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인형 살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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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42 May 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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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샤유

1.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날려가 버릴 것만 같은 강한 바람이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도시의 탁한 하늘에는 별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아무것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가로등의 빛이 멀리 보인다. 너는 아무 이유 없이 쓸데없이 감상적이 된다. 자신은 뭘 하고 있었나, 자신의 인생이란 어떤가. 내일이 되면 곧장 잊어버릴 상념들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는 진지하게 그 생각에 빠져 있다. 문득, 마치 파도처럼 도시가 일어나 너를 덮쳐오기 시작한다. 마치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너의 머리에 피가 몰린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때서야 너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는다. 빠르게 눈앞을 지나가는 창문, 창문, 창문. 그러나 그 창문의 속력은 오히려 느려지고 있다. 감속하고 있는 건가? 아니다, 너의 의식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피는 오히려 훨씬 잘 돌고 있는 것 같기에 너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아직까지 죽음은 완벽하게 가시화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은 멀지 않았다는 듯, 너의 시야에는 빌딩의 정문이 들어온다. 그때서야 엄청난 불안감과 공포감이 너의 온 몸을 감싼다. 그 때, 너는 순간 빌딩에서 나오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도와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외친다. ‘도와줘’ 하지만 말에는 음성이 담기지 않고, 너는 자신의 뇌수가 그 사람들의 옷에 묻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잠시 미안해한다. 너의 두개골이 조각조각 으스러지고, 뇌를 관통하는 고통과 함께 너의 의식은─.

 

…day, 1

 

안개가 낀 듯한 뿌연 느낌과 함께 나는 잠에서 깨었다. 이해하기 힘든 이미지들로 가득한 꿈을 뒤로하고, 나는 기지개를 켜고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 아직 완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태양빛이 흐릿하다. 아, 오늘도 시작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음식 냄새가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간 후 거실을 지나면 두 사람이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식당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그 너무나도 큰 공간감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어 괜찮다. 다만, 조금 허전하단 느낌은 어쩔 수 없지만.

“벌써 시작이야?”

류희는 먼저 일어나서, 김이 피어오르는 냄비 앞에서 국을 젓고 있었다.

“참 빨리도 일어나네, 오빠는, 벌써 7시라고.”

“하하, 미안.”

나는 빨리 앞치마를 두르고, 프라이팬을 가지고 계란 프라이를 굽기 시작했다.

 

“아, 맞다, 오빠, 아침에 아카코 씨한테 전화왔었어.”

“그래? 갑자기 왜?”

아카코 씨는 현재 우리가 부업으로 일하고 있는 탐정사무소의 소장님이다.

“학교 마치고 좀 오래. 무슨 일일까?”

“글쎄, 그럴 만한 일이….”

그러다 순간 무언가가 생각났다. 지금 우리가 지나치고 있는 빌딩,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빌딩 앞을 둘러싸고 있는 노란 줄에는 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저기에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니, 조금 기분이 나빠진다.

“저 일 때문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빌딩의 최상부가 보인다. 그곳은 담장 한 부분이 비어 있어 이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저런 곳에서 떨어진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역시, 상상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

“하지만 저 사건이, 우리가 맡아야 할 정도의 일일까?”

“글쎄, 아카코 씨는 알고 있겠지….”

정말, 무슨 일일까. 사물에는 언제나 이면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에게 보이는 것 이상의 다른 모습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양 손을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등굣길을 걸었다.

 

 

사실 인간의 몸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고작 교통사고 정도에도 온 몸의 뼈가 부서질 정도의 강도인데 수십 층 빌딩의 꼭대기에서 떨어진다면 어떨까. 아마 가루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시체의 차원이 아니라 액체의 차원이 아닐까. 원형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그리고 그것은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아카코 씨, 계세요?”

“그래, 들어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류희와 류월이 들어왔다. 몇 번을 봤는데도 적응이 되지 않는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게다가 머리카락이 아니면 전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은 얼굴. 그 모습이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답다는 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그리고 본인들은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슨 일이에요, 아카코 씨?”

“일이 들어왔어. 사실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바쁘기도 하고 훈련도 할 겸. 어때, 하겠어?”

“…좀 도움이 필요하다는 느낌으로 말 해 주실 수는 없나요.”

“사실이 그런걸. 어쨌거나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두겠어. 그래, 너희들도 예상했겠지만, 이번 일은 저기에 있는 높은 빌딩에 관련된 일이야.”

“역시 그건가요….”

