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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딸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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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47 Apr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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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집까지 한달음에 가 버릴 생각이었지만 가도를 디디는 걸음 걸음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아버진 작위적이리만치 태연하게 구실 테고, 전 그저 무심한 척, 눈치 못 챈 척하며 애써 평안할 테니까요. 그러게 잘 하지 그랬어, 미호누. 시험 그르치지 않았으면 떵떵거렸을 거 아냐, 미호누. 아무래도 요란뻑적지근한 객석에 놓아 둔 신경증이 그만 공연장을 빠져나와 제 꼬리에 도로 철썩 붙어 버린 모양이었습니다. 전 달이 떨어져라 한숨을 쉬고는 발을 잡아끌었습니다. 약올리려는 건지, 소리상자가 떠벌떠벌 1월 21일 대 마니 소식말씀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읊었습니다. 겨우 두 꼭지밖에 안 되는 걸 뇌에 까맣게 지져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집에 돌아오자 달착지근한 냄새가 모락모락 가득했습니다. 대목이랄 것까진 없었지만 이만하면 장사 잘 되는 날이라 할 법했습니다. 집안 양반은 주방을 돌보시느라 너무 분주하셨습니다. 알은척부터 하기보단 얼른 가게일 도울 준비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전 올라가기가 무섭게 후닥닥 내려왔고, 마침 아버진 죽그릇을 내고 계셨습니다. 척 보니 채 못한 설거지가 산더미일 것 같았는데 아니나다를까였지요. 손이 곱아 몇 번이나 씻던 그릇을 놓고 주방 불을 쬐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반 시진이나 얼음물이랑 씨름하고서야 얼추 정리가 되었습니다. 새알을 새로 만들고, 끓는 솥을 열어 보고, 장작 가지러 나갔다가 삭풍 맞으며 도끼질도 하고……. 일이 바쁘니 신경증이 짓눌리기라도 하는지 평안해서 참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서너 시간은 더 일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제가 돌아오고서부터 육칠십 그릇은 팔았으니 거룩한 시간 전에 팥죽을 백 그릇은 판 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번 달 성지수복세는 안심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멀리 나발 소리가 들려오고서야 남은 팥죽이라도 한 술 뜨게 됐습니다. “연극 구경은 잘 하고 왔니?” “아……. 뭐, 그럭저럭요.” 아버진 말을 조금 아끼셨고, 전 조금 불어서 못난이가 된 새알을 질겅질겅 씹었습니다. 또 다리를 달달 떨면서 부루퉁하니 숟가락을 놀렸고요. 아, 누구 안 오나? 이오미시라도 안 놀러 오나? 아버지껜 죄송하지만, 면피할 구실이나 있어야 훌쩍 도망가지. 그렇게 불효막심하게 구시렁거리고 있을 즈음 가게 문이 드르륵 열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신관복에 숄 차림인 이오미시가 후닥닥 들이닥쳤습니다. 계집애, 재주도 좋지. 아무래도 미시르미 신전에서 수습 노릇하다 온 모양이었습니다. 훈훈한 신전 안이면 몰라도, 이 날씨에 횡행하기에는 썩 추울 테지요. 아버진 목례하시더니 제게서 빈 식기를 얼른 빼앗으셨습니다. “뒷정리일랑 됐으니 올라가 보거라.”라고 하시면서요. 전 죽그릇이며 숟가락을 도로 끌어당겼습니다. “왜요? 오늘 피곤하시면서.” “친구 왔잖느냐? 책보따릴 보아하니 또 뭔가 같이 할 심산인 것 같고.” 아무래도 순순하게 굴 밖에 없나 싶었습니다. “좀 천천히 올 걸 그랬네요.” 이오미시는 머릴 긁적거리면서 말했습니다. 아직 어색한 모양이었습니다. 신분상으론 민과 관이지만 성기사가 돼 버린 오빠가 끼어 모호하고, 관계상으론 딸 친구에 친구 아버지니 애매하니까. “요즘 미호누가 우울한 것 같으니 잘 됐습니다. 끝나는 대로 주전부리라도 가져다 드리지요.” 그래선지 아버지는 오늘도 괜히 더 밝게 말씀하셨습니다.


