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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뭐하세요!(가제) 1 - 14. 이건 절대 시원찮은 선율이라 판단할 수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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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3 Ja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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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Project_So
협업 참여 동의






     ─딸깍

 나는 눈앞에 놓여있던 네모난 기계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었던 종이뭉치와 펜을 내려놓곤 다시 그 기계─녹음기를 조작했다.

 벌써 수천 번 사용하여 너덜너덜 해졌으며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그 녹음기에서 나오는 소리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경청했다.

     “…….”

 아저씨와 헤어진 그날의 밤.

 정확히는 아저씨의 마음의 소리를 엿들을 수 있었던 그날의 밤이다.

 조용히 뇌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남주인공이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 주인공의 친구의……주인공에게 향한 안타까움과 절실한 진의. 그걸 깨우쳐준……누구보다도 주인공을 잘 이해하고 지켜봐 준 히로인.

 그런 히로인의 상냥함과 기대에 의지하며, 죽은 친구에게 드디어 보답할 수 있었던 주인공.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시며……슬픈 눈을 하고 계셨던 아저씨.

 먼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오며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생각은 정리되어 있었고, 제 자신도 깨닫지 못한 채 정신없이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는 여전히……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는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지금의 난 뭐가 부족한 걸까.

 쉽사리 알 수 없었던 남주인공의 생각이나, 또 다른 주인공이라 말해도 좋을 친구분의 마음까지 뼈가 시릴 정도로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아아아!!”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꽉 쥐어, 녹음기를 소파의 반대 방향으로 던져 버렸다.

     “하아……흐으.”

 ‘이를 어쩐담’ 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푹 쉬어보아도, 눈앞의 풍경이 달라지거나 마음가짐이 뒤바뀌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까보다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난폭하게 행동해버린 자신에게로의 자괴감으로 채워지듯 했다.

 소파 반대편에 떨어진 녹음기를 주우며, 다시 대본을 바라보고, 다시 녹음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무심코 툭 버튼을 누르면, 녹음기에서는 마지막으로 녹음된 내 목소리를 흘려 내보냈다.

 연기는 불만족이다. 정확히는 언제나 불만족일 테니 그 안의 감정을 느끼려 애썼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느꼈을 때, 무심코 다시 버튼을 눌러 소리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망설인다.

 연기하는 내 자신의 문제가 아니다. 목소리의 감정이 「망설임」 이라는 것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작품 안의 히로인은……달랐다.

 그녀는 당당했다. 강인했다. 자신의 선택에 일말의 망설임조차 품지 않았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이자,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가버린다 하더라도 마냥 웃으며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이다.

 눈물을 흘리며 잡지도 않으며, 대신 양 팔을 훤히 벌리며 “가세요.” 라고 말한다. 울먹이는 얼굴 대신, 환하고 따스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어주며.

 자신의 욕심으로 그를 붙잡아 두는 것보다 그가 더 아름다운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강함은, 감히 초월적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래. 초월적이면서 강한 매력을 가진 이 히로인에게, 망설임 같은 인간적인 면은 필요 없어.

 설사 히로인이 속으로는 펑펑 울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의 앞에서 발하는 목소리엔 흔들림 따위가 느껴져서는 안 된다.

     “내 자신이 망설이게 되면, 그의 결심 또한 무뎌지게 만들어 버려.”

 필시 이 히로인이라면 그렇게 생각한 것이리라.

 정말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충분할 정도로 이 이야기에 대해, 인물들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나.”

 그렇기에 아직, 난 연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도, 망설임이 목소리에 묻어 나와 버릴……테니까.

     “……돌아오는 길에, 쭉 생각해 봤어요. 들어주실래요? 아저씨?”

 나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아저씨의 형상에 기대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저, 계속 생각하고 고민했어요. 평소에는 감정을 헷갈려 버리거나 모르는 경우는 있었지만, 원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적은 없었거든요.”

