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판프대] 그 차갑고 신성한 손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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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0 Jan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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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현안인
협업 참여 동의

바위에 낀 이끼 냄새가 정체된 공기에 섞여 퍼졌다. 익숙한 정도의 습기다. 남자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곳입니다."


철통 같은 경비를 자랑하는 게헤르 성 지하감옥 심층으로 가는 길. 달조차 뜨지 않은 어두운 밤이었다.


"혼자서 장정 다섯을 거꾸러뜨린 괴물입니다.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물론, 선생 같은 전문가에게는 일도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경비병은 창을 굳세게 쥐며 다시 한 번 다짐을 받는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절반, 증오가 절반 자리잡아있었다. 긴장을 떨치려는 듯 자꾸만 횃불을 다시 거머쥐었다.


"흉악한 녀석이란 소리는 귀가 닳도록 들었소."


남자가 기침을 하며 거칠게 연초를 껐다. 연기가 허공에 날렸다. 경비병은 횃불을 이리저리 휘저어 연기를 지워버렸다.


"무언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경비가 레버에 손을 대자 철컹이며 강철 톱니바퀴가 돌아갔다. 녹슨 철이 부딪히며 찢어지는 소리를 내었다. 쇠사슬이 하늘로 말려들어가며 문이 열렸다.


남자는 숨을 들이쉬었다.


남자의 시선 끝에는 은의 비율을 낮게 한 족쇄에 다리를 결박당한, 은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인랑족 소녀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간수의 횃불에도 반사되어 빛날 만큼 아름다운 백옥 같은 피부였다. 그러나 족쇄에 닿은 살점은 이미 빨갛게 부어있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피를 쏟을 만큼 피부가 약해져 있어, 거친 철 표면에 노출돼 피딱지가 뭉친 부위도 있었다. 딱지가 생기고는 닳아 떨어지는 반복이었다. 그녀의 허벅지에는 인두로 지진 화상 자국마저 잔뜩 부어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아름답다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상처가 생기기 전이라면, 인간마저 홀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리라.


늑대의 핼쑥해진 얼굴은 그동안의 피로를 나타내는 듯했다. 옷이라고도 부르기 힘든 거적 바깥에는 여러 갈래의 채찍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떤 고문을 해도 절대 말하지 않더군요."


경비는 소녀를 보며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늑대에게 천천히 다가가 배를 걷어찼다.


늑대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차디찬 벽에 날아갔다. 배를 감싸며 괴로워하는 그 모습은 인간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


남자는 떨리는 손을 억누르고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거세게 빨아들였다. 다시 기침이 새어나왔다. 경비는 남자에게 단검의 손잡이를 건넸다. 은제 단검이었다. 그는 이것이 순수한 은으로 만들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괴물은 괴물입니다. 마지막까지 실토하지 않는다면…."


경비는 말을 끝내지 않았다. 남자는 수긍하고 칼의 손잡이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경비에게 손짓을 해 물러나게 만들었다. 감옥의 문이 닫혔다. 외부의 소리마저 차단된 이 곳은 완전한 밀실이었다.


늑대가 배를 감싸쥔 채 웅크리고 신음했다. 그 덕에 앙상한 등뼈가 더욱 부각되었다. 파리마저 날아다니는 더러운 환경. 남자는 옷에 달라붙은 파리를 떨쳐냈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겠나?"


남자가 소녀의 턱을 붙잡아 강제로 들어올리고, 눈을 마주쳤다. 몸이 들려져 은족쇄에 피부가 닿았는지, 괴로워하는 소리를 내었다.


필사적으로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던 그녀는. 남자를 겨우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동공은 확장되고,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넌…."


남자가 거칠게 입을 막고 있던 재갈을 풀자, 소녀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물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 다 갈라져가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남자는 그 말을 이해한 듯 했으나,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았다. 소녀의 얼굴에 겹쳐진 반가움은 순식간에 감춰졌다.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간 그녀가 말했다. 늑대의 언어로.


"이게 목적이었던 거야?"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담배 연기를 뱉어낸다. 그녀의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못 듣는 척 하지마. 알아듣는 거 다 알고 있어!"


소녀는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손발에 묶인 철구는 무거웠다. 무게에 이끌려 바닥에 쓰러진 그녀의 곁에 은제 칼날이 다가온다. 그녀의 몸에 칼날의 몸체가 닿는다.


그 정도만으로도 타들어가는 고통이 온 몸을 내달린다.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나 너무나 쇠약해진 그녀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냄새… 담배로 지워질 것 같아? 나는 기억…."


늑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고, 고통에 찬 신음만이 울려퍼졌다. 그럼에도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칼날을 가져다댄다. 다리. 팔. 목.


칼날이 닿은 곳에 새빨간 삼각형이 남았다. 머리로, 가슴으로 가까워질수록 고통은 심해졌다.


"말해. 어서."


남자가 인간의 언어로 말했다. 칼날이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고, 그제야 늑대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쌕쌕대며 숨을 들이쉬는 그녀는 입을 열었다.


"이럴 거면 지금 죽여줘. 제발."


그녀는 비틀리며 일어나, 칼날을 양손으로 잡고 자신의 목에 가져다댄다. 손에서는 치지직하는 소리가 나며 살갗이 타올랐다. 남자가 칼을 빼앗으려 하나, 죽을 힘을 다한 그녀의 손에서 빼낼 수 없었다.


"어차피 죽게 될 거라면, 네 손으로 죽여줘. 그나마, 생판 남에게 죽는 것보단 나아."


여자는 간청쳤다.


"당장 말 하라고!"


남자는 인랑의 언어로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너잖아. 역시 너였어."


남자는 칼을 치우려고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여전히 그녀의 팔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그녀의 손이 은에 타들어갔다.


"이거 놔!"


칼날을 빼앗던 남자는 소녀의 어깨를 발로 찼다. 나동그라진 그녀는 묘한 웃음을 띄며, 다시금 그에게 기어갔다.


"넌 나를 알잖아. 응?"


"가까이 오지 마!"


남자가 외쳤다.


그녀의 손은 완전히 만신창이었다. 칼날을 잡느라 베인 상처에서 피를 뚝뚝 떨어뜨렸다.


"제발. 그냥 말해! 그러면 돼!"


남자는 절규했다.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넌 모르겠지."


그녀는 손바닥이 아팠는지, 손등으로 기어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그녀를 밀어내려 해보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너는…. 너는 살 수 있게 해볼게."


"그럴 필요 없어."


남자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워졌다. 늑대는 남자를 쓰러뜨렸다. 그보다는 남자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냥. 이 자리에서 날 죽여줘. 우리 부족을 위해서."


늑대는 남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부족을 위한다는 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 부족이 너에게 뭘 해줬다는 거야. 지금도, 널 미끼로 던지고 도망쳤을 뿐이잖아!"


남자는 인랑어로 외쳤다. 늑대는 남자에게 더욱 다가갔다. 숨소리마저 서로에게 전해지는 거리. 고통을 참는 듯한 거친 호흡이 오갔다. 그들의 사이에는 은제 단검만이 있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늑대는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이걸로 확실해졌어. 너는 이해하지 못 해."


늑대가 덧붙였다.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왔으니까."


남자의 눈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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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썼던 글의 앞부분인데... 사아알짝 고쳐서 올려봅니다... 참 못 쓴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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