”

 한동안 끊겼던 선율이? 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입술이 닿았던 컵의 끝 부분을 손바닥으로 매만지던 그녀는 어른스레 웃으며 말했다.

     “저는 조금도 믿지 않았지만요.”

 그런 그녀가 꺼낸 말은 도통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니. 여태 그녀가 나에게 보인 행동이나 지금까지 바라본 어른스런 분위기. 그걸 알고도 선율이가 숙직 괴인이란 존재를 믿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던 내 자신이 바보 같게 느껴졌다.

     “괴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네. 괴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세상은 넓으니, 이 세상 한 구석 즈음에 괴인 하나둘이야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지만……그 구석이 이 구석은 아닌 것 같았답니다.”

     “도망가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봤던 건……”

     “아저씨는 괴인 같은 것이 아니라고 쭉 생각해왔으니까요. 저에게 중요했던 건……제가 사실일 거라 생각하고 관철한 것이 진실인가에 대해 아는 것이었답니다.”

     “……하아. 그런 거였나.”

 나는 맹렬하게,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의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선율이는 작게 쿡쿡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비단 저만이 믿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저 같은 학년이나 6학년 언니 오빠들도 일부를 제외하곤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편일 테니까요.”

     “어? 정말?”

 선율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래도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뭔가 강하게, 진득하게도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 형체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답답한……그런 것.

     “하지만 아까 그 애들은 열심히 도망쳤잖아? 그 아이들도 숙직 괴인 이야길 믿지 않았단 거야?”

 말마따나, 그 아이들은 추하게도 도망친 것이다. 괴인을 보았단 걸 부정할 수 없던 표정으로.

     “믿는 애가 한 명 정도는 있었으리라 생각은 하지만……믿진 않았을 거예요. 방금은 숙직 괴인 운운하지 않아도 꽤 무서우셨거든요.”

 당시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짓는 선율이를 바라보며 머릿속에 불현 듯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단지 나의 그 어설픈 연기가 무서워서 도망쳤다 하더라도 그 반응들은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제아무리 선율이가 어른스럽단 걸 감안하더라도, 어쨌든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 행동의 근원이라 한다면……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올바르다 믿는, 그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에겐 그것이 조각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되레 희미하거나 선명한 죄악감만이 존재했겠지.

 즉──

     “도둑이 제 발 저려 도망쳤다는 건가.”

 이마를 손으로 부여잡곤, 작은 한숨이 섞인 결론을 뱉어냈다.

 그 애들에겐 숙직 괴인이 진정 존재한다고 믿는, 믿어 의심치 않는 신념 따윈 없었다. 믿음 따윈 없던 것이다.

 하지만─일각에선 그걸 믿는 고학년도 있다고 했고─숙직 괴인 전설을 ‘믿는 분위기’ 가 된 교내에 분위기란 것과 동떨어진 이가 있다면……말 할 것도 없다. 고립되기 일쑤겠지.

 영악한 5, 6학년들에게 숙직 괴인이란 존재는 참으로 알기 쉬운 따돌림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지독할 정도로 알기 쉽고 허무한 사실을 그녀에게 전하고 싶었다.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까지 들었다.

     “………”

 고민하듯 입 위에 올렸던 손을 치우고, 말을 꺼내려던 그 때였다.

     “저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답니다. 왜 제가 이런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는가. 숙직 괴인이란 소문의 존재가 ‘구실’ 이 되었는지에 대해.”

 그녀는 나지막이 말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쓸었다. 그러자 그녀의 흑발 속에 파묻혀있던……차마 털어낼 겨를조차 없어 보이던 지우개 조각이 몇 점. 숙직실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도…”

     “그래도.”

 내 나약한 말을 반복한 선율이는 당당하듯, 아무렇지 않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저에게 중요했던 건……아까도 말씀 드렸듯, 제가 사실일 거라 생각하고 관철한 것이 진실인가에 대해 아는 것이었으니까요.”

