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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프롤로그 대회 닫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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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4 Sep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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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까치우
협업 참여 동의



일곱 번째 프롤로그 대회가 끝났습니다. 총 참가작 수 47작. 중복 투고를 제하면 마흔 명에 가까운 분이 참가해주셨습니다. 단 이틀 동안 열린 대회임에도 이렇게나 열띤 참여 수에 주최자로서는 기쁨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대회에 참가해주신 모든 분들께, 참가글에 대해 이야기해주신 모든 분들께, 선뜻 심사를 지원해주신 네크 님께!! 그리고, 이런 놀이가 가능하도록 장소를 마련해주시는 운영자 노벨릭 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옥도 돌일진대 가리기가 어찌 쉽겠습니까만은, 대회를 마무리할 때마다 능력도 안 되는 일을 벌였다고 후회하고 이번에도 후회 많이 했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은’으로도 해보고, ‘재미있는’으로도 해보고 여러 기준을 제시하였지만 결국 말장난이 아닌가 싶을 뿐 우승작 선정은 언제나 고민스럽습니다. 900자 이하로 ‘끝나는’ 글이 아닌 ‘잘리는’ 글을 평가할 때 완결성은 어떻게, 완성도는 또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는 고민해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 같습니다.

다수의 심사자가 심사해도 주관성에서 벗어나긴 어려운데 이 경우에야 말할 것도 없을 터입니다. 결국 제 주관 하에 가장 재미있는 것을 골랐을 뿐이니 너무 신경 쓰는 분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제 태도에 충실하고 취향에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을 했습니다.

심심풀이로 쓰신 분도 진지하게 쓰신 분도 있겠지만, 이 대회가 글을 쓰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면 주최자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흰소리가 길었습니다. 평소엔 짤 하나로 대강 퉁치고 넘어가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회니 풀어 써보았습니다. 이제 우승작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일곱 번째 프롤로그 대회 우승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al-ashtar 님의 「여자가 되었다」

딸갤러 님의 「점유이탈물 횡령죄」

klo 님의 「소녀무곡

 


「여자가 되었다」는 가장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건조한 문장으로 서술되는 사건의 전개가 글의 골자로, 글 자체가 주는 재미는 세 편의 글 중 가장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첫문장이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글은 일관성을 유지했으며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건조함으로 말미암은 낮은 감정선과 긴박하지 않은 분위기로 인해 생길 수 있었을 지루함을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끌어낸 불안을 이용해 긴장을 높여 해결한 점이 정말 돋보인다고 생각하며, 선정의 주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걸 선정이라고 쓰니까 너무 낯간지럽네요. 마무리가 다소 아쉽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재미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점유이탈물 횡령죄」는 첫문단 때문에 정말 많은 고민을 안겨준 글입니다. 객관성이라고는 먼지 한 톨만큼도 보증할 수 없는 대회에 당당하게 전 회차에 냈던 글에서 이어진다고 대놓고 암시하면 주최자로서는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골치가 아픕니다. 제가 이 글을 읽고 느낀 재미가 (아마도)전편에 해당하는 글을 읽어서 알기 때문에 이야기가 이어진다 생각하고 느낀 재미인지 그냥 이 글이 개별적으로 재미있어서 느낀 건지 판단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 대회의 취지는 글의 첫부분을 써보자는 것입니다. 재미있게 읽은 글이지만 심사를 도와주신 네크 님도 재미있다고 꼽지 않았다면 배제했을 겁니다.

이 점을 제외한다면 이 글이 우승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므로 더 부연하지 않겠습니다.


「소녀무곡」은 작가가 뭐하는 사람인지 참 궁금한 글인데, 대체 정체가 뭐냐? 사람이긴 합니까? 류세린이 사회인의 탈을 벗어던져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세상 라노벨 작가의 2/3은 자살해야 한다는 치이충 님의 감상이 정말 간명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재능을 포괄하는 광기 아닌지. 아무튼 제정신이 아닙니다. 순 미친놈인데…… 압도적인 글입니다.

이 글 또한 점유이탈물 횡령죄처럼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스웨터 사냥」을 읽은 사람이라면 연관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다른 글인지 같은 글인지는 알 수 없고, 그래서 택했습니다. 비록 이 후보는 의혹이 많고 부도덕하지만 명백히 드러난 것이 없는데다, 너무나 발군이거든요.


위의 세 편 외에도 출중한 글들이 많았습니다. 그거라든가 그거라든가 미쳐버린 그거라든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량을 초과한 글이 우승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장르문법에 의지하는 글이 우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이죠. 그러나 너 혼자 보이는 걸 여기에 내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용사라는 말을 썼다고 용사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는 없고 마왕이란 말을 썼다고 마왕이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용사와 마왕의 관계를 당연한듯 전제하는 글은 선지에서 제외합니다. 그게 맞다 여깁니다.


우승하신 분들은 추후 경소설회랑 쪽지함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축하드립니다.

이하는 개별 감상입니다. 다시 한 번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며 대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SS급 마약상인」, 키위 作


개행도 기술이니, 아무리 현대의 환경에서는 짧은 문단이 유리하다 한들 어설픈 개행의 연발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오히려 이 글처럼 개행이 잘된 글을 보기가 의외로 드물다고 할 수 있을 정도죠.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헛소리처럼, 좋은 문장이란 좋다고 느낄 수 없어야 한다는 말도 일견 맞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용상으로는 보잘것없는 싸구려 자극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자극을 유효하게 살려 자연스레 끝까지 이끄는 데에는 적절한 개행 처리가 주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눈길을 붙잡고, 설명을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독백을 넣었다가 다시 설명을 하기를 번갈며 몰입을 끌어내는 점이 뛰어납니다. 반복은 계속되면 질리게 마련인데 익숙해지기 전에 염동력자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는 감각이 좋았고, 마찬가지로 “손가락에 무언가” 하는 문장 또한 훌륭했습니다. 화제 전환을 때에 맞게 적절히 구사하는 솜씨가 좋은 글로, 특히 후자는 공식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싶은, 알고도 당하는 맛이 있습니다. 이렇게 불러일으킨 기대감을 곧바로 해소하지 않고 앞서 뿌려두었던 동아줄 이야기를 다시 꺼내 뜸을 들이는 것이 또 좋은 판단이지 않았나 싶은데, 바로 나왔다면 어딘가 기대감에 비해 연출이 허전했다 싶었을 겁니다. 독백이나 뜸들이기 등 추임새로 소모한 분량이 많은 탓에 글자수가 942자로 요구 조건 미달이지만, 분량을 지키느라 건드리지 말아야 했을 부분도 건드린 흔적이 보이는 몇몇 글들보다 남자다웠다는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이세계에 소환되었다」, asasds1234


유명한 그 글이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쥬지가 막 설거 같군.

반복 개그는 세 번까지가 정석이라는데 참으로 옳다 싶습니다. 반복을 통한 반의적 표현으로 어어없는 상황을 비꼬다가 느닷없는 사건과 함께 절묘하게 끝맺는 일련의 상황극은 웃지 않을 수가 없는 솜씨입니다. 어미 중 가장 간결하고 단정적인 어조인 -다가 글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운율을 형성하고 이를 이용해 경쾌하게 정보를 전달하는데, 이 운율 때문에 생기는 단조로움을 덮기 위해 끼워넣은 독백이 빼어납니다. 다시 이를 반복하다 세 번째에 이르러 익숙함이 생길 때 사건을 일으켜 흐름을 끊고 자연스럽게 반전을 만든 게 또 대단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기술이, 직업을 선택한다는 원인이 도적을 선택한다는 결과로, 논리에 어긋나지 않게 이어지는 큰 줄기 아래로 성립한다는 점이 개 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중반복문을 보는 듯한 글이에요. 헛소리를 들으며 상대 모르게 비웃음을 흘리다 주먹을 꽂아넣는 식의 구성에서 정서가 가감없이 표출되고, 어쩐지 글 너머의 작가까지 알 수 있을 듯한 느낌입니다. 아마도 십 대 때는 담당일진이었을지도 모르는, 가슴에 사자왕을 품은 남자가 한 명… 어딘가 깡패끼가 있겠죠. (상상의 나래)

이러한 경쾌한 전개는 정보를 굉장히 효율적으로 전달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단 두 문장으로 무대를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설명이 한 문장으로 끝날 만큼 효율적으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글은 이를 위해 정보 압축 방식으로 장르문법을 택하였는데, 이것이 이 글이 우승작이 아닌 이유입니다. 소환과, 용사와, 교황과, 직업과, 도적과, 상황의, 글 전반에 문장의 행간에 사이사이 깔려있는 장르문법이 훌륭하게 돋보이는 글입니다. 저는 장르소설을 참 좋아하고 장르문법 또한 좋아합니다만, 이것이 일반 한국어에서 벗어난 언어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보편성을 위해 장르문법을 사용한 글은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쥬지가 막 설거 같다는 ‘그 글’이나, 담당일진과 용자왕과 가오를 알지 못하면, 해당 문장이 무슨 노잼개그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까닭입니다.