“뭐냐, 그 반응은.”

그러자 류월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사람이 자살한 것일 뿐이잖아요. 그런데 그곳에 마술적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있나요?”

“물론, 있지. 이번에는 모르겠지만, 앞의 세 명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었어. 물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일반인들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말야. 어쨌건 그 인형들이, 하필이면 연쇄적으로 투신자살하고 있어. 아니, 투신타살인가? 어쨌건, 이상하잖아, 이건.”

“어라, 인형이라고요?”

“그래, 인형.”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류희는.

“이유는… 모르고요?”

“그래, 그 이유가 우리들이 알아내야 할 점이야. 범인은 누구인가,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인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이 일은 탐정소설과도 비슷해. 다만, 여기에서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트릭이 들어가도 괜찮지만.”

“그럼 우리들은 어떤 식으로 이 일을 조사하면 되나요?”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지.”

순간, 아, 뭐야, 하는 표정이 스쳐지나간다.

“에, 뭐에요, 그 불친절함은.”

“이 일은 달리 다른 방법이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알아서 단서를 모으고, 추리하고, 필요하다면 싸워야 해. 하지만 너희들은 아직 초보니까 싸우는 것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을거야. 어쨌건, 그렇게 알아듣고, 내일 학교 마치고 다시 한 번 들러, 알겠지?”

““…네에.””

어째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지만 그냥 무시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에서 두 개의 나이프를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뭔가요, 이건?”

“잭나이프. 한국에선 불법인 물건이니까 걸리지 마. 거기 스위치를 누르면 칼날이 튀어나와. 혹시라도, 필요할까봐. 알겠지?”

 

 

아카코 씨의 사무소에서 나오자 벌써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밤의 거리, 도시는 화려하다. 멈추지 않는 소리와 움직임. 찰나의 멈춤도 없고, 목적만이 가득 차 있다. 오히려 그것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내 착각일까.

“저 빌딩인가….”

류희가 한숨 쉬듯 말했다. 지금 지나치고 있는 어둠으로 가득한 빌딩에는, 드문드문 불이 켜 져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저기서 일하고 싶은 걸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인형이었지….”

“인형… 그렇다면 누가 그런 인형들을 만들었던 걸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로등 빛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는다.

인형이란 마술사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내는 인간형의 마술도구이다. 내장까지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 정도의 정교함이라면 하나 하나를 만드는 데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인형을 잃은, 혹은 자기 손으로 파괴한 마술사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아, 맞다, 오빠.”

“왜?”

“우리, 저기 좀 올라가 보자.”

“빌딩에? 갑자기 왜?”

“그냥. 역시 탐정이라면 범행 현장에서부터 모든 걸 시작해야 하잖아.”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나는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불빛 한 점 없는 옥상은 밤하늘과 동화되어 보인다.

“그래, 가자.”

 

빌딩의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는 현재 TV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는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고. 회전문(다행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을 통해 들어간 후, 다시 회전문을 멈춘다. 아마 경비는 누군가 들어갔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빌딩의 로비는 어둡다. 엘리베이터 버튼만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다. 류희는 계단으로 올라가자고 주장하지만 걸어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다.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주기적으로 바뀌는 붉은 번호.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린다. 우리는 가장 높은 층으로 가는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다. 다행이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엘리베이터는 멈추지 않는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옥상의 탁 트인 어둠이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들은, 옥상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단지 여기 올라와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네, 정말이라니까요.”

턱을 괸 그 사람은, 시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믿어줄게. 그 눈을 보니까 진짜 같네.”

어쩐지 상처받는 말이었지만 악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간다.

“뭘 보냐?”

“아, 죄송합니다.”

나는 순간 무안해져서 고개를 돌려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빛들이 끊임없이 흘러다니고 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나도 저 빛에 휩쓸려 가는 것일까.

“아깐 미안했어.”

“네? 뭐가요?”

“괜히 오해하고 소리친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뭐.”

그 사람은 미소지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뱉었다.

“자살은 왜 하는 걸까….”

담배연기와 함께 그 말을 하늘로 날려보내며, 그 사람은 말했다.

그것은 굉장히 대답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소설 같은 것에서는 그것은 마치 해방이라는 듯 이야기되고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것은 오히려 고통의 연속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마, 자살자 그 자신이 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아닐까.

“그런데, 저….”

“아, 내 이름은 지연이야.”

“네, 그러니까 지연 씨는 왜 이 옥상에 올라오신 건가요?”

