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모이라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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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00 Nov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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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그녀는 자기 옷을 ‘잠옷’이라 불렀다.


  물론 잠자리에 들 때 입는 옷을 구태여 그리 부른다는 뜻은 아니다. 아닌게아니라 메스 끄트머리처럼 날을 세운 백색 슬림 핏 셔츠는 잠옷 삼기에는 지나치게 노력이 많이 들지 않겠는가? 그 아래로 흑단같이 검은 하이웨스트 스커트를 받쳐 입고 단추를 꼭 잠그면 참으로 잠옷답잖게 아래위 윤곽이 도드라져 보이는 법.


  남성의 눈을 못 휘어잡기가 더 어려워 보이는 차림새인 건 분명하나 이는 순전히 타고났든 만들어 냈든 그녀의 몸 덕인 건 분명할 터. 도대체 왜 그런 옷을 잠옷이라 우기는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시선을 좀 돌려 보면, 그런 육감적인 용모에 킬힐도 웨지힐도, 하다못해 단화도 아닌 슬리퍼가 끼워져 있다는 데서 다소 단서를 얻어 볼 만하다.


  가슴과 몸뚱이의 경계, 상의와 하의의 경계, 백색과 흑색의 경계, 매음굴과  여염집의 경계, 현실과 꿈의 경계……. 그 옷차림은 이런 모호한 빗금 위에 있다는 뜻이었다. 뭇 세계에 담긴 토르소에는 정장을, 아니 담긴 발 끝에는 슬리퍼를. 간판만 매춘소인 묘한 가게 마담인 그녀는 달큼한 미소로 이런 개똥철학을 늘어놓곤 했다.


  고객들은 그녀, 메르세데스를 이르길 베갯맡의 악마라 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가게 문 연다고 하면 여타 매춘업소에서는 정신줄을 놓쳤느냐고 물어오겠지만 메르세데스는 아침밥을 수저로 뜨기도 전에 셔터부터 걷어 올렸다. 남들 일 할 때 일 하고 남들 잘 때 자야 한다는 그야말로 단순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이유를 달아서. 동업자들 눈에 미친년으로 보일지 모르나 애당초 그네들이 출근할 때면 그녀는 점방 문 닫고 휑하니 가버렸을 테니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 않는 한 645번길-14가 영업은 하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 ‘동업자’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 메르세데스는 몸을 팔지 않거니와 그런 아이를 아래에 거느리고 있지 않았다. 열 평 사무실에 다섯 평 다락방이 딸린 게 다인 토끼굴 같은 건물에는 그녀와 사무 일 보는 계집애 둘뿐. 아래층에서 식사라도 하면 다락 구석에까지 냄새가 풍기고, 트랭퀼을 피우면 바닥 갈라진 틈에 아래위로 몽롱한 연기가 드나드는, 그런.


  덕분에 아래층에 있던 위층에 있던 다른 쪽에서 무슨 일이 나는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예약이 없는 때가 곧 쉬는 때이니 다락방에 늘어져 앉아 게슴츠레하게 잔디나 피우던 메르세데스는 거칠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곧 알렉시스가 허둥대는 기척을 느끼고는 슬그머니 꽁초를 비벼 꺼버렸다.


  “언니, 언니, 그게, 그, 그게, 그러니까…….”


  “숨 좀 돌려, 알렉시스. 숨 쉬라고.”


  “그러니까……. 치안관이 지금 문 앞에 있어요! 언닐 좀 만나야 쓰겠다고…….”


  “얘는, 전화도 네가 받고 장부도 네가 쓰는데, 별일 아닐 거 네가 먼저 알아야지.”


  “그래도…….”


  메르세데스는 천연덕스럽게 올림창을 반쯤 열고 덧창을 밀고는 약 연기를 휘이휘이 몰아내며 말했다. 정말 켕기는 게 일절 없는 건지 진짜 대범한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몸짓 하나만큼은 여유천만이었다. 우선 매무새부터 꼼꼼히 살핀 뒤 숄을 사뿐 걸치고는 토닥토닥 사무실로 내려갔다. 산통 깨는 거라곤 층계참이 뒤틀리며 내지르는 수많은 단말마뿐이었다.