     “아저씨는 제가 생각한 대로 괴인 따위가 아니셨으니까. 전 그 사실이 다른 그 어떤 사실보다 중요하고……안심된답니다.”

 거짓이라곤, 단순한 허세라곤 생각할 수 없을 상냥한 표정으로 웃는 한선율. 그 강렬한 행복감과 상냥함의 표정을 보곤 내 자신은……

     “……그래도.”

 …라는 나약하고 희미하기 그지없는 의미의 말만을 반복했다.

 그녀의 상냥한 감정에 반해, 내 자신은 잔뜩 화가 치밀고 있었기 때문에.

 온화하고 희미하고 자신감 없는 말로 선율이를 대하지만, 마음 속 깊은 심연으로부터 새까만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기에.

 자기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흘러나오는……검디검은 탁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선율이는

     “괜찮아요, 괜찮답니다. 제 생각이 올바른 것이었다면 저는 그걸로 족하답니다.”

 라고 쿡쿡 가볍게, 덧없는 상냥함이란 감정을 가진 목소리로 말했다. 웃음을 곁들여서 말이다.

 선율이는 자신을 몰아세운, 자신을 이 지하에 쳐박은 그 아이들에게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그 정도의 말로 끝냈다면 되레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율이의 신념과 상냥함이 담긴 목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숙직 괴인이란 존재가 사실은 이렇게나 상냥한 눈을 하고 있단 걸 그 아이들은 몰랐고, 전 알고 있었을 뿐이랍니다. 저 혼자만이 아는 것을 그들이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상냥한 눈? 아니야. 난 상냥한 사람 같은 게 아니야!

 그저 속으로, 흔들리는 눈빛으로 속삭였다.

     “잘 모르는 걸,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신하는 것은 실수예요. 어쩌면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실수.”

     “하지만, 실수는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눈웃음을 머금은 미소를 배시시 지으며 말했다.

 정론이다.

 그녀가 말한 것은 한없이 정론에 가까웠다.

 하지만 원래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정론이라는 것은 파고파고 내려가다 보면 생각보다 허점이 많이 보이는 법이다. 그것은 진리가 아닌 정론이기 때문에.

 선율이의 그 말은 나에겐,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도 바보같이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호구의 아우라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순수함을 느꼈다. 상반되는 어른스러움과 순수함.

 그 상냥함에, 나지막이 눈웃음 짓는 선율이의 모습이 기특하기만 했다. 너무나도 귀엽고 대견해보였다.

 녀석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근본 없는 욕구만이 남아, 그 의미 없는 손만이 선율이를 향하고 있었다.

     “아저씨?”

     “?!”

 본능적으로 뻗은 손에 대해 깨달은 것은, 이미 내 손이 책상의 절반을 횡단한 뒤였다.

 이미 뻗어진 손을 이제 와서 거두는 것도 늦어보였으니……그저 본능의 선택에 따르기로 했다.

     “꺄!……으?”

 마음만 같아서는 조금씩 장난도 치며 여러 가지 귀여운 반응을 보고 싶었지만, 단지 솔직하게 그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왼손은 힘이 없는 채로, 그저 그 아이의 머리에 얹혀진 형태로 쓰다듬듯 움직였다.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다…라.”

 대견했다.

 그저 대견했다.

 그녀와 여러 가지 사건을 거치며, 여러 가지의 말을 들었다. 그렇기에 선율이의 생각을 수용해가며 느낀 것. 저 아이는 보통 이레귤러가 아닐 정도로 어른스런 아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어른스런 그녀는 그 아이들을 이해해주려 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겠지만, 선율이의 본심이 진정 올바른 것인가에 의문을 가졌다. 아니,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 자신도 선의로써 시작된 마음을 왜곡당해, 자신의 학창생활이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버린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솔직한 찬성 거수라는 매력적인 선택지를, 난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지만, 아름다운 벚꽃은 자기 신체의 일부인 벚잎을 잃어가면서 아름다움을 만든다.