류희의 질문에, 지연 씨는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 담배를 피고 있다가, 후우, 하고 담배연기를 내뱉고는, 꽁초를 그대로 손에서 놓았다.

담뱃꽁초는 천천히 지상으로 녹아들어갔다. 곧 사그라질, 희미한 빛을 내며.

“사람도 저렇게 떨어진다면 다치지도 않고 좋을 텐데.”

“그렇다면 다른 자살 방법을 찾겠죠.”

“그래, 아쉽지만 그게 정답일 것 같네.”

그러면서 그녀는 쿡쿡, 하고 조금 쓸쓸한 듯 웃었다.

그러고는, 류희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나도 너처럼 오빠가 있었어. 너희들처럼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오빠였어.”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가에 반짝이는 것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살해버렸단 말야. 딱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 여기 와 봤는데, 여전히 모르겠단 말야. 왜 그랬을까.”

“그 말은….”

나는 말을 멈추었다. 만약 지연 씨의 오빠라는 사람이 여기서 자살했다면, 그것은….

“아, 물론 여기서 자살한 것은 아니야.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문득 생각나서 그냥 올라와 본 것뿐이야. 아, 그럼 난 먼저 내려가 볼게, 안녕.”

그녀는 미소짓고,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섰다. 그녀의 눈에서 반짝이는 것이 떨어졌다.

“괜찮은 걸까?”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그럴까. 나는 난간에 기대어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잠들지 않는 도시, 움직이는 사람들. 지상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기분은 어떨까. 언제 번지점프라도 한 번 해 봐야겠다. 물론, 줄을 매달고.

 

 

초저녁 무렵,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다.

온통 붉게 물든 하늘이 어쩐지 아름답다고 느낀다. 어렴풋이 거리의 소음이 올라오지만,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기에는 너무 멀다. 자판기에서 막 뽑은 커피를 들고 있는 너는, 하늘의 노을을 보며 문득 감상적인 기분이 된다. 이러고 있으니 바쁜 일상 속 잠시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면, 네가 올라왔던 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문득 너는 그것이 지옥으로 가는 문 같다는 생각을 하고 몸서리친다. 너는 조금이라도 그 곳에서 멀어지고 싶어서 뒤로 발걸음을 옮긴다. 콘크리트 대신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너는, 하늘에 커피가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의문을 제기할 새도 없이, 곧 고막을 찢는 바람소리가 너의 귓속을 파고든다. 어, 저렇게 되면 마실 수 없는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네 시야의 끝에 아까까지만 해도 네가 있던 자리가 들어온다. 그제서야 너는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닫는다. 하지만 의문을 던지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어째서, 를 끝으로 너는─

 

…day, 2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두 번째 피해자가 떨어진 이후 커피가 쏟아져 내렸다고 한다. 어째서 그 인형은 커피를 들고 올라간 걸까. 그것은 불필요한 행동일 텐데.

“그 인형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데.”

오빠는 뜬금없이 그런 말을 꺼냈다.

“갑자기 왜?”

“너무 인간적이잖아. 저녁에 커피를 들고 노을을 구경하는 인형이라니.”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인형은 인형일 뿐이야, 오빠.”

“뭐, 그렇긴 하지만.”

오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곳에는, 비닐 봉투 하나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번 일은 우리가 처음으로 단독으로 맡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아카코 씨의 일을 도와주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일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조금 긴장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큰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단 아카코 씨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닐 테니까.

그리고, 다시 고개를 내려 정면을 보았을 때였다. 웬 커다란 눈이 눈앞에 있었다.

“…뭐 하니.”

“어라? 놀랄 줄 알았는데 안 놀라네. 깜짝 놀라서 품위도 잃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이 여자는 언제나 사사건건 시비다. 나는 한숨을 쉬었고, 시은이는 뒤로 걷기를 멈추고 내 옆에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네 눈을 볼 때면 무섭단 말야. 어떻게 저런 색깔이 나올 수가 있을까.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그것 가지고 시비 걸려면 그만 둬. 이미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그래도 기분 나빠 보이는데. 뭐 그런 걸 가지고 콤플렉스냐? 얼굴도 이렇게나 귀여운데.”

“…헛소리 하지 마.”

시은이는 유쾌한 듯 웃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길고 검은 생머리에 양갓집 규수같은 단정하고, 예쁜 얼굴. 약간 날카로운 듯 하지만 크고 아름다운 검은 눈. 그런 주제에 괜히 남을 치켜올린다.

