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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프대]자고 일어나니 1억 빚이 복리로 5년 묵혀있던 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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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01 Jan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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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네크
협업 참여 동의

데자뷰, 느껴본 적 있나?

나는 느껴본 적 있다. 아니, 일부러 찾아나선다고 해도 좋겠지.

90년대, 인터넷이 태동하던 윈도우 98의 시대.

누구나 HTML을 배우고 나모 웹에디터를 열어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만들겠다는 꿈이 만연했던 시대.

저작권이라는 세글자를 듣지도 못한체 이쁘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따고 모아 새 창으로 열기 태그를 집어넣던 시대.

나는 그런 사이트를 찾아나서는 취미가 있다.

지우는 것을 깜빡한 더미데이터들. 지금은 쓰이지 않는 황량한 넷상의 폐허들.

몇가지 검색어를 조합하면, 그런 쓰레기장에 손쉽게 다가갈 수 있다.

그래. 나는 바로 어제 자기 직전까지, 그런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었다.


"정신차려 새끼야!"


하지만 깨어나자, 나는 내 방에 있지 않았다. 이상한 공장. 차가운 공기.

머리가 한차례 크게 울리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방금 전까진 자고 있었는데?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이 새끼가 어디서 빚 갚을 생각은 조또 안하고 자빠져서 쳐자고 있어!"

"자, 잠깐, 무슨 소리를- 사람 잘못 보셨어요!"


일단 되는대로 대꾸해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빚이 나에겐... 없을거야. 아마도. 기억하는 한 나는 신용불량자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 고통은 진짜다. 이 깡패들은 날 죽이든지 돈을 받던지 할 생각으로 날 끌고 온걸테다.

하지만 왜?

난 돈을 빌린적이 없다고.


"크, 크하하하하하!"


날 때려친 문신 아저씨가 크게 웃었다. 유튜브에서 빙판에서 나자빠진 꼬맹이 영상을 본 것만도 같다.

고개를 돌리자, 그게 꼬맹이가 아니라 나라는 점을 알아차린게 문제겠지만. 빙판이 아니라 시멘트인 것도 문제일거고.


"이 새끼 봐라, 야, 봉식아. 이새끼 참 대단한 새끼네. 1억을 빌려놓고 5년동안 쎄빠지게 도망치던 새끼가 뭐? 돈을 빌린적이 없다고? 아니, 그럼 왜 도망다니고 계셨어요? 어? 새끼 참 개그는 잘치는구만!"

"아니, 잠깐만요, 뭔가-"


하늘이 또다시 울린다. 이제는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남자가 주먹으로 강하게 후려친 것이다. 

허나 몸은 꺾이지 않았다. 뭐지? 격통 속에서 몸을 조금 움직이자 답이 나왔다. 나는 지금 묶여있구나. 의자에.

5년 전. 나는 5년 전에 뭘 하고 있었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다가, 뭘 저질렀던 거지?


"이제 좀 기억이 나냐? 아니면 머리를 좀 더 쓰다듬어 줘야 정신을 차릴래?"

"윽... 5년... 전이라구요?"

"그래, 새끼야. 귀 먹었냐? 5년 전, 그러니까 2015년... 봉식아?"

"2015년 3월 2일입니다 형님."

"이야! 5주년 기념일이네! 축하한다 야! 월 복리 8퍼센트라는 제 일 금융권 못지 않은 제살깎아먹는 장사논리로 형님이 니놈새끼에게 1억을 빌려준지 정확하게 5년! 개월로 따지면 60개월! 갚아야 할 빚 총액은-?"


나한테 물어보는건가?


"봉식아!"

"아, 예 형님! 정확하게 천십이, 억, 오천칠백... 육만삼천, 육백육십하고 팔원입니다!"


뒤에 있는 덩치 큰 깡패가 핸드폰을 보면서 띄엄띄엄 이야기했다.


"그래. 그동안 넌 한푼도 돈을 갚지 않았지. 하지만 그간 그렇게 도망다니고 있었던거엔 뒷배가 있었던거지, 아니야?"

"잠깐, 잠깐만요. 저는 도망친 적이 없어요."

"하하하! 이새끼 또 개그치네. 적당히 해라 새끼야. 1절만 하라고."

"아니, 진짜, 진짜로요!"


이 깡패들의 행동이 진짜인 것과 별개로, 나는 정말로 무고하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진짜라면.


"...저는 6년동안 집에서 나온적이 없단 말이에요."

"뭐?"

"도원구 태평동 삼라 아파트 2차 209동 802호. 일거리도 못잡고 거기서 6년동안 비참하게 살았어요."


깡패의 얼굴이 의아한 표정으로 뒤바뀌었다. 뭐지?

무슨 사실이 그를 의문에 빠트리게 한거지?


"구라치네, 미친새끼. 망상이 좀 심해야 들어주지 씨발, 야, 공구리 준비해라."

"아니, 진짜라니까요!"

"씹새끼가, 거기 재개발해서 다 허문지가 언제인데? 그 단지 통째로 4년전에 밀어서 없어졌다고."

"네?"


뭐라고? 내가 방금까지 자고 있었던 집인데?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2015년 3월 2일.

그 당시에, 그 날은 다른 어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 날에 이루어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은 존재한다.


"그게, 정말이었던거야?"


어젯밤, 싸구려 신스 음악이 펼쳐진 수상쩍은 홈페이지.

그곳에서 나는, 2020년의 신용카드 번호를 집어넣어 쓸데없는 물건을 구매했었다.

작동할리도 없고 전송될리도 없는 장소이기에 별 의심을 하지 않았지.

하지만.


"뭔 개소리를..."

"잠깐만요. 기다려봐요. 좋은 사업 기회가 있단 말입니다."


나는 말했다. 어제 홈페이지의 글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타임머신을 사세요! 단돈 1억에 제공됩니다! 결제는 2015년 3월 2일 배송과 함께 동시에 진행됩니다!'

데자뷰, 느껴본 적 있나?

나는 느껴본 적 있다. 아니, 일부러 찾아나선다고 해도 좋겠지.

90년대, 인터넷이 태동하던 윈도우 98의 시대.

나는 그 곳에서 미래를 보고 있었다.

휘황찬란하게 빛날 것 만 같았던, 희망만 가득했던 부서진 미래를.

정말로 실현되버린 폐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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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

네크

티-스토리 applejack.tistory.com

트위타 @nec092

게임 리뷰하는 팟캐스트 우물파는 게이머들의 리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comment (1)

limo
limo 20.01.28. 00:05
회귀 재벌물인데 대가가 빚덩이인 느낌인가ㅋㅋ 문피아에서 연재하면 한 두 편은 읽어볼 듯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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