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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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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37 Mar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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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세이즌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너도 중독됐구나. 테레사는 이따금 저도 모르게 그렇게 비명을 질렀다.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려면 악몽을 꾸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잠자리였으니 말이다. 독방. 자연광이라고는 한 점 없이 불그레한 마소 조명 하나에 쇠침대와 철창뿐인 곳. 분명한 것이라고는 매일 들어오는 식사뿐. 근위대원이든 간수든 누구든 입 벙긋하는 일 일절 없이.


그마저 식사조차 규칙적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포만감이 채 꺼지기도 전에 다음 끼니가 들이닥치는가 하면 이러다 굶어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방치되기도 했다. 식수를 세어 날짜 감각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이겠지. 간단하지만 잔혹하게, 근위대는 한 사람에게서 시간을 앗았다. 그리고 사람은 그런 감각 없이 피폐를 면하기 쉽지 않다.


배식용 개구멍이 아니라 감방 문이 덜컥 열리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올 것이 왔다. 허나 올 건 오기 마련.


“테레사 타티아나 알마스 씨. 나오십시오.”


“……심문인가요?”


참 우스운 일이지만 여기 잡혀 들어와서 처음 들은 사람 말이 그랬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마저 반갑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가느니 무얼 할 예정이니 살갑게 말해 주는 건 일절 없었다. 극기 캠프를 온 것도 아니니 응당 사람을 쥐어짜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 하겠으나 태도가, 그랬다는 것이다. 어디 사람이 아니라 길바닥에 구르는 깡통 다루듯이, 위대한 민족 영도자 오르데나에 반한 혐의자는 응당 그러해야 한다는 듯이.


테레사의 머리에 검은 자루가 씌워졌다. 시큼하고 비릿한 가운데 한참을 이리저리 잡아 끌려 그렇잖아도 편찮은 것이 아주 오락가락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먹이나 먹던 창살 안쪽보다는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당장 목이 붙어 있으니 살 궁리부터 해야 할 테지. 왕실근위대 취조실에서 목숨 부지한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으니 말이다.


부대가 쑥 벗겨지자 날카로운 다이달라이트 방사광에 눈이 아렸다. 건너편에는 근위대원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검은 색안경이 아주 눈동자 일부처럼 보이는.


“테레사……. 테레사 타티아나 알마스 씨. 여기가 어디고, 우리가 누군지 주절주절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흰죽지수리께 맹세코, 우리는 왕태자 전하와 왕실의 영광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는 걸 명심하도록 하십시오.”


“네, 네…….”


“알마스 씨, 우리는 어떤 살인 사건에 대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마티아스 아드리안 아벨 씨와는 어떤 관계인지 말하십시오.”


왕실근위대의 심문은 소문의 일각만으로도 우스개로 볼 것이 못 되었다. 저 돌덩이 같은 합쇼체 뒤에 사람 죽이는 것만 빼고 모든 게 가능하다는 마소 고문기가 우뚝하니 말이다. 그래도 질문이 ‘마티아스 아드리안 아벨 씨를 살해한 동기를 말하십시오’가 아닌 게 어딘가? 아직 희망이 있는지 모른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테레사의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 자리에서 그러지 않을 사람은 세상천지에 누구도 없을 것이다.


“지금 어떤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사 년 전에 헤어진 사이니까…….”


“판단은 내가 합니다. 사건 발생일인 16일 전날에 당신이 마소 호출기로 아벨 씨한테 메시지를 보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이상한 숫자로 돼 있었을 텐데요. 해독하면 ‘테레사야 이상한 소릴 들어서 직접 확인해 보려고, 오랜만이지 웬 미친년인가 싶으면 답장 안 해도 돼’죠. 알레프 암호라고 합니다, 이건…….”


심문관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가면이라도 씌운 듯한 낯짝. 테레사는 소름 앞에 중언부언을 그쳤다.


“왜 암호를 쓴 겁니까? 사실대로 말하십시오.”