  문설주에 누군가가 모로 기대 있었다. 주절주절 떠드는 대신 그 양반은 허리높이에서 슬그머니 배지부터 내 보였다. 기겁할 일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느니 내가 뭘 잘못했냐느니 우는 소리를 내는 대신 메르세데스가 돌진을 했던 것이다. 어찌나 날래고 뜻밖인지 치차단총(齒車短銃)을 뽑아 겨누지도 팔로 제지하지도 못한 사이 치안관의 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십 초가량 지근거리에서 눈과 눈이 마주쳤다. 새하얀 숄이 바닥에 사르르 내리앉으며 메르세데스는 히죽 웃었다. 일순, 달포는 약을 굶은 약쟁이가 마취제라도 한 대 맞은 것처럼 입꼬리가 찍 찢어졌다가 살포시 갈무리되었다. 손님 아닌 손님은 그 악마를 홱 떠밀고는 허벅지춤에 손을 얹고는 쭈뼛거렸다. 별 지랄 같은 꼴 다 보고 사는 치안관이 기함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묘한 상황은 메르세데스가 곧 떨어트린 제 숄을 주워 들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갈무리되었다.


  “들어오세요, 라케시스 씨. 여긴 ‘전당’이라도 말석중의 말석이니 ‘광야’처럼 고철추위가 매서우니까.”


  “……제 이름은 어떻게?”


  “예? 치안관 배지 대각십자 위에 여덟 글자, 보란 듯이 잘 양각돼 있던데.”


  라케시스는 가게 안에 발은 들이되 오른손 끄트머리는 여전히 골반 아래 즈음에 슬그머니 붙이고 있었다. 홀스터의 잠금은 풀린 채. 다만 경계도 상대가 있어야 의미 있는 법, 눈 앞 사람은 방금 전 그 미친년과 같은 사람인지 얼른 보아 분간이 잘 안 될 정도였다. 두서너 걸음 걷는 동안 묵직한 침묵만 따랐다.


  메르세데스 쪽이 먼저 나섰다.


  “왜 오셨는지 얼른 말씀해 주시잖고?”


  “장부 좀 봅시다.”


  “재미없게 영장 있느냐고 묻기는 좀 그렇네. 라케시스 씨, 뭔가 탐문할 게 있으면 단도직입적으로 하세요. 어줍잖게 그러지 마시고. 그런 협박, 통할 사람 아니니까.”


  이상한 일이었다. 치안관짓 하며 별의별 인간 군상을 다 봐 왔지만 이런 기괴한 방향으로 흉흉하고 음울한 인간은 도대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장부를 봐도 재미없을 거라는 말을 하면서 장부를 코앞에 들이대는 데야 어쩔 도리도 없었다. 라케시스는 말 그대로, 그리고 관용적인 뜻대로 두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마담.”


  “메르세데스.”


  “……메르세데스 씨, 필리스라는 남자, 기억나십니까?”


  “아, 그런 걸로 오셨구나. 이건 우리 둘이 거래를 해야 하는 그런 건이네.”


  뚱딴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거래? 거래는 무슨 거래를 하잔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절로 무례해졌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거래, 몰라요? 저한테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제가 알고 싶은 걸 토해내셔야죠.”


  “전 행정총국 공안청의 치안관입니다, 마담.”


  “알 게 뭐에요, 그게. 협박 통할 사람 아니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 마담이 아니라 메르세데스라고도 했고.”


  제멋대로 지껄인 뒤 메르세데스는 계단을 가리키며 종종걸음을 걸었다. 소리 안 나게 이를 갈아 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괜히 베레를 거칠게 벗어 주머니에 처넣고는 뒤를 따를 밖에. 무슨 엿 같은 노릇인지 모르겠지만 일만 잘 끝내고 나면 이 집은 물론 주위 더러운 빡촌 점포를 죄 탈탈 털어 결딴내겠다고 벼르며.


  다락방에는 침대가 하나, 안락의자가 둘 있었다. 침대를 권했다가는 치차단총을 뽑았을 텐데, 그럴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메르세데스는 다리를 묘하게 꼬고 앉아 의자를 권했다. 그리고는 연이어 트랭퀼을 곰방대에 눌러 담으며 재차 권했다. 제아무리 합법 약물이라지만 치안관에게 마약을 권하는 심보가 무얼까? 근무 시간이라며 손사래를 치자 아쉽다는 듯 흐응, 하는 콧소리만 메아리처럼 남았다.


  잠시간 말이 죽었다. 라케시스는 탐색전을 벌였다. 메르세데스는 트랭퀼로 폐부를 절이며 연신 푸르딩딩한 연기와 기기묘묘한 신음을 번갈아 토했다. 한참이 지나 땡, 하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재떨이에 곰방대를 예닐곱 번 때리면서, 약기운으로 이완된 목소리가 구물구물 뒤따랐다.


  “정말 한 대 안 할 거예요?”


  “안 합니다.”


