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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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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34 Jun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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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이르그
협업 참여 동의

‘편지 구멍’은 달 기지에서 500m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틈의 명칭이다. 

가슴 위치에 떠올라 있는 ‘틈’은 지금껏 세 번 씩이나 ‘편지’를 내보내 외계의 존재를 암시해 주었다.

그 편지는 마치 실타래 같이 꼬여있는 검은 물체로

이음매도 없는 표면에는 회색 문자가 적혀있었지만 결국

모두가 해석하지 못한 이 ‘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장’을 보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마지막 답장을 들고 ‘편지 구멍’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별다른 이상이 없는 한 당분간은 이게 우리가 써낼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심호흡을 하고 한 걸음 걸어간다.

내가 직접 편지를 전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전부 기계를 사용해서 전달해 왔다.

이번 일은 마지막을 겸한 실험으로 전부 장 교수가 위원회에 제안한 일이다.

위원회도 흑지가 나온 이후로는 별 간섭을 하지 않았기에

마지막 ‘편지 전달’은 그걸 쓴 내가 도맡게 되었다.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는 장 교수를 노려보자.

헬멧 너머로도 느껴지는 것이 있는지 

슬며시 손을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하긴 했지만…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그러나 거절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 편지는 내 손으로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그 두 줄은 비워 두었어야 하나..’


웃기는 얘기지만 5일 동안 바락바락 써온 150페이지 보다 마지막 두 줄이 더 신경쓰였다.

그래서 거절도 못하고 이 자리에 선 것이다.

 

 손을 뻗어 신중히 올라선다.

훈련받은 대로 역광을 조심하며 천천히 올라서자

크레이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달 기지로부터 몇 개의 언덕과 바다를 지나면

‘편지 구멍’ 이 머물러 있는 작은 크레이터가 나타난다.

나는 지금 그 끝에서 걸어가고 있다.


장교수가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통신을 보내왔다.


“어둡지?”


“아니…괜찮습니다만…

왜 지금 저 혼자 걸어가고 있는거죠?”


약간 황당한 목소리로 반문한다.

 아까전부터 느낀 건데, 나를 제외한 팀 전체가 

앞에 보이지 않는 선이라도 그어놨는지, 크레이터 내부로 들어올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아~ 그건 아무것도 아닐세, 그냥 전자파 간섭을 줄이려는 것 뿐일세.”


“…그럼 저 대신 기계를 쓰시면 되잖습니까...”

 발걸음을 옮기며 내가 물었다.


“그러면 자진해서 임무를 맡아준 자네에게 미안하잖은가.”


“저는 자진해서 임무를 맡은 기억이 없습니다만?”


“하하하! 자세한 건 신경쓰지 말게, 그나저나 그래서,

 질문은 잘 썼는가?”


“음…그건…”


내가 대답을 흐리자 그가 혀를 찼다.


“못 썼나 보군, 그렇게 말을 아끼는 걸 보니.”


“….…”


그의 착각을 정정해주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아무도 모르는 일.


굳이 무덤까지 가져간다 라는 낡은 표현을 쓰지 않아도 내가 잠시만, 그러니까 앞으로 50걸음만 입을 다물면  가필한 두 줄의 질문은 인류가 외계에 청하는 4번째의 접촉에서 영원히 숨겨진 에피소드로 남는 것이다.


아주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목표. 전방에 확인. 50미터 지점 까지 이동하겠습니다.”


장 교수의 푸념섞인 잔소리를 무시하며 크레이터를 향해 접근했다.


“알았네 조심하게나.”


“그러죠.”


지구 중력의 16%가 조금 넘는 달의 중력이지만 내딛는 발걸음만은 자이로스코프라도 내장되어 있는 듯 점점 신중해져갔다.

그럴수 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것은 인류가 맞닥뜨린 최후의 신비니까.


뭐, 그런 장렬한 명성에 비해서 그것의 모습은 꽤나 초라했다.

너무 초라해보여서 실망의 숨이 새어나올 정도였다.


가슴 높이에 빗겨 세워진 어깨 너비의 ‘틈’

3개의 흑지가 튀어나오던 순간에는 저 ‘틈’이 스스로의 입을 벌렸다고 얘기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그저 잠잠히 침묵하고 있는 구멍에 지나지 않았다.


“10미터 지점에 도착, ‘전송’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특수 제작된 슈트케이스를 열어 그 속에서 하얀 종이봉투를 꺼낸다.

