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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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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27 Dec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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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세이즌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통곡이 구토와 같았다.


여느 때와 달리 불수의근의 발작처럼 그저 울컥, 대중없이 속에서 쏟아지고 또 쏟아졌으니 말이다. 그저 편지를 꼭 껴안고 흐느낄 밖에 없었다. 낱장 종이는 품에 짓이겨져 아울러 울었다. 응당 그 순간에, 사무실에서 호외를 펴 든 그 때 치렀어야 할 감정이 부채가 되고 만 것이리라. 그녀는 아무렇게 옹송그린 채 천 마디 만 마디를 게워냈다.


사실 모르지 않았다. 아무려면 그걸 몰랐을까? 두 사람은 돌아서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문제가 무엇이었던 간에, 덜컥 무화되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어 허무하고 참담할 뿐. 마티아스, 미안해, 마티아스, 미안해, 마티아스, 미안해……. 옹졸함으로 뒤집어쓴 앙갚음을 견디기에는, 그런 갈 곳 잃은 호명과 사죄가 전부였다.


테레사는 벌건 얼굴이 두 배가 되고서야 경기를 멈췄다. 흉통에 치은통, 기타 온갖 통증이 오므린 몸뚱이를 후려갈겨 왔다. 온갖 물에 화장이 녹아내려 귀신 꼴이 따로 없었다. 비틀비틀 샤워실에 서서는 세면대에 물을 받아 놓고 등신 같은 생각을 했다. 여기 얼굴을 처박고 죽으면 그 사람이랑 다시 만나지 않을까 하는 헛생각을.


광인이 구상과 망상을 어찌 오롯이 구분하랴? 그녀는 대뜸, 아닌 말로 접시 물에 코를 박았고 채 일 분이 못 되어 도로 고개를 처들었다. 그리고는 욕실 바닥에 미끄러져 앉아 또 애새끼처럼 울기 시작했다. 낯짝이고 블라우스고 스커트고, 머릿속이고 가슴속이고 멀쩡한 데가 없었다. 그걸 스스로 망가뜨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미안해, 마티아스, 내가 잘못했어, 제발 돌아와…….


육갑을 하는 사이 호출기가 삑삑거렸다. 그녀는 기다시피 욕실에서 나와 그 개 같은 놈의 기계를 움키고 조작했다. 발신인은 일라리오였다.


「선배, 어디세요?」


냅다 동댕이쳐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HUD에 떠오른 글자 하나하나가 낙인처럼 뜨겁고, 아팠으니까. 그게 그 사람이 보낸 게 아니더라도, 그저 같은 기계의 같은 문자라는 것만으로도.


「선배, 별일 없으시죠? 마도학자 사망 사건 때문에 왕실근위대에서 난리 치고 있다는 이야길 들어서요.」


「별일 없으신 것 같으니 다행이네요. 지금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라리오의 메시지는 답장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듯, 연이어 들이닥쳤다. 테레사는 한껏 치들었던 주먹을 내리고 무지근하게 방사광 자판에 손을 담갔다.


「금방 갈게.」


똥강아지 같으니라고. 눈치 없는 놈 같으니라고. 그래도 덕분에 정신이 들어 다행이었다. 주구장창 곡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수레바퀴는 구른다. 아니, 구르는 꼬락서니를 갓 보고 들어온 참인 것이다. 애도조차 여의치 않은 세상에 덩그런 건 마티아스가 남긴, 길고 붉은 단말마뿐이었다…….


그래,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얼굴을 닦고, 블라우스를 갈아입으며 화장을 고쳤다. 나가야 한다, 괜히 눈치채일 일 없도록. 테레사는 주섬주섬 문서 더미를 챙겨 가방에 쑤셔 박았다. 이걸 허투루 집에 두고 나가선 안 되겠지. 그렇다고 당장 옆 나라 대사관에 뛰어들 수도 없는 일, 때를 보아 쓸 수 있도록 은닉할 장소를 찾아야 한다.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집 바깥으로 나오자 거리는 여전했다. 겨우 반 시진으로 바뀔 게 있을 리 만무하나 그런 거대함이, 무심함이 당장 사무칠 밖에 없었다. 가방 쥔 손이 떨렸다. 언제 양왕국 시대 문학일랑 장송곡과 같아, 세태에 대한 절망이 아름다움으로 드러난다고 지껄여 댄 적이 있던가? 이제는 농지거 리로라도 그 따위 말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레사는 푸에르타 데 라 레이나 광장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보관함을 찾아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하면서. 방금 저 광장 보관함에서 건져 온 물건을 이 광장 보관함으로 옮겨 놓는다는 게 썩 우스꽝스럽지만, 여차할 때 이만한 은닉처가 어디 있겠는가? 인테리어의 역순이나 다름없다는 왕실근위대 가택수색에서 집 안 비밀이 무사할 리 없으니 말이다.