  쌍쌍이 오르니 공연히 층계가 더 삐거덕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불을 켜는 동안 이오미시는 숄을 내던지고는 들입다 퍼질러졌습니다. 또 그만큼 아무렇게나 지껄이기 시작했고요. “아무리 고등마니학교 입시라지만, 네가 신경증 걸릴 줄은 몰랐다, 야.” “시끄러워. 가산을 많이 탕진해서 성지수복세 내기도 빠듯하단 말이야, 이번 달.” 제가 입을 비죽거리건 아니꼬워하건 납죽 옹송그리는 기색이 일절 없었습니다. 이 년이면 긴 시간이지요. 바보라도 눈치라는 게 생길 테니 그럭저럭 수재라면 어련하지 않겠습니까? 제게 더 아니꼽다는 걸 차치한다면. “핑계 대긴. 진짜 돈 문제면 안 이러지.” “내가 요 계집앨 좀 가르치는 게 아니었어. 그래, 곧 강독 시험이야?” “아, 뭐. 볼일도 있고 이야기도 좀 할까 해서.” “그으래……?” 이오미시는 난방로 근방에 체통 없이 드러누워서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요즘 보도관제가 엄청 심해졌대. 특히 소식말씀 같은 데로는 일절 안 새도록 하는 게 많아졌다고 하더라.” “원래부터 앵무새 같은 거였잖아, 소식말씀인지 뭔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성기사단장님 격문이나 공국 비난 성명문 같은 걸 곧이곧대로 내보내 줬잖아? 올해부턴 주구장창 성기사단 자랑, 성황청의 무슨 정책 자랑 일색이지.” “듣고 보니 그렇네.” “나도 알음알음 들은 건데, 군단 단위 부대가 도하해서 히나미시 강 북쪽 유역 10리 위로 공국군을 몰아낸 지가 벌써 석 달은 됐대. 거기서 전황이 더 어떻게 돌아갔을 지 모른다는 거지.” “개전했다는 거야? 성지수복세로 신민들한테 거둬들인 전편이 얼만데 일언반구도 없이?” “신관들이고 신민들이고, 지금까지 성지수복전쟁은 우리 실력양성이 끝났을 때 선전포고랑 같이 시작되는 건줄 알았잖아? 요즘 성기사단 수뇌부며 신성공회에서는 그런 건 4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계속되고 있던 걸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대.” “뒷감당은 어떡하려고?” “몰라, 모르겠어.” “미하엄 님한테서는 무슨 연락 없어?” “딱히……. 그래봐야 아직 견습 성기사일 거고. 함부로 뭘 알려주려다가 어느 쪽이건 경을 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건 그렇네.”


  아버지가 올라오신 덕에 이야기가 잠깐 끊겼습니다. 전병 몇 조각, 팥죽 한 그릇에 곡차 한 주전자가 놓였고 아버진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얘 좀 잘 부탁합니다’하시는 것 같아 괜히 부루퉁해졌습니다. 병자가 맞지만 시시때때로 병자 취급하니 화딱지가 나는 게지요. 미호누, 싹수머리 없는 계집애. “우울한 이야기 그만 하자.” 허기가 지는지 팥죽을 숫제 들이켜던 이오미시가 얼른 죽그릇을 내려놓았습니다. “응, 사실 오늘 이거 좀 봐 달라고 왔어.” “이게 뭔데?” “아, 그게……. 나도 이제 사사받을 고위 신관님 찾을 때가 됐잖아? 근데 우리 집안이 좀 별볼일없으니 어쩌나 싶었지.” 무슨 이상한 운을 떼나 싶어 전 심드렁하게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미친 척하고 미루엄 님을 찾아가 봤는데.” “미루엄 님? 그 분이 왜 아직 미시르미에 계셔?” 뜨악할 밖에 없었지요. “모르겠어. 앞으로 몇 개월 더 체류하실 거라고……. 여하튼 자길 찾아올 견습 신관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하시더라.” “얼마나 똑똑한지 보자고 숙제라도 내신 거야?” 이오미시는 정수리를 긁적거렸습니다. “응. 그게 그런데……. 자길 재밌게 할 논문을 한 편 써 오면 기꺼이 받아 주마고 하셨어.”라나요. 아마 제 낯짝은 얼기설기 엉켜 있었을 것 같습니다. 내키잖는 건 내키잖는 거고, 친구 돕는 건 친구 돕는 거니까. “골치 아프네. 신성도서관 수석성사승정님을 어떻게 재밌게 해?” “그건 어떻게 알았어?” “울 오빠 꾀어낸 사람이 어떤 양반인가 해서 조사해 봤지.” 이오미시가 얼른 눈치채고 구태여 부스럭부스럭 원고 더미로 요란뻑적지근하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걸로 해 보면 어떨가 싶어서……. 아직 초록이라 별 내용은 없어.” 무심하게 끼우개를 뜯고 표지를 넘기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제목이 반겼습니다. “「중세 접경무역: 마니인과 태양인의 불편한 교역에 대하여」. 뭐야, 뭔가 내가 고등마니학교 입시에 냈던 거랑 비슷한데?” “뭐? 잘됐네. 더 잘 봐줄 수 있을 거 아냐?” “내가 썼던 건…….” 그놈의 응시 논문을 입에 올렸더니 자연적 그때 생각에 빠져들고 말았지요.



