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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딸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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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53 Feb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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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유난히 바쁜 날이었고, 달이 거의 찰 즈음에야 한 숨 돌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진 주방 정리, 오빤 홀 정리, 전 설거지로 일을 나누었지요. 끽차점이라 기름때나 냄새 심한 찌끼가 적으니 다행이에요. 그래도 손이 모자라 그릇을 다 씻어 두질 못하고 그때그때 닦아 음식을 내어 놓다 보니 쌓인 설거지감들 상태가 영 별로였어요. 당밀이 말라붙거나 팥고물로 칠갑이 되어 버렸단 이야기예요. 열심히 문지르고 닦길 반 시간을 해서 겨우 그릇산을 그럭저럭 깎아 냈어요. 제 손님도 없으니 가게 문을 닫아 버릴까 해서 얼른 뛰어갔어요. 제 손이 문고리에 닫기 전에 문이 드르륵 열려서 조금 놀란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두 사람이 문지방 너머에 있었습니다. 아직 폐점 시간이 덜 되었으니 온 손님을 굳이 내칠 순 없었어요. “어서 오세요. 못 뵙던 고위 신관님들 같은데, 이런 누추한 가게엔 어쩐 일로?” 아무래도 제가 너무 눈치 빠르게 굴었는지 두 손님은 움찔거리셨렸어요. 괜한 오해 사기 전에 재빠르게 말을 이어야겠지요. “신분을 숨기실 셈이었으면 두건 아래 노란 모관을 벗어서 짐 속에 넣으셨겠죠.” 


  뒤에 선 손님이 먼저 두건을 젖히고 싱글벙글 웃으며 모관까지 벗어 손에 드셨어요. 키가 훌쩍 크고 머리가 하얗게 센 분이었죠. “똑똑한 아이구나. 신전서 알려 준 대로라면 네가 미호누렷다? 우린 네 오래빌 만나러 왔단다. 좀 허기가 졌으니 이왕이면 요기도 좀 했으면 하고.” 전 손님들을 막 청소한 탁자 자리로 안내해 앉혔습니다. 청솔 하던 오빤 손을 잘 씻고 앞치마는 벗어버리고는 그 탁자 옆에 갔어요. “네가 미하모냐?” 이번엔 지금껏 가만 있던 신관님, 키는 중간 정도고 눈매가 날카로운 분이 말하셨죠. “예. 못 뵙던 신관님들이신 것 같은데, 미모란제에서 오셨습니까?” “그래, 우린…….” “기엄 님, 무어 이리 급하십니까? 뭘 좀 먹고, 천천히 하십시다.” “……미루엄 님이 그러자고 하시면 그래야지요.” 열심히 훔쳐 들으면서, 전 아버지가 급히 우린 곡차 두 잔에 차림판을 받쳐 들고 얼른 뛰어갔어요. 일행이긴 일행이지만 분위기부터 영 일행 같지가 않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루엄이라는 분은 차림판을 휘릭 훑더니 또 싱글벙글 웃으셨어요.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 아니라면 이 가게엔 성자 이니엄 님의 일화를 아는 사람이 있구나.” “네, 저예요.” “재미있구나. 난 이걸로 다오.” “미루엄 님이랑 같은 걸로.” 주문을 받아 주방으로 가니 아버진 벌써 언 산딸기를 꺼내려 나가신 것 같았어요.


  신관님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 고상을 떨지도, 허겁지겁 먹어치우지도 않으셨습니다. 대뜸 뒤섞는 게 아니라 숟가락으로 이리저리 파헤쳐 살펴보는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이건 부순 산딸기, 이건 한천 조각하시다가 까맣게 뿌려진 게 뭔지 이야길 하기 시작하셨죠. 무슨 청(淸)인지 미주알고주알 주고받는 걸 떨떠름한 얼굴로 보던 오빠가 당밀이라고 말을 꺼내고서야 연구 아닌 연구가 끝났어요. 사실 완전히 끝난 건 아닌 게 성자의 일화를 신민들이 음식 이름에 가져다 붙이는 게 율법에 어긋남이 없겠느냐는 둥, 허황되거나 망령되게 썼다면 죄가 되겠지만 참신하고 맛이 좋다면야 무어 문제되겠냐는 둥 절 뜨끔하게 만드는 잡담까지 오갔지요. 그렇게 거진 반 시진을 뭉그적거리신 고귀한 분들은 그릇을 물릴 겸 아버지랑 절 불러서는 잠시 자리를 피해 줬으면 한다고 말하셨어요. 아버진 가게 문을 닫아 걸 겸 문으로 나가셨고 전 식기를 개수대에 놓을 겸 주방 쪽으로 갔죠. 그러다 보니 ‘내가 못 들을 건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 맹랑하게 뒷문으로 나가는 척을 하고는 옹송그린 괭이처럼 도로 쏙 들어와 눈에 띄는 데 얼른 숨었어요. 개수대랑 그릇장 사이에.


