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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딸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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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36 Mar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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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전 옷보따리를 신줏단지 모시듯 꼭 끌어안았어요. 거룩한 시간이 막 지나 슬슬 땅거미가 흉흉하게 도사리고 있었지요. 늦겨울인 만큼 겨울 장인의 힘이 아직 굳셀 때니까요. 그래도 강 안쪽 가도는 오가는 사람도 많고 월석등이 몇 걸음마다 하나씩 보일 만큼 많아서 환했죠. 네모반듯하게 포장된 길을 총총 걸었어요. 말이 좋아 가도지 얼기설기 구색만 갖춰서 우둘투둘한 강 바깥쪽이랑은 발 가벼운 게 천지차이였어요. 그런데 이 좋은 길에도 소리상자는 못난 얼굴을 빠짐없이 비추고 있었죠. 전 그게 꽥꽥거리고 있는 바로 옆에서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봤어요. 여기 사람들은 무슨말씀을 무어라고 지껄이건 휘릭휘릭 지나치는 걸 멍하니 구경했어요. 전 떨떠름하니 다시 발을 뗐지요. 어서 집에 가서 가게 일 도와야 하니까요. 등 바로 뒤에서, 가는 방향 저 멀리서 소리상자는 제가 뭘 하건 관심 없어 보였지만.



  「성황청에서 소식말씀 드립니다. 히나시미 강 유역의 국지 전투에서 우리 성기사들이 장대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영광스러운 소식입니다. 성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전 남쪽 유역 일부를 점거한 일디오르 공국 괴뢰군에게 적법한 철수를 요구하였으며 이에 불복한 괴뢰군이 강철비를 발포하여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성기사단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영광을 향한 단호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5기의 사사마니를 포함한 11군단 병력으로 작전 개시 72시간만에 신속하게 이들을 격멸하였습니다. 성기사단장 가마시엄 군단원수는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성국의 국토를 수호한 11군단 성기사 및 성전사의 무용을 치하하며 ‘달여신과 성유물의 가호 아래 성기사단은 영광으로 가는 길에 패배를 모를 것이며, 수백 년에 걸쳐 성지 히나마니를 불법점거해 온 일디오르 공국이야말로 이를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다’라 선언, 우리 신민들에게 성기사단을 믿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다음 소식말씀입니다…….」



  소식말씀이 몇 개나 되는지 강을 건너 바깥쪽 가도에 도착할 즈음까지 계속 소리상자가 못난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어요. 깜깜한 델 걸을 땐 보따리를 꼭 안은 채 후닥닥 걷고 월석등 근처에서 한숨 돌리는 걸 서너 번 하고서 집에 도착했죠. 마침 아버지가 밖에 나와 계셨어요. 장사도 안 하고 절 마중 나오신 건가 싶었는데, 좀 더 가까이서 보니 입구 청소를 하고 계신 거였지요. “벌써 닫으시게요?” “내일이 신탁의 날이라 그런지 장사가 안 되네. 그냥 쉬지 싶었다.” 괜히 땡땡이친 것 같아 죄송스러웠어요. 짐을 대충 내려놓고 비를 건네받으려니 아버진 손사랠 치셨죠. “일없다. 손님도 없었는데 무슨 수골 했겠니? 그냥 쉬려무나.”이라고 하시면서. “그럼 제가 죄송스럽잖아요.”라며 툴툴거려봐야 별 소용이 없었지요. 전 개수대에 뒹굴고 있는 식기 몇 개를 얼른 씻어놓고는 옷보따리를 휘적휘적 흔들면서 올라갔어요. 인기척 없이 싸늘했어요. 예전 같으면 건넌방에서 오빠가 반겨주건 잔소릴 하건 했을 텐데. 편지라도 한 통 올 때 되지 않았나 하며 방문을 열었죠. 오늘 뭘 했건 내일 뭘 해야 하건 그저 무심했어요.