  “왕년에 트랭퀼 좀 한 거 다 아는데.”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채운 연초에 불을 댕기는 소리가 들렸다. 슬슬 화가 차오르고 있었다. 와락 박차고 일어나 치차단총이라도 겨눌지, 우선은 사람을 앉혀 놓고 약이나 하는 건 무슨 생각인지 물어볼 지 가늠해 보는 차에 일부러 그랬다는 양, 메르세데스가 쑥 끼어들었다.


  “제 첫 손님이 어땠는지 아세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무례할 정도로 짜증스러운 그 말에 참으로 뜬금없이 맑은 웃음이 왈칵 흘러나왔다. 오싹했다. 그 웃음은 적어도 마취제에 취한 창녀가 터뜨릴 만한 건 아니었다. 방금 전, 아래층에서 보았던 마귀 같은 느낌이었다. 낡아빠진 마루는 몸을 슬쩍슬쩍 비틀며 웃기만 해도 끽끽거리며 함께 비명을 내질렀다.



  아뇨, 미안해요. 치안관님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저도 그 미친놈, 슬슬 까먹어 가고 있는 찬데……. 여하튼 그렇네요.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까? 그래, 그럼 아예 처음부터. 우리 집은 ‘광야’의 버러지 군상들 중에서도 유별났죠. 길게 말은 않을게요. 제 위로 둘, 제 아래로 다섯인 집구석에서 서로 먹을 걸 두고 아귀처럼 싸웠지만 애들끼리 단 하나만큼은 의견이 참 잘 맞았어요. 애비라는 새끼가 소일렌트 그린이 돼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거. 열 두 살일 때 맏오빠가 집에서 도망갔고 그 후로 감시가 덜한 틈을 타서 한 명씩 집에서 탈출했어요. 광야 길바닥보다 못한, 거지 발싸개 같은 소굴이었다는 거지. 지금 생각하면 놀랄 일이지만 전 일곱 번째였죠. 일곱 번째가 뭐야, 꼴찌나 면한 못난 년 같으니라고.


  무일푼에 배운 것도 없는 열 일곱 살 계집애가 이 아베스타에서 달리 뭘 할 수 있겠어요? 몸이나 팔 밖에. 그래도 전 진짜 재수가 좋은 편이었어요. 좋은 편이래봤자 이 도시에 진짜 곱지 않게 미친놈이 많은 덕을 본 거니, 좋은 게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지만. 아, 치안관님은 모르시겠구나. 번듯한 집안 출신 아가씨니까. 이 참에 알아 두시면 나중에 치안관 일 할 때 한 번쯤 쓰일 데가 있을 것도 같네요. 그러니까, 처녀애는 화대를 다섯 배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걸 업소랑 반반 나눠 먹는 거예요. 그런 일 할 수밖에 없는 애들한텐 그래도 돈푼이나마 되는 셈이죠. 사람 잘못 걸리면 마담한테든 손님한테든 돈 떼일 일 천지인 이 바닥에서도 저 돈만큼은 잘 받을 수 있어요. 워낙에…… 미친 새끼들이 많아서, 처녀애 전문 마담뚜가 게 다 있을 정도니까요.


  맞아요, 맞아. 제 첫 손님 이야기하려고 운을 길게 뗐어요. 그 아저씨……. 그 양반을 받았던 게 벌써 십삽 년 전이네요. 방도 마침 지금 제 가게 다락방마냥 누추하고 좁아터진 데다 가끔 지네나 곱등이가 머리맡으로 휘리릭 춤추는 그런 데였어요. 확실한 건, 전 벌벌 떨고 있었어요. 침대 위에 일자로 누워서는 기도 들어줄 사람도 없는데 두 손 꼭 맞잡고는. 그런데, 묻더라고요.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냐고. 웃기죠, 네? 집구석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데, 가족한테도 들어본 적 없는데, 어느 누구한테도 들어 본 적 없는데 인생이 밑바닥에 처박히려니까 곧 나한테 개처럼 박아 댈 놈팡이가 신세를 다 염려해 줘서. 지금이야 차갑게 웃지만 저 때 당시에는 울어버릴 정도로 서러웠어요.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방금 한 얘기에 살은 물론이거니와 군살에 껍질에 옷가지까지 더덕더덕 붙여다 한탄을 했더랬죠.


