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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뭐하세요!(가제) 1 - 9. “운명의 복선에는 억지가 따른답니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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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56 Jan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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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Project_So
협업 참여 동의






     “……저기, 선율 씨?”

     “읏차, 아? 네?”

     “뭘 하시고 계신 것인지 여쭈어 보아도 괜찮은지요.”

     “아하하……그러게요.”

 그녀는 손에 들린 방석 겸 쿠션을 정돈하며 난처한 듯 웃었다.

 적당히 식은 차를 한 모금 머금다가 삼켰을 그 시간. 그녀는 단어 그대로 자신을 정돈하여 올려두듯, 방석 위에 단정히 앉았다. 단지 안절부절 하고 있는 것뿐이겠지만.

 정좌한 그 모습이 선율이의 모습과 어울리기 그지없었다. 자세가 주인을 찾아가기도 참 쉽지 않은데.

     “그렇게 기대되는 듯 행동 해주셔도 제 쪽이 더 난처해진단 말이죠.”

     “하지만,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의견인 걸요!”

     “………뭐,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서도.”

 이미 충분히 착실하여, 과해보이는 인상을 가진 내 정면의 여자아이는 진지하게 심각한 표정을 잠시 동안 머금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기대되는 눈빛으로 하여금 표정을 갈아치우더니, 익숙한 듯 예의 대본을 자신의 품으로 가져가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어떤 대사를 연기 해 드리면 될까요? 역시 그 때 아저씨가 들으셨던 대사가 괜찮을까요?”

     “뭐, 그게 괜찮을까나. 익숙하기도 하고.”

     “그럼 아마 이 페이지에……아윽. 지금 와서 느끼는 거지만, 의식하니 꽤 부끄럽네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살짝 어긋내곤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제로 살며시 보이는 그녀의 뺨과 귓불엔 희미한 다홍빛이 표면에 드러나 있었다.

     “무리라면 딱히 여기서 그만 두어도 상관은 없다만.”

     “무리라뇨!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린 일인걸요! 오늘 아저씨에게 꼭 제 목소리에 대한 평가를 듣고 말겠어요!”

     “……미묘하게 목소리에 담긴 힘이 달라진 것 같은데.”

 그녀는 내 구시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는 하는 걸까, 대본을…아마 그 당시 내가 들었을 선율이의 대사가 쓰인 페이지를 구멍을 뚫을 기세로 바라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선율이의 눈동자를 바라보기가 무서웠다. 아마도 그 눈동자는 기대와, 그 기대에 비춰져 발해진 열의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았기에.

 나의 우유부단함이 그녀의 기대감을 막연하게 높여만 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기대치가 점점 쌓여가는 만큼, 내 부담감의 크기도 막연하게 쌓여만 갔다.

     “안 좋은데…….”

 생각으로만 했던 것이 소리로 하여금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내 쓸모없는 버릇 중 하나였다.

 여하튼 그런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는 있을까. 내 맞은편의 그녀는 작게 들리는 콧노래와 함께 대본과 치열한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작은 입술의 뻐끔거림과 함께.

     “내가 그 때에 선율이를 처음 보았을 때…… 아니, 그 당시의 상황에서 너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너는 어떤 연기를 하고 있었니?”

     “아니아니, 차라리…… 선율아, 그 대본 나도 조금 자세히 읽어볼 수 있을까?”

     “네? 대본 말씀이신가요?

     “응. 난 그 때 네가 어떤 상황을 연기한 건지 알 방도가 없으니까.”

 사실 이게 핵심이다.

 난 이걸 깨닫고 확인하기 위해 다시금 그녀의 연기를 듣는 것이리라. 그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더 이상 아무도 필요 없는 천재일지, 아니면 나사 빠진 천재일지.

 앗. 어차피 천재인가. 조금은 싫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내 자신은 일종의 천재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선율이는 나에게 넙죽 대본을 건넸다. 종이뭉치를 다시 건네받은 나는 그녀가 했던 연기의 큰 흐름인 5~7페이지를 자세히 훑어 내려갔다. 당시에 들려주었던 그녀의 연기를 떠올리며.

      『오지 마! 오지 말아줘……제발…그냥…사라져줘…』

      “더 이상 가까이 오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아, 나도 이렇게만 있지 않을 거야……!”

