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기적 따윈 없어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05:22 May 21, 2010
  • 4790 views
  • LETTERS

  • By 칸나기

 

그래. 여기까지다.
애당초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도 아니다. 이런 내게 타이밍 좋게 비행기 타기 전의 히로인을 붙잡는다는.
그런 편리한 기적 따위 일어나줄 리가 없다.
결국 현실은 여기까지. 더이상 따라들어갈 수도 없고, 내 목소리는 이번에도 닿지 못한 채 히로인을 보내줄 수밖에 없다.
그래. 여기까지다.
나는 여기까지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 이대로 포기할 거야?]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니까.
[정말 이대로 히로인을 멍청하게 보내버릴 거냐고]
─그동안에도 몇번이고 내 말을 히로인에게 전하는데 실패했다.
[포기하지 마!]
─그런 내가 이제와서 타이밍 좋게 히로인을 붙잡는다는 일 따위, 이런 내게 기적이 일어나는 일 따위, 일어날리───
[약속했잖아. 붙잡아준다고.]


─없어도 좋다.
그런 형편 좋은 기적 따위,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
물론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도 아니고, 타이밍 좋게 기적을 손에 넣어보이는 희대의 행운아도 아니다.
오히려 지난 날들 동안 몇번이고 부딪히고 꺽이고 엇갈리면서, 그동안 제대로 히로인에게 내 진심을 전해본 적도 없는 패배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이런 내게 기적이 일어나주지 않아도 좋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해서── 포기할 리 없으니까.
그간 나와 히로인을 바라보며 등을 밀어준 사람들이 있다.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여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격려를 받으며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이제와서 그딴 사소한 기적 따위 일어나지 않은 걸로 포기할 리 없잖아!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내게, 그런 형편 좋은, 아주 사소한 하나의 기적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저───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울고 있는 히로인.
그리고, 그런 히로인 앞에 등장한 주인공.

 

"드디어, 드디어 찾았어."
울먹이는 히로인 앞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나는 간신히 입을 열어 말한다.
"어, 어떻게…?"
울음에 가라앉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묻는 히로인.
──기적 따위, 일어나주지 않아도 좋다.
나는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히로인에게 간신히 웃어보였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내게 기적 따위 일어날 리 없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좋다. 어차피 형편 좋은 기적 따위에 기댈 생각도 없다.
나는 그저──
"방금, 비행기 표, 샀, 으니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현실 속의 나는, 그저 내 손으로 현실을 붙잡을 뿐이다.
히로인의 소리 죽인 울음은, 이제 펑펑 우는 울음으로 변했다.
그런 히로인앞에서 말한다.
그간 몇번이고 엇갈리고, 빗나가고, 현실이라는 이름의 벽에 가로막혀 한 번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내 말을.
내 손으로 쟁취한 기적 아닌 현실속에서
지금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손을 건네며
"자, 돌아가자."
내 진심을 드디어 전했다.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최종 글
공지 『경소설회랑 창작공간』 비영리 공간 선언 (1) file 수려한꽃 2012.05.17. 78555
공지 글 올리기 전에 꼭 읽어주세요!! (3) file 수려한꽃 2012.01.21. 84225
18 프롤로그! 심청전 음욕시인 2010.05.31. 4818  
17 프롤로그! 인피니티 데이 이카루스 2010.05.31. 4508  
16 프롤로그! 싸버리겠다! (2) 도그 2010.05.31. 5189
15 프롤로그! 황천트롤전쟁 (1) 김능력무 2010.05.31. 6294
14 프롤로그! 흙범 김능력무 2010.05.31. 5845  
13 프롤로그! (가제)팡팡 월드 (3) 히노카케라 2010.05.31. 5834
12 프롤로그! Lightning Saviors 휴대전화와 하늘을 나는 소녀 데꼬드 2010.05.31. 4911  
11 프롤로그! 공돌이만이 세기말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다. 안녕 내이름은 김삼식 (1) latte 2010.05.30. 5119
10 프롤로그! 무신론의 군대 (2) 이웃집드로이드 2010.05.22. 4728
9 프롤로그! 터키석의 소년기사 이웃집드로이드 2010.05.22. 5169  
프롤로그! 기적 따윈 없어 칸나기 2010.05.21. 4790  
7 프롤로그! 경소설회랑·프롤로거오픈&부처님오신날 기념 엽편: 프롤로그 (2) 위래 2010.05.21. 5399
6 프롤로그! Twins? Twins! 데꼬드 2010.05.21. 6525  
5 프롤로그! 인형 살해자 샤유 2010.05.21. 4886  
4 단편 흡혈귀 효요와 소설가 시호(1) (4) 칸나기 2010.05.09. 7813
prev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57'이하의 숫자)
of 57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