  손님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어요. 어거지로 응? 그래? 정말? 따위 추임새를 넣지도 않고, 괜히 내 말 가로막지도 않고, 정말인지 듣고만 있있어요. 이야기 끝나고 울음 그칠 때까지 기다려 주기까지 하더군요. 그리고는 하는 말이……. ‘아가씨, 내 이야기도 들어 보소. 이 도시는 좆 같은 도시요, 그 중에서도 광야는 제일 개좆 같은 소굴이 아니겠소? 아까 소일렌트 그린이 어쩌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신세가 다 그렇지. 인간 도축장에서 분쇄기에 갈려 들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 거요. 재수 옴 붙은 놈은 비명에 가서 그렇게 되는 거고, 으레 천천히, 발 끝부터, 갉작갉작 짓뭉개져서는 결국에 그렇게 되는 거지. 간혹 재수 좋은 연놈은 신세 펴서 빠져나갈 수도 있는 거고. 아가씨. 내가 어느 쪽인지는 말 않겠소. 단지 나는……. 적어도 마지막 부류는 아니오. 아가씨는 아베스타 산업기기표준규정이라는 걸 모르겠지만, 그 규정 중 3701조인 ‘인부의 작업 구역에 노출된 치차에 한해 안전장치 부착을 필수로 한다’가 참 상식적으로 정당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거요. 뭐, 천 년을 같은 일 한 인부도 일 초 한 눈 팔면 팔다리가 딸려 들어갈 수도 있는데, 이십이 년 밖에 같은 일 못 한 나는 어련하겠소? 이게 내 오른손이오. 아니, 오른손이었소. 그런 게지. 그리고 손모가지가 달아난 그날로 나는 해고당했소. 그래……. 내가 세 부류 이야기를 했던가? 세 번째 족속이 아니고서야 결국에는 모두가 두 번째 족속이 되는 거요. 그런데 뭔가 억울하더구먼. 결딴난 걸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았소. 그런데 세상이 아무렇지도 않으니 기분이 아주 엿 같기가 이를 데 없더란 말이오. 그래서 한 번 미친 척을 해 보기로 했소. 공장장한테 가서는 AS3701 운운을 해 본 게지. 무슨 말을 들은지 아시오? 악마숭배자라더군. 날더러 악마숭배자라 했다, 이 말이오. 악마숭배자라고! 헛웃음이 나온 게 아니라 정말 너무 웃겨서 그 자리에서 미친놈처럼 껄껄대고는 떴소. 그 때 그 놈을 좀 두들겨 줬어야 하는 건데. 머잖아 공안에 정말로 신고가 들어갔다는 걸 알게 됐소. 무슨 물증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쯤 되니 웃음이 안 나왔지. 아가씨, 나는 악마숭배자로 지명수배가 됐소. 겁을 안 먹는구먼? 사실 살 의욕을 놓친 게 무섭다면 말이라도 되지. 뭔 개지랄을 할 지 모르니까. 그런데 있지도 않은 악마를 숭배한다니 무서울 수 있을 리 없지 않냐는 말이오. 악마가 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다고? 그런데 신고가 들어가니 있지도 않은 걸 모신 죄로 나를 잡아들이겠다고? 나는 결심했소. 한 방 먹여 보자고. 사실 난 공장에서 알 거 모를 거 다 아는 놈이었소. 예를 들면……. 발주처에서 받은 현금이 들어가는 곳이 어딘지 같은 거 말이오. 야간조가 일할 때 공장장실에 숨어들었지. 그 때 난 아주 힘이 넘쳤소. 손 병신인 몸으로 백 킬로그램이 넘는 금고를 훌쩍 짊어질 수 있었으니까! 그 금고를 내 손모가지를 부쉈던 기계에다가 처넣었소. 볼만하더구먼. 금고가 결딴나고, 기계가 결딴나고, 온 공장 사람들이, 공장장은 없었지만, 그걸 쳐다보고. 짓찢긴 금고를 거꾸로 뒤집어서 돈을 바닥에 쏟았소. 그 중에 절반 정도만 챙겼지. 나만 좋자고 한 일이 아니니까. 여기, 아가씨. 받으시오. 들어낸 돈은 다 거기에 숨겨 놨소. 내 분명히 세 부류 이야기를 했지. 내가 두 번째 부류가 돼버린 건 분명하오. 하지만 공장장놈도 같은 부류로 끌어내린 것도 틀림없소. 그리고 아가씨를 세 번째 부류로 만들어주겠다, 이 말이오. 한 놈이 두 연놈 인생을 뒤바꾸어 놓은 거요. 내가 이긴 게지, 응. 내가 이긴 거고 말고.