 이 말을 듣고 아저씨는 “거 어떤 직종 종사자나 지망생 분들이 들으면 굉장히 부러워할 만한 능력이구만.” 이라 비아냥거리셨겠죠. 그런 아저씨다운 대답을 하는 아저씨를 연상하며 쿡쿡, 하고 작게 웃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저씨가 들고 온 대본을 읽고, 그 히로인에게 딱 맞는 연기 샘플을 가져와 주신 아저씨를 보고 안심했어요. 그리고 제 자신을 믿었답니다. 할 수 있을 거라며.”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모사 연습 때는 잘 나왔던, 감정이 담긴 소리라는 것이, 그 히로인을 연기할 때만 되면 나오지 못했다. 그걸 들은 아저씨도 표정이 좋진 않으셨으니 당연히 NG였겠지…….

     “이후로는 아저씨가 제 목소리를 듣고 내시는 좋지 않은 표정을 보는 게 무서워졌어요. 그래서 일부러 아저씨 앞에서는 연습하는 걸 숨기게 되기도 하고…….”

 모두에게 들키지 않게 음악실이나 빈 교실에서 연습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눈감아주신 아저씨의 상냥함과 배려에 기댄 일상이었다.

 잠시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고 웃었던 나는 그대로 낮은 한숨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때의 저는 자신을 믿어준 아저씨를 믿으며, 제가 히로인을 연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히로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저씨 덕분에 오늘 착각과 변명이라는 마법이 풀려버렸답니다.”

 아저씨의 진심.

 주인공인 아저씨와 그 주인공의 친구. 그리고 그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이셨던 아저씨의 아버지 한규석.

 그 이야기에서 히로인의 지분은 거의 없었지만, 주인공인 아저씨가 말하는 모습과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히로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히로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 자신도 모르게 히로인이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내버리게 될 정도로.

     ─우선 유진 씨에게 마음이 미어졌을 소중한 사람들을, 깨워주세요.

 이 목소리가 과연 「한선율」인 내 목소리였을까 생각해보면, 굳게 입을 다물게 되어버릴 정도다.

 ………응.

 아저씨에게 들려주었고 내 귓가에도 남아버린 그 목소리에 대해, 돌아오는 귀갓길 골똘히 생각해보며……녹음기에서도 흘러나온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며 확실히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그래.

 나는.

 나는 단지……

 나는……단……지………

     “………….”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도달해낸 소중한 생각의 끝. 그것을 온전히 전할 수 없는 자신의 무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상상으로 만들어져, 내 앞에 앉아있는 허공의 아저씨에게조차 꺼낼 수 없는 생각의 끝.

 아저씨, 저에게……히로인의 목소리로 연기할 수 있던 제 자신이 알려주었답니다.

 저는……그 히로인처럼 강해질 수 없어요.

 강해질 수 없었답니다.


 한선율은 소리가 되어 나올 것 같은 그 말을 필사적으로 눌러 참으며, 여전히 미소 지으며 자신의 앞에 앉아 있던 한유진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그리곤 좀 전까지 한유진의 환영이 있던 자리에 떨어져 있던 녹음기를 집어, 품속에 애달피 안았다.

 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 장소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것은, 그 녹음기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안녕하세요.”

     “아.”

 율이에게 괜한 이야기를 했던 탓일까, 괜한 한마디를 듣고 생각에 잠겨있었던 탓일까.

 새벽을 꼬박 새워 편의점 알바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말짱했던 나는 벤치 옆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과 모래먼지를 쓸고 있었다.

 테니스장 건너편의─나무그늘에 가려진 이 나무 벤치는 특히나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아침 일찍 말을 걸어오는 한 꼬마 숙녀.

     “오늘은 한층 더 빠르네. 잠이라도 설쳤………”

 바닥을 쓰느랴 미처 보지 못했던 율이의 얼굴을 바라보면, 눈 아래에 검은 그림자가 선명했다. 심하다 할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특히 피부가 흰 그녀이기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겠지.

     “잠을 안 잔 것이냐 못 잔 것이냐 물어보신다면 전자지만요…….”

 이후 소곤거리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    

     “……아니, 둘 다 일까요.”

     “?”

 그녀는 마감 날짜를 하루 앞둔 만화작가와 같이 어둡게 쿡쿡 웃었다.

 원래 이런 장면에서는 흘려듣듯 제대로 듣지 못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나는 들려온 말을 못 듣는 척하는……이야기 주인공과 같은 성격으론 태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 열심히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마다. 하지만 몸 건강을 해칠 정도로는……”

 ‘몸 건강을 해칠 정도까지는 무리하지 말아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알아서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적어도 그 이유를,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농담을 하실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으신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그녀 또한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 듯싶었다.

