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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딸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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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04 Jun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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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마니력 1701년 3월 2일, 맑음.

  사람 행함에 어찌 한없는 것이 있을까, 다만 ‘무한서고’의 무한하다는 형용이 가히 필멸자의 시건방이 되지 아니하는 것은 백 수십만 권의 장서가 그저 달을 올바로 섬기는 데 있기 때문, 일인의 성사학자로서 새로이 그 대열에 하나가 되었으니 슬쩍 우쭐하여도 그분의 너그러움을 바랄 따름이라. 달바다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 이 미호시를 보십시오. 첫 번째 성자시여, 지혜로 가호를 내려 주소서.


  고등마니학교에서, 여느 교수건 학우건 참으로 내 입신에 공연히 아랑곳하니 그 점을 가외의 교만 대신 기록해 두기로 한다(사실 성사학자 운운은 별 잘난 척도 아닐는지 모르지만). 그런 참견이란 가문을 일으키려면 성황청에 들어 제례승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제례승정이라면 명목과 달리 성황 직속의 모사가 집단이 아니던가? 으레 그 잘난 명토 하나를 갖겠다고 아귀다툼이 일상인 자리.


  글쎄, 화마로 풍비박산 난 집안에 그저 외따로 살아남은 내게 달빛길이 가당키나 한지 자문하고 싶다. 그나마 핏줄이 신관이니 드러내놓고 업수이여기는 자 없어 망정이지 짐짓 일천했다면 태양티끌 부스러기마냥 천대받지 아니하였을까? 부모 지체가 자식 대신 말하는 성국에서 애미애비 없는 놈이란 신관일지언정 명토만 번드르르한 낙오자에 불과하겠지. 가엾은 자에게 그저 입 바른 말 하는 게지. 나는 그네들 연민과 기망 앞에 그저 무소의 뿔처럼, 첫 번째 성자께서 본보기를 보이신 것처럼 혼자서 가리라.


  그렇게 잡생각 만만인 채로 미시르미의 옛 저택을 찾았다. 이제 껍데기나마 그때와 같은 대문을 넘는다. 기둥에 걸터 무너지니 여전히 잉걸불 타는 소리, 살점 끓는 소리가 뇌를 들쑤시는 듯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찬가지겠지. 형편없이 훌쩍훌쩍 울며 어머니도, 아버지도, 유모도, 여타 사용인 그 누구도 온전하였던 시절을 그린다. 이곳에서만큼은 나는 내가 된다. 그 시절에서 얼마나 흘렀건 무엇이 바뀌었건, 무슨 생각을 하건 어떤 말을 하건 화염이 가고 시간이 멈춘 곳. 그래, 그저 나아가려면 기점을 두고 볼 법이리라.


  내 옛 방에서 미처 다 갈무리하지 못한 서책들을 빠짐없이 간수했다. 몇 권은 가방에 넣되 대개 서가에 두어야겠다. 사변소설들에서는 이리 출가할 때면 불을 놓고 비장한 다짐을 하곤 하나 참으로 허구스럽지 아니한가? 배수의 진이라 하던가? 그런 무모한 각오란 군교에게조차 최후의 최후에밖에 미덕 되지 못하리이며 얼굴 허연 족속들에게는 그저 환상이며 한낱 낭만에 불과하리라. 하물며 한 번 탄 것을 두 번 태움이란 무도하기 짝이 없는 일. 다시 내가 될 곳을 남겨두련다. 또 기둥뿌리에 쓰러져 꼴사납게 울기나 하겠지. 다만 그 이상 무너지지는 아니하겠지. 그렇게 다시 찾아올 날 언제랴.


  싱숭생숭함에 들뜨는 건 이 미호시라도 어쩔 도리 없는 모양이다. 과분한 성무에 다시 한 번 여신께 감사 기도를 올려야지.



마니력 1701년 9월 11일, 맑음

  아직은 후텁지근하나 절기상으로는 가을이다. 점점 겨울 장인의 시절로 가는 동안 내 수습이 끝났다. 이제는 정녕 일인의 성사학자로서 그분을 섬길 수 있게 되었음이라.


  신성도서관장님의 학자 임명 재가를 받으며, 나는 일디오르 공국사를 연구하겠노라 밝혔다. 대단히 뜻밖인 점은 대석학 나다시엄 옹께서 노환으로 은퇴하신 뒤 거진 4년간 후계자가 없어 사실상 학실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교도를 교화하는 데 그네들에 대한 앎보다 더한 무기가 없을진대……. 덕분에 얼결에 주임(나 한 명뿐인 학실에서 무슨 소용이겠는가마는)이 되어 나다시엄 옹의 일지와 학실 장서 일체를 승계하게 되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 성국 중세사의 거장 비시엄 수석성사학자께서 얼마간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셨다.


