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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뭐하세요!(가제) 1 - 11. 행복한 왕자는 선인(善人)으로 하여금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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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10 Jan 1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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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Project_So
협업 참여 동의






 하늘하늘하고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자각몽의 안에서 천천히 눈꺼풀을 열면, 느껴지는 것은 가을의 맑고도 높은 밤하늘.

 도심임에도 쏟아질 것처럼 선명하게, 높게만 보이는 별들의 빛은 내 눈을 의심케 할 정도였으리라. 나는 하늘에서 발하는 별의 반사광에 눈을 찌푸렸다.

     “……….”

 하지만 내가 눈을 찌푸린 이유는, 어두운 하늘에서 발하는 밝은 별들의, 밝음에도 흐려 터진 빛에만 있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별이 얼마나 밝아 봐야 나의 눈을 찌푸리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자신이 꿈의 심상임을 깨닫고도 구태여 눈을 찌푸릴 정도로 밝을 빛을 발하는 것이……내 옆을 길게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벚꽃…….”

─이었다.

 별빛을 잎으로 하여금 머금어, 그 빛을 증폭하여 내뿜는 것과 같이 빛나는 벚나무.

……아니, 아마 네가 보는 별빛은 이 정도의 빛이었다고 깨닫게 해 주는 것과 같은 벚의 빛.

 한 가을 밤의 별빛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이 따스한 벚잎의 움직임은 단지, 내 입을 그 꽃잎으로 하여금 다물게 하고 있었다.

 입술의 틈새로 올려진 것 같은 포근한 벚잎에,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가을’ 의 높은 밤하늘 아래에 수놓인 ‘벚꽃’ 이라니.

 물론 다른 계절에 피어나는 품종의 벚꽃 또한 세상에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품종의 벚이 이 성주 시에 심어져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없다.

 하물며─그런 벚이 낼 수 있는 빛을 발하고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간단히 이 벚은……세상에 존재하는 벚이 아니었기에.

 이 가을의 벚은……연분홍빛의 꽃잎 대신 가을의 풍취를 가진 벚이었기에.

 이 벚은 내 자신이 만들어내어 피어나게 만든, 미쳐버린 증거의 벚꽃.

 그럼에도 유려한 떨림과, 따스함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벚.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 벚이 만드는 빛에 눈을 천천히 감으며─자각몽의 수면 위로 천천히 의식을 떠올렸다.




◇◆◇◆◇◆◇◆◇◆◇




     “흐어억……”

 신음소리인지 비명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을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트리거로 작용하여 일어난 나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특이 하달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단지 나를 갸웃거리게 한 것은, 활짝 열려 있는 숙직실의 대문이었다.

 어리숙하게 열린 미닫이문까지 하여 확실하게 개방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꿈속에서 묘한 한기를 느낀 것은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얼레?”

 그 서늘한 바람이 지하의 숙직실로 흘러들어와, 이상할 정도로 축축하게 젖은 오른손을 감싼다.

 젖은 손이 서늘한 바람을 더욱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기에, 내 손을 감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할 수 있었다.

     “……………얼레리? …………헤?”

 그 옆에는 얼굴빛이 선홍색으로 변한. 상태가 좋지 못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불편한 얼굴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가 누군가에 대해, 이제 와서 누군지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겠지만.

 눈을 질끈 감고. 작고 윤기나는 입술이 조금씩의 떨림을 유지한 채로 작은 숨소리를 색색 거리며, 그 숨소리와 같이 불어오는 작은 바람이 내 팔뚝을 간질이며 자극했다.

     “서……서…선율아?”

 놀란 듯 다급하게 선율이의 이름을 불렀다. 본능적으로.

 그러자 잠결에 조금 반응 한 것일까, 속박하던 손의 힘이 일순간 들어가더니, 그 새 풀려버려 내 오른손을 자유롭게 해 주었다.

 뜨겁고 흥건하게 느껴지던 대로 내 약지 손가락과 손마디 사이, 손목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꽤나 힘 있게 쥔 듯. 붉게 물들어 있는 부분도 있었고.

     “자고 있는 거냐……아, 문도 이 녀석이 열었던 건가.”