  날이 밝았습니다. 사실 아직 날이 밝았다기엔 뭣해서 날이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은 가게 문 일찍 열 것도 아니라 꼭두새벽부터 일할 필욘 없었지만 공들여 꾸미려면 좀 오래 걸릴 것 같았거든요. 몸도 씻어야 하고, 화장도 해야 하고, 옷은 또 걸치는 데 좀 오래 걸려야지요. 우선 아궁이에 물부터 데웠어요. 그리곤 펄펄 끓는 물을 한 대야씩 퍼서 나무 욕조에다 옮겼죠. 늦겨울 동틀녘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열댓 번을 그랬더니 몸이 후끈해져서 춥지도 않았어요. 바깥만큼 추운, 아니, 바깥보다 더 추운 욕실이었는데도 말이에요. 수도를 얼마간 틀어서 평소보다 조금 뜨거운 목욕물을 만들었어요. 세월아 네월아 들어앉아 있고 싶은 기분이었으니까. 막상 훌렁훌렁 벗어젖히고 들입다 욕조에 들어가고 보니 뜨거워서 펄쩍 뛸 것 같았죠. 전 와작와작 소름이 돋은 채로 천천히 몸을 담그면서 부들부들 떨었어요. 평소같으면 머리가 안 젖게 조심했겠지만 오늘은 그냥 산발한 채로 벌렁 드러누웠지요. 증기가 기둥처럼 솟았고,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서 절 간지럽혔어요. 아무렇게나 흐드러진 머리가 목욕물을 따라 출렁거리면서 욕조를 삼분지 이쯤 꺼멓게 만들어 놨죠. 사람 사는 소리도, 벌레 우는 소리도 없이 그저 물 찰박거리는 소리만 귀를 간지럽혔어요. 전 멍하니 둥둥 떠서 고개만 빼꼼 앞을 봤죠. 김으로 눈 앞이 흐려도 두렷하고 큼지막한 살덩어리 두 개가 목욕물을 따라 흐느적거리며 앞을 가렸어요. 삼 년 전인지 사 년 전인지, 이게 뭐길래 이렇게 아파야 하느냐며 어머니께 징징거린 적이 있어요. 어머닌 고약을 주물주물 바르며 “미호누야, 공부랑 다를 게 없단다. 네가 좀 잘난 척하려면 끙끙거리며 성자님들 말씀을 열심히 암송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하셨죠. 졸지에 제 가슴이랑 성자님 말씀이 비슷하게 되고 만 거예요. 전 웃음을 못 참아 허리를 뒤틀었고, 어머니 약손에 살을 짓누르고는 까무러지고 말았죠.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낄낄 웃음이 나왔어요. 둥실거리면서, 형편없이 훌쩍거리면서. 멀리서 보면 천장이 떨구는 물방울이랑 제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이랑 구별이 안 갈 테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살아 계셨으면 오늘 제게 어떻게 해 주셨을까요? 성인이 된 걸 축하해 주실까요, 앞으론 매사가 네 책임이라며 훈계를 하셨을까요? 성황청이나 신전에서 하는 일은 하나하나 마음에 안 들어하셨으니 무어가 신탁의 날이냐고 하셨겠지만 분명히 절 축복해 주셨겠죠. 그리고 생일날이면 으레 그러셨듯 새벽같이 절 욕조에다 앉혀 두고 월석으로 때를 벗기며 머리꼭대기부터 물을 끼얹어 정화 의식을 해 주셨겠죠……. 가만히 있으면 정말 서럽게 펑펑 울어버릴 것 같았어요. 이를 앙다물고 눈두덩이를 꽉 눌렀지요. 더는 울음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지금 보이는 게 있다면 눈꺼풀 안쪽뿐이겠죠. 천장에선 흥건하게 맺힌 가짜 이슬이 투둑투둑 떨어지고 있었어요. 소낙비라면 거짓말이겠지만 여우비 즈음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목욕물에서 퐁퐁 소리가 났고 제 살갗에도 대중없이 떨어져 와작와작 깨무는 소리가 났어요. 조금은 깨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목욕물 찰랑거리는 소리에 묻혀 들릴랑말랑한 소리로 중얼중얼 어머닐 찾았지요. “달바다에 계신 어머니, 어제의 저랑 오늘의 제가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지만 신탁의 날이 왔고 전 성인이 됐습니다. 늘 말씀하셨듯 신탁이라는 이름의 성황청 거짓말을 들으러 가야겠지만 신경 안 쓸래요. 성인이 된 건 기쁜 거고, 성인이 된 날은 기쁜 날일 테죠. 기쁜 날엔 기쁜 날을 맞은 사람답게 행동할게요. 이 날 입으려고 빌려 온 옷을 어머니도 보셨어야 했는데. 어머니, 사랑해요.”


