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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대] 동정아다개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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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6 Oct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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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초리니
협업 참여 동의



 순백의 두루마기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신선같은 풍모의 노인이,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흰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문과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말고 자기소개를 해보시게."




 내가 무림인이란 족속들을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이었다. 그들은 도심을 뛰어다니며 서로의 피를 탐했다. 평화롭던 그곳은 한순간에 전장이 되었다. 시민들은 목숨을 부지하고자 숨거나 도망쳐야만 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대피호를 향하던 중,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고층빌딩 사이로 날아다니며 적색과 자색의 영롱한 색깔들을 뿌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몸짓은 싸움이라기보단 하나의 춤과 같았다.




 "적색과 자색... 자네 그럼 혹시 인천에서 벌어진 그 사태를 직접 보았나?"


 "맞습니다."


 "허어. 검성과 천마의 싸움이라... 그런 걸 직접 지켜보았다면 무림을 동경할 만도 하군."




 나는 그것에 경도되었다. 나는 동네 무관에 들어들어가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다. 위험하게 칼부림이나 하는 놈들이 뭐가 좋냐고 투덜대긴 했지만, 결국 엄마는 적금을 깨면서까지 나를 입관시켜주었다.


  세상살이의 즐거움을 반쯤 포기한 채로 8년, 나는 마침내 내 목표를 찾았다.


 한무종(韓武宗)에서 젊은 후기지수들을 위해 명덕(明德)학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의 학장은 내가 10살짜리 꼬꼬마 시절부터 동경해마지않는, 검성 구본기였다.




 "그래. 그게 벌써 3년 전이지. 허면, 바로 들어오지 않고?"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떨어졌습니다. 그때는 미숙했던지라."


 뜨거운 합격장을 두 번이나 받았지.


 "그렇지만 제 목표는 언제나 여전히 꾸준히 명덕학당이었습니다. 언젠가 구본기 대협에게 사사받고 싶다는 그 욕망이 저를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아무 말 않던 다른 면접관이 물었다.


 "그랬군... 그런데, 그런데 말일세. 자네의 주무기는 도(刀)가 아니었나? 구본기 대협의 무기는 검이고, 오히려 당시 천마의 무기가 도였을텐데."


 그는 장난스런 미소를 띄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천마에게 직접 사사받아야 맞는 것이 아닌가?"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검이나 도나, 어차피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면접관들이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추억을 논하며 훈훈하던 공기가 일시에 얼어붙었다.


 좆된건가 이거.


 면접관 한 명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래... 거기서 거기라... 일단 알겠네. 시험 보느라 고생 많았고, 이만 들어가봐도 좋네."


 좆됐네.


 나는 인사도 하는둥마는둥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벽 너머로 면접관들의 대화소리가 나지막히 들렸다.


 "쯧쯧. 요즘 것들은 왜 이리 생각이 없는지...."


 "하하하, 만류귀종이라.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바라보자면 끝도 없지. 나는 반댈세. 이곳이 왜 무관이 아닌 학당인 줄 아나? 생각 있는 놈들을 양성하기 위함이야! 예의도 없고 개념도 없고...."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비틀대는 발걸음으로 시험장을 나섰다.


 씨발....


 삼수의 고통이 말 한 마디에 물거품이 되다니....


 그렇지만 검이나 도나, 같은 칼인 건 맞는데 뭐가 문제람.



 무관으로 돌아온 김성식은 자신의 사부에게 면접장에서의 이야기를 전했다.


 "뭐, 그렇게 된 겁니다." 


 사부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호탕하게 웃으면서 성식의 어깨를 두들겼다.


 "크하하핫, 김성식 이 꼴통자식. 내 그럴 줄 알았다."


 성식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꼴통이라뇨. 저 공부 잘 합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란걸 알텐데."


 "그치만, 사부님. 제가 어렸을 적에 사부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예. 비슷비슷하게 생긴 무기들의 명칭들이 다 달라서 어려워하는 제게, 어차피 무인에게 있어서 검이든, 도든, 창이든, 과든, 극이든. 그것을 구분하는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그리 말하셨습니다."


 사부가 까슬까슬하게 난 턱수염을 매만졌다.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래. 내가 그랬다고 치자. 네 문제는 항상 남들이 오해하도록 말하는 버릇이야. 주어 목적어 다 떼어놓고 말하면 누가 그 속내를 알아듣나?"


 "한국어는 원래 주어를 어느 정도 생략해도 되는 언어입니다."


 "휴. 아무튼, 고생했다. 이번엔 면접까지 갔으니 네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는 되겠지. 사회성만 잘 키워서 내년에 다시 도전해보자꾸나."


 "내년은 없습니다."


