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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두셀라의 쐐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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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09 Jan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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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소녀는 바닷사람이었다.


  그녀는 일찌거니 일어나 툇마루에서 해풍을 쐬었다. 진주 군도에서 바닷바람이란 정도만 다를 뿐 연중 끊이지 않는 법. 다만 오늘은 좀 심심하지 않나, 며칠만 있으면 폭풍이 몰아치지 않겠나 하며 뭉그적거렸다. 견갑골 아래에 남짓한 머리칼이 내내 바닷바람에 사뿐사뿐이었다. 잠이란 이 즈음 되어야 달아나곤 한다.


  그렇게 기척을 내자 곧 사용인들이 상을 보아 왔다. 아랫사람들이라지만 썩 정중하게 고마워하고는 숟가락을 들었다. 숙회였다. 진주 군도에서 아침 식사에는, 불을 아주 써도 안 되고 일절 끊어도 안 된다는 법도가 있다. 전자는 뭍사람의 도요, 후자는 물귀신의 도니 아침나절에는 그 중도에서 섬사람의 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상을 물리자 이번에는 별별 물건들이 다 들여져 툇마루에 놓였다. 물옷이며 뻣뻣한 솔, 작달막한 끌, 망시리 따위가. 그녀는 제법 분주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포만감을 만끽하기는커녕 이내 그것들을 잘 움킨 채 일어섰기 때문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따라 나서며 대문 앞 1리 밖까지 아가씨 잘 다녀오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가씨 하며 유난이었다. 두 갈래 파도 문양이 그녀를 배웅했다.


  쐐기섬의 봄은 후텁지근했다.


  어디 여름이라고, 가을이며 겨울이라고 아니 그럴까? 군도 사람에게 그런 명칭이란 절기의 뭉텅이를 가리킴이었다. 또 어디까지나 그들이 이방인임을, 돌아가야 할 곳이며 이루어야 할 것이 있음을 기억하자는 지표요 단서였다. 물론 지금에야 마법처럼, 전승처럼 그저 본뜻을 잃어 가고 있겠지만…….


  네 본도 중 셋째인 쐐기섬은 큰칼섬이나 지팡이섬의 반절 남짓이었다. 고지대인 쪽너울 저택에서 잰걸음으로 반 시진이면 해안에 닿을 정도로. 물론 되는 대로 배를 부릴 수는 없다. 이놈의 섬은 이름값을 하여 북쪽으로 뾰죽한 곶이 아니면 삼면이 해안 절벽으로 우둘투둘하니 만만한 곳이 못 되기 때문이다. 소녀는 총총, 갑의 저지대 끝 쐐기 선착장까지 거침없이 갔다.


  그녀가 얼굴을 비추자, 나르던 화물이나 손질하던 그물, 휘적거리던 타르 붓 따위를 내던지면서까지 난리가 벌어졌다. 쪽너울 아씨, 작은 아가씨 하며. 반가이 인사를 되돌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반면 경계 어린 목례와 함께 눈으로 졸졸 꼬리를 밟는 치들 역시 제법 되었다. 그네들은 갯바위나 돌고래 문양이 들어간 선박 근처에서 일을 보았는데, 섬기는 가문이 다른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고지고 온 짐을 쪽배에 척 내려놓았다. 입던 옷은 구깃구깃 개켜 방수포 사이에 처넣었다. 반라의 몸은 야무지고, 희었다. 진주 군도 사람들이란 바다의 축복에 임하여 살아 볕이란 그저 살갗 언저리에 겉돌 뿐 해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녀는 영 떫은 낯으로, 끈적거리는 물옷에 팔다리를 밀어넣었다.


  말뚝에 매인 채로, 파도도 못 된 물결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는 편주에 몸을 실어도 불안한 기색 하나 없었다. 제아무리 작은아씨라도 진짜배기 진주 군도 사람인 것이다. 그녀는 줄을 풀어버리고는 썩 무심하게 노질하여 배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야말로 벌거벗고 바다에 올라탄 셈이었으나 여전히, 대수롭잖았다. 


