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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딸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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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59 Mar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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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마니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서 쭉 외각 가도를 따라 걸었어요. 그놈의 냄새며 연기가 귀신처럼 사람들 사이에 들러붙어 있어 가게에서 팔다 남은 물건 없애느라 심심하면 빵 먹어 버릇한 저도 군침이 돌 정도였어요. 평소 아침엔 썩 한산한 거리지만 이 사람 저 사람 어깨가 가끔씩은 스쳤죠. 으레 일터에 나가 있어야 할 사람들이 신탁 받을 자식들이랑 같이 신전으로 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어요? 물론 그 인파 중에 몇분지 일 정도는 장사꾼이겠지만……. 가도를 따라 가던 사람들은 두 가지 패로 나뉘었어요. 이건 사실 강 안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두 가지라는 말이랑 같지요. 신전은 그쪽에 있으니까요. 대개는 다리 건너 걸어 가요. 미시르미 강 위엔 다리가 네 개 놓여 있고 이름은 만월교, 상현교, 하현교, 초승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날이면 부득부득 걷기 싫을 수도 있고, 괜히 사람에 부대껴 빌린 옷 더럽히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덕분에 곤돌라 사공들이 대목이었죠. 곤돌라 타고 가면 삯 내기에 따라 신전 바로 앞 선착장까지 편하게 갈 수 있으니까요. 근처에 걷던 사람들이 수시로 물길 쪽으로 빠져나가서는 곤돌라를 불렀죠. 전 그럴 때마다 괜히 고개 돌려 구경했어요. “미호누야, 우리도 곤돌라 타고 갈까?” “아뇨.” “타고 싶어 계속 보는 게 아니었니?” 괜한 걸 다 물어보시는구나 싶었어요. 정작 전 뚱하니 구경이나 하던 건데 말예요. “그냥, 저런 걸 잘도 타고 다니는구나 싶어서요. 전 곤돌라 싫어요, 바닥으로 와락 꺼질 것 같아서.” “그런 허술한 배를 띄우겠어?” “그리고 오빨 홀랑 데려가 버린 게 곤돌라기도 하고.” “그건 달곤돌라잖니?” 아버진 황당하다는 듯 되물으셨고, 전 퉁명스럽게 대답했지요. “달곤돌라도 곤돌라는 곤돌라잖아요.”


  그런 이야길 하다 보니 어느새 하현교를 건너고 있었죠. 여기서부턴 신전에서 아예 작정하고 분위길 내려는 것 같았어요. 여신님의 문장을 수놓은 휘장이 가도를 따라, 월석등 아래 걸개에 꼬박꼬박 걸려 있었으니까요. 사실 어제도 강내에 왔었는데 왜 이런 걸 못 봤을까 싶었죠. 그만큼 정신이 없었던가, 아니면 이걸 어지간히 후닥닥 걸었던가 둘 중 하나겠지요. 소리상자에서 나오는 마니현 소리를 들으며 성스러운 문장이 펄럭거리는 걸 보노라니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분위기 다 깨는 게 꼭 같이 눈에 들어오니 눈살이 찌푸려졌어요. 쌍으로 된 걸개 반대쪽에는 성기사단 휘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글쎄요, 이게 제가 괜히 그러는지도 모르겠네요. 대율사부 깃발이랑 쌍쌍이 걸리던 신성전승부 휘장이랑 나란히 걸리던 하는 게 격이 맞지 않을까요? 제가 떨떠름한들 별 수 없었어요. 가서 휘장들을 막 걷어치울 수도 없는 일이고,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에 취해 줄줄이 걸린 게 휘장이건 걸레 조각이건 관심도 없어 보였거든요. 생각만 하고 별 수는 없는 일이 세상엔 참 많지요. 어쨌든 휘장들에서 관심 끊고 계속 걸을 수밖에요. 안쪽 거리는 행인이 많아 요란뻑적지근하기는 해도 마니빵을 파네 무얼 파네 하며 시장바닥처럼 득시글거리진 않았어요. 아닌게아니라 여기 상인들은 신민이라도 다 신관님들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견습 신관님들한테도 신탁의 날이 날은 날이지만 우리처럼 보내는 날은 아니지요. 당장 이오미시만 해도 꼭두새벽부터 미시르미 신전에 가서는 치렁치렁한 걸 입고 무슨 의식에 필요한 온갖 잡일을 할 거라고 했어요. 왜, 신민 아이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대전당에 들어오면 무게를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일엔 준비가 필요한 법이겠죠. 이런 불경한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향 타는 냄새가 났고, 점점 가까워졌어요. 거의 다 왔다는 뜻이지요. 괜히 안절부절 못하시는 우리 집 어른을 보더라도 그런 것 같았고.