 희생. 나는 그 사실과 의미를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기에, 그 거부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너를 추궁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정말로 괜찮은 거야?”

     “………네?”

 예고 없이 던진 질문에 작게 놀란 선율이가 대답했다.

     “정말로 괜찮아요. 일방적인 아저씨의 덕분이겠지만, 크게 다친 곳도……”

 웃으며 살랑 손사래 치던 선율이는 자신의 발언에 무언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붕대가 묶인 발목을 이불 아래로 살며시 숨겼다.

     “……크게 다친 곳도 없답니다.”

     “맞네. 일방적인 내 덕분.”

 익살스레 가볍게 되받아치곤 난처하게 웃는 선율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일단 확실히 그녀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것 또한 저 아이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당시의 어린 내 자신도 진심이었고 사력을 다해, 붓을 부러뜨려가면서도, 왼손을 혹사시켜가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그 시간 속에 빚어진 벚꽃은 아름다움을 떨쳤지만, 그 벚꽃이 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깨달아 줘! 너의 그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자신을 잃어버릴 지도 몰라!

 그렇기에 나는 담담히 말을 꺼내 보았다. 내 자신이 줄곧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것들을.

     “아까도 말한 것 같이, 선율이 너의 그 진의가 외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란 걸 알고 있고, 그에 대해 더 이상 추궁할 마음은 없어.”

     “그러신가요.”

     “……하지만.”

 나는 분명 미숙하다.

 사람과 가깝게 지낸 일생이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필시 떳떳하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저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이런 삶은 산 내 목소리에 안심하고 믿음을 가져줄지조차 의문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당시, 도주사건 당시 내 찰나의 시선이 쫒은 것은──

     “그 때의 너는 처음 보는 나에게조차, 무언가를 말하고, 전하고 싶은 눈을 하고 있었어.”

     “………!!!”

 ──그녀의 벼랑에 몰린 눈빛. 무언가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이었다. 이것이 날 계속해서 괴롭히던 감정의 소용돌이. 그 정체였다.

 단언하자면, 그 눈빛을 본 순간 그 누구라도 발걸음을 멈추게 되어 버릴 것이다. 그녀를 피해 필사적으로 멀어지려던 내 강한 반발심이 없었다면 아마 선율이가 서 있던 그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무것도 건져 올리지 못한 급류의 소용돌이. 그 심연에 존재하는 아이가 이리도 심한 일을 당해 아무렇지도 않다 생각한다?

 …………심각한 언어도단이 아닌가.

 결론. 저 아이는 실패했다.

 그녀는 너무나도 솔직했기에 그 마음을 숨길 수 없었기에.

     “두서없다곤 생각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때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 뭐라고 생각해?”

     “………잘 모르겠어요. 들려주시겠어요?”

     “솔직함.”

     “……!”

     “예술이란 것에 ‘강인함’ 이란 것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 강인한, 강렬한 솔직함과 당당함이겠지.”

     “하지만 생각하는 심상과 솔직함에 괴리가 온다면, 그 예술엔 만드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괴리감이 찾아오겠지.”

 그 당시 선율이의, 저 작은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다. 저 아이의 목소리는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그 맑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급박한 소리에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던 나의 변명치례일 수도 있지만─

     “그러니까, 네 말에 조금은 괴리가 느껴졌어.”

 ─저 아이의 목소리는 예술이라 표현할 수 있어, 그렇기에 거짓을 숨길 수 없는 굉장히 솔직한 소리였다.

     “엣? 그렇다는 말씀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루비와 같이 빛나는 홍채를 크게 뜨는 선율이의 반응이 조금은 귀여웠다.

 선율이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 긴 시간, 나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알 것 같기에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 이런 나라도, 누구에게나 해줄 수 있는 배려였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다시 고개를 들어준 선율이은 오묘한 표정을 짓더니, 살짝 미소를 띤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들키고……있었나 보네요. 아하하……”

 작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무언가 자신이 없는 것 같던 선율이는, 여유로운 듯한 미소로 나를 살짝 올려다보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 말씀하셨으니, 제가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제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아요.”