 서서히, 그리고 선명히 떠오르는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 더하여 동시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다시 들려오듯 선명하게………

     “어? 선율아? 방금……”

     “……어떠셨나요?”

     “어……미안하지만, 다시 한 번 들려줄 수 있겠니?”

     “힘내 볼게요.”

 선율이는 보기 좋게 허리를 펴고서는 작은 입을 열어, 자신으로 하여금 목소리로 이 공간을 진동시켰다.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변하는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그녀와 눈을 맞추며 연기를 가슴으로 하여금 듣는다……아니, 들으려 노력한다.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연기를 이해하려, 조금이라도 그녀가 원하는 해답에 가까워지기 위해. 아마도 무언가를 듣는 데에 필사적이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지 마! 오지 말아줘……제발…그냥…사라져줘….”

      “더 이상 가까이 오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아, 나도 이렇게만 있지 않을 거야……!”

 절박하다.

 절박하면서도 분명 무언가……안타깝다.

 그 안타까운 마음은 그 여주인공의 외침에 있으리라. 

 사랑하다 마지않는 사람을 내치면서까지. 그가 더 이상 불행하지 말아주었으면, 이 앞으로 덮쳐 올 불행과 비극은 자신 혼자만으로도 족하다는 듯한 열연.

 ……그녀의 목소리가 멎어든다.

 쩌렁쩌렁하면서도 한없이 맑았던 음색의 목소리가 방에서 사라질 즈음에, 선율이는 천천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가슴 위로 올라간 그녀의 오른손 끝은 희미한 떨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먼저 고마워. 그 당시 들었던 목소리나 연기와 거의 똑같은 훌륭한 목소리였어.”

     “가……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단호한 목소리에 선율이는 다시 등줄기를 곧게 세웠다.

 툭 까놓고 말해 그녀의 목소리는 훌륭했다. 평소에 들리는 선율이의 목소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도 발성이 좋았다. 아마 편하게 이야기하듯이 발성하면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반증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성우 스킬들에 대한 숙지는 완벽에 가까워보였다. 물론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다르겠지만, 일반인으로써의 듣는 입장으로는 불편한 구석이 전혀 없는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목소리였다.

 ……기본적으로는 말이다.

     “선율아. 네가 직접 연기했던 등장인물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을까?”

     “앗, 네!”

 선율이는 홀로 골똘히 생각하는 듯 입술을 꼭 닫더니, 대본을 바라보며 천천히 이야기했다,

     “제가 연기했던 여주인공은 자신과 가까워지면 불행해질, 정말 사랑하는 남주인공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며 거짓을 말하지만, 목소리로는 그것을 숨길 수 없다는 상황이에요.”

     “응.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 고마워. 이걸로 확실히 내 의견을 정리할 수 있었어.”

 이걸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여주인공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가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 되었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는 확실한 선율이의 문제. 아마도 대다수의 성우 지망생들 또한 많이 삐끗할 것 같은 그 문제.

     “잘 들어 선율아. 너는 분명히 남주인공에게 퉁명스레 대하면서도, 목소리로는 그에게 향하는 사랑을 숨길 수 없는 여주인공을 연기했겠지만……내가 듣기로는.”

 간단하다.

 그 때에 내가 그녀에게 느낀 감정은 어떠했는가.

 내가 그녀와 엮인 도주사건 당시에, 그녀가 발하는 목소리를 듣고 어떤 행동을 했는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떠올려보자.

 그 절박한 상황, 비로소 나는 “가만히 있으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라고 간신히 생각 해 내었다.

 ……분명 내가 애니메이션의 시청자의 관점으로 저 연기를 들은 것은 아니다.

 저 당시를 실제 상황이라 인식하고 판단 한 것이기 때문에 다르게 봐야 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율이의 말 그대로, 캐릭터에게 색채를 입히기 위해 그 캐릭터로써 연기한다면, 나는 당시 급박한 상황의 남 주인공으로써.

 그렇게 들었을 때……

 그런 관점으로 그녀의 목소리에 호소 당했을 때엔……


     【넘어져있던 마룻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닫아놓은 문을 거칠게 열었다.】

     【연이어 바로 옆 반의 뒷문, 그 소녀가 있는 그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로 거칠게 손을 뻗은 그 순간이었다.】

         ─콰앙


 ………단지 그것이 내 머릿속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실제로 느껴졌었던 그 당시의 선명한 기억이었다. 아직도 아찔했었던 당시의 감각이 손가락 끝을 달리고 있었다,

 소녀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하는 연기.

