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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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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35 Jul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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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알레프에 고한다.


  테레사는 경기를 하듯 잠자리에서 튕겨 올랐다. 그 시절 그대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꿈이었다. 땀 반 눈물 반으로 후줄근한 셔츠가 숫제 형편없이 울었다. 그렇게 그대로 옹송그리고 앉아 그저 흐느끼고 또 흐느꼈다. 개 같은 새끼, 개 같은 마도사, 개 같은 새끼, 개 같은 마소 컬라이더……. 제아무리 센 척을 한들, 잘디잘았다.


  여느 아침이란 이런 꼬락서니였다. 자명종이나 자동 커튼, 기상 간접광 따위 필요도 없이 그저 재깍재깍 의식으로 동댕이쳐지는 것이다. 온갖 악몽의 여진에 시달리는 채로. 일 해야지, 일. 오늘은 외근이야. 궁상 그만 떨고 취재 생각해, 테리……. 그녀에게 기억이란 적군투성이요 우군이라고는 타성뿐이었다. 쓸 기사라도 산더미가 아니라면 만년필 닙은 그저 손모가지 따기 좋은 날붙이에 불과하겠지.


  싸늘하게 뻣뻣해진 옷가지를 떼어내면서 욕실로 갔다. 샤워꼭지는 저절로 이리저리 달그락거리더니 딱 맞는 온수를 뿜기 시작했다. 다이달라이트 방사광이 함께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귀신처럼 젖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구부정하니 머리를 쿵쿵 찧었다.


  학부 시절 내적 독백에 대한 수업에서 광기란 무엇인지 일장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으레 개소리나 하는 것처럼 보여서일까, 다채로운 의견이 나왔다. 그런 판에 빠질 수 없으니 테레사도 한 마디 거들 밖에. 광기란, 반복이라는, 것. 손수 개선이 불가한 무의식의 타성이라는 것. 쳇바퀴에 갇혀 버린 현대인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한결같이 미쳐 있고 광기니 광증이니 하는 건 빙산의 일각을 그저 유빙이라 부름과 다름없다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한낱 비기너즈 럭에 불과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운이란, 우연히 진리를 꿰었다는 게 아니라 조국이 미치광이 소굴이나 진배없다는 흰소리로 이기죽을 늘어놓고도 무사태평했다는 사실이겠지만. 덕분에 비슷한 일을 업으로 삼아 좌파 일간지에서 밥을 벌고 있는 게 아닐까? 어디 근위대 취조실 무서운 줄 모르고.


  알레프에 고한다.


  몸을 건성으로 훔치고 나온 테레사는 덜 마른 발로 횡행하며 수첩을 뒤적거렸다. 라 오르데나에는 스타디움이 둘이라 주경기장에서 개막식이 열리고 나면 에르사예즈 공화국 귀빈 일정을 잘 짚어야만 허탕을 면할 터. 물론 헛수고를 면한다 하여 일이 잘 풀릴지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이 따위가 계획이라면 삼라만상 어디 계획 빠진 데가 있을까?


  온풍에 물기가 죄 마르자 평소보다 훨씬 정장을 했다. 평소라고 단정하지 않은 건 아니되 이번에는 거진 야회복에 가까운 복장으로. 스포츠 취재에 웬 허식인가 싶지마는 다 그렇게 되어 있는 일이었다. 인터뷰 그르치기 싫으면 별 수 없겠지. 어깨가 드러나는 흑단매듭 칵테일드레스에 롱 글러브, 출입증이며 투박한 기자 가방. 가방끈에 짓눌린 살갗이며 레이스가 벌써부터 비뚜로 나가고 있었다.


  추계 마도 올림픽은 대륙에서 하늘이 가장 높은 계절에 열린다. 가을이 완연한 만큼 여름의 손아귀에서는 훌쩍 벗어나 있을 터. 번드르르한 가도에 모로, 태양이 휘영청한 가운데 드레스 틈새 여기저기로 가을바람이 살그머니 모질었다. 화강암 보도 위로 흑색 구두가 또각또각 조급했다. 어서 몸을 움직여 냉기를 쫓고, 후배와의 약속 시간에도 맞추어야 했다. 일라리오라면, 반 시진은 먼저 가 기다리고 있겠지.