     “제가 여쭐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며칠 정도 여유가 있으신가요?”

 율이는 머뭇머뭇 거리면서도, 제대로 또박또박 물어왔다.

     “농담 섞어 말해주길 원해? 아니면 급박이라는 것에 쪼들리듯 말해주길 원해?”

     “농담 못 하실 정도로 여유 없다는 말은 취소에요……. 이왕이면 정확한 정보를 원해요.”

 ‘역시 그렇게 나왔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절대 정확한 여유 날짜를 말해줘서는 안되겠다고 다시금 맘먹었다.

 내가 아는 한선율은……적어도 내 형편에 맞춰, 연습 기간이 부족할 시엔 맘에 들지 않는 연기나마 바로 녹음하려는 아이이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만족하려, 시간을 깎아 연습하려 하는 욕심쟁이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의 형편을 맞추는 것은 둘째 치고, 적어도 한정된 결과 속에 최대한 시간과 몸을 깎으려는 모습은 익숙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미세하게 힘이 들어가는 내 왼손이 직접 이야기하는 양 느껴졌다.

 이렇게 된 내 모습에 후회하지도 않기도 하고, 되레 인간이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이 그녀는 아니었으면……하고는 생각해버린다.

 그녀는 그런 아름다움의 방법 이외에도, 인간으로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율이 만의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애초에 무언가를 깎아 아름다움을 만드는 방식은……범인의 편협된 사고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쪽 눈을 감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꺼냈다.

     “구태여 말하자면 여유가 없는 건 아냐. 넌 네가 할 수 있는, 보여줄 수 있는 목소리를 들려주려 노력하면 돼.”

     “……항상 시간이 지나도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멋진 말이지만요.”

 나는 문득, 그녀가 “멋질 뿐의 말이지만요” 라고 말 한 듯 착각해버린다.

     “뭐 좋아요. 결국 연습이 있을 뿐……이군요.”

     “정말 위태로우면 이야기할 테니까.”

 말 자체가 위태로우며 책임감 없었지만, 그대로 진심인 말을 그녀에게 말해 놓는다.

     “아저씨는……”

     “응?”

     “제가 최근, 일부러 숙직실에서 연습하지 않은 것은 눈치 채고 계셨죠?”

     “그래서 어제 같은 말을 한 거니까.”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괜찮겠느냐 하지 않은 아저씨 덕에 편히 집에서 연습할 수 있었어요. 결과를 떼어두고 얘기 한다면요.”

 ‘집에서 착실히 연습할 줄 알았어’ 라고 말하려 했지만 관두고, 단지 율이의 이야기를 계속 경청했다. 그녀의 탁월한 어휘력에 감탄하면서.

 하지만 경청할 것도 없이, 그녀의 아침 공기와 같은 도란도란……그러면서도 당찬 목소리는 몇 마디 더 길어지지도 않고 종말을 맞이했다.

     “어제 아저씨가 해준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드디어 갈피를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숙직실에서 연습해 보고도 싶어졌어요.”

 그녀는 조금 생각에 잠기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하늘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싱긋 웃는 표정을 보아하니, 마냥 둘러대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외로 괜찮은 느낌이었다던가?”

 물론 나는 잡아둔 느낌을 방치해 두는 쪽은 아니었기에, 바로 수면 위에 낚싯대를 던졌다.

     “수치로 표현하면 80% 정도일까요……. 아직은 녹음에 들어가기 빠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가.”

 어깨를 으슥, 얕은 미소를 수면 위로 띄며 그녀가 말했다. 아무래도 잠들지 않으면서, 잠들지 못하는 기묘한 밤을 보낸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여하튼 율이 자신이 생각하고 도달한 결과가 그런 것이라면, 이쪽에선 기다려 줄 수밖에 없다.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되레 크게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으리라.

 구태여 거절할 필요가 없었던 나는 거리낌 없는 웃음만을 율이에게 돌려줬다. 몇 마디 말보다 이 편이 더 능숙히 전해질 것이라 어렴풋이나마 생각한 결과였다.

     “자다가 일어나서, 적당히 기다리면 되는 거지?”

