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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나는 유령을 부른다. -유령,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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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35 May 1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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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안지민

나는 친구가 없다. 어느 정도로 없냐고 묻는다면, 학생러쉬 시간대의 버스(6~7시 사이)안에서 '친구를 사귀는 법' '사교성을 길러주는 유머' '당신도 할 수 있다, 인기스타!' 라는 책을 볼 정도라고 대답하겠다.

 

재차 말하는 거지만, 나는 친구가 없다.

 

내가 '친구다!' 라고 즉석에서 대답할 정도의 친구는 단 한 명 뿐이다. 그 친구도 훌렁 전학갔다.

 

혹시. 정말로 혹시, 나처럼 친구가 없는 사람이라면 알지도 모르겠지만, 학교의 졸업식이나 운동회 때 말이다. 부모님이 오셨는데 혼자서 놀아 본 적 있는가?

 

그건 지옥이다, 라고 여기에 정정한다.

 

"어제 그거 봤냐?"

 

"아아, 연예스타 말이지?"

 

"정말 죽이지 않냐?"

 

"맞아, 설마 그럴지 몰랐지. 연예인이기 이전에 사회인인데 개념이 안드로메다로 사라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설마 그러겠어?"

 

등하교 때 혼자 다니는건 익숙하지만 역시 주변에 둘 셋씩 짝지어 있으면 엄청나게 자괴감이 든다.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인가. 가시광선을 제대로 반사하고 있는 건가(*1), 설마하는 투명인간인가?

 

유력한 후보는 투명인간이겠지.

 

투명이랄까, 유령이지만.

 

1학년 11반, 창문 쪽, 뒤에서 세번째. 앞에서 세번째. 그 자리 옆에는 시계가 있어서 나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통 학교에 입학하면 반 친구끼리 서로를 보고 그러는데 내 쪽은 촛점이 전부 시계로 간다.

 

우후후후. 마치 누군가가 조작이라도 한 듯한 느낌인걸. 중학교 3학년 내내 이 자리에 앉았지. 우후후후.

 

별 수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친구 하나로 버텨온 17년이다. 이제 와서 어떻게 변한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친구 같은 건 사귀어도 서툴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면 친해지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될 사람은 없다.

 

결정했다.

 

느긋하게 한 달에 한번씩, 녀석을 만나러 가자. 7호선 타면 금방이니까 괜찮겠지. 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나는야 고독한 남자, 고독에 사무쳐 울지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비참해지는 것 같아서 국어 교과서를 폈다. 입학식 때 교과서를 전부 나눠주고, 인터넷으로 수업표를 발부받았기에 입학식 다음 날인 오늘은 정규수업. 국어 교과서 첫 페이지는 이육사의 광야가 실려있다.

 

이육사 선생님의 훌륭한 시를 읽어 친구에 대한 갈망을 어떻게든 없애보자.

 

5분 정도가 흐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역시 외로워....

 

외롭다고! 외로워 죽겠다고! 어째서 토끼는 외로우면 죽는 지 알 정도로 외롭다고! 외로워서 죽어버리겠다고! 진짜 외로워!

 

"하아. 돌아버리겠네."

 

결국 친구에 대한 갈망만 높아졌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긴 감옥이다. 들어 올 때도 내 마음이 아니고, 나갈 때도 내 마음대로 안된다. 특히 입학식 다음날부터 야자를 한다면!

 

야자시간 내내 혼자 앉아있었다고!

 

혼.자!

 

몇몇은 도망가고, 몇몇은 선생님에게 애교부려서 빠지고, 몇몇은 학원 및 과외 때문에 빠지니 절반 정도가 남아 궁시렁거리며 야자를 했다. 당연히 절반이나 나가 휭한 교실엔 마음이 맞는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았고, 개중에 나만 혼자 앉아있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어...

 

심지어 담당 선생님도 이상하게 나만 보면 뭐라고 할까, 안쓰러워 하는 눈빛이 된다. 야자 3교시(10시에서 11시까지) 때는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 녀석과 같이 있어라.' 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미 내 라이프는 제로라고!

 

내 상처를 후벼파지 마!

 

이래서 선생님들을 존경할 수가 없다. 하여튼 선생님이면 뭐든 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니까. 그렇게 말해도 남는건 어색함과 말 못할 정도로 안쓰러운 반 친구들의 눈빛 뿐인데.

 

다행히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져서, 혼자 외롭게 있다고 왕따시키거나 하진 않지만, 오늘의 일로 확정된 건 확실하다. 대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아싸(*2)가!