“그만 둬, 싸움 나겠다.”

“걱정하지 마, 류월아. 이래봬도 류희랑 나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니까.”

“…누구 맘대로.”

“내 맘이지, 뭐.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전혀.”

물론 시은이는 예상했다는 듯 크게 웃고 팔로 내 어께를 감싼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 여자가 좋은 친구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녀 덕분에 우리들은 다른 아이들과 좀 더 어울릴 수 있었고,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고립된 채 학교생활을 보냈을 것이다.

…어쩐지 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들은 ‘아카샤’의 동아리실로 들어갔다. 토요일은 동아리 활동을 하는 시간이라 수업이 없다. ‘아카샤’는 철학 동아리로, 우리 학교 최고의 천재이자 자칭 신 시하가 동아리장을 맡고 있다. 소개만 들으면 딱딱한 철학서가 가득찬 동아리실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보드게임 등 놀기 좋은 것들이 가득 차 있는 방이다. 시하의 말로는 ‘좋아하는 것을 하는 동아리’라나, 처음에는 인기가 없을 줄 알고 지원했는데, 알고 보니 최고 인기 동아리였다는 사실에 망연자실. 게다가 우리가 뽑혔다는 사실에 또 망연자실.

“여, 왔냐, 너희들.”

“안녕, 시하.”

시하는 반갑게 인사하며 우리를 맞았다.

“지금 루미큐브 하던 중이었는데, 같이 할래?”

“미안, 시은이랑 모노폴리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거든.”

“그래? 그렇다면 아쉽지만.”

시하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들은 창가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시작했다.

“너희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상대가 안 된다니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지. 언제까지 그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러다 싸우겠다.”

“오빠는 가만히 있어! 이번에는 아이스크림 내기, 어때?”

“그거 괜찮네.”

의외의 목소리에 우리들은 모두 그 곳을 돌아보았다. 시하였다.

“어, 시하야? 하던 게임은?”

“막 끝나려던 참이었거든, 그리고 여기가 더 재미있어 보여서. 괜찮지?”

“응, 괜찮아. 인원도 딱 맞고.”

오빠의 대답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시하가 왜? 그러나 게임은 시작되었고, 우리들은 곧 즐겁게 게임에 빠져들었다.

 

“내가 보기엔, 너희들은 자신감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소용없다니까, 시하.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는데.”

우리들은 시하가 산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상하잖아.”

어째서 우리가 이런 설교를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시은이가 말했다.

“또 나왔다, 저 이상하다는 말. 외모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너희들은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다가가기 힘든 쪽이라니까.”

“에이, 거짓말.”

“진짜라니까. 너희들 팬클럽도 있는데.”

“그건 좀 아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진짜였어. 그러니까 좀 믿으라니까!”

“믿을 만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아, 그럼 이만. 가 봐야 할 데가 있어서.”

“…에휴, 잘 가라.”

“잘 가, 얘들아.”

“그래, 안녕!”

오빠와 나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아직 점심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카코 씨의 집에 가면 먹을 게 있지 않을까.

“진짜일까?”

“뭐가?”

“팬클럽”

“에이, 설마. 말도 안 된다니까, 그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진짜였다.

“시하는 왜 우리들을 잘 대해주는 걸까?”

“글쎄….”

아직 우리들은 친구가 많지 않다. 우리들은 이 붉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들의 태도가 문제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새 도착해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계세요!”

 

기대하던 대로, 아카코 씨는 메밀국수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먹어, 남기지 말고.”

“잘 먹겠습니다!”

후루룩, 후루룩, 일본 사람이라 그럴까, 아카코 씨의 메밀국수는, 뭐랄까, 급이 다르다.

“그래, 뭐 알아낸 거 있냐?”

“아, 아뇨, 아직은….”

“뭐, 어쩔 수 없겠지. 이번 일은 꽤나 추상적이니까. 조바심내지 말고 천천히 해. 알겠지?”

나는 아카코 씨를 올려다보았다. 검고 긴 머리카락과 일자로 자른 앞머리, 가늘고 날카로운 눈, 솔직히 말하자면 아카코 씨는 엄청난 미인이다.

“아, 맞다, 그래, 네 번째 피해자의 검사결과가 나왔어.”

아카코 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 인형인 걸까?

“그래요? 이번에도 인형인가요?”

“그래, 인형이야.”

“역시 그렇군요… 범인은 왜 그렇게 인형만을 죽이는 걸까요? 그것도 투신이라는 눈에 띄는 방법으로?”