  푸에르타 데 라 레이나 광장에서 주경기장으로 갈 수 있는 부양선편은 댓바람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신문팔이 손에서, 팝업 스탠드에서 헤드라인들이 눈에 밟혔다. ‘국방위원장 베네딕토 친왕(親王) 저하, 콘벤시온 스타디움에서 친히 개막사’, ‘추계 마도 올림픽 10연패, 어머니 땅 세레네이 반도의 왕도에서’, ‘마도 강국의 영광, 오르데나를 넘어 대륙으로’……. 그렇잖아도 취한 세상이 오늘은 숫제 만취하여 거드럭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에 휩쓸려 밀려난 테레사는 창문 근처 자리에서 기둥을 붙들고 섰다. 한 손은 가방을, 한 손은 기둥을. 하릴없이 창밖이나 보게 되었다.


  러시아워의 푸에르타 데 라 레이나 광장과 오르데나 대로는 아우성이었다. 체증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부양로가 꾸무럭거리는 그림자를 아래로 드리웠고 사람들은 아침해를 채 반도 못 받으며 걸었다. 그저 부양선과 부양정 경적이, 다이달라이트 엔진의 적색 구동광이 무질서하게 요란뻑적지근할 뿐. 허나 이 정도 소요라면 그야말로 천국의 아우성일 것이다. 세 겹만 바깥 방사로로 나가도 지저분한 가도에 퀭한 노동자들이 시료 야적장이나 마도기 조립 작업장을 향해 장송곡 같은 행진을 하고 있을 테니까. 세련된 도시민들은 모르거나, 잊고 살 뿐.


  그런 광경에 거진 무한정의 그림자를 드리우니 바로 저 유명한 알레프 마소 컬라이더였다. 일명 모놀리토(Monolito). 성층권 언저리에 달한다는 첨탑이 당당히, 흑색으로 올곧은 인공 수선을 그리며 삼백 리 떨어진 왕도에서조차 또렷하니 어찌 달리 말하랴. 암석 같기도, 금속 같기도 한 그 표면은 지근거리에서는 다이달라이트 방사광으로 일렁거리며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고 한다. 신물이라면 분명 신물이겠지. 그만큼 대단한 경외여서 흔히 오르데나의 도시 엠블럼에는 중앙에 엘 시드 궁을, 그 곁에 알레프 마소 컬라이더를 그려 놓고 원형으로 <이성 없이 하늘을 우러르지 말라 No mires el cielo sin razón>라는 문구를 써넣는다.


  저 건물이 반 세기, 아니, 반의 반 세기도 되지 않았다는 걸 누가 지적하는가? 모순적이게도, 모놀리토가 무슨 구조물인지, 어떻게 건설되었는지, 어떤 연구를 하는 곳인지 분명히 아는 자가 드물다. 그저 ‘마소 입자를 충돌시켜 온갖 현상의 이치를 밝혀내는 연구 시설’이라는 당국 프로파간다를 되뇔 뿐. 왕궁에 버금가는 국가 상징이 무지의 면사포를 늘어뜨린 진리 요체라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대단한 일을 해내지 않는다면, 시꺼멓고 커다란 흉물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그래, 분명 이성의 극한이란 무지와 통하는 것이다. 평소 생활에서 눈 감고 사는 것처럼, 오르데나 만세 할 적에도 눈 뜬 장님 되어 사는 게 낫다고 부지불식간에 깨친 걸지도…….


  알레프에 고한다.


  오르데나 콘벤시온 스타디움에 이르자 부양선에 썰물이라도 지듯 승객들이 빠져나갔다. 물론 테레사 역시 이리저리 치이며 나왔고, 와중 발을 몇 번이나 밟혀 골이 단단히 나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후배의 표정이 바뀌는 걸 보고서야 낯짝을 매만질 기분이 들었다. 딴은 선선히 웃는 얼굴로, 기자 가방을 건넸다.


  “일찍 왔네. 잠깐만, 이거.”


  “아뇨, 뭐……. 정치부 사람들은 진즉 와서 들어갔습니다.”


  테레사는 주억거리며 근처 소화전에 들입다 발을 걸쳤다. 한 손으로는 구두를 닦고 남은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짓누르면서.


  “……국방위원장 저하께서 개막사 하신다잖아. 받잡을 준비나 하는 게 그 양반들 일이겠지.”