  사람 한 명 없어 휑뎅그렁한 학실이나마 감개무량하여 기도를 올린 뒤 필경대를 열었다. 자칫 책장을 그르칠까 두려워 바들바들 떨면서 연 일지는 뜻밖에도 꼴이 엉망이었다. 죄 먹칠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한 글자 한 글자 낱낱이 뭉개 놓았으니 어떤 악한이 저지른 만행인지 육성으로 분통이 터질 정도였다. 허망한 마음에 필경대를 샅샅이 수색하자 곧 편지 한 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도 서가 나무의 옹이를 파내고 교묘하게 숨겨 놓은 것을. 도대체 이 학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는 내 손에 무려 대석학의 친필 서한이 들려 있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여신께서 용서하시길! 그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는 학자라면 즉각 학실의 장서목록을 파기하도록 하라. 또한 이 편지를 살라 없애도록 하라. 그 연후 내 손수 훼손한 일지를 근거로, 학자 나다시엄이 망령으로 말미암아 학실의 성과를 무차별 파괴하였으며 남은 것이 없다고 보고하도록 하라. 이 아름다운 성국의 종말이 도래하였음이라. 서한의 내용을 유출하는 자, 여섯 성인의 저주를 받으리라. 스러져 저 태양의 흑점 속으로 떨어지리라. 오, 여신께서 용서하시길! 이 늙은이를 용서하시길!’


  그만 기함하며 편지를 떨어트리고 주춤주춤 뒤로 길 밖에. 도대체 대석학께서 어찌 저런 끔찍스러운 저주를 입에 올리신 겔까! 이 학실을 기실 깡그리 무너뜨리라는 지령을 내리실까! 나는 망령된 자가 낼 수는 없는 까마득한 슬픔 앞에 한참을 망연했다. 한 시진이었을까, 두 시진이었을까? 결심을 굳히고 우선 편지를 갈가리 찢은 뒤 하나하나 씹어 삼켰다. 장서목록을 죄 걷어들여 돌돌 말고 보니 이 일을 어쩐다, 이걸 결딴내자고 불을 피울 수는 없었다. 발만 동동 구르던 나는 곧 학자복 아랫도리를 내리고 속곳 속에 그 종잇장들을 마구 쑤셔넣었다. 여신이시여, 용서하소서! 내 죄악을 저지른 게 아니기를 빌고 또 빌 뿐이다.


  퇴관할 때까지 식은땀을 흘리느라 무얼 했고 무얼 말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속곳은 피투성이 행주가 되어 있었다. 앙다물어야 했다.



마니력 1702년 1월 9일, 비

  비시엄 수석성사학자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요는 근래 내 연구의 저의가 무언지 알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아닌게아니라 나는 학실의 문서가 모조리 소실되어 버렸다는 보고를 올리고는 두어 달 지나 무한서고장님의 호출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는 성기사단 정치본부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동석하여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을 캐물으며 핍박하려 들었다. 나다시엄 대학자의 병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연구자로서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무슨 이유로 적성국 역사를 연구할 마음을 먹었는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 군교는 질문에 이어 강철 공왕 이후 괴뢰국 수괴의 계보도를 작성해 보라는 둥, 일디오르의 정치 제도를 논평해 보라는 둥 숫제 나를 시험하려 들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더더욱 속에 태양비가 내리는 건 무한서고장께서 일 분이 머다하고 굽실거리며 그 성기사 비위를 맞추는 데 열심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본디 나다시엄 옹께 지켜야 할 의리는 없으나, 그분의 비밀 서한에서 느껴진 광기 어린 슬픔에 더해 이런 이상 징후가 나를 확고부동하게끔 했다. 어찌되었든 정치군교는 내 명석함에 크게 만족했다며 우선은 실전된 장서목록을 복구하고 차차 성기사단에 유용할 여러 연구를 수행하여 충성을 다하라는 해괴한 말을 남겼다. 충성이라니! 대학자께서는 이들과 가루다 그만 지쳐 버리신 게 틀림이 없었다. 이 미호시, 성기사단에의 충성 따위 모르고 다만 달에 계신 위대한 분을 섬길 뿐, 기만을 늘어놓아도 죄 되지 아니할 터. 꼭 그러하겠노라 입바른 소리를 하고는 장서목록을 허투루 작성하여 넘기고 있던 참이다. 비시엄 수석성사학자께서 그 문서를 보고는 오류를 눈치채신 걸까, 평정심이란 연기하기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만 친구와 적의 경계를 모르니 그저 미리 준비한 핑계로 한사코 잡아뗄 밖에. 반 시진을 필사적으로 씨름한 결과 노호성이 그치고 푸근한 미소로 바뀌었으니 영문을 알기 어려웠다. 