인류의 모든 메시지를 담았다는 보이저 호의 골든 레코드에 비하자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별볼일 없는 편지 봉투였지만 종이와 잉크를 제외한 모든 것을 거부하는 ‘post hole’ 이기에 어쩔수 없는 조치였다.


참고로 부착된 우표는 위원회에서 단 10장만 발행한 한정우표로 장당 천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돈은 벌어도 쓸데를 못찾는 인간은 많으니까.”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넣으면 될까요?”


프로젝트 총괄자가 장교수이므로 그의 허락이 있어야 편지 배달이 가능했다.

전파 너머로 그가 히죽 하고 웃는게 느껴졌다.


“물론이지! 당장 넣으시게나.”


“그럼……”


‘post hole’을 향해 내가 오른손의 봉투를 집어넣으려던 순간이었다.


대지가 흔들렸다.


대기가 없는 달의 바다이기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폭음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공포. 소리없는 공포만이 전해져 왔다.


조사대의 뒤편, 우리가 떠나온 기지가 있을 부위에서 연결점을 잃은 기지의 잔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려던 순간이었다.


두 번째의 질량 폭격이 가해졌다.


‘틈’의 바로 옆에서 였다.


무음의 악의가 낡은 위성잔해로 조사대의 자리를 휩쓸었다.


폐기 위성이었는지 정확도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와중에도 내 우주복이 찢겨지지 않았던 것은 에누리없는 기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적에 대해 감사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시점에서 질량 폭격과는 전혀 다른 미증유의 재난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으….으아아아아악!!”


먹히고 있다.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어떤 근거도 없이 떠올랐다.


시각적으로 판단한다면 물론 맞는 말이었다.

 

 첫 번째의 폭격에 황급히 몸을 돌린 나는 두 번째 충격의 범람에 떠밀려 아무런 각오도 없이 인류미답의 영역을 향해 날라간 것이었다.


즉, 나의 왼쪽 어깨를 비롯한 몸의 절반은 말그대로 ‘먹히고’ 있었다. 


검은 입술을 드러낸 ‘post hole’에 의해서.


“흐….흐어억…”


차갑다.

너무나도 차갑고 음산해 혈관에 얼음꽃이 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극빙지역에서도 문제없이 체온을 보호하는 우주복은 틈을 넘어간 직후 그 기능을 상실해버린 듯 했다.


버둥거리며 몸을 비튼다.

붙잡을 지푸라기 하나도 없지만 팔을 끝없이 휘두르는 것은 스스로가 끌려가고 있다는 확실한 감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천천히, 사막의 모래에 잠긴 낙타처럼 빨려들어가는 나를 음산한 목소리가 반기고 있었다.


시야가 흐려진다.

눈에 보이는 것.


달의 여드름이 터져나가며 피어오른 먼지가 눈앞을 가린다.

 

하얗게 빛나는 저건.

먼지? 혹은 사람?


“….아당겨!”


장교수였다.


그도 성치 못했는지 우주복 여기저기에 먼지가 묻어있었지만 우주유영용 구명줄의 한끝을 잡고 내 귀가 터져라 통신을 보내고 있었다.


“잡아당기게! 빠져나올수 있어!!”


“으…으아아아아!!”


비상 사출된 구명줄을 잡는다.

그러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몸 절반이 마비된 것보다도 구명줄이 너무나도 미끄럽다.

전혀 미끄러울 일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낮은 압력 속에서 깨물은 입술이 터져 피가 배어나온다.

좌반신은 감각을 잃어 동상이라도 입은듯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오직 살려는 일념 하나로 뻗어온 줄을 잡아당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틈의 입술에 물려진 몸은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체력의 저하만을 느끼며 침전하고 있었다.


비웃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 속에서 내가 천천히 의식을 잃어가는 순간이었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


흐릿함 속에서 한 남자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도,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어째선지 모를 눈물이 빰을 적셨다.


“어….…깨어.…..”


한번만 뒤돌아 봐 준다면,

 그런 나의 소망을 알아차린 것인지 남자가 내게로 천천히 걸어온다.

햇빛에 가려진 얼굴로 그가 나의 손을 붙잡았다.


기대에 찬 시선속에 그가내게로 무언가를  쥐어준다.

그것은 기억 속의 작고 하얀 양.

양을 껴안은 나를 보며 그가 미소짓다가 무엇인가를 얘기한다.


“어서…..”


’어서?’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어서 깨어나게! 이 게으름뱅이야!!”


“허억……!”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Writer

이르그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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