「E급이 너무  강함」, 뉴비망생 作


바로 전에 장르문법 어쩌고 하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영상문법을 활용한 글이라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겠네요. 이러다 문법나치로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달리 표현할 낱말이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독자의 마음에 특정한 심상이 떠오르도록 유도하는 글입니다. 글은 감각기를 통해 직접 전달되는 영화와 달리 뇌에서 한 번 더 뺑뺑이가 돌아야 하니 상당히 어려운 방식이라 생각하는데, 과감합니다. 게다가 이를 더욱 부각하기 위해 ‘누가 말했다·소리쳤다’ 하는 대화 서술도 거의 쓰지 않았고요. 뭔가 숨막히는 긴장이 흐르는 장면이 떠오르며 중요한 떡밥 같아 보이는 것과 함께 정보가 마구마구 쏟아집니다. 그러나 이를 일일이 설명하려 들었다간 긴장이 다 깨지고 말 터, 아랑곳없이 상황만을 서술하는 선택은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긴장이 흐르는 장면 속에 내던져진 독자로 하여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스스로 유추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시스템창으로 미룰 때 장르는 양판소인가 보고 무언가의 복수인 모양인데 아무래도 죽은 형과 주인공과 헌터랭킹 93위 뇌전여왕 신은혜 씨 간에 무슨 일이 단단히 있어도 있었나보군요. 긴장 가득한 판국임에도 도도한 미녀가 주인공 밑에 쓰러져 가랑이를 올려본다는, 독자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세심한 묘사를 보니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선조들의 격언이 깊게 와닿습니다. 재능이죠 이게. 군자의 대구 견자, 병기된 한자가 빛납니다.



「마법소녀」, 단초란 作


이제 가성으로 새된 미소녀 목소리와 함께 모년 모월 모일 □□□□□□ 대개봉! 만 나오면 될 것 같은 느낌의 글입니다. 이런 서술은 독백이라기보다는 방백에 해당하는 서술이겠지요? 친구를 만들면 인간강도가 떨어진다는 말을 변주한 논리는 어설프지만, 어찌보면 마법소녀의 이야기에는 그런 어설픔이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한 마법소녀가 하늘에서 땅을 바라보며 외친다.”라는 문장이 되우 좋습니다. 읽고 그야말로 감탄했는데, 이 문장만 뽑아다 표어로 써도 되겠습니다. 반공 표어 대회라도 열리던 시절이었다면 구령대 계단이 닳도록 밟아봤을 솜씨입니다. 대사와 서술이 서로를 이어주며 매끄럽게 흐르는 점이 아주 훌륭합니다. 운율을 적절히 구사해 관성을 만들기가 쉽지 않죠. 비록 헛소리일 망정 읽기 시작하면 미끄럼틀 내려가듯이 쭉 읽어내리게 되는 글입니다. 미끄럼틀은 내가 미끄러지고 있다는 자각이 들지 않게 짧아야 묘미가 살아나는 법인데, 분량을 다 채우려들지 않고 알맞게 끊어낸 판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분노조절장애 다크나이트」, 구름메기 作


마지막 문장이 결연합니다. 이런 게 글만이 가능한, 문학적 표현 아니겠습니까. 의성어와 의태어를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뛰어납니다. 수많은 웹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쓰레기처럼 쓰인 의성어 의태어를 흔히 볼 수 있죠. 한국어에는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가 있다지만, 사용 양상의 변화에 따라 일부 구어 표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차에 문어에서 쓰기란 참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의성어 의태어 연구의 첨단을 달리는 곳이 바로 판다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특히 야설에서 의성어 의태어란 정말 중요한데… 이야기가 샐 뻔 했네요. 글은 사건을 쏟아내듯 연발해 이로 얻은 자극으로 나아갑니다. -다 -다 -다를 거듭하면서 설명문을 소설로 바꾸기가 만만하지 않은데 단조롭지 않고 자연스럽습니다.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고 동기의 근거로 삼고 발단의 원인을 설명하는 일련의 과정이란 정말 까다로운데도 막히는 부분 한 군데 없이 슥 스크롤을 내릴 수 있도록 써내는 솜씨가 돋보이는 글입니다. 이런 류의 싸구려 글은 첫문장부터 그 질이 드러나, 경쟁작이 공산품처럼 쏟아져나오는 요즘에는 시작 몇 줄을 넘기게 하기가 쉽지 않지만 시사를 활용해 해결하며 읽는 이의 욕망을 건드리는 방식이 비상하군요. 감탄이 나오는 발상입니다.



「돈 싸는 남자」, 구름메기 作


천박한 글은 그 천박함을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빛나는 재치로 가벼운 웃음을 팔며 왜 대설이 아닌지를 역설하는군요. 마치 일간지 끄트머리를 펼치면 한 켠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는, 그러나 탄탄히 결집한 지지층에 힘입어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장님 유머보따리같은 글입니다. 끝부분의 맺음새까지도 그러한데 과연 철수와 영희의 이야기란 이런 감성에 그 원천이 자리잡고 있지않은가 싶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하루는 어떤 졸부가 외국의 부자 부부와 가족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졸부는 얕보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며 식사를 했지요. 그런데 식사 도중 외국인 부부 남편이 부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거기 있는 꿀을 좀 건네주겠소? 꿀처럼 달콤한 이여.” 평소 상류층의 교양을 익히지 못해 열등감을 느끼던 졸부는 이걸 보고 속으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바로 저거다!’ 얼마 후 다른 부부 만찬회에 참석하게 된 졸부는 인사를 나누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식사가 나왔죠. 교양을 과시할 생각에 잔뜩 부푼 졸부는 거드름을 피우며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기 있는 돼지고기를 좀 집어주겠어? 돼지고기야.”

하하하하.



「SSS급 돈 낭비」, 구름메기 作


비록 –메–라지만 스킬 컨셉만큼은 참신했습니다. 이제와서 회상해보면 돈을 훔쳐야 할 도적이 돈을 폭발시켜 공격한다는 컨셉은, 스스로 얽어맨 속박을 떨쳐내고 사바세계의 굴레를 탈하여 피안에 접하는——어떤 불교적인 무엇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강산이 바뀌어도 산 것이 산 것이 아니도록 살아있는 그 질긴 목숨은 실로 불생불멸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과연 불구부정 부증불감이어니…….

속담 중에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용잡이가 가능할 정도의 폭발력을 낼 수 있을 만큼 손이 크다는 것은 주인공이 부처임을, 혹은 부처의 화신임을 암시합니다. 붓다는 죽었으므로 주인공은 붓다의 화신일 터, 이는 비사문천의 아홉 번째 화신이었던 붓다의 화신이라는 의미이니 다시 이는 곧 주인공이 비슈누의 열 번째 아바타라 칼키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칼키는 금세가 끝나고 브라흐마가 잠에 들 때 나타나니 아포칼립스 헌터물라는 배경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칼키에게 힘을 주며 존재를 일깨운 성좌는 삼주신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클 터이며 폭발은 창조를 불러오는 단초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는 마하데바가 유력하다고 할 수 있으나 식료를 포기하는 고행의 대가로 내리는 것을 보면 범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군요. 용은 아마 묵시록의 용이겠지요.

속담 중에는 부처 얼굴도 세 번 쓰다듬으면 노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감상을 쓰다보니 제목이 뜻깊게 다가오네요.