“글쎄, 난 모르겠어. 일단 이 사건 책임자는 너희들이니까 그런 건 너희들이 생각해.”

“네, 네.”

뭐랄까, 역시 인형이라 그럴까, 그 잔혹성에 비해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메밀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에휴, 막막하네.”

오빠는, 푸념 섞인 한숨을 쉬었다.

“…탐정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 꼼꼼히 자료를 모으고 추리를 해내는 걸까.”

“그러니까 추리소설이 재미있는 거겠지, 그런 식으로라도 탐정 기분을 낼 수 있으니까.”

나는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지친 것일까. 하지만, 원래 처음이 가장 힘든 법이다. 계속해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일까?”

“글쎄….”

나는 그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세 명의 인형과, 한 명의 사람이 떨어진 빌딩. 그리고 그 곳에는, 어쩐지 눈에 익은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어, 오빠. 저 사람, 어제 그 사람 아냐?”

“그렇네, 무슨 일일까?”

“올라가보자.”

 

“어라, 너희들 또 왔네?”

“안녕하세요, 지연 씨.”

그녀는 난간에 팔을 얹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별로 놀란 표정이 아니네, 내가 여기 올라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건 아니고요, 사실 밑에서 보고 올라왔거든요.”

“그래? 눈도 좋네.”

나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이 모두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흘러가는 점들의 모습은, 마치 도트로 이루어진 게임을 연상시킨다.

“야, 날씨 좋다. 우리, 놀러가지 않을래?”

그것은, 뜻밖의 제안이었고, 그래서 오빠와 나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싫은 거야? 그러면 어쩔 수 없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지만 저희들과 같이 다니면 지연 씨가 이상하게 보일까 싶어서….”

“왜? 뭐가 어때서?”

“이상하잖아요, 저희들, 머리카락이나 눈동자나….”

“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외국에서는 피부색도 다른데도 서로 잘 어울려 다니는데, 게다가, 너희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정말, 모르는 거야?”

그 말이, 그렇게나 기쁘게 들렸던 것은, 오랜만이었다.

“…정말요?”

“그럼, 정말 인형같이 예쁘다니까.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래, 갈래, 아니면 말래?”

오빠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갈래요!”

 

그리고 우리들은 지연 씨와 함께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영화관, 오락실, 수족관, 쇼핑몰, 혹은 유원지 등. 정말 즐거운 시간들이었고, 어느 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즐거웠어?”

“네!”

헤어지는 길, 지연 씨는 석양을 등지고 있었다.

“그랬다면 다행이네. 나도 즐거웠어. 너희들을 만나서 반가웠고.”

“저희도요, 지연 씨.”

그러자 그녀는, 조금 쓸쓸한 듯ㅡ그것은 단지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ㅡ미소지었다.

“그럼, 이만 헤어지자. 잘 가, 얘들아.”

“네, 안녕히 가세요. 지연 씨.”

그리고 지연 씨는 길의 저편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이 쪽을 돌아보았다.

“너희들, 혹시 내일도 그 빌딩에 와 줄 수 있겠어?”

“네? 왜요?”

“할 말이 있어서, 그럼, 내일 보자, 이만!”

그녀는 손을 흔들며, 천천히 석양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갔네.”

“…그러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걸까?”

“…글쎄.”

 

 

하늘이 파랗다. 솜사탕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닌다.

태양빛이 눈부셔 세상이 온통 표백된 것 같다. 책을 들어서 자그마한 그늘을 만든다. 하늘 색 책이라서 그런지 미묘한 기분이 든다. 그러다 너는 자신에게만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책을 내려놓고 어딘가 기댈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다본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무언가 빠져 있다.’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 말을 듣자, 너는 이상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본다. 뭐야, 넌 누구야, 너는 그렇게 외친다. 물론, 가르쳐 줄 생각은 없다. 이렇게 된다면 다른 방법은 없다. 나는, 너의 팔을 끌고, 점점 타나토스를 향해 다가간다. 너는,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외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나는, 기어이 너를 끌고, 뛰어내린다. 공기의 저항을 받아 온 몸이 뒤틀린다. 이번에는 좀 깔끔하지 못한 죽음이 될 것 같다.

 

 

“…어나!”

누군가가 정체불명의 소리를 지르며 내 몸을 흔들고 있었다. 가늘게 눈을 떠 보니,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내 눈을 찌른다.

“일어나! 오빠!”

