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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뭐하세요!(가제) 1 - 13. 두 주인공은 돌아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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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8 Jan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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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Project_So
협업 참여 동의






 4시가 조금 넘어가는 카페의 전경을 눈에 담으며 나는 암갈색의 음료를 입에 빨아 넣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것만 같은 아메리카노의 강한 쓴맛과 산미를 느끼면서도 속으로는 소소한 행복을 채우듯 느낀다. 평균 기온이 점점 오르고 있는 지금의 날씨로는, 이슬이 살짝 어린 1회용 용기 속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라면 잘 가지 않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는 여러 가지의 사람이 있었다. 아이를 동반한 아주머니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 한창인 테이블도 있었고, 방과 후가 된 학생들이 여기까지 도래해 기간한정 메뉴인 딸기 셰이크를 마시는 장면 또한 보였다.

 아마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연령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기분 좋은 커피 향에 눈을 가늘게 떴다.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 비하면 점내에 감도는 커피 향은 약하기 그지없었으나 익숙치 않은 공기에서 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좋은 향기라는 감각이 있었다.

 분위기를 음미하며 눈을 감고 있는 도중에, 내 맞은편의 빈 좌석에 인기척이 들려왔다.

     “빨라! 먼저 와 있을 생각이었는데.”

     “그런 너도 왜 20분 빨리 온 거야. 한창 바쁠 때 아니었어?”

     “……아하하.”

 내 맞은편에 앉은 혜율은 멋쩍은 듯 웃으며 앉은 옆 좌석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평소에 자주 본 별 모양 백팩 이외에, 한 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에코백이 같이 내려졌다.

     “그건……”

     “아, 사이즈가 조금 라이트박스가 있길래, 허락받고 슬쩍 가져왔지.”

     “합법적으로 슬쩍이란 표현은 좀 어떨까 싶은데……여하튼, 그걸 가져와야 할 정도로 바쁜 상황이야?”

 일반적으로 라이트박스는 가지고 이동하며 작업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여러 신소재로 만들어진 라이트박스도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그것들 또한 들고 다니는 용도로 설계된 물건이 아닐뿐더러, 혜율의 에코백 안에 들어있는 것은 통유리의 무거움이 절로 느껴지는 구형 라이트박스였다.

     “그렇게 바쁜 스케줄은 아니지만, 모두들 들고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해야 할까………뭐, 바쁘지 않더라도 빨리 끝내는 게 비교적 속 편한 방법이 아니겠냐!”

     “나에게 일부러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

     “엥? 누구 맘 편하라고 거짓말을 해? 갑자기 스케줄과 시나리오를 변경한 휴학 몬스터 한유진 씨를 위해서?”

     “……………그 휴학 몬스터 어쩌구는 못 들은 척 하겠어. 내가 멍청한 질문을 했으니.”

 다시 커피를 구내에 쏟아 부으며 말했다.

 그리고선, 그렇게 커피를 목구멍 뒤로 쏟아 넣으면서 한 가지 위화감을 기억해냈다. 그녀의 가방이 있는 위치였다. 이 위화감은 필시 그녀가 항상 별무늬의 백팩을 자신이 앉은 의자에 걸어놓았기 때문에 있었다.

     “오늘은 유라랑 같이 오진 않았네.”

 그래. 항상 혜율와 함께 모습을 보이는 유라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어, 뭐………오늘 그렇게 몸이 좋아 보이진 않아서 같이 오자고 말하기 힘들었거든. 원래 병약한 이미지가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하루죙일 낯빛이 창백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말이 안 나온다고.”

     “그랬구나, 뭐 여하튼간. 오늘은 왜 부르셨습니까?”

 내 말을 들은 혜율은 이미 입이 조금 벌려져 있던 가방에서 클립으로 묶인 종이뭉치를 꺼내 내 앞에 내놓았다. 익숙한 종이 뭉치였다.

     “이제 작업도 어느 수준의 순풍을 달아, 셀 작업은 거의 70%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짝짝짝.”

 적어도 혜율이 나를 걱정하여 라이트 박스를 들고 가는 행동이 아닌 것은 확실해진 순간이었다. 나름 작업이 빠른 편이라는 것은 말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고로 오늘 내가 하려고 온 것은 동화와 원화의 확인, 그리고 타임 스케줄을 끝까지 완성하는 것.”

 혜율은 아까 꺼낸 타임 스케줄 용지 이외의 종이뭉치를 꺼내 내 앞에 내려놓았다. 동화와 원화가 묶인 종이뭉치였다. 그것은 타임 스케줄 용지와는 다르게 꽤나 두꺼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별다른 말없이 동화와 원화가 묶인 것들을 차례차례 넘겨보면서 상태를 체크했다. 종이의 안에는 선ㅇ……율이와 닮은 여자아이의 캐릭터가 한 장 한 장으로 하여금 움직이고 있었다. 더하여 나를 닮은 것과 같은 남자 주인공 또한 종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

 이렇게 종이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캐릭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알몸이 되어 움직이는 것 같은 부끄러움이 몰려오는데…… ‘녹음 당일 맘 편히 할 수 있을까?’ 와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과연 율이는 괜찮을까.