  “잘못된 시대에 신실한 학자로구나.” 당대의 석학께서 입에 발린 칭찬을 하시니 그저 어리둥절했노라 고백하겠다. 놀랍게도 나다시엄 옹의 ‘탈출’을 도운 장본인이 본인이라는 게 아니신가! 누군가 있어야만 하는 자리에 새 사람이 들어왔으되 믿음 깊은 자인지, 성기사단에서 심은 자인지 알 길 없으니 됨됨이가 밝혀질 때까지 엄벙덤벙 다룰 수 없었노라고. 달여신이시여, 차라리 후자로 오해를 사 아무 말도 전해 듣지 못하면 좋았을 것을. 수석성사학자님의 말씀으로는 성기사단이 괴뢰 학자를 심으며 신성도서관을 장악해 나간 지 올해로 벌써 수 년 차라고 한다. 겉으로는 성지 회복을, 안으로는 마니 개조를 외치며 성국의 오점을 바로잡겠다며 이 위대한 서고에서 칼부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곧은 학자는 내쫓기거나 겁박당하고, 입에 쓴 연구는 깡그리 부수며 이제는 소위 영광을 위해, 마니 역사의 흠결이 될 장서를 솎아 내 화로에 처넣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그 날의 불길이 떠올라 나는 겁에 질린 소동물처럼 후들거리고 있었다.



마니력 1702년 10월 14일, 맑음

  재능이라는 건 참 알 수가 없는 법이 아닌가 싶다.


  요즈음 내가 거짓하고 날조하는 데 제법 재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실의 장서를 분류하며 비슷한 서책이 있거나, 별 볼일 없거나, 또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잘 엮어 그럴듯한 일디오르 공국사 자료인 양 새 장서목록을 수 백 쪽이나 만들어 냈으니까. 비시엄 수석성사학자께서 혀를 내두르실 정도였으니 얼마간 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 그 기만책은 모종의 경로로 그 백기사 정치본부 군교에게 흘러들어가는 게 틀림없다. 목록의 책이 ‘무한서고장 직속 장서관으로 중요 자료를 반출한다’라는 미명 하에 하나둘 사라져 갔기 때문이다. 굴뚝의 연기로 화하였을 그 가엾은 아이들을 위해 몇 번이고 기도도 하였음을 기록해 둔다.


  그보다 중한 일은, 참으로 중한 사료가 마니 역사에서 말살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거짓 목록이 눈가림을 하는 사이 목록에서 제한 자료를 이틀이나 사흘에 한 권씩 빼돌려 거처에 숨겨 왔다. 그리고 비번과 휴일에 그 서책들을 꽁꽁 포장해, 인편으로 미시르미의 저택에 보내고 있다. 그렇게 훔쳐낸 서책이 오늘로 꼭 백 권 째가 되었다. 곧이곧대로 ‘훔쳐냈다’라고 하였으나 내가 한 일이 과연 도둑질과 다름이 없을지, 올바른 성사학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지는 역사가 판단하리라. 그리고 나는, 역사란 종종 병들거나 엇나갈지언정 종내 올바르게 나아가리라는 것을 믿는다.


  이런 신변잡기적인 일(생업이니 기실 그러하겠지)에 대해 구태여 언급한 것은, 오늘 또 참 별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의 정치군교가 나를 비밀리에 호출한 것이다. 모로엄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 자는(일전에는 무례하게도 제 이름조차 밝히지 아니하였다는 말이다) 일디오르 공국사 주임인 내게 성기사단 차원의 연구 의뢰가 있으며, 무사히 완수할 경우 추후 차석학자 진급 보장은 물론이거니와 학실에 넉넉한 자금 지원까지 해 주겠다고 제안해 왔다. 나는 천연덕스레 ‘연구 주제를 먼저 알려 줘야지, 연구 보상을 먼저 알려주면 어떡하느냐’라 말했고, 그 자는 웃는 낯으로 끔찍스러운 말을 입에 담았다. ‘일디오르 공국민을 위시한 태양인의 열등성을, 우리 마니인의 우등성을 각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증명해 보일 것’이라는 게 아닌가! 게다가 성기사단 전쟁학부, 달기술국, 마니무역총국 등 여러 관청을 유관부서로 묶어 궁극적으로 마니 사람의 우등함에 대해 총체적으로 논하며 그런 마니 사람의 지배가 곧 섭리 아래 영광임을 만천하에 떨치겠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하마터면 현기증을 일으켜 쓰러질 뻔했으나 이 미친 짓거리를 어떻게든 훼방놓으려면 어떻게든 판에 끼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달여신과 여섯 성자, 그리고 달바다의 모든 고승대덕께 맹세코, 그 자리에서 뇌까린 “아무려면요. 영광이 곧 우리 마니 사람들의 길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모쪼록, 약조해주신 건 잊지 않으시길.”이라는 말에 한 점 진실도 없음을 맹세한다.