     “………음.”

 의외의, 상정 외의 반응이었다. 더하여, 역시 저 아이는 말솜씨가 상당한 아이라는 것을 통감했다.

 나는 저 아이, 선율이가 대답하기 껄끄러울까 걱정되어 조금씩 분위기를 풀어가며, 조심스레 접근하려 했거늘. 오히려 선율이 쪽에서 마음을 열어줄 것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것 또한 상정 외의 상황이었다.

     ‘………당황하지 말자.’

 어렵게 대해주지 말자.

 기껏 먼저 다가와 주었으니, 기쁘게 받아주자.

 저 작은 소녀, 선율이는 용기를 내준 것이니까.

     “그럼……부탁할 수 있을까?”

 선율이는 걱정은커녕 활짝 웃으며, 밝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정말로 보기 드물 정도로 싱긋 웃으며.

     “네!”




◇◆◇◆◇◆◇◆◇◆◇




     “시작은 그 때였답니다. 2주일 전 쯤.”

     “뭔가, 내가 선율이 너를 알기 전인 것 같은데?”

     “아……그………네! 아저씨가 누구인지, 조금씩 궁금했었답니다!”

 이상한 부분에서 찔린 듯한 반응을 보인, 말을 더듬는 선율이를 보며 살짝 입가가 느슨해졌다.

     “흐음? 딱 봐서 수위일거라곤 생각 못했나봐?”

     “네. 보통 수위 아저씨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으실 테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동생을 마중 나오신 어떤 분의 오라버니, 형님이실까 생각했어요.”

 선율이는 긴 말을 꺼내면서도 담담하게, 끊이지 않게, 또박또박 말을 전달했다.

 가끔 먼 옛날을 상상하는 듯 나오는 표정이 아름답……아니, 인상 깊었다. 

 그래봐야 몇 주 전일 텐데.

     “그러면 나중엔 생각이 바뀌었어?”

     “네. 그런 분이 학교에서 쓰레기를 줍고 창문을 닫고 계시진 않을 테니까요.”

     “………결국 계속 감시당했다는 소린가.”

 선율이가 듣지 못하도록, 기어가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일을 할 때는 의욕도 거의 없는데다 주변의 소리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가 날 지켜보던 미행을 하던 알 방도가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반대로 눈치 채는 것이 대단한 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한 자의식 과잉이라던가.

     “으음……계속 해 봐.”

     “그러다가 제가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음악실을 빌린 적이 있답니다. 그러다 잠시 교실에 들렀을 때가 있었어요.”

 선율이의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건, 항상 문단속이 덜 되어있던 특수교실. 특히나 자주 열려있던 음악실의 문이었다.

     “그 때가 전의 일주일이었구나.”

     “네. 그 때 알았어요. 좀 전부터 느껴지는 인기척의 정체가 아저씨였다는 걸.”

     “호오………어? 얼레? 어떻게 나라는 걸 알았어?”

     “아저씨는 정말 모르는 척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내가?”

     “그 때 눈이 마주쳤잖아요. 가장 최근에 알아챈 것은 그 때 인걸요.”

 생각은 하고 있었고 의식도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 때 눈이 마주쳤었구나 확인하게 되었다.

 나를 쫒기 시작한 것은 분명 선율이가 먼저였지만 결국 서로의 뒤를 밟는 상황이 되어, 서로를 자각하게 된 계기는 내가 되었다는 것인가.

 묘한 기분이었다.

     “……뭐 그것보단, 묻기 좀 거북한 말이기야 하겠다만.”

 사실, 궁금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단 한 가지.

 내가 몰래 엿본 것 같은……아니 엿본 행동에 대해, 선율이의 기분이 나쁘지 않았냐는 것.

 그것이 그 날 이후로 가장 찜찜하고 신경 쓰이던 부분이니까.

 사실 묻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아, 아뇨! 기분 나쁘다니요. 전혀 그렇지 않은걸요.”