 

"우울하다...."

 

버스 타고 5 정거장. 열리는 뒷문을 통해 내려가는 순간 "으아아아악!" 소리와 함께 어라, 이거 위험할 정도로 아픈데- 하는 통증과 단단한 지면이 느껴졌다. 아니, 지면이 아니라 버스의 지붕이군.

 

묘하게 냉정한 머리로 버스 뒷문에서 내리다가 오토바이에 치여서 버스 지붕으로 올라간 고등학생, 그런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것보다, 머리가 울려-.

 

눈알이 핑글핑글 제멋대로 돌기 시작하면서, 의식이 서서히 사라졌다.

 

상쾌하게 자고 난 뒤의 감각. 조금의 잠기운도 없어서 더 자려고 해도 잘 수 없을 지경이다. 자고 난 뒤 머리회전이 둔한 것도 없어서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금방 파악했다.

 

"......"

 

아아아악! 쪽팔려! 버스에 있는 경고문, 뒷문에서 내릴 때는 오토바이를 조심하세요, 를 매일 보면서도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아니, 그것보다 나, 버스 지붕에 떨어졌잖아! 오토바이에 치여서 버스 지붕에 안착하다니, 무슨 개그냐!

 

부끄러움과 수치에 고뇌하는데 신음소리가 났다. 내 침내 밑, 간병인을 위해 만들어놓은 간이 침대 위에 내 절친한 친구 안 병웅이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자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서랍장 위에는 법과 관련된 책이 세 권. 노트에는 교통사고에 대한 조사, 라고 적혀있다. 엉망진창인 글씨에서 원념이 느껴질 정도다. 아무래도 나를 위해서 조사해 둔 모양이다.

 

노트의 윗 부분에는 화난 얼굴이 그려져 있고, 번거로운 녀석이라고 적혀있다.

 

번거로워서 미안하구만.

 

"억. 뒤, 뒤통수가 아파?"

 

몸을 일으키니 뒤통수가 겁나게 땡긴다. 만져보니 거대한 반찬고. 그러고보니 나, 일어났을 때도 제대로 누워있던 것이 아니라 모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기절하기 전에 눈알이 핑글핑글 돌았던 건 뇌진탕 때문인가?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그렇고, 링거 짜증나.

 

너스 벨을 누르니 잠시 후 간호 아주머니가 오셨다.

 

"무슨 일이시죠?"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죠?"

 

"하루입니다. 가벼운 뇌진탕과 혹이 나서 혹을 째고 피를 뽑은 뒤,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에게 존댓말을 들으니 무지하게 불편하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니 아주머니는 하품을 하고 돌아가셨다. 으음. 지금 시간이 몇시지? 핸드폰을 열어보니 1시다. 새벽 한 시.

 

불러서 죄송합니다....

 

속으로 사죄했다.

 

 

 

퇴원은 빨랐다. 가벼운 검사 몇가지를 하고 나니 너무나 건강해서 입원할 필요가 없다고 진단을 내린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구토를 하는 등, 신체에 이상이 느껴지면 하던 일 다 때려치고 오라고 한다. 번역하면 어디 아파서 오면 뇌 검사 해서 돈 뜯어먹을 거니까 오지 마, 이 정도일까?

 

병웅이는 내게 미리 조사한 교통사고와 관련된 법을 자세히 적은 노트를 건네주고 바로 학교로 갔다. 성실한 녀석. 언젠가는 손해를 볼 녀석이다.

 

나도 학교를 가기 위해 준비중이다. 점심시간 이후, 그러니까 5교시 전에 갈 생각이다. 선생님에겐 교통사고가 났다는 걸 미리 말해두었기에 결석처리는 아닐 거다.

 

그나저나, 입학 하루 뒤에 교통사고. 이걸로 나도 유명인인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어쨌든 내 소문이 났으면 좋겠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시선이 집중되고, 나에게 어떻게 교통사고를 당했냐는 질문이 오겠지. 그러면 대충 이야기하면서 친구가 되는 거야! 완벽해!

 

"오빠. 작작하고 일어나는게 어때?"

 

"시꺼. 오늘은 반드시 친구를 만들거란 말이다."

 

여동생 지희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오빠가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훗. 난 너처럼 너절하게 많은 친구를 사귀지 않아. 깊게! 끈끈하게! 인생에 하나 만들면 성공했다고 말해지는 진정한 친구를 만들거라고!"