  목욕을 하고 나와서는 물 끓이고 남은 군불에 미리 올려 둔 찬밥덩이를 꺼냈어요. 데운 밥이라기보다는 구운 밥 비슷하게 돼 있었죠. 그 밥을 세모지게 잘 빚어 놓고 훈연한 육편을 저미고 양배추절임을 꺼내 아침을 뚝딱 차려냈어요. 그때쯤 아버지가 일어나셨는지 하품을 하며 주방 쪽으로 나오셨어요. 한 탕 울어젖히고 난 뒤라 그런지 밥이 이상하게 술술 넘어갔어요. 맛이야 늘 먹던 거랑 다를 것도 없을 텐데 말이에요. 식기를 치우면서 아버지께 물을 조금만 더 데워다가 부어 넣으면 목욕물이 될 거라고 말씀드리고는 제 방으로 퉁탕퉁탕 올라갔지요.


  늦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이것저것 할 일이 줄 서 있다 보니 마음이 급했어요. 특히 꾸역꾸역 머리를 길러 놓다 보니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탕에서 멱을 감아버리면 말리는 게 곤란하죠. 뭐, 바람세움대라도 틀어놓고 앞에 앉아야겠지요. 방 안이라지만 겨울날에 쓸데없이 마풍을 맞고 있자니 으슬으슬 추웠어요. 팔이 아플 때까지 머리칼을 들어올려 파닥거리기도 하고 휘릭휘릭 쳐 올리기도 했지만 다 마르는 데 반 시진은 걸린 것 같았어요. 그래도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할 수 있었어요. 


  어머니 서가에 있던 책 중에 일디오르 공국 의복사에 대한 게 있었는데 그 나라 여자들은 허리 죄는 끈 달린 복대에 치마를 부풀리는 철사 틀을 입느라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숨은 숨대로 막힌다나요. 우리 마니 사람들 옷은 가뿐하게 입을 수 있으니 다행이 아니겠어요?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얼른 가슴싸개랑 아랫속곳을 새걸로 꺼내 입었죠. 그 위에 겨울 속치마를 걸치려니 맙소사, 이 짧은 치마 아래로 속치마가 다 비어져 나올 것 같다는 걸 이제야 눈치챘어요. 울상이 됐어요. 별 수 없었어요. 옷맵시가 상할 바에야 속치마를 안 입을 수밖에. 벌써부터 가랑이에 겨울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것 같았지요. 속저고리, 치마, 허리싸개, 허리끈, 복주머니, 저고리. 차례차례 제 몸 위에 쌓아올리고는 연지도 바르고 옆머리를 뒤로 끌어넘겨 머리끈으로 묶어서 치장을 마무리했어요. 창문으로 해가 삐뚜름하게 들어오기 시작하는 걸 보니 그럭저럭 시간에 맞춘 것 같았죠.


  빌린 단화를 꼭 쥐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우리 집 어른이 멍하니 앉아 기다리고 계셨어요. 저더러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늘 같은 날 빨간 옷 입으려 드는 사람은 네 어머니나 너뿐일 것 같구나.”라시면서. 칭찬으로 알겠다고 대답했어요. 사실 정말로 칭찬하신 거예요. 오빠도 같이 갈 수 있었음 좋았겠다는 말을 목구멍 끝까지 꺼냈다가 움찔거리며 도로 쑤셔넣었죠. 아버진 돈지갑이며 열쇠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시더니 얼른 가자고 보채셨어요. 총총 뛰어가 팔짱을 꼈지요. “미호누야, 민망하다.” 전 아랫입술을 보란 듯이 비죽 내밀어 보였어요. 저번에 이리리미에서 오빠도 그렇고, 지금 아버지도 그렇고 사내들이란 눈치 없긴. “앞으로 영영 이럴 일 없을지도 모를 걸요?” “그것도 그렇구나…….” 지근덕거리고 보니 두루마기를 너무 대강 입으신 것 같아 깃도 당기고 소매도 두들기고 앞섶도 바로 해 드려야 했어요.


