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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두셀라의 쐐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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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33 Feb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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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세이즌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사람들은 혹 엘리오나가 손을 휘저어 너울을 일으키거나 부두 기단째 뜯어 뻘에 메꽂을까 겁이 나 고개도 들지 못했다. 전례 없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직 육친 둘만이 예사로웠다. 다만 부속섬에 은거하며 좀처럼 나들지 않는 위인이라, 그리 되고 만 맏딸이요 언니라 그저 대수롭지만은 않았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엘리오나?”


  “바다의 인도하심이죠.”


  친부임에도, 또 사제임에도 감히 되물을 수 없는 과단이 있었다. 바다 마녀는 재차 으슬으슬하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사람 위에 마법 있고, 마법 위에 우주 있으니 섬사람들이 권능을 숭상하고 바다를 찬양하는 까닭입니다. 군도의 다이달로스 의회가 백 번 열리고 천 번 대거리한들 진주의 사제께서 판결하신, 자연법의 우위가 마땅하다는 데 이견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말이지요.”


  “바다 마녀님, 용서를…….”


  “용서는 제가 아니라 이 만경파에, 대자연에 구하도록 하세요.”


  콧방귀 냉하기가 갯바위를 갈기는 얼음장 같았다. 엘리오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휘어잡았던 마력을 놓았다.


  폭풍우 지난 바다가 그러하듯 그녀는 천연스레 감정을 물렸다. 잔잔하게.


  “그러고보니 제가 여기 온 게 그 사람 때문이라는 걸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사제에의 무례를 좌시할 수 없어 시간을 버렸네요.”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뚱딴지가 있으랴. 그 무시무시한 신통력이라면 익사자든 조난자든 몇 해리, 몇 십 해리 너머까지 훤할 터인데 하필이면 그런 사람 때문에 별난 걸음을 했다니?


  엘리오나는 파도가 되어 겅중 동생 곁에 가 섰다. 모든 이목이 곧장 한 곳이었다.


  “세미오나, 저 사람은 내 남편으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야. 그럼 율법에 따라 섬사람인 셈이니, 내지에 들이니 마니 가타부타 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었던 거지.”


별안간의 대재앙이었다. 애초에 이를 위해 거듭 사무쳐 두었던 걸지도, 아니면 사람들이 그저 한 길 물 속도 못 읽었던 걸지 모른다. 진주의 사제는 머리를 짚었다. 풍파다. 폭풍우다. 그리고 군도에서는 이런 파란의 예후가 좋은 일이 드물다……. 딸이자 신비인 엘리오나에게 뜻이 있기만을 바랄 뿐.


  그는 편두통이 일어, 몇 사람을 지목하여 사내를 옮기라 명했다. 그네들은 아주 주눅이 들었는지 입을 똑 처닫고 엘리오나를 따라 걸었다. 세미오나는 우중충하니 장례 행렬 같은 꼬락서니를 눈으로 좇으며 찬트를 되뇌었다. 계획이 있겠지, 바다의 뜻이……. 딴은 언니와 형부에게 보내는 축가인 셈이리라.



바다를 보네, 나 바다를 보네.
우리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이며,
검은 재앙에 탑을 잃고 바다로 나선 유랑자라네.


바다를 보네, 우리 바다를 보네.
천 년 뒤에 잃은 기물을 되찾아 완전해지리니
쐐기, 지팡이, 거울과 큰칼, 다이달로스여 그 결합을 돌보소서.



  폭풍 아닌 폭풍이 지나자, 진주 군도는 그저 남국이었다. 휘영청 트인 해가 늦날을 드리우고 바닷바람이란 그 사이에 하작이며 청금석빛 해면을 쓸어넘긴다. 사뭇 찬란한 풍경이나 그 역시 자연의 일부인 법. 봄 아닌 봄이겠지만 이곳에 절기마다 특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해풍이 바뀌며, 해류가 틀어지니 바다를 보아 버릇해야 한다.


  물론 연안류가 뒤틀리는 이변만큼은 드물어, 내지 인근은 사람에 엔간하다. 쐐기섬 인근은 그 중 특기할 만하다. 삐죽한 형상이 흐름을 갈라 양면에 비껴가는 경사류를 짓는 것이다. 덕분에 그 연안류와 근해의 진주 해류가 부대끼는 틈바귀, 머리 서단에는 정적이 성하다. 너울이 죽고 해수는 멈추며 조풍은 속삭이는 곳.