 숙직실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선율이라면 숙직실의 대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었을 테니까. 물론 이 아이가 숙직실에서, 내가 잠들어 있는 이불 위에서, 그리고 숨소리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내 옆에서 잠들어 버렸는지에 대해서는 알 방도가 아무것도 없었다.

     “너 설마, 학교 수업도 땡땡이치고 여기서 자고 있던 건 아니겠지?”

 있을 리 없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농담 삼아 잠든 그녀에게 말했다. 당연한 듯 그녀의 대답은 색색거리는 짧은 숨소리로 들려왔지만.

 그저 잠들어있는 그녀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어 주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닫았다.

 더 이상 서늘한 바람이 흘러 들어오는 일은 없었지만, 현관문 앞에 깨져있는 익숙한 편의점 봉투와 내용물이 시선으로 들어왔다. 흰색 봉투 안에 들어있는 것은 깨져버린 암갈색 병과 그 내용물이었다. 유명한 자양강장제였다.

 깨진 위치가 창고로 쓰고 있는 신발장의 옆인 것으로 보아, 신발장 위에 올려둔 선율이의 편의점 봉투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 것으로 사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편의점 봉투 위에는

     “뭐야 이건……벚나무 가지?”

 꺾여있는 벚꽃 가지가 올려져 있었다.

 아직 싱그러움을 간직한 아름다운 벚꽃이 7~8송이 매달려있는 가지는 흘려져버린 자양강장제로부터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아마 무심천의 벚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침에 선율이가 등교하면서 꺾어 온 걸까나. 어째서 가지를……”

 엎어진 병과 편의점 봉투를 치우면서, 의심스런 벚나무 가지를 물을 담은 유리병에 담아 싱크대의 옆에 그저 올려두었다.

 벚송이는 단지 불을 켜지 않은 숙직실의 어둠에 담가져 있었지만, 연분홍빛의 벚잎을 자랑하듯, 져버리기 직전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듯했다.

 유리병에 담긴 벚꽃은 아름다웠지만……반대로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단지 그런 꺼림칙한 기분을 수면의 아래로 숨기어 전등을 켜는 것으로 어둠을 걷어냈다.



     “그러니까……단지 학교가 끝난 뒤 몰려온 졸음 때문에 잠든 것뿐이다?”

     “네…….”

     “학교 수업을 빼먹고 그랬다던가, 그런 건 아니란 말이지?”

     “수업은 제대로 들었는걸요. 평소처럼 종례를 빨리 끝내고 왔는데 문이 잠기고 불이 꺼져 있었기에……”

     “내가 있던 걸 몰랐던 거야?”

     “아뇨. 그런 것은 아니지만……죄송해요.”

     “아냐. 딱히 화가 난건 아니니까 그렇게 저자세로 나오지 않아도……”

 햇볕이 약해지고 있는 복도를 걷는 우리 두 사람은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눈을 뜬 것과 거의 동시에 복도로 나온 나는 제 몫을 다하기 위해……그리고 막 깨어난 사람과 같지 않게 정신이 말짱했던 선율이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말을 입속에 머금은 채 내 뒤를 쫓았다.

 단지 나는 한숨을 쉴 뿐. 계속 화내지 않은 채, 본인에게 잠들어버린 이유를 들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모습은 여전히, 후드의 앞주머니에 작은 쓰레기들을 넣은 상태로 터덜터덜 교사의 복도를 거닐 뿐이었고.

 언제나 와 같았다. 내 뒤를 뒤따르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와 같지 않았다만.

     “그러고 보니, 너에게 전해줄 말이 있었지.”

     “네??! 전할 말씀인가요?!”

     “……뭐야. 그 반응은.”

     “………아하하하하, 아무것도……아니랍니다.”

     “……….”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말을 뱉지 않은 채 그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는 나에게 그녀는 꼬리를 내리고 대답했다. 딱히 겁주려는 의도는 없었건만……여하튼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선율이를 추궁해보아도 원하는 대답은 듣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후 들려올 대답이나 대답할 의지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그녀에게 맡겨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녀의 시선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 수 있는 정보량은 제로에 가까웠으므로.