“제가 만든 거 아닙니다. 그 사람이 만든 거라고요. 원래 좀 별난 사람이라. 그리고 벌써 해독 같은 건 다 끝났겠으니 하는 말이지만, 암호 같지도 않은 암호라는 건 알고 계시잖습니까?”


“당신은 사 년 전에 헤어진 상대한테 구태여 암호문을 전송했습니다. 그 사람은 마도학자고, 당신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에 살해당했습니다. 이런 정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말하십시오.”


그래, 누구라도 헤어졌느니 암호는 시시하니 하는 말을 변명이라 여기겠지. 참말로 사실의 나열이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녀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저들이 무얼 어디까지 아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빈 퍼즐 한두 조각 찾는 본새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당일 오전, 발신인 미상의 그 메시지를 방수했거나 폭로 문서의 행방을 특정했다면 이런 ‘신사적인’ 심문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니까. 다행인 걸까, 테레사는 덜컥 겁부터 났다. 다행이라는 말이 이다지 저렴해질 수 있는가…….


“저한테 유리할 건 없어 보이네요.”


“그렇습니다. 소원했던 사람에게 갑자기 연락한 이유, 하필이면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전날에 연락한 이유, 또 구태여 암호문을 전송한 이유를 동시에 잘 설명하지 못하면 이제부터 부득이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말하십시오.”


“기막힌 우연이겠죠…….”


“그게 전부입니까?”


“아뇨, 아뇨. 제 직업이 뭔지 저보다 왕실근위대에서 더 잘 알 것 같은데요…….”


눈알이 굴러다녔다. 이 자리에서 살아나려면 팔아먹을 사람을 잘 팔아치워야 할 것이다. 마티아스도, 자신도 아니라 생판 남인 그 외국인들을.


“우리 <엘 문도>에서는 마도 올림픽 기간 중 특종으로 이목을 좀 끌어 보려고 했습니다. 이왕이면 에르사예즈 관련 건으로요. 다른 신문이 마도 올림픽 보도 경쟁에 열을 올릴 때 크게 한 방 먹여 보자는 거었죠. 당연히 저 같은 기자한테 업무가 떨어지게 됐습니다. 이건 팀장인 미겔 아길라르 씨가 확인해줄 수 있을 거예요. 전 에르사예즈 공화국 전권대사 인터뷰를 따 보려고 했는데, 당연히 개막식에는 참석할 테니 주경기장에서 귀빈석을 잘 찾아간다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르사예즈 공화국 전권대사.”


“네, 베릴 클로스테르망. 어떻게 인터뷰를 따고 보니 ‘선물을 주겠다’면서 갑자기 그 남자 입에서 마티아스 이름이 튀어나왔죠. 저쪽에서 무슨 꼬릴 잡았는진 모르지만 저 유명한 공화국 정보부 아니겠어요? 아는 게 쥐뿔도 없는데 저런 말을 들으니 불안하기도 하고, 걷어차버리기도 뭐하니 어떻게든 단서를 잡아 봐야죠. 알레프 마소 연구소로 찾아가 봐야 문전박대당할 게 뻔하니 옛 사이가 어떻든 지금 관계가 어떻든 지푸라기라도 잡고 봐야 될 일 아닐까요?”


왕실근위대가 국내 방첩에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여러 유력 사건에도 불구하고 저 전권대사가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잡아내진 못했다고 들었다. 그녀는 슬그머니 눈알을 굴렸다.


“에르사예즈 공화국 전권대사가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한 지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가진 정보에 대해 말하십시오.”


“……제가 그런 걸 아는 사람이면 <엘 문도>에서 기자짓 할 수 있겠어요? 벌써 민족반역자로 잡혀 죽지 않았을까요?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베릴 클로스테르망 씨는 그 사람 이름 말곤 아무것도 말해준 게 없다고요.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고요.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마티아스가 갑자기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그럼, 그 때 전권대사가 당신한테 무슨 말을 했습니까? 말하십시오. 빠짐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선물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테레사는 부언이 따라붙기 전에 얼른 진술을 이어 쏟아 내기 시작했다. 초조한 게 어느 쪽인지 알기 어려웠다. 두방망이질에 가슴팍이 쑤실 정도로.