  그 고요에 낙도나 다름없는 부속섬이 하나 있어 바다 마녀의 영지라 부른다. 봉토라기에는 참 약소하나 관습적으로, 또 영적으로 과연 여지없는 일이다. 그곳은 일종의 경외와 금기이다. 뭇사람들의 청원으로 다이달로스 의회에서, 그 바다의 정적이 바다 마녀의 권능이라 판결할 정도로. 촌극 아닌 촌극이나 또 아주 허튼 소리는 아니다.


  침묵하는 섬 연안에 별안간 머리가 쑥 솟구쳤다. 엘리오나였다. 그 머리칼은 이리저리 흐무러진 양이 체모라기보다는 수중의 흑산호처럼 생기와 소금기로 실했다. 이따금씩 물낯에 드러나는 목덜미가 새하얗고, 또 바닷빛이었다. 실로 상서롭기까지 한 광경에, 생선 꼬랑지가 덜썩 불협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영지는 작달막하여 겨우 몇 십 걸음 울렁거려 섬 꼭대기였다. 엘리오나는 생어를 잠시 내버려두고, 살갗에 어지러운 두발을 그러모아 걸레 짜듯 비틀었다. 아랑곳 않았다. 체통 없음은 물론이요 미에 무념하여 짙푸른 광경이 아닌가? 그녀는 문간에 서서, 남편이기를 주장했던 난파자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풍지대의 무역풍 같은 미소가 샜다. 


  태양 아래 백색 나신이었다. 태양이 살갗을 해한들 바다를 해할 수는 없다. 또 사람이 조수를 덮는다면 어불성설인 일, 그럴 밖에 없는 것이다. 채 덜 마른 근육골이 전신 반들거렸다. 마법사도, 의술사도 아닌 전사로 태어나 허울만큼은 마녀가 되어서도 한결같았던 것이다. 그녀는 소금기를 떨어내며, 문득 탄력적으로 뒤돌아 갔다.


  엘리오나가 처음으로 얼마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맨손가락을 질러 생선을 절명시킨다. 손톱으로 비늘을 갉고 껍질을 발긴다. 숫제 수생 동물의 꼴로 활어를 다루어 흰살만 덩그러니 들어냈다. 이어 냄비가 나오고서야 야만이나 우악이 아니라 요리하려는 심산임이 엿보였다. 오히려 그런 문명에, 순간 위화감이 들 정도로.


  올리브유에 생선살을 볶아 부스러뜨리고 푸성귀를 두어 종류 밀어 넣었다. 카사바 분말을 한 홉, 물을 두 홉, 소금에 후추와 사프란을 풀어 구색을 갖춘다. 향신료를 각별하잖게 쓰는 그 모습만이 유일하게, 바다 마녀가 아닌 쪽너울의 엘리오나임을 말했다……. 해풍 앞에 생선죽을 저은 그녀는 다 된 요리를 옮겨 담고, 연안류처럼 거처로 맴돌았다.


  또그락, 그릇 내리는 소리가 맑았다. 그 화음이 어떤 방아쇠가 되었는지, 익사와 질식이란 바다의 소관이어서 애저녁에 깰 때를 맞춘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든 병자가 깨어났다. 비틀비틀 휘청거리더니 곧 가만히 앉은 여인에게 시선이 메꽂혔다. 물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으앗.”


  사내는 기겁했으나 채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뇌쇄의 탓이 아니었다. 엘리오나의 살갗 아래 충만한 바다를 꿰뚫어본 탓이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라니, 어떤 형용이 아니라 실재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무례하게도, 바들바들 삿대질을 하고 말았다.


  “저기, 몸이…….”


  “당신 걱정이나 하지 그래요?”


  무념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맨몸을 본다 책잡지 않는다. 결례에 언짢아 트집하지 않는다. 그녀는 형상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헌데 당신이라는 말에 그는 문득, 과연 중차대한 것을 잊었다는 데 사고가 뻗었다. 당신이라니, 당신은 누구라는 말인가? 도대체 내가 누구인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엘리오나의 고개가 삐거덕거렸다. 사내는 짐짓 주눅이 들어 버렸다. 그래도 기억나지 않는 걸 어쩔 수는 없는 일.


  “뻗대는 거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제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거라고요.”


  “재미있네요. 식사부터 하세요.”


  감히 반론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미음을 끓여 온 것을 보니 사람이 맞긴 한 모양이었다. 사람을 알고 있다 해야 할까? 기억에 손상이 있으면서도,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건가?