     “……말씀하신 ‘전해줄 말씀’ 이라는 것은?”

     “아, 그 이야기가 있었지. ……확정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뒷말을 흐림과 동시에 드르륵, 창문을 닫아 잠갔다. 흐려진 말이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기를 원했건만, 그녀의 귀는 내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야기하려고 하셨던 이야기시겠죠?”

     “아하, 도망갈 곳이 없구나.”

 구태여 웃으며 대답했다. 섣불리 그녀에게 말하려고 했었던 잠깐의 자신을 저주하며.

     “굳이 애태우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진 않은데…….”

     “굳이 그런 말씀 하시는 게 더 애태우게 하시는 거라 구요.”

     “그렇게 맞는 말만 하지 말아 줘. 생각보다 섬세한 문제란 말야!”

 순수한 목소리로 날아오는 부정할 수 없는 말들을 떨쳐내듯 후드 앞주머니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털어 넣었다.

 오랜 시간 정리가 되지 않아 쌓여버린 1층 본관의 쓰레기통을 보며 막연히 ‘내일 나가는 도중에 처리해야지.’ 라고도 생각하며.

     “일단 이야기가 짧아질 것 같지는 않으니까……그리고 꽤 중요한 이야기이니까. 안에 들어가서 말해줄게.”

     “그런가…요?”

 익숙히 본관 1층의 홀에서 지하 계단으로 향하는 나를 따르지 않은 채, 거대한 평면거울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선율이를 보며 “몸가짐이라도 정리하는 것일까” 라고도 막연히 생각해봤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건……그래. 알기 쉽게 보이는 머뭇거림이었다. ‘그녀답다’ 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정직한 머뭇거림이 뒤돌아 보였다.

 그녀에게 입을 때려는 순간, 놀랍게도 먼저 들려온 것은 선율이의 목소리였다.

     “하나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어김없는 질문 시간이구나. 저번 이후로는 조금 드물 줄 알았는데.”

     “대답해 주세요.”

     “언제는 대답 안 해줬었니.”

     “……정말.”

 눈을 감고 심드렁한 목소리로, 너무나도 진지한 것 같은 선율이의 목소리에 답해준다.

 실눈을 뜨고 바라본, 흐린 시야 속 선율이의 얼굴은 미묘하게 붉어져 있었다. 더하여 언제나와 같이 조금 건성인 것 같은 내 모습에 한없이 진지함을 머금은 선율이는 볼을 부풀렸다.

 이후 그녀는 천천히, 우리들 외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본관 건물을 맑게 울려가며 말했다. 알기 쉽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저씨와 제가 같이 있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보이게 된다면, 아저씨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버리는 걸까요?”

     “……정확히는?”

     “아저씨와 제가 같이 있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보인다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까요?”

 그녀가 말한, 나에게 질문한 그 또렷한 선율은 어림잡아 보기에는 많은 단어들이 모여 자세히 설명된 듯 보였지만, 다시 읽어보면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한번 되묻는 것만으로 부족하여 더 정확한 의미를 선율이에게 듣게 된 그 뒤로도, 내 사고는 생각하는 그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

 단지, 골똘히 생각했다.

 내 앞의 저 아이가 뒤를 따르지 않고, 그저 얼굴을 살짝 붉히며 한 저 말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아저씨?”

 나는 혼자 걸어 내려가던 계단을 다시 거슬러 올라, 선율이에게 계속 가까워졌다.

 단지 소리 없이 걷기를 반복, 생각하기를 반복, 이윽고 선율이의 앞에 다시금 우뚝 서게 되었을 무렵엔……알기 쉽게 생각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아얏.”

손날을 세워 그녀의 머리를 약하게 두들겼다.

     “힘을 넣어서 치지는 않았다고.”

     “우으……폭력 반대라구요.”

     “하여간, 바보 같은 고민을 하는 아이에겐 물리적 행사입니다. 물리적 행사.”

     “……바보 같은 고민이요?”

 내 손날이 약하게 맞닿은 정수리를 손으로 가린 선율이의 의문의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바보 같은 고민이었다. 이 아가씨의 알기 쉬운 행동은.