 그 부분까지는 같다. 너무나도 애절하고 사랑스럽고……안타까웠다.

 하지만 어떻게? 그 소녀는 나를 사랑하기에 멀리 떨어지라고 한 것일까?

 내가 느낀 것은. 그 소녀가 누군가를 보고 느낀 「공포」 가 아닌가.

     “……….”

     “……….”

 내가 느꼈던 여주인공의 공포에 대해 선율이에게 감상을 끝냈을 즈음엔, 꽤나 무겁게 공기가 내려앉았다. 나의 감상. 나의 식견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받아들인 선율이는 고개를 천천히 숙이더니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살짝 보일 정도로 나 또한 고개를 숙여보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선율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꼭 닫힌 입술에서, 필요 이상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녀의 기분을 피부로 접할 수 있을 것 같은……

     “저에게 근본적으로 부족한……것일까요.”

     “……아아.”

 사실 그녀 또한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그리고 내가 이 이후에 어떤 말을 하게 될 것인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방금 전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해냈다.

 나는 숨을 고르곤, 슬픈 듯 눈이 풀린 선율이에게 내가 품어둔 소리를 쏟아냈다.

     “선율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분명 사랑에 빠진 소녀였어. 아마 자신의 남자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여자아이. 그렇기에 아낄 수밖에 없는 애절한 사랑.”

 선율이는 조용하게 고개만을 끄덕였다.

     “……선율이의 연기는 정말 좋았어. 무언가 정말로 짜내는 것만 같았고,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의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려 했던 것만큼은 정말로…아무것도 모르는 나라도 느낄 수 있었어. 목소리도 맑았고. 하지만……”

 조금은 숙연해진 분위기. 그 분위기 속에 나는 차를 한 모금. 선율이도 차를 조심스레 한 모금.

 나는 잠시 정체된 무거운 말을…내려놓았다.

     “하지만 선율아. 나는 사랑을 느낄 수가 없었어. 어쩔 수 없이 보내는 애절함이 느껴지지 않았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해줄 수가 없었어.”

 아직 모르는 것일 뿐이다.

 아직 어리니까 모르는 것일 뿐이다.

 사람의 감정이란 한끝 차이니깐. 조금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가장 힘든 길이란 것은 나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선율이 너에게 부족한 것은 감정이자 경험이라고 생각해. 너는 다른 아이들보다 성숙하지만, 또한 가장 어려. 어리고 아직은 작아.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모르고 소화할 수 없었던 것뿐이야. 아까 이야기 했던 대로, 네가 그 당시에 들려준 목소리는……절박함과 공포였단다.”

     “그렇……군요.”

 선율이는 푹 수그린 채, 고개를 깨작깨작 흔들었다.

     “물론 그 연기가 어려웠던 것뿐이야. 게다가 저런 복잡한 여주인공의 연기는 프로들도 몇 십번 연습해야 숙달될 수 있는 걸 거야……아마도.”

     “게다가 선율이는 사랑이란 감정을 아직은 잘 모를 테니까…….”

 통하는 게 바보 같아 보일 정도의 급박한 위로를 그녀에게 전했다. 허둥지둥대며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나쁜 의미로 감정이 훤히 보이는 목소리였을 것이리라.

 그녀는 완벽한 천재가 아니었다. 자신의 세계에 범인 따위는 방해밖에 되지 않는……그런 천재는 아니었다. 조금은 나사 빠져, 누군가가 필요한 천재였다.

 그녀의 모습에 어쩐지, 저도 모르게 안심하고 말았다. 이윽고 자신을 향해 머저리라고 소리 질렀다. 제 본심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내 자신이 그녀에게……선율이에게 필요한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안심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천재라는 것을 알고 나서 안심한 것이다.

 자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찔린 듯 허둥대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 훤히 드러난 그 목소리에, 선율이가 그 속마음을 알아채지 않았으면 하고 빌 수밖에 없었다.

     “……뭐예요. 별 도움 안 되실 거라고 말씀 해 주시고서는 굉장히 자세하게, 많이 알고 계셨잖아요.”