  “그 아인 네 동생이냐? 보통 똑똑한 아이가 아니더구나.” “별난 아이입니다, 미루엄 님.” “그래, 미호시가 너흴 직접 가르쳤느냐?” 오빤 살짝 놀란 투로 대답했습니다. 수도의 승정님들까지 어머닐 아시니 그런 건지, 그냥 떠 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머닐 아십니까?” “알다마다. 미호시는 유명했으니까. 게다가 난 미호시의 스승인 비시엄 님과 제법 친분이 있다.” “그렇습니까……. 방금 물으신 말씀에 대답을 해 드리자면, 어머니가 직접 나서 교육한 적은 없습니다. 저흰 신민이다 보니.” 기엄 님은 혀를 차셨어요. 묘하게 기분 나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혀 찰 일이 맞기는 맞겠죠. “그래? 나기부터 영특한 아이였다는 게냐?” “그런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저 읽기를 좋아했고, 어머닌 그걸 막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래…….” 잠시 정적이 찾아왔어요.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식기 잘그락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요.


  “미루엄 님, 우선은 신성적성 검사를 해 보고 이야길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불쑥 기엄 님이 끼어드는 게 들렸어요. 뭔가 말투는 예의발랐지만 짜증이랑 피곤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지요. “……알겠습니다. 미하모, 잠깐 앉거라. 오른팔을 탁자 위에 올리고.” 식기 밀어붙이는 소리, 의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오빤 왜 가타부타 말없이 순순히 따르는 것 같았어요. “이 계측기로 피를 조금 뽑으마. 바늘로 살짝 찌르는 정도면 된다.” “그냥 다짜고짜 그걸로 검사를 하시면 그만이 아니었습니까?” “그러자는 분들이 없지는 않더구나. 하지만 사람은 소나 돼지가 아니지 않느냐? 어디 가축 검사하듯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얼마간 조용해지나 했더니 우당탕 와장창 하며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전 사람을 잡는 줄 알고 하마터면 숨어 있던 데서 뛰쳐나가 소리를 꽥 지를 뻔했어요. “맙소사, 신성적성이 2만을 넘는다고?” 아무래도 요란뻑적지근한 소린 오빠가 버둥거리면서 낸 게 아니라 기엄 님이 허둥지둥 벌떡 일어나면서 내신 모양이었어요. 전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그나저나 신성적성이란 게 뭐길래 높으신 분이 저렇게 당황하셨을까요? 전 귀를 좀 더 쫑긋 세웠어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 아이는 당장 성기사단에 입단해야 합니다. 영광의 나라를 위해!” 아무래도 오빠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오빠가 어떤 사람인진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제일 잘 아시고 그 다음으론 제가 잘 알지요.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엄 님.” “그분의 은총이 너를 성전의 선봉으로 이끄신다. 잘 알고 잘 모르고 논할 것도 없지. 성국 신민으로서 영광의 나라로 가는 달빛길에 쇄신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아버지 끽차점을 물려받아 뭇사람들에게 차나 주전부리를 먹이는 것도 일인의 신민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금 말대답…….” “기엄 님, 그쯤 하십시다.” 저라도 말대답했을 것 같기는 한데 혹 잘못될까 겁이 나던 차에 미루엄 님이 말을 끊으셨어요. 생각해 보면 오빤 저 분을 믿고 적당히 까불어 본 게 아닌가도 싶었죠. “보십시오, 미루엄 님. 이런 불충을 그냥 보아 넘겨서 되겠습니까?” “저 아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기엄 님의 충정과 열정을 모르는 바 아니니 이 자린 제게 맡겨 주시지요.” “이 아이는 경우가 다른 것 같습니다만.” “제가 그르쳐 놓은 일이 있었습니까? 기엄 님, 성급하게 굴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입니다. 열을 가라앉히시지요.” 오빠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답이었던지도 모르겠네요. 가게 문이 드르륵 사납게 열리는 소리가 났으니까요.


