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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딸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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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1 Jul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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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성기사단 미시르미 지부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오빠의 임관식 행사(듣자하니 144기라고 합디다)에 참여하여 자리를 빛내 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참말은 참말인지 백기사 몇 분이 축하 인사를 건네러 오기도 하고, 폐물이다 여비다 하며 슴슴하게나마 이것저것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심란했다고 하겠습니다. 임관식이 열릴 기무라제는 머나먼 타지입니다. 성국의 남동쪽 구석인 미시르미에서는 곧장 거리만 따져 보아도 2천 리가 넘습니다. 달곤돌라를 타도 얼마나 걸릴지……. 게다가 기무라제라면, 이 모든 일의 총본산이 아니겠습니까? 기백, 기천, 기만이나 되는 사람이 온갖 만세와 갖은 충성으로 요란법석을 떨 테고, 외침에 군가에 대 마니 소식말씀, 군교들 행진, 전쟁 기계 소음으로 뻑적지근할 테지요. 두통이 벼락처럼 일었습니다. 신성의 면구를 내리덮은 신성모독의 산 현장일 테니까. 하지만 오빠가 그 천부당만부당한 소굴에 뛰어들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비겁하게 뒷걸음쳐서는 안 될 이야기입니다.


  먼 길이 될 만큼 준비할 일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의 성도행, 또 그 전의 이리리미행과는 비할 바 없을 정도로 머나먼 길에 틀림없으니까. 아버진 며칠째 단골 객들을 일일이 붙들고 사흘쯤 가게를 닫아야겠다고 언질을 하신 것 같습니다. 전 사사라모 씨께 기무라제에 다녀올 일이 있어 금주 수업을 쉬었으면 한다고 말해야 했지요. 자연적 오빠의 임관에 대해 고하게 되었고, 얼마간 소동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소동이란 아주 훤하여서 우리 집안이 신세(아닌 게 아니라 그러하긴 그러합니다)를 지고 있는 걸 분명히 해 두자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약소하지만 경사에 보태 쓰라’며 공을 칠 주급 천 닢을 거저 내고, 길일엔 훌륭한 옷이 있어야 한다며 달비단까지 한 필 얹어 주었으니까. 어머니께선 어찌 생각하실까요? 일기를 읽고 또 읽고 나니 함부로, 신관 미호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경단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저 어머니처럼 대의에 대해 헤아리고 지행합일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매번 자신을 의심할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재물을 받아들고서는 은혜 잊지 않겠다고, 피차 좋을 말을 했습니다.


  출발할 날이 되자 저답잖게 무척이나 황망했습니다. 역마차편을 미리 수배하고, 달곤돌라편 시간까지 꼼꼼히 챙겨 두었거늘 워낙 대단한 일인 만큼 주눅이 든 게 틀림없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도시락이며 옷보따리, 여비를 챙겨 나간다, 오빠 배웅하러 이리리미까지 갔을 적에 다 해본 일이거늘 어디가 별다를는지요? 그런 건 우리 집 양반도 마찬가지신지 부녀가 쌍쌍이 허겁지겁 역마차 승강장에 도착할 즈음엔 참 별꼴이었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도 여정을 밝히자 마부가 살펴 모시겠노라 굽실거렸습니다. 이런 일처리 하나는 기가 막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성기사단이란…….


  이른 시간이라 덜 후텁지근하여, 여름나절 가사미 산의 풍성한 녹음을 멍하니 바라보며 덜그럭거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가사미 산이 왜 가사미 산인 지 아세요?”라는 실없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서라, 그거 미호시한테 꽤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니까.” 아버진 떨떠름해하셨지요. “어머니나 저나 평소 생각하는 건 비슷한 모양이네요.” “아무렴. 특히 미하모보다 너는.” 씩 웃으며 제멋대로 “가사미, 그러니까 측백나무의 으뜸이라는 이름은 오래 전 두 번째 성자님의 순례길에…….”라 지껄이는 사이, 역마차는 천천히 미시르미 외각을 둘러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불쑥 덜그럭거리기 일쑤여서 하마터면 잘못 앙다물어 혀를 물어 버릴 뻔했습니다. 엉치뼈가 쑤시는 건 이루 말할 것 없었지요. 이 따위 걸 어찌 두 번이나 탔나 싶었지만, 이내 핫바지의 대처행이란 다망하기 마련이어서 자질구레한 고생 따위 이내 잊히기 마련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 아니, 이번에야말로 가장 그러할 겝니다. 아무려면요.