  “슬슬 가 보셔야 하지 않겠어요?” 전 불쑥 말했고 아버진 뜨끔하셨어요. “무슨 말이냐, 미호누야?” “작년엔 사람이 넷이었는데 올핸 한 명인 턱이잖아요. 장사 걷어치울 수도 없고.” “특별한 날이잖니, 그럴 수도…….” “그런 분이 신전 다 오니 슬슬 제 눈치를 보면 어떡해요?” 아버진 한숨을 푹 쉬며 말씀하셨죠. 뭐, 제 생각엔 바보나 몹쓸 애가 아니면 다 눈치챘을 것 같지만. “미호시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여기까지 데려다주신 걸로 됐어요. 끝나자마자 후닥닥 갈게요. 어머니 생전에 싫어하시던 행사에 별로 미련도 없고요.” “미하모가 있으면 좋았을 걸.” “오빤 집안 일으키느라 고생하고 있잖아요.” “대신 약속 하나 하자꾸나.” “무슨 약속이요?” “신탁에서 들은 거, 곧이곧대로 알려다오. 알겠지?” 전 의외로 정곡을 찔리고 말았죠. 신탁이랍시고 이상한 말 들으면 얼렁뚱땅 물을 타버릴 생각이었거든요. 그래도 약속을 하자시니 그럴 수밖에요. 신전 앞에서 거짓부렁으로 부정 태울 수도 없고. “……알겠어요, 아버지.” “그래, 우리 딸 한 번 안아보자, 어른 돼버리기 전에.” 차려 입는다고 입으셨겠지만 아버지한테선 덖은 찻잎 냄새, 쌀가루나 밀가루 냄새가 났어요. 저한테서도 그런 냄새가 날지, 안 날지.


  아버진 집에 가시는 길에 자꾸 뒤를 돌아 제 쪽을 보셨어요. 신전 입구로 계속 줄이 들어가고 있었고, 견습 신관님들이 명부 들고 확인까지 하고 있어서 전 뒤로 돌아 가끔 손을 흔들면서 주춤주춤 따라 갔지요. 그러다 보니 누가 옆구릴 콱 찔렀어요. 콕이 아니고 쿡도 아니고 콱이요. 흉한 말을 내뱉을 뻔했어요. 신관님일 수도 있는데. 그리고 갑자기 아는 얼굴이 보여 더 당황했던 것 같네요. 이오미시였어요. 평소 입는 법복 위에 날개옷을 걸치고, 하얀 견습 모관에 손에는 명부처럼 보이는 종이뭉치를 든. 눈가가 거뭇거뭇한 게 꼭두새벽부터 단단히 시달린 것 같았지요.