 그녀는 작은 조각의 웃음을 입에 머금고는 말했다.

     “아니 난 그저……그 때를 조금 상상하면서……”

     “그럼 그 때에는……어떠셨나요?”

 그녀에게로부터 돌발 질문이 들어왔다.

 그 당시의 감정. 가장 감정이 격렬하게 바뀌어갔던 2차 도주사건 당시……인가.

     “그 때를 생각하면……미묘하게 화끈거리는데.”

 그리고 생각이 많아진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녀의 목소리가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일어나 버린 사건이니까.

     “뭐야……그렇게 생각하니까 터무니없는 천재잖아. 연기를 듣고 실제 상황이라 오해해버릴 정도라니.”

     “아뇨. 역시 저는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아버렸답니다. 근본적인 부분부터 연습이 필요하게 된 걸요.”

     “근본적인 연습……말이지.”

     “후후후…….”

 기억을 되짚듯, 그녀는 쓸쓸하게 웃음을 남겼다. 그와 동시에, 지상 1층 현관의 커다란 괘종시계가 6번 울리기 시작했다. 흐르는 시간을 놓쳐가며 선율이와 어울리고 있으면, 벌써 오후 6시였다. 지하에 창문이 없어 확인조차 불가능하지만, 밖은 노을이 뉘엿뉘엿 내려오고 있을 것이겠지.

 그리고선 마주보는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가는구나.”

     “마지막.”

     “……헤?”

     “오늘의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어요.” 

 그녀는 마치 노을의 역광을 받아 빛나는 듯 우뚝 서서 말했다. 지하이기에 노을은커녕 역광도 느낄 수 없었지만. 하지만 그 풍경을 눈앞에 펼치는 듯 하는 분위기의 선율이는, 단지 나에게 시선을 맞추며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이 공간을 울렸다.

 속삭이는 달콤한 목소리였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소리보다 또렷하게 들려오는 것 같은─

     “아저씨는, 사랑을 알고 계신가요?”

     “……….”

 그녀는 더 이상 떨리지 않는 손끝으로, 담담히 말한다.

     “알아가고 싶어요. 앞으로도 더더욱. 제가 알 수 없었던 감정들을. 제게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한 감정을.”

     “한선율……”

     “지금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들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아갈 수 있도록. 이 감정을 아저씨에게 알려드리기 위해, 연기할 수 있도록.” 

 신발주머니 앞에 넣어두던 직접 쓴 대본을 책가방 한 구석에 구겨 넣으며 선율이는 웃어주었다. 현관에 앉아 구두를 신고 있는 선율이의 모습에 조금은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만 같았다.

     “내일도 뵙는 걸로…괜찮나요?”

 언제나 느끼지만 반칙 덩어리였다. 한선율이라는 존재는.

 저런 아쉬운 것 같은 쓸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하는데, 애초에 거부권이 없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언제든지 와. 수업만 끝나고.”

 선율이는 빙긋 웃으며 그 쓸쓸하게 느껴지는 뒷모습을 숨기듯 빠르게 돌아섰다. 그리고선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했다.

 나는 가볍게 손을 털어주듯 인사 해 주었다.

 그리곤 다시, 나지막하게나 다시, 조금은 그림자 져 있는 선율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조금은 급하게 가방을 챙겨서 문을 여는, 그런 선율이의 뒷모습에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현관을 닫기 찰나의 시간, 미닫이문을 닫던 도중이었다.

     “……사랑이 아니었나 봐요.”

 그 소리는 조금은 쓸쓸하게, 나지막히 들려왔다.

 애절하고 미련하게 들리던 그 한마디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던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미 과거의 증거가 되어 차갑게 식어버린 찻잔 두 개를 넋 놓고 바라보며, 몇 조각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




     “늦었잖아!”

     “죄송합니다….”

 대학교 근처 작은 카페의 한 귀퉁이에 노골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여성과 나머지 조용한 한명이 앉아있었다.

     “난 너를 시간약속 하나 지키지 않는 아이로 키우지 않았단다.”

     “아, 예예. 죄송합니다.”

 받아주기 힘든 대사들만 내뱉는 혜율을 적당히 받아넘기며 비어있는 옆자리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였다.

 팔짱을 낀 채 맞은편 좌측에 앉은 권혜율. 그리고 그 옆에 앉은 건……신유라였다.