“당신이랑 잘못 엮여서 이런 일에 자꾸 연루되어 민폐라고 불평을 했더니 세레네이 여자는 태양 같아 즐겁다면서 저렇게 말했어요. 요즘 대사관 분위기도 안 좋은데 그래 주니 선물을 건네고 싶다면서……. 선물이란 건 기사거리고, 기사거리는 ‘마티아스 아벨이라는 사람’이랍디다. 그렇게 아리송하게 지껄이고는 수행원들 데리고 가 버렸고요.”


“선물, 기사거리, 마티아스 아벨.”


“네, 그게 전부예요. 선생님,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궁금할 것 같지 않으세요? 하필이면 저 이름이 그런 데서 나온 거니까. 넘겨짚은 건지, 공화국 쪽에 무슨 계획이 있는 건지, 진짜 기사감이 될 만한 일이 터질 전조가 있는지, 그런 게.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르겠다 싶었고 어디서 안 까이고 마티아스를 인터뷰하려면 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진술은 이걸로 끝입니까?”


“글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담배라도 주면 좋을 텐데, 그럴 생각은 일절 없어 보였다. 머리가 아팠다. 살기 위해 지껄여야 하지만, 그럴수록 아팠으니까. 마티아스, 도와줘. 남은 밑천은 그 뿐이었다.


“선생님. 질문 하나 하면 안 되나요?”


애써 던진 그 말을, 심문관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검은 색안경 너머로 이글이글 노려보는 것 같았다.


“사건 전후로 베릴 클로스테르망 혹은 에르사예즈 공화국의 다른 인물과 접선한 적이 있습니까? 말하십시오.”


“그럴 배짱은 없고,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없다고요. 지금 생각에는 저쪽에서 뭔가 더 알려 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어떻게든 마티아스를 꾀어내서 살릴 수 있었을 테니까…….”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십시오. 그런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왕실근위대에서도 그걸 하니까 하시는 말씀 같은데요. 에르사예즈랑 내통하고서 목숨 오래 부지한 사람이 이 나라에 어디 있습니까?”


“당신은 그 전권대사와 업무상 접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이 모종의 형태로 연관된 와중 오랜 연이 있던 사람이 사망했고, 비밀리에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래도 덮어놓고 결백을 주장할 겁니까?”


돌고 돌아 원점이 아닌가?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 거짓말이라도 하라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그렇게 하고 있는 건가?


그녀의 눈동자에서 미약하지만, 불똥이 튀었다. 다시 한번 지난하게 지껄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건 전날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마티아스의 죽음을 되감는 것만 같았으니.


“선생님은 오래 전에 헤어진 여잘 기억하거나 하시나요?”


“질문과 관계없는 진술은…….”


“관계 있어요, 있다고요! 마티아스랑 헤어진 후로 잊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마티아스도 그런 진 잘 모르겠지만……. 이별이 정신증을 낳고, 그 정신증을 그 사람 생각으로 잊고. 그렇게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게 오 년쯤 살아 봐요! 그 새끼 이름이 그렇게 나왔는데 머리가 빡돌지 않고서 배길 수 있겠냐는 말이에요! 모르시겠어요? 모르시겠냐고요!”


감히 어디서 배짱을 들여왔는지 테레사는 책상을 꽝 내리쳤다. 수갑 찬 여자가 강짜 좀 부린들 아랑곳할 리 없겠으나 무슨 뜻이라도 전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심문관은 꼿꼿이 앉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시커먼 눈길 아래 무얼 생각하는 걸까? 한참을 지나 심문실 문이 열리고 예의 지저분한 자루가 시야를 분질렀다.


사지를 잘근잘근 부수지는 않을 모양이지. 긴장이 탁 풀렸다. 아래 근육까지 놓쳐 못 볼 꼴 보이지 않는 게 그녀가 당장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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