  고등마니학교 입시에서 집안 금전을 허투루 날렸지만, 따지고 보면 득실을 아주 그르친 건 아닙니다. 세상 무서움을 깨쳤고(여러 가지 의미로), 경험을 칭호 삼아 쐬벌이를 시작했지요. 또 제가 멀미에 면역이 있다는, 무진 쓰잘데없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야 마차에서 성서를 펴 들고, 태연하게 다음 주 교습 분량을 연구하며 시간을 죽일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뭐, 심심풀이라기엔 어폐가 있고 기실 행사로 날릴 시간을 벌충하는 쪽에 가깝습니다만……. 아버진 헛구역질을 하시며 “머리 안 아프냐?”라 하셨고, 저는 눈알 한 번 안 굴리며 “머리는 만날 아프죠.”라 대답했습니다. “독한 녀석아. 좀 쉬엄쉬엄 하렴.” “독한 아내 얻어 놓은 게 아버지 아니면 누구셨어요? 그 배에 그 자식이죠.” 입술을 비죽 내밀어 보아도 우리 집 양반은 태연자약이셨습니다. 어디 한두 번 이랬어야지요. “반반이어야지 않겠니? 미호시가 그래도, 나는 아니니.” “아버지가요? 정말로요?” “……할 말이 없구나. 그래도 잠시, 네가 책 못 보게 방해는 훌륭히 해냈지 않니?” 참으로 그랬습니다. 웃는 낯으로 책을 덮을 밖에요. “심심하셨던 모양이네요.” “뭐, 심심하기보다는…….” 말을 분질러 먹으며, 저는 소소한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복수라기에는, 깜찍한 현학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뭐, 사실 다음 주 수업할 내용이었지만. “세 번째 성자 아세미시께서 온 모란제의 신학을 집대성하고 편찬하시면서 무한서고를 건립할 즈음 교국에는 초월 교리의 꽃이 찬란하게 피어 있었죠. 달의 아이 한 명 한 명이 필멸을 초월하여 그분께 다다를 싹으로 지어졌다는 거예요. 자연적 우주의 섭리를 우리 이성으로 분석하여 깨달음에 이르려 학자들이 열과 성을 다했어요. 노력이 헛되지 않아 마니 사람들은 여신의 존재 여부까지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데 이르렀죠. 여신께선 ‘이 세상 가장 위대한 존재’시니, 반드시 존재하실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더 위대한 것을 떠올릴 수 없으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떠올릴 수 없으면서 존재하는 것’이 더 위대하기 마련이니,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특성상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니까. 재미있는 건 이 논증은 거꾸로 뒤집으면 여신의 부존재 여부를 증명하는 데 쓸 수도 있다는 건데…….” 마차는 그저 덜컹거렸고, 제 주둥이는 세상 무심하게 달싹거렸습니다.


  마부는 익숙한 풍경을 두고 잠시 말을 쉬게 했습니다. 예의 그리미마니 호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번에도 간단하게 주먹밥을 챙겨 왔기에, 세 명이 한 덩이씩 들고 요기를 했습니다. 전 자르르한 호변을 물끄러미 보다 말고 씹던 밥알을 우르르 튕기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빤 여전할까요?” 너무 뭉뚱그렸나 싶었지만, 이내 눈치채셨습니다. “네가 한결같은데, 미하모가 안 그럴까봐?” “괴물을 때려잡으려다 그 괴물을 닮는다잖아요.” “너흰 미호시 아들딸이니까.” 선언 같은 그 대답은, 과연 믿음으로 가득하여 허투루 대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나절이나 지나 이리리미에 도착하였을 즈음에는 벌써 진이 빠져 있었습니다. 정말 지칠 일은 이제부터 줄줄이 줄을 서 있지 않나 싶지만……. 도회지란 쓰잘데없이 변화무쌍하여 그 길이 그 길인가 싶었습니다만, 그나마 한 번 갔던 길을 되짚어 가는 셈이라 촌사람 티가 덜 났을 겝니다. 물론 짐짓 넘겨짚은 것이니 대처 사람이 들어 어처구니가 없을지 또 모를 일입니다. 여하튼 별 사고 없이 역에 도착했으니 한 숨 던 것 같았습니다. 이 이리리미 역만큼은 정말 여전하여, 당당히 우뚝 선 백색 거인이 제 가슴팍을 열어 대합실로 내어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열여섯이던 미호누의 감상이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달의 이름으로 쌓은 기물이란 마니 사람 신앙의 동반자이니 형태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그러하다 하겠습니다.


