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애프터글로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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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32 Dec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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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루스카야 하이브에서 장파 통신을 보내왔다.”


  “루스카야? 성화 교단에서?”


  “그래. 무선상으로 성화 혁명이네 돼지들에게서 형제자매들을 해방하네 선전하는 거야 일상다반사지만……. 이번엔 공동지 조약에의 존중 아래 선지자 이브제니아를 알렉산더로 파견, 교민들을 시찰하겠다고 한다. 골 때리지.”


  일리아나는 갸우뚱했다. 교단 빨갱이들의 수작질이야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받아넘기면 될 일이 아닌가?


  “거절하면 안 됩니까?”


  “공동지 조약을 준수한다잖아. 지금까진 공동지같은 건 물류쟁이들이 마음대로 그은 선이라고 무시하던 놈들이 말이야. 그렇게 되면 이용 권한을 임의로 제한하는 쪽이 오히려 조약 위반이야. 거기다……. 못 오게 하면 교민들이 난리 칠 걸?”


  메르세데스가 끼어들어 주석을 달았다. 그리고는 사령관 쪽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래서 마중이라도 나가라, 그런 명령이십니까, 사령관님?”


  “지금 교단이 무슨 수작질을 하는 건지 정보전을 벌이기엔 늦었다. 우리 좋을 일 할 리는 절대 없겠지만 말이야. 최악의 경우에는, 이중 공작으로 선지자를 해쳐서 개전 명분으로 삼으려는 걸지도 몰라. 그런 개 같은 경우를 없게 하려면, 전말이 보일 때까지 딱 붙어 지킬 대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성 선지자한테 사내놈들을 밀착 경호로 보낼 순 없지.”


  “아, 그래서 저흴…….”


  이그나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탁자에 펼쳐져 있던 엔셀라티카 전도에서 북서쪽 지점을 짚었다.


  “랑데부 지점은 그쪽이랑 무선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사흘 뒤 1200시, 샤르코 협만 최북단 공동지 관문에서 성화 교단 쪽 호송대랑 합류하면 된다.”


  “저희 둘만 갑니까?”


  “그래. 듣자 하니 선지자 본인이 에스코트를 보낼 거면 한두 명이면 된다고 했다는데? 아무리 공동지 관문 근처라지만……. 교전 안 나게 조심해야 돼.”


  샤르코 협만은 극지물류동맹과 성화 교단 간의 완충지였다. 설종 서식지가 없는 구역이어서 겨울의 세가 약하나 그만큼 인간에게는 요충지였다. 이곳에서 벌어진 네 차례의 분쟁 간 피를 뿌린 알렉산더 레인저만 족히 수백 명은 되었다. 때문에 이런 일이 있다면, 조심스럽고 민감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쪽에서 먼저 쏘면 쐈지, 저희가 쏴 버릴 일은 없잖습니까?”


  “책 잡힐 짓 하지 말란 말이야, 일리아나 상등사수. 예를 들면 그쪽 호송대원에 대고 이런 말을 한다든가.”


  쓸데없이 첨언했다가 호통을 듣고 만 일리아나는 어깨를 슬그머니 움츠렸다. 잠시 골똘하던 메르세데스가 불쑥 이어붙였다.


  “사흘밖에 안 남은 거면 지금 당장 출발해도 설상기동으론 빠듯한데, 에크런드 관통선 정기 편성까지 계산에 넣고 짜신 일정입니까?”


  “그렇다, 메르세데스 상급기수. 금일 2000시에 알렉산더 발 보급특급이 발차한다. 원래 무정차로 베어 하이브 착 예정이지만 레인저 사령부 특별 요청으로 버그 파이크 관문에서 잠깐 설 거다. 하차 후 협만 방면으로 설상기동해서 접근하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더 있으십니까? 이만 내려가서 장비 준비하겠습니다.”


  이그나츠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아, 하나. 노턴 타격대장이 벼르고 있으니 할 일은 해 놓고 출발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이상.”


  “아니, 사령관님. 특무…….”


  “이상이라고 했는데. 나가 봐.”