  쪽너울 일족의 진주밭은 쐐기섬에서 1해리 남짓 떨어진 쌍둥이 암초 사이에 있었다. 으레 연안에 두기 마련인 여타 양식장보다 관리가 힘들지만 소출이 월등하여 썩 한미했던 가문에 불과 삼 대만에 성직을 거머쥘 부를 안긴 노다지였다. 덕분에 가문에서는 직계손도 스쿠엘라 졸업 전까지 양식일과 물질을 직접 경험토록 하고 있었다. 


  막말로 옛 가풍이 채 덜 벗은 허물처럼 덩그런 셈이었다. 아닌 말로 현 진주의 사제 차녀가 손수 양식 일을 하다니, 이 군도에서도 상식이 아니다. 허나 그녀, 세미오나로 말할 것 같으면 희한하리만치 마뜩했다. 난사람인 언니라면 모르되 누군가는 묵묵히 가문을 지켜야 하는 법, 그런 사람 집안에 하나쯤 있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럭저럭 선착장에서 멀어지자 세미오나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언니 엘리오나가 어릴 적 가르쳐 준 것으로, 제법 별난 재주에 속했다.



바다를 보네, 나 바다를 보네.
우리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이며,
저 뭍에서 여기 바다로 나선 아이들이라네.


바다를 보네, 우리 바다를 보네.
천 년 뒤에 잃은 권능을 되찾아 나서리니,
소원은 다이달로스의 가호, 바다의 은총이라네.



  찬트의 축복을 받은 노가 바다를 갈랐다. 채 사분지 일 시진이 안 되는 시간에 세미오나는 일터에 닿았다. 조각배를 저어 붙이고, 붙들어 매 두는 것부터 시작했다. 진주 양식장은 이를테면 거대한 대나무 격자이다. 가로세로 네 척 정도인 구멍이 한 열에 셋씩 아홉 열로, 그렇게 격자눈이 스물 일곱인 대나무 틀을 넷 맞대어 띄우고는 쌍둥이 암초 사이에 단단히 붙들어 맨 것이다. 구태여 해류가 유난스러운 지점을 고른 셈인데, 진주굴이 더 억척스레 자라나게 하려 고조부께서 고안한 방법이라고들 한다.


  그렇잖아도 진주 양식이란 보통 손 가는 일이 아닌데 쪽너울 집안 진주밭에서는 갑절로 더했다. 양식 틀이 부정류에 부대껴 뒤틀리고, 밧줄일랑 닷새가 머다하고 닳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직계 차녀인 세미오나를 대나무질, 밧줄질이나 타르 덧칠 따위에 내몰 수는 없지 않은가? 사내 네다섯이 조를 짜 순번대로 하는 그런 고역에.


  덕분에 그녀는 패각 청소 담당으로 되어 있었다. 양식 진주굴에는 따개비나 파래, 여타 잡것들이 끼어 성장을 장해하니 따박따박 솔질하거나 끌질해 주어야 한다. 말이야 쉽지만 구멍 하나에 굴 한 판, 수천 개 진주굴을 어루만져야 하는 일이다. 그나마 이 사업에서 별일 아닌 일이 그 정도라는 것이니 전체 품을 짐작해 볼 법하다.


  세미오나는 굴판을 꺼내고, 진주굴을 이리저리 살피며 문제가 있는 굴은 떼어 내 솔이든 끌이든 달그락거리기를 반복했다. 파도를 따라 흔들거리거나 와락 요동치는 덕에 이따금씩 손을 쉬었다. 이 조개들이란 참 고마운 녀석들이다. 진주 군도는 작고 닫힌 세계인 터라 부침이 적다. 쪽너울 가문의 약진이 역사의 별사로 기록될 정도로……. 진주야말로 부와 권능의 중핵이어서, 그런 개벽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쪽너울 사람이 진주굴에게 어찌 고맙지 않으랴?