 신유라. 유라는 불편한 듯 혜율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당연한 노릇이다. 우리는 그 날 이후 한 번의 연락도, 해후도 없이 만난 것이니까. 나 또한 그녀의 손을 뿌리친 장면이 머릿속에 잔뜩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기억조차도.

 이쯤 들으면 혜율이 강제로 끌고 온 줄 알겠지만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혜율이 하교 후 나를 만나러 간다고 하자 쫄래쫄래 따라왔다곤 하는데, 모르겠다. 대체 유라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가 말이다.

 따끔따끔 그녀의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 만, 애써 무시하고 음료를 천천히 입에 넣었다. 적당히 식은 따스한 아메리카노였다.

 정적. 그 사이에서 한숨을 푹 쉰 혜율은 “뭐 늦은데 별 이유는 없고? 딱히 상관은 없지만.” 이라고 골치 아픈 듯 물어봤다. 그 목소리에, 이 카페에 다다르기 전의 시간을 회상했다.

 그나마 말쑥하게 차려입은 나는 초등학교의 5교시 즈음 학교를 미리 빠져나와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던 도중 유라까지 카페에 오게 되었다는 제보를 듣게 되었다.

 우유부단히 어쩔까 시내를 서성거리던 나는 결국 쫒기듯 카페로, 약속장소에서 유라를 대면했다.

 결국 반은 유라 반은 내 잘못……아니, 온전한 내 잘못이었다.

 선율이에게도 나쁜 짓을 해버렸다. 그리 웃으며 “언제든지 와” 라고 말해놓고 자리를 비웠으니.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비워둔다 쪽지를 남겨두긴 했으나 찜찜하긴 그대로였다. 그녀니까 이해는 해주리라 생각은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뭔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별거 아니야. 늦은 이유는 뭐…….”

 나는 유라 뒤편을 가리켰다. 주성 초등학교가 있는 방향이었다. 혜율과 유라는 학교업무에 문제가 있어 늦었을 거라 생각하겠지. 내 손가락이 유라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건, 내 자신만 기억하기로 했다.

 길게 자란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말면서 얕은 한숨을 뱉었다. 시선을 어디에 두고 말하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그 고민을 잊게 만들 목소리를 낸 것은, 혜율이었다.

     “뭐 시간이 많진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지금 진행 중인 과제에 제안이 있다고?”

     “제안…?”

 유라가 낮게 고개를 들었다. 모르는 눈치를 보아하니 아무런 대책도, 설명도 없이 따라온 것 같았다.

 나는 혜율의 말에 대한 대답을, 단어를 골라가며 대답했다.

     “어. 굳이 말해주자면 좋은 소식은 아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작업 추가에 대한 건이니까.”

     “………뭐라고?”

 혜율은 눈썹을 들썩였다. 눈을 휘둥그레 뜨는 반응을 기대했는데, 역시 놀라움보단 언짢음에 대한 반응이 더 가깝게 느껴진 모양이다. 유라는 그저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작업추가란 건 작화 관련 작업추가를 뜻하는 걸까나.”

     “아냐. 내가 주목해줬음 좋겠는 건 이 부분이야.”

 나는 기다렸다는 듯 콘티를 꺼내 펼쳤다. 오늘 새벽 알바를 하며 고심한 결과물이다. 더빙이 필요할 장면의 콘티만 골라 가져온 것이다.

     “지금 우리가 제작중인 애니메이션은 소리가……정확히는 목소리가 없는 상태야. 뭐, 더빙이 없는 애니메이션도 많이 있고 나도 거기에 입각해 구상한 거긴 하지만. 점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운드 볼륨의 부재가 크게 다가올 것 같아. 그렇게 생각했어.”

 내 자신이 이상할 정도로 말이 술술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선율이의 구실 뿐만이 아닌, 내 자신도 이 애니메이션이 불완전하다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신반의하던 혜율도 어느새 유라와 같은 자세로 내 말에 경청해주고 있었다.

     “구상에 콘티까지 진행한 건 나지만, 나도 반신반의한 마음은 어딘가 남았는지 본능적으로 콘티에 도망칠 구석을 만들어 놨어. 녹음 작업을 해둘 수 있는 구석. 작화 수정을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구멍을. 이쪽의 콘티를 봐줘.”