  치안관님, 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떡하고 있었을까요? 박기 전에 웬 썰풀이냐며 눈살을 찌푸렸을까? 여느 창녀라면 그랬을지도. 얼른 한 발 빼 주고 돈 받아야 또 다음 손님을 들일 테니. 그러면 뭇사람들처럼 이런 광기 아닌 광기에 겁을 집어먹어야 했을까? 미친놈이랑 한 방에 갇혀 있으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아니었어요. 난 아니었어요. 중독적이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누군가가 비밀을 남김없이 공유해 준다는 건, 내 앞에서 민낯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낯짝을 드러내 보인다는 건……. 어느새 몸 팔러 온 애송이 처녀애는 달아나고 없었어요. 이야기에 훌쩍 심취해 있었고, 매몰돼 있었고, 매달려 있었어요. 내게 비밀을 더, 더 추악하고 황당한 비밀을 더! 친구한테도, 부모한테도, 형제한테도, 자식한테도, 누구에게도 못 털어놓을 비밀을 내게 더!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죠. 아마 그 땐 눈을 까뒤집고 바들바들 떨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난생 처음 신경줄을 사로잡는 쾌락에 눈떴을 때니까. 그래서 그, 종이쪽지가 가슴께에 철떡 놓였을 때는 거의 발작을 일으켰던 것 같네요. ‘제14황동종탑로 29, 사서함 2204호 세레스’. 뇌에 인두로 지져 놓은 것처럼 잊히지 않는 그 주소를 읽어내고는 고개를 들었어요. 손님은 웃고 있었어요. 날 보면서 웃고 있었다고요.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뭔가를 바지춤에서 꺼내더니 관자놀이에 꾹 밀어붙였어요. 그게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빵! 시뻘건 덩어리들이 흩날렸어요. 침대 시트에도, 내 얼굴에도, 내 가슴에도, 그 종이조각 위에도. 몸뚱이가 기우뚱하더니 뒤로 왈칵 넘어갔어요. 뼛가루며 뇌수며 살점이 콸콸 쏟아져 나왔죠. 그 광경이란! 난 비명을 지르지 않았어요. 어쩜, 그런 광경을 두고 진부하게 소리나 빽빽 지를 수 있는가 몰라. 비밀의 대폭발이잖아요! 이제 공장 기계에 손목이 끊기고는 복수심에 공장장 금고를 턴 사내 이야기는 온전히 내게 옮은 셈이었죠. 두 번 있기 힘든 일이 분명했어요. 나는 그저 낄낄거렸어요. 비명을 지르고 사람을 부르고 공안에 신고하는 건 총성에 놀라 달려온 다른 매음굴 사람들이 알아서들 잘 하더라고요.