     “동화와 원화들은 문제없지? 아니, 없다고 얘기해 줘.”

     “없어. 모두 자기의 선 느낌이 잘 살아있는 좋은 그림들이야.”

     “하아아……천재 예술가님이 그리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되는구려.”

     “………….”

 혜율의 질 나쁜 농담에 도끼눈을 뜨며 침묵을 이었다. 혜율은 눈치 못챈 듯 두꺼운 종이뭉치를 도로 집어넣고 타임 스케줄 용지를 방금 전까지 원화, 동화 묶음이 있던 자리로 디밀었다.

     “녹음은 내일이라도 당장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원하는 날을 골라서 써줘. 제출일로부터 4일의 여유만 있다면 어느 때라도 상관 없어.”

     “흐음.”

 혜율이 디밀은 타임스케줄을 보면, 오늘로부터 3일 뒤까지의 동화 스케줄이 차 있고, 나머지의 날짜에는 공백만이 주욱 채워져 있었다. 과제 제출일에서 4일의 여백을 제외하더라도 약 16일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존재했다.

 그 시간들을 곰곰이 따지고 생각하고 있노라면 선뜻 머릿속에서 선율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16일 이전에는 맞출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지만, 이것은 나 혼자만이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떠올릴 수 있었다.

 <성우> 라는 영역은 한유진 평생의 인생에서는 접점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그 이름이 귀에 익어오고 있던 것도 선율이를 만난 근래의 덕분이었다.

 그녀는 이미 이 타임 테이블의 한 귀퉁이의, 우리의 하루 이틀을 할애할 수 있는 어엿한 구성원의 일부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힘주어 들고 있던 볼펜을 탁자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혜율은 알 듯한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가지고 갈래?”

     “응. 역시 지금 나 혼자 정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오랜만에 네 생각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혜율의 그 말을 듣고 난 뒤, 작은 가방에 타임 스케줄을 곱게 접어 집어넣었다.

 일이 일단락된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카페 안의 전경은 꽤 바뀌어 있었다. 까놓고 말해 사람이 줄어, 소란스럽던 가게 분위기가 변해 조용한 공기가 감돌고 있던 것이다. 인근 대학교 재학생으로 보이는 알바생이 떠드는 소리 이외엔 점내의 냉장고 소리만이 들려오는 듯한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 냉장고 소리를 내 귀에서 지워버린 것은, 혜율의 목소리였다.

     “저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드무네. 네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왜일까, 그녀로써는 드물다는 말이 본능적으로 나와 버렸다. 그만큼 혜율의 목소리가 카페의 공기와 같이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라하고 무슨 일이 있었어?”

     “학기 초에 말했던 대로야. 단지 초등학교 동창이자 친한 친구였을 뿐.”

     “그건 알아. 유라에게도 똑같은 걸 들었으니까. 넌 내가 그걸 물어 보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잖아?”

 알고 있기에, 일부러 했던 말을 반복한다는 것 또한 혜율은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걸 알고 있는 혜율이에게 한 말이기에 의미를 가질 수 있었지만 말이다.

     “어째서 예술을 그만둔 거야?”

     “그만두지 않았어.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을 배우는 중이잖아? 뭐……휴학했지만.”

     “나는 그걸 말하는 게……!”

     “……….”

     “……그래. 그 아이가 말할 때도 이렇게 말을 돌렸었구나.”

     “굳이 유라에게만 말을 돌린 게 아냐. 그런 질문을 한 전부에게야.”

     “왜 유라가 그런 저기압이 된 건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

     “느끼는 게 많은 하루시네. 생각할 요소가 많은 알찬 하루구나.”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그 말투 그만두는 편이 좋아. 제대로 한 방 쥐어박고 싶어지니까.”

     “………알고 있어.”

 이후로는 침묵만이 이러졌다. 누군가가 물어보고, 나는 얼버무리고, 공기가 식어버리는 알기 쉬운 세상의 구조를 나는 질릴 듯이 경험해왔다. 그렇기에 이런 공기가 딱히 숨 막히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이럴 때는 능청스레 음료를 삼키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 또한 몇 가지의 배운 점이었다.

 다만 빨대에 힘을 줘 봐도 음료는 올라오지 않았다. 음료를 빨아올리지 못하는 스트로우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애석한 스트로우의 소리에 묻히듯 혜율의 작은 한숨이 섞여들려왔다.

