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애프터글로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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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05 Dec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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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메르세데스는 뻑적지근하게 눈을 떴다.


  쾨쾨한 냄새가 고달픈 눈꺼풀을 들어 올릴 만큼 지독했던 것이다. 불과 여섯 시간 전에 근무에서 놓여난 데까진 좋았지만……. 장비만 떼어내고 한 방한침낭 안에 뒤엉켜 곯아떨어졌으니 말라붙은 땀에 때가 문드러질 터. 세상 모르게 이갈이나 하는 일리아나가 자꾸만 온기를 좇아 얽혀 왔다. 끈적하게 묵직하여 짜증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냄새! 몇 아티카가 들든, 집에서 쓸 침낭을 하나 더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침낭에서 몸을 비틀어 빼낸 메르세데스는 전등부터 켰다. 온갖 욕이 목구멍에서 이리저리 뒤엉켰다. 집안이 그야말로 설종 소굴이었으니까. 하룻눈 녹은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방한포, 흥건한 물바다에 덩그러니 처박힌 입마개, 거꾸로 뒤집힌 채 방 모퉁이마다 한 점씩 놓인 설상복이며 방한 내피……. 화룡점정으로 집수 주머니에서 카테터가 덩그러니 비어져 나와 여과되다 만 오줌이 질질 새는 꼴이란! 작은 노스윈드는 앉은 모서리를 짚고 공중제비를 넘어 그 난장판 속에 뛰어들었다.


  전위 예술처럼 장식된 장비들을, 세척까지는 못 하더라도 얼기설기 정리하는 데나마 얼마간 시간이 걸렸다. 메르세데스는 그제서야 뜨끈한 물로 세척포를 적셔 제 몸을 훔쳤다. 그리고는 깰 생각이 없는 일리아나를 죽은 플라나리아 다루듯 이리저리 뒤집으며 닦았다. 어떻게 스물셋이나 처먹은 게 제 가랑이도 제대로 못 닦아서는……. 설맹인 눈이 짜증으로 흩날리는 부란처럼 모질게 일그러졌다.


  문짝이 쿵쾅거렸다. 설상화 코로 갈기기라도 하는지 경첩이 떨며 나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쭈뼛 곤두서고 말았다.


  “메르세데스, 일리아나! 어떻게 돼먹은 것들이 유선 통신에 응답을 안 해? 비번이니까 좆까라는 거야?”


  “아, 노턴 타격대장님. 그게 아니라 유선 통신기가 고장이 난 것 같은……. 그리고 저한텐 깔 좆이 없지 말입니다.”


  “이 새끼가, 어디서 말장난질이야? 당장 문이나 쳐 열어!”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한달음에 뛰어 걸쇠를 들자 쇠문이 흐느껴 울었다. 농으로 하룻눈 녹듯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으니 납작 엎드려야 할 터. 안타깝게도 그녀는 자다 깨 벌거벗고 있었다는 사실을 계산 중 깜빡 잊고 말았다. 대뜸 불호령을 내리려던 타격대장을 잠깐이나마 우두망찰하게 했으니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메르세데스 노스윈드!”


  “옙.”


  “누가 훌러덩 벗고 나오래? 옷은 쳐 입고 문 열어야 될 거 아냐!”


  메르세데스는 헛숨을 들이삼켰다. 가려야 할 곳을 가리니 문손잡이를 당길 손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싸늘했다. 현관은 바깥쪽에서부터, 설상화발로 와장창 닫혔다. 노턴이 문 너머에서 개처럼 욕으로 짖어대고 있었다.


  일리아나는 아직까지도 세상 모르게 주무시는 중이었다. 두들겨 깨워서, 허겁지겁 활동복을 걸치고 나란히 서서는 다시 문을 열었다. 타격대장은 불쑥 들어서기가 무섭게 오만상을 썼다. 레인저 치고 말쑥하게 사는 사람은 드물겠으나 이렇게까지 추잡한 건 경우가 다른 법. 게다가 이들은 알렉산더 레인저에서도 셋뿐인 여성 전우조가 아니던가?


  “이게 사람 새끼가 사는 데냐? 설종 둥지가 따로 없구만, 아주. 메르세데스, 아까처럼 말대답이라도 해 보지 그러냐?”