「고막테러 음유시인」, 구름메기 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길 바라지 특별해지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비슷하되 더 잘난 것은 나여야 한다는 것이죠. 게임 판타지의 히든 클래스라는 개념은 이러한 욕망을 상당히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나 싶습니다. 뛰어난 능력을 얻어 남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만족감과 숨겨져 있던 것을 찾았으므로 정당한 대가라는 충족감을 제시하며, 동시에 그러나 남들과 똑같은 클래스이기에 여전히 집단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까지 제공하는 알찬 개념인 히든 클래스는 배틀쨩부터 본 작품까지 폭넓은 시공에 걸쳐 사랑받아온 공식입니다. 글은 주인공이 히든 클래스를 얻기까지의 경위를 이야기하는데,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만 이 글의 뛰어난 점은 경위가 아닌 서사의 짜임새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설화를 떠올려보면 좋을 듯싶습니다. 하잘것없는 물건 하나를 얻게 된 인물이 이를 사용해 점점 더 큰 것을 얻게 되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뜨억일 테니까 고전부 3권의 물물교환 전개를 떠올리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건 기윽이 사건 니은의 발단이 되고 사건 니은이 사건 디읃의 발단이 되는 구성. 글은 사건이 다음 사건의 단초가 되는 방식을 히든 클래스라는, 도입부의 결말을 제시하기 위한 장치로 훌륭하게 사용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사건을 일으키면서 그 사건이 ‘왜’ 발생했고, 그래서 ‘무엇이’ 일어났으며,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서술은 이러한 장치가 기능할 수 있도록 기름을 치는 이 글의 생명과도 같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세계 젤리장인」, 구름메기 作


시야가 어두워지며 파란 글자가 떠오르는 도입부는 하늘 아래에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블리자드죠. 시공의 폭풍 속으로 떨어진 민혁은 거친 전장의 공포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상 후유증에 시달리는 듯이 보입니다. 급기야 민혁은 무신론을 버리고 타락하고 말며, 타락했으니까 당연히 비중도 늘어나 크립에서 히어로로 승격하고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전장에 입성하게 됩니다. 팔기 위한 게임이 아닌 즐기기 위한 게임을 만든다는 빛나는 신념을 내세웠지만 누구보다도 타락을 좋아한 블리자드의 모순이, 당금의 사태를 불러온 원흉임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이 글은 유구한 전통 가운데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는 하리보 젤리를 통해 다시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 캐시카우는 그만 신경쓰고 워크래프트 리포지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매섭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블리자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고결한 ‘양심’이라고요.

글은 작중의 신을 통해서 끊임없이 ‘양심’을 되찾을 것을 강조합니다. 젤리나 처먹는 수동적 존재 에서 젤리를 만드는 능동적 존재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죠. 주인공 민혁이 그러했듯 말입니다. 객체에서 주체로 나아가는 민혁의 변화는 조선에는 조선의 방식이 있다는 인민공화국의 주체주의를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객체란 결국 주체에 종속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게임이란 뭐니뭐니해도 그 운명의 주인이 유저가 아니라 게임사임을 냉철하게 수용하고, 혼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사용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게임사의 자정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갈등 속에서 고민하던 민혁이 마침내 객체의 한계을 깨닫고 주체적 인간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사대주의에 의존해서는 미래가 어두울 뿐 민족자결만이 강성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는 한편, 주체 또한 객체가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잊기 쉬운 진실을 일깨우고, 당만 안 떨어지면 된다는— 에픽세븐 유저같은 개돼지 객체가 가득한 현실을 풍자의 정서로 드러내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상 면으로는 다소 급진적인 글이라 할 수 있겠네요. 민주정권이 집권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로맨스물이 아니라 능배물입니다」, CarniPhanTicFactory 作


function Trig_Strike_FGtaste_Actions takes BoymeetGirl, TS, yuri returns Perfect_win

  call DisplayTextToPlayer(GetLocalPlayer(), 0, 0, "Game set")

endfunction


——

“아니, 그렇지 않아요.”

“네?”

“제가 바로 이남준이니까요.”

꺄 아 아 아 아 아

“노, 놀리지 마세요. 당신은….”

나는.

“여자잖아요.”

여자가 되어버렸으니까.

꺄 아 아 아 아 아

——



「여어, 환상살」, 파모똥 作


그–런건가–.

외팔로 삽질을 하려면 대체 얼마나 힘이 세야 하는지 가늠이 가지 않습니다만 루미아를 갈가리 찢을 정도라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글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예쁘고 명랑한 루미아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결과만을 서술함으로써 도리어 사건의 제반을 궁금하게 만듭니다. 루미아와 서술자 사이에는 무엇이 일어난 건가? 어떻게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 그리고 죽이려고 하는가? 강렬한 궁금증을 끌어낸 글은 이에 그치지 않고 유카리라는 위험 존재, 목적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추가로 언급하며 긴장을 높입니다.

궁금증과 긴장을 두 축으로 삼아 글은 흥미를 유발하고 다음 내용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줍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조또 아닌 내용만 가득하지만 뭔가 그럴듯하게 분위기를 잡고 소설로 의태하기를 가능케 하는 데에는 숙련된 글솜씨가 이를 반석처럼 지탱해주기 때문일 겁니다. 글 전체를 이루는 문장은 담담하지만 선택한 낱말과 표현들은 건조하지 않으며 서술자의 감정이 묻어나옵니다. 폭풍 전의 고요함같은 불안정함이 독자를 불안하게 해 쉽사리 마음을 사로잡게 만듭니다. 이런 문장은 유연하지 않아 감정선과 긴장도를 조절하기 힘든데 짧은 분량을 다분히 노리고 썼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훌륭한 필력입니다.



「다크 나이트」, 파모똥 作


7년 전 우리 사회를 단단히 틀어쥔 기득권에 대해 김무성은 청년이 감수해야 할 문제지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고 말했고, 조국은 잘못된 기득권 구조를 무너뜨릴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서로가 속한 집단을 각각 대변하던 그 둘의 발언을,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진심과 자격론이란 두 낱말이 담겨 있었구나 싶습니다.

다섯 번에 걸쳐 수능을 보며 학벌을 통한 상위 계층으로의 편입을 꿈꿨던 어느 한양대생에게, 그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세상을 탓하고 주변을 탓하고 끝내 자신이 부족했다며 고루를 삼키는 그에게 그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방법으로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을 얻은 이를 보게 된 심경이 어떠했을지를 물어보는 것만큼 잔인한 질문은 또 없을 것입니다. 인지조차 하지 못했고, 알았더라도 시도할 수 없는, 입시에 영향을 끼쳤는지의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누군가는 몰랐던 길을 누군가는 알았고 심지어 걸어갈 능력도 충분했다는 것이 문제일 따름이죠.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그때에 비해 참으로 많은 것들이 좋아져, 이제 개개인이 느끼는 분노를 표현하고 비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어는 커녕 감당하기도 힘든 박탈감이 해학으로 피어나는 이 글은 조선다운 문학성과 맥락에 담긴 재미가 가득합니다. 저는 글 바깥을 이야기하기 싫어하고 겉의 맥락을 다루는 것도 싫어하지만 이 글만큼은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듯합니다. 참여문학의 진수란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열한 즐거움이 넘치는 글입니다.



「전보」, Naufrago 作


어떤 작가들은 너무나도 쉽게 이 글에 다음으로 올 문장이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고지하곤 합니다. 나루토가 치도리를 써서는 안 되고 “더 이상 아내의 미소를 볼 수 없는 남편은, 그것이 무의미한 줄 알면서도, 아내가 사랑하던 꽃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찾아보려 애쓸 수 밖에 없소. 티나한.” 다음에 그는 쓸쓸한 뒷모습을 한 채 그대로 천천히 멀어져갔다. 따위의 문장이 올 수 없는 것처럼 글에는 규칙 같은 것이 있습니다. 첫문장이 놓인 뒤로 문장이 쌓여갈수록 점점 다음에 올 수 있는 문장의 범위가 구축됩니다. 이것은 아마 핍진성이거나 그 비슷한 무언가이리라 생각합니다. 글은 단 사백 자로 이 범위를 명백하게 규정짓고 있죠. 존잘이라는 것은 말이다…….

안 읽어봐도 재미있을 것을 알겠다는 지표가 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이걸 해내지 못한다고 재미없는 글이 되지는 않지만 이게 되는 글들은 서사가 부실할지언정 글이 무너져내리지는 않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동산같은 겁니다. 보장된 재미.