  나는 그저 웃으며 횡설수설했어요. 마담한테든, 공안한테든. 그 사람들은 가엾게도 험한 꼴 보고는 머리가 돌아 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멍청이들 같으니. 비밀은 내 건데. 일을 때려치겠다고 하니 아무도 안 말렸어요. 오히려 마담은 차비로 쓰라고 용돈을 줬죠. 딴에는 불쌍해 보였겠죠. 첫 손님 받고는 돌아버린 년으로 보였을 테니. 아까 재수가 좋았댔죠? 뭐, 그 중엔 이 마담 언니 지분이 일 할은 될 거예요. 중언부언은 그만둘게요. 나는 그 길로 사서함을 찾아갔어요. 더플백을 하나 받아왔고, 여관방에서 그걸 열어보고는 1만 플론 지폐 17000장, 총 1억 7천만 플론이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1억 7천만 플론이라니라니! 치안관님 같은 부르주아는……. 아, 부르주아한테도 저 정도면 큰 돈이라고요? 네, 뭐……. 어쨌든 거지나 다름없던 계집애한테는 하늘이나 땅도 만들어 볼 법한 거액으로 보이더군요. 뭘 할까? 이 돈으로 뭘 할까? 답은 정해져 있었어요. 쾌락을 누려야죠! 쾌락! 남의 비밀을 탐하는 쾌락! 누구한테도 못할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는 쾌락! 그런데 문제가 좀 있더군요. 이런 이야기는……. 남한테 잘 떠벌리지 않는 법이잖아요? 길에서 누굴 붙잡고는 ‘당신 비밀을 내게 털어놓으십시오!’래 봤자 미친년 취급만 당할 게 뻔하죠. 그러다 보니 생각 났어요. 나는 그 손님한테 스스로 썰을 풀었잖아, 라고. 맞아요. 인생 처량한 사람을 찾아다가 옆구리만 적당히 간질이면 나 자신이 그랬듯, 지금 내가 원하는 걸 꾸역꾸역 토해내지 않을까? 신세 험하지만 붙들고 이야기 나눌 시간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어딨긴, 네가 어제 있던 데! 열 일곱 계집애의 매음굴 순례라는 기막힌 행사가 시작된 거죠. 목적지가 정해졌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생각을 해 보세요. 창부가 뭐, ‘정량의 서비스’를 제공하기야 하겠지만 신세 한탄이 거기에 포함된 건 아니잖아요? 돈이 좀 생기더니 머리꼭지가 돌아버렸는지 전 아무 생각 없이,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갈무리도 않은 채 시중 들려는 언니 뺨을 지폐 뭉치로 번갈아 처덕처덕 때리면서 ‘언니는 어쩌다 이 따위로 망해버린 인간이야?’라고 빈정거렸던 거죠. 사실 저런 때에 예에 마님, 하면서 히죽거리는 치가 없진 않을 것 같은데 치안관님도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하지만 제아무리 바닥 쌍것이라도 못 버리는 자존심이란 게 있을 때도 있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물어 뜯겼어요. 진짜 말 그대로 물어 뜯겼어요. 피칠갑을 해서는 병원으로 도망을 놨죠. 어쩌다 다쳤는지를 묻는데, 체면이랄 게 애초에 없으니 낯부끄러워서가 아니고 가방끈이 너무 짧아서 그 병신 같은 상황을 도저히 말로 못 풀어내겠더군요. 별 수 없이 철조망에 걸려 뜯겨 나갔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생돈 버리고 파상풍 혈청을 맞았는데, 바늘에 찔리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덜떨어진 년이 머저리 같은 방식으로 덤벼드니 될 일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길로 호텔방에 틀어박혀서는 몇 주일을 공부랑 생각에 들이부었어요. 세상에 공부라고는 공용어 읽고 쓰는 걸 더듬더듬 한 것밖에 없었는데, 의외로 쉽더라고요. 어떻게 운을 떼야 경계심을 죽일까? 어떻게 구슬러야 마음을 열어놓을까? 어떻게 쿡쿡 찔러야 내가 원하는 걸 술술 풀어놓을까? 이런 것들. 그리고 레퍼토리들. 전 ‘관상 본다’라고 농 삼아 말하곤 하는데, 점술사 노릇 하겠다는 건 아니고 어쨌든 이런 작업을 할 때 운 떼는 건 저니까 간을 보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익혔어요. 눈빛이 흐리멍덩한가? 눈두덩이가 시커먼가? 향수는 어떤 향수? 겁을 집어먹은 건가? 젠체하는 건가? 심드렁한 건가? 능숙한가? 능숙한 척하는 건가? 능숙한 척도 못 하는 건가? 그렇게 본 관상으로 던질 첫 멘트를 고르는 거죠. 사실, 제일 많이 써먹은 건 제가 당한 그 래퍼토리예요. 서러움을 살살 간지럽히는 거. 그 밖에도 여러 개 있는데, 영업비밀 비슷한 것도 있어서 다 가르쳐 드리기는 좀 그렇네요.


  처음으로 작업에 성공한 애는……. 이름이 독특해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잘 나네요. 언딘이라는 애였죠. 쉬웠어요. 물꼬라도 터진 듯 매일같이 이 업소 저 업소 드나들면서 놀았죠. 그러다 보니 소문이 나더군요. 돈도 후하게 쓰고, 와서 몸에는 손 끝 하나 안 대고 트랭퀼이나 몇 대 피우면서 이야기만 하다 가는 여자가 있다고. 이 소식을 듣자마자 전 휑하니 도망을 놨어요. 그것도 그럴 게, 괜히 편하게 돈푼이나 받으려고 구라를 치는 년이 걸릴까봐서. 그렇잖아요? 저 같아도 시커먼 사내한테 깔려서 개처럼 헐떡거리느니 젠틀한……. 치안관님, 왜 비웃으세요? 말이야 맞는 말이잖아요. 여하튼, 젠틀한 언니 물어서 썰이나 풀고 팁 두둑하게 받아서 그 날은 퇴근하고 말겠어요. 안 그래요? 그렇게 도망 아닌 도망을 놓으며 업소라는 업소는 다 돌았어요.