     “자의식 과잉이야.”

     “에엑.”

     “뭐가 ‘에엑’ 이냐. 너는 네 친구가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냐.”

     “저는 친구가 없는걸요.”

     “………….”

     “………….”

     “……어쨌든! 학생과 어른이 대화하는 그 행동 자체가 이상하게 바라봐질 레벨은 아니다 이 말이야. 단순한 너의 자의식 과잉.”

 내 말이 끝난 뒤의 선율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을 가지나 싶었더니, 이내 알기 쉽게 얼굴을 아주 붉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름답게 정돈된 앞머리가 수려한 얼굴을 하나도 보이지 않게 가릴 정도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일까. 여하튼 그런 감정으로 몸을 푹 숙인 그녀를 보고서는 푹 한숨을 내려놓은 채, 다시 올라왔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 않아? 자의식 과잉이라던가, 그런 것이 너희 나이대의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라고.”

     “……이런 사고방식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면, 어린아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싶지 않아요.”

     “………동감이네.”

 고개를 들어 간신히 그 얼굴이 보이지만, 아직까지 얼굴을 붉게 달구고 있는 그녀는 정론을 말했다.

 저 생각이, 그녀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진정한 이유라고 한다면, 참으로 어른스럽지 못하고 귀여운 이유가 아닐까…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터벅터벅, 또각또각,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굽 소리가 지하 계단의 리듬을 만들며.




◇◆◇◆◇◆◇◆◇◆◇




 선율이가 잠들고, 내가 일어났던 시간대의 숙직실은, 여러 가지고 어질러져 있던 것과 달리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신발장은 흘려진 음료와 깨진 유리병 같은 물건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신발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으며, 방치된 벚꽃 가지는 어여쁜 유리병에 담겨 생기를 연장하고 있었다.

 선율이와 나도 어제의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채로 존재했다. 이상하게도 선율이의 눈빛이 미묘한데다, 무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의심스러운 행동이 몇 가지 보이긴 했지만야.

     ‘뭘 저리 신경 쓰고 있는 걸까.’

 소리로 내지 못한 생각만이 조용히 머릿속을 울렸다. 소리로 하여금 이 숙직실을 채우고 있는 것은, 뜨거운 물이 찻주전자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이야기로 묶지 않은 채 그저 차를 끓였다. 매번 차를 끓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선율이의 역할이었지만, 저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따스한 찻물을 몇 번 홀짝이는 것으로 그녀의 떨림이 조금이라도 잠잠해지면 좋으리라 바랄 뿐이었다.

     “음, 선율아? 차 다 끓였는데, 자리를 좀 만들어줄래?”

     “아! 네.”

 몸을 굽히던 선율이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하여금 몸을 천천히 옮겨 앉은뱅이 테이블 앞에 자리 잡았다. 꼬물거리는 작은 손가락으로 방석을 이리저리 고쳐가면서.

 찻잔 두 개와 찻주전자가 테이블에 놓이는 청명한 소리와 동시에 선율이는 힐끗 시선을 올리더니 다시 감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찻주전자를 약간 기울여 아주 천천히 찻물을 채워갔다.

 느긋하게 온수를 채워가면서 그녀를 살피는 도중, 선율이의 가방과 신발주머니가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요 며칠간 계속 숙직실을 들리고 있는 선율이는 항상 같은 위치에 두 가방을 정렬해 놓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내화 가방은 앞주머니가 입을 벌린 채, 그 앞에는 작은 책이 하나 픽 쓰러져 있었다.

     “선율아, 가방이 좀 어질러져 있는 것 같은데?”

     “네?! 죄……죄송해요.”

     “아니 어질러진 것 정도는 전혀 괜찮으니까, 그래도 일단 정리하고 오지 않겠니?”

     “네…….”

 선율이는 힘없이 무릎을 털고 일어나 가방을 정리했다. 뱉어진 것 같이 내동댕이쳐진 책갈피를 책의 한구석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어떤 책이야?”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이 책 말씀이신가요?”

     “응.”

     “오스카 와일드라는 분의 책이랍니다.”

     “악취미 작가의 책이구나.”