글의 단점 또한 이 이야기의 근처에 있습니다. 이 짧은 전보는 그 내용 속에 무수한 것을 암시하며 기대감을 부풀게 합니다. 이 글은 재미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글이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잘 꾸며진 견본주택과 마음을 빼앗는 부감도 뒤흔드는 CG. 장밋빛 집값이 미래에 놓여있지만 현재의 그곳에는 결사반대 플랜카드가 붙어있을 수 있죠. 본문에는 궁시렁거릴 여지가 없지만 짧은 분량과 제목이 아쉽습니다. 더 보여주었더라면 분명 글 자체로도 재미있을 수 있었을 텐데요.



「이세계 추심 판타지」, Chikori 作


나는 전주(錢主)다. 대포드래곤 다음 화를 향한 염원도 세월 속에 잊혀지는가 싶었지만 오랜만에 떠오르게 하는 글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하게 흐르는 도입부는 숨겨 무엇하랴에서 헛웃음을 나오게 하며, 깜찍함을 방패 삼아 뻔뻔하게 자기소개를 합니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고 하죠. 정말 그렇습니다. 백금발을 늘어뜨린 앳된 미소녀 상인이라면 설명을 줄줄이 좌판에 늘어놓아도 벙글벙글 웃으며 들어줄 수 있지요.

한껏 꺼드럭대면서도 미소녀를 전면에 내세워 앙증맞음으로 이를 보호하는 솜씨가 탁월한 글입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연극조로 높은 감정선을 받쳐주는 서술의 경박함에 힘입어 판에 박힌 공식으로 재미를 팍팍 뿜습니다. 아 라노벨 아 라노벨! 더이상 공모전이 우리네 심금을 울리지 않게 된 뒤로 얼마나 많은 날들이 지났던가?

그러나 힘이 필요해서 불렀다는 대사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한 눈에 봐도 어색하며 지나치게 번역투 감성입니다. ちから보다는 능력이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었겠죠. 또한 아마도 분량 제한 때문이었을 거라 짐작이 가는, “너는 분명 내게 필요한 힘과 지식을 가진 인간이렷다.” 부터  “돈, 좋아하느냐?” 사이의 몇 줄은 글 전체를 말아먹고 있습니다. 맥락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몰랐을 리 없으니, 추측이 확실하리라 싶습니다. “돈, 좋아하느냐?”는 그 다음에 올 수 있었을 대사 중에서도 탄성이 나오는 선택이지만 그 뒤를 잇는 문장은 지금껏 쓰인 글을 소설이 아니라 노블엔진 신작 홍보용 이미지에 실릴 뒤표지 소개글로 바꿔버립니다.

글이 지닌 아쉬움까지도 라노벨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입니다. 故 장르에 묵념.



「파란의 예감」, 매홍 作


제목이 아쉬운 글입니다. 900자짜리 소설을 쓰는 대회가 아니니까요.

꾸밈없는 솔직함으로 사연을 풀어놓는 방식이 매끄러운 전개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1인칭 서술자가 양념 없는 담백함으로 털어놓는 속내와, 이에 담긴 풋풋한 연정이 글이 주는 재미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술자가 대상에게 품은 강렬한 감정은 끝부분의 “이번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에 이르러서 결이 명확히 드러나는데, 이는 다시 말해 준비 다 끝내고 이제 시작! 지금부터 재미있다! 하는 부분에서 땡 하고 끝나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아쉬움은 그 뒤로 이어지는 마왕의 등장으로 화제를 전환하며 보강하고 있고, 이후의 전개를 향한 기대감에는 착실히 불을 지펴냈으나 역시 글 자체가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음 내용을 기대해달라는 점에 총력이 집중되어 있어 흥미가 샘솟지만 그 이상이 없음이 감히 단점이었다 말하겠습니다. 글은 앞으로 있을 한 차례의 대소동을, 정말이지 제목 그대로 파란의 예감이 들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회의 제시어가 예감이었다면 이보다 더 출중한 글은 없었을 성싶습니다.



「망령가희」, 매홍 作


십덕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달작법의 내음새가 났다. 필사적인 감성이 옛날같이 흘렀다. 나는 바나나처럼 서러워졌다.

필사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그것도 너무 쉽게 사용한 것이 대단히 아쉽습니다. 이 글에서 필사란 낱말은 정말 주의해서 사용해야 했을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필사란 표현은 대상을 잃고 난 서술자의 행동을 규정하는 말이고, 이로써 서술자가 서술한 다른 모든 수식문들은 두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걸 늘려 반복한 것이 되어 빛바래고 말았다 생각합니다. 900자로 달아놓고 이런 불평을 하면 너무 양심없는 소리이려나요?

많고 많은 말 중에도 절만큼 감성적인 말이 드물 겁니다. 絶도 좋고 切도 좋습니다. 애절 처절 간절 통절, 절실 절박 절규 절실. 아무튼간 절이 붙으면 절절하기 그지없습니다. 저 멀리 서쪽에 살았다는 윌리엄아무개도 비극이 짱이라 했다잖아요. 안타까이 옥죄오는 슬픔만큼 쾌락을 주는 감정의 배출도 없습니다. 본질은 싸이월드의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와 다르지 않겠지만, 그러니만큼 오히려 가장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공식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얼핏 건조해 보이는 문장에는 정서가 꾹꾹 눌러담겨있습니다. 차가운 불이고, 소리없이 타오르며 격렬히 슬픔을 드러냅니다. 의무를 이행하는 것. 부정을 이용한 강조로 상실감과 집념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연출이 좋습니다. 감정선은 높고 긴장도는 낮은 글이지만 그럼에도 거북하지 않은 이유는 부정적 감정에는 긴장시키는 기능도 같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글은 서술자가 대상에 품은 감정의 농밀함을 드러낼 뿐 결을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빼어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일부만 드러낼 때가 더 안타깝다는 사실은 자명한 이치니까요.



「이세계. 단체이동」, 1111111 作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암담한 이후가 예고됩니다. 제반을 생략한 채 사건만을 보여주니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합니다. 의도적 생략이 좋네요.

문장은 몹시 많은 부속지가 잘려나간 듯이 보입니다. 온전했더라면 어떤 글이었을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정서가 전달되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 이를 되다 말았다고 해야 하나요 이만큼이나 되었다고 해야 하나요. 어려울 따름입니다.

조각이 몇 개 빠져있는 퍼즐인데 다 맞춰놓고 봤더니 완성된 그림도 처음부터 군데군데가 지워져있었다는… 그런 느낌의 글이네요. 참가작 중 메리지 블루와 함께 가장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글입니다. 판단이 되질 않으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질문을 하나 하고 싶은데요. 생텍쥐페리 좋아하십니까?



「여자가 되었다」, al-ashtar 作


저는 결코 역덕이 아니지만 역덕의 가슴을 뛰게 하는 글입니다. 다음 내용이 몹시 읽고 싶네요. 첫문장이 실로 압권입니다. 건조함이 오집니다. 토머스 사울이란 남자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이야기하는 무감정한 서술은 대상에 어떤 공감도 드러내지 않고, 도리어 그런 서술자의 태도에 다급해진 독자가 대상을 걱정하게— 이입하게 만듭니다. 절묘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TS라 흥분한 게 아니고요. 절묘합니다.

사울에게 내려지는 처분을 이야기하는 글은 사울을 바라보지만 사울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글이 가진 몇 없는 장점을 잘 활용했다 생각합니다. 서술자도 사울도 주변도 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움직입니다. 가장 멀리서 바라보는 독자만이 발을 동동 구를 뿐.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오는 전조 끝에 무자비하게 쐐기가 박히며 글이 끝납니다. 사울의 운명은 어떻게?

아무래도 좋을 곁안장을 병기함으로써 글은 역밍아웃을 하고 말지만, 이 정도로 재미있고 재미있을 것 같으면 역덕이 아니라도 따라가는 게 의와 도리입니다. 없는 편이 호흡 상 더 나아보이지만 그 정도야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특정 장르를 선언하는 글이지만 적어도 글 자체로는 장르문법이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 대회 면에서 볼 때 좋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또 뛰어나네요.

드는 의문점은 딱 하나입니다.

저렇게 자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지 않았을까요.