     “뭐, 태훈이도 유라도 듣지 못한 것을 네 입에서 들을 수 있으리라곤 기대도 안 했지만.”

     “그럼 되도록 조심해 주길 바라. 그래야 이런 기분 나쁜 처세술을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그러게 말이다……조심해 볼게.”

 체념한 듯하는 혜율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대화의 맥은 사망을 맞이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 예술가이자 유명한 그림쟁이로 손꼽힌 아버지 한규석의 그림자는 항상 내 몸을 잠식하면서 살아 왔다. 내 자신이 예술가를 꿈꾸며, 예술과, 회화와 가까웠던 어린 시절엔 그 감촉이 마냥 기분 나쁘진 않았다.

 태훈, 유라와 친해졌던 4~5학년 시기에는 알기 쉬운 사춘기의 반발심으로, 그리고 온전히 나의 그림에도 들러붙던 아버지의 이름에 거부감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 죽어버린 아버지로 인해 그 히스테리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나지막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만 둔 이후에,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 아버지의 이름 석 자는 지나가는 내 시간 속으로 더욱더 끈덕지게 달라붙어 왔다. 마치 죽은 아버지가 산 나의 이름에 기생하듯………종말을 예상한 어린 내 생각을 비웃듯이 말이다.

 최대한 예술을, 회화를 피해, 아버지의 이름을 피해 이런 자신에 도달했는데, 이 공간에서조차 예술과 한규석이라는 이름은 당연하듯이 내 등 뒤에 엄습해온다. 그에 비례해 한유진이란 전직 예술가 지망생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불안은 커져만 갔다.

 ………만일 내가 예술을 그만둔 진짜 이유를 발설하게 되는 날에는 어떤 파란이 내 시간에 간섭을 하게 될까.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충분히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것이었다.




◇◆◇◆◇◆◇◆◇◆◇




     “아저씨?”

     “……….”

     “……아저씨!”

     “아, 응.”

 방금 전까지 서 있던 탓에 나보다 눈높이가 높았던 선율이는, 어느새 다시 나보다 낮은 눈높이로 변해 있었다.

     “괜찮으세요? 피곤하신 게 아니신가 싶어요.”

     “낮 1시에 잠이 깬 건데 지금 피곤할 정도면 살아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외출을 하고 오셨으니까요. 과제 관련으로 피로가 쌓이신 게 아닐까 싶어서 말씀드렸어요.”

     “음…”

 구태여 말하자면 내 독단으로……선율이가 목소리를 도맡게 된 뒤로 전체적인 페이스가 떨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나, 선율이에게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말하지 않는 것이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괜한 걱정이야. 실제 오늘 혜율……조장님을 만나서 들은 바로는 진행 호조라고 하기도 했고.”

     “정말인가요? 좋은 소식을 들고 오셨네요!”

     “내 유일한 걱정이라고 한다면, 선율이 너의 문제겠지.”

     “윽, 죄송해요. 그리고 ‘율’ 이예요.”

     “사과하면서도 그 부분은 치고 들어오는구나.”

 웃으면서 대답하는 내가 있었고, “그 부분은 소중한 부분이라구요!” 라고 주장하는 선ㅇ……율이가 있었다. 조금 심술이 난 것 같음에도 입꼬리가 올라간 알 수 없을 표정을 한 율이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 도중에도 대본과 계속 눈싸움을 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그 승부는……

     “아직도, 감이 잘 안 와?”

     “거짓을 제외하고 말씀드리면……아직도 갈피가 잘 안 잡히는 게 사실이네요.”

……아무래도 아직까진 연전 패배인 것 같았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율이의 연기 앞에 마주할 수 있었던 그날부터 깨닫고 있는 율이의 약점.

 성우 관련의 지식으로는 걸음마 뗀 아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나조차 알 수 있었던 한선율이란 아이의 파워풀한 성량, 역할로의 몰입도, 그로 인해 빠져드는 리얼한 연기력. 그 부분은 내 자신이 그녀에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그 에피소드로 하여금 보증이 가능했다. 아직도 생각하면 쓴웃음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간이었기에.

 그리고 그녀가 그만치리 뛰어나기에 대비되듯 깨닫게 된 치명적인 결여점.

 그녀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에 극히 서투르다. 그것은 경험과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선율이에게 여러 가지 작품을 보여주고, 왜 이 주인공과 히로인이 이런 심정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목소리를 발하게 된 것인지 감정과 언어 사이의 인과율을 내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내 나름의 수련법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로 똘똘하고 야무진 선율이는 내 부족한 언변을 마주하고도 찰떡같이 이해해 주었으며, 이전보다 좀 더 애니메이션과 성우들의 연기에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만.

     “역시 오리지널은 상황이 다를까.”

