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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프대] 탑에서 글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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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Jan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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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키위
협업 참여 동의

나는 망했다.

사람이 보통 망했다고 하면 여러 가지 원인이 겹쳐진 게 많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아주 간단했다.

사기를 칠 생각은 없었는데, 사기꾼이 된 것이다.


“근처에 있을 거야! 찾아!”

“젠장, 어디로 간 거야?”


고함과 욕설이 근처에서 들려온다.

진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오늘은 언제나와 같은 하루였을 것이다.

평범하게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보며 잠시 편의점에 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다음 화를 결재하기 위해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한 순간, 눈 앞에 이상한 화면이 나타났다.

내 손가락은 결재창을 결재하는 대신 정체불명의 화면을 눌렀고, 그 결과 이상한 장소로 이동되었다.

그 직후 왠 요정이 나타나서 튜토리얼을 시작한다며 선언하질 않나.

바락바락 대드는 아저씨의 머리를 단번에 터트려버리질 않나.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탑 등반물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단 것이다.

비록 내가 주인공인지 엑스트라 1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진짜 별 거 아니었다.

그냥 상태창에 커뮤니티 기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그냥 장난을 쳤을 뿐이다.

빌어먹을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을까?

가끔씩 커뮤니티에 올리던 뻘글을 가지고 장난을 쳤을 뿐이다.

그러니까, 대충 이런 글들 있지 않는가?


[뉴비들은 이 글부터 봐라.txt]


이런 식의 제목을 보고 들어가보면 ‘이-글’ 이러면서 독수리 사진을 올려두는 낚시글들.

나도 대충 그런 식의 낚시글을 올렸을 뿐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장난삼아 낚시글을 비공개글로 설정했을 뿐이다.

읽으려면 100코인을 지불해야 하는 글.

솔직히 누가 100코인을 지불하고 글을 읽겠는가?

막 요정에게 코인의 중요성을 강의받은 상황인데?

그래. 솔직히 비공개글로 설정한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내가 제목 어그로를 너무 심하게 끌었다는 것이다.


[0회차 선배가 알려주는 팁. 탑에 들어왔으면 이 글부터 봐라.]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 제목에 그렇게 어그로가 끌릴 줄은 몰랐지.

처음으로 100코인이 들어왔을 땐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500코인이 모였을 땐 조금 미안했다.

그리고 1000코인이 모이고.

마침내 9800코인이 모였을 때는 한 가지 생각밖에 안들었다.

좆됐구나.

당연히 사람들은 그런 낚시글에 당하고 가만히 있지 않았고, 곧 작성자를 찾아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쫓기고 있는 것이다.


“다들 이리로! 여기 흔적이 있어!”

“안에 있는거 아니까, 당장 나와!”


이런, 벌써 내가 숨은 동굴을 찾아낸 모양이다.

슬쩍 동굴 밖을 엿보니 살기등등한 표정의 사람들이 보인다.

분명 저 사람들에게 잡히면 죽겠지?

응. 100% 죽을 거다.


“시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솔직히 저런 낚시글에 낚인 사람이 잘못 아닌가?

그래. 난 잘못 없어.

나쁜 건 저 사람들이야. 

지금 와서 코인을 돌려준다고 해서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 그렇게 하면 정상 참작을 해주지 않을까?


“넌 시발, 잡히면 죽여버린다!”

“내 코인 뱉어내, 사기꾼 새끼야!”


응, 그럴 일은 없겠네.

밖에서 들려오는 살기등등한 목소리는 잡히면 죽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더욱 확고히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이태현]

-직업: 무직

-체력: 10

-힘: 5

-마력: 0

-민첩: 7

-코인: 10300

*코인을 소모해서 능력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코인을 모아 강해져 보세요!


내가 가지고 있는 10300개의 코인을 전부 스탯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가뿐히 포위를 뚫고 도망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저 사람들과 양호한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고.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애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그리고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코인을 능력치를 올리는 데 투자했다.

민첩과 체력에 전부 투자된 코인이 내 몸을 폭발적으로 강화시켜주었고.


“뭐, 뭐야?!”

“왜 이렇게 빨라?!”


나는 잔뜩 성이난 사람들의 추격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3년이 흘렀다.


[이태현-25층]

-직업: 소설가 지망생

-체력: 34

-힘: 21

-마력: 5

-민첩: 47

-코인: 1300

-퀘스트 진행 상황: 1/3

*당신만의 소설을 집필해 보세요! 


3년이 흐르는 세월동안 온갖 일이 벌어졌다.

새로운 사람들이 탑에 들어오고, 사람들은 천천히 탑을 등반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하기도 했었다.


“어디 보자, 슬슬 돈이 들어올 때가 됐는데...”


[4200코인이 지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탑 안에서 글먹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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