마지막 문장은 사울이 처한 상황이 ‘불행’임을 명시해주면서, 더 큰 불행을 예고해 독자를 떨리게 합니다. 훌륭하게 이후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죠. 그러나 사육제의 연극처럼 비현실적인 광경으로 보였다는 문장 다음에 와야 할 문장이 이것이었어야 할까요? 자신있는 단언은 아니지만 아니라고 봅니다. 그 하지만은 조급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사생아」, 인생하드코어모드 作


‘상대’했다는 건 다의적인 뜻이군요. 따옴표로 강조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는 겁니다. 앞에 깔아둔 복선을 뒤에서 회수하는 정석적인 흐름이 좋습니다. 용사는 악룡을 물리치고 영화를 누린다는 고정관념 속에 복선을 숨긴 점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공주가 눈에 차지 않았나요? 서술만 봐서는 로버트 바라테온이 따로 없습니다. 마룡의 유머감각이 적절한 시점에서 글을 잘 끊어주는데, 정통성을 위협받는 엘든은 현재의 사치를 포기할 마음이 없어보이니 한바탕 큰일이 날 것 같습니다.

좀 부도덕한 소설이긴 한데, 어차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여중생은 아닐 테니 괜찮겠지요. 그래도 사람은 사람을 품는 것이 자연의 순리 아닐까요. 당연히 폴리모프라는 좋은 스킬을, 그렇겠죠?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한 신전이 그 근거로 퇴치의 증거인 뿔을 내세운다는 서술이 좀체 이해가 안 갑니다. 뭔가 설명이 하나 들어갔어야 하지않나 싶네요. 본막에 들이닥칠 폭풍을 예고하는 좋은 서막이었습니다.



「백귀야행(百鬼也倖)」, JinChien 作


의미심장한 제목이지만 제목만으로 뭔가를 알아내지는 못하겠습니다.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던 분위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급변하며 글이 끊깁니다. 장갑에 무슨 사연이 얽혀 있기에 그러는 걸까요? 글은 역시나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음으로써 궁금하게 만들고 다음 내용——그래서 장갑이 대체 어쨌는지를 알려주길 바라게 합니다. 흥미유발의 정석을 충실히 구사한 점이 돋보이네요. 의문의 장갑녀를 강조하기 위해 외향을 길게 서술하는 점도 좋은 방식이다 싶습니다. 아무튼 장갑녀가 단역은 아니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니까요. 물론 이러고 반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20년 정도 전으로 돌아간 그 시절의 만화 도입부 느낌입니다.



「유령의 노래」, 뭇1찌 作


반시연이라는 작가는 말이다.

혹시 친구 이름이 사나칸선생님인가요? 저런 유쾌한 친구를 사귀기는 쉽지 않은데요. 노무현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즐거워진다는 말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아무튼 노무현 좋아하는 무리들이 노무현 이름 석 자도 아니고 그 중 한 글자만 나와도 자지러지듯이 깔깔대는 모습은 언제나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열셋 열넷짜리 사내애들이 엄청난 비밀이라도 된다는 듯이 섹스! 크게 외치고 막 깔깔대는 느낌인데 젊게 산다 싶네요.

첫문장으로 너무나 대범하게 던진 “노무현은 살아있다.”는 대사는 그 대범함과 곧바로 헛소리로 치부하는 서술로 인해 복선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다 읽고나면 훌륭한 솜씨에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데요. 국밥으로 화제를 돌린 후 자연스럽게 이를 이어나가는 서술자의 입담은 결고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뽕과 뽕을 잇는 것이 글먹글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고 어려운 일이듯 재치있는 1인칭 서술자를 조형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으니까요. 쓸데없는 소리를 지루하지 않게 주워섬기며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가 지하실까지 독자를 이끄는 기술은 뛰어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첫문장으로 던졌던 대사가 복선으로 일으켜세워지고, 드럼 비트가 들린다는 명시에 가까운 암시와 함께 끊기는 글은 끊깁니다. 제가 알기로는 해당 장르는 정형시 같은 거라 무조건 국정원 지하실로 귀결되야 하지않나 싶은데, 장르적 허용인 걸까요. 뭐 잘썼으니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장르문법을 훌륭히 사용한 글입니다. 한 편의 글이라기엔 완성도가 부족하고 첫부분이라기엔 완결성이 너무 강하다는 점, 휘발적인 자극에 그친다는 점이 아쉽군요.



「흉탄의 조수」, 단편보이 作


솔직하게 말하겠는데 글보다 댓글이 더 재미있습니다.

정없는 말이 아닐 수 없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900자 제약을 안고 재미를 보여줄 수 있는 글이 아닙니다. 돌려 말하자면 대회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글이 되겠지요.

단 900자를 읽었을 뿐이지만 서사로 승부하는 유형임을 바로 알 수 있는 글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과 이를 덮는 잦은 개행과 쉬운, 시각 연출 너머로 경쾌하게 나아가는 서사의 윤곽과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딱 좋은 정도의’ 재미를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백만 자를 상정하고 백 자로 자기소개를 마치는 웹소설과 달리, 잘 빚어진 서사의 재미를 존중할 줄 아는 이런 글에는 무대가 장치되고 인물이 깔리며 막이 오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이 대회가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묘한 카리스마가 있는 네크로맨서와 정체불명의 주인공이 만나고, 주인공은 소설을 견인해갈 1인칭 서술자로서 자신의 이야기 실력을 뽐내며 한 끗발 날린다는 걸 보여줍니다만, 그러느라 피같은 분량이 사라져가는군요. 제가 연 대회고 정한 규칙이긴 하지만, 솔직히 수다스런 1인칭 서술자가 등장하는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벽이 좀 높읍니다…….



「옐로우 나이트 : 라이즈」, 단편보이 作


그거 참 재수 옴 붙었습니다 오종수 씨. 그런데 그렇다고 자살을 하면 되겠어요. 마음 굳게 먹고 여의도박영진변호사라도 찾아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울화를 달래려고 복수를 하는데 비용이 문제겠습니까. 자식 키워봐아 돌아오는 거 하나 없는 세상이잖습니까. 옛말에도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글은 경쾌한 서술로 오종수 씨의 억울한 사연을 들려주며 독자로 하여금 같이 억울해하고 공감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지만 생판 남의 억울함이라면 그의 사연에 공감해 슬픔을 나누어 느끼는 것이 귀찮음이나 고통이 아니라 재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 밤에는 티브이 연속극을 봐야 해요.

맛깔나는 말솜씨로 오종수 씨가 처한 비극적 희극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그러나 아쉬움 또한 없지는 않습니다. 무릇 드라마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만큼이나 선악의 구도가 뚜렷한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글에서는 오종수 씨가 최선을 다해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아니라 법정이 무조건 상대 편을 들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쌍욕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독자로서 오종수 씨가 선량하고 무고한 시민인지 금수같은 성욕의 불령선인인지 헷갈릴 수밖에요. 오종수 씨의 변론을 귓등으로 흘려넘기는 판사라도 몇 줄 서술했다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 편은 착하고 상대 편은 나빠야 하니까요.



「괴물의 자식 - 프롤로그:에너미 웨이브」, -Umvlang 作


사실한글은네모꼴이라、굳이띄어쓰기를하지않아도、모점만잘찍으면가독성이상당히괜찮습니다。띄어쓰기와비교해도차이없는수준이죠。원형을알아볼수있어야한다며분철표기를하면서、굳이거기에더해띄어쓰기까지하는건、비효율적인데다불필요한서구문화수용이아닐까싶네요。아니면 띄어쓰기를 하면서 이어적기와 바름대로 쓰기를 적쩌리 같은 식으로 적당히 합쳐 쓰든가…….

따라서 공백으로 소모되는 분량이 아깝다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가독성만 잘 살리십시오. 저도 이 글 쓰면서 띄어쓰기를 얼마나 틀렸을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합니다.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첫문장이 훌륭합니다. 긴 문장을 과감하게 개행해서 운율을 맞춘 점이 좋습니다. 댓글 내용처럼 분량을 지키기 위해 쳐낸 게 너무 많은 탓인지 다소 듬성듬성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종말을 겪으며 한층 각박해진 세상일지라도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 산다는, 사람다운 삶을 관철하는 보이 밋 보이라는 이야기는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백합은 언제나 옳지요.