 성식은 단호하게 말했다. 사부의 눈이 커졌다.


 "잉?"


 "명덕학당은 포기했습니다. 앞뒤 꽉꽉 막혀있는 꼰대마인드 교수진 사이에서 뭘 배우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너...."


 사부가 킥킥대며 웃었다.


 "삐졌구나?"


 "아니거든요!"


 "삐졌네, 이거. 얌마. 그게 네 꿈이었잖아. 구본기한테 한 수 배워보는거. 명덕학당은 가장 쉬운 길이었고. 근데 그걸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닙니다. 세 번이나 도전했고, 결국 안 된 겁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간의 노력이 아깝지도 않아?"


 "제 노력의 보상은 학당에 입학하는 것으로 받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그럴싸하구나."


 "아무튼, 저는 계획이 다 있습니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의 대사마냥,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다. 성식은 10년 넘게 매달려온 목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미련. 그래. 미련이었다.


 그 계획은 오히려 그를 속박해왔다. 많은 것을 포기했고, 세상의 즐거움을 애써 모른체하고 살았다.


 성식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애초부터 무재가 부족했다. 동경만으로 먹고 살기엔 무림이란 곳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배운 게 칼질 뿐이라 다른 곳으로 전향할 수 없다. 라는 핑계도 통하지 않았다. 그만둬도 먹고 살 길이 있어야 한다는 엄마의 성화에 이것저것 많이 배운지라.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취미로 배운 노래도 수준급이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요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를 하루하루 옥죄던 무공수련을 며칠 빠졌다. 늦잠도 잤다. 그렇게 살아도 세상에 큰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그는 세상의 한가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어쩌면 명덕학당 입학의 포기를 계기로, 되도 않던 무림에 대한 열망마저 식어갔는지 모른다.




 "그럼 아예 접은거야?"


 꼼장어가 석쇠 위에서 몸을 배배 꼰다. 국물이 숯에 떨어지자 치이익, 하는 소리가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 성식은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다 답했다.


 "아마도."


 한때 성식과 함께 무관을 다녔던 신유진이 꼼장어들을 이리저리 뒤집다 말고 집게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성식을 잠시 바라보다 소주잔을 들어올렸다.


 "그럼 마셔. 짠!"


 성식은 말없이 소주잔을 부딪쳤다. 인공감미료의 달다못해 씁쓸한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탁기가 쌓인다 하여 그동안 마셔본 적도 없던 술이었다.


 성식은 얼굴을 찌푸리며 입가를 훔쳤다.


 "써."


 "얘 반응 좀 봐. 술 진짜 처음이야?"


 "응."


 신유진이 흘러내리는 머리를 뒤로 질끈 묶으며 짓궃게 웃었다.


 "첫경험은 이 누나가 받아간다."


 "천박해...."


 "아무튼. 나한테 상담할 정도라니, 네가 아는 '일반 사회인'이 얼마나 없는지는 잘 알겠다."


 성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무림인들이 아닌 사람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그나마 무림과 거리가 먼 사람이 필요했어."


 "무림이랑도 거리가 멀지만, 일상이랑도 거리가 멀어. 진짜 뒤지게 힘들다니까.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


 유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소주를 따르려 했다. 성식은 그녀가 들고 있는 소주병을 가로채 따라주었다.


 "하늘색으로 염색한 것도 직업 때문이야?"


 "스카이블루. 이건 그냥 해보고 싶어서. 짠!"


 그렇게 몇 번의 건배가 더 오고 갔다. 초록색 병들이 탁자위에 쌓여갔다. 성식은 턱을 괸 채 나른하게 말했다.


 "...재밌겠다."


 성식의 말에 유진이 눈을 치켜떴다.


 "뭐어? 너 지금 내 말을 듣기나 한 거야?"


 "그치만, 화려하잖아. 연예계. 멋있네."


 "그야 그렇긴 하지. 그런 로망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이 짓거릴 하고 있겠니?"


 "나도 해보고 싶다. 연예인."


 "너, 노래도 잘 했잖아. 무공을 익혔으니 춤도 잘 출 거고. 얼굴도... 얼굴은 아주 잘 생긴 건 아니지만. 뭐, 비쥬얼 담당만 아니라면 아이돌 해도 되겠네."


 "진심이야?"


 "아니. 난 네가 무술할 때가 제일 멋있더라."


 그렇게 말한 신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벌써 가게?"


 "벌써라니. 이미 새벽인데. 그냥, 잠깐 다녀오게."


 유진이 검지와 중지를 펴서 입에 붙였다.


 "...나도 갈래."


 유진이 다시 짓궂은 표정이 되었다.


 "너 담배도 처음이지?"