  선편을 잘 조사해 온 덕에, 별 혼란 없이 여객승강장을 찾아들 수 있었습니다. 전 고등마니학교 입시 때 뻔질나게 달곤돌라를 탔으니 적잖이 익숙하여 매표를 한다 승강장 번호를 확인한다 청산유수였지요. 하지만 우리 집 양반은 거대한 곤돌라가 단궤조에 물린 채 굉음을 내며 미끄러지는, 그런 광경 자체가 생소함을 넘어 썩 편치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자연스럽다 말하기는 어렵지 아니하겠습니까? 듣자하니 달곤돌라는 매시 400리 속도로 치달리게 하려, 내장을 뺀 선체 전체를 월석으로 주조하여야 한답니다. 월석이야 성유물 중에서는 별종이어서 기적의 상징을 넘어 온갖 쓰임새를 가진다지만(애초에 달여신께서 그리 쓰라 하사하셨으니) 분명 신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시골 어른이란 외곬이라 사람이 신물을 함부로 조종하는 데 심저로부터 마뜩잖아하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 쪽이 신실한가를 따져 물으면 분명 이쪽입니다만, 세상은 변하는 법이지요. 또 신학적으로도 그분을 경외함과 그분의 사랑을 기꺼워함 중 경중을 어찌할지는 기나긴 마니 역사에서 명쾌한 답이 나온 적 없으니 어찌 판단할 바 없습니다.


  성국의 서쪽 끝인 기무라제까지는 장장 여덟 시간이 더 걸립니다. 핫바지처럼 공연히 버쩍 얼어 계시던 아버진 뭐랑은 달리 그야말로 평온한 승선감에 취하셨는지 이내 선잠에 드셨습니다. 아, 딴은 여유가 있답시고 이등석을 끊었으니 과히 그러신지도.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선창에 뺨을 처덕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에 그저 혼을 빼놓고 있었습니다. 해 지는 쪽으로, 더 달에 가까운 쪽으로……. 모란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스소마니 산맥을 둘러, 남벌로 반쯤 결딴이 난 가사나니 대삼림을 지나, 성국의 곡창 나나니미 지방을 가로질러, 이발라르 군도 연합과 대치 중인 스소미모노 해협을 끼고 돌아……. 세 번째 성자께서 소싯적 쓰신 ‘모란제 주유’에서나 읽었던 곳들을 속속들이 눈에 담던 중 성스러운 시간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우르르릉, 하며 자리 박차고 일어나는 소리로 일순 난리통이 되었는데 모로 기울어 침을 흘리던 아버지가 소스라쳐 튀어오르실 정도였습니다. 심드렁하게 달맞이 자세를 하자 성황님의 모두말씀이 달곤돌라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국의 신민 여러분, 아름다운 밤입니다. 근래 우리 모란제에는 그분의 은총이 내리쬐이고 있지 않나 합니다. 대신전과 다른 여덟 신전을 잇는 성스러운 길이 완비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실핏줄처럼 달기둥을 이어 대신전의 기도가 직접 닫지 아니하는 땅이 없습니다. 바라 마지 않던 영광의 나라가 목전에 와 있다 하겠습니다. 이제 성국에 남은 소원은 고토의 회복뿐입니다. 신민 여러분, 고개 들어 북녘을 보십시오. 히나마니는 언제나 그곳에 있으며, 또한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성지는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강철 공왕이 그 모두를 앗아간 지 백여 년, 마니인에게 다시 한 번 기적이 나릴 때가 되었습니다. 성전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분께 영광을 돌릴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국의 신민 여러분, 이 아름다운 밤에 성지의 모습을 되새기십시오.」



  참으로 한결 같은 모두말씀입니다. 모두말씀이 아니라 어디 독경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는 그저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또 여름나절의 한 날이 기울어 가는 창 밖이나 보면서.