  낮엔 계집애랑 재미 보고, 밤엔 비싼 방에서 트랭퀼에 보드카에 장미 목욕에……. 환락이 따로 없었죠. 일 년을 그랬던가, 일 년 반을 그랬던가. 그러다 보니 문득 잔고를 보게 되는 날이 오더군요. 뭐, 본래 거금이라 왕창 줄어도 큰 돈인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뒤통수가 띵한 건 띵한 거였어요. 돈이 떨어지면? 와, 정말인지 생각하기도 싫었어요. 광야에서, 제대로 배워먹지도 못한, 계집애가,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건 몇 없겠죠. 이 ‘비밀을 탐하는’ 지거리를 그만두면야 평생 뜨뜻한 지붕에 밥 세 끼 곯을 일은 없어 보였지만. 치안관님, 치안관님이면 그러실 수 있겠어요? 그래요. 전 이 환락을 때려치울 생각이 없었고, 그러려면 돈을 불려야 했어요. 무슨 수로? 일이라고는 좆 같은 집안에서 방에 갇혀 잡일이나 해 본 거랑, 반 밖에 안 해 본 몸 파는 일뿐인데?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뭔가가 머릿속을 휘릭 스쳐 지나갔어요. 세상엔 나처럼 남의 비밀을 들어보려는 치가 있는 반면, 제 비밀을 남한테 말하고 싶어하는 치도 있지 않나, 라고. 물론 드러내놓고 그럴 사람이야 없겠지만 내면의 고통이든 고뇌든 고민이든, 슬그머니 털어놓는 걸로 위안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것도 그럴 게, 전 벌써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맞아요. 그 양반, 저 앞에서 자기 머리통을 날려 버린 양반, 공장장 금고를 털어 버린 양반, 나를 사겠다고 불러 놓고는 제 한이나 실컷 지껄이고는 뒈져 버린 양반.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으니 구색을 맞춰 보려 했어요. 드디어 그 놈의 광야를 뜰 때가 온 거죠. 사실 신세 처량한 인간은 그 아수라장에 더 많을 게 뻔했어요. 그런데 말했지만, 환락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했어야 했죠. 뭐 된 인간이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돈벌이에 못 써먹을 거면 말짱 황이 아니겠어요? 솔직히 전 그때 정말 말도 안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어요. 전당 사람들의 비밀을 듣는 건 좋아, 새로우니까. 잠깐만, 이 비밀이 영 보잘것없어서 들으나 마나 한 거면 어떡하지? 나한테 별반 쓸모가 없잖아. 그럭저럭 잘 사는 인간들이라 내 듣기에 시답잖은 고민상담이나 하면서 몇 푼 버는 게 되면 어떡하지? 하! 멍청한 계집애. 치안관님이 생각해도 웃기지 않나요?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전당 사람들이 더…… 추악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광장에선 순간을 살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배고프니까 먹는다, 화나니까 때린다, 서니까 박는다. 그만큼 사단이 나도 원초적으로 나기 마련이죠. 비밀이랍시고 꽁꽁 움켜쥐고 있던 건 으레 그랬어요. 그런데 전당 사람들은 여러모로 큰 그림을 그리더군요. 선의와 선의, 악의와 악의, 선의와 악의, 악의와 선의가 동댕이 친 실타래처럼 마구잡이로 얽혀서는 거기에 온갖 감정이 범벅 되는 거예요. 기가 막히는 일이죠.


  아, 이야기가 영 이상한 대로 샜네. 우선 전당 거주권을 구했어요. 그리고는 그 길로 점포를 마련했죠. 그게 이 점포고. 끈덕지게 눌러앉을 생각은 없었는데 그게 이제는 안 끈끈하려 해도 엉덩이 떼기가 만만찮게 돼 버렸네요. 개업하기 전에 먼저 한 건, 이 동네 업소 순회였어요. 뭐, 재미 보려는 것도 있었지만 재미만 보려는 건 아니었어요. 사환 아이가 있어야 쓰겠다는 생각부터 들었거든요. 비밀의 이야기집 사환이라면 아주……. 이 가슴에 음울하고 끔찍스러운 사연 하나 둘은 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구한 아이가 지금 아래층에 있죠. 원하는 아이를 구하고서야 가게를 열었는데 이게 만만찮더군요. 만만할 리가 없지! 일감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평범한 매춘업소인 줄 알고 들어온 치들을 돌려보내기만 했으니. 대뜸 옷부터 벗는 놈, 괴발개발 아무렇게나 쌍욕을 내뱉는 놈, 드러눕는 놈, 도망가는 놈, 온갖 놈들이 다 있었답니다. 족히 일 년을 그러다 보니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웬 정신나간 업소가 있더라, 업소 주제에 매춘은 않고 무슨 비밀을 들어준다더라, 지금까지 한 발 빼러 온 손은 남김없이 쫓아 보내더라, 라고. 내쫓긴 사내들뿐만 아니라 주변 업소들까지 다. 그러다 처음 찾아온 진짜 손님이 말이지요…….



  메르세데스는 근질근질한 여운을 남기며 슬그머니 이야기를 갈무리했다. 트랭퀼을 피우는 것도 쉴 정도로 한달음에 끌고 온 이야기였다. 연초가 죄 타 들어가고 손 끝에서 달랑거리던 곰방대 끄트머리를 따라 뭉게뭉게했다. 그녀는 썩 아깝다는 기색 없이 약을 꼭꼭 눌러 채워 넣었다. 반쯤 눌어 매캐해지던 연기가 맑은 푸른색을 되찾았다. 폐부에 스민 트랭퀼이 온 신경을 이완시키는지 다리를 바르르 떨었다.


