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판프대] 산에서도 강하게 살아간다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협업 참여 동의

“태초에 천족과 마족이 있었다.


마족은 지상의 황무지에, 천족은 천상의 왕국에 살았다.


어느 날 마족이 천상의 왕국에 올라가서 사악한 언사로 천족들을 유혹했다. 


‘선한 영혼들이여. 나는 여러분을 나의 왕국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황소와 암소와 화덕과 아내를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집과 아이들도 갖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성가시고, 버릇없고, 지저분하고, 시끄럽지만.


여러분은 아이를 돌보면서 이곳에서 느끼는 안식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천상의 영혼들은 마족의 계략에 속아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피와 살이라는 껍데기에 자신을 가뒀다.


그리고 서로를 오염시키며 세상을 악으로 가득 채웠다.”


사제는 온화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설교를 이어갔다. 그는 노새 위에 앉아서 군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리나 여인숙 앞 큰길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아닌 외딴 지역이었기 때문에 설교자의 실력과 명성에 비해 많은 사람이 모여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진정한 사제들은 마왕의 종복인 가짜 사제들을 조롱하는 듯 일부러 아무 장소에서 아무 때나 설교를 하곤 했다.


악의 기원에 대한 설화 다음에는 청빈과 육식 거부와 비혼주의를 장려하는 강론이 이어졌다. 선한 사람들이 믿는 '진짜 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과 동물의 영혼을 제외한 지상의 모든 것은 악마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해서 들은 이야기였지만, 자크 달레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끝까지 경청했다. 그는 남다른 감식력을 가진 설교 애호가였다. 진짜 종교든 가짜 종교든 사제들의 설교는 언제나 새롭고 흥미로웠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즐겨 사용하는 어휘나 강조하는 주제는 같지 않았다. 같은 사람의 설교라도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인상이 달랐다. 


예컨대 지금 같은 때는 사제가 예언하는 종말의 시간이 이전처럼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북쪽에서 내려온 마왕의 군대의 손에 수확철을 앞둔 포도와 곡식이 모조리 불타고, 도시의 높은 성벽 안으로 피신한 사람들도 사방에서 하늘 높이 솟아오른 검은 연기들을 볼 수 있는 주님의 해 1244년 8월 2일의 오베르됭 시에서는.


사제 피에르 루셀이 설교를 마쳤다. 그는 노새를 몰아서 자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노새의 등에서 내려온 다음 자크의 양손을 반갑게 붙잡아 올렸다. 피에르의 키는 상당히 큰 편이었지만, 자크는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기에 인사를 받아주기 위해 어깨에 힘을 빼고 양팔을 아래로 늘어뜨려야 했다.


“자크. 무사했군. 난 자네가 죽은 줄 알았네. 블라냑 백작에게 이미 마왕의 군세가 도시 밖의 들과 강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 들었거든. 자네의 영혼이 윤회를 마치고 천국에 올라갈 수 있도록 오늘 새벽 주님께 기도를 마친 참이네.”


자크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선을 알고 실천하는 의인(義人)들의 기도가 탐욕스러운 가짜 사제들의 기도보다 훨씬 효험이 있다는 것은 이곳 남부에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퐁트니의 숲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전령 두 놈을 붙잡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고문하겠다고 위협만 했는데도 전초부대와 본대의 위치며 예정된 진군로며 다 불더군요. 그렇게 얻은 정보에 더해서, 운이 좋았거나 주님께서 도우셨는지 그뒤로는 적병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자네에 대한 계획을 아직 많이 가지고 계신 모양이네.”


“예. 물론 그렇겠지요.”


자크는 운이 좋았다는 말이 사제의 심기를 조금 불편하게 했음을 깨달았다. 사제들. 특히 의인들은 하늘의 별이 인간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세속의 믿음을 건전하지 못한 미신으로 여겼다. 고기를 먹거나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는 것을 묵인했듯이, 더 커다란 선을 위해 대개는 속인들의 말실수를 용서해주었지만.


자크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화제를 돌렸다.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습니다. 의인들의 말에 의하면, 그리고 책에 적힌 바에 의하면 악인들의 영혼은 죽어서 뱀이나 개구리로, 그보다 덜 나쁜 사람들은 산짐승과 가축으로, 착한 사람들은 여자로, 그보다 더 착한 사람들은 남자로. 그리고 진정으로 선한 삶을 살아온 의인들은 육신을 벗고 천족으로 환생하지 않습니까?”


“맞네.”


“그러면 천국에는 남자들밖에 없는 겁니까?”


“물론이네. 마족의 유혹에 넘어가기 전, 선하고 완전했던 천상의 영혼들은 동물보다는 인간, 그리고 여자보다는 남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사제가 엄숙한 얼굴로 선언했다. 그리고 안심하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자네는 미혼이고 아이도 없지 않은가? 비록 평생 피와 살의 죄를 범했지만, 자네는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승천하거나 적어도 다음 생에 다시 남자로 환생할 수 있을걸세.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의인들이 그동안 주님께서 자네의 영혼에 자비를 베풀기를 기도했을 테니.”


자크는 팔꿈치를 들고 목덜미를 긁적였다. 아주 잠깐동안 불경스러운 생각이 떠올랐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진리와 선에 대한 사랑이 승리했다. 그는 세속의 모든 유혹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항상 잊지 않았다.


그때 성채가 있는 방향에서 병력 소집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가 울렸다. 그날 아침 자크가 잡아 왔던 포로들의 심문이 끝난 모양이었다. 자크는 사제의 양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한 다음, 등자에 발을 걸치고 말 위에 올라탔다.

 

***


지혜롭고 용감한 기사인 블라냑 백작은 총 6만에 달하는 적의 주력이 전부 집결하기 전, 그리고 아군이 양떼처럼 벽 안으로 내몰려 완전히 고립되기 전 마지막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중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출전하기 직전 30명의 평민과 종자(Ecuyer)들에게 기사 직위를 수여했다.


하지만 수여식을 앞두고 자크 달레락은 기사가 되기를 거부했다. 백작이 의아한 듯 물었다.


“자네는 비록 농민 출신이지만, 지난 수년 간 종자로서 군역에 봉사하며 저명한 기사들 못지않은 충성과 용기를 증명했네. 과분한 영광도 아닌 마땅히 누릴 자격이 있는 명예를 어째서 거부하는가?”


자크는 그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제 영혼이 저주받지 않도록 염려해준 의인들의 기도에 보답하기 위해 저도 지상에서 가진 것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답 대신 주먹이 날아와 꽂혔다. 맞은 사람이 휘청거릴 정도의 충격을 가했지만 아프지는 않은 노련한 주먹질이었다.


“헛소리 말고 일어서게, 자크 경.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네. 성이 함락되면 자네도 나도 의인들도 사이좋게 나란히 화형주에 매달릴 테니, 그때 가서 맘껏 용서를 빌든지 하라고.”


자크는 머쓱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크 달레락 경이 되었다. 


블라냑 백작의 경우에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기사라는 이름이 과연 허명이 아니었다. 정확히 8주 뒤 그가 언급한 사람들의 운명은 정말 그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졌다.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62'이하의 숫자)
of 62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