  얼마간 더 항변해 볼 수는 있겠으나 체면만 구기고 말리라. 나가라고 딱 자르기가 무섭게 서류철을 노려보기 시작한 상관을 도로 일으켜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메르세데스는 일리아나의 옆구리를 콕 쑤셨다. 크고 작은 두 레인저는 합을 맞추어 부동 자세로 거수 경례했다.


  “메르세데스 노스윈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일리아나 노스윈드, 명령 수행하겠습니다.”


  대강 받아 넘기는 사령관을 건너편에 두고 문이 닫혔다.


  그리고 두 여인은 사령관실을 나서기가 무섭게, 약속이라도 한 듯 마주봤다.


  “망한 거 같은데, 이거.”


  “망하기만 했겠어? 존나 망한 거야. 카테터가 콱 깨진 거라고.”


  “하아……. 어떡하지? 특무라고 하면 타격대본부에서 장비 더 내 주는 거지? 간단하게 브리핑하겠다더니, 진짜 별 거 없게 하시네.”


  메르세데스는 무슨 개소리냐는 듯 얼어 죽은 플라나리아 눈을 하고서 친구를 쳐다봤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가서 청소부터 해야지. 노총각 타격대장한테 맞아 뒤지기 싫으면.”


  일리아나는 말없이 쯧, 하고 혀만 찼다. 애써 말만 안 하고 있던 모양이다. 똑똑하고 눈치 없는 계집애, 그런 방백이 흐르는 것 같았다.


  노스윈드 전우조가 직속상관의 청소 검열에서 놓여난 건 1800시를 조금 넘어서였다.


  장구류 세척과 각 잡기는 물론이거니와 문틈이며 보일러관의 녹 조각 하나하나를 끌질하며 오만 소리를 다 들어야만 했다. 입이 방정이라고 메르세데스가 자초한 게 컸는데, 따지고 보면 그 때 화낼 사람은 저가 아니었냐는 말을 기어이 입 밖에 내고 만 것이다. 특무가 있어 다행이지 자칫 명령불복종 명목으로 자정 넘어까지 방 구석구석을 기어 다닐 신세였을지 모른다.


  녹초가 되어 개인군장을 갖추고 다시 방설통로를 따라 체인 컨베이어를 탔다. 반극성기라곤 하나 이렇게 여느 설원에서는 극광이 뜰 즈음이라면 겨울이 송곳니를 드러내기 마련. 어깨총을 한 채 설상복의 결속을 점검하고 방한포 조리개끈을 재차 갈무리했다. 온갖 기계장치로 검붉은 알렉산더의 순환계 안에서, 눈위장무늬가 잔광을 받아 수십 가지 백색으로 반들거렸다. 인간들이란 기껏해야 그런 찰나의 흔적으로만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법.


  연결통로를 오가며 하이브 북서쪽 방면 방설통로로 빠져나가는 데 한 시간 즈음 걸렸다. 채광창으로 보이는 너머에는 태양이 흔적도 없고 하룻눈마저 땅거미 빛깔로 거무죽죽하니 흉측했다. 이제 밤이었다. 줄곧 오도카니 서 있어 그런지 하반신이 냉해 두 여인은 엉거주춤 몸을 떨었다. 요도관에 얼음물이 고인 것처럼 불쾌했다.


  어둠을 두른 엔셀라티카가 보였다. 곧장 그레이트 크랙 쪽으로 꺼진 사면을 아래로 천년설과 빙설주, 얼음벽이 겨울의 영역에 모진 선을 그었다. 일몰 후에도 그런 지형이 아스라이 드러나는 이유란 인간의 세력권이 그 너머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와 일리아나는 타고 온 블록에서 내려 안내선을 따라 얼마간 걸었다. 승강 컨베이어로 갈아타야 했기 때문이다.


  물류대원들이 보급특급에 실을 물자를 그레이트 크랙으로 내려 보내느라 일대 구역에는 그야말로 난리굿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렉산더 하이브라는 강철 거인의 동맥 어드메일 테니까. 노스윈드 전우조는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작열차를 징발한 것도 아니고, 화물 운송 노선에 빌어 타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괜히 텃세만 심하지 않을까?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반겨 주는 사람이 있었다. 차림새로 보아 선임 물류대원인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보급특급 편으로 원정 나가실 분들이죠? 레인저 사령부에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렴요. 두 분 장비는 저희가 수령해서 작열차에 미리 실었습니다. 최후미의 8번 화물차입니다. 두 분 타실 수 있게 조금 공간을 마련해 놨는데, 객차가 아니다 보니 난방은 일절 안 됩니다. 레인저분들은 설상키트를 쓰시지요? 승차 중에 그걸 켜 두셔야 할 겁니다.”