 선율이가 그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캐릭터의 목소리라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훨씬 심도 있게 성우들의 목소리를 들어온 그녀였기에 <기준>이 되는 목소리가 있다면 이해하는 것은 빨랐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은 <기준>없이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며, 율이 자신의 목소리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덕분에 율이는 여주인공이 어떤 인물이고,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 대본만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말은 쉽지만요…….”

 율이는 진지한 목소리로 푸념했다. 전술했듯, 이것은 선율이가 가진 최대의 약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앵무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네요. 단지 먼저 세상에 토해진 소리를 다시 따라 말하는 목청 좋은 앵무새.”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그건 아니야” 라고는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사탕 발린 말 따위는 원하지 않는 눈을 하고 있었다.

     “으음, 툭 까놓고 말해, 남주인공의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아……이해가 안 되는 것은 남주인공 쪽이 아니랍니다. 여주인공 쪽이에요.”

     “율이 네 배역의?”

     “네.”

 단지 율이가 저런 복잡한 눈을 하고 있단 걸 속으로 곱씹는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기에,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배역에 대해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표정에 점점 어둠이 드리우는 것 같았기에 섣불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흐음…….”

 대본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이미 예전에 예술을 그만둔 유명한 예술가인 남주인공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예술가가 과로로 쓰러짐에 그를 위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친구는 주인공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뒤늦게 완성되었지만 전해지지 못한 그의 작품은 세상에 공개되고, 친구의 진의를 깨우치지 못한 그의 회화는 화제가 되지 못한다. 결국 예술에 발을 떼려 했던 그의 앞에 그림의 팬이 된 소녀, 히로인이 다가온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히로인은 아틀리에에서 주인공과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생각을 나누게 되는데, 그 친구가 주인공이 예술을 그만두었음에도 계속 주인공을 향해 그림을 그렸던 것은, 주인공보다 뛰어나지 않고, 뒤쳐지지도 않은 채 나란히 서기 위해서였음을 히로인과의 시간으로 인해 깨닫게 된다. 그림을 그만둔 라이벌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기다린 그의 상냥한 마음을 두 사람은 깨닫게 된 것.

 히로인 덕분에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은 그의 묘에 피어있는 벚꽃나무 한 뿌리를 묘사한 회화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고, 장기간의 해외 출국으로 아이러니하게 히로인과 작별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주인공은 친구의 예술관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자신의 예술관마저 자각하게 해 준 히로인과 작별해야 하는 상황과 자신의 예술 그 자체를 저울질하게 된다. 하지만 히로인은 그런 주인공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며, 작은 팔로 그를 꼭 안아주며 작별을 고한다.

 그 상냥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히로인의 예술관에 감동한 자연은 이미 져버린 벚잎을 다시금 찬란하게 피워낸다.

 자신이 그림으로 묘사한, 묫자리에 핀 벚과도 같이 아름다운 그 경치를 가슴속에 깊이 새긴 주인공의 독백을 듣고 히로인이 눈을 천천히 감으면서 화면이 검게 변한다.


 누가 저런 파렴치한 주인공을 생각했는지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모티브가 되는 사람은 후줄근한 수위 아저씨에, 주인공의 친구 모티브의 사람은 열심히 라이트 박스와 씨름을 하고 있을 것이겠지만.

     “아저씨는 남주인공에 대해 잘 이해하시고 계신가요?”

     “나?”

     “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서……”

     “분명 이해가 안 된다고 했던 건 여주인공 쪽이었을 텐데……”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을 잘 이해하고 행동한 것이니까요. 남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움직인 건지 자세하게 알고 싶었어요.”

     “일리는……있네.”

 선율이가 말하는 것은 옳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정론이었다. 선율이가 보고 있는 시나리오의 페이지를 흘겨보고는 서로 페이지를 맞추었다.

 “무엇이던 물어봐” 라고 말하는 내 얼굴 대신 시나리오에 시선을 곧게 파묻은 선율이의 말은, 내 입가에 웃음을 가시게 하기에 충분했다.

     “주인공은, 어째서 그림을 그만둔 것인가요?”

 사무친 듯한 정적이 흘렀다. 아무런 소리도 울리지 않을 때 심심찮게 들려오던 찻물을 홀짝이는 소리나 조용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웃음기는 가시고, 숨소리는 죽은 채 지하의 지면을 기었다. 선율이는 그저 시나리오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였지만, 고개를 든다고 해서 눈을 마주볼 용기는 없었다.

     “아저씨?”

 긴 정적에 무언가를 느낀 율이가 장막을 찢었지만, 나는 그 흔한 당황의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산 채로 굳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글쎄.”

 굳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입만 뻥긋대며 겨우 대답했다.