 후반의, 절정부에 달하는 하이라이트 장면.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입을 뻐끔거리며, 목소리가 없는 상태로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봤자면, 소리 없이도 대사를 유추할 수 있을 그런 장면. 한 마디로, 연출이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연출이었잖……”

     “응. 하지만.”

 혜율의 말 대로였다 콘티를 여러 번 정독했다는 그녀도 역시 알고 있었다. 만, 나는 그녀의 말을 끊고 말을 이어갔다.

     “역시 뭔가 충족되지 못한 느낌을 받았어. 굳이 어설프게 목소리를 추가해 연출과 장면의 아름다움만 부서질 수도 있겠지. 리스크가 큰 선택이야.”

 하지만 나는, 굳이 이 길을 제안하고 있다. 두들겨보지도, 알아보지도, 건너보지도 못한 돌다리로 조원들을 들이밀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객기였다.

     “굳이 마지막 장면 뿐 만이 아니라, 중간 중간 스쳐 지나가는 부분에도 감정이 충분한 목소리 연기를 넣어보고 싶어. 그리고…”

     “……저, 유진아?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드물게도 유라가 작게 손을 들어 발언권을 찾아갔다. 제 혼자 쫒기듯 말을 꺼내던 나는, 마저 나오려던 말을 급하게 삼키곤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이미 그려버린 작화들도 수정이 필요한 거야……?”

     “아냐. 하이라이트를 제외하면 나래이션이나 독백 비슷한 느낌으로 들어가는 사운드니까 굳이 그려진 작화를 수정할 필요는 없어. 이미 짜여진 작화 스케줄을 부술 필요도 없고. 콘티는 오늘 내가 수정해온 부분만 참고하면 될 거야.”

     “그럼……아, 이건 조금 노파심 같은 거니까 흘려들어도 돼.”

 ……대체 뭘 물어보려고.

     “원래 목소리가 없는 걸 전제로 짠 장면인데 목소리를 넣게 되어버리면 부자연스러워진 달까, 번잡해지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했어?”

     “확실히 날카롭네.”

 작게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환기되기는커녕, 유라의 입을 더더욱 꼭 닫혀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순한 노파심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꽤 무겁게 생각하던 문제인 듯싶었다.

     “하지만 뭐, 안심해. 어제 하이라이트 쪽 콘티나 원화를 돌려가며 내 목소리로 시뮬레이션 했었는데, 이게 또 생각보다 괜찮았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넣는 방향으로의 콘티를 의식하고 만든 탓인지 몰라도.”

     “으음……….”

     “어? 잠깐.”

 납득하는 듯 고개를 천천히 단 한번 끄덕이는 유라. 그 옆의 혜율은 뭔가 떠오르듯 목소리를 튕겼다. 번뜩이는 그 목소리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쬐까 신경 쓰이는 말이 스쳐지나간 것 같은데.”

     “뭐냐.”

     “……그러니까, 네가 남주인공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시뮬레이트 했다고? 편의점에 혼자 않아서?”

 아차.

 나는 현실이 된 불안감에 천천히 고개를 세로로 저었다. 마치 방금 전의 유라와 같이.

 그러자 반응은 재빠르게 들려왔다.

     “…풉…큭…큭킥……킥힉히히히이힉……”

     “대놓고 웃는 걸 윤허하느니라.”

     “이히아하하하하학!!”

 일부러 후루루룩 소리 내서 커피를 들이킨 나는 일부러 못 듣는 척 했다. 하지만 “이힉” 이나 “으히히힉!” 하며 천박하게 웃는 혜율을 무시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RPG 게임의 저명한 탱커들도 저 정도의 어그로는 힘들 거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다. 괜히 웃어도 된다 말해버린 듯싶기도 했다.

 혜율이 너무 신경 쓰이게 웃는 탓일까, 저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느껴지지도 않았을 유라의 시선이 강하게 꽂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재미있냐?”

     “이힉……그럼 당연하지! 너 같으면 안 재미있겠냐?”

 사실 재미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에히힉…아으흑…으으, 아으, 그래 그래. 미안…너도 이해하지?”

     “어. 그래. 아무렴.”