     “네. 방과 후에 적당히 혼자 연습하다가, 제가 숙직실로 내려갈게요.”

     “또 교실에서 하다가, 나 같은 사람에게 들키지 마.”

     “안 들킬 거예요!”

     “………이제 그런 방식의 술래잡기는, 지긋지긋해요.”

 대사와는 정 반대인……만개한 벚잎과 같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내 머릿속에 소리를 새겼다.

 봄의 이른 아침 공기라는 것이 이렇게나 기분 좋았던 것일까 라고 오랜만에 자각하며, 쓸어 담은 나뭇잎 사이에 섞여 들어온 벚잎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어벙한 표정과 함께 잠에서 깨니 눈앞이 캄캄했다. 발치에 느껴지는 스마트폰을 톡톡 건드려보면 액정이 밝게 빛났다. 강렬하게 빛나는 액정엔 [16 : 24] 라는 숫자가 보였다. 기상시간이라기엔 어폐가 있는 시간이었다.

     “으, 이게 완전히 늦었구만.”

 귀 따가운 드라이어 소리에 묻힐 혼잣말을 뱉었다. 단발 수준의 긴 모리가 영 수분을 놓아주지 않았다.

 트랙슈트 윗도리의 지퍼를 올려잠그면서도 16시 24분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근무 리듬보다 3~40분 늦은 시간, 교사 안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시간인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율이를 깨닫고 ‘정규수업 조차 끝나지 않았겠구나’ 생각했으나, 의심할 겨를도 없이 추리가 크게 빗나가 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또 깨달은 것은……이상하게 각인되어 버린 율이의 존재감.

 물론 숙직실에 찾아올 것이라 아침에 율이가 진즉 이야기하긴 했다지만, 내가 ‘아직 율이가 오지 않았네’ 라고 생각해버린 것은 그 약속을 자각하지 못한 기상 바로 직후였다.

 왜 율이가 바로 숙직실에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그 감각을 떠올리면 낮이 뜨거워지면서도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구태여 말하면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순간의 빠른 핸드폰 알람으로 눅눅한 공기가 순환 된다거나, 그런 약속된 전개를 원했지만……

     “……으음, 연락도 없으시고. 영 찝찝한데.”

……그런 편한 전개 따윈 없기에, 아직 수분이 덜 날아간 뒷머리의 끝부분을 천천히 빗질했다.

 덜 마른 축축한 머리카락만큼이나, 여태 하나의 연락도 없었던 율이에 대해서도 걸리기 시작했다. 여태껏 연락이 없었던 적이 없었으니 더더욱.

     “음……찾으러 갈 수밖에 없겠지. 이건.”

 라고 혼잣말을 해봤지만, 이내 머리를 붕붕 돌렸다.

 율이도 여자아이니까, 친구들과의 약속이나……뭐, 여러 가지 있겠지.

 ………………

 ……율이의 친구들?

 그렇게 생각하니 막연히 머릿속에 그려진 것은, 지하 계단으로 밀쳐져 추락하고 있던 한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이게 아니지.”

 그런 일을 당한 선율이라 하더라도 친구가 없을 것이라 넘겨짚는 것은 실례인 상상이었다. 나도 의도치 않게 고독한 학창시절을 할 때조차 언제나 옆에는 태훈이가 있어주기도 했고.

 초등학생 때는……

……………

     “………으윽, 뭐 하는 거야 난.”

 다시 머리를 붕붕 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연하게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일이 있었다. 덕분에 따스한 방바닥을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밟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

 일단 늦긴 했지만, 교내 순찰과 문단속을 끝내 두자. ……그리고 그 김에, 아직 교내에 율이가 있다면 찾아보도록 할까.

     “읏차.”

 결코 여는 힘이 가볍지 않은 숙직실의 나무문을 열며, 한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유라의 모습을 봄바람에 날려 보냈다. 

 한순간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 것은 따스한 봄바람의 덕분일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슬쩍.

 본관 3층, 2번째 기둥, 2번째 소화기의 위치.

 그 앞에 존재하는 어느 5학년 교실의 뒷문, 태양빛이 반사되어 절반만 노출된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교실의 전경.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도 없을 시간이지만, 이 근처만 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게 된다.