「Our Twinkle Hearts」, JinChien 作


 갱년기 마법소녀물이라……. 레미가 올해로 서른이더군요. 레미레미 도레미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20주년 기념판에서는 스물셋으로 나온다지만, 그 참혹한 어른의 사정 때문에 더 씁쓸해지는 느낌인데다, 어릴 땐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저보다도 나이가 많다니. 참. 

62세까지 정년근무가 가능한 직장이라니 정말 부러울 따름입니다만 선대들은 아직도 직장을 다닌다는 서술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대체 뭔데요. 후대 오타인가요.

오십 년 전의 조선… 생각해보면 참으로 마법소녀가 활동하기 적절한 무대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보 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 국민학교를 걸어다니던 계집애들과, 공장에서 하얀 불빛 아래 미싱을 돌리고 있을 선배 마법소녀들……. 울려퍼지는 산업역군 구호와 함께 더 나은 조국의 미래를 위해라는 표어와 겹쳐지는 마법소녀 변신 뱅크씬……. 고작 몇 년 후에 일어날 사채동결조치로 집안이 몰락한 몇몇 마법소녀는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어느 먼 동네로 이사를 갈 테고, 어느 친구네 하나는 곗돈 쥐고 도주했다며 동네사람들이 눈이 시뻘게져서 욕을 쏟아내는 풍경이. 엔딩곡은 새마을운동이 좋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둘을 병행해서 보여준다면 의외로 괜찮을 듯도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갱년기 마법소녀물에 조선영화 느낌은 너무했지 않습니까? 육혈포 강도단도 아니고.



「악당 영애」, YangHwa 作


미적지근하게 흐르던 글은 끝부분의 두 문장에서 갑자기 살아나더니 좀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글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첫부분에 있습니다. 첫부분에서 나오는 주문장이 셋이나 되는데다 논리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을 소설 속에 처박으려면 적어도 그 사람이 잘 아는 거로 골라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사건 사고 자연재해는 예의를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까 이건 우연이 아니다. ”

핵심은 이 상황이 우연처럼 보일지라도 우연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리는 마지막 문장에 있습니다. 글은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점층법으로 논지를 풀어내는데 명확하지 못해 흥미롭지가 않습니다. 이는 주인공이 잘 아는 소설 속으로 떨어졌다는 정보를 나중에 밝히기 위해 숨기는 데에서 비롯된 문제인데, 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정보 전달을 위해서는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을 난데없이 소설에 처박는다면 당사자가 잘 아는 것으로 골라주는 게 인의.

재해는 인의를 알지 못한다.

이것은 사람이 일으킨 필연이다.’

이런 식으로 양괄식 비스무리한 구조를 취하거나,

‘날 이 속으로 떨어뜨린 사람은 필시 예의바른 인물일 것이다.

난데없이 사람을 소설 속으로 처박는다면 적어도 잘 아는 소설을 골라주는 게 예의일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자연재해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예의바른 정신병자가 벌인 또라이짓이다.’

하는 식으로 깔끔하게 포기하고 논리를 간결하게 정리하는 편이 낫다 생각합니다. 지금은 A → 예의는 필연적(고의적)이다. B → 사건·사고·자연재해는 우연적(비고의적)이다.  C → 사람은 사건·사고·자연재해와 달리 필연적(고의적)이다. 이렇게 세 가지 전제가 깔려있어서 잘 아는 소설이라는 것까지 숨기면 전달하기가 복잡하네요.



「멕켈런과 중국인에 대하여」, 대롱이 作


글이 묘하게 매력적입니다. 가속도가 있어 읽을수록 점점 더 재미있습니다. 깔끔하지는 않고 예리하지도 둔중하지도 않지만 묘한 매력이 있네요. 사랑타령에서 나오는 힘일까요? 자기파괴적인 자기애를 보며 느끼는 연민일까요? 마지막 문장이나 발기부전이냐고 물어보는 질문과 친절한 구석이 있다는 서술 등에는 푹 찌르고 들어오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상호의존적인 결핍환자들의 광증섞인 사랑타령과 애정갈구는 연애와 찰떡궁합이다 싶네요. 이 정도라면 분량 같은 시시한 이야기는 안 꺼내도 되겠습니다.



「죽어야 사는 남자」, 김정현 作


모든 참가작 중에서 개행 하나는 가장 발군인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월등하네요 정말. 이 정도면 시를 쓰러 가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1연 2연 3연 보십시오… 레전드다 레전드.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말이 된다는 듯이 말하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고블린의 몽둥이에 온몸이 터졌다가 어벤저로 각성하고 베르그 아베스타를 사용해 고블린들을 몰살한 갑수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흐를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습니다. 바로 다음 문장에 고블린들의 신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서사야말로 어쩌면 가장 뛰어난 서사가 아닐까 잠깐이나마 생각해보게 되는 글입니다. 하지만 용감무쌍하기 이를데없는 소설 안쪽에 비해 분량을 지키려고 조사까지 뜯어내는 바깥쪽은 이에 대비되어 다소 졸렬하지 않은가 싶네요.



「징병당한 악마사냥꾼」, 초리니 作


이게 3막 구조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요? 무미건조하게 흐르는 서사는 간결한 문장 덕에 머리에 쏙쏙 들어와 아주 쉽게 읽힙니다. 고저라곤 찾을 수 없는 평탄함인데도 이렇게 술술 읽히니 여기에 사건만 연달아 일어나면 이 맛에 웹소설을 보는구나 하고 알 것 같습니다. 숙제가 이렇게 쉬웠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마왕의 모가지를 따오겠다는 이병 김성식 씨를 보니 그는 적당히 망한 세상이라고 해서 적당히 살지는 않을 요량인가 봅니다. 악마사냥꾼이란 이름 그대로 악마를 사냥하는 자를 일컫는 것. 장하다 김성식 이세상 악마의 씨를 모조리 말려버리렴…….



「사기꾼」, errr 作


첫문단 한번 잘 뽑히지 않았습니까. 의미와 의미가 막힘없이 이어지고 그 겉을 감싼 호흡 또한 자연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흐르듯이 화제가 전환되고 명확한 논지로 정보가 전달되며 그와 함께 정서까지 담겼으니, 알알이 들어찼음에도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는 이런 문장은 단지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활자중독증을 유발하는 위험한 문장인데 이런 위험한 문장은 어느 관청에서 규제하는지 모르겠군요. 평소에 고등어초밥을 먹으면 이런 문장을 쓰게 되나요? 반점을 찍어야 할 때와 접속조사가 와야 할 때를 구분하며 문장이 길어질 수 있는 한계와 단문이 위치해야 할 곳을 알고 운율을 깰 순간과 부사가 자리할 문장의 지점을 선택하니 저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금형에 찍어내는 것이더라도 말입니다.

두 번째 문단이 이만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죠. 왜 잘 나가다가 갑자기 울컥해서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요 모든 사기의 아버지를 운운하는 건지. 지금껏 잘 하던 서술자를 휙 밀쳐 단에서 밀어내더니 대신 작가가 올라가서 일장연설을 하는데… 어안이 벙벙합니다. 소신을 잃고 회계쟁이들에게 경영을 맡긴 블리자드를 보는 심정이 이러할까요? 이게 대체 무어냐?

그리고 오탈자가 산통 깨는 점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계도」, 현룡 作


이렇게 보여줄 거라면 왜 그리도 애닳게 굴었냐는 사심은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의 감정이 어떤지를 알릴 뿐 드러내지는 않는 1인칭 서술자는 호노부 묻었단 소리가 나올 만하다 싶습니다. 절제된 서술 속에서 조금씩 무대가 모습을 드러내며 이야기가 시작해갑니다. 자연스럽게 그것이 구축되어가는 것을 보면 평타 이상의 재미는 되겠다는 보장과도 다름없습니다. 이것 말고는 달리 말할 거리가 없습니다. 단지 마지막 문장이 아주 살짝 아쉬울 뿐. 두세 번 읽었을 때는 위화감의 원인이 굳이 이름을 서술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좀 더 읽어보니 깔끔하지 못한 복문처리가 원인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없다고 못할 것도 없는 문장이지만 위화감이 부르는 약간의 걸림이 있다고 짚지 않는다면 불성실하다 싶어 적습니다. 그 외에는 저로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좋은 일관성입니다. 확인하지 않아도 동의일 부분을 칭찬을 하겠다고 늘어놓을 이유는 없겠죠.