  “어쩌자고 그런 식으로 말대답을 했느냐? 경을 칠 수도 있었어.” “안 쳤지 않습니까?” “허, 참……. 꼭 미호시 그 녀석 같구먼.” 어머닐 닮았단 건 저나 오빠한텐 꽤나 큰 칭찬이죠. 그런데 별안간 오빠가 차를 내겠다고 말하며 주방에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숨소릴 안 내려고 입을 꼭 틀어막았는데 오빤 제가 숨어있는 걸 애저녁에 알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따뜻한 귀리차 두 잔을 부어 놓고는 ‘안 들키게 잘 해’라고 속닥거렸거든요. 어쨌든 이야기가 곧 계속되었어요. “성기사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일종의 선전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껄껄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떤 껄껄이었냐면, 생각지도 못한 재밌는 걸 들었을 때 나오는 껄껄이었어요. “흥미로운 의견이구나. 그래,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한번 들어 보자꾸나.” “마지막 성전으로부터 백 년 남짓 되었습니까? 그 무시무시한 강철비는 차치하더라도 마니 사람이 이제 머릿수가 스무 배는 되는 태양인과 정면으로 맞붙어 이길 방법이 그 사이 마련되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성전 운운하는 건 다른 속셈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아닌게아니라 오빠가 그걸 모를 리가 없겠죠. 잠시 이야기가 맥이 끊겨 버렸어요. 조금 초조해질 만큼.


  “이길 방법이 있다면 어떻겠느냐?” “……예?” “성전에서 이길 방법이 있다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분께서 기적을 내려 주마고 속삭이기라도 하셨습니까?” 찻잔이 달그락 놓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미루엄 님이 차를 쭉 들이켜고 목을 축이신 것 같았지요. “당장은 말해줄 수 있는 게 적구나. 내가 네 어머니와 안면이 조금 있었건 말건 피차 오늘 처음 봤거늘 별다른 말도 없이 믿음을 사리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겠지.” “예에…….” “미하모, 기적이란 무엇이냐?” 뜬금없는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오빤 심심하게 대답했어요. “그분의 우리 민족에 대한 보살피심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적이 내렸다’라는 말을 쓴다. 일종의 사건 하나로 생각한다는 게지. 하지만 당장 당사자인 성자와 결과물인 성유물을 인정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그 전후로 성자께서 보인 말도 안 되는 행동이나 우리 민족, 우리 성국이 겪는 격렬한 뒤바뀜도 하나의 총체로서 기적이라 할 수 있을 게다.” “말씀하시고 싶으신 게 정확히 무언지 잘 모르겠습니다.” “네가 물었지 않느냐? 여신께서 기적을 내리겠다 하셨는지. 적어도 기적이 내리는 중이라 하겠다, 나는.” 처음으로 오빠가 당황한 게 칸막이를 넘어 제가 쪼그리고 숨어 있는 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정말 뻔뻔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절대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잖아요, 저건?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미루엄 님?” “네게? 없다.” 전 이 말을 듣자마자 촉이 왔어요. 저 신관님은 정말 좋은 분이거나, 아주 나쁜 사기꾼이라는 감 말이에요. 오빠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미루엄 님이 떠들기 시작하셨죠. “마니 사람의 성지 사랑은 사랑을 넘어 일종의 신경증에 이르렀다. 히나마니를 되찾거나 우리가 결딴나는 그 날까지 어떤 모양으로든 성전 운운은 끊이지 않을 게야. 성지근본주의자들에게 발맞춰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신관이든 신민이든, 지혜롭게 대처해야겠지.” 무언가 부스럭거리더니 탁자를 탁 때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 작은 기계는 네가 뛰어난 성기사가 될 공산이 아주 크다고 하는구나. 기엄 님 같은 분은 그래서 네게 영광의 나라를 들먹이며 더 많은 의무를 지우기 원할 게다. 글쎄, 율법에 신관과 신민이 나뉘어 있는 이유를 잊으신 게지. 무릇 큰 의무란 신관들의 몫이야.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 대함을 개나 돼지를 대하듯 할 수는 없음이라고. 그래서 네게 억지로 짐을 지게 할 수는 없으니 네게 바라는 것도 없다 하는 게다.” 오빠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그럼 이 대화가 다 무어냐고 되묻지는 말거라. 반대로 네가 얻을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봄직하니까. 예를 들면 너희 남매의 거취 같은 것.” 전 펄쩍 뛰었고, 만약 머리 위에 뭔가 있었다면 들이받아서 넘어뜨리든 망가뜨리든 했을 거예요. 