…류희였다. 류희의 머리카락이 계속 내 눈을 찌르려 해서 나는 류희의 머리를 치우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 몇시야.”

“10시 반이야, 벌써 해가 중천에 떴는데.”

“으응, 알았어. 일어날게.”

나는 기지개를 켜고 침대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역시 상쾌한 햇살이 하루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눈에 띄는가? …뭐, 그렇긴 하지만.”

도서관에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 어른, 학생, 외국인인 듯한 사람도 있었고, 학자 같은 분위기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심지어 외국인보다도 우리들이 더 시선을 끌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쩐지 졌다는 기분이 든다.

“…신경 쓰지 말자.”

“…분하지만.”

류희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우리들을 쳐다보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에휴….”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도서관 단골인 사람들과 인사했다.

넓지만 아늑한 분위기의, 어쩐지 영화에 나오는 대학교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도서관은, 내부는 목재로 되어 있었고, 외부는 벽돌 건물이었다.

우리는 거의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이 도서관에 왔다.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남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도서관도 요즘은 왠지 사람이 많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착각일까.

우리들은 책꽂이에서 책을 골라 자리에 앉았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난독의 즐거움을 한껏 선사해주는 이 책은, 한번에 읽지는 못하고 매번 도서관에 올 때마다 야금야금 읽어가고 있다.

활자들을 천천히 읽어내려 가다가 어께가 뻐근해져서 기지개를 켰을때, 앞의 사람이 읽고 있는 신문의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예의 사건의 빌딩의 옥상에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내용을 읽고 싶었으나, 글씨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에게 ‘신문 빌려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도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다시 책에 정신을 집중했다.

 

“…없네.”

옥상에 올라왔지만, 지연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가?”

“그렇겠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탁 트인 푸른 하늘이 인상적이었다.

하늘에는 새가 날고 있다. 만약 떨어진 사람ㅡ 아니, 인형들이 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도시가 통째로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큼 마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없으니까.

아카코 씨는 네 번째 피해자는 사람이고, 어째서인지 달려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혹시 그 사람은 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마술 때문일까. 그리고 마술 때문이며 동시에 날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과연 날았을까?

잠을 덜 자서 그런지 조금 피곤한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난간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무언가를 생각해냈다.

분명, 처음 이 빌딩을 올려 봤을 때, 난간 어딘가가 텅 비어 있었지 않았던가? 빌딩의 안전성 문제? 달려 나온다─ 그것은 난간으로 막혀 있다면 불가능한 일일 텐데?

 

나는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리 크지는 않지만, 사람 하나는 충분히 빠져나갈 만한 공간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본다.

 

“…어?”

만약 지금 거울로 내 얼굴을 본다면, 분명히 바보 같아 보일 것이다. 얼이 빠진 표정일 것이 분명한 내 얼굴, 그것이 내 마지막 모습이라니,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가 없다. 류희의 얼굴이 보인다. 어떤 일이 일어난건지 파악할 수 없다는 표정. 그 얼굴이 시야 바깥으로 점점 벗어난다. 세상이 기울어진다. 아니, 내가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구름이 지나간다. 감속되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것이 아니라, 의식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일 것이다. 나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손을 내뻗는다. 그리고 마치 거짓말 같게도… 누군가의 손이 내 손을 붙잡는다.

 

“날씨가 참 좋다, 그렇지?”

지연 씨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태연하게.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녀의 태도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연 씨.”

“응? 왜?”

“지금… 어디에 기대고 있는 거죠?”

그녀는 내가 빌딩 아래에서 본, 그리고 아까 도서관에서 봤던 신문에서 어렴풋이 본 그 난간의 틈이 있던 자리에 기대고 있었다.

물론, 그 자리는 보란 듯이 구멍이 뚫려 있다.

“…정체가 뭐죠, 당신.”

류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지연 씨는,

“뭐야, 이렇게나 힌트가 많은데 아직도 모르겠다는 거야?”

그러고는 지연 씨는, 허공에 턱을 괴고서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마술사인가요?”

나는 이 말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싸울 생각까지 하면서 주머니 속의 칼을 잡았다.

지연 씨는, 이제야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맞아, 그리고 이 소동의 주동자이기도 해.”

나는 순간, 거의 칼날을 꺼낼 뻔 했다.

“걱정 마, 너희들을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나, 싸우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그렇다면 왜 저희들을 이 옥상에 부른 거죠? 그리고, 그 등 뒤의 허공은, 무슨 의미죠?”