「살기 위해 마왕이 되었다.」, KUNDI 作


아마도 용사는 촌 무지렁이 아니랄까봐 확인 살해의 중요성을 듣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랬더라면 이런 잔불씨가 남을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잘 따져보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아무튼 갑자기 사건이 일어나 긴박해지고 이에 맞게 주변 상황까지 다급하게 굴러갑니다. 정말 짧은 문장으로 전달할 정보를 다 전달하는 솜씨가 대단한 글입니다. 적절히 박아넣은 의성어가 간단하게 상황을 그려내는 점도 좋았고, 높은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서술이 길어져 속도를 잃지 않는 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중간에 시간 좀 남을 때 서술자 과거팔이도 끼워넣어 동기도 설명하고 공감대도 형성하며 적절히 장면과 장면을 이어주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글이 다 좋네요. 아쉬운 점 한 군데 없이 훌륭한 글입니다. 마왕 죽는 장면조차 깔끔하게 처리하고 다음 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역할의 사건을 띄어며 마무리하기까지. 특급 웹소설 프롤로그입니다. 이걸 읽고 다음 화 보기를 안 누르는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안 누른다면 방금 전에 비슷한 글을 6번째로 읽고 온 참이거나 UI 구성 문제일 겁니다.



「고르디우스」, SH 作


반바지가 금칙어면 이 글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하죠? 아이작 아시모프? 몇 줄 읽자마자 바로 생각했는데 댓글에 기다렸다는 듯이 예측포격 날아오는 거 보고 이마를 탁 쳤습니다.

싸이언스-판타지란 경이의 장르를 말한다고 어디서 주워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저는 그걸 창의력 대장들만 쓸 수 있다는 소리로 이해했습니다. 발상의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장르… 두려울뿐입니다. 클리셰에 대한 클리셰는 클리셰에 지나지 않지만 클리셰에 대한 클리셰에 대한 클리셰라면 참신한 것이 되는 게 아닐까요. 마치 러시아 인형 같은 거죠.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위에 워프하는 놈 워프하는 놈은 정말 후지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아니라 고양이가 한 생각이었습니다…….

감옥 밖의 간수가 있는 곳도 사실 감옥이었다는 깔끔한 구성의 엽편입니다. 경이롭다 싶을 정도로 신선한 발상이 담겨있지는 않지만 글 곳곳에 위치한 재치가 충분한 재미를 이끌어내는 점이 좋습니다. 모든 문장을 현재형으로 사용한 것은 우리가 사는 이 현실, 현재가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뜻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형 문장을 선택함으로써 얻는 속도와 현재형이 주는 특유의 불안한 감정선이 글에 이롭게 기능한다는 것입니다. 노인은 멍하니 팔을 내밀었다와 내민다 정도까지는 큰 차이가 없지만, 철썩 추락한다와 차오르기 시작한다를 추락했다와 시작했다와 비교하면 날카로운 판단이었다 싶습니다. 조건은 미달이지만 좋은 싸이언스판타지였습니다.



「점유 이탈물 횡령죄」, 딸갤러 作


이 글 때문에, 첫문단 때문에 고민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글 이야기를 하죠.

세상 천지에 어느 여고생이 이런 79년도 운동권도 쓰지 않을 예스런 말투를 사용하는지 크나큰 의문이 들 수 있겠습니다만, 세상 천지에 육봉이 자라나는 현상을 겪는 여고생도 없을 터이니 육봉이 자라난 여고생이 있는 세상이라면 그런 말투의 여고생도 있을 수 있겠죠.

글은 시작부터 이렇듯 모순적인 문체와 서술자를 설정해 황당함을 다루는 이야기판을 깝니다. 1인칭인데 1인칭이 아니며 여고생인데 여고생이 아닌 모순투성이 글은 엉망진창인 상황을 부각해 발생한 곤경의 황당무계함을 강조합니다. 서술자의 정서와 절묘하게 괴리되어있는 서술의 정서는 그와 대비되게 냉철하고, 침착한 어조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짚어나갑니다. 준비가 탁월하기 그지없는 글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장치는 각자가 서술자이자 대상이 처한 당혹스런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스러움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낱말의 적절함과 그 낱말들을 활용해 빚는 재치가 글의 두 번째 장점입니다. 재치있는 문장이 꼭 참신하고 새로울 필요는 없겠죠. 어느 고전에서 봤다 싶은 문장구조면 뭐 어떻겠습니까. 재미있으면 됐지. 울상짓지 않을 수 없었다부터 못 참고 울고야 말았다까지. 공식이다 싶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그렇습니다, 칠칠맞다는 표현의 의미와 의도한 의미는 정반대라는 점 정도일까요. 고민만큼이나 재미도 많이 안겨준 글이었습니다.



「마법소녀 안합니다.」 ㅗㅗ. 作


여기서 왜 끝부분이 이렇게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지 의문일 따름입니다. 잘 나가다가 왜…? 말이 안 되거나 맥락에 어긋나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이렇게 흐르면 어디서 재미가 나올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풍부한 감성에 젖어 잘 흐르다가 뭐지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됐는데 살릴 수 있을지가 궁금해서 흥미가 생기게 됩니다. 의도적인 ‘그’의 사용이 TS를 뜻한다면 더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글쎄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짐작이 가지 않네요. 예상 내에서 흘러가다가 갑자기 저 멀리 예측불허한 곳으로 가버리니 어떻게 될지가 오히려 궁금한 신기한 글입니다.



「오드가 회귀를 숨김」, 해경 作


도기는 도기상에게, 자기는 자기상에게.

글쓰기의 본질이 관심수급이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관심이 반드시 내 바깥에서 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밤이 부재함에도 꿈을 꾸는가」, 루시아절멸요양원 作


사이버펑크 하드보일드 추리 활극까지 나왔으니 이제 다음 나올 내용은 로리TS뿐이군요.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드디어 도래하는 모양입니다. 여느 때처럼 사립탐정이 살아가는 세계는 부패했고 타락했으며 말세가 따로 없는 혼돈의 시대입니다. 그런 혼란 가득한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 여느 때처럼 탐정에게 여자애 하나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옵니다. 여느 때처럼 탐정은 말도 안 되는 의뢰라며 일축하려 하지만, 여느 때처럼 가벼운 주머니의 아우성과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에 의뢰를 승낙하고 맙니다.

이제 이야기가 시작될 차례입니다.

위의 내용만 읽는다면 클리셰로 떡칠한 그저그런 하드보일드 탐정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클리셰를 답습했다는 것은 정석을 유지하고 갖출 것은 다 갖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판에 박혔다는 것은 완비라는 말과 동의로 쓸 수도 있는 말이니까요. 글은 말끔하게 하드보일드 표준을 준수합니다. 기본을 갖춘다는 것. 그렇지 않은 글이 그런 글보다 많은 풍요로운 세상이 아니덥니까. 분량 제한으로 이 뒤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기본에 충실한 글은 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법이죠. 호평할 만한 요건이 충분한 글입니다.



「메리지 블루」, ACO 作


가장 많이 읽은 글입니다. 많은 작품들이 장르문법을 사용하였는데, 그 중 가장 복잡하게 사용한 글이라면 당연 메리지 블루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대체 누가 이 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열 번도 넘게 읽었지만 덧붙이자면 그녀도 독신이라는 문장이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잠언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소설 대회인데요. 이 감정의 깊이는 대체?

35살이라는 미쳐버린 선정이 부르는 정서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열다섯살이 서른다섯살이 되도록 지켜온 그 일관된 집념을? 그러나 집념이라고 부르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마땅한 것일 뿐인데?

공식이라는 건. 일 더하기 일은 이로 정해져 있다는 건.

그것은 여동생은 오빠를 깨운다는 것.

그것은 소꿉친구가 소꿉친구와 약속한다는 것.

그것은 정히로인과 진히로인이 다른 말이라는 것.

포니테일과 트윈테일로 나뉘는 계급은 결코 역전하지 않는다는 것.

전학생과 소꿉친구의 숭패는 정해져있다는 것.

90년이 20년이 되더라도.

헌데 어째서 소꿉친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선생님?