  “미호누라고 했더냐, 네 동생?” “……지금 동생을 갖고 절 겁박하시는 겁니까?” “천부당만부당한 소리. 그저 네 선택에 따라 무엇이 가능한지 이야기해 주려는 게다.” 끙, 하는 소리가 들렸죠. 오빤 발끈했던 걸 도로 주워담을 셈인지 잠시 입을 닫았어요. “신성적성이 높은 자가 성기사단에 입단하면 천인대장부터 성무를 시작하게 된다. 신민인 경우 성황령에 따라 즉각 신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되고.” “소문이 자자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전공에 따라 본인뿐 아니라 직계 가족의 신분을 바꿀 수 있는 대율특권을 얻을 수 있다.” “제 동생이……. 태양인들의 피로 칠갑이 된 법복을 받아 입고는 기뻐할 정도로 돼먹잖은 아이는 아닐 겁니다.”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어요. 말장난도 아니고, 결국 절 인질로 한 협박이 맞잖아요? 하지만 미루엄 님은 태연하셨습니다. 뻔뻔할 정도로요. “그렇느냐? 나는 너도, 네 동생도 잘 모르니 네 말이 맞겠지. 다만 분명한 건…….” “분명한 건 넌 성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일개 신민이고, 입단해 봐야 일개 성기사에 불과하겠지. 신성적성이 어떻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요는 네가 있건 없건 별반 달라질 게 없다는 게지. 모란제 성국은 움직인다. 멈출 수 있는 단계를 지나버렸어. 그렇다면 나는……. 이 나라가 움직인 후에 조금이라도 선량한 자들이 어떤 모양으로든 더 남아 있기를 바랄 밖에 없다.” 아무래도 저 분은 염치가 없다기보단 자포자기를 해버린 모양이에요. 그런데 또 그저 그렇다기에는 생각하시는 게 없지는 않아 보였어요. 제가 아는 오빠라면 비슷하게 생각할 테죠. “저는 잘 모릅니다만 미루엄 님은 고위 신관이 아니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셔서 되겠습니까?” “네가 일개 신민이거나 일개 예비 성기사이듯 나도 일개 승정에 불과하단다, 미하모.”


  누가 의자를 끌었는지 드르륵 시끄럽게 울렸어요. “셈을 해야지. 음식 값이 얼마냐?” “안 주셔도 됩니다, 미루엄 님.” “당치 않은 소리 말거라. 우린 무전취식이나 하러 다니는 게 아니니.”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엉뚱한 티격태격이 시작되었지요. “이만큼은 받을 수 없습니다. 드신 음식 두 그릇 값은 이 돈 삼십분지 일도 안 됩니다.” “넣어 두거라.” “넣어 두라니 무슨 말씀…….” “무슨 말씀이냐니, 그런 게 아니다. 입단을 종용하는 촌지로는 알량하기 짝이 없다곤 생각하지 않느냐?” “……대답도 아니 듣고 가십니까?” 부스럭부스럭 하며 외투, 모관 챙기는 소리와 함께 허허 하는 웃음이 들렸습니다. 후련한 웃음 같기도, 허탈한 웃음 같기도, 재미있다는 웃음 같기도 했어요. “미역이나 다시마 튀각을 내는 것도 아니고, 사람 일인데 무슨 앉은자리에 도장 찍을 일각만 주어서야 쓰겠느냐? 기엄 님이야 노발대발하시겠지만 말이다.” “분명히 거절하려 해도 어디에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 지 모릅니다.” “미시르미 신전에 신세지고 있다.” 터벅터벅 목 긴 구두가 굼뜬 울음을 울었어요. 전 곰지락곰지락 숨은 자리에서 기어 나갔죠. 혹 들켜버릴 지 모르니 개수대 위로 얼굴을 들이밀지는 않았어요. 슬그머니 훔쳐보니 오빤 배웅하러 문 밖까지 나간 것 같았어요. 돈을 지금 안 돌려받으시면 신전으로 보내겠다느니, 허튼 소리 말고 동생 봄 무명못이나 사 입히라느니 하는 게 어렴풋이 들렸지요.


  들어와 문을 닫은 오빠 얼굴은 너무 복잡해서 이런 것 같다 저런 것 같다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제가 보기에도 그런데 오빠 자긴 더 그렇겠죠. 눈치 없게 캐묻거나 말 붙이는 대신 전 제 방으로 얼른 달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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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02.14. 00:46

간극이 생겼네요. 하지만 사건은 늘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법이니까요. 그 동생에 그 오빠군요 ㅋㅋ

“허튼 소리 말고 동생 봄 무명못” 무명못 오타 있어요.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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