 ……그 아이, 선율이에게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기분이 어떠했는지 물어보신다면, 저는 오히려……”

 그녀의 소리가 짧게 단절되더니, 알기 쉽게 귓불이 붉어진 선율이가 치켜뜬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낮 뜨겁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오히려……”

     “오히려? 잠깐, 설마…기뻤어?”

     “아우으…….”

 정말로.

 아니…그…정말로,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도 그렇다. 당연한 것이다. 엿본다는 단어는 언제나 부정적이며 기분 나쁜 느낌이라는 것과 맞닿은 단어였을 테니까. 언어의 어감이 시대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한들 말이다.

 누군가가 혼자 남아있는 나를 엿보고 있다고? 내 자신이 생각해봐도 기분 나쁜 것이었다.

 다만 그녀는 다른 대답을 주었다. 저 아이, 선율이만큼은 다른 결론을 준 것이다.

     “그야…기쁠 수밖에 없었는걸요.”

     “어째서?”

 그녀의 시간은 대체 왜, 그녀가 기쁘다는 결론으로 도달하게 만들었을 것인가.

     “계속…줄곧 혼자였는걸요.”

     “…….”

     “집에서도 줄곧 혼자에, 이 학교에서조차 혼자가 되어버린 저에게 먼저 시선을 던져주신 건 아저씨가 처음이었으니까요.”

     “너는…”

     “외롭진 않았어요. 절대. 혼자 있는 것도, 혼자 보내는 시간도 익숙하진 즈음이었던 데다, 연습하는 것도 혼자가 편했으니까.”

 내 눈을 바라본 선율이는 서로 바라보던 시선을 일부러 어긋내더니, 다소 급해진 목소리로 둘러대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배려 속에서도 그녀의 목소리에 담진 쓸쓸함은 내 심장을 1mm씩 관통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 목소리에서 들려오는 사실과 감정은……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어린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어느 누가 저렇게 말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겹쳐 들러오는 것 같은 목소리는 저렇게나 구슬픈 듯, 외로운 듯 말한다.

     “그런데 혼자인 게 익숙하질 만큼 익숙해진 제게 아저씨가 보였어요. 아저씨가 왜 절 바라보셨는지, 그런 건 별 상관없었어요.”

     “서로 대화와 시선은 단절되어 있었지만…그 불문율이란 게 꽤 마음에 들었어요. 그것 또한 함께 라고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랬다.

 사람에 다가서기 힘든 내성적인 성격인 주제에, 겁도 많고 외로움도 잘 타는 주제에, 자신이 가진 분위기 탓에 그 누구도 자신에게 쉽사리 다가오지 못한다.

 그렇게 단지 집단의 안에서 눈에 띄듯 고고하게 올라가, 그 곳에서 내려다 볼 수밖에 없는 외로움.

 그저 높은 곳에 올라가 있을 뿐의, 아래로 손을 뻗지도 못하는 약하고 한심한 존재.

     “………….”

 하지만 이 마음까지 저 아이, 선율이에게 전해줄 수는 없다. 아니, 해줄 수 없었다.

 저렇게나 기뻐하며, 감정에 복받쳐 오듯 말하는 선율이에게,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선율이에게…

 저렇게나 조숙하고 상처받기 쉽고 외로움을 잘 타는 저 아이에게 어찌 그런 말을 적나라하게 할 수 있을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내 안에 있었다.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율이의 저런 모습은 과거의……그리고 지금의 나와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닮아있었기 때문이겠지

 나 또한 혼자였다. 어느 순간 혼자가 되어 ‘고독’ 에 익숙해질 즈음, 새로이 낳아지는 ‘고립’ 이란 것엔 당해낼 수 없었다. 선율이를 이 지하에 몰아넣은 그 고립 말이다.

 강한 고립에 자신의 몸이 감싸지자, 홀로 노력하여 꽃을 피우려던 강인한 결의조차 산산히 부서져갔다. 이윽고 자신의 미의식조차 산산히 부스러져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치 그것이 세상의 정해진 순리인 것처럼.