 “아무렴”을 제외한 말을 기계적으로 뱉었다. 유라조차도 고개를 돌려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저 조신한 신유라조차도 터뜨린 것이다. 격렬한 혜율의 반응도 이해하기로 했다. 난 내가 한 행동의 파괴력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라는 웃음을 멈추려 애쓰고 있었고, 이미 웃음을 목 뒤로 삼킨 혜율을 음료를 멀뚱히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웃는데 숨을 그렇게나 쓴 거냐.

 코로 한숨을 푹 쉬었다.

 음료를 마신 혜율의 분위기는 차분해져 있었다. 아니, 비정상적일 정도로 급격히 차분해져 있었다. 유라도 곁에서 웃는 혜율의 존재가 없으니 금방 웃음이 멎어 있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던 유라는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표정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휘감으며 사색에 잠겼다. 이는 혜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라와 비슷한 사색을 품은 그녀는 골똘히 생각만을 계속 하고 있었다. 단지 쓸모없는 열의에 가득 차 있던 것은, 어느새 나 뿐 만이었다.

 그 짧은 적막을 부수며 말을 꺼낸 건 혜율 쪽이었다.

     “어째서야?”

     “어째서냐니?”

     “아, 응. 딱히 뭐라 하고 싶다거나, 지적하고 싶다거나……그런 의도는 없었어. 날카롭게 들렸거나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정말이야.”

 내 표정을 읽은 걸까, 자신의 목소리에 미묘한 가시가 박혀 있었음을 자각한 것일까. 혜율은 제 발이 저린 것처럼 먼저 사과를 하곤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뭔가, 의아한 듯한 그녀의 표정엔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내가 의아했던 건……네 행동이야. 지금의 네 행동 그 자체 말이야. 한유진.”

     “……나?”

     “응. 물론 솔선해서 과제를 도와준다 했던 것도 너였지만, 획일화된 작업 테이블을 건드리지 않는 한도에서, 구태여 솔선하지 않는 한도에서 정해진 일 만을 도와줬어. 네가 학교에 다닐 때도……그랬었고.”

     “……까놓고 말해, 이런 제안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유진은 여기서 처음 봤어.”

     “뭐, 그랬었나.”

     “……그랬었는걸. 유진이 너는.”

 혜율의 목소리와 내 비아냥에 섞여, 유라의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들리지 않게 독백하려 했던 것 같았지만, 내가 유라에 신경이 쏠렸던 탓일까 선명하게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유라의 말에 무어라 덧붙일 수 없었다. 그저 입을 다물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그렇게 작품을 만들고 싶은 네 마음인 걸까. 네 생각은 대체 어디쯤에 가야 발견할 수 있어? 네 마음은 어디에 있어?”

 한유진 공인 능력 있는 조장 권혜율은 피할 수 없는 진지한 질문을, 날카로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결여되었다”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마음을 붙잡고 새벽 편의점을 지키던 나는 문득 사색에 덮쳐졌다. 단지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특기였다. 하지만 이렇게나 의미 있는 사색에 잠기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단지 그 뇌리의 편린에는 계속하여 선율이의 모습이 투과되어 내 주위를 돌고 있었다. 숙직실을 떠나기 전 그녀의 그림자가 아직도 내 육신에 들러붙어 있다──그런 붕 뜬 표현이 적절할 것 같은 이질적이고 신비로운 존재감.

 그 원인은 아마 자신에게 있었다. 내 자신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책임 없이 누군가에게 부족한 것을 지적하는 일련의 행동.

 내 자신에게는 익숙했던, 끝이 좋지 않았던, 끝까지 자신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기억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인 것일까.

 단지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어른스럽고, 의존이 심한 저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찾아내기 시작했다. 황혼이 내린 봄날의 편의점 안에서.

 지금 제작중인 이 작품에, 우연찮게 그녀를 닮아버린 히로인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목소리를 그녀가 연기한다. 연기할 수 있다는 경험이 생긴다면 그녀의 약점을 조금은 메꾸어줄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에 홀린 듯이, 단지 그렇게 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실제로 혜율과 유라, 더 나아가 이 자리에 없는 태훈과 다은에게 이 일을 설명하고 제안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결과와는 상관없는 모두의 일에……나라고 하는 한낱 그림쟁이는 염치없는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공간에서는 한낱 죄인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겁쟁이인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진 못했다.

     “그렇게 만들어보고 싶어. 단지, 그렇게 생각했어.”