 무심코 안을 들여다보면 내가 기대하던 풍경이 펼쳐져 있지는 않을까 막연히 상상했다. 하지만 애석히, 당연히도 내 기억 속 그 장면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에도 없으십니까.”

 뒷문의 문고리에 무심코 올려버린 손을 축 늘어뜨리고는, 발길을 뒤로했다.

 4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완전히 교정 단속을 끝마친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5학년 6반 교실을 돌아봤지만, 완전한 헛다리짚기 였다.

 뭐, 좋게 생각해서 3층은 재확인을 가해 완벽히 단속한 것이라 받아들이기로 하자.

     “완전한 학년 편파 단속이잖아 이건.”

 피식 웃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하튼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일과는 특수 교실의 문단속.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2층의 음악실. 담당 선생님이 자주 잊어버리시는 건진 몰라도, 일단 내 마음 속 요주의 단속 대상이었다. 저번의 그 도주 사건 당시에도 보란 듯이 열려있기도 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한 층 내려가 음악실 복도 쪽으로 뚜벅뚜벅.

 음악실 특유, 굉장히 무겁고 튼튼해 보이는 두 짝의 방음 도어를 살펴보니 그 잠금장치는 눈에 익은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을 뱉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아, 손잡이에 살짝 힘을 줘 문을 당겼을 때엔 문은 무거운 소리를 내며 공기가 통하는 틈을 만들어냈다.

 기압의 차이와 방음 도어 자체의 무게로 인해 천천히, 묵직하게 열리는 음악실의 문과 함께 귀에 익은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본능이 먼저 깨달았다.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다.

 이 공기의 떨림, 파장은 내 귀에 충분히 익어, 어떤 소리인지 인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소리에 귀띔이 없는 나라고 하더라도, 익숙해져 버린 아름다운 선율 정도는 충분히 구별지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문을 소리 없이 천천히 열어가며, 그 소리에 홀린 듯 천천히 그 공간에 몸을 집어넣는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던 대로의 실루엣이──

──그 소리의 주인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조금의 기회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면……다시. 조금의 기회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목을 고르고는, 조금 더 고개를 추켜올린다.

 눈에 익은 종이뭉치를 두 페이지 뒤로 돌리고는, 아까까지와는 완벽히 다른 음색으로 공기를 진동시켰다.

     “당신에겐 회색으로 보일 뿐의 시간이라도……누군가에겐 조금 더 각별한 시간일 수도 있답니다!”

 선율의 공백과 함께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아무도 없는……없을 정면을 조금은 요염한 눈빛으로 주시한다.

     “……누군가에게는, 말이에요.”

 마치 눈앞에 남주인공이 있는 듯───금방이라도 낮 뜨거운 웃음으로 대답할 것만 같은 남주인공이 있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그에게 보일 회색뿐인 시간을 조금 더 각별히 보는 것은 과연 히로인 일 것인가, 이미 세상을 떠난 주인공의 친구 일 것인가.

 의미심장하며 요염한 그 음색을 끝으로, 그녀를 묶은 내 풍경은 전환을 맞이했다.

 그녀의 목에서 나오는 음색은 이 교실의 전경을 석양으로 하여금 만들었다.

 그래. 그녀의 목소리는 머릿속이 시원해질 것 같은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시간이 아닌, 주홍빛으로 잔뜩 물들어져 있는 시간대로 내 자신을 옮겨두기 충분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선율의 영역에 온몸을 들이고, 바깥세상과 단절되듯 한 두터운 문은 약간의 유격조차 두지 않은 채 닫혀버린다.

 어느 하나 자각하지 못한 것 들 뿐이었다.

 대본을 무섭게 바라보는 그녀는,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초대한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 채 시간을 조종하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세요……내일도 무사히 볼 수 있도록.”

 어느 때엔 서로를 시선에서 놓쳐버릴 것 같은 깜깜한 밤으로.

     “이 와플, 먹는 데에 손이 많이 가네요…….”

 서로를 시선에서 놓지 않는, 정말로 밝고 명랑한 벚꽃 아래로.

     “조금은 더……잡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놓아야 하는데, 놓으려고, 놓치지 않기 위한, 서쪽의 지평선으로 삼켜지는 은은한 석양빛의 시간으로.