 선율이 또한 고립 당했으며 고고한 분위기의 고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홀로 자기 자신의 미의식을 꽃피우며……자기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꽃피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하…아하하….”

 이토록 소름 돋게 닮은꼴일 줄이야. 나는 그런 감상과 우연에 작게 헛웃음이 나왔다.

     “아저…씨?”

 익살스런 헛웃음의 소리가 끊기곤 적막이 찾아왔다.

 그렇게 적막함이 맴돌기 시작하자, 내 등골을 무섭게 타고 올라가는 한기가 존재했다.

 그 한기의 이름은 불안이었고, 그 불안의 정체가……내 자신의 그림자라는 걸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율이의 노력하는 모습은 그저 아름다웠다. 올곧고 아름답고 강인한 그 자세는 이미 하나의 미로 하여금 보이기도 했다.

 내 자신의 그림자는…그 미를 잃어버린 자신의 그림자였다. 선율이 또한 그 그림자에 잡아먹힐 것이란 생각을 하니 불안이란 것이 피어오른 것이다.

     “그랬던 건가….”

 나지막이 말한다. 그리고 선율이의 머리를 살랑살랑 쓰다듬었다.

 선율이도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기분 좋은 듯 빙그레 웃어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쓰디 쓴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너에게 잘난 듯 뭐라 말해 줄 능력도, 자격도 없어. 그야, 모르는 걸. 아무것도 모르니까.”

     “에…?”

     “너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니까. 다를 것이 없으니까.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 한심한 허수아비와 같이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랬었는데’라고 생각하는 것 밖에……”

     “아니에……!!!”

 내 신세를 한탄하듯 내뱉은 말이 종식을 향했을 때, 격양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율이는 쓰다듬던 내 손을 꼬옥 잡아 자기 얼굴 앞에 두더니, 눈을 감은 나의 그 손을 끌어안으며 떨었다.

 그리고선 고개를 들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에요……아니에요…….”

 그녀는 흐느끼듯 말했다.

 정말로……구슬프게.

 그것은 어디서 본 장면과도 같다 생각해, 기억에 혼선이 오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는 그 표정이 너무나도 신랄하게 나의 약한 마음을 자극하여, 깨우치게 하려는 것과 같았다.

     “아니에요……해답이라던가, 그런 것 까지 원한 게 아니에요.”

     “그럼…….”

     “그저…그저 찾고 있었어요. 필요했어요. 모두를 내려다보는 혼자인 저를 찾아, 그걸 구제불능이라 말하며 손을 뻗는……같은 높이에서 제 눈을 바라봐주는……그런 사람이 줄곧 그리웠어요…….”

     “……….”

 그 말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른 건, 추락하는 선율이에게 손을 뻗은 내 자신의 모습이었다.

 완전히 빗나가고 있었다.

 역시 난 바보 인가보다.

 내 눈앞의 소녀 선율이는 나와 아주 닮은꼴이었다.

 하지만 내 자신은 지금의 그녀처럼 빛나지 않기에, 훔쳐본 그녀는 그 자세만으로도 빛나보였기에.

 그 생각을 제물로 하여 그녀와 거리를 둔 탓에, 선율이와 내가 닮은꼴이란 사실도 망각하여 당연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선율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과 닮은, 자신을 깨달아 줄 친구……아니, 무엇이든 좋은 ‘누군가’ 였을 텐데.

 고독과 고립에 몸과 마음을 침식당하며,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꿈’ 이나 ‘사랑’ 이라 이름 붙이는 것으로 도피를 한다. 그런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니 제 자신이 조금은 자랑스러워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곧장 “사실은 이게 아닐 텐데” 라며 깨닫는다. 잔인할 정도의 속도로.

     “………이젠 신기할 정도네.”

     “에?”

     “정말로 뭔가……허무한 느낌이야. 너를 이해하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지만 필요 없었어. 그저 신기할 정도로 닮아 있었으니.”

