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판프대] 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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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17 Aug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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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errr
협업 참여 동의

1. 



신을 믿지는 않지만 성당이란 장소에 기묘한 힘이 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생각은 없다. 거대한 예배당, 숭고한 희생의 조각들, 성가대에 제창하는 웅장한 파이프오르간과 성서를 발췌한 스테인드 글라스로부터 쏟아지는 성광.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드높은 천장 아래 가만히 앉아 정면에 매달린 예수상을 바라보면 서늘한 공기가 폐를 적신다. 신자들 앞으로 주어진 종교의 유산은 아름답웠고 내 앞으로는 조부의 것이 주어졌다. 그 많던 돈을 죄다 기부하고 사무실 열쇠만 하나 남겼다는데, 그런 믿기지 않는 내용의 유서는 몇 번을 읽어본들 그 내용이 변하지 않았다. 곰곰이 되짚어보자면 조부는 그런 인물이었으니, 별 수는 없었다. 납득한다고 불만이 사라지는 바는 아니어서 편지지에 땀이 스며들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읽었지만. 기독교의 성지는 과연 해가 진 뒤에도 아름다웠다.
기둥으로부터 쏟아지는 위엄과 숭고미의 향연에 감동이 일었다. 이런 곳에 일요일마다 와서 앉아 압도당하다 보면 없던 신앙도 생기겠지. 과연 인간의 미적 감수성은 대단하더라. 상상력이란 신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힘일 터라. 허나 신전에서 이러이러한 감상을 내놓은 불신자의 입장에서 단언컨대 이건 '그런 방식의 사기'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사기'라는 단어에 결단코 모욕의 뉘앙스는 담지 않기로 한다. 오히려 지금껏 유지해온 수천년짜리 구라를 앞으로도 수천년간 쳐가리가 생각하니 존경심에 전율이 다 일어난다. 사회의 절대다수가 신용하는 종교란 따라서 정의인즉. 말하자면 종교에 대한 내 가치관이란 고작 그쯤에 불과한 것이다. 신앙이 저들만의 방식을 가지듯이,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사는 인간일 뿐이다. 길게 늘어놓았지만 진실로 내가 이 종교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이빨 좀 털면 신도 되는 시대에 태어난 당신이 나는 참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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