  “네. 저흰 어떡할까요?”


  일라리오는 조금 당황한 듯 가방끈을 움켰다. 그녀는 아랑곳 않고 양 쪽 구두를 다 청소하고는 손수건을 뒤집어 접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구색은 맞춰야지. 그러라고 보낸 거잖아? 이게 무슨 세상 낭빈지 모르겠다.”


  “어차피 이 시기에는 일반 기사 찾는 사람도 없잖습니까? 데스크에서는 나름대로 경쟁시키려는 것도 있는 것 같고……. 아, 선배님. 등 울어요.”


  “등? 어디?”


  테레사는 툴툴거리다 말고 어깨를 들썩이며 가리켰다. 말려 올라간 레이스를 펴 주느라 자연적 어깨를 건드리게 되었다. 일라리오는 볼썽사납게 손을 떨 뻔했다. 신기하리만치 체온이 낮았다. 그에게 이 괄괄한 선배는 여러 가지 뜻에서, 일종의 신비였다.


  개막식 직전의 경기장이란 누구 말마따나 시장바닥이었다. 취재진 출입증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사회부 2인조는 주 출입로에서 몇 걸음 못 가 이리 휩쓸리고 저리 떠밀렸다. 십여 분을 인내하던 테레사는 구둣발로 후배 정강이를 까고는 방패막이 삼아 끌어냈다. 곧장 팔짱을 끼고 ‘센스 없는 자식아’라 귓가에 으르렁거리면서.


  개막식 표가 정가 600오르덴, 부양선 정거장 지척부터 즐비한 딱지장수들이 열 배 튀겨 오륙천을 불러 댔으니 기실 한두 달치 품삯을 훌쩍 넘는 셈이고 그마저 없어 못 산다고. 언제부터 그리 돈을 써제끼고도 만면에 웃음이 나올 태평성대에 있었던가, 척 봐도 추레하고 꾀죄죄한 치들이 검표대를 지나며 그저 영광이요 그저 만세였다. 영광 오 영광, 조국의 왕관이여 너 아름다운 이름이여, 저 고결한 황금 깃발이여. 생명 오 생명, 조국의 미래여 너 가슴 속 뜨인 눈이여 저 영원한 자색 깃발이여……. 휑한 주머니로 악쓰는 국가가 울부짖음이었다.


  반 시진 여유를 두고 왔기에 망정이지 그 틈바구니에 휘말려 메인 이벤트를 놓칠 뻔했다. 중앙 단상이 비었으니 연설 전에 시간은 맞춘 모양이었다. 허나 고난이란 놈이 짓궂게 뒤축을 밟아 왔다. 지근거리에서 웬 악단이 나발과 각적 따위로 국가를 뚱땅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르데나여! 언제나 함께하는 이름이여, 그 영광이 우리 법이라. 오르데나여! 멈추지 않는 전통이여, 그 믿음이 우리 혼이라……. 곳곳에서 제창이 따랐고, 테레사는 줄담배를 피우며 펜대나 빙글빙글 돌릴 뿐이었다.


  얼마간 지나 경기장 전체에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국방위원장 베네딕토 오르데나 친왕이 입장하고 있었다. 객석의 온갖 잡소리가 끊기고 함성이 까무러칠 정도였다. 비바 세자 저하, 여신이시여 국본을 돌보소서, 오르데나 만세 베네딕토 친왕 천세……. 아우성의 망토를 휘날리며 그는 단상 앞에 우뚝 뒤돌아섰다. 누군가가 연설문을 건넸고, 날붙이 같은 거수례를 주고받는 사이 경기장 전체가 어느새 휘어 잡혀 있었다.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으나 이미 연설은 완벽했다. 증폭기가 떨며 붉은 섬광을 드리웠다.