  곧 잡생각을 그쳤다. 덜 힘들기는커녕 도구가 잘못 나가 손 다치기 딱 좋으니 말이다. 대신, 마법 찬트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지만.



바다를 보네, 나 바다를 보네.
우리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이며,
저 뭍에서 여기 바다로 나선 아이들이라네.


바다를 보네, 우리 바다를 보네.
천 년 뒤에 잃은 권능을 되찾아 나서리니,
소원은 다이달로스의 가호, 바다의 은총이라네.



  파도끼리 설키고 해풍은 비껴 가, 바다가 얼마간 잦아들었다. 자연적 진주밭의 요동도 한결 덜했다. 섬의 마법사들은 이런 권능을 고작 굴 청소에 쓴다며 투덜렁거릴 것이다. 찬트를 받잡을 별일이 무엇이며 또 누가 그걸 정하는지 법도로 정한 적이 없는데도. 정녕 그러하다면 바다가 노하여 되돌릴 일이겠지…….


  정말 바다가 성이 나 되갚은 것인지, 세미오나는 순간 참 이상한 것을 보았다.


  그 이상한 것이란 바로 사람 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무인도 사이 만경파 조각 위에 무슨 조화라는 말인가? 께름칙함이 척추를 훑어, 세미오나는 끌을 와락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얼른 도로 주워 단단히 움켰다. 허깨비가 아니라 물귀신 등속의 부정이라면 들입다 날로 두들겨 결딴내려는 것 같았다. 


  격자눈을 대여섯 칸 건너자 허상은 형상이 되고, 형상은 실체가 되었다. 겅중걸음을 걸어, 그 망할 놈의 팔을 붙들었다. 붙들어 두려고 했다. 비명을 내지르며 몇 걸음 도망을 놓았다가, 다시 그걸 매만지는 데 얼마간 시간이 걸렸다. 아직 산 사람을 그렇게 내버려둘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세미오나는 그 몸뚱이를 어떻게든 건져 올려, 기도의 염수를 빼냈다. 그 후 아득바득 밀고 끌어 조각배에 실은 일체의 과정이 바다안개에 가리어 버린 것만 같았다.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한 시진은 숫제 폭풍 속이었고. 어쩌면 노질을 했을 테고 또 어쩌면 노래를 부르짖었겠지. 또는 흐느꼈는지, 비명을 내질렀는지 저 무심한 바다만이 알리라.


  어찌되었든 그녀는 쐐기섬 부두로 돌아왔다. 돌아와 악다구니를 썼다.


  “저기! 쐐기섬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각자 업무로 바쁜 사람들도 저 아가씨가 왜 저러나, 그럴 만치 요란뻑적지근했다. 물론 곧 혼비백산하여 연장을 내던지고 법석이었다. 몇은 실려 온 것이 사람인지 시체인지 살폈고, 또 몇은 섬 내지로 와르르 뛰었다. 비일상은 신속하고, 무자비했다.


  긴장이 풀린 세미오나는 턱 엎어지더니 시원하게 게웠다. 채 덜 삭아 흐물한 생선 살점이 드문드문이었다. 군중들은 재차 뜨악하여 아가씨가 편찮으시니, 작은 아씨가 체증이 있으시니 하며 법석을 떨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경련이 멎고 너털웃음이 터질 정도로. 참 총체적으로, 이 모든 것이 어떤 질병처럼 사무쳤다.


  본가로 쫓아갔던 치들은 진주의 사제, 엘라라드를 모시고 왔다. 어찌나 법석을 떠는지 그 권위를 면전에 두고서도 물귀신이니 요로나의 저주니 온갖 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조용히들 하시오. 척 보아도 사람이지 않소? 세미오나, 괜찮으냐? 네가 설명하는 게 수순에 맞을 것 같구나.”


  듣다 못한 진주의 사제가 일갈했다. 더 이상 함부로 입을 놀리는 사람은 없었다. 없는 기운에 몸을 일으키려던 세미오나가 해쓱해지며, 비틀거렸다. 군중 전체가, 반 박자 늦게 주춤거렸다.