 그녀는.

 한선율……선율이……율이는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수치로 표현하면 80% 정도일까요. 아직 녹음에 들어가기엔 빠를지도 모르겠네요.」

 …………웃기지 마.

 지금이 녹음 현장이었다면, 다른 것은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그대로 OK였을 거라고. 마음만큼은, 지금 대학에 붙어있는 음향 스튜디오를 통째로 뜯어오고 싶을 정도라고. 제멋대로 뜯어온다 하더라도, 지금의 율이는 그 삭막한 작업환경조차 자신이 바라보고픈 아름다움으로 바꿔 버릴 테니까.

 그 정도로……며칠 전, 내가 저 녀석에게 이야기했었던 [감정의 애매모호함] [불균형] 이라는 요소 따윈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선율이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니까. 경험이라는 기억으로 형성되는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줘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체념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지금 내가 느끼는 그녀에게로의 평가는, 단순히 과장된 평가의 일부일까?

 ……아닐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가질 수 있을 확신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그토록 눈 감아 애써 외면하려 하는 천재 유형의 노력파 꼬마 성우님은 내가 볼 수 없었던 곳에서 계속 시간을 축적하며, 결국엔 그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반가웠다. 축하해 주고 싶었다. 격려해 주고 싶었고, “열심히 했구나” 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기도 했다. 그 찰나의 시간에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대신, 시나리오에 푹 빠져있어 나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한 율이의 뒷자리에 말없이 착석했다.

 의자를 뒤로 밀어낸 채 일어나 있는 그녀의 뒷모습은, 잘 정돈된 흑발이 허리까지 길게 뻗어있는 평소대로의 율이.

 그 뒷모습에는 미혹과 같은 약한 감정 따윈 비치지 않은 채, 연기의 끝을 맞이한다.

 마지막 페이지 윗줄의,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파트.

 결국 남주인공이 떠나가고서는, 그저 등을 밀어주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에게 한탄하듯, 하지만 끝까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자신에게 포상하듯. 그러면서도 규탄하듯.

 조용한, 조용할 수밖에 없는 한 마디.

     “………좋아……사랑했었……어요, 이제는 의미 없는 울림이지만.”

     ─콕

     “으히엣?!?!?!?”

 아, 실수.

 너무나도 멋진 연기를,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주는 율이의 목소리를 듣곤, 나도 모르게 율이의 등을 손가락으로 찔러 버렸다.

 몸을 돌리며 휘날려지는 진한 흑발이 내 안면을 스쳐 지나가며, 미려한 샴푸 향이 풍긴다. 이후로 이어지는 오감은 청각, 굉장한 떨림으로 계속되는 율이의 소리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저씨?!”

     “그렇게까지 놀랠 건 없잖아.”

 가볍게 놀래켜 주려던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격렬하니 흥미롭다는 감정보단 미안한 감정이 먼저 심장에 도착했다.

 물론 이 상황 자체부터 충분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어……언제?!”

     “언제부터 여기 있었느냐 묻고 싶은 것이냐면……조금의 기회도 없이……라는 대사 근처였을라나.”

     “………그렇다는 건.”

 분명 정면을, 내 쪽을 향하게 몸을 돌린 율이지만 시선은 대체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저 눈.

 동공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는 것.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 본인이 아닌 나라는 것이 애처롭게만 느껴졌다.

 여기서는 당황하지 않게 선의의 거짓말을 내뱉어볼까, 라고 생각하며 닫혀있는 입술에 신호를 보내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입은 열리지 않았다. 거짓말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씁, 어쩔 수 없지.’

 [거짓말] 이라는 키워드를 깨끗하게 포기하고, 내 뇌는 차선책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겨우 갈구해낸 차선책은, 생각보다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

     “……뭐라도 마실래?”

 나는 간신히 미소를 띠며,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햐아아……”

     “잘도 마시네.”

 그녀를 위해 냉장고에 넣어뒀던 페트병의 냉녹차. 그걸 병째 시원하게 잘도 마시는 율이를 보며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렇게 시원한 녹차는 마셔본 적도 없기도 했고……뭔가 신기한 느낌이에요.”

     “목에 뭔가 걸리는 듯 있던 느낌이 사라졌지?”