묻기를 삼가고 짐짓 산보하는 척 여기저기 살폈다. 집 앞 광장이 이다지 낯설었나, 문자 그대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모 발렌티나 여왕의 문, 이 광장을 찾아 버릇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처럼 명예나 영광 따위 본래 뭇사람들에게 그러하며,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게 현관 앞에 있든 일간지 헤드라인에 있든 국경선 어드메에 있든. 다만 누군가는 그 사실을 애써 잊게 한다…….


그녀는 저를 비웃었다. 비극의 히로인인 양 육갑을 하지만 마티아스 사건도 이 국가의 여느 비극과 도긴개긴에 불과하겠지. 언제는 명가 친구(그네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에 호가호위하고, 학벌을 알량하게 뒤집어쓰고, 애인까지 그럭저럭 써먹고는 반쪽짜리 파랭이 노릇에 이다지 이입하니 구역질 나는 아전인수가 아닐 수 없지 않나.


핑 도는 눈물을 훔쳤다. 어쩌라고, 슬퍼하는 데 자격 같은 건 필요 없어. 자꾸 토 달고 따지는 새끼들부터 지옥에 갈 거야. 어차피 종착지는 거기 한 군덴데, 뭐.


벽면 한 쪽 보관함들은 고물투성이였다. 테레사는 A001칸에 문서를 던져 넣고 열쇠를 챙겼다. 하필이면 그런 별난 번호를 택한 건, 아무래도 알레프에게 고하느니 뭐니 하는 개 같은 말에 뇌가 오염된 탓이 아닌가 싶었다. 문을 잠그기가 무섭게 아주 잊은 척 잰걸음으로 광장을 빠져나왔다. 그 후 아우로라 거리 방면으로 가는 부양선을 잡아탔다.


<엘 문도> 사무실로 들어가는 대신, 마소 호출기를 매만졌다. 괜히 다른 사람 맞닥뜨릴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지금 사무실 앞. 나와.」


일라리오는 곧 부리나케 뛰쳐나왔다. 표정이 제법 복잡미묘했는데, 테레사는 그게 징징거리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대뜸 짜증부터 냈다.


“일라리오, 맞으면 맞는 대로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일하면 되지. 언젠 안 그랬어, 응? 어련히 사무실로 오지 않았겠냐는 말이야.”


“별일 없으셨죠, 선배?”


“별일? 아무려면 우리 오르데나에서 별일 없는 날이 어디 있겠어?”


역정을 내든 뭘 하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마냥 도련님이고 또 애송이였던 후배가 이런 식으로 돌변하자, 괜히 움찔하게 되었다.


“팀장님은 뭐라고 안 하셨어요?”


“미겔 팀장? 자꾸 특종 가져오라고 잔소리에 난리법석이지. 왜?”


그 대답을 듣자, 일라리오는 빙글빙글 웃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마음에 들었던 걸까? 팀장이 어쨌어야 했다는 말일까? 왜 괜한 말을 하는 걸까?


“아닙니다. 식사, 어떠세요? 어제 오후랑 오늘 아침에 여분을 좀 썼는데, 겸사겸사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그러자.”


테레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침부터 조울증 환자처럼 날뛰었더니 기운이 없었던 것이다. 예민하게 군 게 다 그 때문이겠지……. 원기라도 보충해 둬야 앞으로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생각나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게 마티아스를 위한 일이니 말이다. 애도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대로 대로변을 걸었다. 일라리오는 저번과 같은 레스토랑을 권했고, 별말 없이 또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이야기가 오갔다. 점심 치고는 느지막해서 거진 테라스를 전세 낸 모양새가 되었다. 그 탓인지 모르지만 조금 으슬으슬한 감이 있었다. 이런 가을이란 다 그런 법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테레사는 담뱃갑과 점화기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웨이터가 곧장 들이닥쳐 흡연보다 주문이 앞서게 되었지만. 오늘의 점심 둘. 이런 속 편한 선택지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후배는 곧 노트를 들이밀었다. 언제고 의욕만큼은 충천한 사람이니까. 오르데나의 저널리즘이라는 걸 생각하면, 왜 정치부가 아니라 사회부에서 설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신문이니 뭐니 하는 낯부끄러운 소리를 태연히 입에 올리는 주제에……. 하긴, 거기선 기껏해야 고장난 앵무새 노릇밖에 못 할 테니 의외로 본질을 꿰뚫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테레사를 빤히 보고 있었다. 썩 불손한 선배지만, 이럴 때만큼은 진짜배기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서는 시트러스향이 풍겼다. 오늘은 더 짙은 것 같기도 했다.


“선밴 기자 일이 좋으시죠?”


일라리오는 불쑥 물었다. 건너편에서는 끄적이던 자세 그대로 우선 눈을 흘겼다.


“그래 보여? 넌 취재할 때 조심 좀 해야겠다. 잘못 넘겨짚어서 일 만들라.”