  “몸이 안 좋으면…….”


  “아뇨, 아버지. 아침 먹은 걸 죄 토해냈으니 당연히 기운이 없겠죠.”


  그녀는 밧줄 거는 말뚝에 걸터앉아 더듬거렸다. 여느 때처럼 패각 청소를 시작한 일, 찬트를 부르다 위화감을 느낀 일, 양식장에 걸린 사람을 건져 올린 일. 아버지인 진주의 사제는 물론 부두 노동자 십 수 명까지 대번에 휘어잡은 그 이야기는, 사람들을 절로 창백케 했다. 뭍사람이다, 이건 뭍사람이다, 뭍사람이 해류에 실려 왔다…….


  그런 기탄은, 감히 사제의 권위를 불쑥 잊게 만들 정도로 크고 뾰족했다.


  “저게 물귀신이 아니면, 뭍사람이라는 말 아닙니까, 사제님?”


  “뭍사람을 군도에 들이다니,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당장 바다에 처넣어야 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요. 진주 군도의 다이달로스 율법에서는 큰칼섬, 지팡이섬, 쐐기섬과 거울섬 네 본도에 뭍사람을 입항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


  진주의 사제는 손을 들어 움질거리는 군중을 제지하고는, 신속하게 덧붙였다.


  “사람을 입항시킨다는 것은, 배나 여타의 사물과는 다르오. 이는 우리가 섬사람의 도와 뭍사람의 도, 물귀신의 도를 나누어 두는 것과 이치가 같소. 사람 답게 들어오지 않는 한, 사람으로 입항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쪽너울 사제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대로 저 자를 섬에 두라고요? 해일이 노하실 일입니다!”


  “다이달로스시여, 오, 다이달로스시여……. 어찌 사제께서 율법을 곡해하고 뭍사람을 두둔하십니까?”


  사람들은 화가 나거나 반기를 든다기보다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권능이 풍화된 섬에서 율법만이 그 원형으로 둥두렷하니 엉뚱한 것을 숭배하는 언어도단으로 화하는 일…….


  사제는 그런 뭇사람들을 책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는 직위인 것이다.


  “입을 조심하시오. 아니면 내게 데사피오를 신청하든가.”


  이어지는 말은 조금 누그러졌다. 결투를 종용하는 것은 아니니.


  “나는 율법보다 높은, 자연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요. 죽어가는 자를 돕는 것이 인의라는 말이오. 저 자를 치료하고, 건강케 한 후 내보내겠소.”


  “하오나!”


  “하지만 사제님……!”


  엘라라드가 재차 타일러 흩기 전, 냉수대의 얼음장보다 찬 일갈이 날아들었다.


  “어디 멸치새끼들처럼 분별없긴……. 진주 군도에서 언제부터 사제의 권위 앞에 그 따위 무례가 용인되었나요? 하오나, 하지만은 데사피오로 대신하세요.”


  절해가 밀려들어 내지에 들이닥친 듯 싸느랗고 무심했다. 파도며 해풍이고 너울이며 폭풍우, 해진과 해일 같기도 했다. 섬사람들 눈엔 여인이 아닌 변화무쌍한 바다의 권능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하염없이 벌벌 기었다. 사제는 같은 섬사람이니 말대답이 무례일지언정 통하나, 바다란 사람 법칙을 그저 무화하고 들이닥치는 것이다.


  바다 마녀 엘리오나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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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20.01.20. 20:04

장해와 설키다 사용이 인상적이네요. 문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항상 어렵더라고요. 특히 판타지에서는 더 그렇다 싶던데 고유명사 처리나 조어에는 늘 감탄하며 읽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장녀 카리스마가 강렬한데 작은 사회 속에서 파문이 어떻게 번져갈지 궁금하군요. 이솔렛 생각도 안 날 수가 없고요.

정판 찾기가 참 어려워졌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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