     “네! 게다가 시원하고 맑아진 느낌이라.”

 녹차에는 기름 성분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어 기름진 듯 가래 낀 목에 도움을 준다는, 쓸데없는 지식의 산물이었다.

 신기한 듯 아직도 눈을 반짝이는 율이를 옆에 두곤, 나는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며 그녀가 앉은 책상 위의 대본에 손을 옮겼다. 이틀 전에 새로 뽑아준 것이 확실한 그 대본은, 이미 모서리가 변색되고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손이 가는 대로 펼쳐진 부분은 11페이지의 마지막 부분. 전체적인 앞부분보단 마킹과 메모가 적은 편이었지만, 5학년짜리가 만진 대본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듦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조잡한 모양새가 아닌 깔끔한 서체와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그 대견함에 헛웃음이 나올 것만도 같았다.

 두 가지 색상으로 통일된 사인펜 마킹, 그리고 돼지꼬리로 삐져나온 몇 줄의 메모. 간간이 보이는 <아저씨> 라고 적힌 지문.

     “………?”

 ‘아저씨’…?

     “저 율아? 여기 ‘아저씨’ 라고 적힌 메모는 뭐야? 내 지문은 아닌 것 같은데.”

 마침 녹차를 전부 비워버린 율이에게 천연덕스레 말을 건넸다.

     “아, 네?”

     “………!!!!”

 알 수 없는 무언가로 화들짝 놀란 율이는 보이지 않은 속도로(주관적) 내가 들고 있던 대본을 낚아챘다.

     “아무것도 아녜요!”

 그 목소리는 필사적으로까지 들려왔다.

 미묘하게 부끄러워하며, 귀기가 서린 목소리와는 상판 다른 귀여움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다시금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젠 습관이 된 것도 같았다.

 손바닥이 익을 것 마냥 뜨거웠던 아까와는 다른, 식어버린 율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한 마디를 남겼다.

     “열심히 했구나.”

     “………….”

 이 한마디에 부끄러운 듯 부들거리던 율이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윽고, 그녀의 낮게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들리셨나요?”

      “응. 솔직히 말해서 놀랐어. 그 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경청하게 될 정도로.

     “제 등을 잘만 찔러 주셨으면서.”

     “아픈 곳을 찌르지 마.”

 익숙지 않은 손으로 쓰다듬느라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준 뒤 나는 다리를 쭈그려,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같은 눈높이로 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불안의 스위치가 켜진 듯 비쳤다.

      “아저씨의 그런 표정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거짓말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려요.”

     “정말? 내가 어떤 표정이었길래.”

     “아저씨 같은 표정이었어요.”

     “언제나 거짓말을 하고 다닐 듯한 표정이라고?”

 나는 뒷목을 긁으며 “나름 진심으로 살아왔는데…” 라고 중얼거렸고, 그걸 본 율이가 작게나마 키득 웃었다. 그녀에게 뜬 먹구름이 살짝은 가신 것만 같았다.

     “솔직히 놀랐어. 아주 깜짝 놀랐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네 면전에 오리지널은 힘든가……운운했었으니까 더더욱.”

 아침에 그녀가 나에게 와 들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연습하고 싶다 했을 때부터 생각했다. 나도 같이 노력해야겠다고. 그녀의 소리는 완성되어있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같이 연습에 어울려주려고도 생각했다. 그녀가 전부 비워버린 녹차의 페트병도, 그 생각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가 전부 비워버린 녹차와 같이, 내 준비와 결의는 흐지부지 종말을 맞이했다.

 그녀는 완성되어 있었다.

 율이는 완벽하면서도 강인하고, 초자연적인……성가신 그녀가 어떤 목소리로 흐느낄지 전부 깨달은 뒤였다. 그리고 그녀가, 율이가 울리는 소리를 접하는 나는……4시의 석양이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도와주란 말인가?

 그런 그녀에게 어떤 참견을 하란 말야.

     “……….”

 내 성가신 말을 묵묵히 들은 그녀는, 단지 침묵만을 이어갔다.

 완벽한 연기라고 들은 율이가 방방 뛰며 기뻐하리란 반응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기뻐하는 듯한 모습 정도는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얼굴에 미려한 웃음을 띠며───기뻐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모습이었다.