  “백 번 지당하십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제가 먼저 깨서 굴러다니던 장비들 개키고 정리한다고 한 게 이 꼴이지 말입니다.”


  “골 때리는 년들 같으니라고…….”


  노턴은 두 여인의 낯짝을 돌아가며 똑바로 흘겨봤다. 더 잔소리하는 건 책잡기 위해 책잡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어쨌든 비번이 대충 퍼질러놓고 늘어지게 자는 걸 뭐라고 할 순 없을 테니까. 한숨이 나왔다.


  “사령관님이 부르신다. 너희 둘 다. 내가 이 다섯 마디 하려고 통신기 앞이 아니라 이 난장판 앞에까지 와야 쓰겠냐?”


  “메르세데스 노스윈드,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일리아나 노스윈드, 사령관실 출두, 알겠습니다.”


  두 여인은 부동 자세로 복창했다. 얼렁뚱땅 넘어간 듯싶었지만 상관은 짜증스레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너흰 오늘 사령관님 말씀 듣고 와서 청소부터 한다. 내가 1700시에 와서 점검할 거다. 알아서들 해라, 이 밴시 똥구멍 같은 새끼들아. 특히 메르세데스 노스윈드, 너 말이야!”


  “옙!”


  “알겠습니다!”


  재수 더럽게 없었다고 생각할 밖에.


  명령은 명령, 하물며 알렉산더 레인저 사령관의 직할 명령이라면 지체할 이유가 없다. 메르세데스와 일리아나는 방한복을 내피 없이, 자켓처럼 활동복 위에 걸치고 방을 나섰다. 극성기가 갓 지나 날이 한껏 누그러진 덕에 하이브 내 왕래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으로 결로와 고드름, 삭풍과 하룻눈으로 지천인 세계일랑 모질도록 한결같았다.


  주거 보일러관을 따라 연립주택 출입로를 벗어나자 곧장 방설통로가 이어졌다. 알렉산더 하이브에서는 주요 통행로를 전부 강철로 복개하여 관리하고 있다. 방설통로는 난방탑에서 방사상으로 뻗어 나가며, 일정 거리마다 순환통로를 두어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난방 여열로 체인 컨베이어를 돌리고 있어 행인들의 기척, 기계음, 물류 신호로 언제나 천둥처럼 요란뻑적지근하다. 정적인 여타 하이브와는 인상 자체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그야말로 겨울 앞에 우뚝 선 인류의 전위, 쇠와 불로 된 거인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들의 주거지는 바로 간선에 인접해 있었다. 내곽 방면 컨베이어 블록에 올랐다. 가만히 서 있자니 한기가 엄습했다. 제아무리 알렉산더 하이브라도 통로에까지 난방 시스템을 구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열을 사방천지로 내버리는 일일 테니! 메르세데스는 훤히 열려 새하얀 맨살을 드러내던 방한복 앞자락을 간수했다. 추위에 이골이 났다지만 감각 자체를 어쩔 수는 없었다. 두 여인은 기계적으로 상체를 바짝 붙이고 섰다. 입김이 지척에서 뒤섞일 정도로.


  메르세데스는 슬쩍 발돋움을 해 일리아나의 귓가로 다가섰다. 그나마 그 상태에서도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온갖 쇳소리에 묻혀 대화라는 걸 하기가 힘들었다. 춥고 무료하니 그렇게라도 주위를 환기할 밖에.


  「넌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렇게 잘 자냐?」


  「왜 잔소리야. 피곤한데……. 딱히 내가 일어나 있었다고 달라질 것도 없겠더만.」


  「칭찬이야, 이거. 그리고 방한침낭 하나 더 사야겠으니까, 그렇게 알아 둬.」


  일리아나는 기가 막히는지 목소리를 좀 더 올렸다.


  「언젠 돈 아까우니까 하나면 된다면서?」


  「냄새 난다고!」


  까다로운 계집애, 저는 어디 안 씻고서도 살에서 방향제 냄새 나는 줄 아나……. 내심 툴툴거리면서, 일리아나는 화제를 돌렸다. 당장 중한 일에나 신경 쓰라는 것이었다.