그 앞에 시간의 경과라는 것은. 아무리 읽어도 덧붙이자면 그녀도 독신이라는 문장은 시간 앞에서 둘 중 하나가 미쳤다는 뜻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데, 너무 무서워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있어 본 적도 없는 분명 그것이다.” 는 분량 제한 때문인지 단연코 잘못 쓰였다고 생각하지만, 이 글에 대회 규칙이 무슨 의미가 있고 재미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AcroEditOr라는 이름의 현상이란..



「죽을 수 없는 주인공」, Kundi 作


죽을 수 없다면 죽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인 걸까요. 옥탑방이라는 게 옥탑방 산다고 쉬이 말할 수 있을만큼 가볍지 않겠지만, 가건물 세 들어 살면서 구청 직원 뜨면 날아야 하는 삶보다는 가진 게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밑은 끝이 없는 듯합니다. 무저갱은 멀리 있지 않은 것.

오늘도 죽기 전에 일기를 쓴다는 말로 간명하게 자기소개를 마칩니다. 훌륭한 함축입니다. 독자의 인내심은 성냥개비보다도 짧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는 글은 끊임없는 자극을 줍니다. 아낌없이 사용한 느낌표가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처럼 감정선을 끌어올려 지루함을 막습니다. 느낌표를 많이 쓰면 망하기 십상이라지만 과감한 선택이 글을 살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명한 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푸른 초승달의 바르바로사」, Loodiny 作


이렇게 줄여서 끊기엔 몹시 아까운 글입니다. 선명한 장르 색채를 드러내면서도 장르문법에 의지하지 않는 성실함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졸속으로 맺어버리는군요. 백 년의 원정 동안 얼어붙어 있던 신념이 마침내 녹았지만 피어날 자리가 사라져 있는 허탈함이.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도약은 닿으려했던 곳에 닿기 전에 글을 본디 있던 곳으로 끌어내리고 맙니다. 안타깝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0자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던 걸까요. 재미있는 글이라면 꼭 마지막 문장으로 강렬함을 주어 인상을 남기지 않아도 충분히 강렬할 터이지만 아무래도 작가의 관점에서는 불안을 떨치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내글구려병은 불치의 병……. 900자에 가로막힐 때까지 묵묵히 써내려갔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쉽습니다. 부디 자신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우리는 천재가 아니니까요.

알 나크바 같이 별도의 설명을 곁들여야 하는 표현은 참 까다롭죠. 무협은 그런 점에서 SF보다 우월한 듯싶습니다. 한자라는 특수성을 맘껏 활용하곤 하잖아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과감히 지나가고 나중에 설명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주석이나 괄호를 긋기에는 비문학같고, 루비나 병기는 불필요한 강조가 되니 어려운 고민이죠…….



「기막히게 죽는 방법 찾고 있습니다」, 스드 作


잘쓴 글은 읽기만 해도 즐거운데 우습기까지 하다면 킥킥대지 않을 도리가 없겠죠. 헛웃음이 피식하고 새어나오는 마무리입니다. 계산된 결과인지 그냥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글 참 잘쓰시네요. 절륜한 호흡 조절에 감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시야가 어둡게 보인다의 온점이 어울리는 죽음이겠지의 뒤로 옮겨져야 하지 않나 의문이 듭니다. 개오지는 문장에 비해 끝부분에서 급발진하더니 이세계로 떠나버리는 근본없는 서사가 다소 아쉽지만 이렇게 글을 잘쓰는데 다른 것도 잘하면 반칙이니까 뭐 좋다 싶습니다.



「버그성 NPC」, 윾동 作


6월 24일은

보이밋걸 세카이계 웹소설이라니 너무나 가슴이 메어 자판을 누를 수가 없습니다. 보이밋걸에 무협에 아포칼립스에 디스토피아에 헌터물에 학원물에 세카이계까지 비벼넣은 다음 마션 패러디로 봉합한 이 놀라운 글은 경이롭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도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감추어오며 살던 소년은 어느 날 한 소녀를 만나는데…….

(장탄식)



「죄를 달고 태어나는 자들」,  EIR 作


우리가 서로 솔직했다면 이런 잔혹한 사태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겁니다. 솔직해지자고요. 정말로 시선강간이 죄이겠습니까? 아니죠. 죄는 시선강간이 아니라 얼굴에, 키에 있습니다.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닌 뿔테난쟁이인 게 잘못인 겁니다. 이 정도는 당연한 요구 아니겠습니까. 기본은 되어야 그 다음에 머리색이나 근육크기나 턱선 같은 걸 따지는 거죠. 로리지온과 누님연방이 슬렌더와 모락으로 바뀌어 이어지는 걸 보면 매력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간수의 권총과 구강성교를 하는 비틀린 성욕이 잘 녹아난 글로, 남성의 사정을 권총 발사에 대입한 서술이 글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해도 좋을 성싶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직유를 사용하며 남성을 원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참신한 발상으로 희극적인 상황을 잘 연출해냈지만 참신하고 자극적이기만 할 뿐, 정서에서 나오는 재미도 서사에서 나오는 재미도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써놓고 보니 정말 라노벨 공모전 작품평 클리셰같은 문장이네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성별대립이란 소재를 사용해 폭력성을 발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은 감상이 짙게 드는 글입니다.



「소녀무곡」, klo 作


박수를.



「벽화 사냥」, 파랑색 作


역시 상당히 고민했던 글입니다. 혹시 쓰는 글이 있으시다면 좀 알려주신다면 정말 너무나 감사하겠습니다.

글이 두 부분으로 쪼개져 괴리가 심하다는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끝부분이 너무나 너무나 탁절하지만 첫부분이 이와 맞물리기에는 심히 부족합니다. 다만 냉정하게 봤을 때 글 전체로서는 첫부분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어울리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끝부분의 긴장을 낮추어 첫부분에서 매끄럽게 이어지게 했거나 그 반대였다면 더 좋은 글이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고 굉장히 다음 내용이 설레는 글이지만 긴장의 상승도가 매우 가파른 점이 아쉽게 다가옵니다.

끝부분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벽화를 설명해주는 내용은 그야말로, 달리 표현할 길 없이, 백미입니다. 마음을 빼앗는 설렘이 있습니다. 고사한 줄만 알았던 제 동심이 갑자기 구석에서 튀어나오더니 펄떡펄떡펄떡대지 뭡니까. 그 아이가 그토록 오랜 세월 살아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미쳐 날뛰는 동심에 압사할 뻔한 이성이 겨우 기어나와 이건 네 취향일 뿐이라고 제 머리통을 흔들어 겨우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만 끝부분의 몇 줄만으로도 대회 닫는 글 쓴답시고 되도 않는 능력으로 낑낑댄 피로가 모두 보상받은 듯한 심정입니다. 아, 어른이란.



「행복한 나의 집, 빛고을」, 샤이닝원 作


생체의 시대가 끝나고 사이보그가 대세가 되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무슨 내용인가요?



「빌어먹을 정신병자를 찾아서」, 이수현 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좀 많이 탁월한 발상이군요. 매력이 넘치는데 서사가 밋밋한 점이 걸립니다. 글은 작중 세계가 어느 정신병자의 머릿속에 펼쳐진 헌터물 세계라는 것을 서술자가 깨닫는 서술로 시작하는데, 이렇게 운을 뗀 것과 달리 서술의 흐름은 헌터물 세계를 설명하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서술자가 어떻게 헌터물 세계인 걸 알아챘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누가 죽어도 다시 살아나더라 하는 식으로 변죽을 울리는 데에 그칩니다. 배경 설정도 설명하고 알아챈 이유도 설명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배경 설정은 차차 풀어가되 어떻게 알아챘는가부터 확실히 설명하는 쪽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바나나의 대사가 눈이 번쩍 뜨여서 처음으로 돌아가 재독하게 만들만큼 탁월합니다. 대사가 무척 좋은데 대사의 날카로움이 충분히 발휘되기에는 이전까지 쌓아온 것들이 허술하여 몹시 아쉽습니다.

마지막에 급격하게 이상한 나라 느낌을 내며 주가가 급등하는데 이야기의 배경이 무척 흥미로운 만큼 이를 살려내기만 한다면 굉장히 재미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Writer

까치우

comment (3)

까치우
까치우 작성자 19.09.02. 23:45

진하게가 안 먹히네요

샤이닝원
샤이닝원 19.09.03. 00:32
왜... 감평... 없나요...
딸갤러 19.09.03. 16:02
아리가또...아리가또...!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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