 하지만 율이는 내 불성실한 대답에 도끼눈을 뜨고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이상하게 느낄 만한 표정은 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으…음……. 주인공이 어릴 적부터 계속 그림을 그렸다면 재능이라는 영역을 훨씬 더 오래 느끼며 회화를 그려왔을 거야. 그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나중에 그린 회화가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는 데다, 과로사로 죽은 재능 있는 예술가의 라이벌인걸요? 재능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실히 굴러가지 않는 뇌를 굴려 나온 불성실한 답에 율이는 내 맘을 모르는 듯 정면으로 논파를 시도했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말하는 내 자신조차도 소리 없는 한숨을 쉬었을 정도였으니까.

     “손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걸 수도 있지.”

 결국 나는 고백하듯, 털어놓듯, 그녀에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어디까지나 말하는 것은 시나리오 안에 있는 남주인공에 대한 설정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라는 전제가 깊게 내리 깔려 있었다.

 그리곤, 내 자신도 모르게 왼손을 허벅지 아래로 숨겼다.

     “손이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는데도 벚꽃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가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왼손이 고장 나도 오른손으로 그릴 수 있게 된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면 그림을 그만 둘 이유가 없는걸요.”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런 말이, 목젖의 바로 뒤까지 밀고 올라왔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율이는 내가 회화를 그만둔 것을 질책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그녀는 내가 회화를 그렸었다는 사실 또한 알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단지 제 발이 저려온 것에 불과했다.

     「이런 나라서 미안해.」

     「어째서, 예술을 그만둔 거야?」

 최근 들었던 그 두 마디가 소생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그것은 알기 쉬운 저주의 울림이었다. 내 자신이 왜 회화를, 예술을 그만두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될 정도로 강력한 주술 마냥 들려왔다.

 그리고 조용히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예술을 그만둔 이유는 저런 어린아이에게도 납득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에, 어린 생각이었다는 것을.

 그런 생각을 목뒤로 삼키자, 입에서 줄줄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주인공이 예술을 그만둔 이유는 아마 자신의 잘못 때문일 거야. 그래, 아마 제멋대로의 아집이겠지. 그렇기에 그만두었음이 분명한 예술임에도, 친구가 죽었을 때엔 붓을 잡을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거야.”

 율이는 그 말을 듣자 다시금 활자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 뒤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시금 그 눈이 뜨였을 땐, 그녀의 입 또한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주인공은, 친구가 죽지 않았다면 다시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글쎄. 소중한 라이벌이자, 좋아하는 예술가인 친구가 죽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 계기가 된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

     “그럼……”


     “남주인공이 그림을 그만 둘 때………아뇨, 그만두었었다고 얘기했을 때 친구와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 뭐라고 했었나요?”

     “!!”


 말을 끝마친, 질문의 소리를 잘라낸 듯한 율이는 그저 나를 바라볼 뿐으로 입을 곧게 닫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목소리에 악의는 없었다. 나를 몰아붙이기 위한 말이라고는 느낄 수 없었다. 아까와 같게도 말이다.

 하지만 악의 없는 울림으로도 몰아붙여질 정도로 정신이 피폐했다. 내 의식은 그녀에게로부터 전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녀로부터 도망치는 게 맞을까? 아냐, 그녀에게 도망치는 것 같은 게 아니다. 별안간 그녀가 말로 하여금 싣고 온 내 과거의 선택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질문에 질문으로 돌려주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나는 그녀에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까.

     “너라면 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해줄 거야?”

     “여주인공이라면……”

     “아냐. 여주인공이 아닌, 한선율이라는 사람의 입장으로……그래.”

 숨을 얕게 들이마시고, 소리 없이 내뱉듯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림을 그만둔다 했을 때, 너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래?”

     “──”

 규칙적인 리듬으로 들려오던 율이의 숨소리가 멎는 듯 지워졌다─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내 짓궂은 대답으로 인해 말문이 막힌 율이의 입.

      ─무엇이던 물어봐

 ……저런 약속까지 했었는데.

 한유진이라는 인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대답이, 그녀 자신에게 도움이 돼봤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할, 고려할 필요조차 없었다.

 난 무엇을 기대하고 그녀에게 되물었는가.

 난 그녀의 대답을 듣고 어떤 기분을 만끽하고 싶을 것인가.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까.

     “만일─”

 곧게 잠겨있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숨소리 또한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유명한 예술가였고, 모종의 이유로 그림을 그만두셨다면”

     “헤?”

     “예술을 그만두었다고 생각하고 말한 것은 틀림없는 아저씨의 솔직한 마음이세요. 진심과 솔직한 판단에 대해 제가 화를 내거나 잘했다고 칭찬할 정도의 자격은 없어요. 단지 혼자서, 아쉽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차곡차곡 쌓인 스케치북에 시선을 쏟으며, 그래. 아련한 시선을 쏟았다.