     “……이 연기를 보여주려, 아침에 이야기해준 거야?”

라고, 사족과도 같은 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자 그녀는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서, 잔뜩 숨을 들이 삼켰다.

     “─────하아아아.”

 그리고, 다시 크게 내뱉었다.

     “먼저”

     “?”

     “……에히힛, 감사합니다. 아저씨.”

 작게 눈웃음 하며, 부끄러운 듯 인사했다. 그 웃음엔 때가 묻지 않을 것 같은 청량감이 포함되어 있었다.

     “뭐야, 날 속인거야?”

     “속일 셈은 없었어요. 안 그래도 아저씨가 칭찬해 주셔서 몸이 이곳저곳 간지러워지는데, 멈추지도 않고 계속 그러시니까…….”

 율이는 멍하니 창밖의 저 하늘을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기뻐요. 아저씨의 말씀.”

     “아저씨에게 정말 보여드리고 싶던 건 이런 것이 아니었지만, 만족하시니 괜찮을 것 같아요.”

 그 말은 언뜻, 시원하게도 들렸다. 굉장히 신경 쓰이는 말이었지만, 그 시원함이라는 것 덕분에 추궁할 수 없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응?”

     “정말로. 제 목소리는 그 히로인과 같았을까요?”

     “정말로 제 목소리가, 망설임 따윈 묻어 나오지 않는 그 히로인의 음색으로 들릴 수 있을까요?”

 율이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구태여 내 자신에게 아닌, 그 목소리를 듣게 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내 자신에게도 말하는 것이라 자각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럴 때야말로 대답해야 하는 답을, 나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는걸.”

 그 홀린 듯한 한 마디에 다시금 미려한 샴푸 향기가 겉돌았다. 그녀가 나를 향해 돌아 본 것이다.

     “예전에 말한 적 있었지? 이 역할을 네가 맡아주었음 한다고. 그리고 그것은 내 순전한 욕심이며……네가 열심히 해주었으면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평소의 뚱한 표정으로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며 도란도란 말을 이어갔다.

     “너는 노력했어. 힘든 것마저 넘어가며, 연구하며, 귀찮은 것마저 물어보며 히로인과 마주한 것은 율이 너밖에 없어.”

     “……….”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들으면 그녀가 보였고, 눈을 떠 등을 찌르면 율이 네가 보였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

     “너는, 힘냈어.”

 나지막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던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녀는 나의 말이 정말로 의외인 듯, 놀라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으로 하여금, 거짓은 없었다.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더니

     “………열심히, 했어요.”

     “응. 잘 됐네.”

     “정말, 노력했어요.”

     “응. 힘냈구나.”

     “에헷……헤헤헤헤………”

 헤픈, 그러면서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잔뜩 웃음을 흘렸다.

 너무나도 슬퍼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과 같을, 웃음이 멈추지 않는 그녀를 바라보자니 그저 빙긋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연기도 아닐 자각한 것도 아닐 그녀의 감정에, 조금도 의심 없는 기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고장 난 듯 웃으며 두 손을 꽉 쥐는 그녀의 머리를 다시금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마도 그녀는 이렇게 웃어본 적이 없겠지. 이렇게나 칭찬받아본 적 없었겠지.

 수도 없이 복잡하고 성가신 히로인을 정복한 것은, 아직 백지상태의 어린아이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할 수 있었다.

 지금 그녀가 이렇게 고장 난 듯 웃듯이 언젠가 그녀가 서럽게 목 놓아 울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괜찮다고…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내놓을 수 없는 질문의 답변은, 항상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채로 시간이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시간은 밝은 낮을 금세 석양으로 물들여 열어놓은 창문의, 석양빛을 받는 커튼을 흔들어, 방 안의 그림자를 시시각각으로 바꿔나갔다.

 마치 그 모습이 다잡을 수 없는 내 마음과도 같을 것이라고, 스쳐 지나가듯 생각했다.

 아,

 아쉽게도, 반박할 수 없었다.







Writer

Project_So

Project_So

물건너 섬나라 칼럼니스트.

물건너 섬나라 LOSE社 미연시 시나리오라이터 

소설가 지망생 "한소운" 입니다.


개인 블로그 : http://blog.naver.com/n_sousi

개인 작품 :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46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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