  다른 줄에서 견습 신관님들이 게걸음을 걸으며 이것저것 미리 묻는 걸 고 계집애도 저한테 시작했어요. 명단이 피리리릭 넘어갔죠.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미호누입니다, 견습 신관님.” 우린 정말 태연하게 딱 지금 해야 할 것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한 마디씩 주고받고는 후닥닥 키득거렸지만요. ‘와, 옷이 날개라더니, 내가 고른 거지만 제법 괜찮단 말이야?’ ‘네가 고르긴 뭘 골라?’처럼. 신전 입구는 개미귀신굴처럼 우글거려서 알아듣고 깜짝 놀랄 사람은 없었습니다. “동행이 있으신가요? 부모님이라든가, 형제자매라든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오미시는 발돋움을 해서 제 뒤를 훔쳐봤죠. 그래봤자 여기 없는 사람이 눈에 띌 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리둥절한 것 같았지만. ‘아버지 어디 가셨어? 오셨을 줄 알았는데’ ‘신탁의 날은 장사 대목이잖아’ ‘아무리 대목이라도’ ‘오빠도 없어서 어쩔 수 없어’ 어깨를 으쓱할 밖에요.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신전 안으로는 반입이 금지된 물품이 있습니다. 혹시 갖고 계신가요?” “복주머니밖에 안 가져왔습니다. 안엔 헝겊으로 채워 놨고요.” 이오미시는 괜히 복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안을 비집어 보면서 밉상으로 툴툴거렸지요. 반대쪽 손으로는 보란 듯이 제 어깨랑 팔을 주무르면서. ‘바빠 죽겠어, 이러고 내일 쉬지도 못한대’ ‘양반 노릇이 어디 쉽겠어?’ “확인했습니다. 그분께서 앞길을 비춰 주시기를.” ‘가 볼게, 좋은 말씀 들으면 좋겠다’ ‘고마워, 고생이 많아’ 우린 있는 힘껏 웃어 보였어요. 피차 피곤하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이오미시가 가고, 줄은 거북이 걸음처럼 느리고 착실하게 비틀비틀 줄어들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한 시진? 한 시진보다 더? 까마득하게 닫힌 대전당 문 앞 근처까지 가니 다른 견습 신관님들이 보였죠. 한 분은 웬 세숫대야를 받쳐 들고, 나머지 한 분은 간장종지인지 청주 잔인지 모를 걸 들고 쌍쌍이 서서 뭔갈 하고 계셨어요. 제가 꼭 앞에 오니까 “안녕하세요, 신민 자매님. 잠시 가만히 서 주시겠어요?”라나요. 곧이곧대로 그랬더니 작은 그릇이 제 머리꼭대기까지 와서 무언가를 주르륵 끼얹었어요. 아무래도 성수인 모양이죠. 정수리에 닿은 즉슨 그런 짐작이 들었지만 너무 차서 그만 부르르 털어낼 뻔했지요. 견습 신관 두 분은 그 길로 영대(領帶)랑 날개옷을 바스락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이셨어요. “그분의 은총이 성년을 맞이한 자매에게 내리길.” “그분의 가호가 한 사람 신민이 된 자매에게 내리길.” “마니 교단과 성황청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오늘의 신탁이 축복으로 화하길.” 첫 말이랑 두 번째 말은 각자, 세 번째 말은 같이 하시더라고요. 하도 많이 외어서 입이 바짝 타는 티를 내면서요. 성수라도 몰래 좀 마시면 되지 않을까요? 엉뚱한 생각이 들어 웃음이 터질 뻔했죠. 억지로 삼키느라 배가 다 아플 정도로요.