 "천박해."


 첫 담배는 어설펐다. 연기를 빨아들인다는 감각이 익숙지가 않았다.


 성식은 오기가 생겨서 한 대를 더 피웠다. 눈은 맵고, 코는 따갑고, 목은 칼칼했다.


 "이걸 왜 피우는지 모르겠어."


 "그걸 모르는게 네가 아직 애라는 증거야."


 "내가 애라고? 생일도 느린게. 자꾸 누나 누나 소리나 하고."


 "그럼. 애지. 세상물정 모르고 무공만 익혔잖아. 사람은 여러 경험을 해보고 살아야 돼. 나는 너처럼 여러가질 포기하고 사는 애들이 약간... 가엾기도 해.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 그래야 자기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게 뭔지 알게 되거든."


 "그른가...."


 "어쩌면 네가 다른 걸 하고 싶어지는 대신 무공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잘 몰르겠, 는데."


 "세상엔 즐거운 것만 있는 게 아니야. 각자의 고충을 안고 산다고. 네가 포기한게 언젠가 눈앞에 밟히게 될 수도 있어. 그게 무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얘기지. 무림에 대한 동경으로 무림인의 길을 걷다보니 일상에 대한 동경이 생기는 것처럼. "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문득 관자놀이가 쑤셨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몸이 비틀거렸다.


 "일상의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 문득문득 무림인의 삶이 그리워질수도 있다고. 가장 중요한 건 말야. 네 마음이 시키는걸 하는 거야. 아이돌이 하고 싶으면 진짜로 도전도 해보고, 무공이 하고 싶으면 다시 명덕학당에... 어어? 얘가 왜 이래? 성식아, 정신 차려봐!"


 머리가 무거웠다. 균형이 기울어졌다. 유진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성식은 지독한 갈증에 잠에서 깼다. 땀에 절어 끈적한 이불을 걷어차고 무릎으로 기어가 작은 냉장고를 열었다. 생수를 꺼내 입에 부었다. 물이 턱으로 흐르는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 살 것 같다."


 근데 여긴 어디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낯선 방이다. 


 "낯선... 아. 미친."


 어제의 일이 스치듯 떠올랐다. 첫 술, 첫 담배, 다른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가진 동경. 그리고 첫...


 "앗, 아앗."


 성식은 침대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거, 사과해야 하나? 사과받아야 하나?


 엉덩이에 깔린 리모컨이 티비를 틀었다. 티비에는 걸그룹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네 마음이 시키는 걸 해라.'


 신유진과 뭔가 많은 대화를 했지만, 똑똑히 기억나는 것은 그 한마디였다.


 성식은 여전히 술이 덜 깬 채 중얼거렸다.


 "그래. 나는 아이돌이 될 거야!"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성식은 이불을 뒤적인 끝에 스마트폰을 찾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어쩌면 유진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명덕학당 입학처입니다."


 ...내가 아직 술이 덜 깼구나. 성식은 자신의 뺨을 툭툭 쳤다.


 "혹시 김성식씨 본인 되시나요?"


 "어... 네."


 "다름이 아니라, 김성식 씨가 명덕학당에 추가합격하셔서."


 성식은 더 이어지려는 말을 끊었다.


 "거짓말."


 "네?"


 상대방이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날 이런 식으로 속이려고? 어림도 없지! 성식은 목소리를 깔았다.


 "명덕학당에 추가입학따윈 없다고 들었어요."


 "아, 이번엔 좀 사정이 달라서... 한 분이 입학을 아예 할 수 없게 되셨어요.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기회를 드리자고...."


 "거짓말."


 성식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어림도 없지, 어림도 없지...."


 그는 이내 다리를 달달 떨기 시작했다. 잡생각들이 샘솟았다.


 시발, 진짜면 어쩌지? 아니, 아니야. 진짜면 어때. 난 어차피 다른 길을 걸을거야. 무림에 대한 꿈은, 아니 미련은 접었다. 어제 일로 확실히 느꼈어. 세상에는 많은 게 있고. 그것들을 즐겨주는 건 인간의 의무야.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전화벨이 다시 울렸고, 성식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받고 있었다.


 "네. 명덕학당입니다. 그럼 김성식 씨는 등록포기인 것으로...."


 "할게요."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라 그랬다. 성식은 악을 쓰듯 외쳤다.


 "아 입학할거라구요!"


 불꽃이, 다시 타올랐다.





사실 딱히 판사대 아님

우연히 대회조건에 맞는데 오늘까지 대회라길래 설레보라고 올림

comment (1)

olbersia 6일 전
사쿠라를 가볍게 여기는 그 마음가짐 괘씸하지만 어쨌든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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