  성스러운 시간을 훌쩍 넘기자 달여신님의 장막으로 야음이 만연했습니다. 이제 기무라제가 지턱일 터입니다. 제아무리 성국 제일의 군항일지언정 성도에 비할 바 없으며, 항구에 들러붙은 이리리미 즈음이겠거니 넘겨짚을 뿐이었지요. 헌데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달빛을 닮아 찬란하게 빛나나니 성기사단의 거드럭이 지천에 달빛등을 처덕여 낮밤 구분을 잊은 지경이 아니냐며 혀를 차게 되었습니다. 저 잘났다는 서생의 지레짐작이란! 사실은 그네들 위세가 대단한들 낭비벽이 그 지경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저 전함이 십수 척 정박해 있을 뿐. 군함들은 얼마만큼의 월석으로 지어올린 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반드렇고, 그저 결백한 몸체가 이 멀리서도 어느 신전보다, 어떤 첨탑보다 아득히 높으며 어찌나 순수한지 사람의 기물이 스스로 달빛을 뿜고 있었으니까요. 무슨 램프 같은 기물과는, 여느 달빛등 같은 시설물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모란제, 이제모란제, 루루모란제, 나다비모란제, 소사모란제, 보네모란제, 후모란제……. 대 마니 소식말씀에서 말입니다. 신앙의 힘, 신앙의 지혜, 신앙의 자비, 신앙의 정의, 신앙의 영광, 신앙의 희망이라는 함선들에 대해. 달여신님의 성스러운 궁전 기둥만큼이나 드높고 굳센, 일곱 주력 전함이라지요. 아닌 말로 그만하기는 한 것 같으니 상시 허언으로 가득한 어용방송이라도 이따금씩 참말을 할 때가 있구나, 그런 생각에 실없이 웃음이 새고 말았습니다. 이만하면 달맞이산이 스스로 움직이는 셈이래도, 달바다에서 보일 신물이래도 아주 허튼 소리는 아닐 테지요. 그 외에도 군함으로 만선을 이루니 백기사들의 교만이 근간을 어디에 둔 지 이제서야 충분히 알게 된 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견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군선들의 위압감이란, 여객승강장에 처음 발디딘 모두를 도취시켰습니다. 우리도 넋이 반쯤 나가 “얘야, 대단하구나.” “그러게요…….” 따위로 주절거릴 만큼. 그나마 제가 먼저 정신을 차려, 역전 거처를 알아보겠노라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군관료제란 참으로 대단하여 대합실에 성전사들을 파견, 어리벙벙해진 치들에게 친히 숙소를 알선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다 계산해 두었다는 것일까요? 이번에는 웃는 낯으로 그 장단에 맞춰 보기로 하며, 아버지와 전 짐을 들고 한 군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숙소라는 곳은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네들 체면이 걸린 일일 테니.


  기절하듯 잠들고 나니 황당하리만치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시간을 뚝 꺾어 바스라뜨린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찌뿌둥한 몸을 어거지로 움직이며 일정을 곱씹었습니다. 저흰 이다엄 대연병장이라는 곳을 정오까지 찾아 가야 합니다. 네, 소리상자에서 몇 번이고 볓 번이고 언급된 그곳. 괜시리 허둥댈 필요는 없겠지만 확실히 해 둘 요량으로 방을 나서 접수원을 찾았습니다. “고객님, 숙박 정산 시간에 맞추어 성기사단에서 마중편을 보낼 예정이니 식사라도 하시면서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말에, 선선히 주억거렸습니다. 뭐, 밥은 먹고 봐야 될 일이 아닐지요?


