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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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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17 Apr 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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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세이즌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마티아스 아벨은 연필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고작 몇 평 남짓한 공간에 책걸상, 기타 기물이라고는 노트와 연필뿐인 곳에서 면벽수도를 하자면 누군들 아니 그럴까? 술식 뭉치가 장전되고, 편향마석이 진동하면 차원 매니퓰레이터가 이쪽 차원의 물질을 가속하여 저쪽 차원으로 발사한다. 모놀리토가 그런 초현실을 일으킬 때마다 책상이 우르르 떨려 왔다.


두 개의 시공간과 물질을 뒤바꾸는 이적의 결과 치고는 참으로 시시할 것이다.




8 23 5 1 35 5 5 1 20




엿됐다. 그는 알레프 암호로 한 마디 휘리릭 끄적거렸다. 현 상황을 이보다 더 경제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마티아스는 알베르카에서 돌아온 그 날, 모놀리토에 발을 다시 들이기가 무섭게 면직되었던 것이다. 3324층에는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어디 창고라도 후닥닥 비우고 사람이 앉게 꾸민 듯한 곳으로 쫓겨나 마냥 대기나 하고 있을 뿐.


마도서도, 연구 자료도 심지어는 백지를 놓고 술식 가안을 만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아 그야말로 절해고도에 고립된 항해사나 다름이 없었다. 나침반과 육분의를 빼앗겼으니 측량은 머리 속에서나 가능했고, 그런 만큼 자연스레 스승인 카예타노 캄피에레가 떠올랐다. 그분이 허망하게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되뇌며.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걸 낙관적인 신호라 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무슨 일이라도 벌여 볼까 했지만 자리를 비운 사이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지금 알레프의 상황이 어떤지 일절 모르는 데서야 헛짓거리가 될 공산이 컸다. 당장은 입 닥치고 차원치환으로 다이달라이트가 생성되는 굉음이나 듣고 있는 게 상책이리라.


문이 벌컥 열렸다. 원장인가, 아니면 인사과에서 누가 온 건가? 그런 예상과는 달리 정작 모습을 드러낸 건 에르난데스 주임이었다. 양손에 커피잔을 든.


“어때, 유폐 생활은?”


“라 오르데나의 기업들은 사람을 해고할 때 벽 자리로 발령을 내서 몇 날 며칠이고 아무 일도 안 시키고 무슨 짓도 못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에르난데스 주임님. 그럼 사람이 피폐해져 제 발로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긴다나요?”


“아벨 주임, 당신 같은 사람은 해당 사항 없지. 아무리 그래도 국가 기술자를 그런 식으로 모양 사납게 내쫓지는 못한다는 말이야.”


농담인지 진담인지 가려내기 어려운 말투였다.


“뭐라도 소식 있습니까?”


“라미냐 주임이 물질 관리부 내에 팀을 하나 만들어서 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던데. 원장 결재가 떨어진 모양이야. 뭐, 이 정도밖에.”


“그렇습니까…….”


“그런 거지. 아벨 주임, 뭐 쓸데없는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서. 당신 그러라고 허락해 줄 분 안 계셔.”


에르난데스 주임은 머그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La Razón es mi Luz’였어야 할 문구는 반쯤 닳아 빠져 어디로 달아난지 알 수 없었다. 분위기가 일견 섬뜩해졌다.


“이게 왕태자령이었다면 어떡할 거야, 아벨 주임?”


“……전하께선 냉철하고 치밀한 분이시죠. 이렇게 일을 지저분하게 지시할 분이 아니십니다. 에르난데스 주임님도 아실 텐데요.”


“그분 권위를 입맛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거야, 응?”


“아닙니다, 아니에요.”


마티아스는 도리질을 했다. 저런 소리를 그냥 들어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부득불 그는 마도학에 신실하게 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어거지로.


“알레프에 오려, 전 소중한 걸 내다 버렸습니다. 그 다음엔 스승님의 유지를 부득불 짊어지게 됐죠. 지금 저한테 조국의 마도학을 진일보시키는 일 외엔 남은 게 없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닌 것 같은데.”


“마도강국 9개년 계획의 달성을 위해 분골쇄신하며 충성을 다하겠다는 겁니다, 에르난데스 주임님. 제가 말을 둘러 했던가요? 늘 이것만큼은 분명했다고 생각하는데…….”


“둘러 했지, 늘. 방금처럼 말이야.”