     “하지만, 만일 소중한 회화를 그만 둘 정도의 각오로 솔직하게 저에게 그것을 전해 주셨다면, 끝까지 솔직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회화와 함께 한 소중한 시간을 묻으면서까지 결정한 아저씨의 그 소중한, 생각까지요.”

     “……….”

 이 아이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대답할 수 있었는가.

 아니, 내 주변의 모두가 시간을 가지고 침착하게 생각을 하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그저, 내가 모두에게 전하는 방법이 지금과는 달랐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어째서 이 아이는 나에게 이런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던 대답을, 아주 먼 곳에서 찾게 될 것이라고 누가 알았을까.

     “그렇구나…….”

 나는 마른 웃음을 바닥에 흘렸다.

     “대답해 드렸으니, 저도 아저씨에게 질문 하나 해도 괜찮을까요?”

     “너무 시간을 잡아먹지 않은 것이라면…….”

 애매하다면 애매할 내 답신을 들은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것은 마치 선율이 쪽에서 먼저 사양하고 있는 것 마냥 보여졌다.

 물어온 쪽은 그녀임에도 구하고, 그렇게 보여져, 그렇게 느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단한 질문은 아니에요. 단지……응.”

     “아저씨가 그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녀의 질문을 듣고, 마음 편히 가지려 살짝 벌리고 있던 입을 곧게 다물었다.

 선율이의 말대로, 결코 대단한 질문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곤 하나, 대답 못해줄 것도 아니다. 그저……

     “무리……신가요?”

     “아냐, 네 말대로 별것 아닌 질문이었으니까.”

 내가 그림을 시작한 계기가 된다면 필시, 그 이름이 나오게 되어 버린다.

 딱히 숨기고 있진 않았지만……선율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을까 불안해지게 되는 것 따위를 걱정하게 되어버린다.

     “아저씨?”

     “………아, 응. 괜찮아. 그보다 그거였지?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아, 네. 괜찮으실……까요?”

     “하아.”

 겉으로도 한숨, 속으로는 큰 한숨을 내뱉었다.

 그것은 내가 꺼내게 될 과거 이야기에 대한 한숨이 아닌, 초등학생 상대로 과거 이야기를 사렸다는 것에 있었다.

 행복한 왕자 이야기도 잘 모를 세대에게 세계적인 예술가였던 아버지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해서 알아챌 일 따윈 없을 텐데.

 율이를 따라 나 또한 자세를 고쳐 않았다. 이미 몸에 힘을 풀고 정좌한……경청의 자세가 된 율이에게 입을 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규석이라는 이름, 들어봤니?”

     “으음……귀에 익지는 않았지만, 몇 번 들어봤던 이름인 것 같아요.

     “뭐, 그렇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곤 그리 멀지 않은 책장에서 표지 없는 앨범을 꺼내들었다.

 표지에 글자 따윈 없이, 단지 옆 표지에나 숫자 ‘1’ 뿐만이 새겨져 있는 조촐하면서 결코 얇지는 못한 앨범.

     “이건……앨범인가요?”

     “맞아. 찍혀있는 것은 사람 ‘따위’가 아니지만.”

     “……?”

 숨은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고개를 갸웃 돌리는 율이를 보며 티 나지 않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특별한 말없이 그저 앨범의 책장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갔고, 율이는 생각대로 앨범 안에 찍혀있는 「회화」를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열 몇 페이지쯤 되었을까, 앨범 페이지의 하나를 전부 차지할 정도로 큰 회화의 사진이 실린 페이지. 그 페이지를 넘기려던 내 손이 멈칫, 움직임을 그만두었다.

 회화의 세계를 탐닉하던 율이 또한 시선과 함께 멈춰 선 뒤에 나에게 말을 꺼냈다.

     “아저씨, 이 앨범은”

     “회화 앨범. 여태 ‘아버지’가 그렸던 회화를 완성 직후에 사진으로 하여금 담은 앨범이야.”

     “예술가 한규석 씨는 유진 씨의 아버지셨군요.”

     “응. 가장 예술가스러웠으며,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이며, 내가 직접 본 예술가 중엔 가장 유명한 예술가였으며…”

     “……가장 아버지답지 못한 아버지.”

     “………….”

 ‘난 대체 어디까지 말해버리고 있는 거람’ 이라 생각해버리면서도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아버지답지…못하셨나요?”

     “응. 정말,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껄끄러웠으니까. 물론, 사춘기 나름의 반발심이 섞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겐 아버지보단 성격 괴팍한 스승님처럼 다가왔었지.”

     “스승님이라고 말하실 정도면 꽤 오랫동안 그림을 배우셨군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선율이는 내 끄덕임을 보곤 쭈뼛쭈뼛 말을 꺼내듯 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조심하는 듯했다.

     “그럼 아저씨는……회화 또한 그린 적이 있으셨나요?”