     “………하아. 아하하.”

 내 맞은편의 혜율에게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바뀐다면 정말로 바뀌는 것이네.”

     “……헤?”

     “………….”

 멍청한 표정을 짓는 나와, 조금 낯빛이 어두워지는 유라.

     “아무것도 아냐. 단지, 이렇게 제안을 해주셨으니 책임을 져 주셔야 하겠는데……”

 혜율은 가방에서 꺼낸 정사각형 포스트잇에 볼펜으로 여러 가지를 적더니,

     “에잇.”

     “야이……아윽, 뭐 하는 거야.”

내 뺨에 꾹 눌러 붙였다. 그 종이를 떼어 눈으로 읽었을 때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이, 이건………”

     “말했잖아. 책임을 져 주셔야겠다고.”

 내 뺨의 온기를 일부 흡수한 그 종이엔 ‘대사의 추가 시나리오, 스케줄테이블 수정’ 등등의, 작업에 필요한 것들이 쓰여 있었다.

 ……고집이었다. 단순한 외부인의 아집이라도 해도 좋다. 단지 그럴 뿐의 제안이 아니었는가.

     “필요한 것들을 전부 써 와서, 얻어오면 인정해주지. 아……그리고 그 녀석으로부터 추신.”

     “그 녀석?”

     “너에게 불렸다니까 전해 달라고 애걸복걸 했던 네 바보 친구 놈의 전언이야.”

 태훈의 밉살스런, 그러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분위기를 떠올리며 피식 웃은 혜율은 말을 이어갔다.

     “‘네가 무언가 말해주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라는데.”

 혜율은, 그녀들은 그 말을 남긴 채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태훈의 말을 안에서부터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아하하하.”

 바보 같은 실소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다행이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떠올리는 것을 멈췄었던 머리가 기억들을 헤집어 놓는 과정들에 골머리를 썩이며, 나는 꽤 오린 시간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




 해가 붉게 물들고 지평선 가까이 닿아갈 시간대에 나는 지겹디 지겨운 주성초 현관으로 발소리를 옮겼다.

 자전거로 달려오면서 한탄만을 반복한 결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숙직실 앞에 도달했다.

 설마하는 긴장감을 가지고 오기도 했었지만, 숙직실 현관의 상태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새 습기를 먹어버린 포스트 잇 쪽지가 떨어질 듯 붙어있을 뿐이었다.

     “뭘 기대한 건지….”

 내 자신에게 피식 웃어보며 포스트 잇 쪽지를 툭, 가볍게 떨궜다.

 열쇠 소리를 내며 살짝 녹슬어버린 현관을 소리 내어 열고선 드르륵 소리를 내는 목제 미닫이문을 옆으로 밀었을 때였다.

 색이 다른 짝짝이 슬리퍼만이 외롭게 놓여 있어야 할 신발장에, 운동장의 모래로 살짝 빛이 바랜 검은색 에나멜 구두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저번 날 아침에 고스란히 떨어져 있던 위치에 있던 실내화 가방 또한 건재했고, 어제의 회상이 되는 것만 같은 위치엔 초등학생의 책가방이 떳떳하게 서 있었다.

     “………하하.”

 있을 리 없다 하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면 일어난다. 누군가 그랬던가.

 아니, 아무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나처럼 내심 놀라 말 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을 테니깐.

 그 기운이 누군가를 가리킬 수 있을 리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향한다면 그 여자아이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 돌아오셨군요……?”

 조금은 기운 없이. 그래도 빙긋 웃는 표정으로 반겨주는 여자아이.

     “……아. 응.”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다. 분명 누군가라도 놀라겠지.

 하지만 그렇게 떨리진 않는다. 이젠 상상하지 못할 일들만 벌어질 것만 같으니까.

 그저 이런 상황에선 자신을 위해 있어주는 것 같은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웃으려 노력 해 보자.

     “……다녀왔어.”

 지금의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최선일 테니까.

 이 정도로도 괜찮을 테니까.











Writer

Project_So

Project_So

물건너 섬나라 칼럼니스트.

물건너 섬나라 LOSE社 미연시 시나리오라이터 

소설가 지망생 "한소운" 입니다.


개인 블로그 : http://blog.naver.com/n_sousi

개인 작품 :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46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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