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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프대]형제의 여름, 부부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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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면 무성한, 그리고 넝쿨진 삼을 자른다. 이파리는 모조리 걷어내고 줄기를 삶아낸다. 여지껏 푸르렀던 껍질을 벗겨낸다. 옷감으로 쓸 것은 아니니 두드리진 않는다. 응달에 잘 펴서 바람에 말리면 질기기긴 하나 날카로운 것에는 쉬이 잘리는 것이, 튼튼한 편은 아니다. 철사 한 가닥을 집어넣고 세 갈래의 삼을 꼬아 새끼 손가락만한 밧줄을 만든다. 이번 여름에는 넉넉하게 열 꿰미를 만들었다.


 그물 대로는 유연하면서도 곧은 물푸레나무가 제격이다. 반나절을 찾아보아도 적당한 길이의 나무가 없어 조금 꼬부라지긴 했어도 쓸만한 것을 골라서 베었다. 휜 것은 틀에 넣고 불기운을 쐬여 펴주었다. 그물을 완성하는 것은 손재주가 괜찮은 동생에게 맡기고 목을 찾아 나선다. 아무래도 탁 트인 곳보단 물이 있고 벽이 있는 곳이 좋다. 계곡도 괜찮고 늪도 좋다. 이번엔 계곡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미끼도 중요하다. 당연하지만 오래되어 색이 바래고 흐트러진 것보단 생생한 것이 좋다. 창고에 있는 것은 겉보기엔 괜찮아 보인다. 초보라면 딱히 고민하지도 않고 쓸 정도지만, 내가 보기엔 영 못마땅하다. 녀석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겠지. 겁이 많으니까. 하지만 미끼를 새로 구할 시간도 없고, 이 근처에는 우리 같은 사냥꾼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 녀석들도 크게 경계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이번까지는 한번만 더 써보자. 그래도 엉성한 부분은 잘 안보이게 놓아야겠지만 말이다.

 

 계곡의 바닥을 긁어내어 평평히 하고 큰 바위를 치워 수위를 낮춘다. 신발 밑창만 적실 정도의 깊이다. 바위는 아무데나 던져놓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도록 세심히 신경써서 놓아야 한다.

 마침 동생이 완성된 그물을 어깨에 걸치고 가져왔다. 그물 코가 너무 작은듯 싶어 동생에게 꾸중하니 들은 체도 안하고 무시해버린다. 버릇없는 녀석. 아버지에게 배운 것중에서 손재주 말고는 형편 없는 놈인데, 이젠 그것마저 포기하는구나.


  그물을 물 아래에 숨긴다. 그물대 끝에는 밧줄을 연결해 언제든지 당길 수 있게 만들었다. 자갈과 흙으로 밧줄을 덮어 보이지 않게 한다. 동생과 나는 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동생은 벌써 여름 별미가 기대가 되는지 신나서 중얼거린다.


 "...녀석들이 좀만 느렸어도 그물같은 건 필요 없을 텐데 말야. 워낙 재빨라야지. 물론 버섯처럼 가만히 있는 걸 따 먹는 것보다 이렇게 고생을 하니깐 맛있는 거겠지만 말야. 또 날이 추워지면 통 보이질 않으니, 겨울엔 가끔 무리지어서 날아가는 것만 보이고 도통 내려앉질 않으니까. 찬 바람 불 때, 녀석들은 기름이 통통히 올라서 맛있지. 그치?"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아도 잔뜩 신이나서 떠들어 댄다. 아버지라면 그런 모습에 웃음을 지어보일 테지만, 형으로선 영 못마땅하다.


 "쉿."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동생의 입을 틀어막는다. 물을 마시러 온 녀석들이 보인다. 흰 깃털이 물빛에 반짝인다. 녀석은 물가에 앉아 물을 첨벙거린다. 작은 물고기가 제 다리 사이를 지나는 것을 즐거워한다.

  옆에는 제 짝인듯 화려한 색의 숫놈이 있다. 두리번거리며 긴장한 모습이다. 목을 쭉 빼들고 돌아본다지만 양쪽은 비탈과 무성한 나무가 시야를 가리고, 상류 쪽엔 미리 놓아둔 바위에 잘 보이지 않는다. 불안할테지.


 '당기자 형!'


 '아니, 아직이야. 한 번에 잡아야 나중에 또 잡지. 미련한 놈.'


 각자 쥔 밧줄을 당기냐 마느냐 다투었다. 눈은 고정한 채로 말이다. 숫놈은 여전히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물가에 놓아둔 작은 새 모양 미끼를 유심히 살펴볼 때는 나도 가슴이 조금 철렁했다. 지금이라도 당겨야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후, 숫놈은 그제야 경계를 푼 듯 짝 옆에 붙어서있는 모습이다.


 "지금!"


 밧줄이 당겨지고 자갈이 튀어오르며 그물이 솟아오른다. 물보라가 반짝거리며 부서진다. 깜짝 놀란 녀석들은 날개를 펼쳐날아올랐으나 그물이 덮치는 것이 더 빨랐다.

 암놈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느다란 팔다리를 휘젓지만, 그물이 더욱 엉켜들 뿐이다. 숫놈은 죽은 것처럼 늘어져 있다. 동생이 두꺼운 손을 뻗어 암놈의 목줄을 틀어쥔다. 그 때, 숫놈이 칼을 뽑아 동생의 가슴팍을 찌른다. 

 소용없는 짓인데도. 우리 형제는 트롤, 갈라지고 터지고 베여도, 단숨에 아물어버리는 생명력이 있다. 흉터는 조금 남겠지만, 동생은 오히려 좋아할 테지.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숫놈의 머리통을 단매에 깨뜨린다. 제 머리가 터지는 것도 느끼지 못했겠지.


 "안돼!"


 "제발 살려주세요!"


암놈이 비명을 지른다. 그물 안에서 버둥거리는 모습이 퍽 애처로워 보이는데, 동생은 멍청히 입맛만 다시고 있다.


 "형은 윗 쪽 먹어, 나는 다리가 맛있더라"


 "아우야, 내장이 맛있는 거래도. 물이나 끓여라. 깃털을 뽑아야하니까. 그전에 날개 깃은 뽑아서 모아두고. 미끼가 엉망이야, 손 좀 봐야지."



오늘 새잡이형제는 조인 두 마리를 잡았다. 땀을 많이 흘렸으니, 하나는 소금을 넉넉히 쳐서 국물을 내어 끓여먹고 나머지 하나는 알을 낳아 기르도록 하자. 병아리가 태어난다면, 잘 키워서 아버지의 제사에 쓰도록 하자. 조인은 드셔보지 않았겠지만, 산비둘기는 좋아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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