“모르겠어? 나는 너희들을 투신시키려고 여기 불렀고, 그리고 이 허공은 그것을 위한 도구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의 대답에, 나는 엄청난 섬뜩함을 느꼈다.

“왜… 그러려고 한 거에요.”

그러자, 그녀는 우리들을 향해 웃으며,

“그거, 좋은 질문이네. 그런데 일단 답변하기 전에, 담배 한 대만 필게, 기다릴 수 있겠지?”

그러고서 그녀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워물었다.

구름 같은 담배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우리들은, 그 짧은 시간동안 거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짧아진 담배꽁초를 난간 밖으로 던졌다. 저래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오기도 전에 그녀는 말했다.

“나한테 오빠가 있었고, 그 오빠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사실, 그건 거짓말이야. 우리 오빠는 자살한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죽었거든.”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러고는 옥상 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별 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그게 너무 괴로웠어. 그래서 죽어버리려고 이 옥상에 올라왔어. 그런데, 막상 올라오니 너무 무서운 거야. 죽고 싶지 않더라. 하하, 모순이지. 자살하고 싶은데 죽기는 싫다니, 그래서, 난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어.”

그리고 그녀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우리들의 눈앞에 흐릿한 사람 형상이 나타났다.

“내 인형이야. 물론, 실물은 아니고 환상이지만. 그리고, 인형은 자신이 인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 어쨌거나 나는, 이 인형에게 암시를 걸었어. 옥상에 올라와, 여기 이 난간에 기대어라.”

그리고, 눈앞의 형상이 사라지고, 갑자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른 형상이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면, 나는 잠시 내 의식을 인형으로 옮기는 거야.”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인형의 모습은, 아까까지 그녀가 등을 기대던 허공에 등을 기대었고, 당연하지만, 그 인형의 모습은 저 너머로 사라져갔고, 대신 지연 씨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하면, 나는 자살했는데 죽지 않았어. 정말 멋지지 않아?”

“…어떻게 한 거죠?”

“간단해, 암시야. 약간의 환상이 더해진.”

그리고 그녀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벽이 생겨났다.

“사실, 환상 자체는 아무런 효과도 없어. 물리적으로도, 마술적으로도. 하지만, 거기에 약간의 암시가 걸린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녀는 그 벽에 등을 기댔다. 분명, 물리적 효과는 없다고 했을 텐데.

“너희들은 지금 내가 벽에 기대어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너희들이 인식하는 내 행동일 뿐이야. 내가 실제로 뭘 하는지는, 너희들은 절대 알 수 없어. 실제의 나는 단순히 팔짱을 끼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물구나무를 서고 있을 수도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어째서 너희들처럼 경계심 많은 애들이 처음 만난 낮선 사람과 그렇게 빨리 친해지고, 약속까지 하는 사이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당신은 설마, 그것도 연극이었다는 건가요?”

“아냐, 나는 정말 너희들이 좋았어. 다만 너희들과 친해지기 힘들어 보였기에 약간의 암시를 건 것뿐이야. 믿어줘, 이건 진짜야.”

어째서일까, 그 말을 듣고 기쁘다고 느낀 것은.

“제 손을 잡은 것도 그것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차라리 모르게 하는 게 나았을 텐데.”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네 여동생이 나 같은 일을 겪는 건, 보고 싶지 않았거든.”

“당신이 죽인 그 인형도, 다른 사람에겐 소중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요?”

“뭐가 어쨌든, 지금 그 사람이 내 눈 앞에 있는 건 아니잖아?

지나치게 섬뜩한 사고방식이다.

“그럼… 당신은 앞으로 어쩔 생각이죠?”

“여기는 이미 들켰으니까. 다른 곳에서 계속해야지.”

“어째서…! 그만큼이면, 충분할 텐데….”

그러자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아팠는데, 하다 보니까 즐거워서 말야. 선명한 죽음의 감각이라는 게, 그래서, 도저히 끝낼 수가 없게 되어버려서. 너희들도 느껴 봐야 하는 건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이 사람은 위험하다. 나는 그 사람의 앞을 막았고, 류희는 뒤를 막았다.

“호오, 그렇게 해서, 어쩌려고?”

“당신을 잡아, 경찰에 넘기겠어요.”

“믿어줄까, 과연?”

“상관없어요. 우리 사무소에 이 일을 의뢰한 사람만 찾아오면 되요.”

“그래? 그런데 너희들이 날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못 잡는다는 보장은 없죠.”