얼마간 홀짝거리는 소리만이 남았다. 이 첨탑 어디의 카페에서 들여왔을 커피는 쓰고 떫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언제나처럼.


“내 생각에, 아, 이건 내 생각이라는 걸 알아두라고, 아벨 주임.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게 바로잡힐 거야. 자넨 초차원치환 연구부로 다시 발령되고 이리스 연구원도 밑에 붙여 주겠지. 초차원치환 연구도 재개될 거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니 그냥 머리나 좀 식히고 있어. 이, 모놀리토 안의 정치에서 잠깐 고개 돌리고 있으면 그만이라고.”


“그런 지시가 내려왔습니까? 어디에서? 누구한테서?”


“말했잖아, 내 생각이 그렇다니까.”


에르난데스 주임은 한숨을 쉬었다. 타이르는 듯, 지시하는 듯 아리송한 투였다. 마티아스는 지금 상황을 점점 납득하기가 어려워졌다.


“자네 생각해서 말해 준 거야. 또 자네만 있는 게 아니잖아. 이리스 연구원은 어떡할 거야? 그사람도 엘리트 마도학자 아니던가? 업적이 있어야 앞으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다는 말이야. 당신이 미끄러지면 당신 하나만 잘못되는 게 아니라고. 이 사람 저 사람 커리어 줄줄이 작살날 일 있어? 하여간, 전 원장 직계 아니랄까봐 융통성 없긴.”


“알고 있습니다.”


“그래. 휴가라고 생각하자고, 응? 왕태자 전하께서 어디 당신 몰라보는 분도 아니시고 말이야.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냥 좀 뭉개고 있어. 아무 일도 없을 거고, 언제 그랬냐는 듯 원복될 거야. 그렇게 알아 둬, 응?”


“……그렇잖아도 휴가를 좀 냈습니다. 마도 올림픽이나 구경하면서 머리 식힐 겸.”


“그래, 그래. 생각 잘 했어. 또 커피나 한잔 들고 올 테니까 잘 있으라고, 아벨 주임.”


물러나는 등 뒤에 대고, 마티아스는 생각했다. 침묵의 시간도 유분수라고. 정치적인 육갑에야 익숙하며 장단에 못 맞출 것도 없겠지만 경우라는 게 있는 법. 그는 자신이 무얼 만들고 있는지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모리배들에게 빼앗겨 흉측하게 불거져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그는 초조하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알베르카에서 돌아오던 그 밤이 새삼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걸러 버린 끼니고 작살 난 호출기고 아랑곳 않고, 마티아스는 부리나케 도토리 화실 거리를 빠져나왔다. 밥이나 먹으며 세월아 네월아 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양정을 붙잡고, 알베르카 선착장으로 가자며 외치는 모습이 반쯤 정신줄을 놓친 사람 같았다. 이리스는 한 마디 거스르는 일 없이, 옆얼굴이나 빤히 쳐다보며 제 선임을 따랐다.


그런 난리법석 끝에 대합실에 발을 들이니 벌써 날은 늦밤에 가까웠다. 다행이라면 모놀리토로 귀환할 선편이 끊기지는 않았다는 정도일까? 표를 손에 틀어쥔 채, 마티아스는 다리만 와작와작 떨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그 중 썩 괜찮은 건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충성파가 드디어 연구자의 탈을 쓴 깡패에서 강도로 돌변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으니까.


이리스는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선착장 구내에서 커피며 도넛 따위를 사 들고 돌아왔다. 생각 없다며 손사래를 쳐도 입에 손수 쑤셔 넣을 기세라 거부할 방법이 없었다. 마티아스가 해작거리는 사이, 그녀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빵쪼가리 몇 개를 너끈하게 해치웠다. 누구와는 달리 철야로 삐친 산발에도 칼처럼 다린 백의를 걸칠 여느 때처럼 태연해 보였다.


얼마 지나 ‘에스피나, 알레프 마소 연구소행 부양선을 이용할 승객분들께서는 승강장에서 미리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방송이 쩌렁쩌렁했다. 검표 후 휑하니 안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서 돌아가야 할 테지만 정작 벌어진 일을 마주하는 건 두려운 일일 테니 말이다. 마티아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때, 조용히 졸졸 따르며 수발이나 하던 이리스가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적당한 때를 보고 있기라도 헀다는 듯이.


“주임님, 그렇게 걱정하실 건 없지 않을까요? 마소 연산기에 저장된 데이터를 추출해서 해석한다고 해 봐야 안전한 초차원치환이 현재 기술 수준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밖에 안 나올 텐데…….”