  미호누는 달곤돌라에 앉아 있었다.


  성도는 대처라는 말로도 어림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곳이었다. 고향 미시르미 같은 쭉정이 도시에서는 역마차로 한나절을 가야 타볼 수 있는 달곤돌라가 미모란제 내에만 네 갈래가 있다지 않은가? 외각지로 빠져나가는 노선은 또 그 갑절에 갑절이라니 여느 말은 물론 어지간한 상상에서조차 어긋난 별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선 달곤돌라란 겉보기에 복잡다기해도 달의 삭망처럼 철두철미한 데가 있어 이내 익숙해질 수 있었다. 몸뚱이 만한 책가방을 이고 필사본을 골똘히 들이파면서도 웬만큼 안심이 될 정도로. 욕심 같아서는 어머니가 육 년 일하셨다는 신성도서관 산하 무한서고나 제2 첨월대, 마니광장, 달여신의 발꿈치 같은 명소를 한달음에 찾아 감탄해 보고 싶었다. 허나 놀기는커녕 할일만 해도 시간에, 주머니 속 전편에 쫓기는 판이었다.


  어느 쪽이건 어지간하더라도 마음이 그렇지 않은 게 문제였다. 지금 탄 달곤돌라에서 한 시진 즈음 버텨야 한다는 걸 인지하기가 무섭게, 그녀는 읽던 글자를 눈으로 게걸스레 씹을 지경이 되었다. 이마를 찧고 앉은 창 너머로 제2 첨월대 꼭대기에서 석양이 삐뚜름하게 들건 성황청의 은빛 월광벽에 땅거미가 한 땀 한 땀 어둠으로 수를 놓건 남이사였다. 미호누가 탐독하고 있는 필사본은 사실 상경 후 공부를 정리하면서 제 손으로 백지 위에 휘갈긴 물건이었다. 어찌나 지독하게 다루었는지 벌써 책날개가 나목 껍데기마냥 덩그러니 버스럭거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마저도 끝자락이었다. 온갖 위대한 이름, 여러 상서로운 학문, 갖가지 지혜로운 구절도 잘근잘근 되뇌다 보니 이상야릇한 주문 꼴이었다. 고등마니학교 면접길인 학생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원시 마니 신앙의 요체, 초월 교리의 대두, 미모란제 선언, 구원 교리로의 대두, 교부 철학 개론, 대신학자 아카나시의 사상에 대하여, 이리리미 유수, 성월일체의 기원, 안세미엄의 여신 존재 증명, 신학의 위안에 대하여, 달빛 아래서의 판단중지……. 성스러운 시간이 다가오는 때라 듣는 이가 드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지지직, 지직. 소리상자가 빠그락거렸다. 흠칫하는 귀로 「다음 역은 교립(敎立) 고등마니학교, 교립 고등마니학교 역입니다. 상현쪽 출입문이 열립니다.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선내방송이 닥쳐들었다. 미호누는 들입다 승강장으로 튀어나왔다. 기겁한 마음이 조각조각 올망졸망한 게 간 떨어진 잔짐승 꼴이었다. 사람 겨우 몇에 공기만 실어나르던 달곤돌라는 얄미우리만치 느긋하게 역을 떠났다.


  미호누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놀란 가슴을 추스렸다. 하마터면 시작도 해보기 전에 그르칠 뻔한 것이다. 조심조심 주머니에서 두 번 접힌 문서를 꺼내 보았다. ‘달곤돌라: 성도 제5내선 교립 고등마니학교 역, 만월문으로 나와 곧장 도보 10분’, 숫제 암송하다시피 했지만 부득불 재차 삼차 확인을 해야만 발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해 진 뒤 눈에 들어오는 성도는 더 불가해한 데가 있었다. 달을 숭앙하는 민족의 가도가 밤하늘에 뜬 보름달보다 훨씬 밝지 않은가? 월석등이 환한 길에 사람이 한가득이요 흥청거리는 모양새가 달무리와 같았다. 밤은 여신의 시간이니 사람은 집에서 찬미하며 휴식을 취한다, 예부터 그랬다지 않은가? 고등마니학교의 면접이 이즈음인 건 그분의 지혜를 빌어 학문할 자를 가려내겠다는 취지이니 납득이야 가지만……. 미호누는 애써 미모란제에는 미모란제의 법도가 있겠거니 하며 총총 발걸음을 재촉했다.