“내가 환상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봐?”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들과 함께.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밀려드는 허탈감에, 나는 나이프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노을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바람이 많이 불어 시원하다. 상쾌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을 정도는 된다. 이 도시의 하늘은 어째서 이렇게나 잿빛일까. 너는 잠시 그렇게 한탄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너는 잠시 이상하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 것도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한 대 꺼내든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는데, 강한 바람이 너의 담배를 허공에서 춤추게 한다. 너는 담배를 잡으러 옥상 끝으로 달려간다. 이대로라면 난간에 걸리지 않을까, 너는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너의 다리에 아무런 반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라, 무언가 이상하다, 그런 생각은 들지만, 너는 네 손에 담배가 쥐여져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한다. 그렇지만 그 담배를 피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짧고 담배를 든 너는─

 

 

“…이렇게 된 일이에요.”

류희와 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아카코 씨는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게 된 이야기란 말이지… 흠, 그래, 그렇다면 우리 일은 끝났어.”

“네? 어째서요? 범인도 잡지 못했는데?”

“다른 곳으로 떠날 거랬잖아. 이 도시 바깥은 우리 소관이 아니야. 그렇다면, 일은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는 것, 알겠어?”

“하, 하지만… 그렇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거라고? 하지만 그건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그리고 그 정도로 뛰어난 마술사가 몸을 숨기려 한다면 너희들이 아무리 노력해봤자 잡을 수 없어. 그리고 나는 나설 생각이 없고.”

“그, 그래도….”

“무엇보다 너, 그 사람 얼굴은 기억나?”

“그건 당연히….”

어라? 류희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의문이었다. 정말, 도저히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헤어스타일, 눈동자의 색, 그 어느 것도.

“기억 안 나지? 그건 당연해. 그런 마술사들은 대체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거든. 가면이 아니라 마술로.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 사람을 보면 당연히 그 사람이라고 알지만, 사실 너희들이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나 특징이 아닌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이라는 거야. 그 마술사는 환상과 암시를 썼다고 했지? 그렇다면 더 쉽겠군. 아마 그 정도라면 우리가 그 마술사를 찾을 방법은, 전혀 없어. 아마 그 마술사는, 지연이란 가면을 버리고 또 다른 가면을 썼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카코 씨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눈을 뜨고 말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 마술사를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네? 어떻게요? 그 마술사는 환상이었잖아요.”

“과연 그랬을까?”

“네, 분명히 갑자기 나타나서 오빠의 손을 잡았었고, 갑자기 사라졌었는데… 어라?”

류희는 갑자기 이상하다는 듯, 말을 끊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야 깨닫다니, 순간, 내 한심함에 자괴감이 느껴졌다.

“이제 알겠지? 환상은 물리력을 가질 수 없어. 그런데 그 마술사는, 류월이의 손을 잡았단 말야. 그것이 의미하는 게 뭘까? 내 생각이지만, 그 마술사는 너희들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암시를 걸었을거야. 물론, 마지막에도 마찬가지야. 아마 자신이 환영이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만들고, 암시를 걸었겠지. 어느 정도의 논리적 결함 정도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거 참, 강적이네, 정말.”

허탈했다. 그 정도도 간파해내지 못한 우리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나 당했다는 사실이 분했다. 그저, 너무 화가 났다.

“자책하지 마, 나라도 힘든 일이었을 테니까. 경험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이런 일 많이 겪어야 할 테니까.”

그리고, 아카코 씨는, 정말 보기 드문ㅡ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카코 씨의 사무소에서 나오고 나니, 오후는 중간쯤에 접어들어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낮의 맑은 햇살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들, 맑은 태양빛은, 세상을 탈색시킨다. 하얗게.

그렇게, 정처 없이 길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음반가게 앞의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

일요일 아침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는 노래. 오랫동안 듣지 못했지만, 나는 이 노래를 좋아했다. 그 맑고 영롱한 소리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멍하니 그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 끝나자, 류희가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왜?”

“가자.”

“어디?”

“아무데나. 시은이도 부르고 시하도 부르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서 노는 거야. 일요일이잖아, 아직.”

그리고 나서, 류희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만약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그럴 리가 없잖아. 설마 그런다 해도, 마술로 어떻게든 해 버리면 되고.”

“그렇긴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에는 잿빛의 하늘이, 오늘은 유난히도 파랗게 느껴졌다.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6년전에 처음 쓰고 아직까지도 손보고 있는 조루돋는 작품


6화 구상이었지만 어느새 2화는 저 멀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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