  주둥이에 구더기가 끓는 듯하며, 이 일에 대해 논하기 위해 비시엄 님을 찾아 뵈러 가는 동안 헛구역질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한 것 같다.



마니력 1703년 6월 29일, 비 (다른 쪽과는 달리 누더기 같은 종이조각에 쓰고 이후 제 위치에 풀칠을 하신 것 같다)

  장마가 추적추적 들이붓고 있다.


  수사관에게 이면지 하나를 빌어 이 일기를 쓰고 있다. 그깟 쪽지가 뭐라고 오만가지 생색을 다 내는지, 하마터면 왼손에 수갑을 차고 있는지도 모르고 벌떡 일어설 뻔했다. 틀림없이 형편없게 나동그라졌겠지. 그래, 나는 며칠 전 체포되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대담무쌍한 일 년 하고도 반 간의 무한서고 장서 편취 혐의로 잡혀 들어오진 아니하였다. 그 행위의 신실함은 차치하더라도 소율에 의거하여 범죄인 건 사실이 아니겠는가?


  나는 작년 10월에 의뢰받은 연구에 대해 「이면의 섭리에 대하여: 마니인의 구극과 태양인」이라는 논문을 작성, 제출하였다. 그리 대단할 것은 없는 저술로 월국론(月國論)과 마니신학대전에 의거하여 첫 번째 성자 이래 마니신학에서는 마니인과 태양인이란 달평원과 달바다와 같은 관계에 있어 종래 올바른 믿음으로 승화하여 초월할, 존재의 앞면과 뒷면으로 본다 밝히면서 요 3년 내 시행된 성국의 정책 26종(대개 성기사단의 사주를 받은)의 반신학적 차별, 오만, 기만성에 대해 논하였다. 그날로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던 내 논문은, 심사위원들이 무얼 했는지 떡하니 신성도서관의 심사필 도장이 넷 찍혀 성기사단 정치본부에까지 흘러들어 갔다고 한다. 무한서고에 성기사단 끄나풀이 몇인데, 누구 하나 읽어보지도 않고 날인했다는 말이 아닌가? 달벼락 맞을 쭉정이 학자들 같으니라고.


  성사학자의 바른 말에 죄목을 붙이기가 민망한지, 내 죄목은 연구 자금 유용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 명목으로는 전편 부스러기 한 톨 받은 적이 없으니 엄중 항변했고, 그 와중 의뢰책이었던 모로엄 중령의 공금유용과 횡령 혐의가 밝혀져 파면되는 우스꽝스러운 일까지 벌어졌다. 그야말로 경이니 각하니 하는 자들의 민낯이라 하겠다. 덕분에 기소 명목이 사라져 나를 무죄 방면할 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서류 절차가 남았다는 명목으로 영창에 붙들어 두며(그것도 범죄자 취급을 그만두지도 않으며) 공연히 나를 곤란하게 하고 있지만…….


  허나 무한서고에서 파면되는 것만은 어찌할 도리 없었다. 누구 하나 얼굴 비추는 일 없이 파면장만 한 장 덩그러니 날아들었으니……. 무한서고에서는 내가 무한서고장실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장서를 파괴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한다. 이제 나 있을 곳이 아닌 것이다. 비시엄 님만이 남몰래 찾아오셔서는 말없이, 그저 말없이 나를 보다 맥이 빠져 돌아가신 것뿐이었다. 수석성사학자의 그런 얼굴을 보았으니 그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 말하였듯, 마니 역사란 사필귀정하리라는 것을 믿는 만큼.


  미시르미로 돌아가야겠다. 반길 이 없이 빈 집에 곰팡내나는 책들뿐이겠지마는 돌아갈 곳 있다는 게 어딘가? 성도를 떠날 무렵에는 장마가 그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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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2)

까치우
까치우 19.06.19. 00:40
폭발하는 편이네요.
까치우
까치우 19.06.19. 00:42
이래서 글은 완결나면 읽어야 하는데

미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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