  대전당은 다음 사람 차례가 될 때마다 슬그머니 열리고 닫혔어요. 틈바귀로 안쪽이 안 보이게 줄을 세워둬서 어떤지 고개를 빼곰 내밀어 볼 수가 없었지요. 제 차례가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밖에. 맨 앞에 서게 됐을 때까지 얼마나 더 걸렸을까요? 곧 제 이름이 불렸고, 큼지막한 문이 까득까득 열렸어요. 엉거주춤하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았죠. 있는 힘껏 당당하게 하려고 단홧발을 똑바로 내딛었어요. 타각, 타각, 타각……. 똑바로 걸은 만큼 대리석 바닥도 그럭저럭 울렸어요. 그렇게 난생 처음 미시르미 신전 대전당에 들어가보게 됐어요. 뭐, 호들갑 떨기엔 마니학교 대전당이랑 썩 다를 게 뭔가 싶었고, 또 그런가 보다 하기엔 신탁의 날 행사답게 구색을 맞춘 게 대단했지요. 전당 중앙에 신관님만 스무 분인지 서른 분 즈음 자리를 딱 맞춰 서 계셨으니까요. 그냥 멀뚱멀뚱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양 팔 벌려 천정을 본다던가 경전을 왼다던가 하면서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죠. 성가대 악단이 아예 한쪽에 자리를 잡고 현에 목관에 금관에 각적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게 귀에 제대로 안 들어올 정도로요. 가까이 다가가니 그 패거리에서도 한가운데에 서신 대승정님이 보였어요. 노란색 영대를 하고 계셔서 알아본 거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네 번째 성유물을 본따 만든 창 때문에 엄청 눈에 띄셨죠. 좋든 싫든 학교에서 무진 가르쳐 주고 보여주는 거거든요. 전 대승정님 앞에 가서는 무릎을 꿇었어요. 곧 창날이 제 어깨에 척 걸쳐졌어요. 모조품이라 사람 잡긴 글러먹은 물건이고, 대승정님도 조심조심 내리신 거라고 해도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죠. 제가 움찔거리든 꿈틀거리든 관심 없이 할 일 하셨지만 말이에요.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미호누, 내 작은 딸. 네가 태어난 지 열여섯 해가 지났더냐? 내 가호는 영원하되 너희의 짦음이 나를 안타깝게 함이라.” 절차대로라곤 하지만 전 뜨끔했어요. 아닌게아니라 웬 사내 목소리로 이런 말을 읊어버릴 줄은 생각 못 했거든요. ‘그분께서 이러이러하다 하십니다’ 정도일 줄 알았지. “오늘을 기념하야 네게 내 눈을 나누리라. 보아라.” “이 사내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그래, 시모로구나. 미시르미의 시모……. 네 남편을 일컬음이라.” 저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죠. 아아, 어머니. 달바다에 계신 어머니. 너무 멀 지 모르겠지만 가엾은 딸을 지켜 주세요. 여신님께서 참말로 신민끼리 짝짓는 뚜쟁이질을 하시거들랑 올바른 말로 고해 바쳐 주시고요. 어머니, 사랑해요. “달의 시간으로는 네 아들딸이 지금 네 자리에 서 있구나. 슬픈 일이지만 또 기쁜 일이지. 그렇게 너희는 나의 영광을 이어 짓는구나.” “이제 가거라, 내 작은 딸. 교단이 내 사랑을 대신하리라.” 그 뒤로도 신탁이랍시고 성유물 모양 창에 성가대 악단에 신관님들 추임새가 따라붙은 말이 얼마간 이어졌어요. 열심히 듣지는 않았지만.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 인사를 했는지 휑하니 도망쳤는지, 똑바로 걸었는지 팔자걸음으로 비틀거렸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정신이 번쩍 들고 보니 강 안쪽에서 하현교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어요. 여전히 날씨는 좋았고 다들 기쁜 날답게 정신없이 걸어다니고 있었죠. 소리상자에서는 아직까지도 마니현 연주가 지직지직 흘러오고, 마니빵 냄새가 바깥에서부터 여기까지 새어들고, 무슨 신탁을 받았느니 점심으론 무얼 먹고 어디 바람이나 쐬러 가자느니 하는 말이 들려와서는 제 머리 속에서 거칠게 비벼졌어요. 아무래도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땐 반 정도만 차렸었나 봐요. 전 펄쩍 뛰듯이 복주머니는 제대로 매달려 있는지, 허리끈이 풀려서 빠지진 않았는지, 신발 두 짝은 온전한지 옷이 망가지지는 않았는지 살폈지요. 저도 모르는 새에 돈 물어내야 하는 일이 생기면 큰일이잖아요? 아무것도 잃어버리거나 상한 게 없다는 걸 알고 나서도 얼마간 심장이 쾅쾅거리면서 바깥으로 와락 빠져나오려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한번 마음이 쑥 꺼지고 보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고요.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계속 덤벼드는 마니빵 냄새를 견딜 수가 없었죠. 먹어버리고야 말겠다고 벼르면서 다리를 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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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03.28. 18:43
아니 이걸 시모가
첫등장 이후 5만 자가 넘도록 대사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시모가.....?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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