  「세레네이여! 유구히 이어진 전통의 이름이여! 나는 봅니다. 나는 보고 있습니다. 천 번 목놓고 만 번 우짖어 비로소 우리 국가, 바로 우리 오르데나의 품으로 물씬 다가온 영광을. 세레네이여! 고개를 드십시오. 저 모놀리토를 올려다보십시오. <이성 없이 하늘을 우러르지 말라>, 단언컨대 우리에게 주어진 말이라 하겠습니다. 한 명 한 명,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낱낱이 황금인 우리 민족에게! 세레네이여!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왼쪽의 동지, 오른쪽의 동포와 눈을 마주치십시오. 내겐 보입니다. 내겐 똑똑히 보입니다. 저 다이달라이트의 붉은 빛처럼 번뜩이는 민족혼이. 세레네이여! 올림픽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증명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피로 또렷할 영광으로의 명증이라 하겠습니다. 모놀리토에 걸린 태양보다 더 붉디붉어 눈 멀지 않고서는 눈 돌릴 수 없는 세레네이 민족의 승리라 하겠습니다……. 우리 마도사들에게 갈채를 보내십시오. 상대 마도사들에게 위로를 보내십시오. 이제 공명정대한 막을 올리니, 소리 높여 함성으로 보이십시오!」



  예행연습이라도 했는지 마무리에 꼭 맞추어 갈채가 폭발했다. 숫제 경기장에 천둥이 유체처럼 요동치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듯했다. 박수는 이내 잦아들며 경례로 바뀌어 갔다. 그라데이션이었다. 관객들은 어느새 한 방향을 바라보며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있었다. 비바, 비바, 비바, 비바, 비바, 비바, 비바……. 몇 번이나 만세를 합창했을까, 국방위원장이 단상에서 오른손을 휘어잡아 갈무리했다. 모놀리토 못지않게 마법 같은 장면이었다.


  일라리오가 천천히 박수를 치며 웃었다.


  “비바 오르데나, 장관이네요.”


  “마도 올림픽 제창자들이 저승에서 보면 까무러칠 걸. 비바 오르데나다, 정말.”


  “대단한 웅변가시죠, 베네딕토 저하께선. 연설문의 압운 배치 기술이나 제스처 타이밍, 함의의 배분 같은 걸 분석해서 한 번 ‘국방위원장의 목소리’같은 특집을 써 보고 싶어요.”


  테레사는 떨떠름하게 담뱃갑을 꺼내 손목을 튕겼다. 서너 개비밖에 남지 않아 손맛이 허했다. 웃어넘겨도 좋았을 것을, 주둥이 끝에 담뱃불을 달랑거리면서 부득불 초를 치려 들었다.


  “아서라.”


  “왜요? 우리 신문 논조에 딱 맞을 것 같은데. <라 오르데나>나 <엘 티엠포>에서 우릴 반민족주의자라고 물어뜯을 때…….”


  “대신 ‘오르데나 국본의 연설문을 낱낱이, 적국 첩자에 대한 경계심은 없는가? <엘 문도>의 새파란 부나방들’이라고 쓰겠지, 경쟁사에서. 사나흘 지나 왕실근위대가 사무실에 들이닥칠지도 모르고.”


  잔뜩 의욕적이던 일라리오는 풀이 죽었다. 그 사이 수첩을 넘기며 암호 같은 글자에 눈을 굴렸다.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았다.


  테레사는 벌떡 일어나 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아직 불만 붙어 있던 연초를 한 모금 마시고 후배에게 쥐어 주었다. 문 재로 지껄이느라 잘근잘근 잇자국이 선명했다.


  “그게 우리네 전통이란 게 아니겠어, 일라리오?”


  허둥거리던 일라리오는 선배가 짐을 싸자 당황했다.


  “선배, 그래도 전……. 어, 어디 가세요?”


  “취재 건 있어. 팀장이 부득부득 여기 보낸 건 이유가 다 있다는 말씀이야. 내 모가진 내가 지켜야지, 일라리오.”


  “간만에 부사수 봐 주시려는 줄 알았죠, 전.”


  풀 죽은 어깨에 슬그머니 오른손이 올라갔다.


  “누가 선배 노릇 아주 그만두겠대? 한 시에 거기서 보자. 너도 ‘국방위원장의 목소리’같은 건 집어치우고 적당히 싱싱한 거 하나 건져 봐. 봐 줄 테니까.”


  테레사는 곧 통로 쪽으로 나가며 등 뒤로 손을 휘적거리며 멀어져 갔다. 한동안 눈으로 쫓던 일라리오는 곧 반쯤 탄 담배를 조심조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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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07.02. 22:44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저런 연설문은 직접 쓰시는 건가요? 그럼 정말 사람이 아닌데..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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