     “네. 악취미 작가분의 책이죠.”

 선율이는 그제야 쿡쿡 웃으며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 ‘악취미 작가’의 책과 함께.

 그 책의 표지가 가시거리까지 들어와서야 제목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단색의 파스텔 톤 양장본의 표지에는 작은 제비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비가 등장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은 그것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행복한 왕자.”

     “읽어 보셨나요?……는 우문일까요.”

     “우문일 것까지야. 뭐, 확실히 내 나잇대 애들 치고 행복한 왕자 이야기도 배우지 않은 채 자란 이들이 얼마나 있겠냐만.”

     “행복한 세대시네요. 아마 저희 또래 아이들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텐데.”

 선율이는 시니컬하게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이라는 인식을 고려해보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행복한 왕자는 왜?”

     “그게…… 전날 밤에 어머니와 연락을 했었는데, 그때 아저씨가 저에게 해 주신 말씀을 어머니께도 말씀드렸답니다.”

     “뭐?! 그걸?!”

     “안 되……나요?”

     “…………아니야, 계속 얘기해봐.”

     “네……. 그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잠시 웃으신 뒤에 여러 가지 작품을 많이 접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듣는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읽는 것으로도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도 하셨구요.”

     “일리가 있는 말씀이시네……음.”

     “그런가요?”

     “확실히 말하자면 글을 쓰는 작가던 그림을 그리는 작가던 목소리를 내는 성우던, 몸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직업이니까. 끄집어낼 무언가가 들어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지.”

     “아, 확실히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니까 납득이 가네요.”

     “그건 그렇고 행복한 왕자라……왜 하필?”

     “어머님이 추천해 주셨어요. 마침 집의 서재에 있던 책이기도 했구요.”

 세월이 묻어나는 양장본이었던 이유는 그곳에 있었던 듯싶었다.

     “어머니가 오스카를 좋아하시는 것 같네.”

     “아, 아니에요. 오히려 싫어하시는 쪽인걸요.”

     “……그래?”

     “네. 하루는 저를 앉혀놓고 오스카 와일드가 이래서 안 될 사람이라고 줄줄줄 이야기를 늘어놓으실 정도셨으니까요.”

     “대체 네 어머니는 초등학생을 앉혀두고 무슨 이야기를 하신 거야…….”

 허투른 예상대로, 선율이가 저렇게 조숙하고 어른스러운 것에는 그녀의 어머님이 많은 지분을 차지한 듯싶었다.

 이윽고 책상과 조금 더 몸을 붙여온 선율이는 나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오스카 와일드 작가님의 책 중에서 어떤 책이 가장 생각할 거리가 많으셨나요?”

     “굳이 오스카 와일드로 한정해야 해……?”

     “아저씨에게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기대되지만…지금은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선율이가 읽지 못한 책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저는 오스카 와일드 작가님의 창작물이라면 전부 읽었답니다. ‘심연으로부터’ 와 같은 수필들을 제외하면요.”

     “과연. 흠……그렇다면야.”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온 선율이의 질문을 능숙하게 받아내면서도, 급하게 머리를 굴려 여태 읽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들을 회상했다.

 내 머릿속에서의 오스카 와일드라면 그가 집필한 작품들보다도 그가 살아있을 때 저지르고 다녔던 기행들과 어록들이 먼저 생각날 정도였지만, 여하튼 간 가장 먼저 생각난 작품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창작물 중 하나를 고르라면 하나밖에 대답할 길이 없었다.

     “‘행복한 왕자’.”

     “‘행복한 왕자’ 말씀이신가요?”

 선율이는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행복한 왕자’ 이외라던가……동화 이외의 것으로 대답해줬어야 했을까?”

     “아, 아니에요. 그런 문제는 아니지만, 뭐랄까 조금 의외라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같은 작품을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선율이는 그게 마음에 들었나 봐?”

     “아니에요. 저도 굳이 말씀드리면 ‘행복한 왕자’ 쪽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읽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말을 이어가던 선율이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행복한 왕자’의 양장본 쪽으로 돌렸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나요?”

     “‘행복한 왕자’의?”

     “네.”