“안전할 생각이 없으면?”


그는 여전히 불안하게, 발작적으로 지껄여 댔다. 반면 이리스는 치맛자락을 간수하며 곁에 다소곳이 앉을 뿐이었다.


“충성파 물질치환부 마도사들도 데이터만 있으면 현 버전의 술식 정도는 역산할 수 있겠지. 대뜸 싱크로트론에 그걸 입력해서 차원절리를 열어버리려고 할지 어떻게 알겠어?”


“그리고 그랬다간 일 난다는 걸 보고 모르진 않겠죠. 저쪽도 차원치환의 원리를 아는 사람들이니까.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건 없잖아요?”


“이리스…….”


입장이 바뀐 것 같았다. 늘 이리스가 술식을 망쳤다며 안달하고, 그걸 어르고 달래며 충고하는 게 마티아스였으니 말이다.


“적어도 초차원치환 기술이 아직은 실현 불가능하단 걸 왕태자 전하께 계속 보고하지 않으셨어요? 그분이 어떤 분인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려고요?”


“하아……. 그래, 그러면 좋겠네.”


“네. 그렇게 낙담하는 것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생각으로 자원을 돌려 보자고요. 이를테면 그 작자들이 왜 갑자기 그래야만 했는가, 같은. 사실 저희가 날이면 날마다 연구실을 지키고 있었던 것도 아니라 데이터를 훔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잖아요?”


“두 가지 정도겠네. 왕태자 전하께서 알베르카 일정 때 데이터를 탈취하라고 명령하셨다. 아니면 충성파 내부 사정으로 레버리지가 필요해진 패거리가 생겼다.”


“후자 같은 경우라면 초차원치환 프로토타입 술식 및 가상 운용 데이터가 지금은 그냥 쓰레기나 다름없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발을 빼지 않겠냐는 거죠. 주임님이 연구 보고에서 계속 강조하셨을 텐데 그게 참말이라는 걸 인지하게 될 테니.”


이리스는 평소 술식 가안에 대해 싱글벙글 유창하게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전하께서 뭐, 군부 강경파 말대로 아롤터 지협을 무력 침공하거나 하진 않으시는 걸 보면 수단의 합리성이라는 걸 우선순위에 두고 계신다는 거예요. 지금 차원절리를 열었다간 닫지를 못해 대재앙이 벌어진다는데, 그런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실험하려 들진 않으실 거고. 이건 전자를 배제해도 된다는 게 전제사항이지만요. 와, 누가 잘못 들으면 큰일 나겠다.”


마티아스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정리하고 보니 얼마간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활기찬 모습을 보자니 음침하게 낙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스, 신난 것 같네.”


“맞아요. 신났어요.”


“이런 상황에…….”


“뭐, 평소랑 다르게 제가 주임님 도움이 되고 있고, 또 의지해 주고 계시는데 아무려면 어때요?”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황옥의 한 면처럼 따르르한 눈빛이 아름답고 따뜻했다. 벌떡 일어나 승강장을 이리저리 성큼거리며 그렇게, 계속 그러는 모습이.


곧 알베르카 선착장에 에스피나 행 부양선이 들어온다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시간이 시간이요 행선지가 행선지인지 그때까지 승강장엔 그저 두 사람뿐이었다. 이리스는 탑승구가 열리자 쪼르르 되돌아왔다. 촐싹대다 미끄러진 척, 마티아스에게 팔짱을 끼는 건 썩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건 한층 더 쉬웠다.


“제가 주임님보다 고차원적인 술사였으면 좋았겠구나 싶죠. 그럼 매일같이 그런 기분 느낄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이리스, 그러니까…….”


“주임님, 센스 없어요. 지금은 그런 걸로 해 달라고요.”


비비적거리는 그녀에게서는 시트러스 향이 물씬했다. 아마 테레사한테서도 이런 냄새가 났던가, 그런 생각에 밀어내지도 차마 끌어당기지도 못한 채 삐뚜름하니 서 있을 밖에 없었다.


결국 부양선에는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더 타지 않았다. 다이달라이트 방사광이 시뻘겋게 뻗어나가며 곧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이 높은 계절인 만큼, 지금 가을 밤이란 그만큼 더 두텁고 침침했다. 마치 바다에 뚫린 블루홀이라도 보는 듯이. 그렇다면 지금 저 야공을 일컬어 블랙홀이라 불러 아주 이상할 것은 없을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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