 급하게 이부자리를 펴느랴 치우지 못했던 크로키 북. 그 안에서 미소 짓는 선율이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나와 달라. 나 같지 않아. 나와 같아선 안 돼. 그렇기에 거리를 두었을 지도 몰라. 그렇기에 다시 돌아볼 생각도 없이 도망친 걸지도 몰라.

     “그런데……바보. 다르지 않았잖아. 선율에 너 또한 내가 그랬던 것 같이───


───쓸쓸하다 소리 지르는 제 자신을 죽이고 있었을 줄은.”


 선율이의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눈물이 차오른 것이다.

 하지만 촉촉하게, 한없이 차오른 눈물은 또르르 흐르지 않았다. 마치 울 것 같았지만, 선율이는 더 이상 자신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쓸쓸하다 소리 지르려는 자신을.

 단지 쓸쓸하다 소리 지르기보다, 나지막이 이야기하곤 그 여운을 즐기려는 표정이었다. 한선율이란 인간에겐 그 편이 더 어울려보였다.

 그저 선율이를 바라보며, 그런 그녀를 대견하게만 느꼈다. 그 진한 흑발을 쓰다듬으며 계속 “괜찮아. 괜찮아.” 라고 말해주었다.

 가슴 깊이 안심하는 듯한 선율이의 희미한 미소를 보고는 막연하게 ‘위험해. 이 녀석, 이렇게 보니까 엄청 귀엽잖아’ 라고 생각했다.

 당황에 젖는 도중, 의문의 억양이 담긴 선율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

 아차,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뭐가 재미있는 걸까. 선율이는 우중충한 표정을 한껏 걷어내곤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표정이 이상하셨어요. 무슨 생각 하고 계셨어요?”

     “엑, 아니…그, 어…….”

     “………됐어.”

     “아하하…….”

 묘하게 삐진 듯 고개를 돌리는 날 보며 난처한 듯 웃는 선율이.

 마치 차디찬 겨울 뒤에 부는 간지러운 봄바람. 그것은 정말로 뜬금없이 불어오는 봄바람이었지만, 그렇기에 나쁘지 않았다.

 ………과거의 상처는 그림자를 닮아 있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노라면 조금도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지만, 피로에 의해 걸음걸이를 멈춰 몸을 숙이게 되었을 땐, 그 칠흑에 매료되어져 버린다.

 그러니까 결코 멈추고 싶지 않다. 항상 움직여, 걸음걸이를 멈추지 않고, 생각하며, 일해, 오로지 저 앞만을 바라보고 싶다.

     “하지만─무한히 멈추지 않고서 계속 걸어갈 수는 없어. 과거와 상처와……언젠가는 마주보지 않으면 안 돼.”

     “네?”

     “……자.”

 나는 선율이에게 오른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보곤 선율이도 소심히 오른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이 그녀의 손을 먼저 부드럽게 감싸며,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에도…그 세삼스러움을 즐기며.

     “‘한유진’. 한 유진이야.”

     “‘한선율’이에요. 유진……유진 씨….”

 작게 내 이름을 중얼거리며 웃는 선율이를 보며, 내 자신도 작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극복이란 단어는 나란 존재와는 정말로 가깝지 않았던 존재.

 하지만─그렇기에──

──앞으로 한 발 내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싶은 자신에게, 너무나도 어울리는 존재였다. 한선율이란 존재는.


     ‘─아아.’

     ‘그러니 필시, 큰 한걸음을 내딛기 위해선, 이런 마음가짐이 딱 좋으리라.’

 이번에는 제대로 마음속으로 부터 외쳤다.

 이번에야말로, 그 아이가 들을 수 없도록.











Writer

Project_So

Project_So

물건너 섬나라 칼럼니스트.

물건너 섬나라 LOSE社 미연시 시나리오라이터 

소설가 지망생 "한소운" 입니다.


개인 블로그 : http://blog.naver.com/n_sousi

개인 작품 :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46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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