     “……으음,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할까. 생각할게 많았다고 해야 할까. 어릴 적 읽고서 가장 납득이 안 되는 작품이었다고 해야 할까.”

     “납득이 안 되는 작품…….”

 ‘나지막이’ 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말한 선율이는 어느새 그 양장본을 자신의 품으로 가지고 와 두꺼운 책의 커버를 손끝으로 하여금 쓸어내렸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찻잔을 기울인 나는 축여진 목으로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행복한 왕자라는 작품의 서술로는, 자신의 의지로 하여금 모두에게 재물을 나누어준 왕자 조각상을 완벽한 선인(善人)으로 묘사하고 있어. 그를 따르며 사랑했던 제비 또한 마찬가지고.”

     “아저씨는 책 안에서 등장한 왕자가 선인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뭐, 선인이겠지.”

     “그럼 왜 그렇게 생각을……”

     “만약의 누군가를 도와주는 왕자의 성격이 ‘누군가에게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거나, 누군가를 도와주며 ‘자신은 훌륭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며 만족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위선자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좋을까요.”

 나는 그녀의 표현이 적당한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의 여태 얼빠지고 가벼웠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하며……그래. 생각하는 듯 변했다.

     “왕자와 제비가 도와주었던 사람 중에 어머니가 병든 가난한 아이가 있었지?”

     “아, 네. 어머니가 병들어 고민하고 있던 소년이었죠.”

     “만일 그 소년이 엄청난 악동이었고, 어머니가 병든 것을 간호하고 홀로 돈을 벌어가는 과정을 거쳐 어머니의 병도 고치고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면.”

     “……왕자의 도움으로 인해 성장할 기회를 놓쳐 계속 악동인 채 남게 되었을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위기라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위한 과정이 아니야. 위기는 그 사람의 진정한 그릇을 판단하고, 지금의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각성의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

 ……나는 올해 봄 12살이 된 소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과연 ‘한선율’ 이라는 아이는 어른스럽지만, 내가 하고 있는 말을 듣고 이해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지 의문일 텐데.

 그럼에도 말이 쏟아지는 자신의 입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듯,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오랜 생각을 토해내고 있는 자신을 자각했다.

     “누군가의 위기를 무작정 도와준다 해서 그것이 선인(善人)으로 이어지는 공식에는 찬성할 수 없어. 게다가 그릇된 자신의 욕심으로 누군가를 도와 선인인 척하는 것 또한.”

 선율이는 단지 침묵했다.

 그녀의 어려운 표정이 생각을 하는 표정인지,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 표정인지는 알 수 없다. 더하여 저 표정이 어떤 표정인지 물어볼 수도 없다. 아무리 눈치가 부족한 나라고 해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 자신 또한 그녀와 같이 침묵을 지키며, 선율이의 표정을 바라보며, 단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침묵을 깬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일, 아무리 자신의 욕심으로 누군가를 돕는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비록 의미 없는 것이라고 한들, 좋은 미래로 이어진다 한들, 다 같은 악의로 이어지는 걸까요.”

 어여쁜 목소리로 속삭이듯, 감정을 실은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로 들려왔다. 그 대답과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무표정을 깨트려……멍하니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자신의 다리로 서는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필요 없는 선의를 강요하는 것이라면 한없이 추악한 악이라고 표현해도 좋겠지만, 누군가를 돕는 자기 자신을 만들기 위해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이라면……충분한 선인이라 생각해요.”

     “너는 꽤 많은 걸 생각한 표정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왕자가 불쌍하니까요.”

     “………헤?”

     “아저씨의 말대로 ‘왕자가 자신을 위해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고 하고, 제 의견대로 ‘그럼에도 왕자가 선인이다’라고 가정한다면……”

 그녀에게 들려온 대답은─

     “왕자는 자신의 선의로 기뻐하는 대상을 보고, 죄책감 또한 같이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선의를 베풀면서, 기쁜 감정과 충만한 감정을 같이 느끼면서, 자신이 선의를 베푼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왕자의 일생이었다면, 행복한 왕자라는 제목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아닐까요.”

     “………….”

     “무거운 표정으로 많은 것을 생각한 것치고는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요.