 

"아, 오빠. 이거 읽어봤어?"

 

지희가 건넨 책을 받는다.

 

BL책이다.

 

"오빠랑 웅이 오빠, 정말 잘 어울려."

 

"너 어디가서 내 동생이라고 하지 마라."

 

뇌는 물론이고 감정까지 푹푹 삭은 녀석에게 오빠라고 불리기는 싫다.

 

아니, 오빠라고 불리고는 싶지만, 내 동생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깊고 끈끈한 사이지, 오빠랑 웅이 오빠. 가끔씩 여러가지 의미에서 신세지고 있어."

 

"신세 지지 마!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아니, 정말로! 중학교 때는 나랑 병웅이가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그로 인해서 더욱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면 좋은 소재다! 하고 불타오를걸?"

 

"너희는 잘 타지도 않는 쓰레기잖아...."

 

"핫! 뭘 모르네, 오빠. 난 오빠랑 웅이 오빠를 보기만 하면 불타오른다고! 남자 배우 두명만 있으면 불타오른다고! 아이돌 그룹을 보면 불타오른다고!"

 

"그건 불타오르는게 아니다! 썩어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다!"

 

이 썩어버린 녀석들!

 

"하지만 봐봐. 누가 친구가 교통사고 당했다고 이렇게 조사하겠어."

 

병웅이가 두고 간 노트를 펼치는 지희. 세장 넘게 빼곡한 글씨가 들어차 있다. 그 뒤에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돈을 뜯어내고, 교통사고를 당한 증거물을 잘 챙겨서 후유증이 생기면 어디에 신고해야 하며 교통사고와 관련된 공공기관의 전화번호까지 적혀있다.

 

"이건 진지한 의견인데, 웅이 오빠는 오빠를 사랑하는게 아닐까?"

 

"사랑이라고 해도 가족 간의 사랑이다."

 

분명히, 말이지.

 

"하긴. 웅이 오빠는 나도 무척이나 아껴주지. 정말 착하다고 할까, 단순하게 사는 것 같달까."

 

"그건 그렇지."

 

좋아하면 좋다, 싫어하면 싫다. 해야 한다면 하고, 하지 말아야 하면 안 하는 것이 병웅이 퀄리티니까.

 

"나도 오빠 좋아해!"

 

"갑자기 뭔 소리야."

 

뜬금없는 말이다.

 

"지금 오빠, 내가 오빠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아닌데."

 

독심술이라도 연습하고 있는거냐?

 

"그렇습니까.... 어쨌든, 나도 오빠 무진장 사랑한다고!"

 

"나도 가족으로써 널 사랑한다."

 

"난 이성으로!"

 

그냥 사랑하지 말아주세요.

 

"Like가 아니라 Love!"

 

"알았어, 알았어."

 

"아이(愛)가 아니라 코이(愛)!"

 

"일본어 쓰지 마!"

 

게다가 둘 다 사랑이라는 뜻이잖아!

 

"liebe라고! liebe!"

 

"독일어도 쓰지 마!"

 

게다가 그건 열렬한 구애를 의미하는 사랑이다!

 

또 뭔가를 말하려는 여동생의 입을 막아버린다. 웁웁 하면서 뭔가를 말하려는 지희를 방에서 내쫒고 나서야 왜 저 녀석이 지금 여기에 있는건지 의문이 생겼다. 뭐, 뻔하겠지. 가족이 교통사고 당했다고 하고 간호를 핑계로 땡땡이를 치고 있는 걸꺼다.

 

병웅이가 준 노트를 보니 학교 규정에도 2촌 이하의 사람이 사고를 당하면 하루에서 이틀 정도 학교에 가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사고당한 본인은 삼일 정도는 빠질 수 있는데 교통사고 당한 다음 날에 바로 등교다.

 

한 삼일 빠지면 좋겠는데, 이 시기에 빠지면 친구를 만든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게 되겠지.

 

그나저나 아까부터 머리가 계속 아프다. 뭐라고 할까, 푹 자서 잠은 안 오는데 몸이 잠을 필요로 하는 느낌이랄까. 머리 안 쪽이 휴식을 요구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모양이다.

 

학교 가기 전 까지 눈이라도 감고 있자.

-----------------------

*1. 가시광선을 반사시키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 자세한 건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우도록 하자.

*2. 아웃 사이더. 반에서 겉도는 사람을 지칭하는 은어. 이런 사람이 보이면 잘해주자.

 

프롤로그(유령, 보이다)가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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