 율이의 목소리에 마음속으로 눈을 질끈 감듯이 했다. 무언가를 조심하는 듯 하는 율이의 태도에 기대어, 그저 마음을 추스르듯 움직였다.

 내가 그림을 그만둔 것도, 그걸 듣거나 추궁 당하는 것을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율이가 무얼 생각하며 조심했는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그런 것 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려니 저절로 입이 움직였다.

     “매번 어머니만 두고 이곳저곳 해외를 쏘다니지 않나, 가끔은 어머니까지 데리고 가서 시골에 나를 맡겨버리거나, 난 그런 걸 아버지라고 인정 못한다고.”

     “………얼굴조차 자주 뵙지 못하셨나 봐요.”

 부자연스레 돌린 말의 주제를 너그러이 이해하는 듯, 말이 없던 율이는 상냥한 목소리를 내었다.

     “회화에 대해 배울 때 외엔 거의 본 적 없을 정도였어. 매년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게 되는 게 익숙할 수준이었으니까.”

     “그 정도로 유명하셨나요?”

     “근처 대학의 미술 교수에게 ‘한규석의 아들과 알고 지내는 사이’ 라고만 말해 봐도 까무러치실 거야.”

     “아, 나중에 해볼게요.”

     “……진심으로 그만둬. 농담이니까.”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손사래 치는 나를 보며 쿡쿡 웃는 율이. 그 표정을 보며 12살 아이에게는 부담스러웠을 공기가 조금은 환기된 것만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그림을 봐줘.”

 나는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춰, 앨범 한 페이지를 크게 차지하고 있는 앨범의 회화를 가리켰다.

     “벚꽃이여요………라고 말씀드려도, 앨범 대부분의 그림이 벚꽃이었지만요.”

     “뭐……그렇지”

 페이지를 넘겨가는 와중에도 회화를 뚫어지게 쳐다봤던 선율이는 그것을 눈치챈듯싶었다.

 아버지─한규석은 벚꽃의 예술가였으며 그 고집이 상당했다.

 물론 공모전의 주제에는 맞추지 않거나 벚꽃을 그릴 수 없는 공모전을 책임감 없이 내던질 정도로 융통성이 없진 않았으나, 자유 주제에서는 어김없이 벚꽃만을 고집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벚꽃의 예술가’라는 별칭은, 애매하게 유명했던 시절의 한규석에게 붙은 조롱이 담긴 멸칭이었다. “매번 질리지도 않고 벚꽃이느냐”──같은 느낌의.

 하지만 한 장의 회화를 이후로 멸칭이라는 벚잎은 떨어져 내려갔다.

 마치 자연의 찬란함을 잃은 벚잎이 중력을 타고 떨어질 때마다, 거체는 보다 크게, 가지는 보다 높고, 뿌리는 보다 깊게 대지를 찌르는 것과 같이.

 벚꽃이 지고 피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듯, 한규석이 공개한 한 장의 회화로 인해 당연하듯 그의 평가는 역전했다.

 웅장하고 거대한 캔버스 안에 존재하는 그 벚나무는, 이슬을 머금은 벚꽃은, 어디까지나 살아있었다. 희미하게 약동하고 있었다.

 늦겨울에 간신히 눈을 뜬 그 회화는, 바라보는 청중을 입 다물게─단지 묵시(默視:묵묵히 눈여겨봄)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거대한 캔버스 안에 세세한 붓 터치로 완성된 벚잎은 사진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했으나 뇌리에는 회화라고 확실히 인지되고 있는 벚나무. 그런 신묘한 생명력에 괴리감으로 하여금 입이 다물어진다. 목소리가 진동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조금 특별한 작품이야

라고,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구태여 말 따위 하지 않아도, 사진으로 이 그림을 접한 율이는 아무 말 없이 묵시하고 있을 뿐이니.

     「순간을 떼어낸 회화의 세계. 세계의 일부와 회화의 아름다움, 그 교집합」

     「세상은 크게 보면 아름답지 아니 하나, 편린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것.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추악하기에 살아있음을 자각한 세계이므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편린─」

 누구에게도 아닌 나에게만 이 말을 남긴 아버지는, 내가 그 뜻을 깨닫기 전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것이 나에게는 아직도 일종의 수수께끼로 남아버렸다.

 아버지 한규석을 벚꽃의 예술가로 유명케 만들고, 아직도 대표적으로 남은.

 내가 2살 무렵 한규석이 완성한 이 회화의 이름은──

     “──윤회수앵도(輪廻繡櫻圖).”

     “……앗!”

 회화에 빠져 허우적댄 듯한 율이가 정신을 차리듯 등줄기를 곧게 세웠다. 그 자세가 너무나도 선율이스러워서, 입꼬리를 살짝 올릴 수 있었다.