     “그렇구나.”

     “네?”

     “어릴 적의 나는, 행복한 왕자의 제목을 있는 힘껏 부정해 버린 셈이 되었구나.”

     “아……아아아아 아니에요! 아저씨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알아. 선율이의 의견은 내 의견을 긍정했기에 나올 수 있는 대답이었을 테니까.”

 손사래를 치며 울상이 된 선율이를 달래면서도, 입가에는 단순한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반격을 당한 것이 원인이기도 했으며, 그녀가 내 의견을 옳다고 생각해줄 거라 확신했던 자신에게로의 쓰디쓴 미소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왕자’ 의 기분을 이해해 주었기에.

 자신의 재물을 잃어가면서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 끝에는 죄책감의 무게와 씁쓸함이 만족과 함께 공존하는 왕자를 보듬어주려 했기에.

     「벚꽃을 보게 되는 것 자체가, 그 분에 대한 공양이 될 수 있을까요.」

 그녀였기에. 왕자를 사랑한 제비보다 좀 더 왕자를 보듬어 줄 수 있을 그녀였기에, 벚꽃을 보고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구나.”

 나는 다시금, 선율이의 기억 속에 남은 예술가에게 질투를 품었다. 단순한 악의로 가득 찬 질투를.

 그럼에도 동시에, 방금 전 선율이의 감정을 실은 어여쁜 목소리를 회상하며 마음속으로 한 가지 망설임을 굳힐 수 있었다.

 선율이라면 맡겨주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속의 결정과 함께, 그녀와 함께 찻물을 마시며 서로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얼굴과 더불어 선율이의 얼굴 또한 어딘가 충실해 보였기에, 무심코 의심 없는 미소를 머금고 말았다.




◇◆◇◆◇◆◇◆◇◆◇




     “하아……하아…….”

     ─쾅.

 서녘으로 지는 타오르는 것 같은 노을을, 황혼이 덮여가며 발산하는 강렬한 태양빛을 차단하듯 강한 충격으로 현관을 닫았다.

 생각 이상으로 꽉 닫힌 현관은 소리마저 전부 차단한 것과 같아,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은 단순한 적막으로 가득 채워져 간다.

 적막함에 소리를 더하지 않은 채 가쁜 숨을 들이켜면, 머릿속에 같은 장면이 플래시백 되어 돌아왔다.

 한 차례 두 차례 번복되듯 회상되는 그 광경은……

     “어째……서.”

 나는 단순히 유진이가 있다는 학교의, 지하로 뻗어 있는 계단으로 내려갈 뿐이었을 텐데. 왠지 모르게 혜율이에게 맡겨진 과제에 대한……정보를…….

     “……….”

 아, 안 돼. 단지 이 단순한 침묵이……아무것도 덧칠해지지 않은 흰 캔버스와 같은 침묵에……그 광경이 덧칠해지는 것 같아서.

 ………그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별다를 것이 없는 아이의 눈빛이었을 텐데. 

 그래. 그 학교를 도망치듯 나오면서 스쳐 지나간 그 아이의 또래 아이들과……별다를 일이 없었을 터인데.

 환상일까?

 환상……환ㅅ……

     “……아닌걸. 환상 따위가.”

 환상이라면, 자양강장제 유리병이 깨지면서, 지금 내 워커의 앞굽에 묻어있을 리 없을 테니까. 방금의 기억이 전부 환상이라면, 내 워커에 묻은 얼룩은 대체 뭐야……?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붕붕 돌려보아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아, 워커의 얼룩은 빛이 닿지 않는 그늘의 현관에서도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분명……잠든 유진이와 붙어서………

…………

……

     “어째서………그 아이가 그 곳에 있었던……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자연에게, 어딘가에 있을 미의 신에게 고하듯 의문을 던졌다.

 대답은 단지……적막할 뿐이었다.









Writer

Project_So

Project_So

물건너 섬나라 칼럼니스트.

물건너 섬나라 LOSE社 미연시 시나리오라이터 

소설가 지망생 "한소운" 입니다.


개인 블로그 : http://blog.naver.com/n_sousi

개인 작품 :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46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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