  집을 나서고 보니 무슨 조화인 건지, 그냥 우연인 건지 막히게 좋았지요. 딱 두 가지 빼고.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으슬으슬했고 빌린 단화가 상할까 걸음걸이를 조심해야 했거든요. 알림말씀이니 소식말씀이니 하며 사람들 머리통을 씻어버리려 드는 소리상자는 오늘만큼은 잔잔한 마니현 가락을 흘려보내고 있었어요. 물론 여전히 소리가 썩 좋지 않았지만요. 사람들 이야길 하자면 오늘만큼은 후줄근한 신민복 차림이 적고 알록달록한 옷 입은 사람이 많다고 해야겠네요. 대개 고급지게 푸른 두루마기나 저고리, 치마 차림에 자수나 장식으로 무얼 넣은 옷차림인가 정도여서 사실 총천연색이라는 뜻으로 알록달록하단 건 아녜요. 마니 사람들 파란색 좋아하는 건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깐. 대신 잿빛으로 우중충한 껍질에 색채가 돌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 사이를 빨간 옷 입고 거닐자니 기분이 이상했어요. 웬만한 사람은 다 한번씩 흘긋흘긋 쳐다보더라고요. 사람 눈에서 작대기가 나온다면 전 고슴도치처럼 사방으로 꿰여 버렸을 거예요. 입대 행사 때 오빠랑 팔짱 끼고 다녔을 때랑은 좀 다른 모양으로요. ‘빨간색?’즈음으로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 ‘이런 날 저런 옷을 입는다고?’정도로 뜨끔한 사람 정도면 참 양반이었지요. 드러내놓고 불경하게 이게 무어냐며 툴툴거리거나 눈에 띄어 보려는 이상한 계집애 취급하는 사람도 있었거든요. 별반 신경쓸 건 없었지만요. 아버진 참 태연하게 걷고 계셨죠. 따지고 보면 가끔이라도 어머니랑 같이 산책을 하시거나 장 보러 가시거나 하면 좀 많이 쳐다봤겠어요? 덕분에 쓸데없이 긴장이 풀렸어요. 정말 평소 저답지도 않고 애 같은 생각이긴 했지만 울 오빠가 임관하고 나서도 그럴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휘릭 스쳐 스쳐 지나가기도 할 정도로. 익숙해진다는 게 이런 건가 봐요. 첫 번째 성자님, 달바다에 계신 어머니, 제가 덜떨어진 생각 못하도록 늘 살펴봐 주세요. 벌써 그랬으면 얼른 꾸짖어 주시고.


  물론 저처럼 아버지든 어머니든 부모 손잡고 다니는 아인 제법 있었지만 혼자 다니는 쪽도 그만큼은 있었죠. 아닌게아니라 신탁의 날이라는 건 성인식 날이고, 그런 경사스러운 행사가 있으면 장사 대목이라는 말도 되니까요. 예를 들면 요릿집. 신탁의 날 아침에는 집에서 끼니를 때우는 대신 마니빵을 사 먹는 사람이 많아요. 마니빵은 설날이나 추수감사절에도 먹는 전통빵인데 밀가루에 계란, 설탕, 돼지기름을 넣고 반죽해서 팥을 넣어 둥그렇게 구워 만들지요. 이걸 파는 집이면 자식은 성인식에 보내도 다른 사람들은 눈썹이 빠지게 빵틀을 돌려야 하지 않겠어요? 사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는 마찬가지예요. 매년 이 날이면 늦은 오후 즈음부터 무진 바빴거든요. 오빠랑 저도 마니학교 마치기가 무섭게 후닥닥 뛰어와야 될 정도로. 왜, 애들이 신탁이랍시고 한 마디 듣고 오면 어디서 차라도 한 잔 하면서 가족끼리 이바구를 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좋은 날이라 굳이 따라나오셨겠지만 말씀 안 하셔도 이 정돈 알아야겠죠. 아마 아버진 절 미시르미 신전까지 데려다 주시곤 얼마간 있다 장사 준비하러 가겠다고 하실 거예요. 이젠 어머니도 안 계시고 오빠도 없으니 갑절에 갑절은 바쁘실 텐데. 그래서 전 여러모로 기분 내기 힘들었지요. 집안 사정 모르는 바보 멍청이도 아니고, 신탁의 날이 그렇고 그런 날이란 것까지 아니까. 그래도 성인식 날인데 꽁하니 있을 순 없잖아요? 제가 옷에 썩 관심이 없다곤 하지만 예쁘고 좋은 걸 싫어하지도 않고요. 괜히 아버지 왼팔에 붙어서 팔짱 끼는 걸로 다른 걸 대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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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03.22. 20:45
세상에
묘사 대폭발
어딘가 완고한듯 싶었는데 신조어도 쓰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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