  환영은 환영이고 분주함은 분주함인지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졌다. 외부인격인 둘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는 목청을 높였다.


  “야, 안톤! 레인저 분들 먼저 내려가시게 거기 승강 블록에 자리 만들어. 군소리 말고 빨리! 거기, 그거 밑으로 내려 버리면 되겠네! 가시죠.”


  “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기는 저희가 고맙지요. 무슨 급한 임문진 모르지만 아무쪼록 수고하십쇼.”


  선임 물류대원은 감사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훌쩍 가 버렸다. 메르세데스와 일리아나는 얼른 바닥에 받쳐 세웠던 보우건을 끌어올려 어깨 총을 했다. 한 쪽은 왼어깨에, 한 쪽은 오른어깨에. 이삼 분쯤 지났을까, 쇳덩이가 끔찍하게 우짖더니 곧 컨베이어 블록이 천천히 그레이트 크랙 아래로 내려지기 시작했다.


  하이브에 면한 그레이트 크랙 서쪽 사면을 수직으로 뚫어 내린 갱도를 60미터 가량 타고 내려가자 위쪽과 아주 판박이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에크런드 관통선의 네 선로와 승강장이었다. 물류대원들이 손대차로, 작열로대차로 화물을 나르느라 분주한 가운데 두 레인저는 눈치껏 슬금슬금 걸었다. 8량으로 웅장한 화물차는 벌써 작열로에 탄을 양껏 머금었는지 불과 재로 요란뻑적지근했다.


  거대한 크레바스에 깔린 복복선은 언뜻 비현실적으로 보이곤 한다. 메르세데스는 임무 덕분에 알렉산더 역에 몇 번 드나든 적이 있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까마득한 빙벽, 겨울이 빚은 그 간수와 인간 문명의 동맥이란 참으로 동거하기 어색한 법. 빙괴나 눈사태에 맞서 천 수백 킬로미터씩 치달리는 건 기적에 준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삭풍이 믿기지 않으리만치 서늘한 것처럼 인간들 역시 가공하게 부단한 데가 있었다. 겨울에 맞서는 건 수단이며 목적이기에!


  8호차 곁에는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알은체하는 물류대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레인저분들이시죠? 물류대 두린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승차해 주세요. 저기에 따로 실은 게 두 분 쓰실 원정 장비라고 들었습니다.”


  “승차……. 이런 데 짐짝처럼 실려 가는 걸 승차라곤 안 할 것 같은데…….”


  일리아나가 구시렁거렸다. 물류상자 사이에 겨우 둘이 몸 뉘일 공간뿐인 데다 졸지에 싸늘한 강철 바닥을 베고 누워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두분이 내리실 버그 파이크 역에선……. 승강장에 정차하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저속으로 통과하게 되는데, 그 때 뛰어내리시면 될 것 같네요.”


  “예?”


  “조금 당황스러우실 건 아는데, 저도 그렇게 전달받은 거라…….”


  두린이라는 물류대원은 힐끔거리며 우물쭈물했다. 위에서 까라니 까지만, 괜히 레인저들 성질 건드리는 역만 떠맡은 셈이니 어쩌랴? 고생한 게 많은 두 여인이 포기가 빠르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 할 만했다.


  “여하튼 조금 편하게 빨리 가는 게 어디겠어요? 그렇죠?”


  메르세데스는 싱글싱글하게 말했다. 웃어넘기는 건지 비아냥거리는 건지 저도 모를 일이었다. 사내가 황망하게 달아나 버리자 일리아나를 쳐다보며 괜히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브리핑 들을 땐 그야말로 대수롭잖게 생각해 버렸는데! 무슨 갑이나 관처럼 네모반듯하게 짜인 자리가 참 현실적으로 우스꽝스러웠다. 일리아나도 그만 같이 낄낄거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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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8.12.27. 20:36
고된 쪽으로도 특무였네요 ㅋㅋ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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