  반 시진 즈음 지나, 단장을 끝내고는 숙소 1층 한쪽의 식당인지 끽차점인지를 찾았습니다. 미모란제에 갔을 적에 이런 곳을 무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대처말만큼은 영 입에 익어 버릇하질 못하겠습니다. 요는 값비싼 옥 탁자며 측백나무 의자에 달비단 탁자보, 청금석 장식이 달린 은식기 따위를 갖추고서는 조막만한 차림표에 시구 같이 음식 이름을 주절주절 써 놓는다는 이야기대로 알쏭달쏭한 것들을 전편 열 닢 열닷 닢 스무 닢씩에 파는 곳 말입니다. 아, 요지 치고는 아주 중언부언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매달 천 닢씩 벌어들이며 허파에 달빛이 좀 들어 버려, 아버질 모시고 당당히 창가 자리를 꿰찼습니다. 이 양반은 황당무계한 가격에 질겁 반, 대처 끽차점에 대한 호기심 반으로 못 이기는 척 엉덩이를 붙이셨지요. 효도같지 않은 효도가 된 셈입니다. 점원에게 일일이 추천까지 받아 주문을 끝내자, 절 똑바로 쳐다보셨지만. “미호시 일기는 다 읽었어?” “암송해 볼까요?” “원, 녀석두.” 아버진 부끄러우신지 괜히 정색을 하셨지요. 하지만 누가 일기를 그렇게 읽을까요? 성자 전기도 아니고. “농담이에요. 그걸 어떻게, 또 왜 외워요?”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믿을 수밖에 없잖느냐.”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무려면요. “칭찬하신 건지 욕하신 건지 모르겠네요. 뭐, 어머니가 바라신 것처럼 저든 오빠든 잘 해나가야 할텐데요.” 곧 점원 두 사람이 이고 질만큼 휘황찬란한 아침상이 차려졌습니다. 달맞이산도 식후경이니 입방정일랑 접어 두는 게 옳을 테지요. 그 입방정으로 벌이하는 신세라도 말입니다.


  달걀, 전병이며 절여서 찢은 고기, 조린 콩 따위를 우물거리노라니 허기가 가셨고, 자연적 창 밖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트인 방향으로 대로가 뻗고 양 옆으로는 성기사단 월석기가 편집증적으로 가지런히 매달려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그저 대처구나, 도회지구나 하며 넘겨짚기에는 썩 흉흉했습니다. 바른모로 삐걱거리는 제복 차림이 지천에 난생 처음 보는 무장, 갑주, 전쟁 달기계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달리 어찌 느낄는지요? 아, 새벽 기도처럼, 금속음에 파열음, 굉음이 한 겹 유리에 스멀거려 거듭 정신머리를 뒤흔들어 댔습니다. 식후경이라 해도 기무라제에서는 참으로 개뿔인 일입니다. 일디오르 공국군이 육박한 것도 아니거늘 웬 소동인지! 저는 툴툴거리다 말고 퍼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어디 닥쳐오는 게 이교도 군단뿐이겠습니까? 외려 그네들보다 더 중히 맞설 게 있겠지요. 온 성기사, 온 성전사, 온 전쟁 달기계를 다 늘어세워 두고는 여봐란듯이 사자후를 터뜨려야 뭇사람들이 영광의 나라요, 달빛길로 가는 나라라 여길 테니. 괜히 가도에 나서 갈채에 함성에 법석인 치들도 만만찮아서 이 신파극에 온 마니 하나되어 흥청거리고 있는 셈입니다. ‘깃발 높이 쳐들고 자랑스레 행군하는 우리, 그분께서 가라사대 둘째 가는 자 없다 하시네’라니 아주 그 가사대로입니다. “이다엄 대연병장에서는 어디 산이라도 하나 무너뜨려 거드럭을 피우겠네요.” 우물거리며 실없이 지껄여 댔고, 우리 집 양반도 “바다를 가르는 건 어떻겠니?”라며 죽을 맞추셨습니다. 두 사람 분 마흔 닢 치고는 변변찮은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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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07.09. 21:53
이러니저러니해도 고등마니학교 진학 포기가 엄청난 분기점이네요.
그저 연중이 아니라 안심 또 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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