“천직처럼 보였거든요, 선배한텐.”


천직! 대답보다 비웃음이 먼저 나오는 말이었다. 아무리 후배라지만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낯짝 본새부터 바로잡아야 할 정도로.


“천직은 개뿔이. 그런 거 찾다가 신세나 안 망치면 다행이지. 직업이란 건 조금이라도 보람 있거나, 돈을 괜찮게 주거나. 둘 중 하나면 그만 아니겠어?”


테레사는 더듬더듬 담뱃갑을 집으며 우르르 지껄였다. 문학을 배웠으니 글 쓰는 일을 해야 한다던, 자신에 대한 자조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선 네가 나보다 더 잘 된 사람이라는 말이야.”


“선배가 칭찬하시는 건 처음 들어보네요.”


“칭찬? 내가, 너한테?”


아닌 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참말이었다. 칭찬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그녀가 일라리오를 칭찬할 군번도 못 되니 말이다.


한산하던 레스토랑이어서 곧 전채가 놓였다. 식사 전 노트를 돌려주는 순간, 별안간 마티아스의 편지가 뇌리를 스쳤다. 왜 이 나라에서 달아나라고 한 걸까? 무슨 기밀을 에르사예즈가 알게 되면 전쟁이라도 난다는 말인가? 애초에 그렇다면 마티아스가 그 기밀을 빼돌릴 이유가 뭐란 말인가? 왜 이런 생각을 빨리 해보지 못했던 걸까? 슬픔에 정신이 나가 버렸던 걸까?


브루스케타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테레사는 눈알을 굴렸다. 그 사람은 문서의 전달처로 에르사예즈 대사관을 특정했다. 베릴 대사가 했던 말은 이 사건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었던 걸까? 왕실근위대가 살인범이 아닌 다른 것을 추적하고 있다면? 지금 한가하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을까? 멍청하고 충동적인 자신에게 역정이 났다.


신경질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때, 야외석으로 다가오는 사내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저 검은 옷이 왕실근위대 제복이라는 건 곧장 알 수 있었다. 이미 주변에는 같은 차림의 군인들이 학익진으로 즐비했다. 그럴듯한 설명은 하나뿐이었다. 이들은 상상 이상으로 빨리, 마티아스 아벨 관련자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테레사는 반사적으로 일라리오를 쳐다봤다. 식기를 내려놓고 주위를 살피는 표정이 이상하게도 뜻밖이라는 투였다. 낭패라는 것을 잘못 읽은 걸까?


“테레사 알마스 씨?”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그만으로 주눅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이 시커먼 군인은 그녀를 곧장 바라보고 있었다.


“누, 누구세요?”


“왕실근위대 수사관 아르세니오 벨리스 소령입니다. 마티아스 아벨 씨 관련으로 몇 가지 조사할 게 있습니다. 따라오십시오.”


테레사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금이라도 틀어진다면 심문에 문제가 없는 팔이나 다리에 간드를 발포하고도 남는 치들이라고 들었으니 말이다. 손이 떨렸다. 입에 문 담배 한 개비조차 간수하지 못해 재가 흩어질 정도로. 수사관이라는 자는 이어 일라리오에게 눈을 부라렸으나, 소노테르라는 성씨 앞에 곧 고개 숙여 사과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고분고분했던 덕일까, 수갑이나 포승, 기타 흉흉한 물건이 나오진 않았다. 일어서면서 테이블 아래 두었던 가방을 밀었다. 정강이에 턱 부딪는 게 느껴졌다. 믿을 건 이 친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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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세이즌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21.01.03. 02:02
첫문장부터 묵직하게 떨어져내리는 것을 보니 내용과는 별개로 반가움이 솟네요. 단행본 소설이 어느 날 극장에 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라면, 연재 소설은 먼 곳에서 이따금씩 보내오는 엽서 사진을 받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 듯싶습니다. 편편이 끊어지는 이야기는 글의 흐름에 집중할 수 없게 하지만 그 한 편 한 편의 켜 사이에 자리한 시간이 글에 애정을 품게 하는 듯합니다.
전체와 조각 사이의 괴리를 느끼는 테레사의 심정 묘사에서 문학성을 찾지 않고 평범히 서술한 부분이 깊게 다가오는군요. 때로는 진부하리만치 평범한.. 관용구적인 표현이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묘사하지 않나 싶습니다. 오히려 그런 표현이기에 더욱 현실처럼 느끼게 되고, 인물의 상황에 깊숙히 이입하도록 해주는 것이겠죠. 절망 속 처연함이 문학의 꺼풀을 벗고 실제로 나타났을 때는 전혀 아름답지 않음을, 이제는 누구보다 현실에 치열해야 하는 기자가 된, 전 문학도 테레사가.. 미사여구없는 현실의 말투로 읊는 이런 상황이 말이죠..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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