  자연적 라케시스는 가만히 기다리게 되었다. 그도 그런 것이, 마담의 이야기란 갓 시작되었을 뿐인 데다 일단락된 기색도 없지 않았던가. 그저 약기운이 떨어졌으니 쉬어 가자는 제스처로 보일 밖에. 치안관의 인내심은 제 코가 부류연으로 매워질 만큼 곰방대가 채워지고 채워지고 또 채워진 뒤였다.


  “그래서, 그 진짜 손님이 어쨌다는 말입니까? 그냥 이 업소 사연 이야깁니까? 아니면……. 혹시 그 자가 필리스라도 된다는 겁니까?”


  “츼햔콴님.”


  한껏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메르세데스는 고개를 털고 제 뺨을 탁탁 때리더니 배실배실 웃으며 다시 대답했다.


  “어머, 실례. 치안관님, 제가 말했지 않았던가요? 공부를……. 좀 했다고.”


  “이게 그 공부 결과라는 겁니까?”


  “그렇죠. 보세요, 치안관님 같은 분도 벌써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안달이 났잖아요?”


  “이것 보세요, 안달이라…….”


  황당스럽다는 듯 정색했으나 마담이 트랭퀼을 몇 대나 피울 동안 입을 이어 열기를 기다린 건 숨길 수가 없었다. 메르세데스는 약 기운을 억누르며 슬쩍 목소리를 높여 말꼬리를 분질렀다.


  “사업을 하려면 안 온 손님 끌어오는 것도 중하지만 한 번 온 손님 다시 오게 하는 것도 중하지 않겠어요? 관상을 본다, 라는 게 이런 데서 쓸모가 있는 법이에요. 이 손님은 살금살금 간지럽혀서 비밀을 토해 내게 하고, 저 손님은 짤랑짤랑 흔들어 주고.”


  “마담.”


  “메르세데스. 요는 치안관님 같은 부르주아 엘리트에게는……. 적나라하고 화끈하게 나가겠다는 거예요. 잘난척하는 게 일상인 양반들이니까. 전 원하시는 걸 알고 있답니다. 비밀을 벗으세요, 한 꺼풀, 두 꺼풀, 세 꺼풀. 맞바꾸는 거죠. 쉽잖아요?”


  라케시스는 혀를 찼다. 거래를 해서는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수사 중 용의자나 증인과 담판을 짓는 건 으레 있는 일이었다. 다만 내키지가 않았다. 저 의뭉스러운 여자가 원하는 건 눈빛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치안청의 내부 정보? 그럴 리가. 범죄자들에게 금이나 백금을 받고 팔 수 있겠지만 저 여자에게는 천하에 쓸모 없는 헛소리리라.


  그녀는 다만 치부를 훤히 드러내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저렇게 직설적으로 은근짜임을 호소할 정도로 원하는 것이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불편했다. 나한테 감히? 울컥하는 마음에 계획에도 없는 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왈칵 쏟아져 버릴 뻔했다. 그 중에는 채 다 못 여민 문드러진 상처를 드러내는 말도 있었다. 라케시스는 이 여자의 별명이란 걸 다시 곱씹었다. 함부로 악마 운운하는 게 아주 불유쾌했으나 요사스럽기가 이를 데 없어 ‘베갯맡의 악마’라 한다면 그럭저럭 끄덕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안락의자가 삭은 마루를 드르륵 긁으며 밀려났다.


  “……시간 낭비했습니다. 저는 가 보지요.”


  “어머나, 그래요. 트랭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다음 번엔 같이 해요. 요즘 손님이 뜸하니 내킬 때 오시고. 얘, 알렉시스! 손님 가신다. 또 오실 거니까, 달아 놔.”


  아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메르세데스는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곰방대를 탈탈 털었다. 그리고는 다락으로 든 고용인에게 우아한 손짓으로 손님을 넘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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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5시간 전

작가님 글을 읽을 때 늘 발생하곤 하는 문제가 처음 몇 문단을 읽을 때까지는 이 부분은 이렇게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이 표현을 이런 방식으로 꾀한 건 진짜 대단한 것 같다 이런 낱말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건가 아니 올해가 2019년인데 왜 소일렌트 그린이 나오는 것이지?? 같은 생각을 하는데

거기서 조금 더 읽고 나면

아 재미있네

밖에 안 남게 된다는 겁니다


재미있네요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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