  쓰잘데없이 인식론적인 지각에, 돌연 실소가 샜다.


  “생각해보니 참 웃기네요, 이거.”


  그는 얼른 덧붙였다.


  “참 편의주의적으로 기억을 잃은 게 아닌가 해서요. 이건 죽, 이건 숟가락, 당신은 여자고 나는 남자. 제가 누군지, 왜 여기 있는지 정도를 빼면 그럭저럭 온전하니 말입니다.”


  “안 먹을 거예요? 그럼 치우고.”


  군소리 말라고 면박하려는 것보다는 그저 문자 그대로, 해작거리지조차 않으니 일없는 걸 치워버리겠다는 투였다. 얼른 식기를 놀릴 밖에. 빈말 없이 맛이 좋았다. 이런 괴이쩍은 대화를 제한다면 자연적 감탄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녀는 죽에 대한 감상 따위 일절 괘념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건강이 소폭 증진되었으니 미뤄두었던 일을 수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투였다.


  “전 엘리오나예요. 쪽너울의 엘리오나.”


  들어본 것 같기도 한 이름이었다. 정신줄을 놓쳤을 때 귀에라도 스민 것일까? 엘리오나는 눈을 빤히 바라보며, 이었다.


  “페리드라고 부를게요. 그럼, 쪽너울의 페리드가 되겠네요.”


  “조금 더 두서 있게 말해 주면 좋을 텐데요…….”


  아닌 게 아니라 뚱딴지였던 것이다. 엘리오나는 눈동자를 굴렸다. 뭍사람에게 군도의 생리를 쉬이 설명하기란 지난한 법.


  “페리드, 당신은 표류자예요. 진주 군도에선 형태야 어찌됐든, 뭍사람을 허투루 입항시키려 하지 않죠. 내지에 쉬이 들이려고, 제 남편으로 삼겠노라 주장했어요. 뭐, 이유가 그것뿐인 건 아니지만…….”


  “허허…….”


  현실감이 있을 리 만무하며 머리가 온전하지 않아 더 그랬다. 이 바닥이, 천장이, 성긴 바람벽으로 드나드는 열기와 소금 내음이 그저 낱낱이…….


  낯선 곳에 낯선 현실, 낯선 관계. 다만 놀라우리만치 불안하지 않았다. 기억상실자의 직감이라니, 썩 우스꽝스러운 지표겠지만.


  “그럼 여긴 신방 비슷한 겁니까? 썩 누추합니다만.”


  “그럴 리가.”


  엘리오나는 웃었다. 아니, 딴은 웃으려 한 것 같았다. 페리드는 양 손을 들어 보였다. 당장 이해할 일이 못 되며, 어찌할 일도 아니었으니.


  “뭐, 거부권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페리드, 알겠습니다. 쪽너울의 페리드.”


  “의외로 순순하네요.”


  “거짓이나 협잡 같은 건 사람의 짓거리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그는 한숨 쉬며 말을 하렸다. 당신은 바다다, 당신은 인외다, 당신은 무엇이냐? 입만 뻐끔대며 허하게 바람만 새고 있었다.


  이 말 저 말이 서로 설켜 자빠지는 사이 엘리오나는 훌쩍 일어섰다. 그제야 얄따란 무명천을 사뿐 둘렀다. 저런 존재는, 옷을 걸쳐 버릇하면 욕창이라도 돋는 걸까?


  “우선 좀 쉬세요. 기력이 성해지면 이것저것 알려 드릴 테니.”


  허튼 잡생각을 두고 갯바위에 너울 치듯, 무심하게 맺었다. 페리드는 그저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시간이 치유할 일인지 아닌지는 그 시간만이 알 터. 단념하고 벌렁 드러누워 몸을 묻었다. 대로 얽은 침대가 솔솔, 미풍을 얽어 바다를 속삭였다. 무심중에 손아귀를 쥐락펴락했다. 한 절 한 절 따라 섬광이 살그머니 튀고 또 흩어졌다.


  다이달라이트 방사광을 바라보며, 그는 기억을 가능한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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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세이즌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20.06.02. 21:01
바다마녀님 단칼에 이름 지어주는 모습 완전 걸크러시
언뜻언뜻 드러내는 공통점들이 글 뒤에 자리한 통일된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도 좋군요
거대서사란 언제나 꿈 가득한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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