  혹여 목적지를 지나칠까 조마조마한 핫바지를 놀리기라도 하듯, 미모란제는 그저 등등했다. 건물이며 가도 놓임새가 괴발개발이고 도시 제일이라는 신전도 고만고만한 데서 나고 자랐으니 어련할까? 신월을 형상화한 시계탑, 밤을 받아 반드러운 유한서고의 월광벽, 한 점 한 점 월석으로 장식한 고등신학부 본관. 낱낱이 관념의 물화를 시도한 저 건물군이 고등마니학교가 아니면 어디겠는가, 이 말이다. 물론 그저 압도된 건 아니었으리라. 마니 사람인 데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니 분명 혼에의 호소를 느꼈을 터.


  경외란 쉬이 공포가 되는 법. 미호누는 정작 대문 앞에 서자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초조하게 필사본을 암송할 때 어렴풋이 느껴지던 불안이 훌쩍 현실이 되어 있었다. 실수한다면? 떨어진다면? 업신여김 당한다면? 하물며 추레한 계집애가 어딜 흙발로 들어오냐며 뒷덜미를 잡아채였을 땐 하마터면 주머니에 든 입시 문서를 꺼내 보여주지 못할 뻔했다. 참으로 그녀답지 못하되 참으로 어쩔 도리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똑똑해도 일개 신민에 한낱 계집애에게 금전이니 관민의 유별함이니 성지근본주의니 하는, 달의 반대편과 같은 소위 민족의 어둠이라는 것들이 가당하지조차 않은 것이다.


  그나마 문서를 보인 즉시 시험장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가까이하기엔 까마득한 건물 아래 그녀는 얼마간 방향을 잃었다.


  대리석 내음이 알싸했다. 몇 명이나 되는 대기자들이 큼지막한 문 너머에서 일렬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미호누는 중간 즈음에 앉아 있었고 썩 좋지 않은 뜻에서, 개중 대단히 돋보였다. 아닌게아니라 고등마니학교 고등신학과 입시에 요 몇 년 간 예사 신민이 응시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좌우로 앉은 아이들은 압박감보다 희한함이 더 앞서는 것 같았다. 흘금흘금 그녀의 후줄근한 차림을 곁눈질하기가 일쑤였으니.


  미호누로 말할 것 같으면 그네들한테 신경 쓸 팔자가 못 되었다. 신관들이야 애당초 미모란제 출신이 많았고, 전편 몇 백 닢이야 아무렇잖게 쓰는 치들이겠지만 뭇사람인 그녀의 입장은 천지차이였다. 그나마 이런 자리에 올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라고도 할 만했으니까. 일을 그르치기라도 하면 금전적이든 아니든 아무렇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한 명씩 한 명씩 앞에서부터 사람이 줄어 갔다. 누군가 호명되어 전당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자리를 당겨 앉게 되었다. 아주 앞도, 그렇다고 아예 뒤도 아닌 자리니 어찌되었든 긴장만 늘어 갔다. 다음 번에 불릴 차례가 되자 대문이 훌쩍 가까워져 있었다. 거대했다. 뭐라도 말 한 마디 들릴지 몰라 귀를 기울였으나 두꺼운 문짝이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미시르미에서 온 미호누 지원자.”라는 말이 들려왔다. 썩 크게 호명하지도 않았거늘 미호누는 벼락 맞은 것처럼 번쩍 튀어올랐다. 열린 문 사이로 얼른 들어갔다.


  시험장은 아주 쓰잘데없이 거대했다. 미시르미 신민학교 강당 따위는 아래위로 겹쳐 네 개는 너끈하게 들어갈만치. 바닥과 천장이 우묵하여 그 크기로도 공간 활용도는 엉망이었으나 달을 닮게 만들어 상징을 부여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반들거리는 대리석, 은과 청금석으로 만든 장식품이 규칙적인 모양새로 자리잡아 집요하게 찬미하고 있었다.


  미호누는 규모와 화려함에 짓눌리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미모란제는 여느 대처와는 달라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 무시무시한 데가 있었다. 걸음 걸음마다 울리는 발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곧장 중앙으로 갔다. 석재 탁자 뒤로 중년 여신관과 늙수그레한 남신관이 한 명씩, 앞으로 의자 하나가 덩그랬다.


  “앉지 그러나?”


  “예, 옙.”


  미호누는 허둥거리다가 하마터면 의자를 쓰러뜨릴 뻔했다. 전당이 유난히 조용했던 덕에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천둥과도 같았다. 적어도 그녀 자신에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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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04.26. 20:40
드라마를 싫어하고, 드라마 보는 사람도 이해 못하고, 연속극이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기분 나빠하며 살았는데 요즘 성자의 딸기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그렇게 스카이 캐슬에 열광하고 태양의 후예에 좋아 죽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성싶습니다. 이게 연속극의 참맛이었던 걸까요..
3인칭 신선하네요. 반갑습니다 관념의 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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