     “죄송해요. 멍하니 있어서.”

     “아냐, 괜찮아. 윤회수앵도를 멍하니 보고 있던 거지?”

     “윤회수앵도 라고 하는군요.”

     “……캔버스의 직물에 수놓인 듯 아름다운, 끊임없이 윤회하여 꽃을 피우는 노목의 벚나무……”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면서도 작게 소리를 내뱉는 것을 멈추지 않는 율이를 보며, 앉아있음에도 살짝 뒷걸음질 치며 입을 벌렸다. 

     “……조금 소름이 돋았어.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알아챈 듯 말한 거야?”

     “윤회수앵도 사진이 들어있던 앨범 귀퉁이에 한자로 이름이 적혀있어서……그럴 듯하게 풀이해봤을 뿐이에요.”

     “……….”

 멍하니 어이를 상실한 나를 뒤로 한 율이는 다시금 회화가 찍힌 사진을 보며, 나지막히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신기한 회화예요. 살아있는 듯 보이지만 제대로 액자와 캔버스 안에 장식되어 있을 뿐이고, 아름다워서”

     “현실마저 이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랍니다.”

 배시시 웃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나 또한 피식 웃었다. 표정과는 달리 그녀가 꺼낸 말에는 꽤 무겁고 진중한 의미가 담겨 있었음에도.

 그래서일까, 가벼운 듯 피식 웃었다곤 하나 제대로 행복함이 배인 웃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저씨에겐, 이런 예술가가 아버지였기에 행복하셨을까요?”

 그녀가 다시 한 번 나지막히 이야기했다. 내 가벼운 웃음과 비슷하게 툭 던진 듯 하는 가벼운 느낌으로.

 가벼운 말이었으나,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예술가인 동시에 최고의 라이벌이었으며, 최고로 존경하는 그림쟁이이자, 최고로 뛰어넘고……인정받고 싶었던 예술가.”

 가볍게 생각이 정리된 나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을 움직였다.

     “그게, 한규석이야.”

     “라이벌……존경……뛰어넘고 싶은……”

 내 말을 들은 선율이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곧이어 펼친 것은 시나리오 종이였다.

 그녀다운 차분함을 잃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거칠고 빠르게 A4 용지를 펄럭이던 손은 어느 페이지를 발견하여 멈추더니, 천천히 그 페이지의 문자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듯 보였다.

 아주 천천히,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미소가 퍼지는 율이의 얼굴이 나를 올려보며, 나지막히 말을 이었다.

     “역시 닮았어요……”

 갸웃, 하는 나를 눈웃음과 함께 쿡쿡 웃으며 바라보는 율이.

     “더 이상 남주인공의 회화를 볼 수 없어, 그를 돌아보게 만드려는 친구가……아버지가 돌아가셔 더 이상 그의 작품을 바라보지 못하는 아저씨와 같이 보였고”

     “────”

     “그런 친구의 진심을 죽어서야 깨달을 수 있었던 남주인공이 얼마나 슬프고 가슴이 미어졌을까. 그걸 깨닫게 해준 여주인공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걸 깨닫게 해준 여주인공 또한 얼마나 남주인공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그를 소중히 생각했는가……”

     “……이제야 전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뻔히 들리는 듯한 소리로, 율이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 후 그녀의 웃음은, 문득 무섭게 느껴졌다.

 닿지 않는 숙직실의 그늘을 쫓아내는 것 같은 석양빛과 함께, 1층 본관의 괘종시계 소리가 6시를 알리고 있었기에. 괘종 소리를 등에 업은 채로 가라앉은 공기를 거머쥔 그늘이 율이의 웃음을 가려주었기에……나는 그렇게 느낀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기보다는 , 그랬다고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갑작스레, 그런 기분이 든 것이다.

 그녀에게 당당하지 못한 구상을 품어버린 내 자신과 그녀가 어째선지 무섭게 느껴졌기에, 나는 의미도 없이 선율이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 채 익숙하게 숙직실을 빠져나가는 선율이를 배웅조차 해주지 못하고, 한유진이라는 어른은 그저 앉은뱅이 탁상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우선, 유진 씨에게 가슴이 미어졌을 소중한 사람들을, 깨워주세요.

 나는 마지막으로, 희미하게나마 들려온 율이의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힘없이 눈을 떴다가, 감았다.

 천천히 차오르는 무언가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시야가 어두워지며 가라앉았을 때, 그것은 또르르 내 뺨을 타고 넘쳐흘렀다.










Writer

Project_So

Project_So

물건너 섬나라 칼럼니스트.

물건너 섬나라 LOSE社 미연시 시나리오라이터 

소설가 지망생 "한소운" 입니다.


개인 블로그 : http://blog.naver.com/n_sousi

개인 작품 :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46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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