  「사령관님이 무슨 일로 부르실까? 짚이는 거 있어?」


  「일이겠지, 뭐. 우리 최근에 잘못한 거 없잖아.」


  「아 씨……. 골치 아픈 일이면 네가 좀 이빨 좀 잘 까봐. 안 그래도 요새 힘들어 죽겠는데……. 머리 쓰기 담당이잖아.」


  어느새 종착지였다. 얼른 블록에서 뛰어내려야 했고 물류대원들이 반입이다 반출이다 소리 소리를 지르며 화물을 다루는 덕에 당장 더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일리아나가 살짝 앞서 팔짱을 끌었다. 사람과 화물, 결로며 얼음 웅덩이, 고드름 따위를 피해 얼른 물류 구역을 벗어났다. 순환통로까지 빠져나가서야 어수선함이 다소 가셨다. 기계뭉치가 쇠로 우짖는 소리는 여전했지만.


  메르세데스는 재차 친구 귀에 힘껏 속닥거렸다.


  「일단 들어는 봐야 될 거 아냐? 혹시 일 아닐 수도 있고.」


  「레인저가 낙관론이라니……. 망했네, 이거.」


  일리아나가 빈정거렸다.


  두 여인은 곧 난방탑을 둘러싼 하이브 중핵시설 방면으로 들어섰다. 여타 하이브 시설과는 달리 경비가 삼엄했는데 레인저 사령부 진입로 쪽은 더했다. 세력권이 넓은 알렉산더는 어느 하이브보다도 장파 통신 의존도가 높고, 자연적 통신 허브를 담당하기 마련인 레인저 사령부가 난방탑에 버금가는 전략시설이 되는 것이다. 위병들의 경례를 받아 가며 검문소 두 개를 통과, 이십여 분쯤 지나 사령부 본관에 들어설 수 있었다.


  곧장 3층 사령관실까지 올라가서는 지체 없이 문을 두드렸다. 사령관인 이그나츠 상등영관이 직접 마중해 주었다.


  “상등기수 메르세데스 노스윈드입니다.”


  “상등사수 일리아나 노스윈드입니다.”


  “……아침? 점심시간이 지난 게 언젠데.”


  그는 살짝 눈살을 구기더니 곧 가죽 소파 쪽으로 손짓했다. 스펙터의 털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안락의자여서 주변 열을 흡수, 뜨끈하게 달아 있었다. 두 레인저는 땀이 차기 전에 얼른 방한복 상의를 벗었다. 그 동안 이그나츠는 이끼차를 두 잔 만들었다.


  메르세데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차가 나올 모양인 걸 보니 정말로 비번을 제끼고 일을 맡게 될 모양이었다. 변명거리를 몇 가지 생각해 봤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지금 공동지 의회가 어수선해서 좀 바쁜 게 아니라 짧게 한다. 노스윈드 전우조, 특무를 좀 맡아 줘야겠어. 비번은 따로 보전해 줄 테니까 징징거리지 말고.”


  “꼭 저희가 필요한 일입니까, 사령관님?”


  “어느 정돈 그렇고, 엄밀하겐 아니고. 여성 대원이 필요해. 공교롭게도 죄 원정을 나가 있어 지금 알렉산더엔 너희 둘 뿐이니 어쩔 수 없지.”


  여성 대원? 남자만 잡아먹고 여자는 피하는 속 편한 설종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사령관실 분위기가 뚱해졌다. 일리아나가 불쑥 물었다.


  “세상에 여성 레인저가 따로 필요한 임무도 있습니까?”


  “간단하게 브리핑해 주지. 여기서부턴 일단 대외비니 떠벌리고 다니지 말고.”


  “옙.”


  “알겠습니다.”


  이그나츠는 책상에서 구깃구깃한 종이 한 장을 들어 건넸다. 메르세데스가 받아 들고 눈으로 훑어 내렸다. 장파 통신 속기록이었다. 발신지가 ‘루스카야 하이브, 붉은 지구라트’라고 쓰인.

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8.12.23. 19:09
둘 모두 사지 멀쩡히 돌아와서 다행이네요. 이제 딱 눈덩이 구르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는 지점까지 도착한 느낌.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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